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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재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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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은 제목처럼 시에 대한 학문을 논하는 책은 아니다. 원래의 그리스어 제목은 'POIETIKE'로 가장 뒤의 'KE'는 이른바 기술이라는 뜻의 'TECHNE'의 어미로 원래 제목에 충실하자면 시 제작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유일한 판본으로 인정받는 BEKKER 판본에 따르면 이 '시학'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일정한 체계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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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은 제목처럼 시에 대한 학문을 논하는 책은 아니다. 원래의 그리스어 제목은 'POIETIKE'로 가장 뒤의 'KE'는 이른바 기술이라는 뜻의 'TECHNE'의 어미로 원래 제목에 충실하자면 시 제작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유일한 판본으로 인정받는 BEKKER 판본에 따르면 이 '시학'은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BEKKER 판본(이 책 역시 이 판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시 그러한 체계에 따라 배열되었는데 가장 처음엔 학문을 하는 방법인 'ORGANON'에 속하는 원론적인 논리학적인 작품들이 나오고 그 뒤 자연철학, 생물학 이라든지 형이상학에 관한 이론학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오고 그 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같은 실천학에 해당하는 작품이 나온다. 그 뒤 마지막으로 제작기술에 관한 작품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이 '시학'이다. 

 따라서 그리스 제목이나 BEKKER 판본의 체계에서도 드러나듯이 시학은 시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시를 제작하는 기술에 대한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것 하나를 느끼게 된다.

 시에 대한 제작 기술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것은 오로지 서사시와 비극에 관한 것일 뿐, 어쩐일인지 서정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 서정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원전 7~6세기에 정확히 서정시가 널리 존재했었던 것이다. 당시는 '귀족정'과 평민 사이에 계급적 갈등이 있었던 시기로 따라서 '귀족정'에서 널리 유행하던 서사시는 평민이 각성을 하고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자 점점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는 서정시에게 그 지배적인 위치를 서서히 내어주게 된다. 그 뒤 기원전 5세기 민주정 시대에 와서 비로소 비극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서정시는 서사시와 비극을 가교하는 역할까지 맡기도 했다.

 이렇게 분명히 서정시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것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바로 이것에서 이 책이 번역본으로 삼고있는 프랑스 역자 뒤퐁록과 랄로는 그래서 사실은 이 아리스토텔레시의 시학이 시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메시스, 즉 '재현'에 관한 기술만을 다루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즉, 서정시는 재현적인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시학의 '전망'속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 재현에 의한 거리만이 정화된 줄거리를 구성할 수 있는데 우발적으로 그리고 특이한 순간에 포착된 시인의 자아에 초점을 맞추는 서정성은 그러한 거리를 배제하는 것이다.... 요컨대 헤로도토스의 연대기와 마찬가지로 서정시에는 허구를 통한 물러섬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학은 서정시를 무시한 것이다. 서정시에는 재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기 때문이다.(p. 30)" 

 이렇게 뒤퐁록과 랄로가 명확히 언급하고 있듯이 시학은 오로지 재현에 관한 것이며 서정시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연대기가 시학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현적인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한 마디로 재현에 관한 것이며 그 방법론에 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26장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제목이 따로 붙여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에소테리카'라고 해서 일종의 강의안 초록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 아니라 그가 세운 뤼케이온 학원에서 강의하기 위해 쓴 것이다.(p.578) 따라서 챕터의 구별만 있을 뿐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제목이나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리뷰를 일종의 메뉴얼로 삼아 혹시 뒤에 읽으실 분들이 참고 가능할 수 있도록 그 각 장이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지 대략 여기서 정리해 볼까 한다.(물론 뒤퐁록과 랄로는 서문 p.22 에 도표로 이것을 정리해 놓았다. 그것을 참조해도 좋을 것이다.) 

 1장 - 재현을 다루는 예술을 구분한다. 크게 서사시와 비극으로 구분한다. 

 2장, 3장 - 재현의 수단과 대상 그리고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서사시와 비극 그리고 희극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그것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나뉘어졌는지 얘기한다. 

 4장 부터 본격적으로 재현에 대한 얘기가 이루어지고  6장은 시학에서 가장 중요한 챕터중 하나로 드디어 비극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비극에 대한 정의와 그 비극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을 소개한다. 그 요소들은 줄거리, 성격, 표현, 사상, 볼거리, 노래 등이다. 7장에서는 그 근본적인 요소들중 뮈토스(줄거리)에 대한 얘기를 한다. 줄거리는 사건들의 조작이며 가장 처음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줄거리는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기준을 인물로 둘 것이냐 아니면 행위에 둘 것이냐에 의문이 생기는데 그 대답을 이어 8장에서 이야기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현의 동일성은 바로 대상의 동일성이며 행동의 재현인 줄거리는 그래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단일한 행위를 기준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뒤이어 9장에서 그 행위를 중심으로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해 그 기준으로서 개연성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바로 그것이 연대기와 '시'의 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학에서 서정시가 제외된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보여주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말이 나온다. 

 "시인이 시인인 것은 재현하기 때문이며 또 재현하는 것이 행동인 만큼 운율 보다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시인이어야 한다(p.197)" 

 즉, 이 말로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정시를 아예 시로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더하여 개연성과 필연성 외에 재현의 효과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특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10장에선 단순한 줄거리와 복잡한 줄거리로 줄거리의 유형화를 시도하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다음장인 11장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인 '급전'과 '발견'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11장이 주로 설명하는 '급전'과 '발견'은 모두 반전에 속하는 것으로 급전은 뒤에 가서 행동의 효과가 완전히 뒤집히는 것을 말하고 발견은 무지에서 앎으로 옮겨가는 행동을 말한다. 10장의 줄거리의 유형화와 관련지어 말해본다면 이 급전과 발견이 존재하는 줄거리가 바로 복잡한 줄거리이고 이런 것이 없는 줄거리는 단순한 줄거리이다.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는 복잡한 줄거리가 훨씬 고상하고 우월한 줄거리이다. 그런데 복잡한 줄거리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격정적 효과이다. 이것은 파괴와 고통을 야기하는 행동을 말한다. 

 11장 까지가 비극이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요소들에 대해 얘기했다면 12장은 바로 비극의 외부적 형식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뭐랄까 연극의 순서 같은 것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비극의 외부적 형식은 도입부(프롤로그) - 삽화(에피소드) - 퇴장(엑소더스) -합창(코러스) 이런 순서로 이루어진다. 13장에서는 다시 내부적 요소로 돌아가 두려움과 연민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줄거리 구성에 있어서 피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14장에서는 두려움과 연민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긍정적 줄거리 구성에 대해 말한다. 

 15장에서는 비극의 다음 요소인 성격 

 16장에서는 발견을 그러다 다시 17장에서는 줄거리에 최대한 일관성을 부여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해 말하다가 18장에서는 그 일관성을 부여하는 대표적 방법 중 하나로 분규와 해결을 들고(모든 비극은 분규와 해결로 이루어져 있다(P.340) 비극에 있어 일관성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서사시와 비교하여 얘기한다. 

 19장에선 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하다고 여겼던 표현과 사상을 

 그리고 정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것인지 의심받고 있다는 20장과 22장까지에서는 그 표현에 있어서의 구성부분을 문법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23장과 24장은 재현의 또다른 형식인 서사시에 대한 얘기를 하고 25장에서는 시를 짓는 기술에 대하여 가능한 반론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며 마지막인 26장에서는 서사시의 재현과 비극의 재현중 어느 것이 더 고귀한가에 대해서 논한다(플라톤은 서사시의 재현을 더 고귀한 것으로 보았다.) 그의 대답은 많은 제한을 가하면서 비극이 적어도 서사시 보다 열등하지는 않다고 한다.(아시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을 싫어했으므로 민주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비극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면 그의 이러한 평가는(비록 많은 제한을 두긴 했지만) 굉장히 호의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시학을 챕터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23장 이후 재현의 또다른 형식인 서사시에 대한 얘기는 나오는데 또 다른 하나의 형식으로 들었던 희극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서사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면 아마 이 뒤에 희극에 대한 얘기도 있지 않았을까 해서 후에 가상의 '시학 2권'을 소재로 삼아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개인적 생각으론 희극에 관한 논의는 아예 없었을 것 같다. '시학'에 보면 희극과 비극을 나누는 기준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저속하게 재현하느냐 고상하게 재현하느냐'를 들고 있는데 희극은 인간을 저속하게 재현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뒤에 가서 줄거리 구성에 있어서 피해야 할 것으로 '저속화'를 든다. 또한 뒷부분에 가면 줄거리 구성에 있어서 두려움과 연민의 효과가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희극은 그런 것을 주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희극을 굳이 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하지만, '시학'은 어디까지나 강의 초안 같은 것이므로 뒷 말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진실은 언제나 그 너머에 있을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도 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저하게 미메시스, 재현에 초점을 맞추어 시학을 기술하고 있다. 흔히 모방으로 알려졌던 미메시스를 특별히 이 책에서 재현으로 굳이 강조하는 까닭은 미메시스가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라 거기에 능동적인 해석이 들어가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모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창조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적 측면에서 시학을 새롭게 해석했던 학자가 2005년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철학자 리쾨르이다. 그의 주저이기도 한 '시간과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뮈토스와 미메시스가 가진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을 열어보이고 있는 책이다.  시학을 번역하신 김한식님이 바로 이 시간과 이야기도 번역하셨는데 자신도 시간과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학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 책까지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동기로 시학을 읽게 되었고 사실은 리쾨르의 시간적 통합으로서의 뮈토스와 능동적인 해석적 간섭과 그 순환으로서의 미메시스를 중심으로 시학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김한식 교수님이 옮긴이 해제에서 너무도 잘 설명해 두었으므로 따로 쓸 것은 없는 것 같다.(리쾨르에 대한 부분은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고전은 늘 새롭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학도 그런 의미에서 정말 고전이라고 할수 있다. 리쾨르가 '시간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이 모르고 있었던 시학의 지평들을 밝혀내었듯이 또 어느 누군가가 이 시학을 잃고 놀라운 의미의 지평을 또다시 새롭게 펼쳐 보일지 모른다. 뭣보다 이 책에 딸려있는 엄청난 양의 주해가 그것을 증명한다. 주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해석들은 읽다보면 그것들 하나 하나가 모두 시학이 가지고 있을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들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 책을 번역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김헌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모두 세 가지의 방식이 지금까지 있어왔는데 하나는 '체계정합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발전사적' 맥락이고 마지막이 바로 '문제제기적' 해석이라고 한다. 물론 이 세가지의 방법론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에소테리카로서 시학이 가지는 한계 즉, 논의에 있어서 상충되는 지점들이 있고 19장 후반에서 22장의 존재와 같이 같은 시학 저작으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따르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두고 이루어져온 방법론이다. 다시 말해 모두 작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나름의 해결방법인 셈이다. 이 책, 뒤퐁록과 랄로는 마지막 문제제기적 입장이다. 즉, 상충하는 지점, 어긋나는 지점들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새로운 문제제기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소테리카로서의 이 시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완결되지 않은 사유의 흐름을 담고 있는 그릇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는 시학을 두 가지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첫째는 이것이 오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의 과정이라면 우리는 마치 이것을 소크라테스가 하듯이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와 나누는 대화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밝혀내려 했던 해답은 언제나 그 상대에게 있었듯이, 우리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며 그렇게 그와 대화를 하면서 뮈토스와 미메시스를 비롯한 재현 전반에 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우리의 생각들을 가다듬을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그 기회와 연결되는 것인데 이것이 정형화되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의 과정이라면 아직도 이 책에는 하나로 모이지 않은 혹은 오히려 반대를 지향하는 등의 많은 사유의 지류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다듬으면서 그 지류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담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된다. 즉, 나를 새롭게 함과 동시에 작품을 새롭게하는 양면적 효과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은 그래서 이 책을 묘하게 유혹적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사유의 지류들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고픈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그리고 이렇게 우리는 리쾨르가 말했던 미메시스3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 아닐런지...) 어쩌면 리쾨르도 바로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지류를 찾아낸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l****1 2014.12.29.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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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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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른다. 그냥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라는 것 정도만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그냥 중세교회사를 배울 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이 중세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들이 수사학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정도가 내가 끌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이다.   솔직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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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른다. 그냥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이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라는 것 정도만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그냥 중세교회사를 배울 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이 중세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들이 수사학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정도가 내가 끌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이다.

 

솔직히 이런 철학적으로 쓰인 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접하기에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책의 두께에서 오는 강박감과 이질감이랄까 ?

단지 “시학”이라는 책에 끌린 건 바로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피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손을 땔 수 없는 끌림과 함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모방의 중요 형식으로서 비극과 서사시의 희극에 관한 예비적 고찰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하여 더욱 대중에 다가가는 형식과 더 많은 지식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 책의 매료는 요즘 현대인들의 빠른 일상 속에서 쉽고 편한 것을 찾아가게 되어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틀을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을 보는것에 반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나 보는 작은 자신의 생각의 여행이 될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리스와 프랑스 그리고 고대로의 여행을 만끽하게 만드는 책이다.

 

하지만 쉽고 빠르게 지나쳐버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뇌리에 남아있어 굉장히 뿌듯해지게 하는 책이다. 빨리 읽어 좋지만 허무감이 드는 책들이 많다. 하지만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난 나의 생각을 정리해주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주는 책인 것 같다. 함축적인 표현, 생략법, 간략어법들은 이 책의 색다른 흥미를 돋구어준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읽는 동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려워 고생을 할수도 있다. 그리고 한두번 읽어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고 머리를 갸웃 갸웃하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일반인에게 다가가기 쉽지 만은 않다. 왠지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時”에 대해 연구할 때 쓰이는 고전책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전이 주는 기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펭귄클래식의 “시학”은 들고 다니기에 겁나는 두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들고 다니기에 가볍고 왠지 “폼”이 난다. ^^;;

 

이 책을 통하여 현대인들의 두뇌의 휴식여행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k******7 2011.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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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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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사뭇 다른 것 중 하나는 단순하게 내뱉어지는 감탄사의 어휘가 아닌 세분화된 음성으로 의미 있는 단어들을 창조할 수 있고, 이러한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의 내용들을 전달하며 이를 공유하고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키워 가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이 느끼게 되는 기쁨이라든지 슬픔에 관한 그 표현의 발로는 아마도 자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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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사뭇 다른 것 중 하나는 단순하게 내뱉어지는 감탄사의 어휘가 아닌 세분화된 음성으로 의미 있는 단어들을 창조할 수 있고, 이러한 언어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의 내용들을 전달하며 이를 공유하고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키워 가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이 느끼게 되는 기쁨이라든지 슬픔에 관한 그 표현의 발로는 아마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정제하여 의미 있게 타인에게 전달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학문적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정형화 된 교과서와 같은 텍스트를 찾게 되었고 마침내 그 중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있음을 본다. 시학은 오늘날 문학이라 통칭되어지는 시창작의 본질과 원리를 체계화하여 정립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할 수 있겠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에서 적어도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라면 한번 시간을 두고 통독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고전에 관하여 한걸음 가까이 접근하고자 했기에 이 책을 선택 하게 되었지만 사실 고전이란 것이 그렇듯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며 따라가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았던 책으로 기억 된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관련하여 그가 피력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문학의 본질을 살펴봄으로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희극과 비극, 서사시와 극시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된듯하고 그 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서양 문예비평에 대한 핵심을 주해를 통해 한층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큰 만족을 얻게 된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에게나 알리고 싶은 출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가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 내용이 상당히 개략적일 수밖에 없으며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다루어져 있다기보다 상당히 뒤섞여져 있고, 구체적인 부분에서도 다분히 함축적이고 간략하게 적혀져 있어서 오늘날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많은 학자들에게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품들과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대상으로 창작원리를 명쾌하게 분석해 놓음으로서 이 책이 서구 문학 이론의 역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학에 남아 있는 것은 비극을 상세하게 분석한 내용뿐이며 희극적인 것은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희극은 재현방식은 같지만 재현의 대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극은 고상하고 고귀한 것이며 희극은 경박하고 저속한 것이라고 구분지어 말하며, 또한 비극과 서사시는 그 방식은 대립되지만 그 대상은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는 비극으로서 특징을 가지려면 줄거리, 성격, 표현, 사상, 볼거리, 노래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비극의 구체적인 목적은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서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실현하는데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외에도 이 책 안에는 비극의 정의와 효과 그리고 그 구조와 특성 등을 포함하여 서사시와 비극의 차이점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고, 비극과 관련한 그의 견해가 두루 담겨 있어 여러 가지로 음미할 내용이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가 시학과 관련하여 비교하여 눈여겨 봐두어야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스승인 플라톤과의 시 창작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점이다. 이를테면 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플라톤은 시라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가 없는 것이며 시인은 단순한 모방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시의 모방은 그대로 베껴내는 것이 아닌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하나의 창조과정이며 그런 의미에서 시인을 창작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 주된 내용이 시와 관련한 세부적인 것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비극적인 것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서사시나 희극은 비극에 비해 상당히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며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을 노래한 서정시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시학을 놓고 볼 때 이 책은 그의 철학적 사유가 녹아든, 시란 과연 무엇이며 시 창작에 대한 원리를 포함하여 그 본질을 체계화함은 물론이고 이를 통해 서양 문예비평에 그 기초를 이루는데 그 토대가 되었으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어떤 학문이든 원론적인 것을 그냥 지나치거나 배제하고서 그 실체를 가늠하거나 제대로 인식할 수 없듯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문학을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하는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고전이라는 호칭은 모범이 되는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작품일 때야 비로소 얻게 되는 말이다. 누구나 고전을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막상 다가서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고전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고전이 담고 있는 그 내용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지적인 그 깊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학 원문을 바탕으로 기존의 다른 주해서와는 달리 현대적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풍부하고 알찬 해설을 통해 고전중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 시학을 이제 본격적으로 감상해 봄은 어떤가 싶다.



p*******3 2011.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