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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 수행한 타자화를 조금은 바로잡아준 소설
"네팔에 수행한 타자화를 조금은 바로잡아준 소설" 내용보기
누구나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산다. 그 유토피아가 지구위에 존재하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인 경우도 많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를 향해 떠나는 사람. '가십걸'이란 드라마를 보며 뉴요커를 동경하는 사람. 칸트와 헤겔의 철학에 이끌려 독일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이 이상향을 그리며 오늘도 비루한 일상을 살아간다. 살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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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산다. 그 유토피아가 지구위에 존재하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인 경우도 많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를 향해 떠나는 사람. '가십걸'이란 드라마를 보며 뉴요커를 동경하는 사람. 칸트와 헤겔의 철학에 이끌려 독일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이 이상향을 그리며 오늘도 비루한 일상을 살아간다. 살다 보면, 이런 이상적인 공간 하나 정도를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이러한 특수한 공간을 유토피아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타자화가 수반된다는 점이 문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네팔이라는 공간을 동경한 건 아주 어릴 적부터다. 산을 좋아했으니,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을 좋아한 건 당연하다. 잊을 만하면 뉴욕타임즈와 같은 권위있는 신문에서 세상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네팔이 거론되었다. 아, 저기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구나. 최근에는 법상 스님의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을 읽으며 네팔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에 등장하는 네팔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순진무구한 사람으로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진 듯한다. 물론 나 역시 근대 이전의 전근대적 감성을 많이 지닐수록 훨씬 여유롭고 행복할 것이라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걱정이고 근심이 없겠는가.

『팔파사 카페』는 이 점을 뚜렷하게 지적한 소설이다. 네팔소설 중 한국에 번역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띠지가 알려주듯, 네팔 소설은 생소하다. 하긴, 중국소설도 한국에 그렇게 대중적인 편은 아니니 지금까지 네팔소설이 단 한 편도 번역된 적 없다는 사실은 그리 특이하지도 않다. 여전히 한국 출판계는 열악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독서인구를 더 늘리기엔 무리고(인구가 더 늘진 않으니까), 나라도 부지런히 많이 읽고 써야겠다.

소설은 '내'가 드리샤라는 인물을 관찰하고, 그의 일생을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드리샤는 예술가다. 네팔의 미를 켄버스에 표현하는 게 그의 일상. 제목이기도 한 '팔파사'가 어느 날 그의 갤러리를 찾는다. 둘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감미로운 연가가 흘러 퍼지려는 찰나, 드리샤의 오랜 친구 싯다르타가 그를 찾는다. 마오이스트가 된 그는 드리샤를 반동으로 규정하며 자신의 길을 따르도록 종용한다.

작품 끝에 나오듯, 드리샤가 이 때 느낀 번민이나 싯다르타를 좇아 농촌으로 향하게 한 계기는 자세히 나타나진 않는다. 어쨌든, 드리샤는 팔파사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신의 고국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자신의 눈에 직접 담기 위해 고향으로 떠난다. 아마도 현상을 재현하려는 예술가의 본능이 작동했으리. 소설의 백미는 여기에 있다. 왕정과 마오이스트 간 오랜 갈등이 어떻게 사회를 파괴했는지, 유린했는지. 소설이 신문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는 것은, 허구는 상대적으로 구조화된 현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를 독점한 왕정에 반대하여 궐기한 마오이스트 혁명 세력. 마오이스트 혁명 세력은 왕정과 싸우기 위해 사람이 필요했다. 혁명 세력의 영향 아래 들어간 마을은 기존의 착취에서 벗어났지만 새로운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마르크스가 누군지, 마오가 누군지 알 턱이 없는 어린 소녀와 소년이 혁명군에 차출된다. 왕정과 혁명세력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인적, 물적 수탈은 심해진다.

드리샤는 이렇게 말한다. 왕정도 나쁘지만, 폭력으로 왕정에 맞선 혁명세력 너네도 마찬가지라고.

물론 나는 드리샤의 이러한 태도에 동감하진 않는다. 같은 폭력이라도 도토리간 키재기는 해야 한다. 키재기에 사용하는 척도를 누가 제시하느냐를 따진다면, 문제는 복잡해지지만 직관적으로 왕정이 잘못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시민불복종밖에 없다면 시민불복종은 정당하다. 그 과정에서 폭력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게 네팔의 상황이었을까, 라고 묻는다면 역시 외부인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드리샤의 태도가 너무 안이하다고 느껴졌다.

Anyway. 소설은 소설이므로, 네팔 내전의 비극성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뛰어나다. 최근 이집트나 리비아 사태를 보며 전통과 근대, 식민과 탈식민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깨달았따.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주제에 관한 잡담은 사카이 나오키의 『번역과 주체』를 읽고 나서 정리하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1.03.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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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파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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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네팔을 다녀왔다. 그 여행길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 바로 팔파사 카페. 정작 친구는 다 읽지 못하고 내가 빌려 내가 먼저 보게 되었다.     네팔인 작가가 자신의 나라의 슬픔에 대해 쓴 책이다. 처음 읽을 때 책 표지에 있는 "네팔, 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공감 못했다. 그냥 여느 남자의 삶과 고민, 그리고 한 여자와의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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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네팔을 다녀왔다. 그 여행길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 바로 팔파사 카페.

정작 친구는 다 읽지 못하고 내가 빌려 내가 먼저 보게 되었다.

 

 

네팔인 작가가 자신의 나라의 슬픔에 대해 쓴 책이다.

처음 읽을 때 책 표지에 있는 "네팔, 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공감 못했다.

그냥 여느 남자의 삶과 고민, 그리고 한 여자와의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여느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한국전쟁, 분단국가란 아픔을 알고 있는 우리에겐.

작가의 담담하고 간결한 문장을 읽을 수록 전쟁을 보여주는 사건사건이 마음을 때린다.

 

 

복잡하지도 심각하지도 매우 함축적이지도 않다.

그냥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슬프다. 가슴아프다.

 

 

 

 

예전 고등학생 땐가 대학교 1학년땐가 아리랑이란 책을 읽었을 때

믿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황(연좌제, 언론억압 등)에 정신이 얼얼해졌던 기억이 난다.

헌데 이 팔파사 카페를 보고 나니, 다시 그 책을 보고 싶으면서도 다시 보기가 무섭다.

그 때의 마음보다 지금의 마음이, 생각이 더 깊은 슬픔을 줄까 무섭다.

 

 

 

변화의 시점에서. 우린 무엇으로 변화를 이뤄내야 할까?

 

 

 

 

 

i****1 2012.05.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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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파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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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네팔?? 네팔이 어디에 있는데?" "산 타러 가는거야?" 아예 모르거나 히말라야를 떠올리는 경우,두 가지.   하지만 내가 본 네팔은 아름다운 자연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였다. 마치 시골에 온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했고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네팔에 대해 더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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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네팔?? 네팔이 어디에 있는데?"

"산 타러 가는거야?"

아예 모르거나 히말라야를 떠올리는 경우,두 가지.

 

하지만 내가 본 네팔은 아름다운 자연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였다.

마치 시골에 온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했고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네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책을 찾아 보았는데,

여행가이드 북 외에는 별로 없었다.

 

<팔파사 카페>도 한국 최초로 소개되는 네팔 소설이다.

네팔 서점에서 보았던 그 꼬부랑 글씨들은 과연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번역된 책이 나와 있어서 정말 기뻤다.

게다가 류시화 님의 추천평은 내가 원하는 책의 느낌이었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네팔을 한 번이라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고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문학이 잃어버린 인간애를 닮은 소설이자 눈앞에 네팔의 구릉지대들을
영화처럼 펼쳐 보이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모두의 찬사 그대로, 이 작품은 우리를 샹그릴라 너머로 데리고 가
심연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
" - 류시화

 

초반부는 주인공 드리샤와 팔파사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처음 부터 사랑이야기라 좀 의외였지만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자 서서히 책에 빠져들었다.

 

10년에 걸친 독재 왕정과 마오이스트 반군의 대립은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탐욕에 눈이 먼 왕과 정부 때문에 사람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일했고,

사람을 모으려는 반군들 때문에 죄없는 아이들은 책 대신 총을 들어야했다.

 

왕도 왕이지만 반군의 행태에 치가 떨렸다.

혁명을 내세우며 권력을 악용하는 그들이 왕과 다를게 뭔가?

순진한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로 구술리며 희생을 강요하고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은 더 큰 죄가 아닌가?

 

네팔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가면서 내가 봤던 아름다운 풍경들은 그저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었고

내 만족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이나 하다니...

 

드리샤와 팔파사의 사랑 이야기도 불행한 시대로 인해 짧게 끝나버렸다.

카트만두를 떠난 드리샤의 여정에서도 좀 더 깊은 내용이 있었으면 했는데,약간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시간들을 한 귄의 책으로 써내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충격이 컸던지 슬픈 줄은 몰랐는데,

서평을 쓰면서 하나하나 되새겨 보니 나도 모르게 눈 가가 젖어들었다.

 

네팔의 참 모습을 보여 준 작가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p****7 2011.06.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