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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일]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게 외로움이라도...
"[1월 0일]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게 외로움이라도..." 내용보기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만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폭력 사이의 관계, 그 거리,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폭력과 파괴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베니와 바르트, 그리고 바르트의 개 엘머는 어딘서가 쫓기듯 달려온다. 바르트의 가슴에 죽은
"[1월 0일]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게 외로움이라도..." 내용보기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만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폭력 사이의 관계, 그 거리,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폭력과 파괴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베니와 바르트, 그리고 바르트의 개 엘머는 어딘서가 쫓기듯 달려온다. 바르트의 가슴에 죽은 오리 한 마리를 품고서... 뒤따라 달려오는 사람은 베트예만. 죽은 오리의 주인이며 한쪽 손이 플라스틱 의수로 된 사람. 그렇게 달리다가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결국은 바르트의 개 엘머를 오리의 주인 베트예만이 죽임으로서 새로운 폭력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베니와 바르트는 왜 베트예만의 오리를 죽였나?...

시작은 그렇다. '장난'이었다. 뛰어다니던 엘머를 찾으러 베트예만의 집까지 들어갔는데 마침 보였던 오리. 장난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장난이라... 그 결과 오리는 죽었고, 오리의 주인 베트예만은 베니와 바르트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은 오리를 안보이는 곳에 던져놓고 아무일도 없었던 듯 행동했고, 결국 베트예만은 자신의 오리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바르트의 개 엘머를 죽인 것.

그럼 그 장난은 단순한 재미로 시작된 것인가?. 진짜 장난이었어?...

 

이제부터 하나의 퍼즐을 맞추든 하나하나 조각들이 등장한다. 왜 오리를 집어던지기 시작했고, 베트예만이 바르트의 개 엘머를 죽였는지, 단지 모든 이유가 그것 뿐이었는지...

이야기는 이 책이 다 끝날 무렵에 모든 진실을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장을 덮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을 남겨놓고서... 우리는 그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도 힘도 없지만, 충분히 같이 고민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의식하면서도 혹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지르고 있는 폭력들을 우리가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도 그게 폭력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으니까. 뒤돌아서서 다시 또 잊은듯 행하는 폭력일테니까...

 

그럼 그 폭력이 생겨났던 이유는?...

분명 그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을테지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던 그 폭력은 하나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외로움'.

"있잖아." 베니 엄마가 말했다.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어."

"그래, 아주 외로운...... 사람들이 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떠나서 말이야.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린 거야. 그 사람들한테는 이제 남은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뿐이지. 외롭게 말이야. 무엇보다도 외롭게 말이야." (51~52페이지)

베트예만에게 쫓기던 베니와 바르트에게 베니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예만의 외로움에 대해서... 그가 외롭다고 해서 그가 부리는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그 폭력이 생겨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어른의 눈으로 보는 어른의 외로움을 베니엄마는 설명하려 한다.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고독을 넘어서는 고립됨을... 집에 아무리 물건들로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도 사람의 마음 속에 미처 채워지지 못한 그 외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어른이 말하는 그 외로움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또 다른 분노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바르트의) 외로움은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당했던 것. 어른이 말하는 그 외로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또 아이의 입장에서 가지는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베트예만이 자신의 가족들 속으로 침투(?)하려 드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바르트의 마음이 외로웠고, 미안한 줄도 모르고 행하는 폭력을 증오했던 것일테니까...

마치 한켤레로 여겼던 베니의 말이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고 베니와 함께 또 다른 폭력을 시작하려 했던 바르트의 행동, 그리고 실패로 끝난 복수가 바르트의 가슴에 남겼을 그 무엇이 만들어낸 감정은 또 다른 외로움과 힘이 없는 자책감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우정을 빙자한 폭력.

무언가 확신할 수 없어 행동하기 주저했던 마음을 베니가 흔들어놓는다. 마치 고민하던 바르트의 머리 양쪽 위에서, 하나의 천사와 하나의 악마가 속삭이던 것처럼...

"아무리 복수하고 싶다지만 그건 아니잖아. 좀더 다른 것으로 마음을 달랠 생각을 해봐."

"아니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이 되갚아줘야해. 그게 맞는거 아니겠어?"

친구라는 베니의 역할은 후자였다. 아직 덜 자란 인격체이기에 그런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베니의 역할은 한결같았다. 바르트를 좀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듯한.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마음 가운데 바르트는 한켤레라는 이름으로 베니를 따른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우정이란 이름으로 바르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베니의 역할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은 허울 뿐이고 무슨 부하 다루듯 바르트에게 행동하는 베니의 행동이 그랬으며, 끝까지 함께 하는 듯한.

이미 어른인 우리들도 덜 자란 인격체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은데, 하물며 아직 어른이지 못한 이 아이들의 행동에 감히 뭐라고 판단하고 훈계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마음은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행동해야 친구인 것처럼 알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바로 주변의 아이들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사소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르트가 오리를 죽였던 것은...

그런데 이야기가 풀리듯 하나하나 거꾸로 된 기억을 떠올릴때마다 드는 생각은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르트의 감정 속에서 쌓였던 것은 베트예만의 폭력이었으니까. 자신에게, 자신의 엄마에게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행하는 베트예만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의도적이었든 아무 생각없이 행했던 우발적이었든지...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던 베트예만의 폭력은 누군가에게 커다란 상처와 함께 어긋난 생각들과 감정드을 쌓이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고통받았던 그 정신에 대해 그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으며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직접 베트예만이 아닌 그의 오리에게 먼저 복수했던 것은 바르트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응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르트가 가졌을 분노, 폭력, 외로움.

물론 베니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어른의 외로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바르트가 가진 감정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그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해나가는게 맞는 것인지 역시 어렵다는 생각 뿐이다. 베트예만이 바르트의 가족 속으로 들어오는게 서로를 위해 맞는 것인지, 아직은 어린 소년의 다음 행동은 또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서서히 스며드는 외로움과 폭력은 또 무엇으로 치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이 아이들의 마음에 빛을 뿌려줄 것인지...

주인공인 바르트에 촛점이 마추어진 이야기에 고민스러웠지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 옆에서 함께 하던 베니에게 눈길이 더 간다. 이미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는 어른의 눈으로 내가 지켜보는 그 마음이 내내 안타까워서... 흔하게 말하는 비뚫어진 그 아이의 마음의 어떻게 바로 세워주어야할지 내내 고민스러웠으니까. 그것 역시도 내 입장에서 바로 세워준답시고 또 다른 억지와 폭력을 그 아이에게 행하는 것은 아닌지 또다른 걱정이 따르니까...

 

"새해 첫날은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날이야."

"그러니까 너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80페이지)

이미 그 아이들의 하루는 지나갔을 것이고, 한 해의 마지막인 그 날의 악몽 같았던 시간도 지나갔을테지.

그럼 그 아이들이 맞이했을 새해 첫날. 어땠을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을까.

궁금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무언가가 두 소년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주길 바라면서...

 

조각퍼즐은 다 맞춰야만 그 그림을 제대로 다 볼 수 있다. 그 조각 조각이 맞추어져 가는 모습을 볼 때 궁금증과 호기심은 동시에 조금씩 해결된다. 다 완성된 그림을 보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맛으로... 하지만, 이 이야기가 맞추어낸 완성된 퍼즐은 슬프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수학문제는 언젠가는 풀리는 것으로 마무리될테지만, 이 문제들은 풀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엉킨 문제를 던져 놓는다. 각자의 몫으로 풀어내라고.

 

원제가 <맨손>이다. 왜 원제가 그런 이름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책 속에 등장한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까봐 주저하게 된다. CD케이스 정도의 작은 크기의 이 책이, 140여페이지 정도의 작은 분량의 이 책이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새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기쁨의 폭죽은 터졌을 것이고, 모두가 환호하고 있겠지만 소년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닌 1월 0일로 여전히 외롭지 않을까 하는 안쓰러움에 마지막 장을 덮는다.

 

 

n******i 2011.01.22. 신고 공감 7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 1월 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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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밀도 있게 많은 것들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또한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읽은 바 없다. 나는.       세상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나 페스탈로찌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인물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베트예만처럼 야만스러운 어른들도 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악마같은 어른. 어린 바르트와 베니의 눈을 통해 본 그는 형편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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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밀도 있게 많은 것들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또한 이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읽은 바 없다. 나는. 

 

 

 세상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나 페스탈로찌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인물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베트예만처럼 야만스러운 어른들도 있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악마같은 어른. 어린 바르트와 베니의 눈을 통해 본 그는 형편없는 어른이었다.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 궁금하긴 했지만 조금만 참고 헨델과 그레텔의 빵부스러기처럼 저자가 흩뿌려주는 스토리 부스러기를 따라걷다보면 곧 이야기의 전말이 보인다. 춥고 쓸쓸한 날 일어난 눈물나는 이야기가... 

 

 

 묵은 해를 접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날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집에서 베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품안에는 죽은 오리 한 마리가 들어 있었고 두 소년의 뒤를 어린 개 엘머가 졸랑졸랑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무겁다는 사실은 쫓아오는 베트예만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부터다. 읽고 있는 사람마저 함께 뛰고 있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한 껏 불안하게 만드는 그의 목소리. 

 

 

 도망가던 도중 죽은 오리는 발각당하고 엘머는 추격자의 손에 잡혀버렸다. 혼나거나 따지는 것을 택하지 않고 베니의 집으로 도망쳐 버린 바르트에게 주어진 것은 엘머의 시체. 순간 바르트의 세상은 산산히 깨져버린다. 베트예만의 소유였기에 오리가 밉긴 했으나 괴롭히고 싶었을 뿐 실수로 죽이게 된 바르트는 어린 바르트에게 상처주기 위해 엘머를 죽인 어른 베트예만이 더 싫어졌다.  

 

 

 그는 엄마의 환심을 사 새 아빠가 되려하면서 엄마와 여동생을 빼앗아갔고 가족을 빼앗긴 소년의 외로움을 달래진 못할망정 또 다른 가족인 엘머를 죽임으로써 어른답지도 사람답지도 못했으며 소년을 더 외롭게 만들어 버렸다. 엄마나 자신을 때리던 베트예만의 폭력보다 가족인 엘머를 죽인 폭력이 소년의 가슴에 더 깊은 멍을 남겨버린 가운데 "저 사람이 널 때렸니? 미안하다고 말했어?"라며 신문에 싸여 있는 죽은 개를 가슴에 안고 어르는 소년의 독백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어버렸다.

 

  

 원제가 "맨손"인 [1월0일]은 1998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1996년 벨기에 북라이온상, 1995년 네덜란드 실버펜슬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세 국가에서 각각의 상을 수상했을만큼 훌륭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대단한 작품이다.

 

폭죽이 터지고 모두가 축하하는 가운데 소년의 1월 0일은 외롭고 쓸쓸하게 시작되고 있다.  

 

 

베트예만이 엘머를 대신해 바르트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를 상상해 보는 건 1월 0일에 너무 잔인한 짐작인 것만 같고, 바르트의 가슴앓이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만을 모아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으로 책과 이별했다.  

 

 

 2011년, 몇 해를 살았든 1월 0일에 일어난 이 일처럼 가슴짠한 일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동심이 깨어져 버리고 그 구멍 사이로 숭숭 바람이 들어 더 외롭게 된 바르트보다 더 슬픈 소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년의 슬픔은 엘머뿐만 아니라 엄마와 로나까지 포함해 가족을 잃어버렸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고, 폭력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던 기억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애잔했다.


i*****i 2011.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더 늦기 전에 돌아가, 아직은 기회가 있어
"더 늦기 전에 돌아가, 아직은 기회가 있어" 내용보기
이야기는 아무런 설명없이 시작해서 뚝, 하고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디찬 바람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온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닿지 못했다. 도대체 왜?바르트와 베니는 서로가 한 켤레의 신발이라 부를만큼 단짝인 친구다.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꼭 두 짝이 있어야만 하는 한 켤레의 신발. 그런
"더 늦기 전에 돌아가, 아직은 기회가 있어" 내용보기
이야기는 아무런 설명없이 시작해서 뚝, 하고 끝나버렸다.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디찬 바람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온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닿지 못했다. 도대체 왜?

바르트와 베니는 서로가 한 켤레의 신발이라 부를만큼 단짝인 친구다.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꼭 두 짝이 있어야만 하는 한 켤레의 신발. 그런 두 친구가 누군가를 피해 도망을 간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묵직한 발걸음을 힘겹게 뗀다. 바르트는 옷 속에 품고 있는 죽음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만 하다.

한해의 마지막 날,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집에서 오리를 죽이고 말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베트예만은 우리 엄마가 자기 것이라고 여겼지만 엄마는 우리 것이었다. (53p)

바르트는 베트예만과 가까이 지내는 엄마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혹시 새아빠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로 상스럽고 욕을 잘하며 폭력적이다. 그런 베트예만을 바르트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초대받은 베트예만 앞에서 식탁을 엎어버렸다. 소년 바르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부의 몸짓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돌아온 것은 베트예만의 폭력이었다.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바르트는 베트예만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집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본다.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일에 대한 분노와 베트예만에 대한 미움은 당사자가 아닌 오리에게로 돌아갔다. 오랜 기간 우리에 갇혀 있던 늙고 힘없는 오리. 바르트는 베트예만 대신 오리를 괴롭히고 결국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르트의 개, 엘머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었다. 아니면 우리가 좀 더 나이가 들어버려서 예전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돌이키고 있는 것이었으면 싶었다. (50p)

바르트는 오늘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베니의 집으로 몸을 피하지만 그곳으로 베트예만이 찾아온다. 그 상황에 바르트는 공포를 느낀다.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직접 맞부딪혀야 하나. 바르트의 머리속은 고민으로 꽉 차있다.

하지만 바르트는 결국 베트예만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다시 그 상황에서 도망을 치고 만다. 그런 바르트를 쫓아온 것은 베니의 엄마였다. 베니의 엄마의 따스함에 바르트는 안도한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베니의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베니의 엄마는 바르트에게 베트예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아주 외로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바르트의 입장에선 그 말이 이해될 듯 말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를 이해하기엔 그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점을 잘 생각해 봤다. 나 자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었다. 베니랑 베니 엄마가 곁에 있는데도, 늘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있는 마을 저 길 너머에 엄마랑 로나가 있는데도 말이다. 베트예만이 왜 손톱을 물어 뜯으며 창밖을 내다봤는지 이해가 갔다. 외로운 건 끔찍하니까. (56p)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베트예만에 대한 거부와 배척,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베트예만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바르트를 궁지로 몰고 간다. 게다가 베니는 그런 바르트의 공포와 절망을 부추긴다. 베니는 오리 사건을 일으키게 한 발단을 제공했고, 바르트가 거짓말을 하도록 부추겼으며, 엘머에 대한 복수를 하도록 부추긴다. 친구라면 말려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베니는 그럴수록 바르트를 죄어오기만 한다. 칼과 맨손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베니를 보면서, 자신의 일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닌데도 바르트를 자극하는 베니를 보면서, 도대체 이 소년은 어디까지 비뚤어져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베니가 돌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르트의 엄마와 동생이 베트예만의 집으로 왔을 때 거짓으로 상황을 꾸며낸다. 그리고는 바르트를 남겨두고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바르트는 자신의 엄마와 동생, 베니가 베트예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절망과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정말 혼자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더 꼭, 더 다정하게 안아줄 두 팔이 필요했다. (76p)

나를 위로해줄 엄마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지하실과 헛간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104p)

바르트는 베니의 행동으로 더욱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도 동생도 베트예만과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혼자라고 느꼈을 터인데 말이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아니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한 켤레 신발같았던 베니 역시 자신을 배신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엘머는 죽어 버렸다.

아이들은 어른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때 대부분은 무시하거나 거부의 몸짓을 보인다. 어른은 아이들이 상대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예만처럼 폭력적인 사람에게는 거부나 무시의 의사에 대한 반응이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크리스마스때의 일이 그랬던 것처럼. 만약 그때 베트예만이 조금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이 둘의 상황은 좀더 달라질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베트예만이 참을성있게 굴었더라면, 바르트의 걱정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먼저 헤야려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까지 치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르트 역시 베트예만이 가족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아 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잘 몰랐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베트예만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베트예만과 그에게서 철저히 등을 돌리고 있는 바르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둘의 골은 너무나도 깊어졌고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해의 마지막 날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는 아주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베트예만의 속마음이 어떤지, 바르트의 엄마가 가진 생각이 어떤 것인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베트예만의 경우 바르트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는 손을 내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 한 소년의 굴절된 시각에서 그려지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적합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거부와 배척,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부른 폭력의 악순환, 그리고 그 폭력을 부추기는 이. 바르트가 베니를 보면서 베트예만의 모습을 떠올린 것처럼 난 바르트의 얼굴을 상상하며 베트예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바르트가 선택한 맨손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차갑고 감정없는 베트예만의 플라스틱 손이 되어버릴 것을 떠올리게 되고 만다.

제발, 더 늦기 전에 그 완고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를.
뒤로 돌아서서 어긋남의 근원으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 잡기를...

y*****5 2011.0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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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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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또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새해 전 날. 단짝친구인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오리를 훔치다 걸리게 되고,  훔쳐낸 오리의 죽음은 바르트의 가족과도 같은 개 엘머의 죽음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단순하게 두 소년의 장난이려니 여겨졌던 그 행동은 그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월 0일" 내용보기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리고 또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새해 전 날. 단짝친구인 바르트와 베니는 베트예만의 오리를 훔치다 걸리게 되고,  훔쳐낸 오리의 죽음은 바르트의 가족과도 같은 개 엘머의 죽음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단순하게 두 소년의 장난이려니 여겨졌던 그 행동은 그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르트와 베트예만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춘기 소년들의 장난이 초래한 엉뚱한 삶의 모험에 대한 확장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외로움과 상실감, 불안과 질투, 분노와 폭력이 뒤엉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분노, 그것이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고 어머니와 동생 마저 빼앗으려는 그 자에 대한 질투와 분노인지 혹은 참을 수 없는 폭력에 대한 것인지 모를 증오가 있다. 순간적인 질투와 증오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어 삶의 어느날에 대한 기록이 되어버린다. 1월 0일은 나의 그런 날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이 다 뒤엉켜버리고 있다. ...... 

짧은 반나절동안의 묘사만으로 그들의 긴 세월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그 기나긴 세월의 깊이를 알지 못하겠다. 아니,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그리 길지 않은 삶의 여정을 짧게 표현했을 때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는 그 누군가의 말에 수긍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누군가의 말이 틀렸음을 안다. 그 누구도 무난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자신의 삶은 언제나 선택이고 모험인 것이다. 자신의 삶의 길에서 슬픔과 후회, 외로움, 분노와 좌절, 불안을 느껴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많다. 시간, 기억, 행동, 말...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삶을 이어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삶도 그러한 것이다, 라는 말 한마디로 이 이야기를 정리해버릴 수 있을까?   

책을 읽은 시간보다 더 깊은 상념에 빠져버리고 있다. 가족, 사랑, 친구, 우정, 죽음, 폭력, 분노, 외로움, 상실감...
우리는 모두 어느 한순간 1월 0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일지도. 아니, 지금 내 마음이 1월 0일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내 텅 빈 손과 텅 빈 마음이. 혹은 죽음과 외로움과 상실감과 분노로 가득찬 마음이. 

"높이 올라가는 별 하나를 보았다. 높이, 더 높이. 그러다가 사라졌나 싶더니 별안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더 높은 곳에서 터졌다. 별들이 한 송이 붉은 꽃을 피웠다. 수백 개의 별들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헐벗은 나무들도, 농장도, 들판도, 우리들의 얼굴도, 베트예만의 등도, 그리고 오늘 자 신문까지도.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빛은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고, 빛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비춰주고 있었고, 빛은 생각지 못한 아주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 모든 것을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일뿐.  

그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달의 사락 r***2 2011.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리뷰]1월 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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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잔상처럼 남아있는 책의 표지는 사진 현상소의 암실에서 본 필름 처럼 강렬했다. 이 표지를 오랫동안 보고있다가 허공에 대고 두 눈을 깜빡이자 같은 모양의 손이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책의 원제는 '맨손', 번역과정에서 '1월 0일'이 되었다. 베트예만이 바르트와 바르트의 어머니에게 전한 폭력, 바르트가 베트예만의 오리에게 전한 복수의 폭력, 또 다시 베트예만이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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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잔상처럼 남아있는 책의 표지는 사진 현상소의 암실에서 본 필름 처럼 강렬했다. 이 표지를 오랫동안 보고있다가 허공에 대고 두 눈을 깜빡이자 같은 모양의 손이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책의 원제는 '맨손', 번역과정에서 '1월 0일'이 되었다. 베트예만이 바르트와 바르트의 어머니에게 전한 폭력, 바르트가 베트예만의 오리에게 전한 복수의 폭력, 또 다시 베트예만이 바르트의 개 엘머에게 전한 복수의 폭력. 이 모든 것이 순수하디 순수한, 어떠한 것도 들려있지 않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맨손'에서 시작된다.

베트예만에게 마지막 복수를 하러 가는 길, 베니는 바르트에게 묻는다.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선택해. 바르트는 마지못해 왼쪽을 선택하고, 베니는 말한다. 힘든 건 잊어버려. 뛰어. 베트예만을 벌주는거야. 넌 맨손으로, 난 칼로. 바르트는 또 다시 맨손의 폭력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새해를 알리는 폭죽이 터지고, '새해는 괜히 있는게 아니야.'라는 말의 의미를 알리기라도 하듯 베트예만과 바르트는 쉼 없이 달리던 폭력의 사이클을 비로소 멈춘다. 바르트는 엘머를 죽게한 그 맨손으로 엘머를 안으며 말한다. '저 사람이 널 때렸니?' '저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했어?' '이제 그만 자. 내가 곁에 있을게.'

기껏해야 CD 앨범만한 크기의 작은 책. 가벼이들기엔 너무도 무거운 책이었다.

손의 이중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손처럼 아주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는 또 없을테니.

1월 0일. 존재하지 않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날짜이지 않을까. 한 해 동안의 지우고싶은 과거를, 멈추고 싶은 악행을 0이라는 숫자의 빈 공간만큼 꾹꾹 눌러담고 1이 오기 전 그렇게 떠나보내버리고 싶어할,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이들에게. 새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절실해 할 모두에게!

h******5 2020.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