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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레티시아』는 참 미스테리한 책이다. 이유는, 도통 이 책을 어떤 계기로 사게 되었는지 몰라서다. 예스24 카트에 담겨져 있는데, 왜 담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을 추천했을 만한 지인에 물어봤지만, 그런 적이 없다 하고. 이 책이 오늘의 책이라거나, 여하튼 그런 좋은 자리에 선정된 적도 없는 듯하고 - 출간이 9월 초인데, 카트에 담은 게 12월이었으니 - 이 책은 왜 담겨 있지? 하고 책소개를 본 뒤, 잔뜩 읽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기에 그냥 질렀다. # 1 프랑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제목인 '레티시아'는 살해당항 여성 이름이다. 2011년 1월 19일, 프랑스 낭트 인근 포르닉에 살던 그녀가 실종된다. 레티시아가 타던 스쿠터는 나뒹굴고 있었고, 종적이 묘연하다.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 짐작한 당국은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살인범은 의외로 쉽게 찾았다. 토니 멜롱. 변변한 일자리 없는 약쟁이 부랑자였다. 레티시아가 사라지기 직전 그녀와 함께 있었다는 증언과 레티시아가 남긴 휴대폰 메시지가 그의 범행 사실을 뒷받침했다. 다만 대대적인 수색에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생나제르 다리 위에서 백색 행진이 이뤄지고, 1월 25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생나제르 조선소 방문 연설에서 사법부를 비판한다. 시신 하나 제대로 못 찾는 무능한 집단이라는 취지. 대통령은 사법부를 향한 비판 수위를 계속 높이는데, 이에 2월 1일 낭트에서 사법관, 변호사, 경찰, 교도관 등은 대통령의 사법부 비판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4월 9일, 마침내 낭트와 포르닉 사이에서 레티시아 사체 중 상반신이 발견됐고, 6월 25일 레티시아 장례식이 거행된다. # 2 이 정도까지 이야기는 언론 대부분이 다뤘음직하다. 보통 살인 사건은 무고한 피해자, 잔혹한 가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이 지배하기 마련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잔혹한 가해자도 알고 보면 불우한 환경에서 범죄자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는 후속 보도가 이어질 수도 있겠다. 역사학자이자 작가로서 이반 자블론카는 좀 더 깊숙하게 레티시아 사건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특히 피해자였던 레티시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국도 그러한데,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에 초점이 놓인단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사건 절반은 모르고 넘어가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레티시아라는 여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복원해서 기록으로 남기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 3 레티시아는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폭력적이었던 친부모를 프랑스 정부는 일찌기 지워버렸다. 위탁 가정에서 자라야 했던 쌍둥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레티시아는 저학력 여성이 할 수 있는 노동인 서빙을 담당한다. 이제 막 사회인으로 발을 내딛는 시점, 겉보기에는 불우한 가정 환경을 딛고 프랑스 시민으로 당당하게 거듭나는 듯했다. 내면에는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고독했다. # 4 책에는 레티시아의 쌍둥이 언니인 제시카를 비롯하여 위탁 가정의 양모와 양부 등 주변 인물을 모두 소개한다. 여기서 반전이 있는데, 갈 곳 없는 쌍둥이를 거둬들인 양부 질 파트롱이 실제로는 추악한 성 추행범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레티시아 언니인 제시카를 상습적으로 추행했다. 법적으로 입증되진 않았지만, 레티시아마저 추행했을 개연성이 있다. # 5 그런데 왜 하필 레티시아는 도시 부랑자 토니 멜롱에게 살해당했을까. 다양한 증거에 따르면, 토니 멜롱은 갑자기 레티시아를 납치, 살해한 게 아니라 둘이 다정한 시간을 보내다 돌연 죽여버렸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답은 책을 읽어보면 안다.) # 6 범죄를 다룬 논픽션이 그러하듯, 이 책도 흡입력이 상당하다. 500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나, 금방 읽힌다. # 7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될 때,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저자인 이반 자블론카는 '여혐'이 레티시아 사건의 여러 가지 퍼즐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퍼즐. 약쟁이 좀도둑 토니 멜롱에게 여성은 강간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 8 그래도 유럽인데? 우리보다 300년은 일찍 혁명도 해 본 프랑스인데? 책에는 프랑스 사회 하류층이 어떻게 사는지, 빈민 가정의 아이를 지원하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 문제인지, 대통령의 날선 사법부 비판 발언 이면에 존재하는 프랑스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 - 딱히 구조적 문제라고 할 것도 없이, 문제는 예산이다. 돈이 없어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어 일이 제대로 안 된다 - 는 어떤지, 등등 살인 사건으로 드러난 사회의 다양한 균열이 담겼다. 한 마디로, 선진 유럽이라고 다를 게 별로 없다. 저기도 빈부 차이가 존재하고, 여혐 정서가 여전하며, 정치는 무능하고, 사법 기관은 무기력하다... # 9 두 딸 둔 아빠로서, 읽는 내내 서글펐다. --- 하나의 사건사고마다 한 번의 공공 개입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범죄에 각각의 법이 있다. 살인 사건이, 현존하는 형범 시스템의 결함을 '증명'해준 셈이다. 그리하여 범죄 이후에 후속 조치로 만들어진 법은 향후 발생한 모든 범죄들을 '커버'해야 핸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초법적 대통령 이상으로 스스로를 '구원자'로 보았다. (157쪽) 레티시아의 삶에는 세 가지 부당함이 있었다. 하나는 폭력적인 친아버지와 기만적인 위탁가정 양부 사이에서 보낸 유년기, 다른 하나는 18세의 나이에 맞은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건사고 기사, 즉 죽음의 구경거리로의 전락이 그것이다. 처음 두 가지 부당함은 나를 미안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 번째 부당함에 대해서는 나의 온 존재가 격분한다. (193쪽) 누범과의 전쟁은 정밀과학이 아니다. 범죄행위는 미리 예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복귀및보호관찰교정당국에 몇 번 소환한다고 해서 예기치 못한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었을까? (259쪽) 문제를 냉정히 분석하는 대신에 대통령은 희생양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곧 사회 내에서 죄인들을 지목하여,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잘못'에 대해 '처벌'을 고지하는 것이었다. (265쪽) 사법관은 경멸적인 의미에서건 고상한 의미에서건 하나의 '동업조합'이다. 사법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사법적 오류'로 그것을 완곡하게 분류한다. (281쪽) 레티시아 사건이 긍정적인 결과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살인자는 종신형을 받았고, 국가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사법부와 교도행정당국은 인력 충원을 공고했고, 범죄자들에 대한 감시는 더욱 강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형벌 정책의 강화 또한 동반하게 되었는데, 대중이 범죄 전체에 대해 오로지 범죄자 전원의 투옥만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겠는가? 그런 인간 쓰레기장이 새로운 멜롱은 만들어낼지? (348~349쪽) 멜롱에게 있어서 여자란 소모품, 반쯤은 사물이고 반쯤은 창녀인 존재였다. 그에게는 그것이 여성의 용도였으며 여성은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필요한 경우 여자에게 마리화나, 돈, 핸드폰을 주고 데리고 나간다. 그런 다음 "여자는 그런 행동의 목적을 알게 된다." 멜롱은 또한 '서류들'을 떠올린다. 서류란 펼쳐보고, 처리하고, 버리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여자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섹스는 폭력에 의거하지만 섹스의 거부 역시 폭력을 유발한다. 다른 모든 여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레티시아에게 일어났다. (415~416쪽) 남성적 의미로서의 인간은 더 나쁜 존재다. 가끔 내가 제시카 곁에서 거북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고, 그녀가 살아오는 내내 남자들이 그녀에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 분란이 생기면 커터 칼로 해결하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이 들고 있어야 하는 키친 타월에 정액을 쏟는 것도 남자이고, 당신을 칼로 찌르는 것도 닭의 목을 자르듯 당신의 목을 자르는 것도 남자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당신은 쾌락의 대상, 노리개일 뿐이다. 또한 장관들, 지도자들,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사람들, 알고, 명령을 내리고, 옳은 사람들, 당신에 대해, 당신의 위에서, 당신의 속에서, 당신을 통해 말하는 사람들도 남자들이다. 결국 언제나 남자들이 이긴다. 그들은 당신을 자기들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까닭이다. (445쪽) 해방이란 무엇인가? 일을 할 수 있고, 투표권을 가지고, 신체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우며, 성적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중략) 레티시아는 끝까지 남자들의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제시카의 행운이란 더 이상 남자들에게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일 테다. 레티시아 사건은 21세기의 타락한 남성성, 남성들의 독재, 흉측한 부성, 좀처럼 죽지 않는 가부장제의 유령을 드러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그는 활기 넘치고 감성적이기도 한 어릿광대나 다름없는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아버지 역할을 한 돼지, 그는 순진한 눈빛을 한 사악한 자로서 성인군자 행세를 하며 당신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는 자였다. 마약중독자에 허풍쟁이며 소유욕이 강한 두목, 그는 결코 - 아버지가 - 되지 - 못할 - 자였고, 맨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오빠였다. 우두머리, 그는 권력을 쥔 남자로서 대통령, 결정권자, 사람을 선동하는 힘이었다. 알코올중독에 의한 섬망증, 겉만 번지르르한 악덕, 발작적 살인, 범죄 포퓰리즘, 이것은 네 가지 문화이며, 남성 타락의 네 가지 유형이고, 폭력을 영웅시하는 네 가지 방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멜론=파트롱=사르코지의 도식을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이다. 나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의 폭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정의의 영역들'이 있는 것처럼 불의의 영역들, 거짓에 찬 가족들, 조작의 기술들, 강제의 유형들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은행가가 길모퉁이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훔쳐 타는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고 불량 청소년이 탈세와 돈세탁을 하는 세상에 사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권총강도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거나 대통령이 한밤중에 어린 소녀의 목을 졸라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쾌락, 지배, 영광, 권력 등 자신만의 이유로 그녀를 집어 삼킨 것이다. 각자 자신이 강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를 다치게 하고, 공공질서에 혼란을 야기한다. 각자 자신의 행동 영역 안에서 무언가를 망쳤던 것이다. (447~448쪽) 민주주의의 실패는 그리스비극으로 변형된다. 사회연대가 무력하여 공격당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도와주지 못할 때, 이들은 고독 속에 빠지고 그 고독 속에서 가장 야만적인 자가 가장 연약한 자를 죽이게 된다. 그런 이후에 국민들은 침묵의 추모 행진을 벌이기만 하면 되고, 그때 나타나는 집단적 일체감은 슬픔의 표현인 만큼, 정치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살해된 순수함과 절대적 잔인함의 손쉬운 이분법에 만족한다. 그러나 성녀와 괴물을 믿는 사회는 불안한 사회이며, 사회에 대한 신뢰감을 약간이라도 되찾기 위해서는 신성성의 전이가 필요하다. 정치가들은 그런 사실을 잘 이해했고 그래서 희생자들의 아우라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한다. 권력가가 머리 없는 여인을 차지하는 것이다. (4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