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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주의 대타가 된 의순공주, 그녀에게 찍힌 환향녀란 낙인-의순공주
"진짜 공주의 대타가 된 의순공주, 그녀에게 찍힌 환향녀란 낙인-의순공주" 내용보기
어렸을 때에는 공주하면, 왕자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아름다움과 명예 로맨스와 지위까지 다 갖춘 현실적 존재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동화속 로망의 결정체였다.하지만 조선 역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실존했던 공주는 로망이 되기에는 대체적으로 비극적이거나  희생양이 되거나, 수동적이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로맨스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공주
"진짜 공주의 대타가 된 의순공주, 그녀에게 찍힌 환향녀란 낙인-의순공주" 내용보기

어렸을 때에는 공주하면, 왕자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아름다움과 명예 로맨스와 지위까지 다 갖춘 현실적 존재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동화속 로망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조선 역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실존했던 공주는 로망이 되기에는 대체적으로 비극적이거나  희생양이 되거나, 수동적이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로맨스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공주였기에 평범할 수 없는 기구한 삶을 살았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여기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공주가 있다. 의순공주. 이름만 봐도 순종적이고 착하겠다는 인상을 주는데, 의순공주는 무늬만 공주였다. 실제로는 효종의 근족인 이개윤의 딸이었는데, 효종이 양녀로 삼아 공주 책봉을 주었던 것이다. 결혼 안한 공주가 다섯이나 있었음에도 효종이 또 공주를 삼아야 했던데에는 간단치 않은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조선역사를 접하다보면 지도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할까. 평소에는 목에 힘주고 다니다, 위급할 때에는 명분이고 도의고 간에 다 팽개치고 자신들 살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임진왜란때나 병자호란 때 보여줬던 사대부, 지배층의  무능함이나 이기적인 행태는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조선시대 공주들은 혼인 전에는 궐밖 출입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을텐데, 의순공주는 궐밖이 아니라 아예 국경을 넘어 청나라로 향하게 됐으니, 강빈 이후 국경을 넘은 왕가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의순공주가 효종의 양녀가 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청나라 행. 청나라 순치제의 섭정왕 도르곤이 정비가 죽자 조선왕가에 여인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콕 집어서 여염집 여인이 아닌 왕의 누이나 딸 혹은 왕의 근족이나 대신의 딸을 보내달라고. 도르곤 정도의 막강 실세가 이렇게 요구했으니 조정은 거부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어찌됐을지 안봐도 눈에 선하다. 온갖 명분과 이유를 들면서 자신의 딸, 누이는 안된다고 피한 것이다. 얄밉기는 하지만 그 심정이 이해는 됐다. 누구라도 자신의 핏줄을 이역만리 타국으로 그것도 침략국에 보내고 싶지 않았을테니.

문제는 효종이었다. 피붙이  진짜 공주를 보내지 않으려고 근족인 이개윤의 여식을 공주랍시며 대타로  보낸 것이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희생양을 구하는 행태, 백성을 지켜줘아 할 왕이 청나라에는 한마디도 못하고 이런 작태를 벌였으니.

 

의순공주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루아침에 가족과 고국을 떠나 오랑캐 섭정왕과 혼인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울며불며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쳤을까. 그런다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테니 이내 체념했을까.

 

'의순공주'는 소설인데 형식면에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서술자가 어찌나 말이 많던지, 스토리를 전해주거나 인물들의 심정을 언급해주는 선을 훨씬 뛰어넘어 의순공주보다 서술자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됐다. 마치 독자에게 브리핑이라도 하듯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가 하면 비아냥 거리기도 해가며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서술자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듯해, 소설을 읽고 있는건지 강연을 듣고 있는건지 혼동이 올 정도였다.

 

서술자는 의순공주 이야기보다 그 주변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주 이야기는 왜 별로 없는 거지? 의문스러웠는데, 조금 지나니 그랬던 의도가 읽혀졌다.

청나라 침입때 봉변을 당할까봐 자살했던 여인들, 봉변당한 뒤 자살했던 여인들, 아내와 모친에게 자살을 종용한 양반가 등등. 그리고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뒤 집안에 발을 디디지도 못하고 쫓겨나거나 이혼해야 했던 이른바 환향녀들.그녀들을 대신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의순공주도 결국 환향녀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입양됐다 해도 공주인데 왜 돌아오려는건지 오지말라며 그녀의 귀국에 반발하는 대신들도 있었다니. 그들은 의순공주의 남은 삶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폭력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 훼절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할만큼 불결한 여인으로 취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윤리라는 이름을 빌어 국가와 지배층이  가한 이기적이고 잔인한 폭력이었다. 살아서 돌아온 것이 치욕이고 목숨을 위협받을 일이란 것인지. 심지어 환향녀가 욕으로 치환된 것은 정절윤리가 윤리를 넘어 여성을 옥좨는 멍에가 돼버린 것이었다. 

 

조선시대, 그것도 혼란기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여성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존재로만 의미가 있었고, 성적으로는 남편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의순공주는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귀국한 뒤에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고,  그여파인지 귀국 6년만에 영원히 잠들게 된 것이다.

 

자색이 뛰어났다는 의순공주, 곱디 고왔을 그녀의 자태를 상상해봤다. 반가의 여인으로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을텐데. 소박하게 아들딸 낳고 남편과 백년해로하는 것도 그녀가 바라는 삶이었을텐데. 그녀에게 씌워진 환향녀의 굴레, 그 치욕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버거웠던 건 것일까.

의순공주. 순하고 바른 이름이었지만, 대타공주가 되는 순간부터 조선과 청이 양국의 이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렇게 한 여인의 삶은 국가에게 소모품처럼 이용돼버렸고, 한 인간의 인격과 삶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e****0 2018.07.20. 신고 공감 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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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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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효종의 양녀이자 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 의순공주, 덕혜옹주는 알아도 의순공주라는 여인이 있는 줄 몰랐다. 종친 이개윤의 딸(16살)이 효종의 양녀 '의순공주'가 된 사연은? 또 경화세족은 뭐지?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높은 벼슬을 하는 집안을 의미하는 경화세족, 권력가의 자녀들이기에 왕의 딸이나 왕족의 자녀들과 놀아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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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효종의 양녀이자 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 의순공주, 덕혜옹주는 알아도 의순공주라는 여인이 있는 줄 몰랐다. 종친 이개윤의 딸(16살)이 효종의 양녀 '의순공주'가 된 사연은? 또 경화세족은 뭐지? 대대로 서울에 살면서 높은 벼슬을 하는 집안을 의미하는 경화세족, 권력가의 자녀들이기에 왕의 딸이나 왕족의 자녀들과 놀아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도 좋은 여자'를 요조숙녀라 한다. 요조숙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

 

책속에 등장하는 건륭제와 향비 이야기는 예전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서시·초선·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고대 4대 미녀 중 하나인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지만 화공에 줄 뇌물이 없어 못생긴 여인으로 그려졌고 그로인해 원제의 수양딸(화번공주)이 되어 흉노족의 왕 호한야 선우에게 보내졌다. 원제는 왕소군이 흉노족으로 보내지는 날 처음 얼굴을 봤으며 그녀의 미모를 보고는 놀라며 흉노족에게 보내는 것을 후회했다니 얼마나 뛰어난 미모를 가졌을까 궁금해진다.

 

대청제국의 황부섭정왕 도르곤은 조선 국왕 효종에게 칙유를 보내 자신에게 어울릴 여인을 보내달라 말한다. 왕의 딸이나 왕족의 딸, 그리고 대신들의 딸 중에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왕의 자녀로서 호의호식하며 살때는 권리와 의무가 뒤따른다. 화합을 위해 다른 나라의 왕의 부인이나 비가 되는 예도 허다하다. 당신의 딸들 중 어느 누구도 보내고 싶지않은 효종의 선택은? 종친의 딸 중 미모가 출중한 여인을 골라 양녀로 들여 도르곤의 비로 보내는 것이었다.

 

황부섭정왕 도르곤은 병자호란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청으로 끌고 간 장본인이기도 하다. 봉림대군이 효종인바 비록 양녀라지만 도르곤에게 딸을 출가시키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게다. 이런 저런 사연을 통해 도르곤의 정실부인(대복진)이 되었으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혼인한지 7개월 만에 그가 비명횡사함으로서 과부가 되버리고 말았다. 백양왕의 아들에게 하사(재취)되었지만 그 또한 죽음으로서 그녀는 '남편 잡아먹는 여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16살에 39살 도르곤과 혼인했고 6년 만에 돌아온 조선에서 화냥년 취급을 받아야 햇던 의순공주, 여자의 재취를 금하는 조선에서 남편이 죽은 후 재취를 했던 의순공주가 좋게 보일리는 없지만 그녀가 청나라로 시집가야 했던 이유를 그들은 잊었는지. 국내에서 아내를 구하지 못한 총각들은 베트남·필리핀·라오스·캄보디아 등의 처녀들과 결혼을 한다. 그렇게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 영조는 66살의 나이에 당시 15세인 계비 정순왕후 김씨와 혼인했다.

 

공비로 명나라에 보내졌다 명태종 영락제의 후비가 된 한확의 누이, 한확의 집안은 후궁이 된 누이로 인해 자식들이 벼슬자리에 오르는 등 피었다고. 딸을 황부섭정왕 도르곤의 계비로 보낸 금림군 이개윤의 집안 또한 그로인해 확 피었단다. 딸로 인해 가문이 일어난 사례로는 기황후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공녀로 보내졌다 왕의 사랑을 받아 황후가 된 여인, 기황후로 인해 기씨 가문은 명문가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지. 전쟁은 남자들이 치렀지만 희생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p.211)는 말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s*******1 2018.03.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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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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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 수식어가 주는 아픔에 앞서 '의순공주'가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하다. 역사 속의 기록된 문헌을 찾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탁월한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설흔을 통해 만난다.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1662)는 조선 효종의 양녀이다. 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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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

'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 수식어가 주는 아픔에 앞서 '의순공주'가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하다. 역사 속의 기록된 문헌을 찾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탁월한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설흔을 통해 만난다.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1662)는 조선 효종의 양녀이다. 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다. 순치제의 섭정왕이자 계부였던 도르곤의 계실 대복진이다. 16501231일에 도르곤이 사망하여 도르곤의 조카이자 부하 장수였던 친왕 보로에게 재가하였지만 보로 또한 16522월에 사망하여 홀로 지내다가, 16564월에 청 연경에 봉명사신으로 온 아버지 금림군이 순치제에게 요청하여 그녀를 다시 조선으로 데려왔다. 16628월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에 안장되었다."

 

-'의순공주'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다. "종친의 딸에서 조선의 공주, 중국 황실의 부인, 그리고 화냥년이 되기까지. 조선시대 비극의 역사가 담긴 의순공주의 일생"을 담았다. 여전히 역사 속 의순공주 보다는 작가 설흔이 펼쳐갈 시각과 문장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조선에게 왕의 누이나 딸, 혹은 왕의 근족(近族)이나 대신의 딸 가운데참한 여자를 청황실에 시집보내라고 요구한다. 오랑캐 나라에 딸을 보낼 수 없다고 여긴 효종은 이내 금림군 이개윤의 딸 애숙을 양녀로 삼아 의순공주라고 작위를 내리고 진짜 공주를 대신해 시집보낸다.

 

삼전도 굴욕의 여파일지도 모른다. 북벌을 이야기하지만 뜻은 없어 보이는 북방정책과 국내정치의 혼란 속에서 국왕과 근족, 대신에 이르기까지 지켜야할 명분과 실리를 두고 치른 한바탕 소동의 결과가 의순공주로 나타났다.

 

역사적 팩트를 실마리로 국제 관계, 국내 정치정세 속 세력이나 개인들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방식이 독특하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이끌어 가는 듯 싶지만 늘상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듯 풀어가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에서 설흔의 작가적 상상력을 다시 한 번 확인 한다.

 

조선시대 왕과 근족으로 대표되는 조선 남자들의 비겁함과 유교의 도리라고 불리는 덕목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라고 읽히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보여주는 희극적 요소가 오히려 아픔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유교적 도리를 강조하나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묻고 있다. 그 질문에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유민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m*****8 2018.05.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