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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학생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여대에 처음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은 소속감이나 애교심을 갖는 데에 어려움을 겪거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도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사랑하지 못하고 학교 문을 나서는 학생들도 많다. 물론 나 역시 처음 덕성여대에 입학할 때에는 학교에 별다른 애정이나 소속감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학교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기 힘든 학생이 되었다. 그 간격의 사이에는, 선배들로부터 우리 학교의 민주화 투쟁 과정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이러한 역사로 인해 학교를 자랑스러워하게 된 나와는 달리, 내 소속이 덕성여대라는 것을 들은 어른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데모하는 학교, 기가 센 학교, 심지어 운동권 학교라는 말을 들은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학교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나의 감정과 사회의 평가가 다른 것에 혼란스러워해야 했다. ‘덕성여대 사태’라는 이름으로 매일 언론을 장식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얼마나 충격적이고 파장이 큰 사건이었는지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하는 궁금증이 날로 커져간 것이다. 마침내, 이 궁금증에 답변해 줄 수 있는, 그리고 덕성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로만 전해 들어야 하는 후배들에게, 또한 옳은 가치를 찾고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어줄 책을 만나볼 수 있었다.
20년에 가까운 한 이사장의 장기 집권과 그에 따른 학사 간섭으로 ‘동토의 왕국’으로 불리던 덕성여대에 또 하나의 비민주적인 사례가 벌어진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님의 억울한 재임용 탈락이다. 저자와 많은 동료 교수들, 그리고 덕성여대의 구성원들은 이것을 실력으로 인한 재임용 탈락이 아닌, 이사장 재단의 비민주적 학사 운영으로 보고 이러한 것들을 종결짓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총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학생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권리인 수업을 거부한다. 그들의 수업 거부는 ‘수업권 포기’가 아닌 더 나은 학업 환경을 위한 ‘수업권 쟁취’였던 것이다. 학생들의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단식과 삭발까지로 나아간다. 교수님들은 그런 학생들을 보호하며 해직까지도 불사한다. 이러한 학생, 교수의 움직임에 학교에 몸담고 있는 노동 조합원들도 파업을 결의하며 이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물론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씩이나 투쟁이 무시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자신들의 싸움에 세상이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우리보다 강한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더 강한 방법을 행하면서 자신들의 소신을 세상에 밝혔다. 역사학자라는 저자 본연의 신분 아래에서 꼼꼼히 기록된 자료들과 통신의 발달로 활발히 이루어진 학생들의 인터넷 게시글, 그리고 ‘덕성여대 사태’라는 이름으로 취재된 많은 언론 인터뷰들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그 때 그 상황 그대로의 현장감을 안겨준다. 이러한 자료와 사진들로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책이 흥미롭게 읽혀짐은 물론이다.
나는 덕성여대생의 입장으로서 이 책을 읽었지만, 나는 굳이 덕성여대생이 아닌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비민주적 학사 운영 안에서 학교의 객체로만 여겨지고, 그들 또한 수동적 주인이길 원했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스럽다. 평화로운 집회를 막는 전투경찰 앞에서 스크럼을 짠 제자들을 밀치고 그 앞에 서는 교수님들의 모습은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학교가 주는 임금을 받던 교직원들이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에 반기를 들고 학생들을 지지함으로써 사학을 이루는 세 주체가 연대하게 된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보여주는 연대의 힘이다.
그리고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옳은 가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수업과 시험 불참으로 인한 학사경고까지 불사했다. 당시 덕성여대학생들의 수업 거부 투쟁은, 대거 유급 위험 사태까지 낳을 정도로 장기간 지속되었다. 학생들이 학사경고나 유급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교수님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해직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교직원들 역시 학생들에 대한 지지와 총파업으로 해고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하였으나 정의를 보고도 고개를 돌리는 것을 더욱 더 두려워 한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 교수들과 교직원들의 직업 등 하나로 연대한 세 주체는 자신들에게 가장 귀하고, 자신들을 구성하는 것들을 정의를 위해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정의를 훈계하는 책이 아니다. 정의와 반대되는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평가를 내릴지언정, 자신의 현실 때문에 옳은 가치를 보고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지는 않는다. 정의를 위해 투쟁했고, 그러한 것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러한 것들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 저자의 시선은 그들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을 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면은 취업 등의 이유로 수업 거부 투쟁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교육자로서의 덕목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수업 거부, 학사 경고, 유급 사태, 해직, 구속... 두려운 단어들이 가득한 내 학교의 역사를 읽으며, 나는 다른 독자들이 그랬듯이 수백 번을 자문해보았다.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정의를 옳다고는 말하면서도 훈계하지는 않는 이 책이 고맙다. 책의 사람들과 똑같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지금 당장 캐묻지 않는 것이 고맙다. 그것에 대한 답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기까지, 옳은 것을 보고도 고개 돌리지 않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책에 나온 한 선배님의 말씀처럼, 약하지만, 평범하지만, 약한 대로 평범한 대로 무엇을 하고 싶은 내가 될 수 있기를. (P. 141)
개강을 맞는 초봄의 덕성여대 교정은 평화롭다. 그렇지만 5년 동안의 투쟁으로도 완벽하게 뿌리를 뽑을 수 없는 싸움이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선배님들의, 교수님들의, 직원 분들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전한다. 우리가 그 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의지와 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렇기에 그 이야기를 가감 없이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자료로써 우리 학교의 역사로 남게 될 이 책의 존재가 기쁘다. 서문에 제기했던, 덕성 민주화 운동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 그것에 대한 대답을 선배님의 글 인용으로 대신하려 한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 학교는 결코 평범하지 못한 학교다. 쌈닭이라 불릴 만큼 대가 세고 끈질긴 성향이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나 보다. 사실 나도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이곳에 오게 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덕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상식일 뿐이라고,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우리의 성향이 독특해서가 아니라, 상식에 배치되는 힘 앞에 굴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말이다.”(P. 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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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한참 달구어지던 지난 6월 11일 '한국사립대학총창협의회' 박철 회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사립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매년 등록금이 올라가는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사립대학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1년 754만원으로 68% 인상됐음을 인정했다.(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624130&ctg=1200) 부당한 재임용탈락을 철회하기 위해 싸우던 한상권 교수는 ‘학교가 조용해질 때까지 일 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복직제의를 거절했다.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복직되느냐가 학원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내외의 학생, 지식인,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한상권 교수의 복직투쟁은 교수들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직원들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권리투쟁으로 승화되었다. 이 책은 힘없는 개인들이 연대와 단결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개인의 복직 및 교수 재임용제의 개선, 구재단의 퇴진, 인사행정과 학사행정의 민주화 등에서 끈질기게 불의에 저항한 모든 사람들의 승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기록된 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역사학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낸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 책은 개인인 한상권 교수가 부당한 압력과 불의에 대항하며 만든 ‘역사’를, 기록자인 한상권 교수가 정리한 다섯 권의 ‘투쟁백서’를 자료로 하여, 역사학자인 한상권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한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은 그 지배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가치 체계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억투쟁’은 중요하다. 덕성학원은 모자 세습에서 형제 세습으로, 형제 세습에서 다시 부자 세습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족벌 세습재단이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설립자라고 일컬어지는 송금선은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단순한 족벌 재단이 아니라 친일 족벌 재단이었던 것이다. 덕성인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 끝에 덕성학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덕성여대는 친일 족벌 사학의 오명을 벗고 정통 민족 사학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간의 반세기가 넘는 긴 싸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복직을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이 “교원을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근거가 실정법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교원의 지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임용 관련 법규가 없으니, 재임용탈락 시비를 둘러싼 재판이 성립될 리 없었다. 재임용탈락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재임용 여부는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었다(법원이 적법 여부를 심리하고 물리치는 ‘기각’과는 달리,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저항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넘어서는 새로운 판례, 즉 ‘덕성여대 판례’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한국 사회에 던진, ‘대학의 자유정신’, ‘법치주의’, ‘교육의 공익성’, ‘친일잔재 청산’, ‘국가권력의 공공성’, ‘공동선의 추구’ 등에 관한 문제제기와 의미는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역사적 기억은 대중이 공유할 때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그는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