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의 감각'은 프랑스인 남편이 본 서울과 한국인 아내가 본 파리 이야기를 1, 2부로 배치한 플라뇌르(flaneur) 에세이이다. 플라뇌르는 어슬렁거리는 눈으로 도시를 걷는 만보객(漫步客)을 의미한다. 책의 1부는 프랑스인 남편의 이야기인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이고 2부는 한국인 아내의 이야기인 도시라는 공동체이다. 두 저자는 서문격의 글인 '들어가며'에서 플라뇌르를 언급한다. 자신들은 천천히 걸어다니는 산보객인 플라뇌르일 것이지만 플라뇌르의 산책이 꼭 우연한 산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호시우행(虎視牛行)이란 말을 생각하게 한다. 호시우행이란 호랑이처럼 관찰하고 소처럼 끈기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두 단어는 맥락이나 의미면에서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느슨하게 걷고 즐기듯 다소 흐트러지게 움직이는 걸음 속에 예리한 시각을 갖춘 것은 두 저자를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보면 정중동(靜中動)이라고도 할 여지도 있다. '풍경의 감각'은 두 저자가 취한 그런 남다름의 산물이다. 사실 프랑스인 남편이 서울에 대해 논하고, 한국인 아내가 파리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포석이다. 표지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인 표지는 우산 쓴 두 저자 중 한 사람은 지구의 북반구 같은 곳에서 아래로 머리를 두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남반구 같은 곳에서 바로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현대는 글로벌한 시대이다. 여행 자체가 일상화되었고 그런 흐름에 따라 해외 여행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프랑스인 남편은 서울에 대해 이방인이고 한국인 아내 역시 파리에 대해 이방인이다. 그렇기에 두 저자는 낯선 곳을 알기 위해 독서로 철저 준비를 했다. 그 가운데는 풍수 책도 있다.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프랑스인 남편(티에리 베제쿠르)은 우리의 풍경들과 다른 파리의 풍경들을 이야기한다. 서울의 일상이 파리의 일상보다 우월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우월한 것은 우리의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펼쳐 검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의 카페는 테이블이 너무 작아서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을 낳은 것은 자유로운 생각들이 만나고 부딪히고 강화되고 확산된 파리의 카페들이었다.(34 페이지) 병렬적 나열이겠지만 파리의 카페들에서 생각을 나눈 지식인들이 멋지게 보인다. 베제쿠르는 우리의 공동묘지, 장례의식과 파리의 공동묘지, 장례의식이 가진 뚜렷한 차이를 언급한다. 도시가 변하는 속도도 주요 비교 사안이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도시들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세대들이 그 뒤를 잇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한 세대 안에서조차 도시가 여러 번 다시 태어난다. 한국에서 고궁들이, 서울이 오래된 도시임을 환기하는 장치가 된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한국에서 주택은 우리가 거주하는 삶의 공간 이상으로 사고 다시 파는 재화나 주택 임대업의 아이템이다.(105 페이지) 베제쿠르는 한국의 것도 분류를 한다. 절과 교회가 그것이다. 베제쿠르는 절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풍수 책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아내 이나라는 대학생 시절 홀로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순전히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밤기차를 탔다는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한 뒤 기차의 의미를 짚는다. 기차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근대적 운송수단이라는 것이다.(187 페이지) 기차에 얽힌 인간과 사회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한국인 아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속도의 차이가 낳은 정서의 차이, 세상의 변화이다. 이나라도 파리와 서울을 나란히 놓는다. 한국에서는 꽃이 너무 공식적인 반면 프랑스에서는 꽃도 자유분방하다.(206 페이지) 이나라가 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곳이 유학(留學)지이기 때문이다. 이나라는 랜드마크 건축물은 무용하지 않지만 어떤 랜드마크가 도시의 정체성을 대단하게 창조하거나 상징할 것이라는 기대는 호들갑이라 지적한다.(243 페이지) 베제쿠르가 문이 그렇듯 다리도 인간을 연결하고 분리시키는 능력의 기호(29 페이지)라고 말했다면 이나라는 다리는 한편으로는 나누는 장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결하는 장소라 말한다.(247 페이지) 다리는 두 사람, 두 세계를 연결짓기도 하지만 적대적인 사람, 적대적인 세계를 분리한다. 이나라가 한국에서는 꽃이 너무 공식적이라는 말을 했다면 베제쿠르는 서울의 풍경은 과히 준법의 풍경에 가깝다는 말을 했다.(262 페이지) 이나라는 시민의 최우선 윤리는 무조건적인 준법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265 페이지) 준법정신은 경직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나라는 서울 이야기도 많이 한다. 프랑스 이야기를 하려면 당연하다. 비교 없는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비교는 우리 것들 사이에서도 프랑스의 것들 사이에서도 행해진다. 우리가 은밀한 별실을 좋아한다면 서유럽의 유명 식당들은 대체로 전망을 제안한다.(291 페이지) 베제쿠르가 절이 개신교 교회보다 더 한국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면(73 페이지) 이나라는 은밀함의 공간이 무조건적인 배제나 궁극적인 차별의 공간은 아니고 보여주기의 공간이 무조건 자유의 생산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295 페이지) 플라뇌르를 목적을 갖는 것으로 보는 두 사람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예리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는 시각이다. 깊게 보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
|
환경에 대한 각자의 소감을 소소하지만 세심하게 관찰한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 풍경의 감각이 딱 이 조건을 충족해주는 책!
이 책은 1부가 있고 2부가 있는데
2부에서는 한국 여자가 본 프랑스 & 유럽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책을 읽어들어가면 프랑스 남자의 새로운 #시선 으로 보는 한국 #문화 가 흥미로웠어요.
저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애청자인데 이 작품에서 매번 다루는 한국인에 대한 감상을 많이 봐서 어느정도는 외국인이 보는 한국의 이상한 점들을 꽤 알겠는데
우측통행 부분을 의아해하는걸 보고 티에리 저자가 신기했어요. 우측보행과 시민의식과의 관계를 외국인이 이렇게 고심하다니? 싶더라구요.
한국인으로 그냥 그렇게 당연한게 받아들여진 일종의 규칙문화를 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부분.
책에는 중간 중간 큼직한 실제 사진들이 더 다양하게 들어가 있어서 이해를 쉽게 해줘요.
내용을 더 말하면 티에리 저자는 한국에 아예 분석하러 온 전문가 같아요 ㅋㅋㅋ 정말 디테일한 부분을 다루고 프랑스와의 비교에 주를 두더라구요. 외국인의 생생한 견해비교를 잘 느끼게 해줬던 것 같아요. 반면 이나라 저자가 쓴 2부 글은 좀 더 러프하게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망라하며 한국과 비교를 해주는데
티에리처럼 전문적이다라는 느낌보다는 일상과 소소한 부분을 주로 이야기해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ㅡㅡㅡㅡㅡㅡㅡ
이 책 풍경의 감각을 정리하자면
서로 다른 국적인이 보는 타국의 문화, 정치, 생활, 건축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견해와 정보들을 알고 싶으신 분들
또는
삶을 관찰하는 방법을 예쁜 문장들을 통해 알고 싶은 분들께 읽어보길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
|
한국 여자 이나라씨와 프랑스 남자 티에리 베제쿠르가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다. 1973년생 이나라씨는 프랑스에서 2013년 파리 팡테옹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과 파리를 오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쓴 책 <풍경의 감각>은 프랑스 남자가 본 서울의 모습과 한국인 여성이 본 파리의 모습이 교차되고 있으며, 두 지역의 문화적 특징과 그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
|
풍경의 감각은 한국사람이 바라본 파리와 프랑스 사람이 바라본 서울에 대한 이야기인데, 부부인 두 사람이 서로의 나라의 도시를 관찰하고 책으로 지었다는 부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과 도시라는 공동체라는 두 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파트에서 눈에 띈 것은 한국에서는 고층아파트가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프랑스에서 거대 주택단지는 고립과 위험의 상징이라는 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 계획자들의 합리적이고 거대한 계획에서 나온 '그랑 앙상블(프랑스 정부가 조성한 고층 집단 주거 건물단지)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건축자 조합 내에서 엄청난 비난과 반발을 사게 되었는데, 그랑 앙상블이 겉으로 봤을때에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 흡사해서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한국의 아파트 단지의 성공에 놀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그랑 앙상블은 사회적 고립과 위험의 상징으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는 각 나라의 정서차이라고 생각된다.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랜드마크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서울은 랜드마크 건설에 몰두하고 있는데, 파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랜드마크가 된다. 아무 쓸모없는 랜드마크는 정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랜드마크를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랜드마크가 기꺼이 대표할 공동체의 내용을 고민하는 일. 그리고 공동체의 사연과 기억이 거주할 장소들의 풍경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일인 것 같다.
그림이 많아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주관적으로 쓰여져 더욱 와닿는 책이었다. |
|
[신간 추천, 서평] 풍경의 감각 - 이나라, 티에리 베제쿠르 / 제3의공간
파리와 서울을 바라본 두 남녀의 도시 이야기 우리는 주변의 사물과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들을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다. 그것들의 속성을 살피거나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왜 우리 곁에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도시라는 울타리에서의 '사물'과 '공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인 파리 남자와 서울 여자는 풍경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다른 시선, 다른 생각이 우리가 보지 못한 세상을 말해준다.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익숙한 이야기, 휴식을 취하며 읽기에 좋은 책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 그것의 풍경들을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유한다. 이를테면 아파트, 카페, 쓰레기, 테마파크, 광장, 기차 등 삶의 공간이면서 도시적인 매력이 풍기는 곳에서 이방인들이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이채롭다. 우리에게 카페는 개인적인 공간이라면 파리는 바같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교의 장소로 묘사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고층 아파트가 고립과 혐오의 상징이라면 대한민국의 중산층의 상징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종교와 장례문화, 결혼식과 관련된 내용들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 가깝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 문화와 서양의 이성적 사고의 충돌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과 감성이 역사와 문화의 자산이 제공하는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의 삶은 고객으로서는 편하다.
우리는 쓰레기 탑 위에 살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결국 우리 곁에 함께 서식한다. 그 위에 꽃이 피고 생명이 움트는 곳, 자연이 재생되는 곳이라는 조화의 상징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유럽 곳곳에 넓게 자리잡은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으로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일상이지만 모였다가 흐터리지기를 반복하는 한국 사회는 모래알 조직같다는 생각도 든다. 밥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이제는 혼밥과 혼술에 익숙하고 SNS에 음식을 나열하면서 흥미와 이목을 자극하는 행위가 자신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화면 앞에 서서 오갈데 없음을 항변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목조 건물의 아름다운 단청을 바라보며 무지개의 스팩트럼이 벽면에 부딪혀 구석구석 파고들어가 안착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색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진정한 파리지앵의 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등산이 없는 파리, 휴식과 평등의 모래사장 등 우리와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들이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매마른 감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한다. 모든 공간과 장소는 매력이 있으면서도 속박과 구속의 함정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 여지에 따라 다르다. 작가는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독자들은 이성과 감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함께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들,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하면서 오랜 기간 그들의 오감은 열려 있는 현실의 공간이었다.
"바같을 보지 말고 정신집중. 앞만 보고 달릴 것을 독려하는 사회에서 칸막이는 유용하다. 칸 막이 안에 홀로 고립된 '나'만 있는 사회" " 잘 차린 밥상은 먹을 것을 음미하거나, 예의를 지키며 서로 사교를 행하는 자리라기보다 대덥하는 자리 돌봄의 자리였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럽의 선진국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면서 기존 제체의 낡은 세상을 청산하고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국가이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동난을 겪으면서 분단된 민족이 서로의 이념속에 대치 국면을 오랜기간 지속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만 인간이 느끼는 오감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고독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보다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는 풍경, 감각, 사람, 사랑을 가진 공통체로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파리 남자와 서울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 여러분의 댓글과 공감이 글을 쓰는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
![]() ![]()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도시의 모습은 단조롭고 또 무미건조하다.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거리의 풍경에서 어떤 감각이나 감동을 느끼기엔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에 그 도시가 가진 이야기를 캐치해 내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빠듯하기만 하다. 나 역시 매일 지나다니는 거리의 가게가 문을 닫았네, 새로 오픈했네 이런 소소한 변화만을 감지할 뿐, 그곳에 어떤 의미와 상징이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한발짝 떨어져 그 도시를 여행하거나 새롭게 둥지를 튼 사람들에게서는 아마 더 새로운 느낌과 감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서로의 나라에서 살아보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느꼈던 도시의 느낌, 너무나 다른 두 도시의 모습이 어떤 시선으로 담겨 있을까? 누구나 동경하는 도시 파리. 그곳에 가면 미각을 일깨워 줄 화려한 요리들과 뭔가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로맨틱한 느낌을 넘어선 우리가 가진 낭만에 대한 판타지로 가득한 도시이다. 파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프랑스 와인과 달팽이 요리를 먹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가 동경하는 파리에 직접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는 파리는 어떨까, 그리고 정말 여행을 다녀오거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파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파리라는 도시, 파리라는 판타지, 아마도 21세기위 지구인 중 '파리'라는 단어에 결부되어 있는 판타지와 상상, 이미지의 세례를 조금도 받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고 환상을 가지고 간 파리는 어느정도의 실망감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아직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나 역시 파리하면 떠오르는 판타지와 로망이 가득하기에 부푼 마음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파리만을 뒤쫓아 간다면, 불친절한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느꼈던 모습과의 괴리감에 정말 크게 낙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파리의 화려한 모습보다 저자가 이야기 해준것처럼 관광지로서의 모습이 아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파리 사람들이 건물 창 앞에 매단 화분의 꽃, 정원이나 작은 광장 하단의 꽃, 테이블 위의 꽃 그리고 내 유년의 꽃이 지닌 저마다 다른 모습과 의미와 쓰임에 대해 생각했다. ![]() 똑같은 도시지만 서울과 파리가 상징하는 느낌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현대적이고 인구 밀집도 높은, 좀 복잡하지만 또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서울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이미지이다. 관광지로서의 서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기에 한류 바람을 타고 서울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정말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좁디 좁은 땅에 많은 인구와 중요기관이 모두 몰려 있다 보니 어딜 가도 복잡한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보는 서울이란 어떤 곳일까? 두명의 저자 중 남편인, 프랑스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서울의 모습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내가 무심코 지나가던 것들, 길가의 간판이나 안내문 하나도 그냥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던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것에 대한 양국의 태도나 생각을 대조적으로 이야기 하기에 정말 살아온 곳에 따라 얼마나 다른 가치관과 시선을 가지게 되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한국에서의 삶은 고객으로서는 편하다. 소비할 돈과 즐길 시간을 가진 자, 고객에게는 천국이다.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떠난 새로운 도시에서의 느낌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살던곳에서 누렸던 편리함이나 가치들이 그곳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처음에 느꼈던 놀라움이나 실망감이 클지라도 또 그곳에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녹아들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런점에서 저자 부부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두 도시에서 생활하기에 각각의 도시가 가지는 매력이나 풍경을 가장 잘 느끼고 표현해 줄 수 있었던 것 깉다. 서울에 사는 우리가 궁금한 파리도, 파리에 사는 그들이 궁금한 서울도 어떤 모습이든 다 사람 사는 도시이기에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걸 잘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
|
프랑스에 오래 머물렀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원래 가기로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정을 취소하고 파리에 머물렀다. 나는 왜 그 긴 시간동안 프랑스에 머물렀을까? 나조차도 궁금했던 그 이유에대한 해답을, 여기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부로 연을 맺고 살아가는 서울 여자와 파리남자, 이나라, 티에리 베제쿠르의 파리와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제 3의 공간의 <풍경의 감각>이다. 이렇듯 환상의 나라 프랑스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몇 차례의 인종차별을 겪은 나에게 "개인적이며, 친절하지 않다"고 유명한 국가들은 그리 끌리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프랑스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었기에, 70일간의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프랑스를 계획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경험은 당연히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 누가 진짜 소매치기이고, 누가 진짜 선량한 파리시민인지 알 수 없으니, 나는 모두가 소매치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파리를 선량한 시민이 많은, 내가 오해했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있다. 여행중이던 어느 하루, 나는 파리 길거리의 건물 외벽에서 꽃다발을 보았다. 누가 꽂아놓은지 알 수 없고, 프랑스어도 몰라 누구를 위한 꽃인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기리기위해 "누군가"가 꽂아놓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참 프랑스다웠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저자가 파리 퐁피두센터 근처 전신주에서 어느 객사한 노숙자를 기리기위한 꽃을 발견했다고한다. 그에게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그의 지인이나 그에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길에서 죽는 이들을 위한 모임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내가 파리를 방문한 것이 테러 이후였기때문에 내가 추측하기로는 이것이 테러와 관련있지 않을까 했는데, 번역기를 통해 번역해보니,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JEAN BAPTISTE FERRACCI를 기리기 위한 것이란다. 서울의 길거리와는 다른, 파리만의 풍경이었다. 에펠탑과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랜드마크의 나라,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예술의 나라, 달팽이 요리와 바게트, 미슐랭으로 대표되는 미식의 나라 ... 프랑스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고, 프랑스에대한 인식은 대체로 보편성을 띤다. 이런 보편적 특성뿐만 아니라 파리와 서울의 특수성, 내가 잘 알지못하던 일면에 대해 알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파리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을 읽고 내가 알던 파리의 모습, 몰랐던 파리의 모습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고,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도 파리와 서울의 일상을 체험할 수있다. |
|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각자의 도시, 그리고 이해 “우리는 다행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의 문화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산책과 탐색, 독서와 대화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이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었고, 자신의 문화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의 안과 밖을 탐색하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 셈이다.”
[풍경의 감각]은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가 각자의 도시를 서로 이해해가며 바라본 시각과 느낌을 나열한 책이다. 솔직히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문화적 차이로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한국인으로만 이루어진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가 얼마나 서로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들은 엄청난 이해를 이미 하고 있다. 어쩌면 같은 한국인 보다 더욱. 이들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조급해 하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고
대화하고 산책하며 탐색하는 것이다. 조금씩 서로 알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책의 부제는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가
관찰한 도시와 사람’이다. Part1.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에서는 파리 남자, 남편이 바라본 서울과 파리 그리고 문화 등에 대해 썼고 Part2. 도시라는
공동체에서는 서울 여자, 아내가 바라본 도시에 관해 썼다. 처음
Part1을 읽으면서 나는 프랑스 사람이 쓴 것이라는 것을 금세 잊었다. 외국인의 시선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아내가 번역을 하면서 조금 다듬었다고는 하지만 감안하고도 놀라웠다. 나보다
서울, 한국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많다고 느껴 부끄러울 정도였다.
파리 남자는 2007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해 3주간 서울에서 지내고 매해 서울, 경기도 등을 조금씩 탐색하다가 회사를 휴직하고 서울에서 아내와 1년간
체류를 했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지는 10년 정도고 지낸
시기는 아무리 길어야 몇 년 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고 있을까?
첫 시작은 양화대교다. 나는 솔직히 양화대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평소 좋아하는 가수인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 노래뿐이다. 듣는 순간 딱 노래의 후렴구가 머리에 맴돈다. 파리 남자 역시 자이언티의
노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노래에서 끝이 아니라 정몽주의 동상을 떠올리고 그 동상의 유래를
떠올리고 양화대교의 연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영화 이야기로 또 프랑스의 다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파리와 서울, 프랑스와 한국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카페에 대한 비교가
흥미로웠다. 서울의 카페는 프랑스의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 문화를 가져온 것이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서울에서는 카페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거나 같이 온 친구와의 대화를 위해 간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옆 테이블과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고 하루의 시작을 커피로 하기 때문에 단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경우가 많다.
서울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 기차 여행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서양 근대 기차 이야기로 확장된다. 파리
남자와 비슷한 형식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랜드마크에 관한 것이었다.
랜드마크는 소속감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랜드마크 하나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동대문에 DDP가
생겼다고 동대문 야구 운동장과 봉제공장, 시장터의 기억을 지워선 안 된다.
서울 여자는 파리는 에펠탑이라는 랜드마크가
있지만 그 외에도 파리 자체, 파리의 삶의 모습, 거리 등
모든 것이 파리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에펠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너무 랜드마크에 집착한다고 한다. 고유의 정체성을
기억해야지 화려한 랜드마크로 자랑하려고 하면 안 된다.
[풍경의 감각]을 읽는 내내 다양한 생각들과 다양한 경험과 이해를 얻게 된다. 여행
중 풍경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인문학 도서에 가깝다. 도시로 시작해서 역사, 문화로 끝없이 확대된다. 다양한 생각과 지식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단순히 풍경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문화를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고
또 다른 생각으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풍경의
감각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
|
<풍경의 감각>-이나라, 티에리베제쿠르 지음
대부분의 나라관련 책들은 딱딱하게 문화와 사실 그 자체만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책은 Part 1, Part 2 로 나누어져 있고,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로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파리에의 창공을 침범하는 것은 높고 낮은 건물들과 우뚝 솟은 에펠탑뿐이였던 것 같다. 프랑스어에 '등산'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국에는 산이 서로서로 얽히고설켜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진짜 그렇구나~"라고 감탄해서 더 놀라웠다. 파리남자가 쓴 '서울'을 읽으며 다른 관점에서 서울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명한 말 중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말자."라는 말이 있다. '서울'이라는 익숙함에 속아 서울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서울여자가 본 파리 부분은 파리에 빗대어 서울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이야기 해줬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다.
. . . . 서울의 색깔은 무엇인가?
오래된 도시는 저마다 하나 내지 여럿의 도시 고유의 색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
|
<풍경의 감각>은 프랑스 파리, 한국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프랑스인이 본 서울, 그리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한국인이 이 본 서울이다. 그리고 그 둘은 부부다. 이 책은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과 도시라는 공동체 두 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프랑스 파리의 문화와 한국 서울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이 우리가 익숙해서 잘 모르는 것들에서 발견된다. 파리의 카페는 개방되고 주변의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이는 카페 뿐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이 본 서울에서 한국 특유의 ‘방’문화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방문화는 비판적으로 보면 ‘우리끼리’라는 어떻게 보면 타자를 배제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사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자유로움과 개방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서울은 그 반대가 아닐까
“칸막이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다. 가로막힌 세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타자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고 우리의 목소리로 대답할 수 없다.”
첫 번째 파트인 파리의 눈으로 본 서울은 서울 곳곳의 느낌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 느낌의 중심은 색깔, 산, 미술관, 광장, 간판, 교회, 묘지 등 평소 우리가 잘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다. 작년 말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였던 광장에 대한 생각도 나온다. 저자는 광장이란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그 자유로움은 언제나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광장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오고 간다. 방향을 바꾸거나 멈춰서고, 말을 하거나 혼자 머무르며 추억을 되살리거나 미래를 생각한다. 이를 위해 광장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두 번째 파는 서울에 대해 조금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재래시장, 랜드마크, 동네병원, 밥상, 방 등을 보지만 서울과 파리를 모두 경험한 저자는 이를 좀 다른 시각에서 본다. 랜드마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파리는 파리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랜드마크가 된다. 억지로 만든 랜드마크는 서울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되지 못한다.
“랜드마크 건축물은 물론 무용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랜드마크가 도시의 정체성을 대단하게 ‘창조’하거나 ‘상징’할 것이라는 기대는 호들갑일 뿐이다.”
파리와 서울. 그 두 도시는 각자의 나라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 도시의 다름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두 도시의 다름, 그리고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그 도시의 풍경을 재해석 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문화, 정체성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자의 시선을 통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