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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얼핏 보면 중년 남성이 정신 못차리고 젊은 여자한테 빠져든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더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주인공 줄리언은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사를 살펴보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어린 아들을 잃었고 사랑했던 아내와도 별거중이고 게다가 중년이 되면서 신체 기능도 떨어졌다. 그에게 우연히 만난 젊은 여가수 케이트는 말하자면 숭배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잃어가는 젊음, 열정, 게다가 재능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케이트에게 줄리언은 정신 없이 빠져들고 만다. 케이트와 줄리언은 만날듯말듯 아슬아슬한 행각을 벌인다. 2008년 겨울에서 2009년 가을까지 1년간에 걸처 진행되는 이 이야기를 가득 채우는 것은 20세기의 음악들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빌리 할리데이가 부르는 재즈곡에서부터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익숙한 롤링스톤스 데이빗 보위 그밖에도 여러 익숙한 노래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던 것은 과연 케이트 오드와이어의 음악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책 속에서도 한번 언급된 적이 있는 재니스 조플린의 현대적 버전일까? 작가가 생각한 케이트 오드와이어의 음악은 어떤 것일까? 영화로 제작되어 이 책에 나오는 시대의 명곡들과 함께 케이트의 음악을 같이 들어도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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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곡은 아마도 '슈퍼스타'일 것이다. '슈퍼스타'는 순회공연 중인 팝 스타와 팬의 하루 밤 불장난이란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노래한다. 카펜터즈의 음악을 당시 평론가들은 아이스크림 음악이라 불렀다. 쉽게 듣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카펜터즈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평이다. 그러나 그런 평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슈퍼스타의 경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리차드는 그 곡에 밝고 장난스러운 피아노 반주를 입혔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리차드의 편곡은 캐런의 깊게 가라앉은 보이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곡의 편곡에서도 캐런의 우울한 보이스는 무시된다. 진부하고 맥 빠진 단조의 바다에서 과묵한 캐런의 탄식은 묻혀버린다. 캐런의 내면과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잡아낸 것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슈퍼스타' 커버이다. "외로움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란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캐런과 소닉 유스는 알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기타는 이렇게 달콤하고 맑게 울리는데 당신은 여기 없고 라디오만 있군요." 캐런은 한 때의 불장난을 배신감으로 해석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의 드라마로 바꾸었다. 소닉 유스의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쇠톱을 긁는 것 같은 전자기타의 비틀린 피드백, 신디사이저의 화이트 노이즈, 고음과 저음을 거세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에 대고 말하는 유령 같은 보컬은 (팝스타라는 환상을 쫓는) 스토커의 불길한 갈망을 그린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코러스를 무어가 부를 때면 섬뜩하다. 소닉 유스가 보여주는 것은 카펜터즈 음악의 진실이다. ‘노래가 당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캐런이 잡아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말한다. 이 소설은 50을 바라보는 늙은 팬과 팝스타의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를 다룬다. 자기 나이의 반에 불과한 여자와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 사이의 관계는 결핍의 관계이다.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보는 것은 젊음의 활기이다. 젊은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보는 것은 또래에게는 볼 수 없는 어른의 안정감이다.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 보는 관계이다. 이 소설의 관계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케이트가 줄리언에게 본 것은 이런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얼굴이 있었다ㅓ. 아주 멋진 얼굴, 세상을 아는 남자의 얼굴이엇다. 그의 얼굴과 자세에서는 어쩐지 자신감에 넘치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연상/연하의 함수에 이 소설의 관계는 팬과 팝스타라는 변수가 더해지고 그렇게 더해진 변수 때문에 그들의 방정식은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팬과 팝스타의 관계는 판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녀는 노래했다. 어떤 감정이든 주문만 하면 또렷한 윤곽선의 반짝반짝 윤나는 축소모형으로 제조하고 전시해낼 수 있었다. 실연을 회상하고 나서 회상을 순수하게 증류한 노래를 불러, 결국 줄리언(과 백명도 훌쩍 넘는 남자들과 여자들)으로 하여금 그 아픔의 근원을 혼쭐내주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차라리 자신이 아픔의 장본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케이트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청중이 느끼게 하고 이미 느껴보고도 모르는 감정을 실감하게 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은 팬과 팝스타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이어준다. “그녀는 딜레마를 맞았다. 성공하려면 그녀와 그녀의 감정들이 진실로 공명해야 하고 군중들로 하여금 말 그대로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지게 해야만 한다. 그녀의 밥벌이라는게 그런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안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들과 비현실적인 미모를 광고 이미지로 박제하는’ 환상을 다루는 CF 감독으로서 줄리언은 그런 팬과 스타의 관계 역시 자신의 직업 만큼이나 무의미한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캐런 카펜터가 포착한 ‘지독한 상실감과 무의미와 단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중년도 저물어가는 줄리언에게 삶은 ‘상실과 결핍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던 아들이 떠나면서 행복한 결혼도 끝나고 왕성한 성적 활력도 잃어버린 초라한 자신. 상실과 결핍을 직시하기에는 무의미에 시달리는 줄리언. 그는 끔찍한 현실을 환상에서 해소하려 한다.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트의 목소리는 “줄리언 속에서 진하게 버무려져 굳은 정서-회한, 희망, 슬픔, 흔들리는 야망, 갈망-를” 휘저어 “그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그 목소리 없이는 차마 이렇게 응축된 감정이 이토록 넘칠 수는 없었다. 이제 나이 든 줄리언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인지 잘 알고 잇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묵 속에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밝혀주는 그 목소리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케이트인가 케이트의 목소리인가? 그녀에게 다가가길 망설이는 이유다. “지금쯤은 알 만도 한데 또 한번 음악의 미망에 이끌려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만” 것은 아닌가? 줄리언은 한때 스타엿으나 이제는 몰락한 눈앞의 개자식을 본다. “케이트는 어떤 면에서 이 바보와 아주 똑같았다. 그들은 다 불행하게도 그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마법사와 주술사들은 케이트가 그를 한다는-어떤 면에서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잇다는-소중한 느낌은 환상일 뿐이다. 그뿐 아니라 야심이 있는 공연자가 매니저와 시장 고문과 커리어 플랜 등을 가지고 진부하게 끼워맞춘 가공되고 조작된 환상이었다. 유일하게 진짜배기들, 순수한 이들은 죽은 이들이었다. 죽은 가수의 레코딩은 기술의 개입이 적을 뿐 아니라(따라서 정서적으로 더 믿을 만햇다) 하잘것없는 인간성이 모조리 폐기처분된 후 테이프에 오롯이 순수성만 남았기 때문에 다르다.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가 되어서도 사춘기의 감정을 노래하고 당신의 고통에 아이러니한 웃음을 반복해서 날리고 또 날리고 그러면 작위적인 구조물이 된다. 줄리언이 돈 때문에 하는 일보다 중요할 게 없는 아니 심지어 그보다 더 하찮은. 그런데 케이트는 그에게서 연료를 얻고 싶어 했던가? 그의 가치를 증명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랐던가? 신선한 감정과 경험을 갈구하는 그 만족을 모르는 허기를 채워달라고?” “숭배받는 스타와 누구보다 스타를 잘 이해하는 팬으로서 둘은 서로를 절실하게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는 이유는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그들의 관계를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관계로 만든다. 그는 아이팟의 목소리만 있는 케이트와 현실에 몸을 가진 케이트의 거리를 환상으로 메운다. “그 여자가 한 사람으로서 그 여자 자체가 이런 기분이 들게 햇다. 그러니 어쩌면 칼턴(죽은 아들)이 이미 박탈한 과거나 미래에서 온 달콤씁^쓸한 고문이 아니라 그의 삶에 현전하는 기쁨이라 느낄 수 잇게 해줄지도 모른다. 삶에 케이트가 잇다면 자유롭고도 구속받는 젊고도 늙은 기쁘고도 서글픈 그리고 용서받은 사람이 될 수 잇다 믿을 수 있었다.” 현실의 여자는 그런 여신이 될 수 없다. 결혼도 해봤고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 그것을 알만한 나이가 된 그는 자신의 환상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애써 무시하기에 줄리언은 케이트에게 다가가 현실의 남자가 되는 것을 망설인다.“그냥 전화를 걸어버릴 수 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를 원했다. 그러나 하루가 또 하루가 지나도 그냥 전화를 걸지 못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저항하는 자기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줄리언에게 그의 아버지가 들려주던 동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수도승은 그에게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제 슬픔을 잊었어요.’ 토시로는 항의햇다. “그 때가 바로 행복이 끝나야만 하는 때다.” 수돗6ㅡㅇ이 말햇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토시로가 우겼다. “아니다.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런 줄리언에게 케이트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 빨리 대답해요. 음악 따위 언급도 하지 말고, 어째서 나를 쫓아다녔는지. 내 안에서 어떤 깊이를 보았는지. 하지만 음악 얘기는 하지도 말아요. 지금 당장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들이 좀 있어요.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얘기들이겠지만. 아니면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남아 잇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걸 모으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녀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그의 기대에 못미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깨닫는다. “실망하고 화가 난 그녀는 그 같은 남자들에게 작고 어리고 재미없고 뻔”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일 수 없엇다. “그녀는 그만두엇다. 완성된 최종본은 워라고 해야 할까? 음률이 맞지 않을 터엿다. 전혀 말이 안되는 코드 진행이엇다. 부모, 아기, 자란 아기, 더 자란 아기, 케이트. 오늘 밤 무대에서는 세상 만물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기분이엇는데 지금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망치고 잇다는 느낌이엇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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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점점 스타에 열광하고 대중음악에 빠져들까? 그전에도 물론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사람들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확대되는 느낌이다. 언론에서도 '삼촌팬'이니 '이모팬'이니 떠들어대며 주위에서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스타나 아이돌에 빠진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는 젊은 스타에 빠진 공허한 중년의 이야기로 보였다. 그런데 그가 겪는 공허함과 방황이 너무 공감이 간다. 어찌보면 허세 같기도 하고 유럽까지 따라가는 열성팬 행각은 부르조아의 놀이 같기도 하지만 나라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21세기 점점 공허해지고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본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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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악, 그 순간 내 주변은 진공 상태가 된다. 나는 마치 세상 모든 것들에게서 격리된 채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것 같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도 심심하지도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들을거리, 볼거리가 있으면 더 이상 기다림은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어쩌면.. 삶 역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잠 못드는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위로가 된 적은 몇 번이던가.
이 책은 내게, 그렇게 음악처럼 스며들었다. 음악을 매개로 타인과 소통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내가 본 것은 특별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닌 바로 우리 삶이었다.
간만에 느끼는 새로운 느낌의 소설.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도 그의 감각적인 문체가 마치 음악처럼 파고든다.
테이블에 향 좋은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좋은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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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우리반 모두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누군가에게 미쳤던 그 시절. 설익은 첫사랑에 빠져서 사랑 노래만 들으면 자기 이야기라고 서로 우기던 그때 그 아이들.
그때 그 시절에서 이삼십년이 더 흐른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중 한두 명은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줄리언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노래에 푹 빠져서 노래 속으로 도피하고,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노래에서 실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여가수에 빠져버린 중년 남자이다. 흔히들 '나이먹고 뭐하는 짓이냐'고 혀를 찰 상황이지만, 그는 정말 '팬질'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게다가 그 여가수까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라니. 정말 모든 팬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그렇지만 단순한 현실도피의 판타지로만 읽기에는, 주인공의 외로움과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리고 결국 그에게, 그의 선택에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가 드는 건, 현대 도시인의 삶이 다 비슷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까? 읽을수록 결말이 궁금해져서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면서 읽어볼만하다. 사랑 노래에 빠져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대를 찾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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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적어도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으려면 음악과 관련된 추억이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라디오를 통해 가요와 팝송을 즐겨 들었다. 특별히 한 곡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사춘기 시절을 지나는 과정 중에 음악이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마치 나만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인 것처럼 흠뻑 분위기에 빠져 편지를 쓰듯이 가사를 적으면서 음미했었다. 지금도 그 시절 노래를 들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다만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특정 가수를 좋아하고 열광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전쟁으로 다리를 잃은 한 남자는 빌리 할러데이의 음악을 사랑했다. 어린 아들을 잃은 한 남자는 인디밴드의 젊은 여가수를 사랑하게 됐다. 음악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음악을 부르는 여가수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에게 음악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동여맨 붕대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의 존재는 로맨스가 아닌 판타지로 봐야 될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을 사랑했고, 여가수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조금씩 그 남자의 내면을 읽어가면서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다. 마치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이 다르듯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광고 감독이며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던 유부남 줄리언은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으로 아내 레이첼과 별거에 들어간다. 위태롭던 부부를 이어주던 유일한 끈이었던 아들 칼턴이 사라지면서 그들의 행복도 사라진 것이다. 줄리언의 형 에이던은 동생 부부의 재결합을 원하면서도 실은 레이첼을 사랑한다. 우연히 밴드 공연을 보던 줄리언은 젊은 여가수 케이트 오드와이어에게 반한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가수를 향한 흠모라기보다는 음악을 향한 갈구로 봐야 될 것이다. 음악이 주는 위로, 환상,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한 본능적인 끌림인 것이다.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나야만 현실에서 혼란스럽지 않다. 어쩌면 줄리언과 케이트 간의 묘한 엇갈림은 음악이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만드는 극적 효과가 아닐까? 만약 내가 줄리언에게 좀 더 공감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에 더 푹 빠졌을 텐데 아쉽다. 다른 건 몰라도 결말이 깔끔한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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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적막했을까. 아니, 노래는 언제부터 우리 생을 위로했을까. 많은 이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택하고 사랑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만큼 노래의 위력은 크다. 지난 과거 어느 날, 연인은 나를 위해 노래도 불러주었다.말 그대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노래였던 것이다. 같은 노래를 들는다 해도, 듣는 사람에 따라 그 노래는 슬픔이거나 기쁨이 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유행가는 모두 자기 이야기인 것 처럼 말이다. 해서, 『The Song is You』란 소설에서 어떤 감미로운 노래나 고백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음악이라는 소재를 다룬 소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연애보다는 치유에 가까운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수나 노래는 주인공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 있었다. 주인공인 줄리언과 그의 아버지에 음악이 갖는 의미는 일반적인 즐거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 인생에 전환점이었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소설은 줄리언의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빌리 홀리데이의 공연장에서 열광하는 그의 모습과 한국 전쟁 참전으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잃고 상심한 그에게 찾아온 사랑이 모두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에 가수 빌리 홀리데이는 아주 중요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그의 아들이자 주인공인 광고 감독인 줄리언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 레이첼과 별거를 한 상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년의 삶에 찾아온 위기였다. 아이의 죽음은 부부 사이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하게 듣게 된 케이트의 노래로 인해 줄리언의 일상은 변화한다.
소녀티를 벗은 어린 여가수 케이트가 부르는 노래에 그는 빠져든다. 단순한 관심에서 벗어나 케이트의 주변을 맴돈다. 방송과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하며 그녀와 좀 더 가까워 소통하기를 바란다. 케이트와 줄리언은 현실에서 몇 번의 만남과 환상에서 마주한다. 그녀를 따라 유럽까지 날아간 그 일련의 과정은 중독이라 부를 수 있는 정도다. 중년의 모습은 잊은 채, 젊은 날의 열정이 되살아 나듯 그는 항상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소설에서 노래는 사랑이었다. 줄리언에겐 케이트의 노래가, 줄리언을 좋아하는 직원이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도 그렇다.
‘만일 음악이 잃어버린 과거를 복원할 수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구원! 우리 모두는 물론 구원을 갈구한다.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우리는 구원이 없는 노래를 견뎌낸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내게 돌아올까?’ p. 24
과연 노래가, 혹은 가수가 이토록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이모, 삼촌 팬들을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아이돌 가수는 지친 일상을 견뎌내는 활력소이며, 무의미한 삶에 생기를 주는 것이다. 줄리언이 케이트의 노래로 인해 아내와 아들에 대한 상처를 조금씩 위로 받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줄리언 아내 레이철과 다시 시작한다. 한 순간 뜨겁게 타오르던 폭죽같은 시간을 잘 견뎌낸 것이다.
소설은 우리 생에 불쑥 찾아오는 불행과 동시에 치유도 함께 한다는 걸 전해준다. 아들을 잃은 줄리언과 그의 아버지가 다리를 잃고 절망할 때, 노래와 아내가 그렇듯 우리네 삶에도 분명 그런 것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일찍 발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들을 지켜준 노래처럼 당신을 위로하는 건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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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ng is you> 라는 책을 받았을 때 어쩜 이렇게 제목을 잘 지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서 듣는 음악, 내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음악, 채널을 돌리다가 접하게 되는 음악, 그 모든 음악에서는 나를 담고 있고 또 우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즐거운 자리에서 혹은 이별을 경험한 후 노래를 듣는 것으로 눈물을 흘리고 용기를 얻으며 상처를 치료한다. 세상은 점점 고독해지고 매일 수백 곡의 노래가 쏟아진다. 그 중 내 가슴을 울리는 몇 곡은 아이팟으로 저장되어 이어폰을 타고 흘러 나를 '구원'한다. 대중가요일 뿐인 음악이 ‘구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일상을 가득 침범한 고통과 방황에 크나큰 위로를 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생각보다 두꺼운 두께에 놀랐고 다음으로 저자인 아서 필립스의 이력에 놀랐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역배우로 재즈음악가로 연설문 대필가로 또 그 밖에도 실패한 사업가와 퀴즈쇼 우승자라는 다채로운 경험이 있는 화려한 경력의 작가라는 점이었다. 내가 몰랐던 아서 필립스의 책이 많다는 것과 그 책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내가 <The song is you>에 거는 기대도 상당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을 통하여 소통하고 사랑하고 삶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The song is you>는 섬세한 문체와 꼼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주인공인 줄리언 도나휴는 잘나가는 광고 감독이지만 아들을 잃고 아내와 이혼을 하는 아픔을 겪고 매일 아이팟을 듣는 것으로 위로 받는 현대인 중 하나이다. 아이팟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그의 일부가 될 수 도 있고 전부가 될 수 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가 즐겨듣는 음악은 빌리 할러데이지만 그 밖에도 많은 음악을 즐기는 것처럼. 우연히 들르게 된 클럽에서 케이트 오드와이어라는 보컬의 노래를 줄리언이 듣게 된다. 줄리언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노래에 빠져들어 그녀의 팬이 되어가 간간히 쪽지를 보내게 되고 케이트는 그런 그에게 빠지게 된다.
사실 <The song is you>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책이 아니었다. 많이 무거워 보이지 않았던 주제는 책을 파고들수록 물에 젖은 솜마냥 무거워 졌다. 작가 아서 필립스의 섬세함과 꼼꼼한 산문형식의 글이 이 이야기들을 조금은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다. 또 <The song is you>에는 줄리언도 등장하지만 한국 전쟁에 참여했던 그의 아버지도 등장한다. 두 사람 모두 빌리 할리데이를 좋아하는데다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로 인해 그와 그의 아버지에 대한 구분이 어려웠다. (이러한 구도는 작가의 의도된 장치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치 불편한 옷을 입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을 살짝만 비켜본다면 이 책은 나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책을 완독하기 전까지는 손 떼기 힘들게 만든다. 단절되고 고립된 생활의 나날과 치밀한 주인공들의 내면심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필수요건으로 작용한 작가의 문체와 글 흐름은 작가로써 역량을 보여주는 한편 이야기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각박한 삶 속에서 상처 받는 현대인의 심리와 그 모습에 대한 묘사는 이 보다 더 꼼꼼하게 만들어 질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 이었으니 말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숨 한번 크게 들이 쉬고 심리묘사나 상황묘사 등등을 이해한다면, 작가 아서 필립스가 세세하면서도 놓치기 어렵게 신경 써서 이 글을 써내려갔다는 느낌이 가득 베어 나오는 글이 아닌가 한다.
<The song is you>는 각박한 현대인의 삶을 대중음악으로써 치유 또, 작가 아서 필립스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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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송 이즈 유의 작가인 아서 필립스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우리나라기준으로 보면 엘리트로 전직 아역배우, 재즈 암악가, 대필가에 제퍼디란 미국의 유명한 퀴즈쇼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천재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작가로변신 첫소설 프라하로 뉴욕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고 아트 사이던봄 상을 받았다 이후 다른 작품도 많은 상을받은걸 보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보유한 작가란 생각이든다. 이번에 내가 읽은 더 송 이즈 유는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음악을 통한 인간내면을 들여다본 작품이란 생각이든다. 작품속의 줄리언 도나휴가 작인 아서 필립의 또다른 내면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줄리언 도나휴와 그의 아버지 두 남자의 이야기다. 줄리언은 아이팟을 몸에서 떼어놓지 못한다. 그에게 아이팟은 몸속에 흐르는 피와같다 아이팟속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그런존재다. 줄리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나간 병사다 그는 빌리 할리데이 음악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공연을 보면서 순간 살의를 느꼈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그런 광폭한 생각이 드는걸까 줄리언이 쉼취한 음악은 케이트 오드와이어다. 두사람다 여자들의 음악에 쉼취했다 처음엔 팬으로시작해 끝이 어닌지 않수없는 수렁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자신들의 삶에서 다른건 다 빼버리고 음악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줄리언은 자신의 직업인 광고제작에서 배역인 여자 모델의 모습에서 완벽을 추구한다. 자신만의 미적기준에 맞이 않는 모델은 최고의 모델일 지라고 가차없이 탈락시켜버린다. 그런 그의 미적기준은 어디에 있나 그가 매일 귀에 꼳고 있는 아이팟속의 음악과 연결된다. 음악과 맞는 미 젊고 탱탱한 피부를 소유한 모델을 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으로 그의 작품은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는다. 두 사람의 삶이 다른이유는 줄리언은 단절된 음악과 그로인해 인간의 고립이 나은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타인은 정말 각자 다른 생각과 음악으로 존재하는 타인일 뿐이다. 줄리언의 아버지는 열린 공간속에 존재하는 음악을 듣는다. 두 음악은 어떻게보면 별차이가 없지만 남과 단절된다는건 고립을 뜻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존재가 단절이된 삶을 얼마나 살수 있으면 행복할수 있을까 자신만의 음악으로 행복을 찾을수는 없다. 다행이 두사람에겐 그들을 구원할 손길이 찾아든다. 그리고 그 손을 잡게됨으로 세상과 더불어 공유하는 음악을 듣게된다. 이 이야기는 읽는내내 쉽지 않았다. 빌리 할리데이에 빠져든 줄리언의 아버지와 줄리언의 존재의 모호함 소설의 내용이 두사람 사이를 딱히 규정짖지 않음으로 어떤게 줄리언의 삶이고 어떤게 그의 아버지의 삶인지 자꾸 헷갈려 나중에는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쫓기듯이 쫓아갔다. 한번으로 멈추기엔 작가의 생각이 나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 심오한 책이란 생각이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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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엄마와 형제들과 함께 동요를 불렀다. 초등학교 시절, 언니가 우리말로 적어온 팝송을 뜻도 모른 채 불렀다. 중, 고등학교 시절 손바닥보다 작은 '최신가요' 책을 사서 우리 가요를 불렀다. 대학교 시절 학교 행사에 따라갔다가 정통으로 마주친 페퍼포그와 전경 앞에서 운동가요를 불렀다. 동요와 팝송과 가요와 운동가요 중에서 이제 기억에 남는 것은 극히 적지만, 노래에 사연이 깃들면 그 노래는 평생을 간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중에 노래방이 나왔는데, 당시는 노래방에 가기보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서로의 박수를 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동기의 신청으로 불렀던 노래가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미국의 소설가 아서 필립스가 네 번째로 쓴 이 책 <THE SONG IS YOU> (2010, 현대문학 펴냄)는 노래를 모티브로 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 파병 나흘 전 휴가를 받은 '아버지'는 '흠모해 마지않는' 재즈 가수 빌리 할러데이의 공연을 들으러 간다. 여신을 추앙하는 기분으로 공연을 들은 아버지는, 그 옆에서 공연을 보던 프랑스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이들은 빌리 할러데이를 인연으로 하여 결혼한다. 그들이 낳은 에이던과 줄리언 중에서 줄리언이 그런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것이자 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는 빌리 할러데이 실황공연 LP를 아버지의 눈앞에서 벽난로에 던져서 녹여버릴 정도로 엇나간 때도 있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면에서 줄리언은 아버지의 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줄리언과 레이첼이 결혼하게 되는 것에도 음악이 매개였다. 줄리언은 어려서 엄마를 잃었으나, 커서는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는다. 그 상실감으로 부부는 삶의 의미를 잃어 별거하고, 그에 익숙해지던 중 줄리언은 작은 클럽에서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록커 케이트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빌리 할러데이를 사랑했듯 줄리언도 케이트를 사랑한다.
팝송과 재즈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음악을 그리 즐기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는 없었지만, 부전자전이라고 할까,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부자의 삶이 흥미로웠다. 아버지의 빌리 할러데이는 여신이었으나, 줄리언의 케이트는 이제 여신이 되려고 발돋움을 시작하는 신예이다. 그런 케이트에게 줄리언은 음악적인 영감과 정신적 위안을 주면서 영혼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다.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왔다고 할까. 주크박스에서, 클럽에서, 아이팟의 이어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기분으로 읽은 이 책은, 성(性)적으로 자유분방한 미국의 현실와 더불어 음악과 뮤즈라는 이상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