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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알아서 보기 괴로운 인물들... 『알 수도 있는 사람』
"너무 잘 알아서 보기 괴로운 인물들... 『알 수도 있는 사람』" 내용보기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질주였다. 그렇게 달리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혹자는 그들의 거리레이싱이 위험하다거나 무모하다는 판단을 앞세울지도 모른다. 맞다.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그들의 레이싱은 위험하다. 그 레이싱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또렷한 답이 없기에 무모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목숨 걸고 그 레이싱에 참여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너무 잘 알아서 보기 괴로운 인물들... 『알 수도 있는 사람』" 내용보기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질주였다. 그렇게 달리는 것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혹자는 그들의 거리레이싱이 위험하다거나 무모하다는 판단을 앞세울지도 모른다. 맞다.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그들의 레이싱은 위험하다. 그 레이싱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또렷한 답이 없기에 무모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목숨 걸고 그 레이싱에 참여할 수밖에 없던 그들의 마음, 상황, 현실을 누가 감히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정기적으로 자정의 레이싱은 펼쳐진다. 2000cc급 아래의 자가용만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를 내고, 규정에 사인한다. 혹여 그 레이싱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참여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기 몫이다. 위험천만한 그 일에 누가 참여할까 싶지만, 의외로 신청자는 많다. 이 레이싱을 만든 수인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자정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참여한 이들의 경주가 어떻게 펼쳐질지, 누가 우승자가 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체념을 일찍 배웠다. 그렇다고 미련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 미련은 자동차를 몰고 있을 때 특히 강렬해졌다. (46페이지)

 

속도에 미쳐 달리다보면 모든 게 잊혀 졌고 때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시간보다 앞서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살면서 갖게 되는 생각이나 계획, 꿈 같은 것들보다 더 빨리 흘러가버리고 마는 시간들을 지배했다는 희열에 빠지기도 했다. 한계를 넘어선 속도는 존재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본능에 의해 달리고 있는 생물만 남았다. 전신의 동맥과 정맥이 뛰고 오금이 저리고 방광에 오줌이 꽉 차오르지만 목적 없이 달리는 일은 깊이 모를 쾌락을 선사했다. (65페이지)

 

솔직히, 나는 자동차도 잘 모르고, 그들이 말하는 자동차 구석구석의 역할도 모른다. 차체를 가볍게 해서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좌석을 떼어내고 개조를 한다는 설명을 조금 이해했을 뿐이다. TV에서 보던 레이싱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이들의 자동차에 관한 지식은 방대했다. 굳이 경주가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차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만나는데 자동차 지식은 중요하지는 않았다. 주인공 네 명이 만나는 배경이 되는 게 자동차라는 것, 그들이 달리는 순간에 만나는 감각이 무엇을 부르는지가 중요했다. 자동차보다 앞서 이들 네 사람 용주, 기성, 영미, 수인의 상처와 미래를 찾아가는데 자동차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크게 보일 뿐이다.

 

미술관 큐레이터 수인은 족보 없는 경주용 차를 탄다. 컴퓨터 부품을 사서 조립하듯, 수인의 차도 그렇게 조립되었다. 그 차의 주인은 떠났지만, 수인은 남은 차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잡지사 객원기자 용주에게는 기억의 파편처럼 따라오는 누이가 있다. 오래전에 사라진 누이. 실종인지 가출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지. 의류회사 영업사원인 영미는 기계를 좋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어떤 아쉬움이었을까, 그녀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음이 전해진 걸까. 수인이 주최한 경주에 참여하게 된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기성은 한때 카레이서가 꿈이었다. 흙수저 인생이 자신의 열정으로 곧 금수저로 피어날 거로 생각했다. 아니, 금수저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바닥 인생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 준다면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이나 노력은 아무것도 변하게 하지 못했다. 그들의 열정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그들의 간절함을 받아들여 줄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

 

경주용 차도 아니고, 낡은 차로 경주에 참여할 조건을 내건 이유가 뭘까. 경주에 필요한 장치들을 풀장착하고 달려도 위험하고 속도가 나올지 모르겠는데,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보이는 이 차들로만 참가해야 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무슨 자정의 미친 짓인가 싶었다. 성능 좋은 차로 참가해도 위험한 일에 이 낡은 차들이 만들어낼 위험은 또 얼마나 더 커질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면, 거기에 참가할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그런데 그런 우려는 이들의 만남이 한 번씩 늘어날 때마다, 이들의 경주가 한 번씩 펼쳐질 때마다 서서히 드러난다. 그 경주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렇게 달리고 있을 때만 찾아오는 고립감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떨어뜨려 놓는다. 나쁜 말로는 현실 회피, 좋은 말로는 나름의 상처 치유법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을 둘러싼 온갖 고통과 현실을 견디는 피폐함이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동안에는 끼어 들어올 틈이 없을 테니까. 오직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보증금을 올려주지 못해 월세를 두 배로 올려줄 수밖에 없고, 상대에게 맞춰줄 수 없는 영업 조건 때문에 을의 을이 되어야만 하고, 비정규직도 아닌 객원으로 글을 써야만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여유는커녕 늘 부족한 삶을 이어왔는데, 그 부족함이 더 졸라맬 허리도 없게 한다. 혼술 혼밥이 편해서가 아니라, 혼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혼술 혼밥을 만드는 거였다. 레이싱이 취미가 될 수 없는 이유, 상금도 무시하지 못했다. 기를 쓰고 달려서 손에 쥔 상금이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하사했다. 그들의 오늘을 채우는 건 언제나 어제의 상처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오늘을 살 수 있을까? 벗어나지 못하고 옥죄는 것들로 오늘을 버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내일을 떠올리라는 말인지... 그들의 경주는 그래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버리듯이, 그렇게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위로 아닌 위로를 서로에게 건네고 있던 거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건, 달리고 있는 현재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차로 달리는 걸 미쳤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미친 세상에서 미쳐야만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달리는 사람들이 바랐던 상금이 순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달리는 그 끝에서 마주할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지도 모른다. 혹시, 위험하지만 이렇게라도 달리다 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 같은 거. 어차피 없을 희망이지만 그래도 아주 완벽히 놓을 수 없는 미련 같은 게 우리 삶의 의지가 되기도 하니까. 등장인물 모두가 그러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가 '알 수도 있는 사람'. 아니, 어쩌면 우리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달렸는지도... 오늘의 현실이 이름 붙이는 온갖 상처와 아픔을 다 가진 이들이 바로 우리 삶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다는 걸 그대로 증명하는 듯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달려도 달라지지 않은, 더 지독해지는 인생에서 그들은 어디로 갈까.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데 그게 어디인지 한순간 잊고 말았다. 그냥 무작정 달려가고 있었다. 그게 인생인가? (273페이지)

 

수인이 거리 레이싱을 열게 된 이유가 소설의 말미에 드러나는데, 그건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이자, 그들이 계속 달릴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살아내려고 발버둥 쳤는데도 살아지지 않으려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한번은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전한다. 그들이 그곳에서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와서 맞이한 현실도, 다를 건 없을 거다. 모든 것을 잃은 채로 끝나는 것과 모든 것을 잃은 채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니...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면서 그곳을 향해 달리는'(311페이지)게 지금 그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면, 한번 부딪혀 보는 거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나?

 

n******i 2017.09.05.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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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도 있는 사람 - 전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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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의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소설이 은희경 작가의 <마이너리그>였다. 소재와 내용은 물론 달랐지만 유신시대와 현재의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했으니까. 거기에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어도 마이너리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 ‘포기’라는 말보다 ‘체념’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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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작가의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소설이 은희경 작가의 <마이너리그>였다. 소재와 내용은 물론 달랐지만 유신시대와 현재의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했으니까. 거기에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어도 마이너리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 ‘포기’라는 말보다 ‘체념’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017년 9월의 대한민국은 바로 메이저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결국엔 마이너밖에 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빅리그에 진출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마이너리거들의 천국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민식 작가의 소설《알 수도 있는 사람》을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리라.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 새벽에 외제차들이 모여 레이싱하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다. 서로의 배기량을 뽐내며 새벽의 고요함을 부셔버리는 그들의 갑질이 레이싱에서도 그대로 묘사된다. 이 소설에서도 밤마다 의문의 거리 레이싱이 펼쳐진다. 전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배기량 2,000cc 이하의 국산 차만 참가 가능하고, 그 레이싱에 참가하는 선수들 또한 사회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이 아닌, 갑질을 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1위에게만 주어지는 상금을 통해 그들 현재의 삶을 연명해 나가려는 마이너리거들의 레이싱이라는 것이다. 그 레이싱을 통해 그 누군가는 하루를 연명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후일에 펼쳐질 레이싱을 위해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비밀 말해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실은 비틀즈의「헤이 쥬드」야.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 내가 이 노래 좋아한다는 거 아무도 모를 거야. 고통을 느낄 때, 쥬드여, 무리하지 말아요. 세계를 짊어져서는 안 돼요. 슬픈 노래일지라도 즐겁게 불러보세요.’(27쪽 中)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SR(Street Racing)에 참여했는지를 쫓아가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소소한 재미다. 객원기자로 생활하는 용주에게 기삿거리는 방세를 내기 위해서라면 표절도 서슴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카센터를 운영하는 기성의 삶은 신분의 격차 속에서 방황하는, 낡디 낡은 스페어 타이어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의류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영미는 구조조정이라는 덫 속에서 실적에 따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하루살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SR(Street Racing)을 만든 수인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옛사랑의 추억에 빠져 사는 인물로 묘사됐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같이 내 주위에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회사동료이자 친구들이었다. 사회나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외면당하고, 갑질 당하는 아웃사이더의 삶 속에서 SR(Street Racing)은 그들에게 지금의 지리멸렬한 삶에서 탈출하는 해방구이자 도피처가 아니였을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수인, 기성, 용주, 영미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사하라 랠리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지금까지 참가했던 SR과는 다르게 사하라 랠리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기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벌었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참가하는 경기이기에 그 위험부담이 상당함에도 그들은 사하라 랠리에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다. 1등을 한다는 보장도 없이 사하라 랠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출사표를 던진 그들의 의중이 궁금했다. 돈 때문에? 아니면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담보로 달리는 레이싱이 그냥 좋아서였을까?


네 사람은 철저하게 모래사막에 고립되었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 사막의 지평선이 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꿈과 희망은 물론 절망마저도 집어 삼켜버린 뜨겁고 빨간 사막 위로 아지랑이 기둥이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있었다.(310쪽 中)


사람들 누구에게나 가슴 절절한 사연 하나씩은 감추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 사연을 감추고 싶은 4명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과거를 잊기 위해 죽음을 담보로 랠리에 참가를 한다. 그러면서 새 출발을 위해 대한민국을 떠나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랠리에 참가한 주인공들이 사막 한 가운데서 창밖으로 그들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 마음 한쪽이 한없이 아려왔다. 희망으로 들려야 할 환호가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절규이자 아우성으로 들렸다. 꼭 불구덩이에 죽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모습이 사막 한가운데서 점점 희미한 점들로 오버랩되면서 내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그들의 새출발을 힘차게 응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미웠고, 그 미움 속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수인, 기성, 용주, 영미들을 만들어낼 거라는걸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메이저의 횡포에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마이너들에게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17.09.16.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