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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세상 속으로...[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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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누군가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주로 책에서 느껴지는 첫느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시집의 경우엔 다르다. 봐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이해가 간다고 해도 선뜻 고르지 못한다. 더불어 누군가 권해줘도 시집은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무언가 벽이 턱 가로막고 날 시집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시집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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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누군가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주로 책에서 느껴지는 첫느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집의 경우엔 다르다. 봐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이해가 간다고 해도 선뜻 고르지 못한다. 더불어 누군가 권해줘도 시집은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무언가 벽이 턱 가로막고 날 시집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시집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이 유다복음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려니 생각하며 그렇다면 종교에 관련한 시인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쨌든 시집을 읽기 전 유다복음에 대해 검색부터 해봤다.

 

유다복음 : 그리스도교 신약성서의 외경 가운데 하나이다. 그노시스파의 성서로 알려졌으며 이스가리옷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실을 옹호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오랫동안 교단으로부터 이단서로 취급되었다. 2006년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1970년대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책자를 콥트어 사본의 일부라고 발표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두산백과에서 발췌)

 

뭔가 그리스도교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방인같은 느낌의 글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시집엔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시는 그래... 역시 나에겐 이해하기 난해하고 어려웠다.

뭔가 문장을 읽고 단어를 읽었는데... 도통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근이 한번 더 읽어봤다.

물론 여전히 모르겠는 부분은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알게 된건 종교와 직접 관련된 시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유다복음이란 제목을 붙였고, 마지막엔 왜 유다목음이란 글을 배치했는지도 100% 이해하기엔 나의 시에 대한 감상 능력은 초라하다. 다만 시인은 가난했고 남루했던 자신의 상황과 그로 인해 느꼈던 고독감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비장하고 조금은 순수하며 때론 유약하다.

비정규적인 사회의 모순 앞에선 분노할 줄 알지만 그 분노가 높은 곳까지 닿지 않아 좌절하기도 하고 새롭게 뻗어나가고 싶지만 주저앉을 수 밖에 없어 슬퍼하기도 한다.

물론 평화롭고 아늑한 상황도 분명 있었다. 누군가와 저녁을 나누고 누군가와 이야길 나누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역시 세상사는 녹록치 않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고난이 자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무너지게 하는 독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의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것이 그렇지 않나 싶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분명 있다.

더불어 시인은 죽음에 대해서도 담담하지만 조금은 아프고 두렵게 받아들이고 있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에 대해 속시원하게 털어놓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우린 모두 죽음을 향해 간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니냐하겠지만...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시인의 작품들은 아주 밝고 명량하진 않다. 약간은 어둡고 춥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왠지 다음 번 시에선 지금보다 더 밝은 그의 시 세계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시를 다 이해하진 못했다. 생각날 때 꺼내보면 또 다른 느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또 시의 매력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k********y 2017.09.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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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자본주의, 종교 속 청춘의 고민 《유다복음》
"가난, 자본주의, 종교 속 청춘의 고민 《유다복음》" 내용보기
한국문연의 현대시 기획선 다섯 번째, 김은상 시집 <유다복음>.말랑말랑 감성시조차도 즐기지 않는 저로서는 생생하고 처절한 고민의 흔적이 가득한 시어를 접하는 걸 두려워합니다. 김은상 시집 <유다복음>에 수록된 시 44편 대부분도 제대로 이해할만한 감성은 없었지만 시인의 고민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어요.   2009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은상 시인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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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연의 현대시 기획선 다섯 번째, 김은상 시집 <유다복음>.
말랑말랑 감성시조차도 즐기지 않는 저로서는 생생하고 처절한 고민의 흔적이 가득한 시어를 접하는 걸 두려워합니다. 김은상 시집 <유다복음>에 수록된 시 44편 대부분도 제대로 이해할만한 감성은 없었지만 시인의 고민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어요.

 

 

2009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은상 시인은 <유다복음>에서 가난, 자본주의, 종교를 이야기합니다. 어디까지가 자전적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집 뒤쪽에 실린 김산 시인의 해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겪은 지독한 가난. 시 「어느 멋진 날」은 제목과는 달리 가난과 폭력을 마주하는 생생한 두려움이 가득한 시였어요. 반어적인 제목이 오히려 돋보여 인상 깊었던 시입니다.

고된 생활은 갓 이십 대 청년이 되어서도 이어집니다. 휘황찬란한 도시 풍경 건너 달방에 머물며 시를 썼던 시절, 홍등가 포주 할머니의 밥상을 받으며 사람이 고팠음을, 당신도 아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김은상 시인의 시는 내상을 입은 자의 것처럼 들립니다.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의 후일담처럼 살았다"(p40)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슬픔과 아픔의 구덩이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아니기에 저로서는 오히려 읽을만했던 시였어요.

 

 

정호승의 시 『서울 예수』를 변주한 시 「서울 예수」는 타락한 자본주의를 풍자합니다. 이 시에서도 '고프다'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에게 있어 배가 고프다는 굶주림의 의미를 넘어 결핍, 외로움, 아픔과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시 「귀」에 나온 "나는 어디서 길을 잃은 뱀의 껍질일까"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는데요. 저승에 가져갈 수 없는 신발 같은 허물. 길 잃은 자아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몇 번을 읊조리게 되더라고요.

「공산당선언」이라는 시는 자본주의를 풍자하며 새로운 의미로서의 공산주의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나의 공산당은 보이지 않는 손을 잘라내고 자신의 손을 만져보는 사소함을 꿈꿉니다."라고 합니다. 착잡한 현실 세상을 탓하지만 않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유다복음」은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통해 교회의 부패와 타락한 정신을 꼬집기도 합니다. 풍자식으로 이야기하는 이 시는 비기독교인인 제가 읽어내기엔 어려움이 많아 시인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해석할 여지는 없습니다.

김산 시인의 해설이 없었다면 저는 더 막막했을 거예요. 김은상 시인의 시 세계는 제 수준에서 바라보기 힘든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외워둬야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을 탁 건드린 시구들이 있으니 이만하면 만족스럽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때를 청춘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늙어간다.

- 책 속에서

 

 

이달의 사락 l****5 2017.09.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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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복음 | 시인 김은상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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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시를 읽기 위해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던 스무 살의 난 시가 전부였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문화에 빠져 젊음을 불태우던 그 시간에, 난 불타는 냉면가마를 끌어안고 반죽을 하고 오이와 무를 썰고 육수를 끓였다. 왜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가 없는지, 왜 나는 다들 가는 대학에 갈 수 없는지, 왜 난 겨우 스무 살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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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시를 읽기 위해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던 스무 살의 난 시가 전부였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문화에 빠져 젊음을 불태우던 그 시간에, 난 불타는 냉면가마를 끌어안고 반죽을 하고 오이와 무를 썰고 육수를 끓였다. 왜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가 없는지, 왜 나는 다들 가는 대학에 갈 수 없는지, 왜 난 겨우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종로 젊음의 거리엔 빈 위장을 술로 채우고 빈 가슴을 사랑으로 채운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들이 먹을 냉면을 만들어야 했던 난 시를 위장 속으로 밀어 넣고 무수한 시어들을 노트에 갈기며 가슴의 사망을 유예시켰다.


내 이웃의 여자를 내 몸과 같이 탐합니다.

......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집어던집니다.

......

여우를 길들여 장미를 사냥합니다. _ 스핑크스 카페 中


  가난해서 시인이 되는 걸까, 시인이라서 가난한 걸까. '난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시인이 되지 못한 걸까, 등용문이라는 등단을 통과하지 못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던 걸까'라는 질문이 무의미해진 마흔이 되었다. 하루라도 시 없인 살 수 없던 스무 살만큼, 시 없어야 버틸 수 있던 스무해를 더 살아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가난을 견뎌내고 삶을 견뎌내고 신을 견뎌낸 한 시인을 만났다. 시인 김은상. 그가 기록한 시어들이 하나씩 내게로 왔다. 이 나라에만 예수쟁이가 수천만인데 왜 가난은 없어지지 않는 건지, 왜 불평등이 여전한지, 이런 내 질문과 비슷한 시어들을 그의 시에서 발견했다. 누군 태어나며 금수저를 손에 쥐고, 누군 평생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에 예수쟁이가 있긴 한 걸까? 예수가 있긴 한 걸까? 아니, 신이 존재하긴 한 걸까?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이웃의 아내를 사랑하라'라는 말로 바꿔버린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린, 어쩌면 모두가 시인일지도 모른다.


예수가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햇볕에 머리띠를 적시고 있다. _ 서울 예수 中


  시인 김은상. 그의 시는 가난이다. 그리고 그의 시엔 신이 있다. 교회에 어느 정도 다녀야만 알 수 있는 상황들을 노래한 시를 읽을 땐 마음이 아팠다.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명령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신자들. 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를 믿는 신자'는 적은 이 시대엔 가난한 자가 예수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교회에서 쫓겨난 예수는 길거리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약한 자들 편에 선다. 그리고 가시면류관에 피를 묻혔듯, 머리띠에 땀을 적신다. 어쩌면 마지막 양심을 가진 자들이 예수인지도 모른다. 언론을 통제하고 조작질하고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세금을 주머니 돈 부리듯 쓰고도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대니까.


가장 아름다운 때를 청춘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늙어간다. _ 천식 中


  제목이 도발적이다. 거부감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시는 친숙하고 아름다움이 넘친다. 그래선지 제목에 대해 생각해본다. 왜 하필 유다복음일까. 이 책의 마지막 시가 <유다복음>이라는 서사시다. 매우 긴 이 시는 어떤 의미일까. 예수를 부정하고 유다를 찬양할 목적일까, 비유일까. 내 짧은 지식과 모자란 문학적 소양으로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그는 유다복음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걸. 성경과 왜곡된 이 시 속에 숨긴 시어를 찾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 읽었지만 내가 알아낸 건 하나뿐이다. 그 하나는 '난 모르겠다'라는 것. 그래선지 유다복음은 시간 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맴돌며 내게 말을 건다.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 그래서 난 또 유다복음을 읽는다. 시인이 나의 이 반복된 행동을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아름다운 때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생각해본다. 그의 말씀, 그의 행동. 그리고 난 다시 성경을 편다. 재로가 제로가 되는 걸 막기 위해.

n****7 2017.09.28.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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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게 많다오[유다복음:김은상저]
"말하고 싶은게 많다오[유다복음:김은상저]" 내용보기
사람들은 누구나 시를 쓰고 싶어한다. 글을 잘쓰든 못쓰든 기본적으로 늘 마음속에서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다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적을뿐...  시를 쓴 첫번째 이유는 나의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두고 싶어서 일테고 두번째는 누군가가 공감을 해주었으면 하는 이유일것이다. 내가 시를 쓴느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그의 마음을 읽어내는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말하고 싶은게 많다오[유다복음:김은상저]" 내용보기

 

 

사람들은 누구나 시를 쓰고 싶어한다. 글을 잘쓰든 못쓰든 기본적으로 늘 마음속에서는 시를 쓰고 싶어한다. 다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적을뿐...  시를 쓴 첫번째 이유는 나의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두고 싶어서 일테고 두번째는 누군가가 공감을 해주었으면 하는 이유일것이다. 내가 시를 쓴느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그의 마음을 읽어내는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시는 읽는이로 하여금 자유로와야하고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시를 가벼이 써야 된다는 것도 아니요 적어도 작자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읽을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야 공감을 하고 잠시 마음의 동요를 느낄수 있지 않을까 ...

 

이 시집은 내개 너무 어려웠다. 몇차례 읽다가 손을 놓고 다시 잡기를 여러번...  이러가가는 안되겠다 싶어 아무생각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읽기도 했다.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못잡는것은 나의 무지를 탓해야 할것같다. 결국은 뒷편의 해설과 예스의 책자설명을 읽고 조금 이나마 이해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웬만하면 책을 다읽은 다음에나 해설을 읽지 그전에 읽으면 고정관념이 생길까 되도록 피한다. 역시 이 시집에 대한 몇 편의 리뷰를 읽어본 결과 해설에 치우치는것을 무시할수가 없음을 느꼈다. 작가가 세개의 신과 만났다. 가난과 자본주의와 예수를... 내가 스스로 뭔가를 느끼고 구별을 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끌려가게 된다.

 

작가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에서도 볼수 있었지만 지독한 가난의 중병을 거쳐 신학대학을 잠시 다녔을만큼 어느정도 성경을 꿰뚫는 지식과 사회적으로 불편한 논리성을 피력해 보고 싶어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함을 알수 있다. 다만 본인이 알고 있는 성경적 지식과 온갖 시어를 포함한 무궁무진한 단어를 끌어안고 있는것은 충분히 느끼지만 펼쳐지는 시들에게서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것들이 없었다. 알고 싶고 느끼고 싶어서 몇차례 읽고 또 읽어도  알수가 없다. 역시 나의 모자란 독해 실력과 무지에서 오는 슬픔이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함은 실로 작가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이 된것이다. 무엇이가 작가는 내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내게 들려오지 않는다. 작가의 언어들이 어렵게 배치되어 숨어있는 속뜻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좀더 독자에게 쉽게 다가오는 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도 비기독교인들이나 성경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주해를 많이 달아주시느라 고생도 하셨다. 그래도 나같은 무교회주의자들에게도 쉽지않은데 성경에 전혀 문외한인분들은 더더욱 어려웠으리라.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다음 시집에서는 얼마나 더 밝아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현재는 많이 흐리다. 본인의 살아온 가난의 무게가 엄청났던 만큼 어린시절 바라보는 형평서의 무게가 옳지못함을 알았으리라. 그에 맞서서 사회의 온당치 못한 논리에 미치도록 반하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그에 발맞추어 내게 다가온 신앙심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역시 모태신앙이었으며 주일학교부터 중고등부,대학부청년부를 거쳤으며 나아가 주일학교 선생님, 중고등부선생님까지 해보고 성가대까지 한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철저한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비대해지는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교회에서 마저도 있는자들이 권력을 휘두루고 가난한자들은 똑같이 핍박을 받는 모습에 실망하고 온시내 성도들을 모두 실어나르는 대형버스를 보며 절망감을 느꼈다. 큰 교회 건물을 짓고 대형버스를 운행할 돈이 있으면 정말 가난한고 힘겨운 사람들을 도울것이지 목사님이 대기업 회장이 된양 초대형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교인들이 줄서서 인사하고...  정녕 기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허름하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와도 번지르르한 옷에 거들먹 거리고 나타나는 주일예배.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돈을 벌기 위한 도구인지 알수가 없다. 물론 나역시 그 핑계를 대고 주일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그들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도 어떻게 하나 주님을 버릴수는 없으니... 그냥 무교회주의자로 남아서라도...

 

말미에 유다복음이라는것을 실었는데 덕분에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그렇게 욕을 먹는 유다가 주체가 되어 새롭게 바라보는 셰계. 누가 이단라고 결정을 하고 파기를 결정하는가. 그럼 지금 선택된 복음들은 완전히 믿을수 있는것인가. 작가 또한 이 유다의 현실에 어디다 기준을 두어야 할지 의심을 품어보고 싶은것 같다.성경뿐이 아니고 정치자체가 그렇지 아닌한가. 지금도 대통령만 바뀌어도 다르게 생각하는부분들이 많은데 셩경이 만들어지던 시대데 과연 누가 옳았는가를 누가 판단해줄것인가.

 

좌우지간 작가는 사회에 종교에 불만이 많다. 그래서 뭐라도 말하고 싶어한다. 알리고 싶은 것은 많은데 ... 문제는 쉽게 읽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2 2017.10.27.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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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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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유다복음』이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다면 다소 불경스럽다. 과연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시집은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려웠다. 어느 시집처럼 시인의 암호문으로 가득하여 어렵다기보다는 시인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암울함, 우울, 슬픔, 막막함, 염세적, 그리고 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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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유다복음이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다면 다소 불경스럽다. 과연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시집은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려웠다. 어느 시집처럼 시인의 암호문으로 가득하여 어렵다기보다는 시인의 정서를 오롯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암울함, 우울, 슬픔, 막막함, 염세적, 그리고 불온(?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이 단어가 가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등의 단어로 시집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겠다. 이는 시인의 삶의 자리가 그랬기 때문이다. 가난이 그의 첫 번째 신이었다는 해설을 읽고, 그랬구나 싶다.

 

삶의 버거움이 오롯이 시들에 가득하다. 단지, 버거움이 전부인 듯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힘겨웠다. 그래서 어려웠다. 물론, “구석에서 꽃처럼 앉아 울어본 사람은 안다.// 희망이나 행복, 사랑 같은 말들이 얼마나 연약하게 화들짝 지는지를.//”(<추문일부) 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희망, 행복, 사랑 이란 단어들이 어떻게 거짓 사용되어지고 악용되어져 왔는지를 우린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실한 희망, 행복, 사랑 이란 단어의 접근 역시 필요함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시인의 시들이 가슴을 무겁게만 하여 힘겨웠다.

 

시인의 시를 접하며, 시인은 성경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느꼈다. 혹시?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해설을 읽으며, 시인이 신학을 공부했음을 알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한 만큼 시인은 성경에 능통하다. 이런 능통함은 성경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냈다. 이는 후반부에 실린 긴 분량의 유다복음에서 두드러진다.

 

물론, 이 부분이야말로 어쩌면 독실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며, 불온한 세력으로 느껴질 게다. 나 역시 조금은 불편함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유다에 대한 희생적 접근은 상당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순히 예수의 십자가 완성을 위해 유다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접근에 그치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이런 접근의 맹점은 유다의 탐욕적 배신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십자가 완성을 위해 누군가 유다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탐욕에 넘어져 스스로 그 역할을 감당한 유다에게 돌아갈 돌팔매는 정당하기에.

 

하지만, 시인은 단순히 십자가 완성을 위한 유다의 역할이 아닌, 예수의 십자가 완성을 위해 스스로를 배신자의 낙인에 기꺼이 내어놓은 희생이라 해석한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해석이었다(물론, 이 역시 누군가에겐 불온함의 극치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불경스럽다는 접근만 하진 말자. 복음이 변주의 대상,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생각하자. 이미 힘을 잃어버린 종교, 아니 힘은 더 많이 가졌지만, 본질을 상실한 종교의 모습, 알맹이는 사라지고 겉껍질만 화려한 종교의 모습, 정권과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종교를 발견하고, 반성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시인의 다음 시집을 기다려본다.

h***r 2017.09.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