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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내용보기
그간 읽어왔던 수많은《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세계사법정》시리즈 들, 그중 '한국사법정'은 목표로 했던 60권을 출간했으며 '세계사법정'은 현재 24권이 출간되어 있다. 이번 편에는 알렉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의 공방이 이어진다. 원고인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는 비잔티움의 황제로서 이 책 직전에 읽은 <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을까?> 와 같은 나라의 황제이자 콤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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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읽어왔던 수많은《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세계사법정》시리즈 들, 그중 '한국사법정'은 목표로 했던 60권을 출간했으며 '세계사법정'은 현재 24권이 출간되어 있다. 이번 편에는 알렉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의 공방이 이어진다. 원고인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는 비잔티움의 황제로서 이 책 직전에 읽은 <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을까?> 와 같은 나라의 황제이자 콤네노스 왕조(1081~1185)의 황제로서 쇠약해진 비잔티움을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그가 왜 1차 십자군 지도자 중 한명인 고드프루아 드 부용을 역사법정에 세우게 된 것일까? 세상에는 참 많은 종교가 있다. 세계 3대 조교인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외에도 크리스트교, 유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다. 그 많은 종교들 간에도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그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70년까지 크리스트교를 믿었던 중세 서유럽의 국가들이 성지 예루살림을 되찾기 위해 이슬람교와 벌인 대규모의 원정으로 8차에 걸쳐 원정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날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8차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는데 그중 1차 원정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잘 모르기에 호기심이 드는 십자군 전쟁을 파헤쳐 볼까? 여기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오랜만에 가보는 세계사법정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서둘러 집에서 나온 덕분에 재판을 처음부터 볼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알레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아의 재판으로 둘다 처음 접하는 인물이기에 더 기대되는 재판이기도 하다. 오늘 재판첫째날의 주제는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이다. 그 해답은 십자군 전쟁의 발단(어떤 일이 처음으로 벌어진다 또는 그 일이 처음으로 시작된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지케르트 전투와 관련이 있다. 만지케르트 전투는 셀주크 튀르크 군대에서 자치권을 갖고있던 튀르크멘 부족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는 내가 내 몫의 음식은 물론 다른 가족들이 나에게 맡겨놓은 음식까지 욕심을 부려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과 같지 않을까?

 

"예루살렘은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1071년 셀주크 튀르크가 세력을 넓히더니 이 땅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러자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였던 알렉시우스 1세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당시 교황 우르바우스 2세에게 십자군을 모집할 것을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교황은 크리스트교 신자들의 성지 순례를 막는 이슬람 서역으로부터 이 땅을 되찾자며 1차 십자군을 모집했습니다." (p.24) 그렇게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알렉시우스 1세 전 황제 때부터 혼란과 배신 등이 있었고 그것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 많이 약해졌던 것도 이유중 하나이다.  

 

알렉시우스 1세- 비잔틴제국의 황제(재위 1081∼1118). 쇠약해진 콤네노스왕조를 부흥시키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십자군 파견을 요청하여 소아시아 대부분의 땅을 되찾았다. 내정을 정비하고 군제·재정제도·화폐제도를 개혁하였다.

 

고드프루아 드 부용- 프랑스 귀족 출신의 제1회 십자군 지휘관. 제1회 십자군 원정 때 예루살렘을 공략해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쌓아 군주로 선출되었으나 ‘성묘(聖墓)의 수호자’라는 칭호만을 받았다.

 

통곡의 벽을 아시나요?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서쪽 성벽의 일부로유대 민족 신앙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벽 이름이 다른 이름도 아닌 하필 통곡의 벽이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유래가 있다고 한다. 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대인을 많이 죽였는데, 이를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울었다는 것. ②.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본 유대인이 성벽 앞에 모여서 슬퍼했다는 것. 나는 성벽이 운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기에 ②번이 더 사실같이 느껴진다. (난 너무 현실적인가? ㅋㅋㅋ) 그런데 여기서 통곡의 벽의 의미는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서로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 를 상징하고, 아랍인들에게는 '바위 사원' 과 '알 아크사 보스크' 가 있는 자신들의 성지니 그벽을 중심으로 늘 갈등이 일어나고 때로는 폭력으로 번지기도 한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그 민족 만큼이나 서로를 미워한 사람들이 또 있다고 한다. 대체 누구지?

 

원고 알렉시우스 1세와 역사적 사건에 딴지를 걸기 좋아하는 김딴지변호사, 피고 고드프루아와 이대로 그냥 쭉 나가자는 이대로 변호사 그리고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의 공정한 판사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에서는 재판을 3일씩이나 하다니 참 길다……) 그런데 원고 알렉시우스 1세는 교황인 우르바누스 2세에게 십자군을 요청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옛날부터 혼란과 배신으로 배잔티움 제국은 많이 약해졌고 그 상황에서 황제가 된 알렉시우스 1세는 우르바누스 2세 교황에게 십자군을 요청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이해는 잘 않되지만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다. 흥미있는 재판을 보면 시간이 평소보다 빨리가는 것 같은데 오늘도 벌써 최후 진술 시간이 왔다. 알렉시우스 1세는 십자군은 자신과 한 약속을 어긴거라고 했고, 고드프루아는 알렉시우스 1세 황제가 십자군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까부터 계속 알렉시우스 1세의 말이 더 맞는 것 같았지만 지금 최후 진술에서는 고드프루아 말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 그럼 나도 판결물을 지어볼까? 

 

<판결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은 알렉시우스 1세가 고드프루아를 상대로 제기한 예루살렘 반환 청구를 기각한다.

s*******1 2013.01.2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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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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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 저 : 김차규 * 그림 : 박상철 * 출판사 : 자음과모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잊어버리지 못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그런데 학창시절엔 그 원인을 알았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딱 막히더라구요.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세계사에서 십자군 전쟁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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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 저 : 김차규
* 그림 : 박상철
* 출판사 : 자음과모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잊어버리지 못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엔 그 원인을 알았었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 딱 막히더라구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세계사에서 십자군 전쟁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알렉시우스 1세는 전쟁을 하게 된 셀주크 튀르크를 고소한게 아니라,
1차 십자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고드프루아에게 소송을 건 사건이 발생합니다.
왜 알렉시우스는 십자군을 고소했을까요?

성지 예루살렘을 셀주크 튀르크가 차지했고 이슬람 교도들이 순례자를 박해한다는 소문에..
알렉시우스 1세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십자군을 요청합니다.
교황은 자신의 입지나 종교적 목적을 고려해서 승인하죠.
그리고 기나긴 십자군 전쟁이 시작됩니다.
순수하게 종교적 목적으로서만 참여했다면 모를까...
실제로는 이 전쟁에 참여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재물을 취하기 위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심한 살생과 약탈도 벌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십자군으로 온 고드프루아는 황제 알렉시우스 1세의 억지 약조를 이행하지 않고 자신이 군주가 됩니다.
전쟁에서 이겨서 예루살렘을 되찾은 고드프루아.
비잔티움에게 과연 에루살렘을 되돌려 줄 수 있을런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더 전쟁이 변질되어 가면서 기나긴 8차 전쟁까지 이어집니다.
긴 전쟁 속에 결국 패하고 말죠.
어떻게 보면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전쟁이기도 하죠.
표면적인 이유와 다른 그 이면에 감춰진 권력 다툼으로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
교황의 권위는 떨어지고 왕권은 강화되고, 오히려 이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르네상스 운동이 영향을 받게 되면서 중세 유럽이 변화됩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풀어쓴 이야기 덕분에 어려운 세계사의 한편을 흥미롭게 보면서도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어렵지 않아서 관심있게 볼 수 있을것 같아요.



r*****8 2014.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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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내용보기
십자군 전쟁은 세계사 속에서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이다. 1095년부터 1270년까지 중세 서유럽 국가들과 이슬람교도들의 예루살렘 정복을 위한 전쟁이었다. 모두 8차례 일어난 이 전쟁은 그 기간도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고 비하인드 스토리로 들어가보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우스 1세 황제가 고드프루아를 고소하는 이야기이다. 알렉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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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세계사 속에서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이다. 1095년부터 1270년까지 중세 서유럽 국가들과 이슬람교도들의 예루살렘 정복을 위한 전쟁이었다. 모두 8차례 일어난 이 전쟁은 그 기간도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고 비하인드 스토리로 들어가보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우스 1세 황제가 고드프루아를 고소하는 이야기이다. 알렉시우스는 당시 1차 십자군의 지휘관인 고드프루아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비잔티움 제국에게 줄 것을 서약받지만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 후 스스로 군주가 되어 돌려주지 않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십자군 전쟁의 배경과 경위, 결과들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알렉시우스 1세의 예루살렘 정복 요청을 받아들인 교황은 동방의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모아 1차 십자군의 인원인10만명의 군사들이 모여지게 된다. 교황은 성직자들에게 이슬람 신자들에게 빼앗긴 성지를 회복하고 원정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받는 특혜를 주겠다고 호소하여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순수한 신앙적인 이유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고, 동방의 부유한 부를 얻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도 많았다.

 

고드프루아가 알렉시우스 1세에게 예루살렘을 돌려주지 않은 이유는 십자군이 위험에 처해있을 때 도와주지 않고 배신했다는 이유이다. 이 책에서도 법정은 고드프루아의 손을 들어준다.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고 이와 반대로 왕권은 더욱 강화되며 십자군 전쟁으로 약탈한 유물들은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계기로 서구 중세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게 되니 역사 속에서 어느 사건도 의미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평소 십자군 전쟁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유익했다.

c*********1 2013.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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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알렉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알렉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내용보기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배울때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 시대로의 변화를 초래한 사건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군 전쟁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십자군 원정에 깊이 관련된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십자군 전쟁은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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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배울때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각 시대로의 변화를 초래한 사건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군 전쟁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십자군 원정에 깊이 관련된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십자군 전쟁은1095년부터 1270년까지 크리스트교를 믿었던 중세 서유럽의 국가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이술람교도들과 벌인 대규모 군사원정을 말하는 것으로 무려 8차례 일어났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십자군 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이 단지 1099~1187년, 1229~1244년 뿐이였다고 하니 그 기간만을 보자면 십자군 전쟁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이 보이지만 십자군 전쟁이 서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셀주크 튀르크가 크리스트교인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음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을 막게 된 것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며, 이에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십자군 전쟁이 성지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감추어진 진실은 여러가지 있다. 동방 정교회를 정복해서 교황권을 확대하려는 교황의 의도, 재산 상속을 받지 못하는 장남 이외의 아들들을 재물욕과 함께 도시 상인들의 시장 개척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기에 어쩌면 8차에 걸친 대대적인 출병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병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교황권이 실추되고, 각 지역이 왕권이 오히려 높아지게 된다. 또한 약탈을 통해서 들어 온 문물들이 근대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주게 됨으로써 서구 중세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십자군의 지휘관이였던 고드프루아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되찾은 예루살렘을 알렉시우스 1세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예루살렘 왕국을 세워서 스스로 군주가 되었기에 이번 소송을 통해서 그의 잘못을 밝히고 자신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자 함이 청구 목적이라고 알렉시우스 1세는 말한다.

 

 

십자군의 출병이 애초에 그속에 개인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 과정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알렉시우스 1세 역시도 십자군이 위험이 처했을때 도움을 주지 않은 점이나 고드프루아가 알렉시우스에게 예루살렘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기에 예루살렘 반환을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법정의 판결인 것이다. 알렉시우스 1세에게는 안타까운 판결이겠지만 원래 예루살렘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십자군이지 그속의 개개인이 아니니 어쩔수 없는 주장이 된 셈이다.

 

다만 법정의 판결문에 적힌 내용처럼 '비잔티움 제국이 오랜 세우러 동안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고, 총대주교구를 세워서 위상을 높인 것은 인정하는 바이니' 이로써 예루살렘이 가진 본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13.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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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한 진실 찾기 (예루살렘 성지회복)
"십자군 전쟁에 대한 진실 찾기 (예루살렘 성지회복)" 내용보기
십자군 전쟁에 대한 진실 찾기 (예루살렘 성지회복)   세계사를 공부할때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어려웠던 부분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서양 미술 전시회를 찾을때면 왜 그렇게 종교색이 짙은걸까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상당했지요. 역사는 무작정 외우는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의 잘못은 그렇게,  재미있을수도 있는 역사공부를 어렵게만 만들었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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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한 진실 찾기 (예루살렘 성지회복)

 

세계사를 공부할때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어려웠던 부분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서양 미술 전시회를 찾을때면 왜 그렇게 종교색이 짙은걸까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상당했지요.

역사는 무작정 외우는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의 잘못은 그렇게,  재미있을수도 있는 역사공부를 어렵게만 만들었던 요인이었습니다.

 

그 후 십자군이나 서양 종교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지라 몇 십년 동안 묶혀져있던 중세 서양의,  종교와 정치가 얽히고 섥혔던 이해관계를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시리즈였던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라는 이 책을 통해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개념적으로 앞뒤를 따져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니 요즘 아이들의 역사공부는 한결 수월하겠구나 였습니다.

   

 

 

 

1096년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어요가 아닌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

십자군은 왜 황제와의 약속을 어겼을까.  3차 십자군은 왜 결성되었을까 ? 라는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왜, 왜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본질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좋았지요.

 

 

 

 

 

자음과 모음의 세계사법정을 만날때마다 앞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요것으로 세계사연표와 한국사연표를 비교 정리해 놓고 있는 내용이랍니다.  서양에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때 우리나라는 최충의 사학을 시작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 여러 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군요

 

서양에서 종교문제로 붉어진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때 우리나라에서는 미약한 왕권으로 무너져버린 민생들의 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슴니다. 어딘가 통하고 있는 두 사건을 통해서 10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조망하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그 문제에 대해 제기를 한 사람은 처음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 계기로 교황에게 십자군 파견을 요청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였스니다. 헌데 그의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군 전쟁의 적이었던 이슬람 술탄이 아닌 1차 십자군 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었으니 거기에서 우린 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할수 밖에 없었고 장기간 계속되었는지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예견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요.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곳은 바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3대종교의 성지가 되고있는  예루살렘 이었습니다.

 

 

 

 

 

서방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비잔틴제국은 셀주크 틔르크의 2대 술탄인 알프 아르술란의 군대에게 만지케르트에서 패배한 이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알렉시우스 1세는 그렇게 비잔틴 제국이 기울어 가던 싯점에 황제에 등극  이슬람 세계에 빼앗긴 소아시아의 땅과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되찾기 위해 교황에게 십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지 순례지를 탈환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참여한것과 달리 일부는 영토정복과 권력유지등을 목적으로 하기도 했으니 십자군과 황제의 불화, 지휘자끼리의 서로 달랐던 이견과 속내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쟁에 준비가 안된 채 무작정 종교적 신봉만으로 참여했던 사람들, 본연의 목적을 숨긴 사람들로 인해 십자군 전쟁은 처음부터 왜곡되고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1차 봉기에서 10만명에 달했던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이용해 약탈과 학살을 자행해으며 어렵게 탈환했던 성지는 비잔틴 황제에게 바쳐지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십자군 전쟁은 성지회복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이슬람 제국과 벌였던 전쟁이 아니라 기독교 내 세력간의 자기 영토와 권력을 구축하기위한 발판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30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전쟁이 이어졌던 것 이었습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의 추락으로 유럽세계의 정신적 지주였던 중세 크리스트교가 무너지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중세사회는 해체되며 그제서야 각 나라의 왕권이 강해지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책의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의 기록이 아닌,  왜 발발했고, 사후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함으로써 중세 유럽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과서속 세계사를 접한다면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요즘 아이들이 해야하는 공부의 양이 많아진것에 반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또한 다양해진 모습중 하나이군요)

 

 



d****0 2012.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