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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결국은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내세웠던 것이 사회주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확산되던 사회주의 체제는 대부분 붕괴되고 종말을 맞고 있는 반면, 자본주의체제의 경우 때로는 심각한 정도의 문제도 수시로 부각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아직도 주류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체제가 분면 장단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체제운용의 탄력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정상호교수가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가 몰아닥쳐 2010년말 현재까지도 글로벌 경제전체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일단 위기만 모면하면 옛날과 다름없는 정책입안 방식이나 비즈니스 형태로 돌아가려는 정치 또는 경제계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변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그동안 끊임없는 요구되는 변화의 필요성을 수용하여 궤도를 수정해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주류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경문제를 지구적 위기로 지목하고 있는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을 비롯하여 글로벌 소비재 제조업체 SC 존슨사의 CEO 피크스 존슨 회장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의 저자 스튜처트 하트는 이 책을 통하여 “경제위기 이후 딜레마에 빠진 세계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주체는 바로 글로벌 기업이다.”라는 해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책소개를 인용하면,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제1부 ‘문제제기’ 부분에서는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대격변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재를 짚어보고 있으며, 제2부 ‘그린을 넘어서서’에서는 다국적기업이 경제 피라미드 밑부분(BoP)에서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피라미드 저변으로부터의 이노베이션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었고, 마지막 제3부 ‘토종화를 지향하여’에서는 다국적기업이 국외자에서 토종기업으로 변신하며 발생하는 문제점과 극복방안, 사업모델,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토종화 능력의 개발 전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노동과 자원을 탐욕스럽게 착취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왔다고 지탄을 받아온 글로벌 기업들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구의 지속적 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명제와 연관을 짓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제2부를 통해서 지금까지 글로벌기업들의 사업대상이 되었던 세계경제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아닌 저변(BoP)를 구성하고 있는 40억 인구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어야 글로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지구의 지속적 개발과는 무슨 연관이 있나 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 무하마드 유누스교수가 최빈곤층 사람들에게 소액의 융자를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딧’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설한 그라민뱅크의 성공사례도 구체적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 최빈곤층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었는지가 모호하였습니다. 글로벌대기업이 자본참여한 그라민텔레콤이 농촌마을 여성들을 모바일 전화서비스 판매사업에 참여하여 방글라데시 농촌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이것이 마을경제의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 설명을 읽으면서 고정된 사고를 열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사업을 통하여 여성들이 수익을 올리게 되면서 일어난 지역사회의 문화적 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은 새로운 과제라고 보여집니다. 특히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언어학자 헬레나 노버그-핫지가 만난 히말라야 산 중턱이 부족사회 라다크가 외부 사회에 개방되면서 일어난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를 읽으면서 글로벌화가 반드시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리더의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민들 간에, 그리고 환경에 대해 자연스러운 책임감을 익혔고 대체로 행복하고 건강하며 만족스런 삶을 대대로 누려왔던 라다크지방이 개방 이후(297쪽), 부와 사치, 안락, 화려함 같은 이미지를 홍수처럼 쏟아낸 서구 언론에 노출된 라다크 사회가 경제활동에 열을 올리면서 공동소유 토지경작이나 상호부조와 같은 전통적 관행이 깨어지면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는 슬픈 역사의 기록을 읽으면서 한발 앞서 전통이 무너진 우리사회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과연 빈곤층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벌이면서 돈을 번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하는 의구심에 대하여 저자는 <BoP 1.0버전>에서 ‘빈곤층에 물건 팔기’라는 기업가적인 접근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BoP 2.0버전>에서는 글로벌기업과 BoP가 어떻게 협력하여 ‘상호가치를 창출할 수’있는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이 그간 사리사욕만 추구하여 많은 지탄을 받고 심지어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초래하게 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자본․인력 등 방대한 자원동원 능력과 기술개발 역량,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감안하면 대기업들이 새로운 자본주의 창출에 앞장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정성호교수의 주장에 수긍할만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특히 새롭게 개편되는 세계경제질서 시장에서 우리기업들이 살아남아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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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계속 지속가능한 지구와 기업이라는 주제로 연구와 논문발표를 거듭해왔지만 본격적으로 이 책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저자와 프라할라드의 공저 논문에서 “피라미드 저변에서의 비즈니스 성공”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이후, 출간된 이 책의 초판은 2005년 간행이었고 2007년의 개정을 거쳐 우리가 국내에서 보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는 최근의 3판 번역본이라고 한다. 초판에서부터 이후 개정된 내용된 내용을 우리는 보게 된 것인데 이렇게 시기성을 고려하여 전면 개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며 현시점에서 읽기에 거부감이 없어서 전면 개정에 가까운 저자의 노력을 예상할 수 있다.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단 ‘안정’ 국면에 들어섰으니 형식적인 개혁에 그치거나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만 저자는 보다 현실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 모양이다. 그는 자본주의 내에서 기업을 변화시킴으로서 환경과 빈곤의 문제와 금융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자본주의를 추구하거나 자본주의 밖에서 다른 형태의 새로운 형태의 정치경제를 모색하는 것만이 대안일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이었던 내게 ‘두려움 없는 미래’(프로네시스) 이후 처음으로 다시 자극이 되는 자본주의 내 대안모색이라는 점에서 읽을수록 기대감이 든다. 저자가 제안하는 실질적 대안은 언제 등장하나 싶다가 책의 상당부분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전체적으로 요약본이라거나 키워드 중심으로 축약된 글이 아니다 보니 이것저것 살들이 많이 붙어서 나눠 읽을 경우 집중력이 꽤 필요했던 것이다. 그 뼈대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기업이 이윤추구와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과 그를 성공시키기 위한 업무전략 등이지만 붙어있는 포동포동한 살들에는 세계경제의 사건들과 문제점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버릴 말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지의 뼈대를 제외하더라도 메모하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세계경제에 대한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과 사례들이 저자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독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시민으로서 세계를 감시하고 스스로의 경제권 보호에 대한 의식수준을 높힐만한 내용이 많으니 꼼꼼하게 읽기를 권하고 싶다. 아주 여러 시간에 걸친 강의를 들은 기분이다. 매 시간에 논점을 제시하고 열띤 토론을 펼치고 여러 의견을 들은 기분과 같다. 저자의 의견은 분명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피라미드 하부층에 속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비용적 성공을 짚어낸 것은 무조건적으로 기업에 윤리와 기업의 의무를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점이 저자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업에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버리고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더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엄청나게 더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모험이며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번거로움이 미래의 지구에서의 사업성을 생각했을 때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금융위기의 악순환의 곡선을 더욱 완만하게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임에는 의심할 바가 없는 듯하다.
기업에게는 어쩌면 이제 선택권이 없을 듯 하다. 도덕적인 이유를 떠나서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라도 구조적인 체계를 변화해나가는 다른 분야로 옮겨가면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유한자원 고갈에 대한 불안으로 좀더 먼 미래의 자본-기회비용을 고려할 때 기업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기업활동에 있어서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이나 “전략적 자선사업”에 대해서는 동기가 수익성에 있다는 점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 강의내용이 떠올랐다. 칸트적 입장에서 이는 순수하지 못했던 동기의 공익추구가 되었으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도덕적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기대되는 결과를 생각했을 때 사실 이러한 동기가 기업에게는 무척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많은 기업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대안들, 환경과 공익을 위한 기업이 되면서 수익적으로도 윈윈할 수 있는 사업들처럼 기업들의 이러한 동기와 실천이 모여 실제로 공익적, 사회적 목적까지를 달성하는 기업의 모습들로 전환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라는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지금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업의 모습, 긍정적이고 다른 자본주의의 모습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의 말대로 전통경제에서 인구가 중요했지만 화폐경제로 인한 자연파괴로 전통경제층의 빈곤이 초래되고 이 빈곤은 그 인구 때문에 더욱 심화된다. 결국 도시이주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전세계의 화폐경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인구의 증가의 안정이 환경지속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그의 언급은 우리나라의 출산장려책에 대한 의심을 하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안없는 무조건적인 출산장려책에 대한 반감도 있었겠지만 과연 세계가 아닌 한 국가로서, 그리고 그 국가의 보호를 받는 국민으로서 국가력 향상에만 집중한 나머지 우리는 출산장려책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의 교육수준을 향상시키고 이에 따라 그들의 경제상황의 개선되고 출산을 적게 하리라는 그의 사소한 예상은 출산을 원하는 부모들에게는 환경문제 촉발인자 취급을 받는 듯한 불쾌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언급은 딱히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에서 강조되는 빈곤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리일 뿐이다.
GE의 CEO인 제프리 이멜트는 세계가 과거와 동일한 상태로는 결코 되돌아가기 않을 것이므로 “회복”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고 대신 지금의 상황을 “리셋”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저자 스튜어트 L. 하트의 시각에 매우 근접한 말이다. 기존 자본주의를 답습하는 식의 회복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자본주의 내의 문제점 해결에 대한 대안을 사고하고 있는 저자의 태도 말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회복’이라는 허위성을 가졌음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내에서의 회복이란 또 다른 금융위기로 가는 랠리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도 기정사실화되는 듯 하다. 이제 기업들은 경제회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보다는 지역친화적인 기업문화와 친환경적인 산업연구와 이에 대한 홍보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처럼 우리의 시대를 후손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글로벌화 비판론자인 데이비드 코튼은 아마도 “해체의 시대”, “대전환의 시대”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본주의와 위기, 그 이후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질수도, 빗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무언가가 오고 있는, 이후 어떤 시대로 불리느냐의 결정적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수익성을 고려하여 다국적 기업이 탄생하고 수익성만으로 지역이 결정되니 처우와 환경 등, 그 지역사회와의 대립을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역사회와 융합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진정 지역사회에서의 자본주의적 부작용 재생산, 즉 복지를 제외한 저임금을 쫓거나 지역의 환경문제는 도외시하는 경우보다 지역과 소통하고 토종화의 방법을 짚어감으로써 기업수익에 있어서도 더욱 고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지금 그냥 창조적 파괴와 창조를 거친 전환의 시점을 인식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귀담아 들을 사례들이다.
그저 한 소비자로서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피라미드라는 비유에 대해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기준대로 경제적 활동과 화폐의 소유분에 따른 계층을 분류했을 때, 그 해당인구의 숫자를 고려하면 분명 아래쪽이 넓은 삼각뿔의 모습인데 화폐적 지분으로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역삼각뿔의 모습이 되었다. 인구의 숫자로 따졌을 때 이는 아래쪽이 넓은 삼각뿔이 맞는데 화폐의 지분으로는 역삼각뿔이 되는 것이다. 저자가 어떤 쪽을 생각하여 삼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를 생각했는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복잡하게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두 삼각뿔 형태가 합체된 별모양의 계층 분류 모형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중간층(중산층이 아님)이 빈곤층으로 전락가능성이 높아 피라미드의 중간계는 상실되고 작은 원형과 큰 원형의 두 개의 계층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UFO 모양의 정체불명의 계층모형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당치도 않은 모형의 변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후세를 위한 책임감있는 시민으로서 모두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바로 이점이 어쩌면 독자로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미래를 위한 실천과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피라미드의 저변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것 외에도 기업이 중간상인이 되어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가 공정무역으로 알고 있는 방법도 언급된다. 빈곤층 혹은 세계의 빈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금전적이고 물품적인 ‘원조’ 식의 구조가 1회적이며 소비성으로 그치며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씁쓸한 생각을 여러 시간 했더랬다. 이 책에서 언급된 더바디샵 CEO 아니타 로딕은 1990년대 초에 “원조보다는 통상을 우선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발도상국 원주민들로부터 제품원재료를 사들임으로써 그런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가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공정무역을 통한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이러한 기업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업들을 비판만 하기보다는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실천할 수 있어서 더욱 희망적이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든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라다크의 경우가 떠오를텐데 이는 저자의 말처럼 라다크에서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적 산업 유입과 무차별적인 개발이 낳은 부작용에서 지금까지의 다국적 기업이 제 3세계에서 벌인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저자는 기업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지역사회와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접목시키는 것이 비용절감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토종화를 꾀하고, 피라미드 저변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과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 모든 것이 피라미드 상층부를 대상으로 하는 아이디어 개발과 부가적인 의무적 기업기부와 같은 생색내기보다 기업에 내외로, 결국에는 수익적으로 더욱 이익이라는 점을 잊지 않게끔 하고 있다.
그런 저자를 기업에 '제국주의적 태도로 자본주의의 패권을 지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시키려는' ‘기업문화 변혁 운동가’라고 말하고 싶다. 세멕스의 직원들이 엄중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판자촌에 들어가서 시멘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듯 현재 자본주의 기업이념은 ‘어디에서든지 00을 팔 수 있어야 한다’가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기업이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지역에 그 사람에게 맞는, 필요한 상품이었을 때 더 잘팔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저자가 강조하는 변화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다.
하루아침에 바뀔 이념들은 아니다. 게다가 화석연료가 아닌 에너지 개발에 대한 화석연료 소유자들의 막강한 인질극이 대항해오기도 할 것이다. 아직 화석연료가 지구촌 기업들과 산업을 움직이고 있으므로 협상을 해야 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환경과 지역사회와의 윈윈전략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 하나하나가 모아진다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저자가 지역사회와의 대립을 조장하는 현재의 다국적기업의 모습보다는 조심스레 제안하는 소기업 창업과 같은 투자(저자는 꼭 투자라고 표현한다. 이 또한 기업을 대상으로 회유하려는 미있는 표현이다.)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뿐 아니라 많은 석학들이 90년대부터 끊임없이 주장해 온 일들이겠지만 아직도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내용을 권유하고 있다. 그 사이 워낙 변화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이 책에는 그 사이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뼈와 살들이 풍요롭고, 알찼지만 이후에는 여기에 더해 기업의 윤리적 차원의 논란까지를 논의해보고, 피라미드 저변을 대상으로 한 산업 중 친환경적이면서 저렴해서(ex/ 전기부족 지역 원주민에게 비싸지만 지속가능성있는 LED가 아닌 저렴한 지속가능한 대안연구 등) 지금의 선진국의 전저를 반복하지 않는 성공적인 지역사회를 위한 방법까지도 언급되는 개정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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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승천하고 경제 대국으로 레드카펫을 따논 당상으로만 알았더니 미국,일본등 경제 대국의 버블경제가 꺼지면서 한국 역시 타격을 빗겨 나갈 수가 없었고 감내하기 힘들었지만 온국민이 하나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IMF의 긴 터널을 어느 정도 해소한듯 싶지만 정작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은 생계비,교육비,세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실감한다.매월 들어오는 수입도 숫자만 그럴듯 하지 실제 생활비로 나가는 데에는 힘겨울 수밖에 없고 신음 소리만 나온다. 2001년 세계 무역센터의 공중 폭파,2005년 이라크 전쟁,2008년 모비지 사건으로 인하여 세계는 또 다시 경제 공황을 맞이하게 되며 이에 부차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기아 문제,유가 급등,서브프라임시대,기후 환경 문제등도 경제 공황만큼이나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고 당연히 국가와 국가간,국가와 기업간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남게 되었다.인류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행복 지수는 아직도 멀었다라는 생각이 든다.한 사회의 구조를 보더라도 갖은 자와 권력자들은 부와 권력의 달콤함에 없는 자와 약자는 천민 의식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만 하고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나아가 신자본주의의 그늘 아래 정치와 경제 대국들은 말로는 글로벌화로 외치고 세계는 하나라는 허울 좋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지고 탈산업화와 지구 환경 문제에 주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촌의 대다수 빈민(약 40억),빈국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다 보니 과연 그들이 빈국에서 벗어나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갈 방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경영 전략과 지구 환경 문제등의 전문가이고 권위가이신 스튜어트 하트가 경제위기 이후 딜레마에 빠진 세계경제를 되살릴 윈윈 솔루션의 청사진을 제시해 놓고 있어 지구촌에 사는 일원으로서 관심과 기대가 컸던 만큼 그의 문제 제기와 자본주의의 재창조라는 명제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문제 제기,그린을 넘어서서,토종화를 지향하여로 되어 있다. 문제 제기에서는 경제글로벌화에 따른 혜택을 입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내지 저개발국가들의 빈부 격차의 심화와 원자재와 화석연료 에너지의 무절제한 사용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 문제들이 주요 이슈이다.국가와 기업 특히 정부의 입김이 센 한국의 경우에는 무한대의 개발은 자제를 하고 없는 자와 환경 개발 문제에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또한 지속적인 기업으로 살아 남으려면 민간부문 주도의 개발로서 이윤을 추구함과 동시에 빈곤층의 삶의 질을 높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줌은 물론 후대들을 위해 지구의 생태계 보전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기업은 환경혁명과 정부는 규제와 공공정책상의 철학적 변화를 보여 주고 있음도 눈에 띈다. 요는 제대로 된 비전과 전략,구조,능력,용기를 갖춘 기업들만이 2000년대 두 번째 십 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가장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고 특히 기후 환경문제를 제대로 알고 실행해 나가는 기업은 향후 몇 백년의 승승장구를 보장받을 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눈에 띄는 대목은 기업들이 전통시장 참여자들의 수요에 맞춘 기술과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부단한 노력과 밀착성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음도 알게 된다. 과학기술 발명발전과 사회정치적 대격변 속에서 도래하는 창조적 파괴의 시대를 현재 맛보고 있고 초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수십 년 전부터 과거 시대에 개발됐던 기술들이 더 이상 지속성을 가질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유해물질 오염,삼림.어장 고갈,토양침식,동식물종 다양성의 감소,글로벌 기후변화,인구폭발,빈부격차 확대,갈등.분쟁 격화등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비즈니스 관행이 어떤 부정적인 사회.환경적 영향을 미치는지 심각하게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로 지속성을 갖지 못한 기술을 청정기술 및 재생가능 기술로 대체할 때만이 비로소 지속성 높은 세계로 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피라미드 바닥에 초점을 맞추어 하부로부터의 이노베이션도 눈에 띄는 대목인데 갈란츠 사의 피라미드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파괴적 변화의 가능성이 이를 보여 주는데 방글라데시의 "마을전화"를 예로 들고 있다.아래로의 대약진은 피라미드 중간층들에게 식품,보건 쪽에 주력하여 삶의 질과 소득 향상,행복 지수를 높여 주는데 더욱 노력한다면 지속성 있는 기업으로 오래도록 살아 남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BoP 비즈니스 전략이 다국적 기업들에 있어서 글로벌 차원의 모범관행을 기업 안테나를 높임으로써 새롭게 얻은 지역사회 지식과 결합시키는 것만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다.특히 기업들은 빈곤층을 고객이나 소비자가 아닌 파트너 또는 동업자로 여겨야 한다.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글로벌 효율성과 국가시장별 대응능력,학습결과의 타 지역 시장 이전등 다국적 기업들이 이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에 더해 이를 보완하는 "토착화 능력"의 개발이 절대 필수조건이 아닌가 싶다.이렇게 함으로써 기업과 빈곤층은 깊이 있는 상호 유대가 형성이 되고 능력이 축적되며 대도약을 위한 솔루션이 생성이 될 것이고 지역사회 파트너들과의 생태계 구축도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이제는 지구가 경제 위기 뿐만이 아닌 기후 환경오염,최빈국들을 끌어 안고 지속성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가고 오래도록 살아 남기 위해서는 열정적이고 꼼꼼한 인재를 키우고 전략을 세우면서 진정으로 실천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망가진 경제,기후 환경오염 문제를 풀어나갈 수가 있고 빈국과의 상생함으로써 새롭고 산뜻한 자본주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궁극적인 세계 경제를 되살릴 길이라고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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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경영/경제 분야를 읽는 횟수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나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책이 도달할 수 있는 솔루션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론과 실체가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세계란 게 애초에 없고, 틈을 메우는 것이 인간활동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물론, 사회구조 또한 때로 비슷하듯 기업 스스로가 정치와 사회구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으로 환각에 빠져들 때 세계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동반자적 입장에서 그들을 감시, 견제해야 하는 정부가 도덕을 버리고 이득과 손을 맞잡을 때 서민은 마침내 설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쉽게 상상가능한 일련의 과정은 무대를 세계로 넓혀도 마찬가지. 기업은 약자를 이용해서 얻은 막대한 이득을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해서 권력의 칼로 휘두르면서도 새로운 자본주의라며 우겨대진 않았나. 그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정작 중요한 것은 편나누기가 아니다.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해나갈 것인가보다 이득에 눈먼 다국적 기업들이 현재 세계의 양극화를 조장했다. 양극화가 가져온 것은 빈곤과 풍요의 문제 뿐만이 아니다. 환경파괴와 이상기후, 테러리즘과 핵전쟁까지 이 모든 것이야말로 그들이 자본주의라 믿었던 발전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이쯤이면 두려움에 떠는 글로벌 세계라 이름붙여도 과하진 않겠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는 제3세계와 중국, 인도 등 한창 투자개발 되고 있거나 앞으로 되어야 할 무대를 대상으로 그동안 기업들이 어떠한 활동을 펼쳤는지, 얼마만큼 이득을 얻었는지, 미래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그동안 다국적 기업이 해온 성공이나 실패사례를 통한 미래모델 제시가 목적이다. 세계문제의 모든 패러다임에서 빈곤층과 빈곤국을 중심축에 놓고 구성하기 때문에 가진 자들의 향연으로 치부한 채 책을 놓아버릴 수도 없다. 탁상공론이든 이론에만 치우쳤든 내용 자체는 인간적이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국적 기업의 빈곤층 공략에 대한 아이디어라고 보면 정반대이기도 하지만. 인구비율로만 따질 때 절대빈곤에 속하는 빈곤층은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자본주의에 찌든 선진국이 내 아이가 최고를 누릴 수 없다면 차라리 있는 아이에게 몰아주자는 논리로 출산을 점점 거부할 때, 먹이고 입힐 것이 없으면서도 아프리카의 부모는 먹을 것을 하나라도 더 구해올 수 있는 노동력을 위해 출산에 목숨걸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식수가 없어, 말라리아로 인해, 에이즈 때문에 죽어가는 숫자를 일일이 세는 건 세지 않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한쪽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병으로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굶주려서 죽어간다.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다국적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중국은 명절이면 기차를 타고 3일간 대이동을 해야한다. 모든 동네에 도로와 철도가 신속히 구비된 것이 아니므로 실제 이동시간은 두 배로 걸린다는 얘기다. 인도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구로 따지면 남부러울 것 없는 두 국가의 사정이 단지 교통사정에만 해당될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 사회, 경제, 정치 모든 분야에 차별이 만연하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이 눈독 들이는 첫 번째 시장이기도 하다. 그들이 어떤 분야를 건설하든 중국과 인도의 성장속도로 보자면 상상이상의 이득을 얻을 것이다. 중국의 시골마을에 도로가 놓이고 각 가정마다 자동차를 한 대씩 굴리게 되면 중국이 사용할 석유의 양은 전세계 석유생산량을 능가할 것이라고 한다. 만성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며 인간사회의 개체수 조절이라고 했던 선진국의 만연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예를들어 중국의 발전은 중국만의 노력이 아닐 것이다. 이득을 내려는 세계 다국적 기업의 욕심이기도 할 것이다. 그 욕심이 중국의 성장을 도울 것이고, 중국의 성장만큼 에너지 자원은 고갈될 것이며, 환경파괴 속도는 급속화될 것이다.
에너지 자원에 대한 미국의 이중성은 치가 떨릴 만큼 뻔뻔한 것이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를 향한 지속적 공격이 석유쟁탈전이나 달러가치 높이기에 대한 것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현재 별로 없다. 아마존을 비롯한 제3세계의 땅을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파헤쳐댄 것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다. 이제 미국은 국제사회에 소리친다. 온갖 환경법을 들먹여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온갖 땅을 헤집어서 환경파괴를 촉진시킨 후였다. 일찍이 미국은 자국의 땅을 실컷 파헤치고 개발한 덕분에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자원은 언젠가 고갈될 것이고 환경파괴가 본국의 목을 조를 거란 걸 진작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자기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유명한 우스갯소리는 세계 최강국의 미국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의 투자가치에 빈곤국을 겨냥할 것을 촉구한다. 세계 어떤 투자은행도 빈곤층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원금상환률이 제로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땅에 몇 달만 뿌리내리고 관찰해도 알게 된다. 그들 각자가 무능하거나 게을러서 빈곤층이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실제로 빈곤국의 최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줬더니 아무 것도 없었던 황량한 마을에 편의점이 생겼다고 한다. 당연히 빌린 돈을 상환하지 않았겠는가.
선진국이나 다국적 선진기업이 빈곤국에 투영하는 이미지가 한낱 허구이거나 제국주의 시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꽤 많다. 전기 서비스는 물론이고 냉장고가 없어 식재료 보관이 이틀을 못 넘는 어느 마을에 냉장고를 대신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준 것이나, 전화가 없는 마을에 일단 마을전화를 설치해주고 전화교환원으로 여자를 지정한 일이 마을전체에서 여자의 사회적 위치를 상승시킨 것 등은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무조건 무차별적으로 투입되어 그들의 질서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다국적 대기업보다 그들의 일상에 더욱 뿌리내릴 수 있는 중소기업을 통해 서서히 바꿔나가야 한다고 본다.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적응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말하는 건 거창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분명히 변화했다. 잘먹고 잘입고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 시작됐던 자본주의는 이제 내가 잘사는 것보다 타인보다 더 잘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이 돈을 벌고, 사람 위에 돈 있다는 말이 잘 설명해준다. 단지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두던 시대는 지났다. 도시 빈곤층이 더 불행한지 아프리카 난민이 더 불행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할 수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 평등을 지향할 수 있다면 해야 하고,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한다면 협력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함께 잘먹고 잘사는 길이 결국 기업 또한 이익을 창출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지속적인 관심과 협력만이 미래의 글로벌 경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위기, 환경위기, 테러위기, 자원고갈,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등의 문제를 위기 아닌 기회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노력들이 전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 중심으로 행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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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털어놓자면 제목부터 좀 거북했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니, 자본주의가 빈부격차와 환경문제 등 지금 세계의 문제 대부분을 일으켰는데 어떻게 여기서 새로운 자본주의가 나오고 설령 나온다 해도 그게 기대할만한 걸까 의아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밑으로부터의 이노베이션, 지역사회와 밀착한다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기업 한다는 사람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개발지상주의 신화가 통용되니까. 자영업자들 몰아내는 대기업 마트 문제도 불거졌고.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과연 하층 사람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긴 했을지. 작가의 주장에 다 공감하진 않지만 작가가 환경학 전공을 해서 그런지 환경과 관련한 부분은 꽤 귀담아들을만한 데가 있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게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로 만든다는 주장은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장점은 역시나 사례가 풍부하다는 것. 그래서 생각보다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뒷부분으로 갈수록 사례가 많아지니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여 끝내는 사례 부분은 눈으로 대강 훑게 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가독성은 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부분 역시 사례에서도 보인다. 그의 주장에 맞게 잘된 사례들을 늘어놓으면서 주장의 타당성을 반복해서 말하는데 그런 논법은 하나라도 그와 반대되는 사례가 나오면 무너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자면 책에선 몬산토와 같은 사례를 부정적 사례로 들긴 하지만 아주 조금만 언급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례를 들면서 몬산토의 잘못은 어쩌다 실수한 거지 그들에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듯 느껴져서 거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사례가 한두 건뿐일지. 다국적 기업이 빈민층을 공략해 사업하면서 기업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빈민층에도 도움을 줬을까? 왜 자꾸만 나는 너구리(?)가 원숭이에게 처음엔 공짜로 신발을 주다가 점점 원숭이의 발이 보드라와져 신발을 반드시 신어야만 하게 되었을 때부터 비싼 값을 부르더니 원숭이는 끝내 너구리의 노예 신세가 됐다는 동화가 떠오르는지. 제3세계 빈민이 선진국의 중산층 이상 사람들보다 새로운 기술을 쉽게 받아들이므로 그들을 공략하고나서 차츰 위로 올라가야 하다는 주장은 기업 입장에선 참 참신하고 좋겠지만 공략층인 빈민 입장에선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국가와 중앙집권적 방식에 대해 줄곧 반박하던데 한때 설치던(지금도 설치는?) 공기업 민영화가 자꾸 떠올랐다. 과연 요 십몇년동안 민영화하면서 얻은 건 뭐였나? 기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역시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뭐 작가가 자신은 '모든'이란 수식어는 안 붙였다고 반박하면 할 말은 없지만 독자가 그런 수식어를 신경쓰고 읽진 않잖아. 그냥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면 거의 다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다른 분들은 리뷰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는데 혼자만 투덜거리자니 약간 뻘쭘하네요.;중구난방식으로 쓴 것도 그렇고.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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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 / 스튜어트 하트 / 정상호 / 럭스미디어]
지난 2008년부터 유가급등과 글로벌 시장위기, 서브프라임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어지면서 세계는 대불황의 시대에 빠져들었다. 2008년은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모든 면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다. 그 중심축인 경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도록 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경제위기들은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 개발 패러다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911 사태를 비롯하여 각종 테러, 기후변화, 생물다양종의 상실, 빈곤, 소득 불평등, 절망감 등 인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저자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경제이론에서 찾고 있다. 과거 세계의 경제를 주도했던 자본주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오류가 더 커지며 이와 관련된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처한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자본주의 경제이론을 대폭 수정해서 21세기에 맞는 이론으로 다시 정비해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현재의 자본주의와 기업의 경영방식에 대해서 살펴보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진단한다. 기업은 자본주의 이론에 충실에서 이윤추구를 제 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다 실행에 옮긴다. 그러다보니 환경오염, 계층 간 빈부격차, 글로벌 무역으로 후진국(경제신흥국)을 경제적 속국으로 만드는 일 등이 발생한다. 거기에 신흥국의 고유문화까지 말살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선진국은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공장 설비를 후진국으로 옮겨 재화를 생산한다. 신흥국은 그런 조건을 거부할 수 없다. 신흥국의 환경오염이 가속화되는 이유다. 기존의 선진국을 기준으로 모든 문화를 평가하니까 신흥국들의 고유문화는 미개한 것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소멸하거나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어느 신흥국이든 모두 겪는 일이다. 또한 경제, 교역이 활발해질수록 부유층과 극빈층의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진다. 자본주의는 또 다른 권력이 되어 신흥국의 국제적 입지를 좁게 만들고 그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헤치기도 한다. 우리가 빈곤 국가들을 생각할 때 그 지역의 역사화 경제제도, 문화를 무시하고 선진국 사회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 실제로 많은 경제학자가 주장한 '발전'이나 '근대화'같은 개념은 서구의 문화적 편견을 반영한 것이다. 일인당 소득을 늘리면 빈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라미드 저변에 집중할 것'을 주장한다. 기존의 시장구조를 살펴보면 마치 피라미드 구조와 같다. 좁은 면적을 차지하는 맨 위 상층부, 중간층, 그리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하위층(저자는 이 부분을 피라미드 저변이라고 한다)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본주의 경제, 글로벌 경제에서 대상으로 삼는 부분은 상층부에 해당한다. 상층부 소비자를 위한 경제, 선진국을 위한 경제 체제는 그 아래를 지탱하고 있는 중간층과 하층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피라미드 저변을 중심으로 모든 경제 모델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그 이유와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후진국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선진국의 원조와 자선사업만을 기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서 청정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지만, 이 기술을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강요하는 것도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또한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제모델을 상층부에 적용하기엔 너무 많은 위험부담이 있다. 그래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피라미드의 저변이다. 피라미드의 저변은 신기술과 새로운 모델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문화의 획일화를 막고 자연재화의 지속성을 얻을 수 있는 곳, 또 다양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피라미드의 저변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회계시스템은 자본재를 계산해내는 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자연, 사회, 문화, 인적 자본을 계산해내는 데는 정확하지 못하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오로지 재물과 그에 따른 이익만을 따질 뿐, 신흥국의 자연환경과 고유문화는 교역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화폐경제에서 전통경제와 자연경제로 눈을 돌려야 하고 글로벌 경제의 주변부(피라미드 저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방식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다. 피라미드 상층부가 아닌 바닥, 즉 피라미드 저변에 집중해서 경제 이론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저소득층의, 저소득층에 의한, 저소득층을 위한 경제 모델을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지속가능한 전략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한 전략을 실행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상층부를 위한 경제에서 피라미드 저변을 위한 경제로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자본주의인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단순한 환경경영(그린화)을 훨씬 뛰어넘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전략을 실행한다. 자연환경은 후손에게 물려줄 지속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란 그 기업이 토종화에 성공했을 때다. 토종화를 지향하는 기업활동이 신흥국의 문화와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다. # 장기 실적으로 지속성 전략을 성공시키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투자자들을 위한 이윤극대화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이윤극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업 활동의 한 가지 결과일 뿐이다. 이윤이 아닌 신뢰회복과 사회자본 구축이 우선해야 한다.
직접적인 경제 영향을 따져보는 것에 더해서 좀 더 폭넓게 사회, 문화, 환경적 영향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즈니스의 지속성을 평가하는데 저자는 3중 효과(사회, 문화, 환경적 영향)를 따져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21세기에 적합하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속적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그 전략과 방법, 실현에 필요한 능력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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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내 손안에는 한 권의 경제서가 쥐어져 있었다. 최근 내가 읽는 경제서들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과는 제시하는 방향이 달랐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 책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도 그 다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경제의 변화를 '지속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끝없는 변화 아니 파괴적이라고 할만한 이야기를 수없이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있다. 지구 환경과 경제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에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향이 단시일 내에 그 힘을 발휘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저자 역시 단시일 내에 그리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아니더라도 경제는 진화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안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관점에서 저자가 '파괴적'이라는 단어는 아주 파격적이고 놀랍기만 하다. 새롭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또한 무한 상상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지나온 경제 시대를 한단계 이상 진화하는 방향으로 따라가 보자.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문제제기', '그린을 넘어서서', '토종화를 지향하여' 를 통해 다가올 자본주의의 문제와 기업들이 나아가야할 방향 그리고 해결방안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경제 개념을 생각한다면 정말 파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파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오히려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으나 오히려 이 책은 낙관적인 내용으로 이끌고 있어 재미있고 놀랍기까지 했다. 아래 그림은 기업들이 진화를 요약하여 알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키포인트가 '그린을 넘어서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나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이미 이 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기업들의 양날의 칼을 비교하며 기업으로서의 이윤과 책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린을 넘어서는 그곳에 '토종화 되기'가 있다고 한다.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라는 나의 짧은 생각에 실사례를 들어가며 토종화 전략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가고 있다. 토종화 전략의 성공과 실패는 피라미드 바닥층의 수요와 그 주변의 이해당사자들을 어떻게 적용하였는가에 성패가 달린듯 하기도 하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변화도 너무나 빠르다. 그렇지만 분명 그 변화에 적응을 하고 그 변화에 앞서 나아가야만 살아날 수 있다면 결국 '지속성' 있는 지역사회 개발과 함께 기업을 토종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경제는 진화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문제점과 해결노력 그리고 해결책이 함께한다. 물론 그 해결책이 모두가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대세는 분명 있다. 화폐, 자연, 전통 경제를 통해서도 문제점과 나아가야할 방향 그리고 중첩되는 경계에서의 또다른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결국 새로운 경제가 우리에게 다가올 날들이 멀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를 좀 더 유연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100% 맞지 않다고 해서 분명 대안이 되기에는 분명 그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에서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은 없을까? 아마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린'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창조적 파괴와 지속성의 관계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상생으로 나아가야만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기에 저자는 끈임없이 이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라보는 곳이 다르면 내가 가야할 곳도 다르다. 그린을 바라보았다면 거기까지가 종착점이지만, 그린을 넘어서는 그곳(?)을 보았다면 우리의 기준도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앞선 주장들은 종종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 가치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 물론 조금 늦기는 해도 그 가치를 통해 더 낳은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파괴와 이노베이션이 기업이 성공 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화에서 다시 토종화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큰고 튼튼한 나무는 그 뿌리가 충실한 것과 같이 토종화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이노베이션의 추진이 갖추어진 기업이 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그림 한 장으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린화를 넘어 지속성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한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준다. 위의 그림2.1의 상충관계를 깨는 것이 바로 그린화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첫 걸음이자 토종기업으로의 방향임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양날의 칼의 함정을 빠져나와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만약 나에게 그 칼이 주어진다면 과연 모든 이해당사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방향을 칼을 잡고 휘두르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차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에 다다르면 아직 힘겨운 싸움을 해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지배구조의 발전의 미흡함과 민족국가의 편협함 그리고 종교의 영향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새로운 자본주의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상호연계성과 지속성 그리고 피라미드 바닥을 어우를 수 있는 지역사회의 자립, 안철수 석좌교수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저자의 바람에 동감하는 바이다.
색다르고 재미난(?) 경제서를 만나보았다. 분량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과 저자의 결론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새로운 자본주의만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작게는 나와 나의 가정에서도 그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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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대한 발상의 전환 -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
이 책을 읽기 전 고백한다. 내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 역시 그러한 자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깨뜨리는 무언가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진 자본주의의에 대한 발상을 전환할 것을 시작으로 펼쳐진다. 두꺼운 책의 분량과는 달리 일반인들이 읽어도 크게 어렵지 않은 쉬운 문체로 자신의 생각을 펼친 저자는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다. 그것이 낙관론의 힘이기도 하지만, 터무니없지 않다.
편견1> 자본주의와 환경의 악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며 이 활동들이 환경이 악화되는 것을 지연할 뿐 개선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을 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인류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을 한다. 반드시 모든 경제활동이 환경을 갉아먹는 데에서 출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 여기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기술의 발전과 환경 악화를 연결 지으려 하지만 저자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을 말하고 있다. 큰 것이 최고라는 생각, 부유층만을 고객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그야말로 우둔하기 짝이 없다. 그들을 소비대상으로 삼기 위한 기술들과 제품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편견2>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아름답다. 빈곤층을 향한 우리의 기부, 원조는 경제 활동보다 아름답다? 빈곤층을 향한 기부나 원조는 물론 그 의도는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 단체들이 숱한 낭비와 부패, 관리 부실로 인해 실패한 사례들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저자는 그들에게 경제 활동을 함께 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경제 활동은 인권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빈곤층이 게으르고 일할 의지가 없으며 비관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대한다. 하지만 빈민들이 의외로 부지런하고 동기부여가 되어 있으며, 잘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같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자질 일텐데 우리는 그것을 묵살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경제 활동의 주체로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중산층과 부유층만의 시장이 아닌 지구를 하나의 단일화된 시장으로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작인 것이다.
편견3> 경제활동은 현재 경제 활동에 주도적인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저자는 BoP를 강조한다. 예전엔 이 말도 Bottom of Pyramid였다가 인권 침해를 우려하여 Base of Pyramid라고 바뀌었단다. 다시 말하자면 극심한 부의 불균형인 현재의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의 피라미드의 아래에서 사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최상층의 문화 기술적인 혜택의 일부만 받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받지 못한 상태이므로, 어떤 신기술을 적용하기에 최적의 시장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을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에서처럼 활동하면 실패는 뻔하다. 이 책에서 든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 사회의 방대한 유휴인력 및 지역 사회 단체를 적극 활용하여 소규모로 분산적으로 시작할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만이 실패할 확률도 적을 뿐더러 지역 사회가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길러지고 따라서 기업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가 높아져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윤 증대와 지역 사회의 생활수준 향상을 통시에 이룬 기업은 기업의 목적 뿐 만 아니라 사회적인 인정까지 얻게 된다. 말 그대로 사랑받는 기업이 된다. 여기에서 성공한 다음 차례차례 피라미드의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빈곤층에서부터의 경제활동 시작,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 기술보다는 신뢰가 우선인 자본주의,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인 것이다. 원제처럼 우리의 자본주의는 기로에 서 있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물음은 앞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처럼 매우 중요하다.
오타발견> 69쪽 11줄 대해문제 -> 대해 문제 214쪽 1줄 경제 피라드 ->경제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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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9.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 (럭스미디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자본주의의 KO승으로 끝났습니다. 남아있는 공산주의 국가는 중국과 북한, 베트남, 쿠바.. 그 외 기타, 그외는 글쎄. 잘 모르겠군요. 중국은 자본주의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느낌도 엿보일 정도로 자본주의국가가 되었고, - 공산주의는 페이크라고 봐야 됩니다. - 베트남도 비슷한 거 같고 – 그래도 중국정도는 아닌 듯 싶긴 합니다. - 쿠바는 자본주의화 되진 않았고 국민들이 그렇게 불행하지 않은 그나마 공산주의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라고 생각되고, 북한은 중국과는 완전 반대의 느낌의 가짜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계급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공산주의 국가라고 봐야 될 건데..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제정체제의 국가로 보는 게 맞습니다. 봉건제처럼 귀족이 자신의 영지에 농노를 부리는 개념은 아니지만, 신흥 공산귀족이 하위계급인 평민과 노예위에서 지배하는 체제로 봐야 된다는 것이죠. 공산귀족과 평민은 순환되기도 하고, 가끔은 노예계층으로 볼 수 있는 정치범들으로 강등되긴 하지만, 최상위 지배자인 왕족 김씨들은 세습되는 체제. 이게 무슨 공산주의 국가인가요 ... 서평쓰다가 말도 안 되는 북한체제에 사족이 길어졌습니다... 여튼 이렇게 현재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거의 와해된 분위기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를 경계해야 한다는 – 공산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는 – 분들도 꽤 있는 듯 싶은데..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실패한 체제고, 실패한 원인도 분명하기 때문에, 순수한 공산주의는 성공하기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사회주의 개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습니다. - 이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한 자본주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고전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공산주의는 큰 변화가 없이 사회성원들의 욕구에 부응을 못해서 말아먹거나, 혹은 변형되고 비뚤어진 무늬만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한과 같은 처참한 꼴이 되었지만... 자본주의는 다양한 개선을 통하여 개량,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차 고전 자본주의 (완전한 자유자본주의)에서부터 폐해를 인식하고 수정한 2차, 2차의 보다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부분에 의하여 생긴 폐해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3차 신자유주의 경제,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말하는 4차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보면 맞습니다. 전 뭐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는 주의인데... 4차까지 갔으니.. 이젠 적당한 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1차 자유 -> 2차 평등 -> 3차 자유 -> 4차 평등... 이렇게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으로 생각됩니다만... 2차의 문제점을 4차에선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해 이 책은 원인과 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고등학생 때(80년대 중~ 90년대 말)는 영국의 대처수상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사가 범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2차 상황에 있던 영국의 문제를 신자유주의 적인 정책으로 해결한 대처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었던 상황이었죠... 이때는 전두환~김영삼 정권까지 가던 시절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것은 국민의 복지에 우선한다는 논조가 팽배한 시기였습니다. - 국민들의 생각보단 정부의 생각이라고 봐야 되겠죠 하지만,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다보니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부가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나눠주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라는 생각엔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뭐... 처음부터 국민의 복지와 경제발전을 병행하고 성공한 북유럽의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경제발전과 국부의 우선이라는 방법도 꼭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부만 쌓고, 부의 불균등의 심화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죠. 지금은 불균등 문제를 해결한 시기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세계의 상황은... 발전할 곳은 대충 다 발전했고, 환경위기에다, 자원들도 이리저리 많이 뽑아먹어서 꼭 필요한 자원들을 얻기 힘든 상황이 될 우려도 있고... 글로벌화와 로컬화라는 명제아래서 어떤 것을 선택할 건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명제 자체는 좋은데, 이 명제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논의가 많고. 미국서도 위기, 유럽서도 위기. 언제 현재의 균형이 깨질지 모르는 상황. 복잡한 상황입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기업들은 환경. 이라는 말만 나오면 두드러기를 느끼고,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가지게 됩니다. 즉 친환경이라는 것은 기업친화적이라기 보단 문제해결로 기억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방법을 다르게 하면 이것은 의무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민거리를 기회로 만들어서 진정한 지속가능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것이죠. 이 외에 여러 경제영역별로 생각할 수 있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지속적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길과 과거의 혁신과 앞으로 해야 할 혁신의 방법등..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방볍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활용하여 새로운 자본주의의 일면을 – 전체는 아닌 듯 싶고, 개념은 다양한 듯 싶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개념 중 일부인 듯 –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변화하는 사회와 비즈니스 환경에 대해 알고 준비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지침과 참고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