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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사유하고, 상상으로 표현하라
"철학으로 사유하고, 상상으로 표현하라" 내용보기
“어렵다”   철학이라 하였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마치 뜬구름을 잡는 양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을 어쩜 저리도 명료하게 학파마다 전개를 했던지, 약간은 허가 찔린 표정을 지으며 감탄하느라 그들의 생각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늘 놓치고는 했다. 어쩌면 이는 오늘날 철학이 외면당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그토록 중시하는 생산성에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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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철학이라 하였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마치 뜬구름을 잡는 양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을 어쩜 저리도 명료하게 학파마다 전개를 했던지, 약간은 허가 찔린 표정을 지으며 감탄하느라 그들의 생각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늘 놓치고는 했다. 어쩌면 이는 오늘날 철학이 외면당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그토록 중시하는 생산성에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듯해 보일 테니 단칼에 내치기에 딱 좋아 보인다. 무어가 됐건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인간의 습성과 닮은꼴을 하고 기업은 인간을 내쳤다. 생존을 부르짖으며 인간은 그런 세상이 적응을 해보고자 철학을 내쳤다.

 

그런데 철학이 그리도 쉽게 내칠 수 있는 무언가였던가.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상상으로 표현하라는 부제가 정확히 무얼 뜻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설렜다. 책이 실제로 수업을 하며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왠지 젊은 기운을 책으로부터 느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취해 지낼 때가 잦다. 굳이 새로움을 탐하려 들지 않는 건 다치지 않으려는 본능의 발현일 것이다. 자연스레 삶은 안정적인 무언가로 굳어져 갔다. 안정적이라 말하니 좋아 보이지만 실상 이는 무기력의 다른 표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모두는 죽음은 두려워하나 삶에 대해서는 질문치 않는 방식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 생을 살고 있는지를 묻지 않음으로써 죽음으로부터의 안전을 꿈꿨지만 외면은 정답이 아니었다. 행복하길 매순간 바라면서도 무엇이 행복인지 정의조차 하지 않는 인간이 어찌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철학은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였다. 어떻게 하면 삶이 보다 가치 있을 수 있으며, 삶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선 어찌 굴어야 하는지, 미흡하나마 인간은 철학하며 깨닫길 꿈꿔왔다.

 

저자의 수업은 불친절했다. 취업을 위한 사관학교 마냥 전락한 오늘날의 대학에서 가장 선호되는 수업은 이른바 족보가 내려오는 수업일 것이다. 매해 동일한 문제가 출제되기에 학습의 범주를 좁힐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학점 외의 스펙 쌓기에 투자할 수 있는 수업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저자의 수업은 그렇지가 못했다. 어디서 어떠한 문제가 출제될지 알 길이 없으므로 하나라도 더 받아 적을 수 있어야 마땅한데 저자는 아무것도 수업으로부터 배우려 들지 말라 말했다. 일전에 내가 들었던 수업 중 하나는 강의 내내 필기를 금했다. 정작 중요한 내용은 등한시 한 채 오로지 글씨를 쓰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것조차도 갑갑한데 아예 배우려 들지 말라니, 대체 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이내 난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마치 물 흐르듯 이야기는 이어졌고, 이야기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중간중간 학생들의 에세이가 등장했는데, 읽다 보니 이미 학생들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선언했더라면 다른 길은 쳐다도 안 보았을 것이다. 그것만을 외우는데 급급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렸을 것이다. 저자의 수업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대화에 임하는 소크라테스와 닮은꼴이었다.

그는 쾌락을 탐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래스로 이어지는 이성 중심의 서양 사유에 정확히 대치되는 사고를 전개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온갖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을 꿈꾸는 게 과연 죄일까. 결국 행복하길 기도하는 마음은 양자 모두 동일한데 세상은 그걸 주목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거 같기도 했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어찌 보면 참 쉬운데 달리 해석하면 난해했다. 사실 철학은 많은 부분 수학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 훌륭한 철학자들은 훌륭한 수학자이기도 했음을 잘 안다. 철학적 사유라 하는 것은 그렇다면 나와는 거리가 먼 무언가일까. 철학이 곧 수학이라면 수학 앞에서 곧잘 작아지곤 했던 나는 당연히 철학을 멀리 하려 안간힘을 써야 옳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철학은 수학이기도 하지만 수학이 아니기도 하니까. 자신만의 호흡으로 세상이 가르치려 하는 바를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행위는 결코 수학이란 작은 그릇에 가둘 수 없다. 철학은 그런 것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 너도 옳고 나도 옳다. 우리 모두는 다 철학 앞에서 옳다

이달의 사락 q*****2 2018.05.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