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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이라고 해서 나는 그저 상자와 걸친 에피소드나 그 안의 사연같은 것이라 상상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간의 추함이라는 것이 상자로 감춘다고 해서 과연 감추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
![]() <상자인간>
아베 고보 저, 송인선 역, 문예출판사.
제목도 완전 근사한 상자인간. 어릴때부터 숨는걸 좋아했더랬다. 집안에서는 구석진 공간이 있다면 그속에서 숨거나 자고 밖에 나가선 옥상이나 주로 물탱크창고에 많이 숨었더랬다. 숨어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간혹 어른들이 날 찾는다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더라고 잠시 귀를 막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도 진정이 된다. 잡히면 뒷감당이 좀 힘들었지만...
어른이 되어선,, 숨을 필요성이 없기때문에 간혹 집안에 텐트를 쳐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래서 조그만 텐트를 구입도 했었다. 상자도 매력적이라 생각을 하곤 했지만 실행한적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책이 나오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그것도 책 표지 깝데기?엔 이 작가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소개하고있다!
카프카! 급 땡기는 이름.
아베고보를 마니 듣긴 들었다만,, 그땐 관심이 전혀없었는데 카프카!란 이름에 급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 책도 궁금증을 계속 자극하기때문에 짧은 시간에 해치워버렸다. 마구마구 종이를 씹어대듯이 걸신들린듯 읽어나갔다.
<상자인간>을 다 읽은 느낌은.. 카프카 냄새가 물씬 풍기는거 맞다. 하지만, 구지 카프카에 비교를 한다면 카프카에 비해 많이 친절한 작가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작가가 지금 이 세상에 없다는게 마니 아쉽지만.. 노벨상을 줘도 아깝지 않을거 같은 작품이다.
골판지 상자안에서 모든걸 해결하고 상자에 난 구멍으로 세상을 엿보는 불안하고 고독해보이고 현대에서 뚝 떨어져 나간듯한 상자인간의 생활은 현대사회에서 인간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불안으로 엮인 심리상태들을 압축해 놓은 듯 하다.
어차피 인간이란게.. 모든것을 정확히 볼 수 있다는건 불가능하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것만 보고 믿고 싶은것만 보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과 결론을 유추해내는게 사실이자나.. 상자만 뒤짚어 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린 모두 각자의 상자를 뒤짚어 쓴채 세상속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랄라는 잠시 해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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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安部公房), 초현실주의적 수법을 통해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 등의 현대 사회의 문제를 심도있게 파고든 일본의 작가다. 몇 년 전에 접한 그의 작품 <모래의 여자(원제 砂の女)>는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듯한, 부조리하고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듯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고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얼마 전 그의 또 다른 작품 <상자인간(원제 箱男)>이 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꽤 반가운 일이다. 그의 주요 작품인 <모래의 여자>와 <타인의 얼굴>은 영화화되었다고 하니, 찾아서 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순차적으로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 읽을때는 꽤 혼란스럽지만 읽다 보면 적응이 된다. 상자인간 '나'의 기록에서부터 이 책은 출발한다. 뒤집어쓸 상자를 만드는 법, 남자 A가 상자인간이 된 계기, 카메라맨이었던 '나'의 사진들,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 병원의 가짜 상자인간, 마약중독 군의관과 그의 죽음, 소년 D와 여교사, 쇼팽이라는 별명의 남자 등 각 장들을 꿰뚫고 있는 공통의 테마는 상자인간, 바꿔 말하면 '시선의 권력'이다. 작품 속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하나의 흐름으로 모이지 않는 에피소드들은, 다면적이며 다의적인 상자인간의 초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가장 앞에 등장한 상자인간 '나'의, 상자 속에 빼곡히 적어내려간 기록이다. 상자 안에서 내다본 바깥의 광경이 아니라 모두 상자 안쪽의 낙서인 것이다. 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느끼는 탈락의 위협과 소속감의 부재를 풀어낸 문학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상자인간'은, 골판지 상자를 뒤집어쓴 채 도시를 배회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신분증명서나 직업이 없고, 일정한 곳에 거주하지 않으며 이름이나 연령 역시 타인에게 명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홈리스와는 다른 것이, 상자인간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생활공간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와, 열외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엿보기(覗き)'를 즐겨서, 상자에 뚫어놓은 엿보기용 창으로 세상을 내다볼 뿐 자신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시선의 권력이다. 불특정 다수는 상자인간 앞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자인간에게 어떤 사람이 말을 걸거나 하면, 그때마다 그는 엿보기 창의 갈라진 틈으로 잠자코 상대의 응시를 되받아친다. 그 방법에는 누구라도 찔끔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이 안에서 너를 보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입장이 되어 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여교사의 화장실을 훔쳐보다가 발각되어 벌로 여교사가 보는 곳에서 옷을 벗게 되고 자신의 추함을 느끼며 그만 사정(射精)해버린 소년의 에피소드 역시,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입장이 되는 것의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그에게 세상은 엿보기 창의 사각 프레임에 잡힌, 매번 새롭게 변하는 피사체이다. 어느 날 어깨에 공기총을 맞은 그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찾아간 병원의 간호사로부터 상자를 오만 엔에 팔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실은 그 상자를 갖고 싶어한 것이 간호사가 아니라 그 병원의 의사였던 것이 밝혀진다. 그 '가짜 상자인간'은 '진짜 상자인간'에게 간호사 히코를 빌미로, 새로운 거래를 제안한다. 그것은 그가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녀와 어떤 관계가 되건 무엇을 하건 간섭하지 않고 몰래 엿보기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을 '엿보는 입장'에 있었던 상자인간이 이제는 '보여지는 입장'이 된다. 또한 마약에 취한 군의관이 알몸으로 관장해달라고 하는 장면을 서술하는 남녀의 대화, 군의관의 죽음의 경위에 대한 공술서, 낙서와도 같은 형식의 짧은 글의 삽입은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액체처럼 일렁이며 서로 섞이는 듯한, 가짜와 진짜가 공존하는 듯한 지극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상자인간들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 번이라도 익명의 도시를 꿈꿔본 적이 있는 자라면 상자인간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익명의 도시란, 내가 사회적인 신분이나 이름을 가진 '나'로서 구별되어 인지되지 않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알몸의 추함을 알기 때문에 차단막 뒤에 숨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추함'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모습으로, 타인의 시선은 그러한 자신의 추함을 들키게 하기 때문에, 상자는 그러한 시선을 가려주는 방패가 된다. 그러한 익명의 자유로움 속에 놓이기를 선망하는 부류들이 바로 이 상자인간의 후보로서 자질이 농후하다고,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꽤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 나 역시 히키코모리나 사회부적응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갖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면, 불편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거나, 혹은 똑같이 상대의 눈을 응시하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쪽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미 훌륭한 상자인간 후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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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금지!' 표지를 보고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 문구이다. 한껏 고개를 숙인 한 남자, 작은 상자속에 커다란 몸을 웅크린 이 남자의 모습은 몇년전 유행했던 '좌절금지'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토록 힘겹고, 얼마나 힘들기에 작은 공간속에 자신의 몸을 꼭꼭 숨기려 하는 것일까? <상자인간>이란 독특한 제목도 인상적이다. 종종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하고, 어린 시절 로봇을 꿈꾸며 만들기도 했던, 최근에 노숙자들의 필수품처럼 되어버린 상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궁금증을 부풀리며 우리 곁을 찾아온다.
'이것은 상자인간에 관한 기록이다. 나는 지금, 이 기록을 상자 안에서 쓰기 시작한다.'
<상자인간>은 종이상자를 뒤집어쓰고 도시를 떠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왜 그래야하는지, 무슨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쓰여진다. 상자 안에서 쓰기 시작한 상자인간에 대한 기록!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상자를 만드는 법을 시작으로 현실이되고, 간혹 환상이 되었다가 꿈인듯, 독특한 구성을 띄며 이야기는 계속된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부랑자, 행려병자... 들에 대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나'의 시각속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도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작은 사진속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이 작품의 저자인 아베 고보는 일본 현대의 대표작가로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통해 인간 소외나 정체성의 상실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싶도 깊게 이야기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실존주의적 작품들로 인해서 그를 일본의 카프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낯선 작가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재미에 빠져 조금은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들을 즐기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까? <상자인간>이 왠지 무겁고 어렵다는 느낌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1973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40여년 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이제서야 국내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가벼움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평가가 어떨지, 초현실주의와 실존주의에 익숙치 않는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상자인간'이 되어 도시를 떠도는 전직 카메라맨, 그가 상자에 써놓은 내용들이 이야기하듯 책속에서 넘실거린다. 너무 독특한 작품이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상자라는 도구를 통해, 상자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려지는 이 시대의 모습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그려진다.
'나는 나의 추함을 잘 안다. 낯 두껍게 타인 앞에서 알몸을 드러낼 정도로 뻔뻔스럽지는 않다. 하긴 추한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니다. 인간은 99퍼센트가 덜떨어진 존재다. 인류는 털을 잃었기 때문에 의복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알몸의 추함을 자각해서 의복으로 감추려 했기 때문에 털이 퇴화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도 사라들이 어떻게든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눈의 부정확함과 착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 P. 119 -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상자인간>이 내포한 의미는 무엇일까? '상자인간'이란 말 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듯,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의미가 그 첫번째일 것이다. 더불어 사회에 구속받기 싫어하는 사람들, 그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삶 또한 '상자'속에 포함될 것이다. 또 어떤의미들이 숨겨져 있을까? 인간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굳이 상자를 뒤집어쓴 사람들, 또는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싶은 욕망, 그리고 전혀 다른 '나'를 찾아가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상자', '상자인간'속에 담아내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없이 추한 인간이란 존재, 그 존재의 욕망과 추함을 벗고 자유와 또 다른 삶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카프카 아베 고보의 이 작품을 통해 오랫만에 재미를 벗어난 '문학'을 만났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다소 난해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번이 아닌 몇번 손 위를 내려오고 나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베 고보의 '실종 3부작'이라 불리는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타인의 얼굴'이란 작품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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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인간
자신의 집이 될 상자를 만드는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뒤집어 쓰고 상자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용기를 내는 일인 것이다. 상자 인간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게 노숙자들이었다. 매스컴에서 노숙자들을 다루는 경우 대부분 상자를 집처럼 만들어 그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자주 봐온 터라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정말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등지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자 스스로 상자 속을 삶의 장소로 정한 사람들을 상자 인간이라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자 인간> 이라는 제목부터 사회와 합류하지 못하는 낙오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스스로 살아갈 상자를 뚝딱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서 겨우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내고 바깥을 내다보는 상자 인간. 표지의 사진부터 시작부분은 호기심이 많이 가는 책이었다.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잘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줄거리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싶기도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작가인 '아베 고보'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지만 책 읽기에 앞서 작가를 검색하면서 뉴욕타임즈가 뽑은 세계 10대 문제 작가라는 말과 살아있었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작가라는 말에 몇 번이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 읽어봤지만, 그리 만만하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책을 출간된 당시가 1973년 이었다는 사실이, 40여년이 지난 현실에 비추어 보면서, 지금도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만은 않다는 사실에 작가가 더 궁금해 지기도 하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갈수록 정리가 되고, 결론이 나고, 스토리가 눈에 그려지는 작품이 편안하고 읽기 좋아지는 내 자신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고, 조금 더 내 능력이 부족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이 책과 함께 '아베 고보'의 다른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결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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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인간’이란 상자 속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걸인이나, 부랑자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집이 아닌, 상자를 뒤집어 쓰고 밖을 볼 수 있는 시야만을 확보한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주의 깊게 지켜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정말 상자인간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자발적으로 상자인간으로 살고자 한 사람이 있다. 소설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화자인 나가 왜 자청해서 상자인간이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궁금하다. 이 궁금증은 왜 『상자인간』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인 아베 고보에게 묻는 것과 같다.
화자인 ‘나’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속에서 생활하는 남자다. 상자 안에 그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절대적인 물건들만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자이니, 다르게 말하자면 상자이외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상자인간은 상자 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 확보를 위한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해도 좋다.
상자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좀 더 세밀하게 볼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 한 복판 속에서 사람들은 상자인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극단적이지만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어떤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엔 친절하게 상자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누구나 원하면 상자인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소설엔 다양한 시선이 등장한다. 진짜 상자인간, 가짜 상자인간, 상자인간이 탄생되기 전 누군가를 훔쳐보기 위한 관음증에 해당하는 경우까지 말이다. 그건 결국 하나의 시선이자, 작가의 시선이었다.
상자인간에게 상자를 사러 접근한 간호사, 그 여자에게 상자를 사오라고 요구한 의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상자를 버릴지 말지 갈등하는 나와 그 상자를 원하는 의사. 같은 공간임에도 상자 속과 밖의 엄연하게 구분된다. 그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점이랄까.
나는 상자인간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과연 이 남자가 상자를 벗고 나올 수 있는지, 아니면 상자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지 말이다. 1973년 발표된 소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했나 보다. 놀랍게도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상자인간이 자신의 상자 속에 남긴 낙서임을 고백하다. 그러니까 소설 처음에 말한대로 상자인간이 상자 속에서 상자인간을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이하고 기발하지만 어려운 소설이라 하겠다. 실은 커다란 상자안에서 나를 의식하지 않은 상대를 지켜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구체적으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게 된다.
아베 고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상자라는 국한된 공간에서 소유는 무의미하다. 그러니 욕망이 부질없음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함으로 견뎌야 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누구나 때로 익명의 상자인간을 꿈꾸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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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소재!! 나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만드는 아베 코보의 내가 접하는 세번째 책이었다. 읽는 순간 온통 입안에 모래의 깔깔함이 느껴졌던 단연 1위의 책 <모래의 여자> 그리고 한 아이가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그가 얼굴의 붕대를 푼 순간 거머리가 꿈틀거렸다는 그 문장을 나는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었던 <타인의 얼굴> 이 두권의 책들을 읽고 아베 코보의 책들은 모두다 이런 독특한 소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 다음책을 만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역시나 이 <상자인간>의 소재 또한 독특하다. 다만. 이제는 더이상 더 많은 그의 책들을 접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는 1993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읽은 전작들보다는 조금 읽기가 힘들었다. 상자 속 인간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풍자는 좋았지만, 책에 조금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 나로 하여금 읽기에 버거웠다고 할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책 속 이 글을 쓴 주인공처럼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상자를 써보고 타인을 엿보고 싶어졌다. 엿보이게 하는 사람은 엿보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것처럼 말이다. 부랑자들처럼..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남아있는것이라고는 이러한 이상스런 기분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기록을 상자 안에서 쓰기 시작한다.
라고 글은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상자 만드는 법이 재료준비부터 설명되어 진다. 처음에 자신의 아파트 앞 상자인간이 그곳에 몇일간이나 거주하는 것을 목격한 후 그에게 공기총을 쏘고 남자는 자신에게 배달되어지고 잔재만 남은 상자박스를 개조해 자신이 들어갈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면서 상자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타인의 행동들을 상자인간으로서 그 안에서 엿보게 된다. 이 무슨 바보같은 행동일까. 싶다가도. 타인은 그의 행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음에도 상자인간은 타인을 엿본다. 우리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 의해 스스로를 규명하고 있는지. 현대사회에 나아가길 거부하는 사람들은 상자인간으로 되길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제일 마지막 뒷부분 이야기 때문에 오롯한 상자인간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상자를 쓰지 않아도. 우리들 중 몇몇은 이미 상자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다음의 아베 코보의 몇권 남은 책들도 곧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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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이란 것은 익명의 기부자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블로그에서 쓰는 닉네임은 내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름이다. 이 닉네임을 통해 난 또다른 사람으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네트워크 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상대도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나도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쓰는 글에는 나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있는 글들이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으로 나에 대해 전부 알 수는 없다. 물론 일부러 숨기는 것도 많지만. 꼭 필요한 정도만 공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익명으로 또다른 세상에서 살아갈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딪히는 현실과는 다른 편리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찌보면 얄팍한 관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정도로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처음부터 선을 긋고 시작한다는 느낌이랄까. 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시대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 작은 존재가 되어 간다. 사람과 사람이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몸을 숨기고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다.『상자인간』에 등장하는 남자가 상자속에 몸을 숨긴 것처럼 철저한 익명성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우리가 다른 것은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숨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네트워크에 연결한다는 점이다. 숨긴다는 것은 같지만, 아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숨기는 것과 존재는 드러내지만 다른 얼굴로 드러낸다는 차이점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화자는 남자임이 분명한데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연결되는지가 헷갈렸다고 할까.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서 상자인간이 된 한 남자. 그는 상자안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는 상자속에서 밖을 엿보는 것이다.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세계에서 고립시킨다고 할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보는 자이다. 그것도 엿보는 자이다. 그는 어느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상자속에 들어가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모두 버리고 세상에서 부유하는 존재랄까. 하지만 세상은 그를 보지 않는다. 보이지만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세상이 복잡해져서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것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 그래서 이 상자인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베 고보의 다른 작품인『타인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 뜬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면『상자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한 사람은 철저히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찌 보면 두 인간형 모두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네트워크 상에서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회 그리고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사회에서 자신을 열외인간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부분이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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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둔 상자는 자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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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 상자인간 조그마한 장소에 혼자 있으면 솔직히 갑갑하고 무서울때가 있다. 조금 커다란 공간이라면 모를까.... 이 상자인간이라는 제목을 보고선.. 뭘까? 했는데.... 말 그대로 상자안에 사는 인간이다. 상자안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 그게 가능할까?? 얼마나 불편할지.. 상상조차 안된다. 그런데 책 속에서 예를 든 A의 경우를 따라 읽어가다보니.... 왠지 한번은 써보고 싶단 생각은 든다. A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창 바로 아래 상자인간이 살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상자인간을 공기총으로 쏜다. 문제는 그 다음... 냉장고가 배송되어 왔는데 바로 상자가 있을것 아닌가.. 그곳에 들어가본다. 처음엔 호기심에.. 들어가보고 나이프로 구멍도 뚫고... 결국 A는 몇일만에 상자 인간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전직이 카메라맨이었던 상자인간은... 어느날 어깨에 총상을 입고 병원을 찾아가는데... 거기서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상자를 5만엔에 사겠다는 것이다. 새 상자도 아니고 사진이 쓰던 상자를.... 그리고 상자인간은 온갖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데, 그 부분부터 막 헷갈리기 시작한다. ![]() 책속에서 보면 상자인간의 상자 속이.. 참으로 기능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하니.. 어쩔수 없을 터.. 하지만 그들이 거기서 하는 행동은 단 하나.... 뚫어놓은 구멍으로 그냥 밖을 바라보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게 좋은거다. 책에서 상자인간은 노숙자를 비롯하여 세상에 소속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표현한다. 그래도.. 왜 하필 상자였을까??? 상의는 탈의해서 외출할 수 있지만, 하의는 탈의하면 참 부끄럽다. 그런 일환으로 오로지 다리 부분을 제외하고 얼굴을 비롯한 다른 부위를 가리고~ 눈만 내놓고 세상에 나오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는 뜻? 세상에 소속되고 싶진 않지만, 세상을 보고싶어 하는 그들의 상반된 마음을 드러내놓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이 전체적으로는 어려웠다. 진짜와 가짜의 헷갈림, 결국 노트를 적은 사람은 누구인지... 왜 책속의 주인공들은 상자에 그토록 애착하는지... 이해가 많이 힘들었다. 애착은 그래도 조금 나은편... 진짜 상자인간과 가짜 상자인간, 그리고 간호사 이야기는.. 끝까지 봐도.. 아직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된다는.. (나중에 다시 한번 봐야할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