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38%
  • 리뷰 총점6 12%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너는 내 작은 행운의 별!
"너는 내 작은 행운의 별!" 내용보기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문장과 함께 이어지는 전쟁 중에 겪은 허기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에 겪을 수 있는 허기의 종류에 배고픔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연보라색 집 앞에 마주한 에텔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종조부 솔리망 씨를
"너는 내 작은 행운의 별!" 내용보기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문장과 함께 이어지는 전쟁 중에 겪은 허기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에 겪을 수 있는 허기의 종류에 배고픔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연보라색 집 앞에 마주한 에텔이라는 소녀와 그녀의 종조부 솔리망 씨를 만나게 되었다. 에텔은 솔리망 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소녀다. 솔리망 씨에게 에텔의 존재는 불가항력이었다. 중산층의 부유한 집안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나고 있는 에텔의 존재를 높여주는 것은 오직 솔리망 씨 뿐이었다. 그래서 에텔에게 연보라색 집을 지어주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책의 끝에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억척스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한 젊은 여인을 기리며 이 이야기를 썼다.'는 말이 있다. 바로 저자의 어머니이며 전쟁과 가정의 파산 위기와 함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에텔의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에텔이 겪어내는 삶은 처절하고도 섬세했다. 종조부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유일한 친구였던 제니아의 가난을 부러워 할 정도로 철이 없었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했다. 솔리망 씨가 남겨 주었던 재산은 아버지가 모두 탕진해 버렸고, 어머니는 현실을 회피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불륜과 사업 실패로 원활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집이 파산하기 직전에 그녀가 나섰다.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삶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 모든 것에."

 

  솔리망 씨로부터 '넌 내 행운의 부적, 내 작은 행운의 별이란다.'란 말을 들은 에텔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다른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먼저는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고,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야했다.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줄기를 경험하면서도 이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에텔에게 현 상황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런 역사가 에텔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너무나 상세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엉킨 역사와 개인의 삶은 맞물리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역사, 그 안에 소소히 움직이는 에텔이 거대한 힘에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에텔이 무너져 버린 삶 위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은 어떠한 위로도 그녀를 달래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몸속을 관통하는 구덩이가 다음 날이면 사라질 거라 기대하며 잠들었지만, 눈을 뜨고 보면 상처는 여전히 커다랗기만 했다.' 라는 부분을 읽을 때 그녀가 얼마나 큰 위기 앞에서 혼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영국군과 미군의 포탄에 죽지 않았다. 대신 먹지 못해, 숨쉬지 못해, 자유롭지 못해, 꿈을 꾸지 못해 서서히,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도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에텔의 허기가 배고픔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그것과는 또 다른 허기'라는 도입부를 증명하고 있음을 알았다. 에텔의 허기에는 배고픔, 자유, 꿈, 생명, 사랑 등 인간의 욕구이자 당시에 그녀에게 필요했던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는 갈망이었다.

 

  그럼에도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 속의 그녀에게 희망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세월이 흐른 뒤에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역경을 이겨낸 보상이 있었다. 센 강을 보며 '강물은 역사를 씻어낸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물은 육신들을 사라지게 하고, 강비탈에 있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주 오래 머물지 못한다.' 라고 되뇔 수 있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로 머무르지 않고 유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 삶에 뛰어들어야 했던 부딪힘으로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한국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녹아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 했지만, 오히려 당시의 문화가 잘 녹아 있는 프랑스적인 면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 본 기분이다. 어휘라든가 당시의 살롱 문화, 전쟁, 문화를 저자의 펜 끝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한 것 같다. 교차적으로 변화는 흐름 속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한 문체의 매력을 만끽했다. <성스러운 세 도시>로 저자와 처음으로 만났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워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왜 노벨문학상을 수상 할 수 있었는지 온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허기를 바탕으로 이어진 이야기 속에는 삶을 충실히 살아내고자 했던 한 여인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초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녀를 통해 삶에 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솔리망 씨가 에텔에게 부어주었던 깊은 애정을, 어쩌면 저자는 독자 개개인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s****m 2011.01.04.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기의 간주곡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지나간 어린 시절은 순진무구하고 투정부리며 응석을 부렸음직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시대나 사회가 처해져 있는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 포연과 신음으로 보인다면 어른이 되어선 마음의 트라우마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거 같다. 프랑스의 소녀 에텔은 1920년대 대공황이 오고 세계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가고 이야기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지나간 어린 시절은 순진무구하고 투정부리며 응석을 부렸음직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시대나 사회가 처해져 있는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 포연과 신음으로 보인다면 어른이 되어선 마음의 트라우마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거 같다.

 프랑스의 소녀 에텔은 1920년대 대공황이 오고 세계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가고 이야기는 전개된다.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고 사랑을 듬뿍 받지도 못했지만 증조부의 자애롭고 따뜻한 얘기를 들으며 그나마 전쟁의 참화를 잠시 잊는듯 하다.초등학교 시절 무렵,리투아니아에서 이민 온 제니아와의 만남은 우정이라는 새싹을 트우게 하는데 제니아는 에텔을 만나면서 생활고,자신과 언니의 가난을,가족의 비참한 생활을 잊고 벗이 생겼다는 설레임과 환희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 허기는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는 동물적인 본능이 아님을 알게 된다.부모님으로부터 못받은 사랑,전화의 와중에 살아 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에텔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그리움을 잊지 못하는거 같다.그리고 그러한 유년 시절의 굶주린 정신적 상처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유년 시절의 정신적인 허기증상이 없었더라면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했고 이 소설은 증조부 솔리망과의 희미한 추억으로만 끝날 것이다.

 증조부 솔리망의 타계로 에텔은 어느덧 성년을 맞이하고 지긋지긋한 전화도 종언에 가까워지며 새로운 인생,삶을 찾기 위해 현실에 맞서 싸우고 쟁취하며 신지평을 바라보며 이국으로 이동하려 한다.그녀가 생각하는 허기는 또한 이미 만들어졌고 만들어지려는 보이지 않는 구멍을 채워나가려 함을 알게 된다.또한 에텔의 성격상 현재 발생하는 일들을 늘 뒤늦게 알아차리고 한참 지난 과거가 되었을때야 겨우 간파하고 기억하며 알아차린다.그것은 유년 시절의 제니아,로랑 펠드,부모님의 냉랭한 모습,모드와의 관계등이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인거처럼 보인다.

 인간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없이 풍요로운 환경과 사회 속에서 자라고 성장한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에텔마냥 증조부와의 달콤한 추억이 전쟁 참화,남같은 부모님의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에텔은 자만심,교만,고통받고 버림받으며 배신마저 당했다는 자괴심등을 느꼈기에 실존적 삶을 향하여 또 다른 미지로 다가가려함을 느끼게 된다.한 사람을 보면서 진정으로 한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는 개인의 이력과 생각,체험담등을 경청하고 보듬어 갈 줄 아는 아량이 넓은 관점을 갖어야 함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j******6 2011.01.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기의 간주곡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자본주의와 파시즘에 관련된 책인 도롱뇽과의 전쟁 읽은 직후 허기의 간주곡을 읽었다. 뭔가 도롱뇽과의 전쟁과 공통된 부분을 찾아서 반가웠었다.   p 112 "알아요. 하지만 한심한 잡담이랑 험담들뿐인걸! 타이태닉 호가 침몰했을 때 그 배의 휴게실에서도 분명여기 이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소리들을 떠들어대고 있었을 거예요!"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때 사람들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자본주의와 파시즘에 관련된 책인 도롱뇽과의 전쟁 읽은 직후 허기의 간주곡을 읽었다. 뭔가 도롱뇽과의 전쟁과 공통된 부분을 찾아서 반가웠었다.

 

p 112

"알아요. 하지만 한심한 잡담이랑 험담들뿐인걸! 타이태닉 호가 침몰했을 때 그 배의 휴게실에서도 분명여기 이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소리들을 떠들어대고 있었을 거예요!"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때 사람들은 타이태닉 호가 침몰 되는 순간에 휴게실에서 떠들었을 법한 소리들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침몰해 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채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의 한심한 대화처럼 서로의 주장만을 앞세워 떠들고 있다. 에텔의 친척들 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다. 자신이 침몰되 가는 줄도 모르고, 자존심만 세우려는 내 자신을 봐도 그러하다.   

 

 서평에 볼레로에 관련된 서평이 많길래 볼레로를 들어 봤다. 아주 익숙한 음악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듯한, 점점 몰입하게 되는 볼레로처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급하게 음식물을 입안에 넣는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을 그렇게 강렬하게 흡입했다. 

 

 말아 드시는데 선수이신 에텔의 아버지, 자존심 강해서 허겁지겁 하실것 같지 않으신 에텔의 어머니, 그리고 허기 속에서도 당당한 우리의 에텔을 통해 소설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허기 속에서 강렬하게 꿈을 꾸다 그녀도 결국은 다른 여성들과 다름 없어지는 에텔의 친구까지…… 모든 허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어도 뭔가 허기가 다 채워지질 않는다. 분명 다른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들은 바로 옮긴이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읽었던 에텔과 그 주변인들의 허기의 간주곡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아마 옮긴이의 말을 읽지 않는다면 그냥 소설 내용만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그 모든 허기를 비로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생각들로 채운다면 두둑히 허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늦은 밤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허기의 간주곡을 꼭 읽어 보시길…… 딱 맞는 요깃거리가 될것이다.



n*******a 2011.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답고 찬란한 삶을 위하여-
"아름답고 찬란한 삶을 위하여-" 내용보기
갸냘프고 여린 한 소녀의 이야기다. 허기를 모르는, 어쩌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허기를 갈망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에게 있어 치명적인 것은 시간, 역사, 삶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시간은 육체를 좀먹이기엔 최적합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독소이다. 찬란하고 거대한 건물에서 점점 초라하고 볼품없는 집까지. 그녀에겐 모든 것이 견
"아름답고 찬란한 삶을 위하여-" 내용보기

갸냘프고 여린 한 소녀의 이야기다.

허기를 모르는, 어쩌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허기를 갈망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에게 있어 치명적인 것은 시간, 역사, 삶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시간은 육체를 좀먹이기엔 최적합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독소이다. 찬란하고 거대한 건물에서 점점 초라하고 볼품없는 집까지.

그녀에겐 모든 것이 견뎌야할 장애물이며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원동력이다.

시간이, 역사가, 삶이 이 모든 것을 아우르게 만드는....

 

결국 한 소녀는 현실과 역사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도 삶은 한 번뿐.

 

 

인생은 어쩌면 단 한 번뿐인 삶이라 더욱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처럼..

k******o 2011.01.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허기에 대하여 [허기의 간주곡]
"모든 허기에 대하여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한국에서 썼다. 그의 어머니를 모델로 썼다. 는 이야기만으로도 너무나 호기심이 이는 소설이었다.그러나 그러한 타이틀을 넘는 무언가의 내용이 있었다. 전쟁이 개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청춘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인생 그대로를 안아주고싶은 어떤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손녀 에텔. 좋은 집안에서 자란 그
"모든 허기에 대하여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한국에서 썼다. 그의 어머니를 모델로 썼다. 는 이야기만으로도 너무나 호기심이 이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타이틀을 넘는 무언가의 내용이 있었다. 전쟁이 개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청춘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인생 그대로를 안아주고싶은 어떤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손녀 에텔. 좋은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동경하는 러시아 출신 친구는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고, 세파에 찌들어버린 아름다운 소녀다. 따뜻한 집과, 화려한 옷이 있던 시절의 어린 에텔은 그 친구를 동경하고 사랑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집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연보라색 유년시절은 작게는 아버지에 의해, 크게는 전쟁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버리고 만다. 감성이 예민했던 그녀의 귀에 들어오는 살롱의 의미 없는 대화들. 현실적이지 않고, 말뿐이며, 허기라고는 몰라서 기억할 것이 없는 대화들을 그녀는 기록한다. 그녀가 커갈수록 그 기록은 선연히 분노의 색채를 띤다. 

그리고 이제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무기력한 부모를 짐처럼 가진 그녀의 선택은 바로 ’모든 것을 똑바로 주시하는 것’이다. 때로 부모의 못난 점에 화가 치밀어 따가운 말을 뱉고, 시니컬하게 응대하지만, 그럼에도 먹고 살기 위해 다 시들고 곰팡이핀 채소를 얻으러 다니고, 짐을 싸고, 운전을 한다. 어느 순간 부모에 대한 연민에, 다시 생(生)을 끌어안고 마는 것이다.

그녀를 이해하는 남자를 사랑하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그녀의 모습은 세계에 자기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는듯 하다. 이전의 온실 속 화초와 다른 모습. 세계를 담아내고 이해하는 그녀의 모습. 책에는 그 애틋하지만 멋진 성장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특히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모드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의연한 ’여성’의 모습이다. 끝내 아버지와의 일은 묻지 않지만 그녀라는 인간 자체의 삶을 나름대로 반추해보고 긍정하는 것이다. 그녀의 화려했던 시절과, 그 때의 생각과, 그리고 지금 그녀의 초라한 모습. 모드의 인생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에텔은 더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닌 것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저 다치거나 죽는 차원이 아니었다. 미시적이지만 송두리째 한 일가의 생활을 바꿔놓은 전쟁. 어떻게 보면 그건 거대한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다면 그건 기억할 것이 없는 것이다. 허기 특유의 간절함은 특별한 기억과 계기를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인생을 긍정하는 힘이며, 다음 시간을 살게 하는 힘이다. 

작은 소녀가 바람구두를 신은 여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메마르고 간절한 허기의 간주곡이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울린 것만 같다.
p*********y 2011.01.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 소녀의 성장기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 소녀의 성장기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내용보기
“어린 시절엔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배가 불러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배고픔이 잊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상은 나도 모르게 현실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충족시키는 훈련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것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기택 시인. “[ESSAY] '배고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 소녀의 성장기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내용보기

“어린 시절엔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배가 불러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배고픔이 잊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상은 나도 모르게 현실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충족시키는 훈련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것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기택 시인. “[ESSAY] '배고픔'에도 맛이 있었던 것 같다” - 조선일보 2010.10.07.)


 

종종 보릿고개를 겪은 어르신들의 추억담을 듣곤 한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던 그 시대를 겪어왔던 그분들에게 그 당시에는 배고픔이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오늘날 돌이켜보면 배고픔(虛飢)의 고통이 오히려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배고픔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자신을 시인이 되게 하였다는 김기택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너무 흔해 배고픔은 옛말이 되었다고 하지만 방학 중 굶는 결식아동이 한 해 22 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배고픔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무상급식 논쟁을 보면서 어처구니없던 것이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고 받아들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가난과 배고픔을 겪어온 어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만은 그런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에서였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자라나는 너희들도 어른들을 본받아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은 배고픔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전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말일 것이다. 서두부터 배고픔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의 <허기의 간주곡(원제 Ritournelle De La Faim /문학동네/2010년 12월)>을 읽고 책에서 말하는 “허기”의 의미가 분명치 않아 인터넷을 검색했다가 “결식아동”과 “무상급식”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괜한 감상(感想)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이 책은 시대적 격변기였던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한 소녀의 성장과정을 그려낸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의 소녀였던 “에텔”은 부모의 불화로 결코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했던 종조부 “솔리망”의 보살핌으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러시아 망명자의 딸이었던 “제니아”를 만나게 되면서 우정의 소중함과 함께 제니아가 겪는 배고픔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열세 살이 되던 해 종조부 솔리망의 죽음을 겪으면서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에텔에게 남겨진 종조부의 유산을 탕진해버리면서 에텔의 삶 또한 평온함을 점차 상실해 간다. 한편 어린 시절 자신의 집 “살롱”모임에 드나들던 영국 청년 “로랑 펠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에텔은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파리로 진군한 나치를 피해 에텔과 그의 부모는 “니스”로 피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쟁의 상흔과 곤궁을 몸소 겪어나가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피난처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의 정부(情婦)이자 불화의 근원이었던 “모드”는 더 이상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고, 연인 로랑과는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만남을 이어간다. 어느덧 긴 전쟁은 끝이 나고 로랑과 결혼한 에텔은 파리에서의 신혼생활을 보내던 중 니스에 머물러 있던 아버지의 부음(訃音)을 듣게 된다. 에텔은 홀로 남은 어머니에게 파리에서 같이 살자고 권유하지만 어머니는 니스에 남기로 한다. 전쟁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온 몸으로 견뎌온 에텔은 이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시대를 살아간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해 썼다는 이 소설은 첫 느낌이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에텔의 친구 제니아의 등장이 “데미안”처럼 에텔의 삶을 이끌어나갈 계기가 되겠거니 했는데 제니아는 유년시절 잠시 잠깐의 우정으로만 남게 되면서 <데미안>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텔의 성장을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전 유럽에 몰아닥친 시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온했던 삶이 종조부의 죽음과 아버지의 파산, 그리고 전쟁에 휩싸이면서 급변하게 되고, 결국 에텔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고난의 삶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겪은 온갖 역경 -여기에서는 “허기”로 표현된다 - 들은 그저 고통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허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 했을 것이다. - P. 312

 

즉 에텔에게 “허기”는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장치이자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셈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배고픔의 고통을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승화시킨 어르신들이나 시적 상상력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던 김기택 시인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술되지 않았지만 그 후 에텔의 삶 속에서 그녀가 겪게 될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의 시간들도 그녀가 겪어온 “허기”의 기억으로 잘 이겨냈을 거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어찌 보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그동안의 소설이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 도 있지만 한 여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 시대 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 솜씨가 역시나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2차 세계 대전 전후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명이나 지명, 사건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다 보니 주인공이 겪게 되는 온갖 고난과 심적 변화에 대해 충분한 공감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추후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고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책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지금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내 생각은 그들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랄 것 -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도 이겨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 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도록 보살피고 지원하는 것이 맞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부(富)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극명하게 나뉘는 이런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龍)난다”라는 속담이 유효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꿈마저 잃어 버리는 그런 참담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허기"라는 책 제목 때문에 괜한 생각까지 해본다^^



a*****7 2011.02.2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빛과 생명으로 폭발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빛과 생명으로 폭발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용보기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에 대한 얘기가 아니지만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미뤄둔다 해서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적절한 순간은 오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그냥 먼저 쓰고 싶은 얘기를 숨길 수밖에. 평화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평화는 얼마나 나른하고 풍요로운지, 달콤한 미래가 예정된 수순임을 잘 아는 이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풍요로운 평화는 그다지 논할 것이 못될 뿐더러
"빛과 생명으로 폭발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용보기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에 대한 얘기가 아니지만 이 책에 대한 얘기를 미뤄둔다 해서 더 멋지게 할 수 있을 적절한 순간은 오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그냥 먼저 쓰고 싶은 얘기를 숨길 수밖에. 평화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평화는 얼마나 나른하고 풍요로운지, 달콤한 미래가 예정된 수순임을 잘 아는 이들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풍요로운 평화는 그다지 논할 것이 못될 뿐더러 재미도 없었다. 관심가진 건 사람들의 불행이었다. 개인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타락보다도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돌아갈 시기를 놓치고 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타락 같은 것. 어떻게 살더라도 스스로에게 부여할 정당성은 필요한 법이다. 그 때문이었다. 원하지 않으나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이야기를 좋아한 것은. 그건 주로 전쟁이나 테러조직, 스파이나 출생의 비밀 같은 소재들로 귀결되었다. 여느 이야기에 한 번 이상씩 등장할 법한. 

 

   
  이제 에텔은 그 모든 어리석은 짓거리들의 목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문 뒤에서 엿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살롱의 대화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디는 화제들이었으니까. 처음에는 불가사의한 신도송처럼 지명과 회사 이름들이 등장하더니, 그에 대한 설명들이 뒤를 따랐다. 통킹 지역 개발, 프리토리아에 있는 다이아몬드 세공 공장, 상파울루의 부동산 투자, 카메룬과 오리노코 지역의 희귀종 수목, 포트사이드, 부에노스아이레스, 니제르 만곡부의 항만 건설, 그녀는 이것저것 묻고 싶었을 것이다. 관심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알렉상드르는 열을 올리며 말했다. 그 이름들이 꿈의 열쇠인 양, 그것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양 발음했다. 그는 자신이 모험의 출발선상에 있다고 믿었다. 진보, 과학, 결제 번영이라는 미래를 신봉했다. (pp.160~161)  
   

 

에텔이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곤 했던 아버지의 살롱 또한 시대의 마지막 전초전이었다. 전쟁의 그림자라곤 발끝에도 미치지 않는 평온하게 아른거리던 일상의 행복은 달콤하다고 깨닫지 못한 순간에 이미 저만치 물러나고 있다. 엄마의 외삼촌 솔리망 씨의 연보라색 집에 대한 로망은 그를 잘 따르던 에텔의 꿈이기도 했다. 웃음과 기쁨 그리고 환희로 가득찰 연보라색 집은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종착역이었다. 솔리망 씨의 죽음에도 에텔은 여전히 연보라색 집의 환상을 놓지 않는다. 그즈음 살롱에서 일어나는 여전히 겉도는 어른들의 대화는 지루한 일상 이상이 되지 못한다. 부잣집 외동딸로 조심스레 자란 에텔이 자신과는 정반대의 제니아를 만나기 전까진.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지기 전까진.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어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독일로 도망갔다 마침내 프랑스로 와 이 음울하고 차가운 도시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하루하루 연명해나가는 삶. 만약 제니아에게, 제니아의 어린 시절에, 그녀가 살아온 삶의 매 순간에 그런 신비로움이 없었더라면 에텔이 그녀를 그처럼 살아할 수 있었을까? 에텔은 자신의 감정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그런 허점을 안고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글너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기실 그런 환상들을 양분으로 자라나는 걸까? 제니아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과연 불순한 걸까? 때때로 그녀는 자신이 품은 환상이 노리개가, 혹은 슬픔과 조롱, 냉소와 순진함을 번갈아 오가는 그 소녀의 노리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제니아가 에텔과의 관계를 마치 게임하듯 지배하고 조종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건 점차 분명해졌다. 어느 날 오후 제니아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파괴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언니 마리나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자 그녀는 그처럼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을 후회하듯 에텔을 쌀쌀맞게 대했다. 그녀는 에텔과 단둘이 있지 않으려 했고, 다른 여자아이와 팔짱을 끼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안이 벙벙해진 에텔은 자기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아니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벌을 받는 걸까 자문했다. (pp.46~47)

해변은 더없이 고요했고, 수킬로미터까지 인적이 없었다. 따끔거리는 소나무 잎 카펫 위에서 그들은 젖은 수영복을 벗지도 않고 사랑을 나눴다. 아니,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시늉을 했다는 편이 맞으리라. 하얀 수영복 속의 음푹 팬 에텔의 성기에 맞댄, 검은 천 안에서 딱딱해진 로랑의 성기, 그것은 처음에는 천천히, 느릿느릿 진행되다가 점점 더 빨라지는 춤이었다. (중략) 그들은 심장이 단속적으로 두근거리는 소리를, 폐가 헐떡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에텔이 먼저, 그리고 이어서 로랑이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로랑은 이내 에텔의 몸에서 내려와, 뜨거운 별모양이 천천히 번져가는 자신의 수영복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그녀 옆에 누웠다.   

로랑은 말없이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곧 사과할 게 분명했다. 언제나처럼 서툴게, 부끄러워하다시피 하면서. 하지만 에텔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몸을 굴려 로랑의 몸 위로 올라가 자신의 온 무게를 그를 짓눌렀다. 그녀의 이 사이에서 모래가 서걱거렸고, 얼굴은 검은 해초더미 같은 머리칼에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키스했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어떤 말도, 단 한마디도 발음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랑해라든가 그 비슷한 말은 절대로 안 됐다. 

 

(중략) 그리고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각자 자신의 좁은 침대에서 새 시트를 덮고, 등과 다리에 달라붙은 뜨거운 모래 알갱이들, 그들의 배꼽 안에 단단하게 엉겨붙은 작은 모래 덩어리는 그대로 내버려둔 채. (pp.193~195)

 

어린 날의 나른은 우정과 사랑처럼 불분명한 관계들이 에텔을 견디게 했다. 당연한 것들과 차례차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젊은 날과도 서서히 이별을 고했다. 제니아는 뚱뚱하고 돈많은 남자와 약혼을 했고, 로랑은 파리 북역의 플랫폼에서 군복을 입은 채 에텔의 곁을 떠났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은 본인들의 좋은 시절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에 슬퍼할 줄만 알았지, 아무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고작 어제를 붙잡고 있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텔은 현실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점점 냉소적이고 단단한 여인이 되어갔다. 독일군 폭격기의 공격이나 폭탄 세례에 배가 갈라진 차량을 보며 울기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쇼팽의 <야상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시간은 좋은 줄 모르고 누리고 살았던 과거의 모든 시간에 대한 작별인사였다. 전쟁의 폭풍은 온갖 것에 파편을 남긴다. 전쟁이 끝나면 로랑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계획으로 가득했지만 희망은 점점 불만과 체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너무 늦었다. 현실의 거센 바람이 곧 휩쓸어가버릴 이 조난 뗏목의 가장자리에서. 이미 떠날 채비를 마치고 꾸려놓은 트렁크들, 끈으로 묶은 종이상자들, 일관성 없는 상황의 흐름에 따라 해빙처럼 떠다니는 물건들, 이 잔해들의 한가운데서. 허위 보도, 기만적인 공식성명, 프로파간다로 가득한 기사들, 이방인들에 대한 증오와 스파이들에 대한 경계심, 편협한 험담, 허기와 공허, 부재한 사랑과 자존심의 혼돈 속에서. (pp.209~210)

 
   

 

꿈은 변해간다. 에텔은 변해갔다. 여리고 나른하고 수줍었던 소녀는 점점 실존적이고 현실적인 여자로 성장했다. 시간 곳곳에 허기가 깃들던 전쟁의 시대였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는 시절이었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 울어야 옳은 시간들이었다. 과거의 풍요와 나른을 꿈꾸며 숨을 죽였던 어른들은 하나둘 죽어가거나 몸을 숨겼다. 공포와 비극이 끝났어도 그것들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을 뚫고 들어와 한바탕 헤집어놓고 가버린 시련의 시간들은 에텔의 자유 또한 보장 못했다. 그녀는 정말로 가족을 떠나 자신의 일생을 살고 싶었지만 끝내 그럴 수 있는 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할지 모를 고난 속 고요함은 허기졌고, 벗어날 수 없었다. 다시 듣는 <볼레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듣던 그 <볼레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달라졌다. 병든 세계의 역사는 겪어낸 이들의 마음 깊숙이 들어와 또다른 허상의 허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인간의 생명력은 어두운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신기한 보석이었으니까. 

 

오늘날의 센 강은 틀림없이 1942년 7월의 센 강과 똑같은 모습이리라. 어쩌면 레오노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 경기장을 향해 호송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살 사이로 저 강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강물은 역사를 씻어낸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물은 육신들을 사라지게 하고, 강비탈에 있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주 오래 머물지 못한다.  

 

(중략) 저기 강 맞은편, 열기로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라 플라트 포름의 비현실적인 모습이 보인다. 그 크고 높은 건물들을, 해질 무렵의 하늘에 대비되어 검은 묘석 같은 건물들을 바라본다. 중심부에 위치한, 머리도 눈도 없는 비현실적인 건물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나는 더 멀리 갈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사라진 사람들의 역사, 그것은 바로 여기에 뿌리내렸다, 영원히. (pp.303~304) 

 

"뭘 찾으세요?" 

 

우린 뭘 찾기 위해 허기진 이 세상을 배회하는 걸까. 가만히 귀기울인다. 강물 흐르는 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는 일치되지 않는다. 지금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이 마지막까지 갈 리 없고, 간다해도 반드시 행복일 리 없다. 뭘 찾기 위해 세상은 이리도 시끄러운지, 두렵다. 돌아보지 않고 뛰는 사람들은 그것대로, 높이 올라가기 위해 소통과 담 쌓는 이들은 또 그것대로, 뭘 위해 다들, 무엇을 찾기 위해 다들 그렇게 바삐 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침묵에도 멜로디가 있다는 걸 이 소설이 알려주었다. 르 클레지오는 문장을 빚어내는 노벨문학상 작가는 아니었으나 침묵을 참고 참아서 더 큰 울림으로 폭발시키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에텔에게 부여한 여자로서의 생명력. 가족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접는 희생정신이야 말로 오늘날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본래 삶은 어두울 수록 더 강렬하고 아름다운 법 아니던가. 전쟁의 포화, 되돌아오는 치욕, 희생된 이들에 대한 경의,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양심. 이것들은 내가 아니라 주르날 뒤 디망슈라는 프랑스 언론에서 쓴 추천사다. 나는 그저 다시 한 번 <볼레로>를 들을 뿐이다. 

s*****d 2011.02.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기의 간주곡.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에텔의 종조부 솔리망 씨가 죽지 않았다면 이 책은 한 편의 동화처럼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보라색의 집을 짓는 상상을 하면서도 에텔은 행복했으니까. 꽤 오래 이곳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종조부 솔리망은 유일하게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그것은 삶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다가왔기에 그리 아름답게
"허기의 간주곡." 내용보기

에텔의 종조부 솔리망 씨가 죽지 않았다면 이 책은 한 편의 동화처럼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보라색의 집을 짓는 상상을 하면서도 에텔은 행복했으니까. 꽤 오래 이곳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종조부 솔리망은 유일하게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그것은 삶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다가왔기에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에텔의 모습에 안도하게 되었다고 할까. 때문에 그녀의 사랑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니스와의 위험스러운 우정에 더 긴장감을 느꼈다.

 

에텔은 어린 시절 제니스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제니스에게 색다른 관심을 가진 것일까. 사랑?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니스와의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는 에텔을 보면서 이건 사랑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지고 점점 여성스러워지는 제니스를 보는 것에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솔리망 씨가 살아있었을 때 에텔은 자신의 감정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부모의 불화, 불안정한 세상에 불안을 느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솔리망 씨의 죽음은 에텔의 한 부분을 앗아가 버린다. 그 중에 하나가 세월이다. 솔리망 씨가 죽은 후 그에게 재산을 상속받은 에텔이 이 모든 재산을 아버지 알렉상드르가 탕진하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의 포화속에 놓여진 에텔에게 작은 희망마저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어린 소녀였던 에텔이 단숨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현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제니스와 함께 했던 어린 날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되돌아 보기엔 이마저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로 삶은 가혹하다. 이런 중에 에텔에게 찾아온 사랑은 마음의 안정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이 사랑이라도 없었다면 에텔이 너무 가여워진다.

 

에텔의 어머니 쥐스틴은 수동적인 여성으로 에텔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알렉상드르와 잦은 다툼을 하면서도 남편이 에텔이 물려 받은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묵과하고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또한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을 때 그 재산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모두 에텔에게 시련만 안겨줄 뿐이다. 전쟁도 에텔에게는 절망만 안겨줄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 쥐스틴처럼 모든 것에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면 이 책의 결말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는 에텔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삶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성임에도 여성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 '황금물고기'에서도 감탄한 일인데 어째 여자인 나보다도 더 이렇게 감성적으로 쓸 수 있는지 놀랍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에텔이 겪은 일이 아주 힘들고 불행한 일임에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이 이 책을 한 편의 서정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처한 불행한 운명에 함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함에도 한 편의 동화가 행복하게 마무리 될 것처럼 모든 일이 잘 될 것처럼 안심하게 된다. '황금 물고기'에 등장한 주인공 라일라가 이 '허기의 간주곡' 책 제목에 더 잘 어울리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역경을 이겨낸 라일라 역시 그다지 비참한 모습으로 기억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에텔과 라일라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y*****6 2011.01.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파리에 떠도는 침묵
"파리에 떠도는 침묵" 내용보기
개인의 운명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아니다. 별수 없이 개인의 운명에 침투해 들어가는 역사의 크나큰 횡포(?)는 숱한 문학 작품 속에서 반복되어 그려져 왔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저항, 좌절, 냉소, 자포자기 등 각기 다른 형태로 역사의 횡포와 맞서 왔고, 그 누구도 그 영향을 비켜가지는 못 한다. 개인의 운명에 장난을 치는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전쟁과 개인의 관계만큼 불공평하
"파리에 떠도는 침묵" 내용보기

개인의 운명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아니다. 별수 없이 개인의 운명에 침투해 들어가는 역사의 크나큰 횡포(?)는 숱한 문학 작품 속에서 반복되어 그려져 왔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저항, 좌절, 냉소, 자포자기 등 각기 다른 형태로 역사의 횡포와 맞서 왔고, 그 누구도 그 영향을 비켜가지는 못 한다. 개인의 운명에 장난을 치는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전쟁과 개인의 관계만큼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것은 없다. 일방적으로 닥쳐 오는 폭력과 같은 휘몰아침에 소리 한 번 못 내보고 휩쓸려 가는 부조리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은 전쟁이라는 환경 속에 내던져진 한 개인의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개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개인의 운명 속에 역사의 횡포를 함의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의 문체는 다분히 회화적이다. 전쟁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동화 같은 연보라색 집을 꿈꾸고 완벽한 우정을 갈망하는 것이 전부인 한 여인의 삶에 투사된 전쟁의 모습은 치열하기 보다 시리고 또 아리다. 소설에는 전시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무수한 명사구의 나열로 치열한 전시상황을 대신하고 명단이나 법령 따위의 의미 없는 인용을 활용하면서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는 역사적 리얼리티에서 한발짝 물러나 에텔의 삶에 집중한다. 에텔의 유년기에서부터 강인한 숙녀로 성장하는 동안 안온했던 삶을 뒤흔들어 놓았던 역사의 횡포를 포착해나갈 뿐이다. '파리에 떠도는 침묵'이라는 한 구절 속에 험난해질 파리의 정세와 에텔의 운명을 함축해 놓고 격정적으로 휘몰아칠 앞날을 예비한다.

 

인물의 변화해 가는 운명이 소설을 지탱하는만큼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은 다르다. 벨 에포크 시대에 평화로운 파리의 한 저택에서 일상을 지내는 브루주아 소녀 에텔의 일상은 평온하다 못해 나른하다. 의미 없는 수다, 긴박감이라고는 없는 정치에 대한 토론, 권태를 상쇄시키기 위한 작은 음악회. 그러나 이 풍요로움조차 에텔에게는 충만한 행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무렵 에텔은 연보라색 집에 대한 환상과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치열한 생을 겪고 있는 제니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통해 나른한 권태로 인한 허기를 달랜다. 그러나 경제적인 몰락과 가정의 붕괴를 차례차례 겪어가는 동안 유년의 추억은 하나 둘 사라진다. 환경은 꽃밭의 꽃처럼 길들어져 온 에텔을 강인하게 훈련시켜 왔고, 아버지의 오랜 연인으로 자신의 유년을 불행하게 했던 늙은 여가수 모드에게조차 동정을 가질 정도로 강인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강인해진 에텔의 이면은 사라진 유년에 대한 갈구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연보라색 집의 형상과 제니아에게 품어온 동경, 낮잠처럼 나른한 살롱의 오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연보라색 집이 있어야 할 빈 집터는 '흉물스러운 장벽'같은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 있고, 완벽한 여성상을 꿈꾸게 해 주었던 아름다운 유년의 친구는 새 의류 사업에 골몰하는 속물스러운 파리지앵이 되어 있다. 결혼과 이주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된 에텔에게 유년의 결핍은 또 다른 허기로 다가온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나타나는 허기는 단순한 결핍의 차원을 넘어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모두 포괄한다. 평화로운 유년에서 벗어나 졸지에 격렬한 삶의 현장으로 내던져진 에텔은 단순한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다. 에텔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어 허기에 적극적으로 맞선다. 결국 순간순간 그녀 앞에 놓여진 허기는 그녀 생의 다음 순간으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 마치 다음 악곡을 예비하는 간주곡 처럼. 에텔은 허기의 순간들을 견디고 '침묵'의 공간이던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 곳에서 유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백조의 산책길'이 그들이 떠나온 모리셔스 섬과 같은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떠남과 떠나 온 곳으로의 되돌아옴, 이러한 공간의 순환은 그 어떤 곳도 환멸의 공간일 수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자신이 뿌리내린 모든 공간에 대한 긍정, 나아가 삶을 송두리째 휘몰아치는 모든 허기에 대한 긍정으로 이해된다. 

 

z****0 2011.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허기, 그것은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허기, 그것은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내용보기
'르 클레지오'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데, 그가 노벨상을 받을 즈음해서 발표한 작품이 <허기의 간주곡>이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아프리카인>이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허기의 간주곡>은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한다. 또한, 작가의 특색은 거의 비슷한 등장인물과 배경, 줄거리와 주제와 삽화, 묘사들이 그의 후기 작품들에 계속 되풀이 되어진다고 한다. 그런 '반복
"허기, 그것은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내용보기

'르 클레지오'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데, 그가 노벨상을 받을 즈음해서 발표한 작품이 <허기의 간주곡>이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아프리카인>이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허기의 간주곡>은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한다.

또한, 작가의 특색은 거의 비슷한 등장인물과 배경, 줄거리와 주제와 삽화, 묘사들이 그의 후기 작품들에 계속 되풀이 되어진다고 한다.

그런 '반복은(...) 그가 의도한 기억을 위한, 기억하기 위한 , 기억하게 만들기 위한' (p320) 도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허기의 간주곡>이외에는 읽어 보지를 않았기에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야기들의 내용이 명쾌하게 들어 오기보다는 낯선 그의 문체에 상당 부분 혼란스러움을 견디어야 했기에 그 어떤 평을 곁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책의 제목이 나타내는 "허기"에 대한 생각도 이 책의 첫 부분에서는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그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무렵, 어리아이였던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미군 트럭을 쫒아 도로를 달려가면서, 군인들이 기세좋게 던져주는 추잉껌, 초콜릿, 빵 꾸러미를 잡으려고 두 손을 내밀었다. (p11)

그러나, 그것은 "허기"를 나타내는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르 클레지오'가 말하고자 하는 "허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허기, 그것은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 허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 했을 것이다. (p 312)

<허기의 간주곡>의 시대적배경은 1930년대에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것은 이 책의 주인공인 에텔 브링이 열살 정도에서 성인으로 결혼하게 되는 때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이렇게 시대적 배경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의 이야기가 전쟁에 의해서 세상이 추락하는 것과 맞물려서 에텔 브룅의 가족들도 파산과 몰락을 겪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함께 몰락해 가는 가정, 그리고 그 가정의 몰락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는 딸의 역할이 그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부모보다도 더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에텔의 종조부 솔리망.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에텔에게 상속해 주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교묘하게 속여서 그 돈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들을 하려고 하지만, 사기꾼들에 의해서 모두 날려 버리고 파산을 하게 된다.

종조부 솔리망과  함께 어린날의 추억이자, 앞날의 아름다운 집을  꿈꾸었던 연보라색 집과 아르 모리크 가의 정원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에텔은 부모의 불화 속에서 어린날을 보내게 되는데, 아버지의 여자였던 가수 모드도 에텔의 집의 몰락과 함께 무너지게 된다.

심지어 모드는 시장의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에텔의 학창시절 친구인 제니아와의 우정, 그러나 먼훗날 만난 친구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아닌...

여기에 로망펠드와의 사랑. 그리고 헤어짐, 전쟁이 일어난 후에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이야기.

그러나, 제니아와의 우정과 로랑 펠드와의 사랑은 이야기속에서는 작은 한 부분들이고, 그리움의 대상이었다가 훗날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처음 읽어 보기에 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역시 그의 문체는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랭보의 <허기의 축제>라는 시가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이라는 서사시로 풀어 냈다 하는데, 이 역시 문학적 소양이 짧은 나에게는 힘든 해석일 뿐이다.

<허기의 간주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 클레지오'를 먼저 자세히 알고 책을 읽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n******5 2011.0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