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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일본은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면서 줄곧 긴장감을 유지해 왔다. 과거사 문제로 인하여 일본과 대립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과 중국, 최근 사드 배치로 인하여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정서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도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서 영토 분쟁을 통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에 더욱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가까이 모여 있으며, 또한 정치적, 경제적인 협력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떠한 점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동아시아 갈등의 역사와 미래 전망>은 10편의 논문을 통하여 이러한 동아시아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의 역사적인 전통과 유산을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으며, 나아가서 현 상황에 대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더구나 3국은 물론 미국의 논문을 참조하고 있기에 나름 균형있는 시각을 통하여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하여 현재 우리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동수 교수와 케네스 퀴노네스 교수의 논문은 각각 과거와 미래를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이동수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역사와 미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중화주의와 아시아주의라는 용어를 통하여 각각 중국과 일본의 패권에 대한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즉, 고대부터 형성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패권을 중화주의로,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는 일본 중심의 아시아주의는 오늘날 동아시아 3국의 갈등에 대한 역사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천자라 불리우는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주변국과 유교 문화를 공유하면서 조공의 관계를 통하여 질서를 유재하던 중화주의는 19세기 이후 서양의 아시아 진출로 인하여 그 체제가 무너지고 새롭게 일본의 아시아주의라는 질서로 개편되게 된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동시에 청나라와 조선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아시아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 세력을 일본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는 점도 바로 이러한 아시아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서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강해지는 일본은 초반의 동반자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고, 이는 결국 청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아시아의 패권을 일본이 차지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변질되게 된다. 이는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며, 오늘날의 상황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 기인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퀴노네스 교수의 <21세기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지역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에 대한 논문은 현재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이동수 교수의 논문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동수 교수의 논문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낸 과거의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퀴노네스 교수는 지역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로 인하여 갈등이 고조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들 3국은 유교 문화권이라는 정서적인 공감대와 더불어 각종 경제 협력기구를 통하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지역주의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주의는 각국의 민족주의와의 충돌로 인하여 갈등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본의 경우 19세기에 일왕 중심으로 형성이 되었으며, 한국과 중국은 그보다 늦게 일본의 침략을 맞아서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형성이 되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은 일본의 침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필연적으로 지역적인 협력을 강조하는 지역주의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각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함을 동시에 주장하고 있다. 이현휘 교수의 <미국 대외정책의 관습과 21세기 미중관계의 전망>이라는 논문은 미중관계를 통하여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한국의 상황이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세속 내 금욕주의로 표현되는 것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즉, 미국은 항상 최고의 라이벌 국가를 상정하여 끊임없는 경쟁을 통하여 상대방을 고립하고 패권을 확보하는 것을 대외 정책의 기본 목표로 세워 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미국의 적은 영국, 독일과 같은 유럽에서 냉전 시기의 소련으로 변해왔다. 현재는 미국의 적이 바로 중국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과거 그들이 적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정책을 취하였는 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는 한국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대외정책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하여 힌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갈등의 역사와 미래 전망>은 넓게 본다면 동아시아의 3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이며 동시에 그 와중에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나아갈 길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부분의 논문이 한국의 교수들이 집필을 하였지만, 이동수 교수의 논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실 동아시아의 패권 다툼에서 현실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대등한 관계라 할 수 없다.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적인 요인도 있지만, 과거 역사에서도 사실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패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한국이 비관적인 상황만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로 인하여 그들 역시 아슬아슬한 상황이고, 일본 역시 중국과 직접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동시에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기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고민이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 틈새를 비집고 잘 활용한다면 캐스팅 보트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력을 키워야 한다. 앞서 일본의 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주장하던 아시아주의가 일본 중심의 대동아 공영권으로 변질된 이유도 바로 일본이 점점 힘을 키우는 사이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몰락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협력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끊임없는 자강의 길은 항상 지향해야 하는 불변의 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상황에 대하여 단순히 감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대응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형성이 되었고, 또한 이로 인하여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하는데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을 떠올려본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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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위태롭습니다. 남북한 양측은 물론 미-일-중-러 등 4대 강국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지역이 한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작 일촉즉발의 분쟁에 대한 긴장을 가장 민감히 느껴야 할 당사자들인 한국민들은, "안보 불감증"이라 불려도 될 만큼 이 중차대한 시국을 그리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습니다. 첫째, 이론적 정합성에만 현혹되어,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패권주의 세력의 농간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윤영인 교수님과 계승범 교수님의 이어지는 두 편의 발표문은, 독자인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 중에서 가장 유익하고 흥미롭게 읽은 고견들이었습니다. 윤 교수님의 논문은 고려 시대 외교를 다루고, 계 교수님의 논문은 조선 시대 대명 사대의 본질에 대해 깊이 천착합니다. 흔히 고려 시대에는 대단한 자주혼과 주관 있는 외교 행보로 일관했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정착해 있지만, 윤 교수님의 치밀하고 실증적인 논증은 역사의 실정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음을 규명합니다. 미국이 마니교 식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항상 최악- 차악- 차차악의 우선순위를 두고 경계, 응징한다는 분석은, 일단 지금까지 벌어진 그들의 행태와 동선에 별 이격 없이 부합되는 프레임이란 점에서 매혹적이었습니다. 사람도 어떤 명확한 계획이나 의식보다는, 몸에 밴 타성에 의해 움직이는 비중이 더 크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들이 표면에 내세운 명분이나 이념보다, 어떤 전통(이를 prejudice로 표현하더군요)에 의해 "행동"을 결정할 뿐이라는 결론은, 냉혹한 국제 정세 속에서 그저 정치인들의 공약(空約), 허언, 사탕발림만 미련하게 믿기 쉬운 개인들이 어떤 자세로 현실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야 하는지, 묵직한 경종을 울려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