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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해리 보슈는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보단 코요테였어. 역시 나의 선견지명은...이라고 자뻑할 생각은 없다. 물론, 몇초 뿌듯했지만, 뭐 침대옆에 시리즈로 쭈욱 나열해놓았으니 나도모르게 이 책, 해리 보슈 시리즈 4권의 제목이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내지는, 해리의 theme music, 자장가 (lullaby)에 주목하게 되듯, 은연중 작가가 방점을 찍어놓듯 글을 썼기도 했을 것이다. 전편에 코요테에 이름까지 붙여놓았으니. 게다가 은근 미진한 미스테리를 깔아놓아 다음권을 잡게만든다 (자꾸만 생각하는건데, 작가 정말 머리좋아~). 재판과정에서 다시 나온, 해리 보슈의 엄마 이야기.
블랙 아이스 The Black Ice (1993) 해리보슈 시리즈 #2 콘크리트 블론드 The Concrete Blonde (1994) 해리보슈 시리즈 #3 라스트 코요테 The Last Coyote (1995) 해리보슈 시리즈 #4 시인 The Poet (1996) 잭 매커보이 시리즈 #1 +레이첼 워링 트렁크 뮤직 Trunk Music (1997) 해리보슈 시리즈 #5 블러드 워크 Blood Work (1998) 테리 맥칼렙 Angels Flight (1999) 해리보슈 시리즈 #6 Void Moon (2000) 캐시 블랙 A Darkness More than Night (2001) 해리보슈 시리즈 #7 유골의 도시 City of Bones (2002) 해리보슈 시리즈 #8 Chasing the Dime (2002) 헨리 피어스 (이이름은 원래 해리 보슈에게 주려던 건데) Lost Light (2003) 해리보슈 시리즈 #9 시인의 계곡 The Narrows (2004) 해리보슈 시리즈 #10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2005) 미키할러 시리즈 #1 Echo Park (2006) 해리보슈 시리즈 #12 The Overlook (2007) 해리보슈 시리즈 #13 The Brass Verdict (2008) 해리보슈 시리즈 #14 + 미키할러 시리즈 # 2 + 잭 매커보이 허수아비 The Scarecrow (2009) 잭 매커보이 시리즈 #2 +레이첼 워링 The Reversal (2010) 해리보슈 시리즈 #16 + 미키할러 시리즈 #3 +레이첼 워링 The fifth witness (2011) 미키할러 시리즈 #4 2) 아이참, 이젠 콘클란의 이름으로 스릴러를 추천하네. Jame Lee Burke의 Dave Robicheaux 시리즈. 3) 어찌나 재즈를 좋아하시는지. 그의 작품에 인용된 노래들이 다 리스트업되었다 (http://www.michaelconnelly.com/Biography/Music/music.html) 4) 책 맨뒤에 '한 리뷰어'에게 바치는 글..(물만두님 ㅡ.ㅜ)이 뭉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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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펼쳐들기가 싫었다. 책 뒷표지에 있는 "불안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LA에 닥친 지진으로 자신의 집과 함께 무너지고...."란 글 때문이었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연인이 집과 함께 죽었다는 글로 생각되지 않는가. 이 글 때문에 이제 조금씩 감정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가던 해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을지 첫 장을 펼쳐들기가 힘들었다. 언제나 해리는 정의를 위해 힘겹게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을 제거하려는 무리들과 홀로 싸우며 버터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더 이상은 이런 모습은 보기가 싫다. 그런데 "라스트 코요테"에서도 그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징계를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남는 시간에 홀로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는데 이번에도 범인들과 홀로 맞서며 경찰이라는 직업을 빼앗기게 되는 위기까지 생기는데 늘 이 같은 내용의 반복이어서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거기다 한 여자가 떠나고 또 새로운 여자가 등장하니 참나 한숨 밖에 안나온다.
해리에겐 어머니의 사건을 이제야 대면하게 된 것에 충분히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으니까. 이 사건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모두들 은폐하기에 급급하여 자연스럽게 사건은 수면 밑으로 가라 앉았다. 그러나 이제 그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해 점점 범인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실 3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추적한다는 것이 황당한 일인데다 이렇게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일을 왜 그 당시에는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가 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권력층이 개입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이로 인해 해리가 30년이 지나서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사실 조금 억지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부패한 경찰들이 등장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도 권력층에 빌붙어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려 하는 어빙 부국장의 행동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자, 이제 30년 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해리가 제대로 정의를 실현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죽어야 될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지만 분명 죄 없는 사람도 희생되었기에 범인이 누구인지 가려내지 않고 그냥 덮어버린 행위는 옳지 못한 것 같다. 해리 보슈 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버렸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든다. 이 일은 모두에게 상처만 되었다. 이 사건으로 해리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 것에 만족해야 할까. 해리의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면 해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이렇게 쉽게 마음이 놓아지지 않는가 보다.
이 책은 좀 더 일찍 출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해리 보슈 시리즈 4권보다 앞서 나왔다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텐데, 해리가 이후 어떤 행보를 하게 될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점이라 필요한 내용이긴 했지만(물론 어머니 사건인데 그냥 묻혀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왠일인지 그냥 넘어가는 페이지 같은 느낌이 든다. 해리가 경찰이 되었을 때 바로 해결했다면? 전성기 때 해결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은 해리가 너무 쓸쓸해 보인다. 패잔병 같다. 사건을 해결했지만 그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어 온통 상처투성이로 보일 뿐이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궁금하다. 어떤 삶이든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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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간적인 면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요. (283p)
라스트 코요테. 코요테는 사라져 가는 종의 대표적인 동물이다. 해리가 자신의 집 주변에서 만나는 동물이기도 하다. 야생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육식성의 기본적으로 힘과 육식동물의 포악성을 핏속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동물. 어찌보면 해리의 상태와도 가장 비슷한 동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 동물을 선택해서 선뜻선뜻 비추어 놓은 것이 아닐까.
애인과도 헤어지고 상사에게 폭력을 행했다는 이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고 자신의 직무에서는 정직당한 상태. 총은 당연히 반납, 뱃지도 반납. 경찰로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거기다가 지진으로 인해서 집도 무너져 버린 해리. 그야말로 사랑도 잃고 일도 잃고 집도 잃은 셈이다. 그런 해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출입금지가 된 집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 관리의 눈을 피해서 차는 멀리 세워놓고 걸어서 집으로 들어온다. 조금씩 조금씩 손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출입금지는 풀리지 않는다. 그는 변호사를 통해서 소송을 걸어서 자신의 집을 되찾겠다고 하지만 효과가 있을까.
파트너였던 에드거에게는 다른 파트너가 생겼다. 그것조차도 그의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솔직하게 대화를 하자고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형사라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다.
에드거는 최근 해결된 사건들을 이야기 해준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서 줄줄이 풀려버린 예전 사건들. 해리는 자신의 엄마의 사건을 생각하고 그 원리를 이용해보기로 한다. 증거품을 신청해서 가지고 온 해리. 그 속에는 용의자의 지문이 있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 이 지문의 주인을 알아볼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물며 지금 진행중인 사건도 아니다. 정직 상태의 그가 이 지문을 어떻게 돌려볼 수 있을까?
사실 지문을 비교해본다고 해서 딱 떨어지는 결과를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 것일까.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모든 것이 다 없어진 지금 그는 자신이 직접 어머니의 사건을 해결하기로 한다. 그가 이 사건파일을 열어버렸을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알았다면 그때 그만 두었을까? 아니면 결과에 상관없이 범인을 잡으려고 했을까.
이 사건 파일이 열림으로 인해서 잠잠하던 사회에 돌을 던진 셈이다. 이 일로 인해서 자살을 비롯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은 자업자득인가 아니면 해리의 나비효과인가. 결과적으로야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벌을 받은 셈이긴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후에도 입맛은 매우 쓰다. 그 모든 사건이 다 풀려버린 후에도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고 나서 마지막에 희망이 남아있었다. 해리에게도 사랑이라는 희망이 하나 존재하길 바라본다.
보슈는 책의 제목을 보았다. <더 네온 레인>이었다.(406p)
406페이지에서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읽고 있는 책제목이 언급된다. 어디선가 낯익은 제목이다. 찾아본다. 최근 출간했던 스릴러 작품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호평이 덧붙여지기도 했던 작품. 이 시기에 나온 책이 한국에서는 이제 소개된 셈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직접 제목을 알려줄 정도로 알리고자 했던 작품. 이렇게 또 하나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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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4/4분기에 나는 해리 보슈에 매력에 빠져 있었다. "블랙 에코", "블랙 아이스", "콘크리트 블론드"를 연속해서 독파했으니.. 내 상태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2011년 "라스트 코요테"를 잡고(?) 또 보슈의 매력에 빠져버린 후 이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중이다.
보슈의 이번 과제?)는 30년 전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보슈의 인생이 달라졌을 그 사건... 거리의 여자로 평생을 살다 거리에서(?-이 물음표의 의미는?^^) 살해된 파티 걸 '마저리 로우'의 살해범을 찾는 일이다. 그녀는 다름아닌 보슈의 어머니... 비록 거리의 밑바닥 인생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보슈 자신에게만은 자랑스러웠던 어머니의 살인범을 찾는다. 항상 그렇듯 보슈는 비굴하거나 권력에 굴복하는 모습이 없이 항상 당당하게 그 사건을 파헤치고 결국은 그 살인범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전들... 정말 빠져나오기 어려운 책이었다.
해리 보슈시리즈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를 일일이 열거할 순 없고(나의 표현력이 문제가 되니까^^) 그 중 하나만 써보면 내가 보고 싶은 공권력의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올바른 것, 우리가 정의라고 표현하는 것을 대하는 자세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참 가지기 힘든 자세... 어느 새 세상에 묻혀버리는 나의 나약함을 대리만족하게 해 주는 그런 사람이기에 그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다. 2011년에 또 다른 해리 보슈시리즈를 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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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은 평생동안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것이 어두운 기억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내면에 숨어있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곤 한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마찬가지다. 그 상처가 자신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성격과 기질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어쩌면 안좋은 방향으로.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의 주인공인 형사 해리 보슈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안좋은 기억 한두 개 씩은 가지고 살겠지만 해리 보슈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보슈가 11살 때 헐리우드의 매춘부였던 어머니가 거리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그전에도 보슈는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다. 국가에서 보슈의 어머니를 '부적격자'로 판정해서 양육권을 박탈한 것이다. 보슈와 그의 어머니는 정기적인 면회일에만 만날 수 있었고 그럴때면 고아원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어머니가 살해당하면서 그런 만남조차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 보슈는 고아원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형사가 찾아와서 보슈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보슈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가서 물 속에서 펑펑 울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이 일은 성장기의 보슈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리 보슈 시리즈' 네번째 작품 <라스트 코요테>
이후에 보슈는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귀국해서 LA 경찰청의 형사가 된다. 어린시절부터 혼자였기 때문인지 보슈는 경찰서 내에서도 고독한 존재처럼 보인다. 보슈는 대인관계를 무시하고 사건수사에만 몰두하며, 사건해결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수사력은 뛰어나지만 '정치'에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관들은 그를 곱게 보지 않는다.
<라스트 코요테>의 도입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보슈는 용의자를 심문하던 도중에 형사과장이 방해를 하자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사무실의 유리창은 박살나고 형사과장은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다. 이 일로 보슈는 정직처분을 받는다. 총과 배지도 반납해서 민간인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경찰청 행동과학부의 심리학자에게 일주일에 세 차례씩 상담을 받으라는 처분도 함께 떨어진다. 이제 보슈에게는 시간이 남아돌게 생겼다. 그는 오래전에 해결됐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건, 그대로 두면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짐이 될 사건을 해결하자고 마음 먹는다. 바로 30여년 전에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은 발생한지 48시간 이내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범인검거율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 1-2년도 아니고 무려 30년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어떻게 수사할까. 보슈는 정직상태라서 일반형사처럼 사건관련 자료를 마음대로 열람할 수도 없고 관련자들을 찾아가서 떳떳하게 심문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보슈는 특유의 저돌성으로 사건수사를 시작한다. 상관의 신분을 사칭해서 당시 사건의 증거물과 사건수사기록을 검토한다. 30년전 어머니의 친구였던 사람을 찾아가서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를 만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슈의 어머니가 살해당했을 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윗사람들의 압력이었다. 매춘부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을까?
30년 전의 과거를 추적하는 해리 보슈
보슈를 상담하는 심리학자는 이 사건수사에 대해서 몹시 걱정한다. 보슈는 이 사건을 해결해서 어린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반면에 심리학자는 보슈가 이 수사에서 어떤 정서적 이익이나 치유도 얻기 어렵다고 본다. 치유는커녕 오히려 더 심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슈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피살된 후로 보슈의 모든 것이 변했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죽으면서 보슈의 희망도 사라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던 그 소박한 희망이.
그래서 보슈는 더욱 사건수사에 매달린다.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무시했듯이, 그동안 자신도 어머니의 죽음을 그냥 묻어두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가를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과거를 캐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유쾌한 일도 아닐 가능성이 많다. 구린 냄새가 진동하는 살인사건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과거를 파헤치는 보슈의 모습은 교외 야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야생 코요테와 닮았다. 슬프면서 동시에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야생 코요테, 해리 보슈가 바로 그 마지막 코요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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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를 차례대로가 아니고 나중 것을 먼저 보고 앞에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마지막 코요테’라는 제목은 먼저 알고 있었다. 해리 보슈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는 코요테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 코요테와 관계가 있을까 하고, 그걸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거의 사라져가는 코요테는 해리 보슈를 나타낸 건가보다. 해리도 코요테와 자신을 같게 보았다. 이번에 보면서 해리 보슈를 좋은 쪽으로만 말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은 괜찮지만 어떤 면은 안 좋기도 하다. 그것을 사람다움으로 여겼다.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해리 보슈 때문에 죽었으니까 그 책임은 져야 할 텐데, 해리 보슈가 잡으려고 하는데 범인은 거의 죽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죽지 않은 사람도 있던가, 어땠는지 다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죽었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고, 미국 소설(영화)에서는 거의 그렇게 될 때가 많은 듯하다. 미국 범죄소설을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했다. 해리 보슈는 어쩌다 한번만 보아야 했는데 왜 바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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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최애 작가인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4편 <라스트 코요테>입니다. 이 제목이 해리 보슈를 표현하는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외롭지만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진실한 형사! 불안했던 실비아와의 연인과의 관계가 LA에 닥친 지진으로 자신의 집과 함께 무너지고 집에는 철거명령이 내려온 상태가 됩니다.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일과 술에만 매달리던 형사 해리 보슈는 그의 사명이자 희망인 경찰조직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정신과 상담 명령을 받게 됩니다.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리던 보슈는 과거의 범죄 기록으로 운 좋게 범인을 잡아들인 한 사건을 보고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바로 30년여 전 할리우드의 거리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어머니, 매춘부 마저리 로우의 살해범을 뒤쫓겠다는 것입니다. 상사인 파운즈를 폭행해서 정직처분을 당한 해리 보슈는, 오랫동안 묻어놓은 어머니의 죽음 진실을 파헤치기로 합니다. 어머니 마저리 로우는 자신의 벨트에 목이 졸린 채 쓰레기통에 박혀 발견되었고,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비밀리에 LA 경찰국의 사건기록 서류들을 뒤지던 보슈는 어머니의 사건 서류들이 얼마나 미비하게 작성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분노의 치를 떨다가 당시 형사 중 한 명이 수사 서류 중 일부를 은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가 수사에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30년여 전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서 해리는 파운즈 경위의 이름도 사칭하고, 아노 콘클린의 오른팔이었던 고든 미텔의 파티에도 참석하고, 플로리다에 가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도 만나고, 사건을 담당했던 또 다른 형사의 미망인도 만나면서 사건의 윤곽을 찾아내기 시작합니다. 정직 상태인 형사가 과거의 미해결 사건을 수사하다니, 상당히 무리를 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게다가 수사에 압력을 가했던 사람은 과거 경찰청의 실세였던 아노 콘클린, 그리고 현재 잘 나가고 있고 정계에도 라인이 있는 고든 미텔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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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우한 가정과 험난한 인생을 자라온 형사,해리 보슈는 부모가 없어도 잘 컸다. 능력있는 사회의 일원이 됫다. 그런데 사건처리를 하다가 상사와 의견 충돌, 사무실에서 그를 패버리고 정직,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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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인상을 쓴 듯한 코요테의 표지 사진이,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귀엽다고 생각되었는데 이렇게 봐도 그냥 귀엽기만 하네요. 허스키처럼. 어쨌거나 이 작품은 코넬리 선생의 해리 보슈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아, 좋네요. 이건 참 놀라운 일인 겁니다. 일 년에 한 권씩, 마치 기계처럼 작품을 뽑아내면서도 이정도 수준의 평균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존 그리샴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것이 그 자신에게는 물론, 독자에게도 최선인 게 확실했던 것 만큼이나 코넬리 선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엘에이 타임즈에서 기자로 머무르는 것 보다 소설가가 된 것이 그 자신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필력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매해 꼬박꼬박 십 년 넘게 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는 그 프로 근성, 멋지지 않습니까? 코넬리라고 왜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가 없겠습니까. 혹은 쓰고 싶어도 써지지 않는 때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매 년 작품을 선보이면서도 기본 수준 이상의 즐거움을 팬들에게 선사해주고 있으니 실로 찬사를 받아 마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자신의 팬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무릇 고수는 그래야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데이. 그건 그렇고.
그런데 이 작품이 처음부터 달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어져서 아하, 이번 작품은 기본만 치고 나가다보다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50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서 거의 150페이지가 넘는 동안 이야기가 지루했으니, 말하자면 그때까지만 해도 코넬리 선생의 작품이니까 봐준다 하는 심사로 깨알 같이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라도 매번 재미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하면서 무척이나 대범하게 이해해주면서 말이죠. 실은 그래서 역대 전적이 중요하기도 한거니까요. 지루했던 이유는 아주 간답합니다. 모든 스릴러물이 빠지는 함정이랄까, 실수랄까, 뭐, 그런건데요.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랄까, 자꾸 그런 상황에 관한 설명만 늘어놓는 거죠. 독자 입장에서는 뭔가 사건의 진척이 있어야 함게 따라갈텐데 이 작품의 초반은 뭐랄까, 본격적인 사건에 돌입하기에 앞서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자질구레하게 뭘 그리 설명해주시는지 친절한 코넬리씨가 이번엔 쉬어가시려나 보다 했던 거죠. 그리하여 이제까진 작가가 나한테 서비스 해줬으니 이번 판은 내가 서비스를 해야하는 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200페이지 정도에 이르면서, 혹은 그보다는 약간 전부터 탄력이 붙기 시작하는데요, 엄청나게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엄연하게 말씀드리면 그 전까지는 별 셋도 간당간당한 정도였는데 그게 결론에 와서 별 다섯은 물론이요, 베스트 코너에도 입적하게 될 정도이니 후반부의 속력은 뭐,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전의 지루함은 언제 있기나 했냐는 듯이 싹, 가시면서 차차 다리를 달달 떨며 읽기 시작하게 되더라구요. 여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 문장, 끝날 때까지 못 놓는다.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전개될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시원스럽게 질러주는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아주 뻥뻥 뚫어줍니다. 가령, 저 자식 한 대 치고 싶다고 느낄 때쯤 되면 보슈가 대차게 확 질러줍니다. 아, 내가 다 속이 시원해. 차줄 때 차주고 패스해 줄 때 해주는 타이밍이 탁탁, 맞아 떨어져서 그 왜, 막힘없이 시원스러운 경기를 감상하는 것처럼 그런 해소감이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줘요. 게다가 요소 요소에 장착된 반전도 괜찮아서 그 곡선의 깨알 같은 코너링이 또 맛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훌륭했던 점은 이야기의 분위기가 감동을 전해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지 주인공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뭐랄까,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애잔한 마음? 그래요, 제가 종종 말씀드리는 보슈 특유의 페이 데리야끼 소스가 잘 머무려져 있단 말이지요. 물론 보슈라는 인물 자체는 다른 작품에서도 좀 그런 식이었습니다만, 이번 작품이 유독 더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말이죠, 그를 둘러싼 다수의 인물들이 대개 인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고 누구를 위해 자신의 직업을 버릴 만큼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조용히 서서 편을 들어줄 줄 아는 그런 솔직한,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그런 소시민들 말이죠. 그 사람들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가 뭉쳐져서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아우라가 형성되었어요. 그게 이 작품을 완전하게 이끌었습니다. 한때는 사회지도층이었던 사람이 홀로 쓸쓸히 요양원에서 황혼을 맞이하며 그리워하는 어떤 작은 소중함 같은 그리움들이 이 작품의 전반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론은 얘기 안하고 자꾸 말만 빙빙 돌리는 것 같았던 초반은 빼고요.-
코넬리 선생이 코요테를 좋아하나 봅니다. 같은 코가 라서 그런 걸까요? (씨디라도 보내줘야하는 건가!) 왜냐하면 이제는 인간이 자신들의 유흥을 위해 잠식해버린 도시에 홀로 남아 쓸쓸히 배회하는, 어쩐지 독고다이의 강인함과 더불어 뭔가 멋진 고독의 기운이 어머, 어쩜. 얘, 코요테 주제에 멋지잖아, 그런 판인데, 그것이 아마도 그 도시의 마지막 남은 코요테가 아닌가 하는 뉘앙스와 합쳐지면서 뭔가 전설적인 느낌까지 업데이트 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해리 보슈의 이미지를 거기에 중첩시킨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코넬리 선생은 자신의 주인공인 해리 보슈가 그런 이미지 이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삶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조련되지 않는 고독한 꼴통.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어쩐지 자꾸 리쎌웨폰의 멜 깁슨이 떠오르더만요. 어쨌거나 이번 작품은 이야기의 저변으로 감동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어 여느 작품과는 조금 더 묘한 기분이 있었습니다. 맛이 좀 다르달까. 이러면 다음 편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진다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