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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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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이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살충제 계란'의 파문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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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S. 솔트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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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첫 장에선 동물을 학대하고 차별을 용인해왔던 비인도적인 행위의 유래들을 찾아보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지어 그 차이를 용인하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오류와 서구 기독교의 종교적 오류들을 비판하며 인간에게 권리가 부여되듯 동물들도 권리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며 다음 장에선 동물의 원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는지 가축, 야생동물, 식용을 위한 도축, 오락스포츠란 살육의 스포츠, 여성모자 제조업, 과학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동물해부들을 구체적으로
탐색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동물에 대한 야만적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인류의 진보된 과학기술을 위하거나 식량의 유용성 때문에 동물의 생명을 박탈에 대한 정당화 대해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인류가 동물에 대해 잔인한 행위를 하는 것을 그러려니 하고 묵인하는 그런 것이 인간에 대한 잔인한 행위까지
용납하게 만드는 것임을 사회의 인도주의적 감각에 논리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상업적 이윤이 노동의
주된 목적임을 공언하고 있고 인간의 복리는 그 목적에 가차 없이 희생되는 부산스러운 경쟁 사회에서, 하등
동물들이 오로지 그 같은 지배적인 목적에 활용되는 길 말고 다른 길이 또 있겠는가 자신들의 권리가 실제보다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하층민’들이 그들보다
훨씬 하등인 동물들의 권리에 둔감하다고 해서 썩 놀랄 일도 아니지 않은가? 본문 158쪽
호소하고 있다.
감상
19세기~20세기초에 살았던 저자 솔트의 윤리와 생명 감수성은 오늘날의
동물복지를 뛰어넘고 있다.
동물의 권리 옹호가
중요한 이유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의 건강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올뿐아니라,
우리는 우리와 동반 관계에 있는 존재들을 ‘동물’로 다루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의 동료인 인간마저 짐승처럼 취급하게
된다
인간종이 아닌 다른
종의 생명을 ‘동물’로 하등하게 대하며 수단의 도구나 기계로
대하는 마음은 결국 같은 인간에게도 착취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물에 대한 폭력과 인간에 대한 폭력의
연결고리를 정확히 꿰뚫은 그의 통찰력과 모든 생명에 대한 높은 감수성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삶을 실천한 그가 채식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 자연보호주의자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과 삶을 일치시킨 품위있는 고귀한 사람이다.
나는 동물의 권리에
관심있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었다. 고기육질의 맛이 아니라면 건강차원에선 덜 먹거나 안 먹어야 한다. 공장식 사육으로 항생제범벅과 gmo 사료로 키워진 고기들이 건강한
단백질과 지방을 제공하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자주 먹으면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불편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의 좁은 틀에서 인간의
자비를 호소하는 책이 아니라 동물들에 대한 부당행위에 맞서는 일은 인간에 대해 부당행위에 맞서는 일과 정확히 같은 토대 위에 있음을, 미래의 진보가 나아가야 할 인류애가 왜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어야만 하는지 깨닫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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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 왔다. 고대부터 종교적인 관점에서 동물은 영혼이 없으므로 영혼불멸인 인간과 달리 권리가 없다고 하여 동물을 이용한 잔혹한 오락이나 사냥이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근래에 들어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산업혁명 시대부터 동물의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원본 부록이 실려있는데 이렇게 많은 책이 오래전부터 동물의 권리에 대해 논의되고 생각되어져 왔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동물에 대한 사상이 이런 책에서부터 기인되어졌고 이렇게 동물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여론형성을 해온 사람들에 의해 현재의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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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 라는 책을 앍게 되었다. 책의 표지에 웅크리고 잠든 개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반려동물 천만시대인 현재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리높여 '동물 보호법' 을 강화 할 것을 날마다 호소하고 있다. 지강사도 서명운동,꾸준한 홍보 활동 등을 통하여 동물의 삶이 조금이라도 보호받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
중세시대 기독교에서는 애완동물 소유에 대해 못마땅해 했으며 동물들에게 먹일 음식이 있으면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비판했다. 애완동물에 대한 편견은 종교재판에서 극에 달했으며,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만으로도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고 동물과 친한것을 간악한 마녀의 행위로 생각했다.
지강사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며 목숨부지를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기독교에서는 동물의 가치는 인간을 위해서 있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환생'을 언급하기도 하며 동물을 함부로 다루지 말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강사가 어렸을 때 부터 동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겠다고 느낀 책은 바로 명의'허준'이였다.
한때 한의사가 되고 싶었던 지강사가 읽은 책 '허 준'에서 허준선생님이 토끼를 죽일 때 목 뒤에 침을 놓아 잠들듯히 편안하게 죽게끔 했다. 제자가 어짜피 죽는데 칼로 죽이면 쉬울 것을 힘들게 침을 놓냐고 했더니, 인간이 먹기위해 죽이는것도 미안한테 편안하게 잠들게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그 어린 나이에도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었으며, 동물의 희생에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채식주의자가 되진 못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채식주의자로써의 삶을 살고 싶다. 그 이유는 식탁위에 한끼를 먹기까지 수 많은 생명들이 인간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올려진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깝기 때문이다.베이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알고나서 차마 살 수가 없다. 언젠간 햄버거속 패티를 만들기 위해 닭들을 죽이는데 살아있는 닭을 방안에 가두고 벽에 던지고 장화발로 짓이겨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론 속이 메스꺼워 한 동안 햄버거는 입에도 델 수 없었다. 왜 꼭 그렇게 죽여야 할까.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단 하나의 미안함이나 죄스러움도 느끼지 못할 까..
'동물의 권리' 의 저자 헨리 스티븐스 솔트는 작가 겸 사회개혁 운동가로 단순한 동물 복지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한다. 동물에 대한 그의 철학은 간디의 채식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동물의 권리' 를 언급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를 끼고 지금도 어디선가 피비린내나는 동물 학대가 발생하고 있겠지만, 정말 입장이 바뀌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도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며 살아있는채로 사지육신이 절단되고 내 앞에서 내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볼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을까? 동물에겐 영혼이 없기때문에 인간을 위한 희생은 당연한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 아련한 눈동자를 보면 느껴진다. 살고 싶은 눈빛 , 인간보다 때론 더 깊은 모성애와 희생을 보며 동물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어쩔수 없이 살기위해 먹을 수 밖에 없다면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그 마저도 허락되지 않고 미안한 마음은 커녕 자신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들을 보면 인간같지 않다 느껴지기도 한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스포츠인가, 취미로 즐기는 도살행위인가?' 을 보면 자신들은 스포츠라 자부하지만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해되는 동물들이 나온다. 자기 외에 어떤 존재가 겪는 고통을 즐거워한다는것 자체가 엮겹다.
"우리의 쾌락이나 우월감을 감각을 느끼는 미물의 슬픔과 뒤섞지 마라."
다음으로 잔혹한 여성모자 제조업에 관한 글도 참 마음이 아팠다. 값 비싼 모피코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수십 수백마리의 여우나 너구리는 살아있는채로 살갖이 벗겨진다. 언젠가 TV에서 살아있는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보며 차마 살아있는 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듯이 몸부림치는 너구리를 본 적이 있다. 너무나 충격적이였으며 차라리 죽이고 벗기지 왜 저렇게 잔인한 학살을 할 까 했는데 그 업자는 죽으면 근육이 오르다들어 가죽을 벗기기 어렵고 살아있을 때 벗겨야 때깔이 좋다고 했다. 그게 자신이라면 자기 자식이라면 그렇게 웃으며 말 할 수 있을까? 최종 구매자가 없어야 이 잔학한 학살도 끝이 날 것이다. 구매하는 구매자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으니 내 손에 피를 묻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겠지만, 모든 이들이 이 실태를 알고 이 또한 학대행위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책 속에서 언급하는 동물실험 또한 마찬가지이다.마스카라 동물실험을 할 때 토끼 한마리를 움직일 수 도 없는 기계로 고정 시키고 눈속에 화학약품을 계속 집어넣는다. 토끼는 눈도 감을 수 없고 고통을 몸으로 느끼며 서서히 죽어간다. 지강사는 동물실험의 실태를 알고나서 질이 좋던 나쁘던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곳에서 구매를 하려고 한다. 너무 불쌍하고 고통스럽고 안쓰럽고 인간인게 미안할 정도의 죄의식없는 실험들이 지속되고 있다.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맘 없이 자신의 성과와 지식을 높이기 위해 수 많은 의사들은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 비글도 참을성이 강하고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실험견으로 쓰이고 있다.
'동물의 권리' 이 책은 동물학대를 고발하기 보다 이처럼 수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고 있음을 철학적인 부분을 더 해 풀어내고 있다. 단 한사람이라도 책을 통해 동물도 보호의 대상이고 가엾은 생명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는 글을 썼다. 동물학대에 대해 체감하지 못하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 동물학대에 대한 싵태를 알기 바란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식탁위에 올라오는 고기 한조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안다면 아마 먹지 못하겠다고 말 할 것이다.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수컷이라는 이유로 뒷다리를 질질 끌려가서 갈려죽는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미소, 암컷은 원치않는 임신을 죽을때까지 강제적으로 해야 하며 움직일 수도 없는 철장속에 갇혀 새끼 소에게 줘야 할 우유를 인간에게 죽도록 배출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이런 교육을 주기적으로 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국민 모두가 느끼며 동물보호법을 강화한다면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나보다 약한 존재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들이 내제되어 있어야 인간 또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강사가 항상 되내이는 말 '생명이있는 모든것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이 말을 마음깊이 되새겨본다.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채식주의는 꼭 실천해야겠다.
'마음으로 소통하고 사랑으로 치유하는 강사 지유희의 도서리뷰'blog.naver.com/yoohee3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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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단면만을 보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무지에서 오는 것이든 의도적인 외면에서 오는 것이든 나의 삶에 의해, 나의 행위로 인해 나와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들"의 권리가 무참히 침해되고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진실이다. 오늘날, TV에서는 누구나 닮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연예인들의 화장품 광고가 연일 쏟아져나오고 있다. 광고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 깨끗함과 맑음을 강조하며 아주 매혹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인간의 '미'를 위해 하루하루를 지옥의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니 죽어가고 있는 실험실 동물들의 삶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토끼는 눈속으로 온갖 따가운 화학약품들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기계에 머리가 고정되어 뒤척일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이 그저 비명만 내지를 수 있을 뿐이다. 토끼가 느낄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눈에 고름이 생기고 궤양이 생기고 더이상 '쓸모가 없는' 상태가 되면, 그들은 가차없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광고에서는 괴사되어버린 토끼의 눈을 보여주지도, 찢어질 듯한 토끼의 비명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에서는 전기충격을 이용하는 아주 잔인한 동물실험 사례가 나오는데 아,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비인간적인 행태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한 잔인한 실험 내용들을 연구보고서에 모두 기입하지 않고 최대한 숨기려고 한다.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이렇듯 참을 수 없이 잔인한데 지금껏 어디서도 공개되지 않았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행해지고 있을 그 끔찍한 동물실험들을 상상해보라.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동물실험의 '결과'다. 대부분의 동물실험 보고서는 끝에 '그러나'를 붙이며 이 실험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적용되기 힘든걸 알면서 대체 왜 그런 비인간적인 실험을 또 하겠다는 말인가. 한 연구원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동물실험결과의 대부분이 인간에게 적용되기는 힘들며, 반대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 역시 동물들에게 적용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내가 연구를 계속 하는 것은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이자, 내 명예를 쌓아올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 사람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나 의사에게 무한한 존경심과 신뢰를 보낸다고 피터싱어는 말한다. 산 채로 토막나고, 찢기고, 구타당하며 비명지르는 동물을 보면서 분노와 연민을 느끼다가도 그것이 과학자나 의사가 하는 일이라면 아, 그럴 수 있지, 인간을 위한 일이구나, 라며 수긍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동물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의미 없는 고통을 정당화해버린다. 하지만 그 결과가 뻔한 똑같은 실험들,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기만 할 뿐인 그 어리석은 실험을 계속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TV에서는 또 다른 광고가 흘러나온다.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영상을 뒷배경으로 유명 연예인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한우섭취를 권장한다. 도축된 개고기는 아무리 말끔히 포장한 상품이 나와도 그 즉시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겠지만 도축된 소고기나 돼지고기의 빨간 속살은 당당하게 티비 전파를 타고 사람들의 환호도 받는다. 소와 돼지를 귀엽게 캐릭터로 형상화 시켜서 그들이 활짝 웃어보이는 효과도 집어넣는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고통밖에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축동물들의 삶이 있다. 마취없이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는것, 이유 없는 구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새끼가 생이별을 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컷의 경우 알이나 젖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갈기갈기 찢기거나 기계에 갈려 죽임을 당한다. 몸을 돌릴 수도 누울 수도 없는 비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평생을 지내며, 도축되는 순간에는 머리가 잘려나가고 다리가 잘려나감에도 의식은 여전히 있는 그 잔인한 시간을 겪어야 하며 산 채로 끓는 물에 담겨지기도 한다. 우유는 좀 나을 것이라 기대하겠지만 절대 아니다. 젖소는 원치않는 강제적인 임신을 반복하고, 새끼와는 낳자마자 생이별을 당한다. 갓 태어나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송아지를 한 남자가 뒷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간다. 그 뒤를 탯줄 정리도 안 된 어미소가 새끼의 얼굴에 코를 박은채 졸졸 따라간다. 새끼는 큰 트럭 안으로 던져넣어진다. 어미소는 새끼가 있는 트럭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지만 남자는 어미소의 얼굴을 세차게 가격한다. 어미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에서 발버둥치며 울고 있는 새끼에게 가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결국 그 송아지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젖을 양산하지 못하는 수컷이라는 이유로, 어미의 젖을 빨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이유로. 어미는 곧장 공장으로 끌려가 고통스러운 기계에 젖이 고정되고 새끼에게 먹였어야 할 젖을 인간에게 먹이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보낸다. 이러한 삶을 계속 반복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잔인무도한 방식으로 도축되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베이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혹시 아는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돼지의 뒷다리를 잡고 시멘트 바닥에 아기돼지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하거나, 무산소 기계장치에 아기돼지들을 넣고 고통스러운 발버둥이 그치면 그 아기돼지들을 한 곳에 던져넣어 아직도 움직임이 있는 그 아기돼지들의 가죽을 벗기고 기계로 갈고 삶아서 나온 것이 바로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이컨이다. 그러나 광고에서는 이렇듯 잔인함이라는 단어보다 더 잔인한 표현을 찾고 싶을 정도의 가축동물들의 삶을 귀엽게 혀를 내밀고 웃고 있는 동물들의 캐릭터로 대체시켜버렸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들을 영상으로 모두 보았다. 최대한 순화시켜 적은 것이다. 너무 잔인하여 여기 적지도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동물원의 동물들, 서커스나 쇼 동물들 등등 여기 자세히 언급하지도 못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그 본래의 삶의 목적을 왜곡당하고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마저 처참히 박탈당한 채 고통을 받고 있는가. 헨리 솔트의 <동물의 권리> 리뷰에 이토록 동물이 받고 있는 고통의 실태를 나열한 것은 이 책에서 인간이 동물들에게 어떤 잔인한 짓을 저질러 왔는지에 대해 자세한 사례를 예로 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예를 철저하게 자제했다. 부록에서 잠깐 도살장에 방문하여 목격한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를 해보면서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이 소개되고 작가 본인의 철학적인 사상도 밝히고 있다. 상충되는 사상들을 지켜보면서 독자들도 동물의 권리에 대해 나름의 생각과 의견을 내보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은 '역지사지'가 되어보자는 주장이다. 동물의 권리를 주창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점을 내세워봤을 것이다. 만약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따라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고 먹는 것이 당연하다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어떤 존재의 출현으로 인간이 감금당하고, 산 채로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산 채로 끓는 물에 집어넣어지고, 갓 태어난 아기들이 기계에 갈려지는 것이 자연법칙에 따른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은 괴롭다고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외치는데도,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저 기계일 뿐이라고 한다. 그때 우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 저 무지막지한 존재들 중에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존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제발 이 악마같은 미친 짓을 그만해줘, 라고 절규하지 않을까. <동물의 권리>는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책으로서 의미가 크지만 안타깝게도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고, 동물을 감정도 없는 하찮은 존재이자 그저 기계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빠르고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 본인도 그 점을 인정했고 점진적으로 인간들이 문명화를 거듭해나가면서 육식을 멈추고 채식으로 향하게 될 것을 전망하고 희망했다. 헨리 솔트여. 그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룩해나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그때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때보다도 더 악랄하고 잔인한 목적과 수단으로 동물들이 의미 없는 고통과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동물의 권리를 외치는 단체들이 늘어났고 스스로 비건이 되어 비건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진적인 변화.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공개된 일부분의 자료만' 언급했을 뿐인데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동물보호운동이 급진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만 봐도 어떤 충격적인 계기나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면 인간은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식탁에는 고기가 놓여있었고, 학교 급식에도 고기와 생선반찬은 기본적으로 나왔으며 마트에 들어가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이 고기와 우유와 치즈였다. 그 아무도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야단치지 않았다. 화장품 가게에서는 실험동물의 고통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며 정육점에서는 이 고기가 어떤 식으로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무지, 그리고 잔인한 장면은 보기 싫고 혀의 즐거움, 미에 대한 추구는 절대 잃기 싫은 자들의 의도적인 외면과 핑계가 주를 이루는 이 세상에서 채식으로의 삶, 고통없는 동물들의 삶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본인의 몸보다 비좁은 우리에 갇혀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돼지의 사진을 미취학 아동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는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 전원이 말을 못잇고 슬픈 표정으로 한참을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왜 집에 있지 않고 이런 곳에 있냐고, 불쌍하다고 말했다. 우리 어른들은 그것이 저들의 집이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자리를 옮겨 햄버거 체인점에서 중학생들에게 수컷병아리들이 소비시장에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기계로 던져넣어지는 영상을 보여주고 그 의견을 물었다. 역시나 그 중학생들도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영상에만 눈을 고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전혀 몰랐다고, 그리고 고기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고, 이제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이다. 지금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부당하다는 것을. 인간의 의식과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점차 소비가 줄면 공급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교육을 기대하기란 너무나도 힘들다. 이 소비시장은 정부와 대기업들이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소비자들 자신들이 지금까지의 삶을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감정이 없다고들 말한다. 동물은 말이 없다고도 말한다. 동물은 무식하고 하찮은 존재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무지'에서 오는 착각이자 오해다.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에게서 떼어내고 독방에 가둔 다음 몇 주 후 원숭이형상의 인형을 독방에 던졌다. 아기원숭이는 그 인형을 하루종일 껴안고 절대 놓지 않았다. 실험실의 독재자들은 이제 인형에 전기충격장치를 심어두고 원숭이가 인형을 껴안을 때마다 전기가 통하도록 통제를 가했다. 전기가 통함에도 불구하고 원숭이는 계속해서 인형을 껴안으려고 했다. 더 강한 전류를 발생시켰지만 원숭이는 충격에 몸이 튕겨져 나가면서도 계속 인형으로 안겼다. 이러한 원숭이의 행동이 그저 본능일 뿐이며 감정 없는 기계의 움직임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돌고래쇼장에서 한 돌고래가 수면 위로 점프를 했다. 그러나 점프에 착오가 있었고 이 돌고래는 자신이 떨어질 지점에 새끼돌고래가 있음을 깨닫고는 새끼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방향을 바꿔 그대로 시멘트바닥으로 떨어져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러한 돌고래의 행동을 보고도 동물은 감정이 없는 기계일 뿐이며, 동물은 그저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하등존재일 뿐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새끼손톱보다 작은 물고기들과 개미들도 수없이 많은 의사소통을 하며 인간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졌고, 인간은 차마 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도 한다. 동물은 절대 감정이 없고 말이 없고 무식하지 않다. 그저 인간이 그들의 말과 행동과 삶에 철저히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동물의 권리>는 철학적 사상을 주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렇기에 동물보호에 관심이 있고 채식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필히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을 것을 강력추천한다. 피터 싱어는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지만 활자로 접하는 것인데도 그 잔인함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물해방>을 완독하고 나서는 동물실험,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현장, 그리고 도축장면을 찍은 영상을 볼 것도 추천한다. 아마 5초도 못 보고 꺼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왜 꺼버리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으로서 그러한 행위들이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리고 이성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해서 나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변할까? 라는 의심으로 육식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바뀌면 반드시 세상은 변할 수 있다. 동물의 권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도 지킬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소비가 줄면 반드시 공급도 사라진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책들과 목소리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오고, 동물의 권리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언젠가는(이러한 불확실한 표현을 쓰는 것이 씁쓸하지만) 동물들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런 미래에 대한 희망만 반복되는 세상이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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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헨리 스티븐스 솔트는 영국의 작가 겸 사회개혁운동가로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동물의 권리를 주창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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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동물복지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듣고 있어요. 살충제 계란부터해서...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두는 상황인거 같아요. 사람들의 이점만 생각하고 했던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가축? 야생? 식용? 스포츠? 도살? 등등... 이것도 사람의 이점을 위해 행해지는 것들이 많지요.
이책을 쓴 솔트는 동물의 권리 박탈가 인간성 성실의 현장을 통해서 낱낱히 현재의 상황들을 고발하고 있는데 동물의 권리 운동을 내세운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있는 영국의 학자 솔트!! 마하트마 간디의 채식주의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사실 전 채식주의자가 아니거든요.. 채식 육식 ..어느 한곳으로 치우치는것 자체가 전 싫어요. 그래서 동물의 권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던 일인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기가 원하는 곳...자기만의 영역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것 그게 진정한 권리 아닐까 싶다. 동물의 권리 속에 나온 책을 그대로 100프로 흡수하기엔 무리가 있다.
알만을위해 A4만한 공간에서 움직임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그런 동물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물들을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하는것 자체는 좀 나에겐 무리가 있고..
잔악하게 동물을 잡아 의복으로.. 겉치레를 위한..장식구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 자체는 반대한다. 동물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 애완동물이라는것 자체도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모든지 한방향만을 생각하는건 옳지 않다 생각한다. 결론은 채식주의.... 나의 견해와 좀 많이 다른 책인듯 하다. 사실 이책이 현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권리등.. 에 대해 전달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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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아야 하는가.
진드기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동물은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대우받아야 하는가,
존 로렌스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의무에 관한 철학적 논문>에서 험프리 프리마트는 가축의 세 가지 권리로 '먹이, 휴식, 애정 어린 대우'를 꼽았는데 동물들을 거세하는 문제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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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 이 책은 동물에 관한 권리 책으로서 최고의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책이라고 한다. 책의 주제는 동물의 권리가 존재하는 타당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물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결국 관리하지 못할 것이요. 인간에게 그 모든 질병들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예들 들어 광우병 사건, 계란 농약 사건 등. 이처럼 인간을 해치는 것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동물을 읽으면 인간이 보인다는 것이다. 동물의 수컷과 암컷을 설명하면 인간의 가족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동물의 생태학적 접근으로 남자와 여자를 보면 매우 흥미롭게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뒷받침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추적하면 인간의 권리가 있듯이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도 사실 태초부터 동물적인 면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선 인간은 두 발로 걷는 동물이었다. 사회과학이 발전하여 무엇을 타고 다니기는 했으나 원래 인간은 걷는데 최적화 되어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숲에서 자랐기에 인간은 숲에서 거니는 존재였고,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라왔다. 이런 관점으로 이 책을 보면 동물보호의 고민을 다시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을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는 독서의 시간도 줄 것이다. 인간도 동물이지만 짐승들과 차이점이 있다는 우월함과 다름의 존재라는 합리화들이 역사속에서 있어왔다. 따라서 동물과 인간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왜곡된 시선들이 지금의 파괴된 지구로 가고 있지않나 생각해야 한다. 한 예로 지구온난화가 그것이다. 아무튼 우주 역사의 과정속에서 변화하며 지금의 여기까지 숙주처럼 온 것이니만큼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구와 동물, 생명체의 부정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연을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동물의 권리를 세분하여 가축의 경우와 야생동물의 경우, 식용을 위한 도축, 그리고 동물들을 가지고 게임하듯 하는 것들이 스포츠인가, 취미로 즐기는 도살행위인지 우리들에게 묻는다. 또한 부록으로 동물의 권리에 관한 참고문헌과 옮긴이의 부록 으로 레오 톨스토이의 『첫걸음』1, 2를 수록하였다. 이 책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는 동물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독서가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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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를 예상하고 책장을 펼쳤는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1800년대 말에 출간된 동물보호론의 고전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세계관에서 시작해 서구사회 사상의 흐름에서 동물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해 쭉 정리, 비교하고 당시 사회에 인류애와 인본주의를 설파하며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에 경고를 하는 것이 목적인 서적이다. 저자는 우선, 역사적으로 '동물도 인간처럼 특정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고대 로마 사상가들의 긍정적 견해를 먼저 소개하지만, 기독교 사상에서는 '동물은 영혼이 없다'는 인식을 가진 탓에 서구사회 전체에 동물의 권리나 복지에 대한 개념이 중세동안 사라졌음을 지적한다. 또한 르네상스를 거쳐 인도주의적 정서가 부활하며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본격적으로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와 '감성'의 시대가 도래해서 부터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일부 지식인에게만 한정되어있던 인도주의 정신이 전세계로 퍼져갔다고 알려준다. 이때부터 동물 권리에 대한 서적이나 논문이 본격적으로 논의 되면서 1822년에는 '마틴 법'으로 알려진 '가축에 대한 학대법'이 통과되었다. 마틴법은 비록 동물에게 어떤 혜택을이나 복지를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가축'을 소와 짐 운반용 짐승으로 한정하며 동물의 구분과 정의를 내리면서 이후 이어질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선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체로 노예해방운동과 함께 지각이 있는 존재에게 학대를 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경계에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이 책은 '동물권'의 정의와 역사적 기원을 설명하고, '가축'에게 행해지는 학대를 지적하며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인위적인 통제를 받는 야생 동물'에 대해 사냥이나 동물원 감금같은 행위가 되풀이 되는 것에 강한 비판을 보낸다. 또한 동물권을 논하기에 빠질 수 없는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식용을 위해 도축하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윤리적 결함을 열거한다. 잔혹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인간의 신체는 채식에 좀 더 유리한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점(21세기에도 그러한가...?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동물의 희생은 그저 그들의 숙명일 뿐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가 가장 문제삼고 비난하는 부분은 도축 과정 및 도축을 위한 운송과정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다. 도축 방식, 운송 과정의 열악한 조건은 더 심화되면 되었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며 대중의 양심이 일깨워지고 있고, 도축 과정의 잔혹함에 대한 불편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른 결과로 채식주의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인 생활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또다른 가혹행위는 스포츠로 소비되는 도살행위와 모피, 깃털을 소비하기 위한 도축이다. 스포츠는 동물이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는 자의 도덕성을 의심하며 그 사람 탓이라고 비난할 수라도 있으나, 의류 소비를 위한 도축은 최종 소비자에게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도 실제 도축 과정에서 소비자는 제외되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경각심을 느끼도록 일깨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또한 산업화를 거치며 도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회 밑바닥으로 밀려 내려간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동물 실험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서 가장 거세고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데,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해부실험을 중단하고 차라리 사람에게 직접 실험할 것을 제안할 지경이다. 19세기 말의 과학과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아마도 과학적 호기심을 위해 줄기차게 진행되던 해부와 각종 실험의 수가 엄청났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나, 그 정도가 도대체 어떠했길래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과학이 의문의 발견이 가져다 줄 미심쩍은 이득을 포기하거나 뒤로 미루는 쪽이, 옳고 그름을 혼동함으로써 사회의 도덕적 양심이 짓밟히는 쪽보다 백배천배 낫다. 지름길이 항상 옳은 것 만은 아니다. 하등동물에게 잔혹한 부당행위를 저지르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행위가 후세에 혜택을 가져가줄 것이라는 식으로 변명하려 드는 것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부적절하다. 그것은 경솔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발하다 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라 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결국 모든 것은 도덕성과 인본주의로 귀결된다는 이야기. 동물 보호야말로 인류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진정한 문명화, 인류라는 종의 발전, 최상의 의미에서의 인류애가 모두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과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가혹행위는 곧 도덕성과 인간성의 타락 및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한가지는 지속적이자 전방위적 교육, 두번째는 무해조수보호와 관련된 입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은 사회의 도덕관념에 대한 기록이자 표현이므로, 입법이 이루어 지면 도덕관념을 지키는 보완장치가 된다며 사회가 특정 관습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단호하게 선언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생각보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고, 이 책은 지금 봐도 조금은 극단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발간 당시에 사회에 미친 파장은 어땠을지, 세간의 반응은 어땠을지가 매우 궁금해진다. 원본의 부록을 충실히 옳기고, '톨스토이가 쓴 채식주의자로서 보는 동물'까지 추가로 삽입하여 알찬 구성을 이룬 것은 좋으나, 교정과 윤문은 조금 아쉽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아래에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이 글은 이미 언급한 것 처럼 오히려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세계의 위대한 진보는 인간성이 증대하고 잔인성이 줄어드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글이다." **이 리뷰는 네이버 카페 <독서공간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