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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시절이 생각난다. 벌써 10여 년 전이 되어버렸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가 내가 첫 발령 받은 해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고 중간에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결국은 사범대로 진학하여 교사가 되었다. 이런저런 교육관련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그때 기억에 남는 책이 김은형 선생님의 교단일기인 『서른일곱 명의 애인』이다. 나도 마침 서른 네 명의 아이들을 맡은 터라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책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착각을 해도 너무 많이 했나보다. 그 선생님은 교직 10년이 넘는 베테랑 교사였고 나는 완전 초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의 교육관과 학급 운영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와 관련한 일은 아직도 내게 생채기로 남아있다. 김은형 선생님 따라 하려다 교직 경력 20년 넘는 선생님께 완전히 찍힌 사건이다. 당시 우리 반 위치는 두 개 반밖에 없는 층이었고 더구나 신규교사가 맡은 반이었으니 얼마나 자유분방했겠는가. 그걸 예견한 학교 측에서 우리 반 옆 반은 40대 후반의 여선생님께 맡겨 균형을 잡으려 한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이나 물을 일이 있으면 그 선생님께 물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이런 저런 것을 물으니 그리 친절하게 대답해주시진 않으셨다. 너무 많이 물어 귀찮으신가 해서 나중엔 묻기가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그 옆반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심각한 얼굴로 우리 반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말씀하셨다. 수업 들어가실 때마다 너무 더러워서 꼭 청소를 시킨다며 반이 깨끗해야 학습분위기도 좋아진다고 평소에 깨끗이 청소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그냥 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뭐가 똑똑하다고 이런 말을 뱉어버렸다. “아이들이니까 더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세하진 않지만 이 말을 넣어서 뭐라뭐라 대답 했다.) 그것도 미소 띈 얼굴로 선생님을 보며.(그 선생님은 절대 웃지 않으셨다) 물론 나는 좋은 의도로 해맑게 웃으며 말씀드렸지만 아마도 그 여선생님은 ‘당돌’하다라고 보신 것 같았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김은형 선생님 책에서 봤던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이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너무 나무라지 말자’라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교실이 더러울 수도 있는 것도 아니겠느냐’라는 그 말씀이 각인되어 있어서 아마 우리 반의 지저분함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냐고? 전혀 아니다. 교직 3년차쯤 되니 어느새 나도 깨끗한 교실을 주창하는 학급 담임이 되어 있었다. 깨끗해야 면학분위기 뿐만 아니라 아이들 위생과 평소 생활습관을 바르게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임 시절 그 옆반 선생님과의 청소 관련 대화 이후...... 그 선생님은 나를 아주 안좋게 생각하셨고 그 이야기를 여기저기에 하고 다닌 것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함께 근무하는 4년 내내 그 선생님은 나를 싫어하셨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미움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카오 선생님의 좌충우돌 학급 운영 이야기가 스물네 살 갓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첫 발을 내디뎠던 2002년이 얼마나 많이 떠오르게 하던지. 첫 학교에 있으면서 시도했던 여러 가지들, 아이들과 최대한 친밀해지고자 노력했던 지난 날, 아이 하나하나 잘 해주고 싶어서 욕심 부렸던 나날들...... 이 시기 나에게 꼭 읽혔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매너리즘이라고 하던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학교 생활, 아이들과의 만남, 수업, 담임 역할,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학교시스템. 거기에 어느 새 나는 안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히려 정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자극해주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처음처럼”이 가장 어렵다. 첫 마음, 첫 내디딤, 첫 날개짓, 그 첫 경험들의 신선함과 흥분은 모두 어디로 가고 늘 하던 것, 해오던 것, 뭘 해야 할 지 뻔히 아는 다음의 일들. 여기에 매몰되어 이미 마음부터 늙어버리고 지쳐버린 지금. 이 책의 아카오 선생이 혼란스러워하는 조직의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의 충돌은 어느새 나의 교직 생활에서는 드러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최대한 부딪치지 말자, 그리고 없는 듯이 살아가지, 튀지 말자, 라는 식의 마음들이 내 의식 속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점점 우리 반의 색깔이 없어지고 우리 반의 추억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첫 발령 학교에서 했던 여러 가지 실험적인 학급 행사들은 고등학교로 발령이 난 이후 본격적인 입시 체제하에 놓여있는 교육과정을 핑계 삼아 (하필 4년 내내 고3을 맡은 것도 있다.) 그런 우리 반만의 추억거리는 없어졌다. 우리 반 체육대회, 우리 반 책걸이, 한솥밥 먹기(이건 급식제도 도입 이후 못했다), 우리 반 전자앨범, 축제에서 장기자랑 연습, 조종례 돌아가며 하기, 학급일지 쓰기 등...... 그렇게 함께 한 추억이 많아서일까? 확실히 첫 발령 학교 시절 제자들의 연락이 많이 온다. 하긴 그땐 젊은 처녀 선생님이었고 남자학교였으니 그 영향도 있었으리라. 작년과 올해 드디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으며 조금은 입시와는 멀어져 유연성 있는 학급 운영은 가능해졌지만 이미 고등학교 시스템에 적응 되어 버린 나의 뇌구조는 좀처럼 깨어날 생각을 않는다. 허둥대기 일쑤이고 요즘의 10대들 따라가기도 급급하다. 그나마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반 아이들에게 책 한 권씩 생일에 선물하기가 있어 구겨진 체면이 조금은 펴진다. 『괜찮아 3반』을 읽으며 이런 저런 내 생활들을 돌아봤다. 비록 초등학교 5학년생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일본과 한국의 학교시스템이 워낙 유사해서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한일 간 학교 교육과정과 운영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이 책의 저자는 『오체불만족』으로 유명한 오토다케 히로타다이다. 그가 실제로 교단에 선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이 탄생했다고 하니 이 책의 주인공 아카오 선생은 오토다케의 모습과 거의 같으리라 짐작된다. 딱딱한 학교 조직과 아직 유연한 아카오 선생의 방식과 가치관 충돌은 어느 신규교사나 경험하는 일들이라 더욱 공감이 많이 된다. 큰 사건이 한 권 전체가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건을 장으로 엮어 여러 이야기가 등장하니 학교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조금 더 내밀하게 들어가 묘사해서 생생하다. 특히 장애인과 관련된 주제로 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장애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장애를 가진 선생님이 이야기해주니 아이들은 더욱 진정성을 느끼고 공감한다. 물론 그 속에는 아카오 선생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해결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급의 어떤 문제를 수업으로 연결해서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본받고 싶었다. ‘일반적인 것과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비교하며 아이들 스스로 깨닫게 하는 장치들은 여기 고등학생들에게도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일본의 초등 교육의 방향이 경쟁을 강조하기보다 모두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는지 운동회도 잘 하는 몇 몇만 참여하는 달리기가 아니라 전교생이 조를 짜서 달리기를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참여에만 의의를 두지 우승이나 1등에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카오 선생은 생각한다. 과연 아이들의 이런 자세가 옳은 것인가?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달리기 잘 하는 누구누구가 1등할 것이라는 예상과 체념 속에 무사히 경기를 끝낼 생각만 하고 있다. 아카오 선생은 답답하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왜 시작도, 노력도 없이 넘버원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진 아이들을 납득할 수 없다. 상품과 보상이 없으면 아무리 1등 자리라도 욕심내지 않는 현상, 이것은 한국의 학교에도 팽배한 현상이다. 물질적인 보상이 전제되지 않으면 교내 행사와 각 종 대회에서 노력하지 않고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는 도전의식부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차피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나 운동 잘 하는 아이들이 모두 쓸어갈 것이라는 패배의식과 열등감은 뿌리부터 즉 가정교육부터 보상을 전제로 한 훈육과 양육을 시켜온 부모님에서 더 이어져 학교에서까지 가지가 뻗어나갔기에 파생된 문제라 생각된다. 요즘 아이들을 볼 때 나도 가장 답답하고 안타까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도대체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걸핏 하면 나오는 “해봤자...” 또는 “하면 뭐해 줄 건데요?” 식의 반응들. 자신에게 그러한 경험과 도전이 쌓여서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과정임에도 그것을 설명하기엔 나의 설득력은 약하다. 그래서 아카오 선생이 아이들의 무기력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왜 아이들이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지 어설프게 짐작했던 것을 보다 확실시 할 수 있었다. 그런다. 아이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것이 싫었고 그럴 바에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학창시절 수업시간 거의 자고도 1등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둘 중 하나였다. 진짜 머리가 좋거나, 집에 가서 죽어라 공부하던가. 우리끼리는 머리 좋은 것은 인정할 수 없어서 밤새 공부하느라 이렇게 학교 와서 잘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그게 속편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그랬을 것 같다. 특히 고등학교 공부부터는 단지 머리 좋아서 1등 할 수는 없다. 아마 그 친구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1등하는 것을 ‘머리가 좋아서’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이 친구는 그나마 운 좋은 편이고 어떤 친구는 노력은 참 많이 하는데 성적은 별로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또 뒤에서 쟤는 머리가 나빠서 저렇게 공부해도 성적이 별로라며 뒷담화가 오갔다. 그런 상황을 잘 아는 아이들끼리는 결론은 이렇게 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공부하는 척 하지 말자.” 그래서 시험 전 날 공부 못하고 잤다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 것이다. 공부도 안했다고 말해놨지만 어느 정도는 해놓고도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공부량이 성에 안차서 일수도 있다) 이런 보편적인 상황을 아카오 선생은 5학년 3반으로 좁혀서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렇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다. 꼭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1등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에서 성장통도 겪어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썩히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씩 성취해나가면서 기쁨도 느끼고 때론 실패해서 좌절감도 맛보겠지만 그것들이 쌓여서 내면은 더욱 튼튼해지고 자기 자신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성장의 원(圓)이 점점 커져갈 것이다. “눈앞의 아이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162p) 이 명료한 질문이 내 양심을 콕 찌른다. 피곤하다고, 쌓인 일이 많다고, 해결하기 힘들다고, 돌아선 일들, 팽개쳐 둔 일들, 다시 끄집어 내야할 때가 왔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이자 아내로서도 잘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는 직장에 더 마음을 두고 시간 분배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남편은 그 부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때도 있다. 그런데 실은 학교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가정 일도 제대로 못했다. 물론 슈퍼맘이 아니다.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하며 순위를 매기기보다 매 순간 내가 있는 위치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도 사람이기에 잘 지치고 짜증도 많이 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일 줄 하고 추스릴 줄 아는 것이 내게 필요한 숙제다. 그 와중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해준 것도 사실이다. 아카오 선생의 멋진 초임 교사 1년간의 생생한 실험과 교육이 나에게 톡 쏘는 탄산수 한 잔 마시며 기분 전환한 듯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방금 반의 한 아이와 통화도 했다. 학교에 잘 안 나와 이젠 화낼 여력도 없고 지도할 기운도 없다며 넘어가버리고 있던 찰라, 이 책을 읽고 곧 마음을 바로 잡았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최선인가? 라는 질문을 하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이 뻔했기 때문이다. 당장 전화를 했다. 녀석에게 안부를 묻고 약속을 받는다. “앞으로 짝수 일에는 무조건 선생님에게 문자 보내. 잘 살고 있다고 증거로 보내 줘야해.” 아이는 전화 준 것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아휴, 그래, 애는 앤데, 내가 너무 내 기분에 취해 더 할 수 있는 부분도 안하려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미안해진다. 책 리뷰가 아니라 무슨 교단 일기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다. 엊그제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이 떠오른다. 학년에서 문제반이라고 불리는 반을 맡은 담임이 한 아이를 지도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연이었다. 자기는 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변화가 없으니 이제 포기하고 싶다는 글. 사연을 들은 (이름은 모르지만) 철학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아마도 자기는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애가 변하지 않는다고, 결국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남들에게 당신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 부분은 놔둬라 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하나의 변명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같은 교사 입장이라 반발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활도 없이 아이들과 학교일에 함몰 되버리는 것으로도 될 수 있지만 교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어렵다. 결국은 ‘최선’이라는 명제아래 ‘진심’을 다하자 라는 결론을 나름 내렸다. 아카오 선생처럼, 처음의 마음의 불씨를 살려보자. (누가 좀 불씨 좀 살리게 후후~불어줘요~~~) 2007.4.30 교단일기
아이들에게 대한 생각을 좀 했다.
"지금 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
섬뜩한 질문이다.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채찍질 할 때가 온 것 같다. 갑자기 담임을 맡고 마음 준비보단 육체적 노동으로 두 달을 버티어 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3학년이라 별 간섭없어도 알아서 잘 하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는 적었다. 하지만 아침밥 굶고 7시 30분까지 출근하자마자 교실로 가서 지각생 훈화하고 자습분위기 잡고, 교무실 와서 바로 회의하고 조례할 시간도 없이 바로 1교시 들어가고, 하루 기본 5시간 이상의 수업을 소화하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고, 야자 감독 후 퇴근하면 10시가 넘는다. 학교에만 매여있다보니 내 생활은 자연스레 적어져서 한동안 이거 '나'는 어디로 간거지?하는 의문때문에 슬쩍 내 생활을 좀 찾을려고 슬그머니 눈치보며 최소한의 책임만 다할 뿐 그 이상은 미루었다. 그러다 보니 며칠 전부터 문득, '나'라는게 대체 뭔데? 하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내 몸뚱아리 자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여야 한다. 그 관계의 테두리는 가족보다는 직장이 우선시 되는 입장이어야 함이 누가봐도 명백하다. 주말은 가족과, 주중은 직장, 즉 학교, 즉 아이들과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우선이다. 아차, 내가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특히 아이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눈을 많이 마주쳤는가, 대화는 많이 했는가, 칭찬은 많이 했는가, 미소로 대해주었는가... 다행인건 학생인권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체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바람에 한 달 넘게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았다. (며칠 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결국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매를 들긴했다)
긴장을 풀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에게 더 많이 해줄 수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하다고 애정을 아끼는 경우의 선생님들도 있다. 단체로 간식 시켜 먹으면서 담임 선생님께 하나 갖다 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왜 아이스크림을 사줘야 하냐고 생각하는 샘들도 있다. 그런 것도 가르쳐야 하는게 선생의 임무인 건 분명하다. 함께 하는 것, 다른 사람을 챙길 줄 아는 것, 자기만 존재하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러기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내리사랑이다. 아이들과 기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부드러움으로 무장한 강함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기 정말 쉽지 않다. 화가 너무 나면 차라리 그 상황을 피해서 혼자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면 좀 나아진다. 그러고 나면 대화할 힘이 생겨 결국 매를 들게 되진 않더라. 우리가 학교라는 조직을 이용한 권위를 가지고 체벌을 가하고 결국 폭력의 당연시, 또는 폭력의 일상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맞아도 되는 존재, 맞아야 정신 차리는 존재, 선생님은 때려도 되는 존재...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아마 아이들에게 그렇게 대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맞고 자랐고 그래서 정신차렸으니 너희도 맞아야 정신 차린다라는 식의...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런 무서운 일상화... 군대 문화가 학교에 깊숙히 자리 하고 있다.
혼란기이다. 요즘 나의 화두가 체벌, 학생인권이다. 오늘부로 시작한 화두는 학급경영이다.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땐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표현만 다를 뿐, 결국 인간적인 선생님을 원했던 것 같다. 좀더 많이 웃어주고 좀더 많이 들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지만... 그 방법은 선생님들끼리 공유해야한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고 생각해볼 수 있다. 내 직업의 전문가가 되자. 거창한 목표를 가지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돌아보라는 거다. 잔소리를 줄여라. 믿어라. 때론 냉정해져라. 아닌 건 아니다라고 엄격하게 대하되 그걸 가지고 우뤄먹지 말 것. 많이 웃어줄 것. 사랑할 것... 처녀 적에 쓴 교단일기다. 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생각난 일기라 여기로 퍼 왔다. 지금 읽어도 새삼 자극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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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사실 제목이나 표지에서 끌린건 하나도 없었다. 저자의 이름만 보고 선뜻 서평단에 합류했고 운좋게 당첨이 되었다. 읽기를 참 잘했다.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책장을 넘기면 제목이 연필로 쓴게 나온다. 소제목들도 연필로 씌여졌는데 느낌이 새롭다. 5학년 3반 아이들이 주가 되다보니 초등학생의 글씨로도 볼 수 있고, 사지절단증인 담임샘의 글씨로도 읽을 수 있겠다.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보니 휠체어를 탄 담임샘과 그 반의 대표격인 아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아주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텍스터 서평이벤트 당첨 도서다.
<저자는> 저 : 오토다케 히로타다 /'오체불만족'의 저자.
참 밝다. 이 밝음이 책 전체에 긍정바이러스로 작용한다. 해피바이러스로 전파된다. 나아가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책 내용 맛보기> 새학년이 되는날 5학년3반은 신기한 기계(휠체어)를 탄 남자샘이 담임이 된다.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첫인상에서 아이들은 의구심과 여러 감정으로 복잡다단하다. 그런 샘옆에 보조샘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데 둘은 어릴적부터의 단짝 친구다. '일반적이다'의 기준이 뭔지를 시작으로 험난해 보이기만 한 가운데 아카오 담임샘의 첫 각인은 아이들을 열광시키고도 남았다. 첫 시간에 출석부를 안보고 28명의 아이들을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호명한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에 어린 제자들은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학급회의의 장소는 운동장. 벚꽃구경을 하며 진행한다는 참신함앞에서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발언권을 척척 내고...어떤 학급을 만들것인가의 최종 선택은 '모두모두 웃는 얼굴'로 정해진다. '모두모두 웃는 얼굴'을 향한 5학년3반의 가는길에 실내화 분실 사건이 생기고...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던중 실내화를 숨긴 아야노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다. 장애를 가진 친언니를 사랑하지만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계기로 사람속에 섞이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중 발생한 사건으로 샘의 현명함이 아야노의 의기소침함을 명랑한 적극성으로 동참시키고...
<책 읽은 소감> 시종일관 눈을 뗄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가 없는 몸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보조교사의 도움으로,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샘들도 힘들어하는 교사라는 직업을 어찌 해나갈까 하는 마음과 소소하게 매번 발생하는 학급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에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다른반 샘의 협력과 윗학년 샘의 조언으로 때론 해결하고 때론 그 모든것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진정 아이들을 위한게 뭘지를 고민하다 누구나 좋도록 현명하게 내리는 판단들 앞에서 가슴이 사뭇 뛰었다. 이런 샘들이 계시는 학교라면...
초등고학년인 아이들을 상대로 빠르면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도 있는데,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장애를 가진 샘 입장에서 그 모든걸 매끄럽게 아주 현명하게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나 믿음직했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매번 발생하는 일들 앞에서 왜 내가 먼저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그런 발생한 일을 앞에 두고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에 잠겨 보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생각도 못하다 다시 책을 읽으면 아카오샘의 처방전은 매우 훌륭했다. 경직되어 있는 나의 사고는 때론 내 아이에게 내 식으로의 주입만을 강요했을거라는 생각, 강요했다는 자책감을 끝없이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또 같은 오류를 되풀이할거라는 생각도 아울러 하고 있음에랴.
『"아이들은 아직 넘버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해. 그런데도 '넘버원이 되지 않아도 좋아.'라니! 처음부터 도망치는 것을 배워서 뭘 어떡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야." "역시 아이들은 넘버원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거죠?" "결과적으로 1등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1등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중한 거 아닌가? 그 노력이 자신의 능력을 키워 줄 테고.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라는 걸 얻지 못하는 경험 속에서 좌절도 느껴 볼 수 있는 거고." "좌절... 말입니까?" "나는 좌절의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물론 상처 입는게 괴롭긴 하지만, 인간은 좌절을 반복하면서 배워 나가는 게 아니겠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어떤 걸 잘하고 어떤 걸 못하는지 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되고." 중간생략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상처 입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좌절을 경험하지 않게 할까 하고. 이건 마치 '너는 그냥 너대로 좋아!' 하고는 비닐하우스에 가둬 놓고 온실 재배를 하는 듯한 느낌이야. 이렇게 하다가는 도리어 아이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말 거야."』---p108~109
위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데 부모맘은 내 아이가 덜 상처입기를 바라기에 내가 못했던 그 많은 결핍을 채워주려 한다. 가장 안전한 길로만 가기를 인도한다. 어렵고 힘든건 다 대신 해주려 한다. 그렇다보면 아이들은 결코 결핍을 모르고 자라나고 절박함을 모르기에 긴장감도 없다. 그저 나약한 한 인간만을 양산할뿐이다. 이해심, 배려, 협동심 그걸 배우고 실천해봤어야 하는데 오로지 왕자요 공주로 떠받든 생활을 하다보면 부모눈에만 이쁜 아이가 된다.
내 아이가 이쁘고 소중한 것만 생각하다보면 공중예절도 필요없고(기죽인다는 명목아래) 심지어는 학교에 가서 난동부림도 거침이 없는 경지가 되지 않나 싶다. 그게 학생이든 부모든 말이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안하무인으로 부모도 터치하지 않는 생활을 하다 공동체인 학교에서도 모난 모습이 될뿐더러, 그렇게 자라나 아무런 소명의식없이 안정된 일자리라서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직업인 교사라면 아이들 교육에도 얼마만치 관심을 쏟을까에 귀결된다. 물론 철저한 내생각일 수도 있으나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때 즐김이 되고 적어도 덜 힘든 것인데 각 방면에서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유치원교사를 한다면, 대인관계가 싫은 사람이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면, 헌신하는 봉사정신이 없는 사람이 의료계에 있다면 등등. 특히 이 시대의 동냥이자 한 인격을 양산하는 위치인 교사라는 직업은 특히 적성이 맞는 사람이 선택해야한다.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엄청난 직업이라는 생각이다. 모든면에서 미숙한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건전한 생각들이 곧 애국하는 길이지 싶다. 그런면에서 비록 내 엄청 좋아하지 않는 일본이고 일본책을 읽었지만 아카오샘 같은 마음을 가지신 샘들이 울나라에 많이많이 계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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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다리가 없는 아카오와 시라이시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아카오가 담임이 맡은 5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아이가 잃어버린 실내화를 찾지 못해서 베테랑 선생님께 도움을 청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가 실내화를 숨기는 행위로 드러난 것일 뿐이고 그 아이가 보내는 SOS일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운동회때 14경기 모두 1등을 하면 아카오 선생이 까까머리가 되겠다고 약속을 한 아카오는 비록 모두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아이들 앞에서 까까머리가 된다. 수영을 싫어하는 기미히코을 위해서는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5미터를 헤엄치겠다고 아카오선생은 약속을 하고 목표달성에 성공한다. 아이들은 휠체어를 타는 선생님과 소풍을 함께 가기위해서 소풍계획서를 세워 교장선생님을 찾는다. 결국 선생님과 소풍을 가게 된다. 그런데 전 날 비가 왔던 관계로 예상보다 힘이 들었지만, 3반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정상에 도착을 하게된다. 아카오가 부임하던 날 아이들에게 "저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지내면서 '아, 이럴 땐 곤란하겠구나.'하고 생각된 때는 꼭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3반 아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았다. 선생님의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관계속에서 더 많은 배움과 깨우침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코지가 이사가는 날. 반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주며 코지가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자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가기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이유로 친구를 시샘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좋은 게 있기 마련이다. "나와 작은 새와 방울"이라는 시를 공부할 때 아이들이 남긴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아카오 선생님에게는 팔다릴가 없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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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3반 오체 불만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소설이다.
우연한 기회로 초등학교 5학년 3반의 교사가 된 아카오. 어릴 적부터 (공백기는 있었지만) 자신을 도와준 시라이시가 그의 보조교사로 동행하며 시작된 아카오의 교사 생활은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냉정하게 그를 채찍질하는 동료교사 아오야기 선생님의 말처럼 교사는 아이들을 도와야하는 입장이지 아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카오는 솔직한게 무기이자 그의 삶의 방식. 소설 속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한다. (책 뒤에는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내용이 실려있다.) 그런 초조함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교사 생활은 시작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릴 적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기도 하였고, 일본과 우리 나라의 초등학교 교육의 차이와 정서적인 이질감이 좀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만연한 것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넘버 원이 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지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성취감까지 차단시켜 버리는 교육 시스템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생각해보게 되었다. 넘버 원을 제대로 칭찬해주지 못하고, 뒤쳐지는 아이들을 제대로 격려해 이끌어주지 못하는 교육 현장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였다.
물을 두려워하여 여름만 오면 우울해지는 아이를 이끄는 아카오. 등산에서 자신이 짐이 되니까 가지 않으려는 아카오에게 '혹시 장애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님 반 아이라면 어떻하겠습니까?' 물으며 같은 동료 교사로서 끝까지 동행하려는 선생님의 마음은 감동적이였다. 주인공 아카오, 3반 학생들, 동료 교사들,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아 성공적으로 교사 첫 일년을 보냈다.
모두 달라서 모두 좋고 모두 괜찮은 3반 아이들과 아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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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모델이라는 단어가 이젠 꽤 친숙하게 들릴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닮고 싶은 사람, 훌륭한 사람 그리고 성공한 사람. 거칠게 의미를 설명하자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 암튼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심심찮게 롤 모델들을 생산해내는 것 같다. 아울러 아주 오랜 관행(!)이랄까.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것이 있었다. 바로 장애인 롤 모델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 중 특출한 재능을 지녔거나 매우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을 이슈화 시켜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던 특별한 롤 모델로 만드는 것. 물론 그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아주 소수인 그들을 빌어 다수의 장애인 혹은 일반인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은 매우 마음을 불편케 하는 요인이었다. 때문에 예전 《오체불만족》과 주인공인 오토다케 히로타다를 알게 되었을 때도 감탄과 감동은 물론 있었지만, 동시에 다소 우려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삶은 배울 점이 많고 매우 훌륭하지만, 이로 인해 평범한 장애인들이 받아야 할 따가운 시선 혹은 ‘너희들은 사지 멀쩡한 것들이 어째 그리 나약한가!’하며 압박할 사회의 무지막지한 폭력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사지절단증이라는 매우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토다케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의 원천으로 만든 사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라 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그처럼 장애를 가진 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은 행복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아주 기본적인 삶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고가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때문에 오토다케의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 그에게 수업을 받은 아이들 또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며 웃고 떠들며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애인은 물론이고, 우리는 사회는 아직도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사고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깨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깨부수어야 할 매우 옳지 못한 사고이다. 피부색, 장애의 유무, 이념, 언어, 종교, 출신지, 출신 학교,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는 사람들. 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기필코 편을 나누고 내편 상대편을 나눠야만 속이 풀리는 심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책은 장애를 가진 선생님이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 마음속의 장애를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아마도 오토다케의 실재 경험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크나큰 갈등도 반전도 없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 자체로 많은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외에 다른 것들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가 그처럼 부러워하면서도 무시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에서조차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데,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르니까 모두 좋은 것’이란 말이 전해주는 의미는 결코 어렵지 않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면 더 큰 이해와 연대를 가능케 한다는 것일 테다. 그동안 편 가르기에 익숙했던 우리도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미덕을 배울 시기가 아닐까.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하기 싫다. 그것은 장애인들에게도 실례가 되는 말일 것이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아, 이것도 상투적 표현일까. 마음의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 그들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 어쩌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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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건강하여도 마음이 병들어 있다면 행복할 수 없다. 반면 마음이 건강하면서 육신이 정상이지 못한 신체장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건강한 몸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병들어 있는 이보다 행복할 수 있다. 지금도 선진국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없는 대접을 하면서 그들이 일반인들과 같이 사회에 진출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지 못한 나라들이 많은 것에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아직도 장애인들에 대한 애우및 제도가 잘 되어 있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오토다케씨도 중증 그것도 손발이 모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오체불만족을 통해 정상인들에게 더욱 심금을 울리게 했고, 이번에는 최고의 선생님이 되어 참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동의 소설을 썼다. 물론 소설이지만 그의 잠시 짧은 교직생활 속에서 경험한 일화들을 바탕으로 썼기에 읽으면서 직접 자신의 경험속에 묻어난 느낌과 생각들의 진솔함이 들어있다. 어느 날 휠체어 몸을 맡기어 팔다리가 없는 선생이 5학년 3반의 교실의 담임으로 나타났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냉정했지만, 그가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외워 그 얼굴과 매치하면서 부르는 것을 보면서 놀라게 된다.또한 운치있는 벚꽃아래에서 아이들과 학급회의를 하면서 딱딱하고 엄격한 선생님의 이미지가 아닌, 진정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면서 정감있고 사랑스러운 선생님으로 아이들은 조금씩 선생님의 존재의 매력에 빨려들어가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분신처럼 보조로 도와주는 둘도 없는 친구,,시라이시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그의 인터뷰중 시라이시가 진짜 인물인가에 대해서 질문에 실제 인물은 아니고, 다른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선생의 직책이 가능했다고 한다. 솔직히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장애인 친구를 교육위원회에 교사로 추천하고,자신이 친구의 보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었다. 물론 실화였다면 들러리 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시라이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이 책에서 신참선생으로 문제가 생기면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연륜이 있는 여러 선생님의 의견에 귀를 쫑긋해 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된다. 장애동생을 가진것에 창피한 선입견을 가진 아이에게 일반적이지 않은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 다른 것뿐임을 알게 한다. 또한 수영거부증을 가진 반아이에게 직접 온전치 못한 몸으로 50m지점까지 투혼을 하면서 도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운동회에 최선을 다해 일등에 대한 도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자신이 기꺼이 까까머리가 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는 당당하고 적극적인 선생님, 자유분방함에서도 함께라는 것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값진 우정과 끈끈함을 알게 한 선생님.. 등반이 포함된 소풍에 장애인이기에 포기해야만 하는 선생님을 놔두고 갈 수 없다는 반아이들의 항의에 결국 돌아가면서 휠체어를 여러명이 드는 수고를 기쁘게 생각하는 아이들로 변하게 했던 선생님,, 일반적이지 않은 장애인 선생님이 정상인 아이들에게 준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칭찬한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는 것처럼 어떤 일에도 자신감을 심어주고 다시 하면돼.... 괜챦아~~ 라는 말이다. 또한 반 아이 한명 한명의 자아존중감을 키워주고, 각자 다르기에 특별한 무엇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선생님으로 최고의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교단은 학생과 선생의 신뢰의 관계가 점점 무너져내려가고 있다. 그런 모습 속에 이 책의 선생님처럼 진정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명감있는 선생이 절실히 필요하며, 그런 선생님을 따르는 아이들의 행복한 교정을 그려보고 싶다.이 책의 주인공 아카오는 비록 몸은 부자유스럽지만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가슴으로 그들을 품었기에 진심은 통했고,5학년 3반 아이들의 교실은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었다. 몸의 지체가 조금은 불편하고 남과 다르지만, 이 책의 주인공 아카오는 정상인들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놀락운 일을 했다는 데서 정상인들을 부끄럽게 하고, 깨달음을 주게 한다. 실제 작가 오토다케씨는 주인공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한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짧은 교단생활동안 꿈을 실어주고,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실을 만들어준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앞으로 후편으로 그 아이들이 6학년이 되어 졸업까지 일들을 작품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다음이 기다려진다. 어떤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들의 모습으로 감동을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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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는 삶 그 자체가 기적인 사람이다. 태어날 때 부터 팔 다리가 없는 기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로 천형을 극복하고 정상인 못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귀감을 주는 멋진 남자이다. 더구나 얼마전에 둘째 아들까지 낳았다니 육체의 힘을 뛰어넘어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스포츠라이터로 활동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실제로 초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섰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이 책 출간후 인터뷰에서 밝힌 것 처럼 5-3반 아카오 선생님은 오토다케의 분신이며 아이들 앞에서 무방비로 자신을 내보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승부했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인 5학년이지만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모인 그 세상에서는 제법 심각한 일들이 아이들을 슬프게 하기도 하고 고통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던 초등학교 교사가 되긴 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카이 선생은 아이들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간다. 순수한 열정이나 충만한 자신감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난관들을 노련한 선배 선생님들의 조언과 보조교사로 곁을 지켜주는 시라이시의 도움으로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는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5-3반 아이들은 자신들과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는 일반적인 선생을 원했을 것이다. 스스로는 우유병의 뚜껑도 따지 못하고 등산도 할 수 없는 선생님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자신이 부족한 것을 도와달라는 솔직한 선생님의 태도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된다. 환경이 다른 가정에서 자라고 장점과 단점이 다른 아이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서로가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는 장면에서는 가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교실이 아닌 벚꽃나무 아래에서 정한 학급목표 '모두모두 웃는 얼굴'은 때로 속상하고 우는 얼굴이 되기도 했지만 몸이 불편한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가고 싶어했던 3반 아이들이 선생님의 휠체어를 서로가 밀어주고 이끌면서 결국 산의 정상에 올랐듯이 그렇게 모두가 웃는 얼굴의 목표를 이루고야 말았다.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삐죽하고 조금은 자신없는 아이들에게 아카오 선생이 늘 해주었던 그 말! '괜찮아 3반!' 참으로 힘이되고 가슴이 따뜻해 지는 말이다. 나에게도 이렇게 힘을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지만 사는 동안 내내 힘이 되주셨던 그분처럼...5학년 3반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괜찮아 애들아, 힘을 내자!. 세계 68억 인구중에 한 교실에 만났던 5-3반의 특별했던 1년을 보면서 존경과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교실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훌륭한 최고의 선생님이 많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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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하이타니 겐지로를 떠올렸다. 너무나 이상적인 교사로 내 머리에 콱 박혀버려서, 간절히 그런 교사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한참 왜곡되어 교육의 본질을 잃은지 오래다. 오로지 공부로만 몰아가며 그 외에 다른 길은 터 주고 있지도 않고, 공부가 최고라 여기고 있다. 정말 그럴까? 공부만 교육이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교육은 지금보다 더 엇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의 '괜찮다'는 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힘든 이에게 분명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오체 불만족>을 읽은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스테디셀러로 각광받고 있는 책이다. 표지의 띠지만 봐도 그의 장애 정도가 드러난다. 팔도 다리도 온전치 않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웃는 얼굴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다는 것을 책을 읽지 않아도 쉽게 짐작 가능하다. 이제 그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젤 먼저 드는 생각이 어떻게 그 몸으로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불가능 할텐데....일본은 우리와 교육 시스템도 비슷하고 환경도 비슷한데 이런 점은 굉장히 다르구나, 하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표면에 드러난 내용은 아카오 선생님의 장애가 눈에 띄겠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아카오의 장애는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유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과 겹쳐서 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아닌가만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기준에 아카오는 선생이란 자리에 앉기엔 맞지 않다. 특히나 학교는 일반적인 것을 중시하는 곳이란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기도 무척이나 힘들고 더딘 집단이 바로 학교이기도 하다. 아야노가 친구들의 실내화를 감추는 사건을 통해 그 아이 내면에 잠재된 트라우마를 읽은 아카오는 어떻게 해서든 그 상처를 치유해 주려고 한다. 도덕 시간에 '일반적인 것'이 뭔가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내어 아이들과 토론식 수업을 한다. 사실 일반적이다 일반적이지 않다의 기준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모두가', '대부분의 경우에'란 말로 두루뭉술한 사고에 익숙하고 거기에 갖혀있기도 하고. 그런데 일반적인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남과 다르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옳지 않거나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이상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언니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충격과 상처를 받은 아야노가 언니를 일반적이지 않다고 깨닫게 된다. 그것으로 괴로워 했던 아야노.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관계가 달라질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미처 그것까지 헤아리기엔 어렸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부모조차 도와주지 못했다. 아니 그걸 미처 읽어내지 못했을런지도 모르고 애써 외면 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아카오 선생님은 캐치해 낸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게 바로 이런 거 였다.
1등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그러나 아이들, 아니 나 조차 가끔은 간과했을지도 모르고 애써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있다. 이 부분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도전조차 할 수 없게 했던 것은 아닌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외에도 더더더 많지만 어른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때론 어른들과 단절의 벽을 쌓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르치려드니 교육적이어야 하고 훈계조가 되기 쉽상이니까. 다시 처음으로 가면, 아카오 선생님의 인사말을 못마땅했던 아오야기 선생님이 참 불쾌했더랬다. 교사인 우리가 어째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냐고 했다. 이런 교만은 부모인 내가 우리 애들한테도 있었지 않았을까. 몇 번쯤이나 있었을까....수 없지 많았겠지.
지나치게 감동적이지도 않고 비현실적이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겠지. 아카오 선생님이나 곤노 선생님, 교장 선생님 같은 진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을 만날 희망. 그렇게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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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두 팔을 펼쳐도 / 조금도 하늘을 날 수 없지만 / 하늘 나는 작은 새는 나처럼 / 땅 위를 빨리 달리지 못해. / 내 몸은 문질러도 / 아름다운 소리 나지 않지만 / 저기 우는 저 방울은 나처럼 / 수 많은 노래를 알지 못해. / 방울과 작은새, 그리고 나 / 모두 다르니까 모두가 좋아 -P.291 가네코 미스즈 지음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은 안다. 책 이름을 보고서야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인물이 생각났다. 사지절단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열심히 살고, 그가 22살때 쓴 에세이가 ’오체불만족’이다. 사지 절단증이라는 말만 듣고는 어떤건지 잘 모른다. 그래서 출판사에선 친절하게도 그의 사진을 같이 실어줬다. 상실의 시대를 헤쳐나갈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감동메세지라는 부제와 함께 말이다.
오토다케의 첫 장편소설 <괜찮아 3반> 제목도 와닿지만, 이상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와 여러아이들의 얼굴이 먼저 들어온다. 생김새는 다 다르다. 그런데 이들의 얼굴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왜 행복할까? 3반. 어떤 3반의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읽기시작하고는 행복감을 느낀다. 아... 행복하다. 책한권이 이 추운겨울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 도쿄, 마쓰우라 시, 마쓰우라니시 초등학교 5학년 3반의 선생님은 참 특별하다. 손도 발도 없지만 신기한 기계를 타고 나타나서는 못하는게 없이 아이들과 함께 어울린다. 아카오 선생님 그리고 아카오 선생님을 보조하는 시라이시 선생님. 아카오 선생님의 신기한 기계, 전동휠체어는 선생님을 1m70cm까지도 만들수 있는 요술 기계다. 하지만 그 신기한 기계보다 선생님을 보고있으면 더 신기한다. 5학년 3반의 28명의 아이들은 아카오 선생님과 함께 자란다. 그 자라는 과정은 우리네 아이들과 다를바가 없다. 실내화가 없어지기도 하고, 운동회에서 1등을 목표로 달리기도 하고, 수영이 무서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몸이 불편한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가기위해서 모든 학생이 힘을 모아 100kg가 넘는 전동휠체어를 들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축제대신 전학가는 친구를 위하여 출정식을 하기도 한다.
그 모든 시간들 속에서 아카오 선생님은 68억분의 28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일깨워준다. 그리고 왜 아이들이 이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것 또한 성장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너도 내가 운동을 못했던 거 알잖아.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 난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런 것뿐 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어. 상처 입는게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것 같다. ....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 좀 더 노력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운동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다 그래. 공부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넌 참 대단했어. 우리보다 할수없는 일도 많고, 시도하기에 부담스러운 일도 많았는데, 어쨌든 넌 부딪쳐 봤잖아. - p.103
신체적 장애나 정식적 장애나 이런것을 떠나서, 아카오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들 인생에 축복인지 모른다. 그런 축복이 우리에 모든 아이들에게도 생기길 바란다. 5학년 3반 아이들이 아카오 선생님에게 한 말처럼 말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길 바란다.
"선생님에게는 팔다리가 없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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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불만족이란 책을 통해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라는 이름이 한번에 낙인 시킨나머지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에게 신체적인 조건이 살아가는 데 조금 불편하다정도에 지나지 않는구나 그럼 나는? 이란 질문을 하게했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되다
그가 직접 선생님이 되었다니 이거 정말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다른 일도 아니고 과연 모든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고 선생님까지 할 수 있을까 결국 중도에 하차하는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보자면 모든 일이 기적과도 같은 그에게 선생님도 잘 해냈다. 그것도 정말 훌륭하게 잘 해낸 모습을 보여준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아카오 선생님도 처음에 친구 시라이시의 권유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의견을 통해 흔쾌히 동의하지만 순간 순간 후회하기도 한다. 기대반 설레반으로 시작된 5학년 3반을 맡게된 그가 겪었던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서 회상하기도 한다.
28명의 아이들 하나 하나 이름을 모두 외우고 비록 그들 하나하나를 안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사실 평범했던 학창시절 모든 선생님과 안아본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실내화가 없어진 사건과 결석한 아이를 위해 편지를 쓰는 에피소드를 통해 누구냐! 호통하기가 먼저 일테지만 일단 경험이 많은 선생님의 조언을 들어보고 결국 실내화를 숨긴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세심함이 느껴졌다.
체육대회, 소풍은 또 어떠하지? 아이들에게 피해를 덜기 위해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선생님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결국 멋지게 모두 해결한다. 학교생활에서 사실 문제해결을 위해 의견을 낸다기 보다 의견충돌로 싸우기 바쁜 일상적인 우리의 교실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멀리 전학을 가야하는 아이에게 서운함을 덜어주고자 수업내용을 통해 몸은 멀리 떨어지더라도 친구라는 단순하지만 진리를 일깨워주었다. 웃으면서 보내주는 게 5학년 3반이라는 급훈에 맞게..
모두 다르니까 모두가 좋아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이 전체를 지배하는 요즘에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은 배가 된다. 그의 다른 모습이 어떨지 기대는 커녕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 일단 외면하기부터 한다. 세상에는 해보기도 전에 포기부터 할 때도 있었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좋다라는 긍정적인 태도가 절실히 필요했던 내게 영화<죽은시인의 사회> 이후 감동적인 멋진 선생님을 만났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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