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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제렌트와 슈테엔 키틀의 [예술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인희 번역으로 읽다. 바로 얼마 전 그림 관련책을 읽어서 쏙쏙 들어오는 건가 싶었더니만 독일에서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다 읽고 든 생각은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책 한 권만 미술 시간에 읽었어도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고등학교를 옛날 옛날에 졸업하고말았으니 이 책으로 인한 내 인생의 변화의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듯싶다.
구성이 잘 이루어져 미술에 문외한인 이들이 손에 들어도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겠구나 감탄했다. 자꾸 쉬운 책만 읽으면 아니 되겠지만 이런 식으로 낯선 세계에 성큼 한발짝을 내딛는 것도 보람찬 일이라 여겨진다. 1장 루시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서 근대의 성상 파괴를 다룬 6장 광기냐 신의 의지냐?도 흥미롭게 읽었다. 번역을 잘 한걸까, 원문이 매끄러운건가 가늠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쏙쏙쏙 들어오니 한장 한장 넘기는 일이 즐겁기만 했다. 내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역시 소수의 여성 예술가를 논하는 장에서는 더 집중해서 읽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처음 보는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더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남성의 누드화를 그릴 기회가 없는 여성 화가들이 그림을 잘 그리면 '기적'과 같이 여겼다는 반응에는 씁쓸한 한숨만 잔뜩 내쉬었다. 수잔 발라동의 그림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위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상황은 점차 나아지리라 애써 낙천적인 미소를 지어본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1644년작 [무릎 위에 책을 펼치고 앉은 난쟁이]는 처음 보는 작품.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는 호기심이 이 작품으로 동했다. 막스 에른스트의 일화는 가슴을 저밀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거 같다. 예술이란 영역의 뒤틀린 현상에만 카메라를 비추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후원 좀 팍팍 해주면 좋겠는데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이 정도로 느낄 정도라면 예술가들은 대체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는 걸까. 보다 더 긍정적인 예술 활동이 곳곳에서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까닭없이 신정아가 떠올랐다. 그녀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언론을 통해 잠깐씩 인용되던 그녀 책 속 구절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란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원하는 것이 약육강식은 아닐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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