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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하면 떠 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우선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그리고 카스트로, 관타나모, 생태도시로 알려진 아바나가 떠 오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리브해에서 비록 가난하고 고달픈 생활을 하지만 낙천적이라는 그들의 생활을 보고 싶기까지 하다. 바로 미국의 코 앞에서 온갖 위협과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면서는 쿠바에 대한 여행기인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쿠바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다. 대항해 시대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잔혹한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쿠바는 1492년 콜럼버스 탐험대에 의해 발견 되었다. 인도로 가는 뱃길을 열고자 했던 탐험대는 그곳이 인도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카리브해에 널려있는 섬들을 지금도 서인도제도라고 부른다. 16세기 이후 카리브해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된다. 대항해 시대에는 아메리카 정복을 위한 전진기지로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대립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한 곳이기도 하다. 쿠바는 처음 발견된 16세기 이래 스페인의 중요한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쿠바 대혁명 이후 1961년 정식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선포했다. 지금도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이자, 범죄율이 낮고 빈부격차가 거의 없는 가장 안정된 나라라고 한다. 쿠바의 원주민은 동굴생활을 하는 과나아타베이족, 구석기 생활을 하던 시보네이족, 그리고 신석기 문화와 농경생활을 하던 타이노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멸망되었다고 한다. 이에 스페인의 개척자들은 아메리카 정복활동을 위한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고자 흑인노예들을 데려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쿠바 흑인문화의 다양성과 복잡한 흑인 사회구조를 탄생시킨 원인이라고 한다. 이들 흑인들에 대한 핍박과 착취는 흑인노예 저항운동을 불러 일으켰고, 19세기 중반 노예해방운동으로 노동인구가 급감하자 쿠바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이 무렵 중국이 개방되기 시작했고, 노예상인들은 흑인노예대신 중국인 계약노동자 쿨리를 모집했다고 한다. 쿨리들이 흑인노예와 다른 점은 형식적이나마 노동계약서를 작성한 것 이었지만, 그들 역시 노예상인에게 속아서 끌려왔고 흑인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한다. 1868년 10년 전쟁이 일어났다. 쿠바사회의 각 구성원들은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나가 되어 스페인과 싸웠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0년 전쟁은 노예해방운동의 목표가 흑인노예의 자유쟁취에서 쿠바의 독립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은 훗날 독립국가 건설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쿠바는 잔혹한 노예사회가 빚어낸 혼혈사회이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원정대는 초기 스페인 귀족의 적장자가 아닌 하급귀족인 이달고가 이끌었다고 한다. 그들의 자식으로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인 크리올, 스페인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흑인 메스티소, 흑인과의 혼혈인 물라토, 그리고 화교인 쿨리까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지만 오늘 현재는 서로 차별하지도 않고, 어디 출신인지 따지지도 않고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고 한다. 쿠바의 문화는 달콤하고 쌉쓰름 하다고 한다. 시가와 사탕수수와 럼주가 빚어내는 문화이다. 처음 카리브해를 발견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이 피우는 담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담배를 약재로 사용하는가 하면, 혹은 종교의식으로 이용하면서 일상적으로 음용 하고 있었다. 담배에 담긴 민족정신과 예술은 쿠바의 민간신앙에 스며들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단다. 해양시대가 열리면서 이 담배가 유럽에 전해지고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통해 16세기경 아시아까지 전해졌다. 시가는 이렇게 쿠바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쿠바 독립혁명의 불꽃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사탕수수는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 때 유럽에서 전한 것이 쿠바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사탕수수는 그것의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카리브해에서 왕성하게 번식하여 마치 카리브해가 원산지인 것처럼 상징이 되어갔다고 한다. 럼주는 사탕수수를 증류시켜 만든 것이다. 18세기 당시 럼주는 선원이나 노예가 마시는 하층민의 음료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사람들이 사랑하는 향료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담배와 사탕수수의 재배는 흑인노예의 아픔과 함께 한다. 그것들은 노예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었으며, 럼주의 향기 뒤에는 고통스럽고 비참한 노예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페인의 침략과 함께 들어온 가톨릭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유문화를 말살하였지만, 이내 그것은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들어오면서 함께 온 부족신앙과 뒤섞였다고 한다. 현재 쿠바의 가장 보편적인 민간신앙인 산테리아는 아프리카 부족신앙이 가톨릭과 섞이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음악 역시 스페인풍과 아프리카 음악이 융합되면서 다양한 장르로 발전해왔다. 축제의 대명사인 카니발은 본래 가톨릭 종교의식이었으나, 이제는 종교와 상관없이 쿠바 문화의 역사이며 민족음악의 요람이 되었다고 한다. 아바네라 라고 불리는 커플댄스곡인 아바나 무곡은 전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20세기 중반 살사 선율은 카리브해를 휩쓸고 유럽과 아시아까지 전해졌다. 쿠바인들은 일상 속에서도 매일 카니발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한다. 쿠바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금수조치로 그들의 경제는 파탄이 났으며, 그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시작한 쿠바인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도와줄 줄 알았으나, 1899년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이양했다. 10년 전쟁이래 30년간의 투쟁 끝에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으나, 이후 50년간 미국에 예속되고 만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와도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901년 미국의 지배아래 쿠바정부가 수립되고 관타나모는 이때 미국에 영구 임대 되었다고 한다. 쿠바집권층과 미국기업의 탐욕으로 경제와 사회상황은 악화되고, 사회는 분열과 반목을 반복하다 1952년 군벌 출신 바티스타의 쿠데타로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된다. 1956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게릴라전에 돌입한다.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1959년 쿠바대혁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후 부동산과 토지제도의 개혁을 시작으로 사회체제 개혁에 돌입하고 미국은 설탕수입금지와 함께 경제원조를 중단하고, 무역 금수조치를 실시한다. 이후 미국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쿠바의 체제전복과 카스트로 암살을 수도 없이 시도하지만 쿠바인들의 단결과 민중의 강렬한 애국의식은 미국도 어찌할 수가 없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쿠바 하면 또한 헤밍웨이를 떠 올린다.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는 쿠바가 그 배경이다. 그런가 하면 체 게바라를 떠 올린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라틴아메리카의 영원한 혁명동지인 그를 아직도 쿠바인들은 잊지를 못한다. 럼주와 시가와 살사로 대표되는 그들의 문화는 분명히 매혹적이지만, 그들의 역사는 잔혹하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해안에서 시가를 피우며, 럼주를 마시면서 그들의 춤을 보고 싶다. 그 옛날 흑인노예들의 아픔을 마음속으로나마 위로 하면서.. |
![]() 쿠바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전세계 피끊는 젊은이들의 우상,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사랑한 쿠바는 분명 매혹의 땅이며,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임에 틀림 없다. 쿠바의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과 정열을 간직한 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은 낙천적인 그곳 사람들을 보며 부가 삶의 전부도, 행복의 척도도 아님을 배우게 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 당하고 살아 남은 원주민들은 중노동에 시달리거나 스페인 시림들이 옮긴 전염병에 의해 거의 전멸 되었다. 정복자들은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노예와 중국 쿨리를 수입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쿠바는 다양한 민족과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쿠바의 토착 신앙과 가톨릭이 어우러진 쿠바의 종교의식과 인종, 정치, 시가, 사탕수수, 음악, 건축, 예술등에는 그들이 지나온 참혹한 식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토록 처절하고 참혹하기 그지 없는 수탈과 착취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세계가 열광하는 매혹적인 쿠바의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이 책은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매력적인 쿠바 문화의 뒷면에 우리가 상상도 못한 고통의 세월이, 그들이 흘린 땀과 피가 베어 있음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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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나에게 아직도 머나먼 숙제처럼 여겨진다. 알면 알수록 내가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과 그 깊이를 알기엔 더 많은 자료와 책들을 탐독해야한다는 생각. 카스트로 정권이 거대 공룡 미국을 상대로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100만에 가까운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사실 속에서 (미국이 쿠바의 약점을 들어 이용한 부분이 있기도 하겠지만) 쿠바의 역사를 지극히 개인적 사견으로 이해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거대 자본에 맞서 투쟁중인 쿠바는 세상에서 못사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불행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직접 쿠바의 공기를 마셔보진 못했으나 쿠바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그들의 낭만과 순박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자본과 행복지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혹, 쿠바를 향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미의 많은 나라들을 생각하면 깊고 진한 맛이 난다. 그들이 격은 아픈 역사와 혼열이라는 다민족성, 인디언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 듯한 야성. 굽히지 않는 혁명적 이미지까지. 쿠바는 미국의 바로 코 밑에 있는 나라이지만 미국의 속국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혁명의 피를 흘린 나라이다. 그런가하면 카스트로는 52년이라는 세계 최장기 독재정권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심심찮게 카스트로의 독재정치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접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오래하면 곪기 마련이다. 카스트로와 쿠바가 많은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최선의 선택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은 쿠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름하여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이다. 유럽열강들이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쿠바의 원주민들에게 보여준 잔혹함과 그 영향에 의해 발달하게된 설탕과 시가와 럼주, 스페인 정복자들이 데려온 노예와 미국에 의해 추방당한 중국인들, 거기다 스페인의 하급귀족들까지 혼열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문화와 종교. 쿠바가 유럽열강에 저항하며 흘린 피의 흔적들 쿠바의 10년 전쟁은 스페인의 폭정에 항거한 쿠바 최초의 해방혁명이다. 스페인은 1874년 쿠바인의 아버지로 불린 세스페테스를 처형한다. 세스페데스는 아들 오스카가 스페인의 정부군에 포로로 잡혀 아들의 목숨을 볼모로 항복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지만 “오스카만 나의 아들이 아니다. 나는 혁명에 희생된 모든 쿠바인의 아버지다” 라고 말했다. 10년 전쟁 후에는 마르티가 나타나 제2차 독립운동에 불을 붙였고 그 또한 쿠바 해방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혁명가이면서 작가였던 마르티는 “큰 코끼리는 우리에 갇혀 자식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페루의 알파카는 인디언들의 성난 꾸짖음을 듣거나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면 죽어버린다. 인간도 코끼리나 알파카처럼 염치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피의 값으로 얻어낸 쿠바의 독립혁명 뒤에는 쿠바에 군침을 흘리던 미국이 있었다. 쿠바의 독립을 돕는다는 이유로 스페인을 몰아내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독립군 총사령관 고메스는 “쿠바는 아직 해방된 것도 아니고 독립을 쟁취하지도 못했다. 쿠바가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기 전에는 절 대 총을 내려놓지 않겠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 없는가? 우리가 일본에게서 독립을 쟁취하려할 때도 미국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는 분단된 조국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있었다. 쿠바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30년간 치열한 투쟁 끝에 스페인의 통치를 벗어나지만 다시 미국의 신패권주의 하에 50여년을 보내야 했다. 1955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카스트로는 결국 1976년 쿠바의 국가원수가 된다.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반식민지 상태에서 카스트로의 개혁은 결국 미국의 무역 금수조치를 맞게 된다. 부동산을 한 개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한 개 이상의 부동산은 정부가 몰수하여 집 없는 사람들에게 월세를 내주었다. 집값을 월세로 모두 내게 되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쿠바의 모든 기업을 국유화하는 개혁조치를 단행한다. 외국 자본이 운영하던 모든 기업을 국가가 몰수한다. 1960년 미국은 설탕 수입을 중단하고 기타 경제원조를 중단한다. 다른 나라에게도 전면적인 무역 금수조치에 동참하도록 압력한다. 카스트로 정권 50년 동안 총 100만 명의 쿠바인이 해외로 망명했다. 이 또한 미국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쿠바인이다. 미국의 금수조치에 의해 세계 최강의 유기농 국가가 되었고 여행자들에겐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쿠바의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미국의 봉쇄조치에 열강을 이용해서 이겨낸 카스트로. 그의 지혜가 녹슬지 않기를 바란다. 52년이라는 장기집권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쿠바의 국민과 카스트로가 현명한 결정을 해주길 바랄뿐이다. 나에게 많은 숙제와 의문점을 남긴 책이다. 앞으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한 나라. 쿠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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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쿠바는 나에게 시가와 사탕수수 그리고 혁명투사 체 게바라의 나라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를 통해 쿠바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교정할 수가 있었다. 특히, 저자인 대만 출신의 천샤오추에는 흑인 노예를 대신해서 쿠바에 정착한 중국출신 쿨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멀리 카리브 해의 나라 쿠바에 어떻게 중국인들이 살게 되었는지도 알 수가 있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체 게바라는 쿠바 사람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다. 일단 제목에도 나오는 듯이 역사와 문화적 관점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대항해시대라고 명명된 15세기 이탈리아 출신 콜럼버스는 통일 제국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 발견에 이르게 된다. 지금도 논란이지만, 그것을 과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 제국주의의 역사는 영국에 앞서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스페인이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라 쿠바의 그것과 일치한다. 아메리카의 관문이라고 불렸던 쿠바는 스페인 식민제국의 전진기지로 그리고 그 후에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쿠바산 시가 그리고 사탕수수 생산기지로 스페인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식민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착취와 수탈로 쿠바 원주민들이 거의 전멸하자 담배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됐다. 그래서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사서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한다. 그리고 노예제가 폐지된 다음에는 중국에서 쿨리를 명목상의 계약으로 데려다가 착취했다. 이것이 오늘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쿠바의 문화 지형의 배경이다.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한 미국은 식민 종주국 스페인을 대신해서 쿠바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치열한 독립전쟁 당시부터 개입한 미국은 실제로 빈번한 쿠데타와 불안한 정정을 틈타 실제로 쿠바를 점령하기도 했다. 고대에 지중해가 로마의 호수였던 것처럼, 카리브 해를 자신의 호수로 생각한 미국은 한때 쿠바를 본토에 합병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쿠바 경제가 자신들의 경제 영역과 겹치는 남부 제주가 반대하고, 쿠바 민중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된 역사가 있다.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의 지원을 받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에 전복되면서, 사회주의를 표명한 신생 쿠바는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소 냉전대결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으로 인류의 존망을 극한으로 몰고 갔던 그야말로 숨 가쁜 역사의 현장이었다. 미국의 젊은 지도자 존 F. 케네디에게 소련 공산당 지도자 흐루시초프가 극적인 양보를 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가 있었지만, 그 후 쿠바는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 봉쇄로 경제발전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국민의 행복지수를 단순하게 GDP 같은 수치로 표현할 순 없겠지만, 카스트로 정권의 사회개혁으로 국민 대부분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혜택을 받으며 사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가 잔혹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다음은 매혹적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역시 쿠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로 음악과 춤이다. 미국 남부에서 유래한 재즈와 블루스가 흑인들의 고달픈 삶의 내적 승화라고 한다면, 역시 비참한 삶을 살았던 쿠바 출신 노예들에게는 다양한 소스에서 시작된 쿠바 크리올 문화에는 쿠바 민요라고 할 수 있는 손(son)이 있다. 수갑과 족쇄에도 리듬을 잃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현세의 고통을 잊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음악과 춤이었다. 단선의 기타와 대야나 양동이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맞춰 쿠바 사람들은 몸을 흔들었다. 스페인 식민 제국주의자들을 따라 라틴아메리카에 전파된 가톨릭 신앙의 카니발 문화는 억압된 생활을 하던 흑인들이 감정을 표출할 기회였다. 육식을 금하던 40일간의 사순절에 앞서 종교적 의례로 시작된 카니발은 이제 금욕 대신 맥주와 럼주에 취하는 광란의 열정과 여흥이 난무하는 쾌락의 장으로 변했지만, 공동체가 가진 모순의 감정적 순화라는 점에서 그 순기능을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유명한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 같은 쿠바 음악의 거장에 대한 설명도 빼놓을 수가 없다. 미국화된 쿠바 음악으로 유명한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음악도 오래전에 좋아했는데, 이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보니 참 반가웠다. 아바나 무곡으로 알려진 <아바네라>가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동명 아리아의 원조였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마지막에 나오는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 편에서는 헤밍웨이나 체 게바라 같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인물보다 거의 처음 들어보는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그리고 위프레도 램 같은 예술가의 이름에 더 눈길이 갔다. 마침 카르펜티에르의 단편이 실린 책을 한 권 가지고 있는데 당장 읽어봐야지 싶다. 중국계 쿠바 사람인 위프레도 램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었는데, 아쉽게도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책에 그의 그림 한 점 없는 게 아쉬웠다. 언제나 그렇듯 책을 다 읽고 나니 쿠바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콘 바닷가에서 럼주를 마시며 거리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상상에 젖어 본다. 당장은 그럴 수 없으니 대신 콤파이 세군도 밴드의 <관타나메라>로 아쉬움을 달랠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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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반대편,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으로 날아갔다가 들어가야 하는 멀고도 먼 나라. 쿠바. ‘모터사이클다이어리’를 통해 체 게바라를 만났다면 그가 사랑했던 나라 쿠바도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음악을 들었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생소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멀기도 멀지만 사회제도가 다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트위터 @castellio이라는 분이 올린 내용을 보면 “전 과정이 무상교육인 쿠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의 입학기준은 다음 세 가지라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25세 미만, 가난한 집안. 특히 마지막 요소가 특별한 윤리관을 갖게 해 준다고 학교관계자는 말한다. 이런 세상도 있는 것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르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쿠바 잔혹의 역사 매혹의 문화’로 접하는 순간 쿠바는 더욱더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다. 제국주의 침략과 독립운동,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 그리고 중국노동자들의 피가 뒤엉킨 역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의 세계탐험과 정복의 역사를 온몸으로 간직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 섬을 발견한 이후 전개되는 제국주의 정복의 역사 기록을 시작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한 쿠바 원주민들의 몰락, 그 이후 흑인노예와 중국인 쿨리에 의한 사탕수수와 담배산업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쿠바의 모든 사업은 원주민과 흑인노예, 중국인 쿨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어지고 얽히고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잔혹의 역사가 어느덧 매혹의 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5장 쿠바에 던진 미국의 경제봉쇄 그물에서는 카스트로의 절묘한 외교정책과 10명의 미국 대통령의 상대로 이겨낸 철인 지도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카스트로의 지도력이 아니라, 쿠바 국민들의 지독한 단결력이다. 10년 전쟁을 통한 독립실패 이후에도 원주민과 흑인, 중국인으로 얽힌 그들 민족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떠나 하나의 나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다. “큰 코끼리는 우리에 갇히지 않는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그들의 외침이 쿠바 독립과 대혁명 그리고 미국에 맞선 단결력이자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쿠바의 문화 구석구석을 만날 수 있다. 역사는 기본이고 사탕수수에서 시작된 설탕, 그리고 럼주를 통해 쿠바를 사랑하게 되고, 살사 춤을 통해 그들의 리듬을 알게 된다. 또 아프리카 흑인노예와 중국 쿨리가 만들어낸 혼혈사회. 인디언 문화를 잔혹하게 말살한 가톨릭과 정복자들이 소개된다. 7장 쿠바를 사랑한 사람들 편에서는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 화가 카르펜티에르, 그리고 위프레도 램이 소개된다. 이 부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은이는 대만 교수인 천샤오추에씨다. 현재 대만 탄지앙대학 스페인어문학과 교수다. 옮긴이는 중어중문학과 전문 번역가인 양성희씨. 결국 이 책은 중국어로 쓰인 쿠바에 대한 내용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책 편집이 마치 교과서 같다. 수록된 사진에는 새로운 사진도 있지만 자료사진이 많다. 따라서 쿠바를 배우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