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9월 9일 오전 10:34 섰던글.
주황색 표지에 고양이가 사자모양을 한 그림이 묘하게 와 닿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딱딱한 스피노자의 글을 어떻게 동물 우화로 끌어냈을지 조금은 순하고 재미있을지 기대하며 읽었으나 내용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을 후회할만큼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진정으로 읽으려면 일주일은 고민하고 읽어야 본 뜻을 받아들일 듯 싶은데 그러기엔 나의 게으름과 시간을 탓할 수 밖에 없을것 같아서 아쉽다.
*핏속의 벌레 핏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벌레의 관점에서 보면 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주의 특정한 부분 안에서 살아가고 있듯이, 핏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벌레는 피의 각 부분을 하나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그런 부분들 모두가 피의 보편적 본성의 지배하에 있는지, 어떤 식으로 그러한 피의 보편적 본성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모든 부분들이 서로 조응하도록 강제되어 특정한 관계에 따라서 서로 합치하는지를 알 수가 없지요" 어떤 식으로 전체가 자신의 역량을 부분들에 강제하는지, 즉 어떤 식으로 전체가 부분들을 자신의 본성의 법칙들에 종속시키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모든 사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고 노력한다."
*바다속의 물고기 스피노자에 따르면, 바로 이렇게 각자가 자신이 선택받았으며 다른 이들은 버림받았다고 주장할 때, 편견이 "미신으로 변한다"
*날개 달린 말에 대한 관념(관념은 이미지가 아니다.) 긍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관념들을 표상하는 지성entendement, 그리고 그러한 관념들을 참되다거나 거짓되다고 판단하는 의지volonte, 이렇게 두 능력을 구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류는 관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성급히 판단을 내려 버리는 우리의 의지 안에 있는 것 같다.
*흔적(이미지는 혼합이다.) 이미지들은 우리 안에 새겨지고, 우리 안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이 흔적은 다른 흔적과 연합되어 기억을 형성한다. 이러한 연합은 주로 우리 신체의 본성과 역사에 의해서 설명된다.
"공포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들을 착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던가! 미신을 낳고, 보존하고, 키우는 것, 그것은 바로 공포다."
*이웃집 닭 우정은 정신의 융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와 확인에 대한 기대 안에 있다. 스피노자가 편지 위에 찍었던 봉인의 의미 Caute, 그것은 "신중하라!"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은 "결코 예속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 본성의 자유다."
"돈, 성욕, 명예는 우리가 그것들 자체를 위해서 그것들을 추구할 때에만 해롭고,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추구한다면 결코 해롭지 않다."
*사자 시기심 안에도 역시 절제가 존재한다. 시기하는 자는 자신이 시기하는 자와 자신이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명예롭게 하기를 욕망한다. 무지한 자들만큼이나 지혜로운 자도 명예심에 의해서 인도된다. 겸손은 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슬픔이며, 많은 경우 엉큼한 형태의 자만심이기 때문이다. 참된 인식은 인간들의 평등을 해치지 않는 유일한 선이다.
*뱀 "그렇다면 누가 그 악마를 속였는가? 신을 능가하고 싶어 할 만큼, 가장탁월하게 지성적인 피조물을 미치게 만든 것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 자신이 그렇게 했단 말인가?" 절대적으로 악하고, 전적으로 신에 대립하며, 전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는 단 한순간도 지속할 수가 없다. 부정적인 역량, 즉 부정적인 것이 지닌 역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개념은 말 안에 존재하는 모순일 뿐이다. 따라서 증오, 질투, 노여움 등을 자연적 원인들로 설명하지 않고,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우울증 "하나의 동일한 것이 선이면서 동시에 악이고, 심지어 선도 악도 아닌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음악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선이지만, 슬픈 사람에게는 악이며, 귀머거리에게는 선도 악도 아니다."
*사회적 동물 홉스-인간이 서로 결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바로 공포다. 스피노자-인간은 고독에 대한 공포를 타고났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서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삶에 필수적인 것을 손에 넣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따라 나오는 결론은 인간이 본성에 의해서 사회를 욕망하며 결코 완전히 사회를 파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스콜라학자-인간은 결코 고독 속에서 삶을 보낼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사태는 이렇다. 인간의 공동체적 사회로부터 불편함보다는 이익이 훨씬 많이 생긴다. 결국 스피노자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를 유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