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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력과 실행력, 실용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재 등용가이면서 뛰어난 군사전문가, 정치적 카리스마로 치세의 간웅으로 대접 받기를 거부한 난세의 영웅 조조, 그러나 우리는 조조에 대한 이미지가 치세의 간웅으로 평가 받기를 강요 받아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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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식견과 취향으로 인해 나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설인 '삼국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 제 22장 큰별이 떨어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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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술의 대왕 조조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위나라를 우리는 조조의 나라라고 말한다. 후대에 들어서 통일을 이루었지만 통일의 바탕은 조조의 업적임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조조는 지략과 처세술의 달인(?) 정도로 이해되었고 삼국지의 모든 판도는 유비형제의 활약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암암리에 박혀 온 선과 악의 이분법 논리에 따라 교활함과 잔인함으로 대변되어온 조조는 악의 부류로 분류되어 내 기억의 한편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은 우리 후대의 몫이지만 한 시대의 인물과 왕조를 건들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어쩜 우리는 승자와 기록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기술된 역사이기에 우리의 그 시대의 진실성과 인물의 진면목을 놓치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조조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보다 조조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게 하는데 기여를 했다고 본다. 난세영웅쯤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개혁자였으며 미래지향적 현실 정치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을 등용하고 품고 이용하는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용인술이 난세에 뛰어난 정치가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원칙에 충실하면서 현실을 정확히 읽고 과감히 버릴 줄도 아는 결단력이 현실 속에 우리 정치인과 경영인이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지연과 학연에 의지하여 줄서기가 성행하는 요즘 정치 문화에 쓴 소리를 간접적으로 내뱉고 있다. 선거 때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 사람 찾기에 급급하고 아무 대책 없이 사람을 쓰고 당선 후 일정 정도의 논공행상이 펼쳐지고 결국 집권 말기에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씁씁한 뒷맛을 남기는 정치인의 모습이 다반사이다. 올바른 정치 철학도 없고 도덕성마저 저버린 이러한 정치 세태에 반드시 필요한 정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정치 교과서로서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0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만큼 조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삶과 철학, 문학, 지성까지... 삼국지처럼 드라마틱한 장면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주의 입장에 충실한 역사서 한 편을 큰맘 먹고 읽지 않으면 도파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생동감 있고 충실하게 제시된 삶의 흔적들을 다시 곱씹으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성 싶고 옛 시대를 살았지만 현실 속에서 조조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썩 재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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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삼국지를 섭렵 했어도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있게 파악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확실한 인지와 더불어 삼국지 내용을 다시금 되새기며 총체적인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 었다. 이 책에서도 거론한 것처럼 '조조'라는 인물이 치세의 간사한 간웅인지 난세의 위대한 영웅인지는 각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어설픈 선입견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조라는 인물은 과연, 어떠한 사람인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자신의 욕망이나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 하는 능력이 있다. 2. 성공에 조급해 하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근면함이 있다. 3. 명분과 실천의 의미를 분명히 인지하고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서슴 없이 바로 실천에 옮겼다. 4. 정권을 차지한 후에도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인 태도로 군사, 정치 면에서 많은 공적을 쌓았다. 5. 둔전제와 군둔제를 시행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군량미 문 제를 해결했다. 6. 적장을 관용으로 포용하여 적장을 따르던 자들까지 얻는 배려와 포용 력이 있다. 7. 언제나 국가 발전과 백성들의 복지에 많은 고민을 했다. 8.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9. 계급이 낮거나 결점이 있는 사람이라도 인재라면 언제든 등용하는 등 인재 발굴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10. 전투에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업성 문인 집단 을 키워 중국 문학의 기반을 다졌다. 11. 난세를 평정하고 사회 안정을 실현하며, 군대의 조직력과 규율, 전투력 을 강화했다. 12. 적의 특징과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작전 계획과 군사 행동을 펼쳤다. 13.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고 주위의 의견 을 적극 반영했다. 14. 근검절약을 생활화 했다. 15. 산문, 음악, 서예등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였다.
위와 같은 많은 장점을 소유한 한시대를 통치할 만한 뛰어난 인물이지만, 사람인지라 분명, 단점도 있었다. 적벽대전에서 참패 원인도 모든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어 점점 교만해져서 적을 무시하여 적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경솔한 자세로 임했 기 때문에 대패를 하게 되었다. 또한, 본인의 뜻에 어긋나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아 온거 같다. 삼국지 내용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좋은 점들을 많이 부각시켜 나타 내는 경향이 있는데 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하는 부분에서는 조조가 단연 으뜸으로 현시대에서도 본받을 만한 인물로 꼽으며, 조조를 소재로 출간 되는 책들도 종종 눈에 띈다. 때로는 권모술수와 간사함도 엿보이지만, 장점과 단점이 융합되어 사회 적 지위가 높지 않은 환관 집안 출신임에도 오늘날의 영웅으로 남을 만한 자질을 충분히 소유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끝까지 정독을 할만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고, 소 장본으로 손색이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CEO들에게 조조의 용인술에 대해 본받을 만한 부분들을 부각시 키며, 단점에 대한 부분도 정확히 짚어서 실패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조조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서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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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즐거움'이 너무 재미있고 유익해 뒤에 소개된 책 얼떨결에 같이 샀다. '파노라마'같이 꾸몄다해서 기대를 했는데 배운건 많지만 재미는 없었다.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와 CEO가 가져야지될 정신자세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성경만큼 두꺼워서 그런가 뒤로갈수록 오타가 많았다. 이 책이 시키는대로만하면 누가 CEO를 하던 반은 먹고들어간다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다보면 아주 재미없는 소재도 아주 재밌게 풀어가는 작가가 가끔있다 '조조'도 허구와 과장으로 부풀린 삼국지의 내용을 뺴고 읽으면 재미는 덜하지만 조조를 폄하하는 것이 이미 사회적 풍조가 된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건 진정 반가웠고 예전에 읽은 삼국지 관련서적 5권을 든다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전쟁과 기상1,2 ,,삼국지 바로읽기1,2 ,, 제국의 슬픔 ,, 얼굴, 한국인의 낯 등으로 비유할 페이지는 많지만 예를든다면 페이지598, 563, 349, 309, 565 정도만 간략히 살펴보자. 적벽대전의 동남풍은 양자강의 미꾸라지가 동남풍이 불면 배를 뒤집는 습성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시기를 가늠한 것이지 무슨 주문을 외워서된건 아니며 적벽대전을 승자로 이끈 장본인은 오나라의 장수 주유이지 제갈량이 아니었다. 강감찬장군도 물을 터서 거란군을 수장시킨게 아니라 동남풍이 부는날 벌판에서 거란군과 싸워 이긴것이다. 제갈량이 안개낀 날 100만개의 화살이야기는 주유가 조조 진영을 살피러갔다가 화살을 받은 것을 부풀린 것이고 조조의 100만대군이 아니라 5만을 거느리고 가서 그곳에서 현지군과 합세해 20만으로 만든것이고 여기서도 80만이라 부풀렸는데 사실은 25만이라 지적하니 20~25만이 조조군의 현실일 것이다. 서유기는 누가봐도 거짓인줄아나 삼국지는 사실과 허구가 반반 섞여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작가와 예술가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속의 인물을 창작하지만 상상력과 허구,과장을 집어넣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일뿐이다. 옛날 사람들은 반경 4km이내에서 결혼을하여 유전자증폭현상이 일어나는데 도원결의하의 한마을에서 만났다는건 얼굴학상으로 봐서 허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조가 관우를 회유해 자기 사람으로 만든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삼국지에 나오나 거기 있는 조조가 권한 회유하기 위한 직책이 성문지기이니 허구가 많이 가미된 이야기이고 여기서도 그 허구가 간간이 등장한 것 같다. 하나더해 유비와 조조를 화해시키기 위해 여포가 멀리서 창을 활로 쏴 맞추는 장면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대목인데 여기서는 생략되어 있어 아쉽다. 하여튼 이렇게 긴 책을 옮기신 역자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정통은 특정한 역사시기에 통치계급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뿐이다. 조조의 일화와 이 시대의 상황은 예로 들면서 마지막 부분마다 CEO가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성과 그 속 깊은 내용 마음에 든다. CEO를 위한 명강의였다. 일본통일의 삼인방 중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이야기를 합쳐놓은 것 같다. CEO에 대한 명강의부분과 명언으로 나누어 옮겨적자면
CEO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 주변 환경과 조건을 면밀히 객관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훌륭한 CEO라면 절대 외로움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CEO는 어떤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CEO는 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조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CEO는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 조조가 적벽대전을 교훈으로 삼아 천하를 통일한 것처럼
뛰어나 CEO는 결코 상대 기업의 약점을 들추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전략을 짜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만 도덕적 비난을 벗어날 수 있다.
CEO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훌륭한 CEO라면 명분이 확실하다면 남이 뭐라해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조조는 바로 명분과 실천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것이 고독의 길일지언정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서슴없이 바로 실천에 옮겼다. - 세종대와의 조세정책이 그랬고 광해군의 외교정책이 그랬다.
CEO는 인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사기진작에만 신경쓰면 그만인 것이다.
훌륭한 CEO는 항상 직원들의 복리를 염려한다 자신은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에 옮기면서 조금이라도 직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투자이다.
CEO 조조는 남을 비방하거나 모함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CEO는 이러한 인간의 습성이회사 내에 만연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욕하고.. 욕하고..식의 조ㄱ직은 얼마안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CEO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교만해서는 안된다.
CEO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게 지혜라면 , CEO는 늘 자신의 경험을 중시하고 거기서 늘 자신을 위한 교훈을 얻어낼 줄 알아야 한다.
CEO는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설 줄 알아야 한다. - 젊은시절 해전에서 참패한 처칠
올바른 CEO라면 상대방의 힘과 상황을 자기쪽으로 유리하게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하는것이다.
CEO가 항상 유념해야 할 태도는 나 혼자서 판단하는 것과 열명이 판단하는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일본속담에도 세명이 머리를 맞대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CEO조조는 한순간 흔들리긴 했어도, 참모들의 말에 귀기울여 불퇴의 정신을 회복,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칭기즈칸, 마스시타 요노스케,링컨의 케이스다.
정치가는 근시안적이거나 소심해서는 사람을 포용할 수 없고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개인적인 은원을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야 인재를 많이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재들이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여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CEO역시 마찬가지다.
다양한 독서 체험은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제만 잘 알아서 경영을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인문학속에서도 경영이 있고, 역사속에도 경영은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CEO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좋은 명언,
천하를 다스릴 대업을 마음에 품고 있는 인물이라면 사사로운 원한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습니다.
속담에 '예1촌을 양보하면 예 1척을 얻을 수 있다.'
안전할 때 위험을 잊지 않는 자가 항상 준비된 자다.
효로서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는 타인의 부모를 살해하지 않는다. 인으로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는 타인의 처자식을 죽이지 않는다.
승리와 발전만 거듭된다면 교만해지기 쉽다.
우리는 보통 시작은 잘한다. 허나 중요한 것은 마무리이다. 마무리를 잘하면 앞에서 벌어진 실수나 실패도 모두 눈녹듯이 사라진다.
오늘의 강점이 미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화가 나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기뻐도 절제를 잃지 안흔 수준에 오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이 책의 핵심 , 우리는 지식을 쌓고 지혜를 배우며 마음을 수양한다 의연함과 절제를 배우기 위해
누구나 냉정을 잃으면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
그 사람이 언제 나에게 도움을 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걸 다른 생명체로 빗대어보자
적진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넓은 도량과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원수를 관용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중요한 것은 그 틈새를 누가 어떻게 언제 차지하냐이다.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여긴다
발전을 거듭하는 기업도 분명히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발전에 도취되면 사상누각이 될 위험이 늘 도사린다.
어릴때 총명하다 한들 커서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
몸이 늙었다고하여 투지마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의 교만한 마음은 뜻을 얻은 뒤에 생겨나며, 위축되고 보호받고자 하는 마음은 힘들고 좌절할때 생겨난다.
페이지376 통일후 간첩에 대한 대처 방안 --명언이다. 몰래 원소와 내통하던 사람들은 심장이 목구멍을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가 겨우 안심했다. 아직1/3도 안적었지만 너무 많아 명언은 여기까지만 적으려한다.
육기는 조조가 세운 큰 공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큼 위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모든 과오를 덮어주는 것은 아니다. 조조는 비록 많은 공을 쌓았다고하나 잔인하고 포악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731 - 조조가 천하를 통일한 이유 1182 유비에 대한 평가 유비가 참 초라하지만 1179북송의 사마광이 (자치통감)에서 한 위나라를 정통왕조로 본 대목 눈여겨진다. 페이지1185-6남송과 북송이 위와 촉의 전통왕조시비를 따지게 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손권 - "조조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형제사이를 이간질 시켰으나, 장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는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조조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부하들의 간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정확한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원씨 일가와 함께 악행을 저지른 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이는 조조가 원씨 일가의 잔여세력을 와해하고 자기편으로 포용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다. - 현 동독출신 총리 메르켈.
(관자) - "바다는 물을 거절하지 않아 그 성대함을 이루었고, 산은 흙과 돌을 마다하지 않아 그 높음을 이루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 그 많음을 이룰 수 있고, 선비는 배움을 싫어하지 않아 그 걸출함을 이룰 수 있다." --조조는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부릴줄 아는 인재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 뛰어난 인재도 많이 등용했다. 흉노족 진시황도 분서갱유를 한 건 모든걸 하나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통일이 이루어진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당나라 두목 - 조조는 법을 행함에 있어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조조는 잘못된 의견을 낸 부하들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해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조조는 한쪽의 말만 특히 측은의 말만 듣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주위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다.
조조는 사치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 지금 한국의 상황이 로마멸망기의 상황과 거의 비슷해보인다.
조조는 평생동안 많은 책을 섭렵했는데, 특히 병법을 좋아해 많은 병서를 읽고 연구했다. - 맞다 콩이 좋다고하나 콩만 먹는다면 언젠가는 쓰러질 것이다 경영이나 종교나 어떤 분야를 하든 그분야의 책만 섭렵하면 언젠가는 쓰러진다 난 그래서 다독을 권하기보단 두루둘 책을 읽는 난독을 권하는 편이다.
역사적 평가가 때로는 정확하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도 우리는 문학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를 구분해야하며 문학적 평가를 역사적 평가로 오해하거나 역사적 평가를 내릴때 문학적 평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글은 간략하고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조조는 호방함을 가지고 있던 자유주의자였다. 잘 읽었다.
5~6세기 신라의 지배계층을 이루었다 한무제시절의 금일제에 대해 '계륵'의 양수등 두군데서 언급한 부분도 추가로 획득한 보고이다.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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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술의 대왕 조조 / 장야신 지음 박한나 옮김 휘닉스 刊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 전문가에 게다가 문학을 즐기는 조조는 군웅할거 시대에 확실 조조는 냉철한 사람이지만 어글리한 지도자는 아니다. 적어도 시를 사랑하는 군주가 아 양의 동서와 시대를 가리지않고 인류역사의 통사적 측면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최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릴 수 없다” 병렬조합으로 나열한 조조의 단문장 어록으로 미루어 봐도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 전문 기왕 조조대전曹操大傳을 발표하여 조조의 권위자인 저자 장야신이 심혈을 다한 대작이다, 현대판 CEO형 조조는 많다 스티브 잡스 이건희 등,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롤모델이 되기엔 참 묵직하고 숱이 많은 책이다. 변변찮은 서가 정중앙에 꽂아 놨더니 꽤 현학적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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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국가관에서의 조조는 간교하고 잔혹한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인재를 아끼고 현명한 선택으로 국가를 운영하려 하였다. 현실적인 조조는 현재의 합리적 CEO였던 것이다. 이 책은 방대한 분량의 조조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조조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경영자가 갖어야할 생각과 목표를 구체화 시켜주고 있다. 조조를 다시 공부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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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간웅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저 버린 조조는 약방의 감초 같이 삼국지를 거론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조조없는 삼국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조조와 삼국지를 별개로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 깊은 곳에 자리잡은 조조는 과연 간웅이었을까? 어찌보면 조조는 한족중심의 중화사상과 유학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이다. 조조를 피눈물도 없고 간계로 뒷통수를 치는 파렴치한 인물로 묘사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조차 유심히 살펴보면 시쳇말로 유비나 손씨집안 역시 대의를 저버린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고 있지만 유독 조조에게 집중되는 이유는 너무나 뛰어난 영웅에 대한 일종의 시샘이나 질투심도 가세했겠지만 조조의 출신성분과 가계도(황관집안)에 유교적인 명분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점이 작용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왜곡된 관념들이 시대를 거쳐 확대재생산되면서 정설로 남게 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수의 삼국지보다 삼국지연의를 정사로 인식하는 과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서 조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조조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에 대한 연구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적들이 조조의 일면목에만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개발서적이나 경영전략서적등 조조의 경영이나 치세부분에 대한 집중조명으로 역사적 조조나 개인적인 조조에 대한 진면목을 알 수 없게 하는 폐단도 낳게 되었다. 이번 장야신의 책은 장쭤야오의 <조조평전>과 더불어 조조의 출생에서 패업달성 그리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평전형식을 취하면서 조조의 정치사상과 정신세계등 각론적인 요소들까지 망라하는 그야말로 조조에 관한 모든것을 서술하고 있는 몇 안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당시 시대상과 더불어 삼국지를 개괄하는데도 기여를 하고 있는 책으로 비록 상당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조조에 대한 불편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겐 조조의 정확한 면모를 보게 하여주고 조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이들에겐 진정한 조조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흔희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조조를 간괴와 그리고 의리도 없고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이 하는 일개의 모략꾼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타당한 면도 충분히 있다. 조조는 정적이나 적군들에게 그다지 관대하지 않았고 또한 과도할 정도로 무자비한 복수의 향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에서 이러한 모습은 비일비재하였고 조조만의 전매특허로 낙인 찍기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실례로 여포를 참하는 과정에서 유비가 보여준 모습은 오히려 의리를 저버린 행동으로 더 비난 받을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조의 강점은 다름아닌 "절대"라는 개념의 상실 그 자체라고 해야겠다. 조조에게 절대라든지 불변이라는 개념은 자리잡고 있지 않을 정도로 조조는 임기응변의 대가였고 항상 열려있는 사고방식으로 일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이 조조 주위로 인재들이 몰려들게 하였고 그런 인재를 조조는 적극 활용했다. 자주 비견되지만 제갈량 사후 촉의 급격한 쇠퇴와는 달리 조조의 위는 철저한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으로 인해 한 개인의 공백이 조직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조조의 치밀한 인적 구성원들의 조정능력이었던 것이다. 조조는 군사,경제,사회,문화등 여러방면에 걸쳐 다방면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메트릭스구조체를 가동했다.
또한 조조는 건안문학이라는 중국문학의 한줄기를 뒷받침했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악부시나 오언절구시등의 통해서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발굴의 기재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고, 경제사로서의 경제정책(토지정책)에 남다른 기지를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군사적 지략가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돋보이는 역량을 발휘했다. 이는 조조가 정치가로서의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주희의 <통감강목>에서 조조를 희대의 간신, 찬역한 도적등으로 폄하하기 시작한 부분이 후대 나관중의 모티브가 되어 조조에 대한 이미지는 되돌리기 힘든 형국에 이르게 되었지만 거의 동시대 인물인 진수의 <삼국지>등에서 묘사되고 있는 조조는 천하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조조가 이처럼 역사와 소설속에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는 자체가 바로 그 만큼의 애증과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조조는 간웅과 영웅이라는 양면을 다가지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면모를 한쪽면으로만 몰아가는것 역시 잘못된 인식일 것이다. 당시 난세의 형국에서 이러한 양면성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지 못한 인물은 그야말로 역사의 저편으로 살아지는 그런 한치 앞도 못보는 시기에 한시대를 풍미했고 그리고 수천년이 흘러서까지 세인들의 하마평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조조는 분명 영웅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조조가 유비나 손권에 비해 사실상 뛰어난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말은 액면가 그대로 보더라도 그나마 황실의 핏줄이라는 대의명분을 안고 있었던 유비나 강남지방에 대대로 정착하여 지역민심을 등에 업고 출발했던 손씨집안에 비교한다면 그 출생성분도 명확하지 않고 황관의 양자로 출발하는 조조는 시쳇말로 게임이 되지 않는 출발선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그야말로 철저하게 자신으로 것으로 이용할줄 아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계획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었다는 점이 성공의 key였다. 특히 조조는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 인재의 등용에 있어 자질만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결국 조조가 대업을 이루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손씨집안(손권)은 지역에 뿌리는 둔 향토기업의 형식으로 출발했고 유비의 경우는 의리 감정에 역점을 둔 가내수공업의 형태라면 조조의 가업은 철처하게 인맥이나 지연, 학연을 배제한 인적네트워크를 메트릭스구조로 활용한 초일류기업의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고 이러한 경영방식이 폐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단 하나의 삽화나 사진, 역사지도 한장 없이 1200페이지를 읽어 나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렇더라도 이번 조조의 일대기와 그 개인적인 성격,가계도등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조조를 만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러한 고역은 독자들에게 그저 즐겁게만 다가올 것이다. 조조는 예나 지금이나 자의든 타의든 세인들의 한복판에 서 있고 우린 조조의 재조명을 통해서 진정한 시대의 영웅을 다시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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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삼국지" 매니아라면 그다지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도 그래서 이 책을 골라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에서 조조 전문가로 입지를 굳힌 인물이라 한다. 물론 이 책을 출판하기 전에 조조가 촉진했다는 건안 문학과 관련된 20여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어 그런지 이 책에서는 조조가 지은 시와 글들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조조를 현대의 최고 경영자인 CEO에 빗대어 뭔가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내용과 다른 것들이나 잘 몰랐던 배경 지식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특히 프롤로그에 묘사된 동한 시대의 사회 모습은 왜 조조나 유비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겠다고 외쳤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료가 되었다. 그 시대는 외척과 환관들 사이에 권력을 선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외척과 환관이 번갈아 가며 정사를 장악하거나 대립하는 알력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동탁이 외척과 환관 세력을 동시에 무너뜨렸지만 이후부터 지방 군벌들이 전세를 장악하게 되어 동한 조정은 거죽만 남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극에 달한 외척과 환관의 수탈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특히 환관이 득세하면서 관료와 사대부들의 승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관료가 되기 위한 준비단계에 있는 태학생들의 벼슬길이 막혔다고 한다. 한편 영제는 공개적으로 관직을 팔았는데, 부자는 현금을 내고 가난한 자는 우선 외상으로 관직을 산 후 관리가 되고 나서 두 배로 갚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름 때처럼 일어나는 농민 봉기와 함께 전국적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틈 탄 호족과 군벌들이 점차 세력을 키워 각각 크고 작은 독립 왕국을 세워나가기 시작한 게 바로 조조가 살던 시대의 일이다. 이 책의 첫 장에서는 조조 가문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한 출생의 뿌리를 알 수 없다면서 조조 집안 내의 주장조차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황제의 후손이라는 설부터 하후씨의 자손이고 하후돈의 숙부라는 설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조조의 부친인 조숭이 일억 전이나 내고 관직을 살 수 있을 만큼 조조의 집안은 엄청난 부자였다고 한다. 조숭 뿐만 아니라 조씨 일가 대부분이 중앙과 지방에서 관직을 하나씩 꿰차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출신성분은 조조의 일생에 복잡하고도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환관은 황제의 시종일 뿐 대부분 신분이 낮은 집안 출신이었으며 명문 세가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무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조는 항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은 있지만 명문가가 아닌 집안 탓에 조조는 어렸을 때부터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덜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조조가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조는 품행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으나 재능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조조가 첫 관직을 맡았을 때, 환관 건석의 숙부가 금령을 어겼다고 한다. 조조는 금령대로 건석의 숙부를 사형에 처했다고 하는데, 이 일로 일벌백계가 되어 도시 기강이 잡혔고, 누구도 감히 법을 어기려 하지 않아 도시 치안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비록 환관 집안 출신인데다가 고향에서 추천을 받아 쉽게 벼슬길에 올랐지만 조조는 당시 환관 세력들에게 직접적인 연줄을 대지 않았고 오히려 환관들에 맞서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조조가 병을 핑계로 관직을 그만둔 것은 동한 말기 선비들 사이에서 초야에 은거하는 풍습이 크게 유행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재능은 있지만 고상한 인재들이 은거한다는 인식 때문에 은거 행위는 선비들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 집권자들의 눈에 들거나 초빙 대상이 되어 관리가 되는 지름길이 되었다고 하는데, 자신이 은거를 통해 출사한 관리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던 조조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이를 만회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삼국지를 통해 알고 있는 조조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낙양에 돌아온 헌제에게 조조가 진상한 물품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조조가 시행한 둔전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언급된다. 둔전은 영 사람 조지가 가장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하는데, 조조는 대사농 관직을 만들어 둔전에 관련된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고 한다. 각급 둔전관들은 둔전에 관해 절대적인 권한을 쥐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둔전제 시행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조조의 매제였던 임준이 사실상 둔전제의 최고관리자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또한 여러 서적들을 근거로 관도전투에 임한 군사 수가 최대 3~4만명을 넘지는 않았을 것이라 언급하기도 한다. 최염, 진림, 견초, 두기, 양습, 중장통, 상림, 양준, 왕상, 순위 등 조조가 각지에서 등용한 인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는데, 공융에 대한 혹평이 눈길을 끌었다. 공융은 지혜나 재능으로 볼 때 자신을 능가하는 이가 아무도 없을 거라 여겼다고 한다. 그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대업을 이룬 적이 없고, 조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종 경전을 인용해 장황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자신의 뛰어남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가 제시한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많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원희, 원상이 요서로 달아날 때 유주와 기주에서 십만 호에 달하는 백성들을 위협해 끌고 갔다고 한다. 과거에 오환이 유주에서 십만 호의 한나라 백성을 끌고 갔으니, 합이 이십만 호에 달했고, 이들이 오환의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면서 오환의 세력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조조가 오환을 몰아냈으며 또한 원소의 외조카인 병주자사 고간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고간마저 토벌했다고 한다.
조조는 그릇된 사회 기풍을 바로 잡기 위해서 낡은 관습을 금지하는 명을 내렸고, 백성에게 바르게 이끄는 교육도 시행했으며, 특히 군령을 엄격히 시행했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는데, 조조가 밤에 몰래 가서 신하들의 상황을 살피다가 고유가 문서를 끌어안고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조조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에게 덮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한 것과 동일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 조조의 적벽대전의 참패는 애써 미화시키고 있다. 그토록 유능했던 조조가 큰 참패를 당한 것은 자기도취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또한 조조가 일거에 한중을 차지한 뒤 바로 익주로 쳐들어갔다면 유비가 촉한 땅에 정착하지 못했을 거라는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조조가 익주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이 책의 저자는 조조가 이제 숱한 경험을 통해 야망마저 조절할 줄 아는 능력에 다다랐다고 평가한다. 조조가 한중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가 익주를 잃게 될 것을 염려해 손권에게 화친을 청했고, 손권 역시 유비의 청에 동의하고 상수를 경계로 삼아 형주를 나눠 가지기로 합의했다면서 말이다. 또한 하후패는 조상이 사마의에게 목숨을 잃자 자신도 이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촉한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촉나라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게 하후패의 고향 초군에 열 셋쯤 된 사촌누이가 있었는데, 건안 5년에 그 사촌누이가 혼자 장작을 가지러 나갔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던 장비의 눈에 띄었고, 후에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딸을 한 명 낳았고, 후에 유선의 황후로 즉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왕찬, 유정, 서간, 진림, 완우, 응창, 여류 시인이자 채옹의 딸인 채염 등 업성 문인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조조와 조비, 조식 등은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부릴 줄 아는 인재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 뛰어난 인재도 많이 등용했다면서 말이다. 이어서 조조의 스물 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이야기하면서 태자를 정하기 까지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조조는 죽기 전까지 제위를 찬탈하고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끝내고, 제왕의 길의 종착점에 다다랐다고 한다. 특히 자신이 한나라를 손에 넣는 데 방해가 되거나 이에 불만을 표한다면 여태까지 아무리 큰 신임을 받고 많은 공을 세운 자라고 해도 엄격한 벌을 가했다고 한다. 그 밖에 조조는 기공을 매우 잘 이해하고 연마했던 인물로 침을 삼키면 원기를 보존하여 장수할 수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시와 글을 잘 짓는 것 외에도 조조는 음악과 서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자랑했으며, 바둑에도 정통했고, 양생술과 약 처방, 건축 공예나 기계 제작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정치가로서의 조조는 부국강병과 용현임능의 정치를 했으며, 유가, 법가, 병가 사상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앞선 시대의 사상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끌었던 언급은 화타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가 화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진의록의 아내 두씨를 둘러싼 이야기였다. 관우는 자신의 아내가 아직 자식을 낳지 못해 재가를 요청하면서 두씨를 얻는 것을 허락해 달라 청을 했는데, 조조가 먼저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한 뒤 두씨의 미색이 뛰어난 것을 알고 관우의 청은 무시한 채 자신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조의 딸과 사위에 대한 이야기도 전개되고 있는데, 조조의 딸 조절은 헌제와 결혼해 황후가 되었는데, 나중에 조비가 헌제에게 사자를 보내 옥새를 달라고 했을 때 조절이 화를 내며 죽어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의 맨 뒤편에는 조조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평가가 담겨 있다. 충신이냐 간신이냐, 왕위를 찬탈했는가, 정통 왕조가 어디인가 등의 요소를 배제한 채 조조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했는가를 평가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조조를 추악하고 난폭하며 잔인한 인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남송 이후였다면서 근대에 와서 루쉰 같은 이는 역사 인물로서의 조조와 소설, 희곡 속에서 예술적 이미지로 형상화된 조조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며, 사실 조조는 많은 재능을 겸비한 인물로 최소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문화혁명 때는 법가의 통치사상을 재평가하고 유가의 통치사상을 비판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조가 대법가, 무신론자, 유물주의자, 철저히 유가사상을 반대한 투사로 존경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조조를 중국 역사상 걸출한 정치가요, 군사 전략가이며 문학가라 하기에 손색없는 인물이라 평가한다. 그가 이룩한 업적 또한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물론 지주 계급적 입장을 여실히 드러냈기에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는데 가담했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평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