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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에 처음 피에로가 되기로 결심했던 바버라, 피에로인 남편 헬리를 만나 사랑스런 두 아이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있던 그녀에게..3명의 가족을 한순간에 잃는 고통은 삶이 언제든 예고없이 갑작스레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상실감을 않겨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고 꿋꿋했다..
여느날과 다름 없는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세상은 고요하면서도 쳇바퀴 돌듯 돌아가고 있었으며 바버라에게는 그 어떤 불길한 느낌도 전해오지 않았다. 피에로버스에 탄 세명의 가족, 남편 헬리,아들 티모,딸 피니가 마주오던 기차에 의해 사고가 났을때도,그자리에서 남편은 즉사하고 아들의 멈춘 심장은 가까스로 심폐소생술로 다시 뛰고 머리는 뇌사상태에 빠졌을때도, 딸의 뇌는 심한 손상을 입고 죽의 경계를 오가는 위급한 순간에도, 바버라 그녀는 자동차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처음 마주하는 노래, 'Fly me to the moon'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을까?' 힘겨운 일이 닥쳤을때 가슴에 통증이 오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다 거짓인가? 바버라는 생각했다. 내 가족이 죽고, 죽어가고 있을때 왜 아무런 고통이 없었고 여느 일상과 다름없이 내 할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왜 내 가족들은 나만 홀로 남겨두고 다 떠나갔을까.. 남은 나는 어찌 살아가라는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뇌사상태에 빠져 더이상 가망이 없는 아들의 호흡기를 떼며 편안한 안식의 세계로 보낼때도, 삐에로 복장을 한 친구들과 파티를 해주고 'Fly me to the moon'을 부르며 웃으며 눈물을 흘려보냈고, 가족들의 장례식에서도 '영혼의 축제'라는 이름하에 축제같은 장례식을 치뤘다. '슬프지도 않아? 이게 지금 제대로 된 상식의 사람이 하는 행동이야? 어떻게 눈물도 흘리지 않고 웃을수 있어?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잃은 여자라고! 제발 정신을 차려!'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듯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볼때도 바버라는 그들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듯 덤덤하게 웃음 지었다. 다만, 혼자의 시간을 보낼때, 참을수 없는 밤의, 적막의 시간이 찾아왔을때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슬픔과 고통과 분노의 시간을 고스란히 맞이할 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나만 두고 다들 떠나간거야?' 하지만 그녀의 분노도 오래가진 않는다. 어차피 슬픔과 고통은 뗄래야 뗄수없는 항상 묶어서 같이 찾아오는 오누이같은 존재이고, 분노는 그뒤에 슬며시 따라오는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 자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그 굴레는 더욱더 바버라 자신을 옥죄어 올 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않고 차츰 터널을 지나듯이 빠져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내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적이 있는가? 난 어릴때부터 외할아버지,친할머니께 다른 사촌들과 심하게 비교될 정도로 큰 사람을 받았다. 외가에서는 내가 첫손녀라 그런것일테고, 친가쪽에서는 아버지가 막내이지만 위로는 다 손자만 있고 손녀로는 내가 유일했기에 그럴거라고 막연히 짐작한다.(고모에게 딸이 있긴 했지만..할머니는 정말 다른 사촌들이 심하게 질투할 정도로 나를 예뻐하셨다.) 어릴때야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재롱많고 예쁘고 야시짓도 많이 하는 그런 꼬맹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꼬맹이었던 내가 봐도 너무나 멋있을 정도로 미남이셨고, 또 나한테는 한없이 자상하고 너그러우셨다. 매일 퇴근하시는 할아버지를 기다렸다가 냉큼 슈퍼로 달려가 '할배, 나 쭈쭈바...쭈주바 사줘요'하며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한아름씩 챙겼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언제쯤이었던지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던거 같다. 할아버지는 갑작스레(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누워만 계시게 됐고, 어른들은 쉬쉬했지만 난 할아버지가 이제는 나와 같이 신나게 놀아주시지도 못하고, 목마를 태워주지도, '아이구, 우리 예쁜 손녀딸~'하며 번쩍 안고 빙그르르 돌아주시지도 못한다는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보기에도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가셨고 많이 아프시다는걸 그 어린 나도 알수 있었다. 매일같이 할아버지 댁에 찾아가 안마를 해드리면 할아버지는 예쁘다고 용돈을 주셨다. 그 돈으로 난 뭘했냐고? 새우X을 항상 사먹었다. 어떤날은 할머니께나 막내이모에게 부탁했는지 내가 오기 전에 과자를 사두시고 종종 건네주시곤 했다. 그렇게 매일 할아버지를 찾아갔는데(바로 옆에 살았기 때문에..) 한날은 서울로 가신다는거다. 서울에 작은이모댁에 며칠 가시는거라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서울 큰병원으로 어찌 수술이라도 되는지 가본거였지만 이미 가기전부터 가족들은 다 알고있었다. 가도 별수 없다는걸, 이미 오래전에 늦었다는걸, 그냥 할아버지는 죽기전에 서울에 사는 딸네집에 다녀오시고 싶었던 것일뿐이었다. 일주일 가량 후..할아버지는 구급차를 타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그리고 하루..이틀 지났을까..난 할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돌아가셨다. 얼마나 보기가 않되셨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할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고, 장례식날도(그날이 장례식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엄마는 나에게 용돈을 주시며 친척동생들과 놀고 오라고 하셨다. 난 뭣모르고 좋다고 어린 동생들을 이끌고..(나도 어린 꼬맹이었지만..) 저녁나절까지 놀다가 온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후 할아버지의 흔적은 영정사진이 고작이었다. 영정사진이 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그 어린시절..난 액자속에 들어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우와~우리 할배 진~짜 잘생기고 멋져...하지만 실제모습이 더 멋지신데...'라며 엄마나,할머니께 종알종알 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어느정도 고학년이 되었을때..아.그날 엄마가 나에게 흰블라우스와 검은치마를 왜 입히셨는지.. 그래, 그날이 할아버지 장례식날이었구나..라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 어려서,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모르겠지만..어쨌든 난 그날 울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건 알았지만 왜 울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어려서인가? 오히려 한참 성인이 된 후로, 할아버지를 생각하거나, 엄마와 얘기할때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너무 어려서 눈물을 쏟지 않았다는건 이유가 될수 없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때도 난 울지 않았다. 이상하지? TV에서 누가 우는 장면만 나와도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똑 떨어질만큼 눈물이 많은 나인데.. 그때 난 그런 시선을 받았다. '할머니가 널 얼마나 이뻐하셨는데? 어쩜 눈물 한방울도 안흘리냐..피도 눈물도 없는 독하고 나쁜것..'이런 시선을 친척 어른분들, 혹은 사촌들에게 받은것도 같다. 나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짜내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런 억지눈물,슬픔을 바라셨을까? 난 납골당으로 가는 영정버스 안에서 차창밖 비내리는걸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나도 내자신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눈물같은건 나지 않는다고, 아직 실감을 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자라오면서도 항상 할머니가 매일같이 옆에 계시지 않을때도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그냥 아직도 내 옆에 계시는거 같다고...
지금도 난 하늘 어딘가에서 내가 웃고,행복하고,힘들고,슬프고,고통스러울때 그 언제든지 항상 할머니,할아버지가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속으로 인사를 건넬때도 종종 있다. '저 지내는거 잘 보고 계시죠?'라고...물론 난 바버라처럼 너무나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소중한 가족을 잃고 난 후의 슬픔의 표출방식에 대해, 나도 비슷했다는 것이다.
밖으로 토해내야만 아픔이고, 슬픔이고, 눈물을 흘려야만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건가? 많은 분들이 이 책이 너무 슬플거 같아서, 보기가 겁난다는 말을 하시는걸 보았다. 책을 읽기전엔 나도 사실, 눈물,콧물범벅이 될거 같아서 약간 망설이기도 했다. 허나 이 책은 신파적으로 단어 하나하나 슬픔이 역력히 베어나오는 그런 글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좀더 희망적인 메세지로 책은 쓰여져 있다. 바버라의 일기속, 가족을 추억하며, 힘든 얼마의 시간 동안 자신이 무얼 하며 보내고, 어떻게 이겨냈는지..그 뒤에는 언제나 항상 헬리,티모,피니가 있다. 그들의 삶을 그녀가 대신 살기를 바래서 그녀 혼자만 두고 갔다고? 절대 아니다. 그들의 삶을 대신 살 필요는 없다. 바버라, 당신은 여태 해왔듯이 당신의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바램이자,하늘 위에서는 세상이 TV를 지켜보는 것 같을 거라는 티모의 말처럼, 그렇게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면 된다.
언제까지나 바버라 당신의 삶이 지금처럼만 평안하길 바라며 이제껏 해온것 처럼,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이겨냈던것처럼...당신의 표현대로 번데기를 까고 새로 태어나는 나비처럼 그렇게 계속 훨훨 아름답게 날 수 있기를 바란다.
Good lu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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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제목이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그 공식을 알고 나선 가슴이 먹먹했더랬다. 읽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더라. 코를 팽팽 풀다보니 나중엔 코가 아프더라. 다 읽고 나서 지금 표지를 자세히 보니 삐에로 부부의 모습이구나.
<이 책은> 댓글서평단 당첨 도서이다.
<저자 소개>---발췌하다 저자 :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 Barbara Pachl-Eberhart 끔찍한 사고를 경험한 지 5일 후, 바버라는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자신이 어떻게 가족들을 떠나보냈으며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가족들이 바라던 나머지 삶을 기꺼이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편지를. 이 비극적인, 그러나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이메일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수천 명의 마음을 움직였다.
<책 내용 맛보기> 책소개---발췌하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 둘을 모두 잃은 여자가 있다면, 그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는 남편과 함께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피에로 일을 하며 두 아이들과 행복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평화로운 일상은 한 순간에 뒤바뀌고 만다. 이 책은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 지독한 슬픔에서부터 분노와 원망, 공포,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희망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채록한 1년간의 이야기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삐에로가 되기를 동경하던 그녀에게 한 남자가 들어왔는데 공교롭게도 삐에로였고 둘은 운명처럼 첫눈에 끌렸습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운명에 따르면서 둘이 되었습니다. 둘은 아이를 5명이나 원하는 것도 같았으며 첫 아이가 태어나 셋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하는 나날들은 행복했으며 늘 기쁨으로 충만일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던중 예쁜 딸까지 태어나니 넷이 되었습니다. 1+ 3 = 4. 그네들은 더할 수 없이 기뻤고 사랑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약간은 덜렁대기도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실은 버스가 철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남편은 즉사했고, 아들은 뇌사상태요, 딸아이는 힘든 삶을 버티다 안녕했습니다. 아들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생을 돌보는 사이에 버텨주었지만 엄마 스스로 아이를 잘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기막힌 일상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연락을 부탁하며 장문의 이메일을 씁니다. 자신들을 아는 모든이에게 연락을 부탁합니다. 세상과의 단절이 너무나 무서워서입니다. 너무나 큰 불행앞에서 차마 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할까 두렵고 소외될까 불안해서지요.
저자는 감정이 늘 뒤늦은 편이라 했어요. 때문에 자신을 귀여워하던 친척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이 안나 민망했는데, 4-3=1 인 상황에서도 표정관리가 안되는겁니다. 일찌기 심리치료를 공부한 덕에 자신을 잘 추스를 수 있는 내면이 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남편과 두 아이가 자신안에, 자신곁에 늘 함께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느낍니다. 그러자니 죽음이 인정이 안되는 거지요.
남편의 스웨터를 입고 큰 장화를 신고, 딸아이가 늘 0발음을 하던 담용을 안고, 아들의 강아지인형을 옆에 두고 살아있으되 정지된 삶을 삽니다. 오로지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건 지인들이 가져다 놓은 비스킷이나 약간의 음식물을 남몰래 먹는일. 자신의 마음상태를 적는일 말고는 끝없는 잠속을 유영하지요. 체력이 딸리니 잠으로 보충하는거고, 꿈속에서 가족의 실체를 느끼는일은 행복하기에 잠이 깨서도 눈을 감고는 가만히 있는것. 그런데도 자신을 제외한 세상은 아무일없이 돌아갑니다.
이메일을 통한 지역신문에 자신의 기사가 실리고, 너무나 허약해진 몸에 필요한 벨트를 사러 들른 가게. 이미 알아본 점원의 눈물젖은 얼굴을 보면서 차마 자신은 울 수가 없어 대신 점원을 안아주는일. 아이 유치원에서 아들의 일상을 접해보며 괴롭지만 안식을 찾아가는일. 끊임없이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친구와 지인들. 그녀삶은 다 잃었으나 또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메울길 없어 끝없이 빠져드는 잠과 책. 책은 자신처럼 기막힌 지경에 처한 사람들을 치유가 아닌 자살을 부추기거나...그렇다보니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시키고...
<책 읽은 소감> 그녀의 1년여의 기록을 보며 깊은 상실이 남겨주는 감정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얼마나 깊은 아픔인지를 절절히 맛보는 시간은 눈물이었다. 그 아픈 정도를 타인의 공감으로 느끼기엔 좀 미흡하겠지만 난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는 가슴이 아팠다. 미어지는 아픔에 같이 울어줄 밖에 방법이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울다가 책을 멈추고, 코를 풀고, 물을 마시고, 그리곤 또 그녀를 읽고...
그 깊은 슬픔에 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음을 알았다. 무너지는 아픔에 몸둘 바를 알았다. 그녀의 고통에 다가감이 아팠다. 그 상실감에 어쩌지 못함이 못내 안쓰러웠다. 그저 옆에 있다면 괜찮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라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었다. 말없이 안아주고 싶었다. 실컷 같이 울어주고 싶었다. 그녀가 지칠때까지 울리고 싶었다. 그녀는 감정배출을 잘 못했다. 그 침잠된 억울함일지, 분노일지, 기막힘일지, 배신감일지를 다 품어내면 마음이 좀 맑아질텐데 그걸 못했다. 애끓는 슬픔이 너무커 그녀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고 다행이었던건 글을 썼다는것. 말로도 되지 못하는 말을 글로 써서 나타냈다는것. 얼마나 다행이던지. 담용을 덮고 강아지인형을 안고 자면 어떤가.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인데.
그녀의 깊은 슬픔에 충분히 공감했으며 적어도 4-3 이런 공식은 없었으면 한다. 1+3 이런 공식을 원한다. 1+2 도 좋고 1+3도 좋다. 사람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확연히 표시난다. 그사람의 비중도에 따라서 더하겠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기쁨이요 행복인 경우가 허다하다. 꼭 미친 존재감이 아니여도 말이다.
이 책에서 많이 남던 것은 그녀와 같은 기막힌 일을 당해서 도움이 되고자 책을 찾아도 그런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종류가 거의 없다는 사실. 그런 마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단체는 있지만 것도 쉽지 않을바엔 책이 친구가 될 수도 있을텐데 그런 책이 없다는게 다행(그런 기막힌 일을 당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파서)이기도, 또 놀랍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그녀가 한순간, 한시라도 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끄적거린 1년여의 기록이 많은이에게 공감이 되었다는 사실.
또, 그녀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지인들을 통해 아주 조금씩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심리치료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비워내는 작업. 꼭 필요한 그 과정을 성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안심이 되었다. 꼭 그녀처럼은 아니겠으나 이러한 과정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불현듯 산 자가 되어 겪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세상의 전부인 3을 잃었다. 세상의 전부인 3을 잃었지만 그 3만을 알았을땐 몰랐었던 다른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시간이 자리했다. 그녀, 똑같을 순 없지만 또다른 3이 찾아가리라 믿는다. 그래야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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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하게 애처롭고 아픔이 온 몸을 타고 흐릅니다. 이 책 『4 - 3』은 어느날, 남편과 두 아이를 열차사고로 잃은 한 여인의 슬픈 '상실의 일기'입니다. 50주 연속 독일과 오스트리아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였으며 12주 연속 논픽션 부문 1위에 오른, "소리 죽여 흐느끼게 되는 책"이 틀림없습니다.
'이순간'부터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순간'은 내게서 내 가족을 빼앗아갔고, 나는 '이 순간'부터 새롭고 낯선 인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각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는 결혼할 때보다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면서 보여주는 모든 것을 가족으로 함께 기뻐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의 재롱으로 웃음꽃이 필 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더군요.내 자신의 경우도 아이가 큰 구두를 신고 어기적 거리며 걷던 장면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는지라 바버라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확연히 느끼겠습니다. 아이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웃으며 살 지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바버라는 한 순간 세상에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게 됩니다.
끔찍한 사고를 경험한 지 5일 후, 바버라는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자신이 어떻게 가족들을 떠나보냈으며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가족들이 바라던 나머지 삶을 기꺼이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편지를. 이 비극적인, 그러나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이메일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수천 명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지금의 이 순간순간이 행복임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함께하여주는 가족들이 진정으로 고마워집니다. 슬픔 속에서 용기와 희망으로 한걸음씩 삶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바버라에게 끝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한 통의 편지와 한 권의 책을 떠 올립니다. 편지는 안동의 한 옛무덤에서 수습된 4백20년 전의 것으로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로 시작됩니다. 가히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애달픈 그 사연이 이 슬픈 여인의 글과 겹쳐집니다. 연전에 읽은 김형경님의 '좋은 이별'이 왜 떠오를까요? 그 때 상실과 애도에 대한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레시피 Recipe(처방전, 방안)'가 참 마음에 와닿았기에 불쑥 기억의 편린이 살아오른 거겠지요. 애도 일지 기록하기, 생의 속도 늦추기, 슬퍼하지 않아도 되기, 중요한 결정은 뒤로 미루기, 자신의 용기를 믿기, 상실의 현실 받아들이기, 해결하지 못한 문제 내버려 두기,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기, 영적 지도자 만나보기, 슬픔과 함께 살아가기, 상실의 진실 이야기 하기,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기 등등 그 책에 나오던 이런 레시피를 바버라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일겁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을 떨쳐내는 일은 계획표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슬픔은 제마다 다른 시간과 속도를 지니고 있다. 슬픔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우리에게 터무니 없는 일을 떠넘긴다. 예측할 수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다. (105쪽)
바버라는 저 세상으로 떠나는 가족에게 각자가 좋아하는 옷(남편에게는 평소 좋아하던 체크무늬 셔츠와 작업복, 티모에게는 배트맨이 그려진 옷, 피니에겐 꿀벌 마야 잠옷에 빨간 고무신발)을 입히고 필요로 할 물건을 관에 넣은 후 장례음악으로 아이들이 좋아했던 '삐삐롱스타킹'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좋아하던 분홍색을 입고 남편의 재킷을 걸치지요. 장례식에서는 그녀의 간곡한 청에 의해 피에로 복장을 하고 온 동료들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풍선을 하늘로 띄우면서 영.혼.의.축.제.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인정사정없이 멈추지않고 굴러가죠. 용납할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이 여러 형태로 찾아옵니다. 고통, 슬픔, 분노라는 손님으로...
고통은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가리지 않고 온다. 이 고통은 내가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온다. 고통이 나를 덮칠 때, 사람들은 내 곁에 없다. 사람들이 없을 때면 고통이 나를 덮쳐오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고통을 없애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에게 환호를 보내주어야 마땅하다. 슬픔은 고통이 떠나고 나면, 슬며시 내 침대에 걸터앚는다. 내겐 고통과 슬픔이 마치 오누이처럼 느껴진다. 슬픔의 눈물은 저절로 흘러나온다. 슬픔이 헛걸음 하는 법은 없다. 슬픔에는 누구도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을 멈추게 될 때라야 비로소 슬픔이 온다. 슬픔의 눈물은 나를 깊은 잠으로 이끌어주던 친구가 되어주었다. 분노! 이것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다가와 자기에게 온전히 관심을 모두 쏟아부으라고 강요한다. 분노는 엉뚱한 방향을 향하기도 한다. 분노는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다. 사소한 다툼은 예정된 일이다.(206~229쪽 발췌)
죽음으로 이별한 상실의 고통은 억압, 감정의 밀물, 감정의 썰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색 단계를 거쳐간다고 합니다. 바버라는 "평범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녀 가족의 죽음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죠. 사람들이 가끔씩 추억처럼 말하는 슬픈 이야기 속으로. 과거의 일부로...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힘을 내지만 삶의 관객일 뿐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고서는 "무언가가 되려고 기를 쓰지도, 무언가를 피하려고 애쓰지도 않겠다. 삶이 주는 것을 달게 받겠다(291쪽)"고 표현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할머니가 떠주신 낡은 스웨터에 난 구멍을 메우는 뜨게질을 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아직 슬픔은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만 바버라는 매우 슬기롭게 자신의 운명을 부딪혀 나갑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어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이 상실의 기록은 앞으로 고통을 경험할수도 있는 많은 이에게 작은 등불이 되리라 믿습니다. '좋은이별'을 읽고 리뷰를 썼을 때도 인용하였습니다만 저는 이럴때 항상 서정주님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떠올린답니다. 바버라의 슬픔이 한 줌 가벼워지길 기대하며 올려봅니다.
섭섭하게, / 그러나 / 아주 섭섭치는 말고 /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추언 : 출판사에서 4-3 관련 동영상을 만들었군요.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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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다 한순간 맥이 탁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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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부터 할까? 바버라도 자신의 기억 어디부터 써야 할지 고민했었다. 나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어떤 말로도 그녀를 위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쓸까 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단지 이 책 뒤에 '소리 죽여 흐느끼게 되는 책'이란 말이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음을 밝히고 싶다. 나는 소리 죽여 흐느껴 울지 알았다. 눈물이 뚝뚝뚝 하고 떨어져서 더 이상 읽기 힘든 일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수년째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피에로로 일하고 있는 병원으로 내 아이들이 이송된 것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조종하는 인형 주인이 자신의 인형극에 어울리도록 조절한 것일까?(p.60)
가족과의 시간은 영원히 끝났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름다웠고, 아무리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았다 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을 아무런 고통 없이 기쁜 마음으로 되돌아보는 것처럼, 헬리와 우리 아이들과의 시간을 기억 속에 기쁘게 간직하고 싶다. (p.106)
바버라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자상한 남편 헬리와 사랑스런 아들 티모와 귀여운 딸 피니를 한꺼번에 잃었다. 티모는 우리 첫째 딸과 비슷한 또래여서 장난꾸러기 티모의 모습에서 나는 첫째 딸을 생각했다. 또 발음이 불분명한 그러나 인형 같은 딸 피니는 우리 둘째와 셋째 딸을 생각나게 했다. 피에로라는 조금은 독특한 직업을 가진 그녀의 남편 헬리는 당연히 우리 남편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자신만 홀로 남고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바버라는 추억에 집착하지 않는다. 장례식조차 울음바다가 되지 않기 위해 '영혼의 축제'라는 이름을 걸로 피에로를 초대해 자신의 가족들이 웃으며 바라 보기를 소망한다. 아무리 힘센 척하고 잘 버티는 척 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평범한 일 중 하나처럼 이겨낼 수 있을까? 바버라가 바지가 너무 커서 새로운 허리띠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바버라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어하는 마음...... 나도 그럴 것 같다. 진정한 위로가 필요하지만 다시는 넷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 사진을 통해 본 헬리는 어찌나 자상해 보이던지...... 이제 장작을 패 주고, 셔츠를 입을 남편이 없으니 그녀는 가슴이 무거운 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구멍이 뚫린 것 같지 않을까? 바버라는 이제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런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때문에 내 시간을 갖고 싶어 안달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바버라도 그랬을 것이다. 큰 고통 뒤에 찾아오는 슬픔과 분노를 통과하고 새 삶을 받아들이는 바버라를 응원한다. 그런 고통을 겪고도 바버라의 삶이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있으니 정말 놀랍다. 만약 5빼기 4라면 나는, 나의 부족한 신앙의 힘으로 얼만큼 버텨낼 수 있을까? 하나님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나도 같이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지는 않을까? 나는 바버라처럼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 피하려 들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위로 받으려 하기 보다 사람들을 피하려 할 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보는 걸 원치 않아 혼자 괴로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열심히 이겨내려 힘쓴 한 여인이 있다는 걸 알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도 이겨내려고 애쓸 것 같다. 아니 그건 그냥 상상으로 족하다. 나는 이제 남편과 사랑스런 세 딸에게 더 사랑을 주며 살려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나를 희생하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우리 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리고 남편은 여전히 든든하다.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표현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가야겠다.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서 바버라만큼 견뎌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바버라의 홀로서기는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인간의 힘으로 이것보다 더 잘 버텨내는 방법이 있을까? 심리극을 하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받고,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고, 다른 이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갑자기 작년에 읽은 '오두막'이 생각났다. '오두막' 역시 아버지로서 견디기 힘든 아픔을 가진 맥이 등장하니까. 소설과 실제 이야기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오두막'에서는 맥이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아픔을 온전히 치료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있을 수 있을까? '바버라가 신앙의 힘으로 천국에서 남은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면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녀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으로 쓰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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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는 아이 둘과 남편을 철도 건널목에서 일어난 차 사고로 잃었다. 이 책은 그녀가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쓴 한 통의 이메일로 시작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자신에게 내밀었던 도움에 대한 감사, 그리고 큰 슬픔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의지, 남편을 잃고 닷새 만에 아이들 모두를 보내야만 했던 아픔 등이 녹아 있었다. 열일곱 살의 바버라는 우연히 집으로 향하다 피에로의 공연에 눈길이 갔다. 가냘픈 몸으로 혼자 무대 위에 서 있는 피에로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피에로는 공연 도중 지원자를 찾으면서 그녀를 세 번이나 지목했던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그에게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는 남자 파트너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외로운 그의 옆에서 바버라는 피에로가 되었다. 그녀는 과거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했다. 남편과의 8년, 아이들과의 7년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희미해져만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 글을 써내려갔다.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아주 멀리 가버린 남편과 아이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후에 이 세상과 작별할 때 그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아서……. 티모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전거, 피니가 사랑하던 담용(피니는 담요를 담용이라 불렀다.)가족들이 죽던 날의 기억은 마치 정지해 버린 시계처럼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편은 아이들과 자신에게 핫케이크를 구워주고, 병원으로 피에로 일을 떠나야하는 바버라는 가족 소풍에 따라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의 뽀뽀를 받으며 웃으면서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짐작조차 못한 채 말이다. 아이들을 태운 채 건널목을 건너던 차는 열차와 충돌해 찻길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남편은 즉사했다. 티모와 피니는 목숨은 건졌지만 티모는 식물인간 상태로 피니는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날 하늘에서는 굵은 눈발이 날렸다. 떨리는 몸과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의 무게를 지고서 그녀는 자신이 피에로 공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병원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아이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새로 이사한 낡은 새집을 그렇게도 빨리 마무리 지었던 건 혼자 남을 아내를 위한 배려였을까? 죽기 전 날 자신을 끌어안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헬리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6주의 시간이 그에게도 주어졌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피니와 티모를 하늘로 보내고 바버라는 결심했다. 공동묘지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하는 파티를 열기로 말이다. 동료 피에로 친구들에게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와 달라 부탁했고 참석하는 모든 이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세 사람의 관에 놓을 세 송이 꽃과 그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적은 종이도 잊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족들을 알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알려달라고 전했다. 헬리와 피니, 티모에게 사람들이 꽉 찬 집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엄숙한 장례식 앞에 파티가 웬 말이냐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피에로 가족이었던 그들에게 슬픔은 어울리지 않았다. 영원히 아름다운 기억만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했던 물건들을 함께 묻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색깔의 옷을 입으며 그렇게 장례식을 마칠 수 있었다. P134-135 토요일은 축제를 하기에 좋은 날. 그래, 그렇고말고. 아무도 축제를 할 기분이 아니라 해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날이 있을까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을까 영원히 잡아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가끔씩은 그런 사실이 오히려 기쁘다.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 축제에서 세 명의 손님이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들의 관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이렇게 멋진 축제에서 사람들은 왜 이리 슬피 우는 걸까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더 이상 보려 하지 않는 걸까 너무 많은 눈들이 엉뚱한 것을 본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만 본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믿는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는 종종 몇 시간씩 찾아 헤맨다. 찾는 것을 포기하고 나면 그제야 찾을 수 있는 법인데. 아무도 축제에 오려 하지 않는다. 이제 축제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단지 세 명만이 더 이상 그곳에 없는 세 명만이 그들만이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와 있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느낌에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과 대화가 필요했다. 그들의 위로와 슬픔을 받아들이는 솔직한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은 대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걸까? 그런 책을 읽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책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죽음 체험이나 슬픔을 이겨내는 심리학책들을 구입했다. 어디를 가나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지나치게 슬픔을 의식하고 있는 탓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낸 이메일은 신문사 기자마저 알게 되었고 가족 셋을 잃고 홀로 남겨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늘 그렇듯 상실감은 그녀에게도 찾아왔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자신의 모습이 싫어 밖으로 나가는 게 무서웠다. 가족들의 온기를 찾아 잠만 잤다. 그녀를 도우려 하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손길도 거부하고 그녀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그녀도 인간이었기에 생리적인 욕구는 그녀를 가장 먼저 슬픔에서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일어나야 할 때다. 아직 빨래 건조대에 널어져 있던 아이들의 옷을 개며 그녀는 아직 가족들을 보낼 때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가족들의 사망통지서와 관련해서 관청을 방문해야 했고 보험금 문제로 재무 설계사를 만나야 했고 상속문제를 위해 변호사와 일을 논의해야 했다. 그리고 헬리와 함께 수년 간 살았던 아파트도 처분해야 했다. 친구들과 그 아파트의 짐들을 정리하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상실의 4단계에 대한 내용을 나도 읽은 적이 있다. ‘억압’, ‘감정의 밀물’, ‘감정의 썰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색’...... 바버라는 억압과 감정의 밀물의 단계를 벗어나 감정의 썰물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슬픔을 부정하지 말라는 말과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등을 그녀는 글에 담아 가족들에게 보냈다. 역할극을 하면서 그녀는 남편 헬리와 티모, 피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티모와 피니를 죽게 했던 남편 헬리의 미안함을 이해했고 다시 삶의 의지가 굳게 생겨났다. 그러면서 헬리와 티모, 피니를 잃은 슬픔이 그녀에게만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형태로든 그들 세 사람을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티모의 문제로 부부가 찾았던 심리치료사 엘리자베스는 이제 바버라의 슬픔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있다.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편지에 힘입어 자신들의 슬픔을 담아 그녀에게 보낸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감사, 용서, 그리고 사랑을 가득 담아서…….
이제 바버라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삶이라는 축제 속으로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가족들은 그녀 안에서 영원히 함께 하고 있다. 단지 죽음이라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무언가가 되려고 기를 쓰지도, 무언가를 피하려고 애 쓰지도 않고 삶이 주는 걸 달게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인생임을 이 작품을 통해 깨닫는다. 더불어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좀 더 자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언제 어떤 형태로 내 곁을 떠날지 모른다. 소중한 이들에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사랑을 가득 담아 지금 내 곁에 이렇게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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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가까이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것도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들,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는, 나의 분신인 사람들. 그도 한 명이 아니고 3명이 한꺼번에 나의 곁에서 영원히 떠났다. 이런 일의 남겨진 당사자가 되었을 때 우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글을 정리해 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그 물음은 언뜻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이 글은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눈물을 삼키면서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극도로 슬픔을 절제하고 있다. 그것이 독자들에겐 더욱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남편과 분신인 2.6살 아이들 3명이 한꺼번에 차를 타고 가다가 열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모두 세상을 떠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작가는 실감을 하지 못한다. 노란 차가 찌그러져 철길 옆에 서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도, 그는 정확하게 그것이 느껴지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이 곁에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같이 있었고, 그들의 살을 매만지며 함께했던 시간이 바로 전인데, 그의 뇌리는 먹먹해 진다. 아무 것도 생각을 할 수가 없어진다. 이야기는 사진 한 장으로 출발하고 있다. 그것은 남편 ‘헬리’가 물통에 들어가 찍힌 익살스러운 사진이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6년 동안 보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전혀 예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그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화자는 망연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일기를 쓴다. 남편을 추억한다. 피에로가 좋아 피에로 연기를 하는 그를 만나고 불같은 느낌으로 사랑에 빠지고 빠른 속도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가진다. 아이들을 떠올린다. 큰 아이 ‘티모’는 제주꾼이고,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그들의 보물이다. 그의 웃음 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절제하며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는 환영으로 늘 함께한다. 방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작은 딸 피니, 아직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는 발음에 끝 글자를 늘 ‘ㅇ’을 붙이고 발음을 한다. ‘엄망’을 떠올리면서 또 눈물을 삼킨다. 글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슴이 먹먹하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불행,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만일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조차 그래서는 안 될 듯하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을 수 있는 어구가 되리라. 그 이외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운 심정이다. 그 심정을 추스르면서 그가 보여주는 인내는 대단하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너무 애틋하다. 보통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넋을 놓아버리는 상황이 많이 전개 된다. 그의 인생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금빛 고기들을 언어로 낚아 올린다. 그 언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예쁜 꽃잎들이 된다. 처연함이 아름다움이 되는 것을 본다. 아이들이 떠나갈 때 사슴을 본다든지, 그들을 영결하는 자리에서 영혼의 축제를 벌인다든지, 새롭게 역할극에 참여하는 일 등은 작가가 건져 올린 언어의 마술이다. 그 마술에는 슬픔을 견디게 만드는 희안한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이 재생의 신비를 쫓고, 그는 삶을 추스린다. 그는 말한다. “산다는 것은 추억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남편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나누었던 꿈을 꾸면서 그렇게 다시 활기를 얻는다. 그들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형을 찾는다. 그의 견뎌 나가는 일상이 놀랍다. 사후에 관계되는 책들을 옆에 놓아두는 일도,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일도, 유치원의 행사에 참가하는 것도 모두가 가족들의 옆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한 듯하다. 그는 애써 떠나간 가족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들을 잊으면서 새로운 출발에 목마르지 않는다. 그들을 떠올리면서 그들 속에서 그의 삶을 건강하게 재생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만날 문을 생각한다. 그들과 만날 수 있는 문은 사후의 자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다. 늘 ‘엘리’가 옆에서 도와주는 듯함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의 보살핌도 마다하고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 대해 목마르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글은 대화체로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가서 운문이 많이 등장한다. 감정을 처리하기 좋은 표현이라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글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표현을 함에는 운문이 제격이다. 그렇기에 운문을 통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슬프다. 그가 어찌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글에서 보여준 그의 자세는 꿋꿋하다 그것을 통해, 절절한 아픔이 절제되어 더욱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아픔이 되는 듯하다. 나는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주변에서 그의 감정, 그 부스러기를 주워도 눈물의 샘이 된다. 어찌 세상에 이런 일이, 작가의 맑은 영혼의 삶을 기원해 본다. 너무 아프다. 눈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 글이 그의 심장을 적셔줄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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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이 탄 차가 사고가 나서 길가에 멈춰섰다는 연락을 받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 수만가지 나쁜 생각들과 재난영화의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남편이 죽었을까? 남편이 누군가를 죽게 하였을까? 티모가 다쳤을까? 혹시 피니가 죽었을까? 남편과 피니? 아니면 티모와 피니가 죽었을까?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는 동안 떠오르는 그 나쁜 생각들 중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모두가 죽었을꺼라는 것은 미처 예상해 보지 못한다.
4빼기 3은 참 슬픈 공식이다. 독일의 바버라 에버하르트가 2008년에 실제로 겪은 일을 일기와 에세이의 형태로 담담히 적어가고 있다. 소설일꺼라 예상하고 작가의 계획된 슬픈 시나리오를 즐겨주리라 다짐하며 집어들었던 책이었는데, 쿵. 모든 것이 실화다. 게다가 그 슬픔의 주인공이 직접 감정의 흐름 그대로 생생하게 적어내려간다.
혹여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남겨진 자가 그 누구든지간에 몇날 며칠을 정신을 잃어가며 울고 통곡하고 망연자실하지 않을까? 세 명의 장례를 동시에 치르고 그들을 보내는 지인들의 안타까움이 전해지고, 남겨진 자는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힘들어 하고... 하지만 바버라는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 남다르다.
먼저 남편과 아이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그들의 영혼이 자신의 주변에 있음을 느끼고 편안히 보내주길 원한다. 남편과 자신의 직업이 남들을 기쁘게 해 주는 삐에로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 방식과 사물을 남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오히려 남편과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을 기념하는 작별파티로 장례식을 대신한다.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풍선과 삐에로 복장으로 참석해 줄것을 알리고 독특한 방식의 장례식을 직접 주관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비극적인 아픔과 이색적인 장례식에 동참하며 위로해 주지만, 결국 모두가 떠난 후 그녀 역시 그 인생의 구멍앞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다.
울음조차 울지 못하고 남겨짐에 대한 죄책감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절망과 분노와 고통과 슬픔의 순서로 찾아온다. 그녀의 글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다.
"고통이 찾아왔을 때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래서 친구가 안아줘서 고통이 줄어들고 위로의 말로 고통을 잊게 해주면, 선물은 없었다. 불청객은 결국 언제고 기어코 내 방문을 다시 두드리고, 나를 바닥까지 몰고 갔다가 선물을 준 다음에야 돌아갔다." (p208)
정말 힘든 순간에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 함께 있어주고 위로의 말로 따뜻하게 안아주면 고통이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그 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금 찾아오는 것이 고통이다. 고통은 결국 그 긴 터널을 혼자 이겨내고 걸어나와야 끝이난다는 것은 경험자만이 아는 진실이다. 누군가 함께 있어주는 것은 단지 잠시 잊혀지게 할 뿐, 혼자 비수로 심장이 찢기는 아픔의 순간을 모두 이겨내야 새로운 깨닫음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있었던 가족을 잃는 아픔과 없어서 간절히 바라는 아픔의 크기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앞에 닥친 커다란 구멍이라는 것은 비슷하기에 그 고통을 이겨내고 감내하는 모습이 크게 와닿는다.
마지막 장에서 그녀의 할머니의 스웨터 얘기가 위안이 되었다. 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즐겨입는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가 직접 떠 주신 스웨터. 어느 날 발견한 구멍에 속상해 하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입는다. 점점 커진 구멍에 옷이 더이상 상하지 않도록 다른 실로 꿰매어 본다. 올이 더 풀린다. 뜨개질을 배워서 구멍의 크기만큼 모양을 만들어 이어본다.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스웨터를 다 풀고 새로산 실과 섞어서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게 된다.
인생 앞에 닥친 구멍에 낙망하여 스웨터를 내팽개치듯이 내던져 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조금씩 일어서보는 시행착오들을 거쳐서 결국에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짐들을 다 지고서 가야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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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 하나' 엄청 간단한 수식의 답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서 제일 소중한 것을 앗아가고 남은 것이 바로 하나, 나 자신이라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도 십 여년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떠나 보낸 기억이 있다. 밤에 잠을 자지 않아도 힘들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전독일 국민을 울린 감동의 실화! 50주 연속 베스트셀러
4-3 ( 4빼기3)
헬무트 에버하르트, 바버라, 그리고 부부 사이에 태어난 사랑스런 두 천사 티모와 피니 이렇게 넷이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두 아이가 죽고 나 홀로 남게 된다. 정말로 상상하기조차 싫은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하는 피에로 바버라. 바버라의 남편 역시 피에로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의 행복한 나날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태운 피에로 버스가 건널목에서 열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 바버라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지만 사실이라는 생각을 하니 몸서리쳐진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토록 짧을 줄은 몰랐다. (p11)
어느 한 순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다는 상상을 하는 내가슴도 이렇게 아려 오는데, 바버라의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바버라는 남들과 다르게 받아들이며 아픔을 승화시킨다.
까만 정장을 입고서 장엄하고 슬픈 장례식이 아닌 죽은 이들을 위한 꽃 세송이를 가지고 화려하고 화사한 옷을 입고, 마지막 길을 가는 남편과 아이들과의 재미난 추억을 글로 써서 준비하여 음악과 함께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남편과 아들, 딸의 장례식을 '영혼의 축제'로 준비하여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자의 고통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바버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한단계 한단계 찾아가며 지독하고 아픈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죽음', '이별' 누군가는 언젠가 다 겪어야 할 아픔이다. 나 역시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터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되돌아보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하게 되더라도 밑바닥까지 떨어진 아픔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바버라의 모습을 생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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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큰 숫자의 제목만 얼핏 봤을 때는 경제책인가? 하지만 그 밑의 '어느 날...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습니다.' 라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직업, 노래, 연극, 정원일,.....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 무대에 선 피에로 헬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녀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에로다. 가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나 세상 일이 너무 힘들게만
초콜릿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혼내는 엄마에게 서로 싸우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녀는 소리친다. "매 순간 순간이 소중합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십시오! 칭찬하십시오! 아낌없이 주십시오. 서로에게 잘 해주십시오!" ![]() 그녀가 아이들에게 쓴 편지
![]() 그녀가 받은 감사의 편지 중......
요즘 읽은 책이나 영화가 자연스레 하나로 모아진다. 아주 작은 일상에 대한 감사함, 옆에 있는 이의 소중함,.....
이렇게 근사한 것을 모두가 기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