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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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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그림 하나와 그 아래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 마그리트의 이 단순한 도발을 푸코는 서양 회화를 지탱해온 두 원리, 즉 조형적 재현과 유사(類似)에 대한 근본적 심문으로 밀고 나간다. 이미지와 언어가 만날 공통의 자리는 없으며, 재현은 결코 지시 대상을 붙잡지 못한다. '백마비마'식 결론으로 요약해버리면 허무하리만치 간단해 보이지만, 푸코의 진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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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그림 하나와 그 아래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 마그리트의 이 단순한 도발을 푸코는 서양 회화를 지탱해온 두 원리, 즉 조형적 재현과 유사(類似)에 대한 근본적 심문으로 밀고 나간다. 이미지와 언어가 만날 공통의 자리는 없으며, 재현은 결코 지시 대상을 붙잡지 못한다. '백마비마'식 결론으로 요약해버리면 허무하리만치 간단해 보이지만, 푸코의 진짜 관심은 유사를 상사(相似, similitude)로 대체하며 확언의 질서 자체를 해체하는 데 있다.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의 문제의식을 회화 위에서 실험한 얇은 논고. 초현실주의 미술을 언어철학과 인식론의 사건으로 읽어내는 푸코의 손놀림이 인상적이지만, 김현의 밀도 높은 번역과 원문의 비약 탓에 만만히 읽히지는 않는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재현을 다시 묻고 싶은 이에게 권한다.

YES마니아 : 골드 y*****n 2026.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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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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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미셸 푸코 인사동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디지털 아트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를 찾기 전에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먼저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동안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을 접할 때마다 '왜 방 안에 거대한 사과가 있을까? 왜 유리잔 위에 구름을 병치했을까?' 분명 정답이 외따로 존재할 것만 같아, 정확한 화가의 의도를 도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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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미셸 푸코



 인사동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디지털 아트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를 찾기 전에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먼저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동안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을 접할 때마다 '왜 방 안에 거대한 사과가 있을까? 왜 유리잔 위에 구름을 병치했을까?' 분명 정답이 외따로 존재할 것만 같아, 정확한 화가의 의도를 도출해내고 싶다는 생각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당황스러운 나는 더 궁리해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성급히 결론지었지만 부족한 결론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이 책은 '판옵티콘'으로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가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비평한 것이다. 당시 세계 철학과 미학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게 철학과 미학이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철학자인 푸코가 작품을 비평한 내용이 실제 화가 마그리트의 의도와 백프로 일치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카르트로 대변되는 합리성 중심의 모더니즘에 반기를 드는 푸코의 철학이 마그리트의 작품세계를 만났을 때 풀어내는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출발한 그의 비평은 현대 미학의 쟁점과 가치를 분명히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현대 사회 속에서의 고유한 개인을 조명하기까지 이른다. 


내 생각으로는 두 개의 원칙이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회화를 지배해 왔다. 첫 번째 원칙은 조형적 재현(유사 ressemblance)과 언어적 지시(유사를 배제한다) 사이의 분리를 단언한다. 우리는 유사를 보며, 차이를 통해 말한다. (p.39)

오랫동안 회화를 지배해 온 두 번째 원칙은 '유사하다는 사실'과 '재현적 관계가 있다는 확언' 사이의 등가성을 제시한다. (p.42)


 푸코가 보기에 마그리트는 전통적으로 서양 회화를 지배한 원칙 두 가지로부터 회화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다. 우선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조형적 재현과 언어적 지시가, 둘 중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한 종속 관계로 맺어지지 않고 동등한 관계를 갖는다. 또한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실재와 재현의 등가성을 해체한다. 예를 들어 파이프의 데생은 관습적으로 실제 파이프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림 아래쪽에 위치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텍스트로 인해 파이프 데생(재현)은 실재와 같은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한다. 


 이를 좀더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푸코는 '유사(ressemblance)'와 '상사(similitude)'의 개념을 사용한다. '유사'에는 원본(original)과 모방품의 종속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반면, '상사'에는 원본이랄 것이 없고 수많은 복제품들의 대등하고도 가역적인 관계들이 존재한다. 푸코가 사용한 이 개념들은 현대 미학의 주요 쟁점이 되는데,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나 <캠벨 수프>같은 작품들을 보면 원본이 무엇인지 중요치가 않고 수많은 복제품들이 저마다 대등하고도 자유롭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상사'의 우위성이 실제로 규율적 권력에 비판적이었던 푸코의 철학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과거 권력 계층을 원본에 비유한다면, 수많은 피지배 계층은 그 원본을 지향하는 모방품에 빗댈 수 있다(유사).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원본이 어디에 있을까? 개별적이고 고유한, 그리고 제각기 뻗어나가는 수많은 개인들이 살아갈 뿐이다(상사).


 과거 서양 회화에서 원본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일에 관심을 두었던 것을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과도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미학에서는 이데아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아니 오히려 이데아를 깨부순다. 이제 더이상 무엇무엇을 닮은 회화는 없다. 화폭은 스스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그림자'가 된다.


 다시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결국 <어디에도 파이프는 없다>. 

이 화폭, 이 씌어진 문장, 이 파이프 데생, 이 모두는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는 깨질는지 모른다. (p.36)


 그저 마그리트의 작품을 더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몇 년간 읽은 책들 가운데 굉장히 난해하고 심오한 편에 속하는 책이었다. 두 번을 정독해도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학 책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기에,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소쉬르의 책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나서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 넓게 볼 수 있으려나?

j********t 2020.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