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고, 당신은 누구죠? 문득 눈을 들어보니 나는 낯선 곳에 있었다. 그 곳은 어느 퇴락한 객실 같았다. 창문은 모조리 깨어졌고 바람이 몰려와 낡은 커튼을 쉴 새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소파였는데 그 역시 낡을대로 낡아 있었다. 엉덩이를 움직이다 튀어나온 스프링자국에 찔리기도 했다. 벽지는 위로부터 서서히 벗겨져 아래로 내려오고 의자 하나는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바닥에 자욱한 먼지는 이 방이 오래전부터 죽어있는 공간임을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 유령처럼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자네가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 그의 목소리는 바로 맞은 편이 아니라 저 먼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실루엣 같은 그의 형상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어쩌면 진짜 유령인지도 몰라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별로 무섭지 않았다. 모든게 그저 꿈결 같았기 때문이다. 이 방, 맞은 편의 남자, 그 목소리 모두가 현실감이 없었다. 자네는 내 책을 읽었네. 내가 자살할 때 내 곁에 있었던 책이지... 또다시 먼 뱃고동 소리 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근데, 그 목소리는 내게 한 인물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래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몰랐겠지만 난 내 책을 읽은 사람을 종종 이렇게 초대하곤 한다네. 물론 초대받은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 그럼 이건 꿈인가요? 정확한 의미에선 꿈은 아니지. 자네는 나와 실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니까. 유령과의 만남이라고 해도 좋겠지. 어쨌거나 난 아무 상관이 없네. 난 다만 내 책을 읽은 자네와 얘기가 하고 싶은 뿐이니까. 그랬군요. 하지만 제가 얘기할 게 있는 지 잘 모르겠네요. 아시다시피 그 소설은 정말 난해하니까요. 그 수많은 대화들이 무얼 의미하고 있는지 어떤 땐 알 것 같다가도 어떤 땐 도통 모르겠다니까요. 그래도 뭔가 대략적이더라도 찾은게 있지 않았나? 그것이 일종의 여행 같다는 정도죠. 뭐랄까 사유의 여행?... 흥미로운 견해로군.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뭐랄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내키는대로 하게나. 난 상관없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명확한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의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들 처럼 그 대화들이 스케치되듯이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확한 하나의 의도라? 혹시 내가 말한 '삶은 피곤한 노동'이라는 말 때문인가? 그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선생님의 책을 번역한 역자가 말한 불멸과 필멸의 관계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불멸의 존재인 신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합할 때 마다 겪는 비극이 빠짐없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필멸은 스스로 불멸과 연합하여 불멸이 되려하지만 필멸의 존재성을 도저히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 필멸인 존재는 어떡하든 영원히 필멸의 존재인 것입니다. 헤라를 겁탈하려 했던 익시온은 결국 반인반마 켄타우르스를 낳았고 그건 악타이온이 아르테미스의 나신을 보고 죽은 것과 같죠. 하이킨토스는 아폴로의 연인이었으나 결국 그가 던진 원반에 예기치않게 맞아 죽었고 아르테미스와 사랑했던 엔디미온은 죽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영원의 잠을 자야했지요. 이 예를 더 이어가야 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그런데, 자네는 오딧세우스를 잊고 있군. 아, 그런가요? 오딧세우스는 여신인 키르케와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파멸하지 않았잖나? 하지만 그 여신 키르케는 오래전에 서열에서 제외된 자가 아니었습니까? 달리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그럴수도 있겠군. 하지만 어쨌든 자네의 말은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군.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뭔가 잡았다 싶으면 또 여지없이 미끄러져 버린다고... 선생님의 그 모든 대화들은 정말 하나로 얽매이지 않아요.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제가 머리에 떠올렸던 가장 최종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건 필멸의 존재인 우리들이 어떻게 우리의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모든 대화들은 각자가 다 달리 그 불멸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생각들과 겹쳐질 지도 모릅니다. 모두 27개의 대화에서 변주되고 있는 필멸에 대한 반응들은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을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로 모으지 않습니다.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모을 수 없듯이. 그래서 선생님의 소설은 그야말로 사유의 여행인 셈이죠.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네. 다만 자네의 이야기만 듣고 싶을 뿐이야. 초대란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던가요? 상당히 불공평한 대우로군요. 그것이 유령과 인간의 관계인 것이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햄릿과 그의 아버지를 생각해보게. 그렇게 당신은 불멸이 되었군요. 스스로 필멸을 이룸으로서... 그래, 어떤가요? 불멸의 존재가 된 기분이... 자네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하는군. 유령은 듣기 위한 존재라고 이미 말했지 않나? 네, 뭔가 불공평한 것 같지만 계속 이어가도록 하죠. 저는 이 모호한 대화들의 편린이 과연 무엇일까? 왜 선생님이 이렇게 저를 사유의 여정으로 이끄는가가 궁금했습니다. 다양한 반응의 변주를 보여줌으로서 궁극적으로 선생님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말이죠. 거기엔 모든 의도의 실패가 있고 신보다 더 강한 운명이 있습니다. 불멸에의 동경이 있는가 하면 필멸에의 찬양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유한성 때문에 신들 보다 더 위대하다는 자도 있지요. 저는 이러한 이어지지 않는 편린들을 보면서 얼른 놀이동산에 있는 거울의 미로가 떠올랐습니다. 사방이 거울의 벽으로 되어있는 미로가 말이죠. 거기는 자꾸만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얼른 자기가 어디있는지 알기가 어렵죠.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확인하고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소설이 저에겐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 모든 대화의 편린에서 보여지는 건 언젠가 제가 했었던 사유의 조각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모든 이야기는 핵심을 추려보면 어떤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그 사유의 조각들에 점점 집중하다 보니 제가 가진 모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그 수많은 대화들을 읽으면서 내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무엇이었나 기억하기가 힘들어져 졌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알듯 말듯 모를 대화들에 어느샌가 매혹된 것이죠. 거기엔 본래의 내 생각을 포멧하고 다시금 언젠가 향유했던 사유의 조각들을 되새김질 하게 만드는 매혹이 있었습니다. 유려한 그들의 말투는 정말 현혹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상징과 암시가 가미된 문장들은 미스터리 소설에 나오는 암호문 처럼 해독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이 얼마나 수많은 밤을 저와 함께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저는 여전히 거울의 미로에 갇혀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싶으면 불멸의 존재들과 필멸의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주 짧은 대화편이라 언제 어느때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또 필멸을 사유하고 운명과 자유에 관해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궁극의 목적은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출출할 때 먹는 야식 처럼 문득 영혼의 빈곤이 느껴질 때 손쉽게 들 수 있는 사유의 단초를 제공해 주는 것? 그래서 혹시 선생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곁에서 머물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유령이 된 내게 더이상 물질로 요구되는 기호 같은 건 소용이 없다네. 있는 건 다만 포용뿐이야. 그래서 유령은 듣기만 하는거지. 자네의 생각에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말일세. 더구나 자네의 말대로 내가 그런 사유를 지속할 의도로 썼다면 더우기 그래서는 안될 일이지. 그러니 자네는 내게 해답을 구해선 안되네. 행여 내가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자네가 어찌 알겠나? 그리고 사람은 또 세월에 따라 생각이 변하는 법이니 오늘의 대답이 궁극적 대답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나? 사람들은 작가의 말이 일종의 해답 같은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사람에게 항상 고정불변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네. 그건 오늘의 대답일 순 있어도 궁극의 대답은 될 수 없는 것이지. 하지만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궁극의 대답이 아닌가? 그런데 궁극의 대답이 어디에 있는가? 시간이란 편의상 지속의 개념으로 만들어졌을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네. 즉 지속이란 것은 우리의 환상에 불과하고 있는 것은 다만 '영원한 현재'일 뿐이야. 과거와 미래 어디로든 이어지지 않는. 자네는 그저 순간속에 존재하는 거지. 그 무한의 순간 속에서 끊임없이 또한 변하고 있는 게 자네라네. 그러니 내게서도 어디서도 해답 같은 것을 구하지 말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알고 있나? 그 고양이 같은 거라네. 상자를 열기 까지는 그 반반의 확률로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 열어봐야 고양이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는데 결국 이 말은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하는게 자네에게 달렸다는 말이야. 이 영원한 현재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선 오로지 모든 것이 자네의 손에 달려있네. 질문에 자네만이 답해줄 수 밖에 없다는 걸 명심하게.
마지막 그의 목소리는 아련하게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그렇게 그것은 내가 그 객실을 빠져나와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뜻했다. 그의 모습은 여전히 실루엣으로만 남아있다. 내가 나올 때 그와 악수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했으면 좋으련만. 유령의 감촉이 어떤지 알 수 있었을 테니까. 혹시 만졌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가 말했던 대로. 그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레우코와의 대화를 흉내낸 이 대화들은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어렴풋한 기억만이 남은 상태에서 그냥 내가 작위적으로 채워넣은 픽션일까? 아, 알 수 없다. 나 역시 지금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린 것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