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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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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에는 끝없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이겨낸 두 개의 민족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먀오족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이다.”                               - 게디스 (오스트레일리아 인류학자, 1916~1989)     학자나 연구자들에겐 매우 사소한 것이 연구의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 김인희의 경우도 그러하다. 고구려 유민에 대한 지극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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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에는 끝없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이겨낸 두 개의 민족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먀오족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이다.”

                              - 게디스 (오스트레일리아 인류학자, 1916~1989)

 

 

학자나 연구자들에겐 매우 사소한 것이 연구의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 김인희의 경우도 그러하다. 고구려 유민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여상히 지나칠 수 있었던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어느 날, 저자가 국제학술대회 중에 들른 중국 남방의 먀오(苗)족 마을에서 고구려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먀오족이 입고 있는 바지가 고구려의 궁고였던 것이다. 먀오족은 우리에게 묘(苗)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동방불패〉라는 홍콩 영화에서 동방불패로 분한 린칭샤가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는 민족이 바로 먀오족이다. 먀오족은 현재 중국의 56개 민족 중 인구수가 다섯 번째로 많은, 중국 내에서도 비중이 높은 소수민족이다.

 

‘중국남방의 소수민족이 왜 고구려인의 궁고를 입고 있을까?’ 이렇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조사는 먀오족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계기로 발전시켰고, 이를 통해 송나라 이전의 먀오족 역사는 모두 ‘만들어진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한 후 669년 20만 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이 중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그중 1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인은 강회, 산남과 같은 중국 남방으로 이주해야했다.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을 가족단위로 이주시킨 것은 이 지역에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중국 남방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이 한국사 최초의 ‘카레이스키’로서 먀오족을 형성한 중심세력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저자는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 김인희는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언어인류학을 공부했으며, 한장어(漢藏語)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쉐량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논문 〈한국과 먀오족의 창세신화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필자의 학문적 관심은 한국 고대사에서 시작되었는데, 공부를 계속하면서 고고학과 인류학이 상보적이며 학문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고고학 쪽으로는 동이 문화를, 인류학 쪽으로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먀오족과 야오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2000년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고구려 유민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좀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중국으로 가 현지에서 자료를 모으고 현장답사를 하였다. 이 책은 필자가 그렇게 10년 동안 추적해온 고구려 유민의 행적과 그 문화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지은 책으로는 《동이신화, 태양을 쏘다》,《 동호 퉁구스의 가신신앙》 , 《흰바지야오족 사회와 신앙》 , 《소호씨 이야기》등이 있고, 그 외에 〈상고사에 있어 한중의 문화교류〉 〈두개변형과 무의 통천의식〉 〈초문화와 동이문화의 관계〉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학자로서의 학문적 열정과 연구자로서의 치열함이 책 전편을 통해 느껴진다.

 

문서상으로는 남아있지도 않은 한 민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탐색해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험난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의연한 결심으로 그 길을 나선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고구려의 흔적을 접한 저자는 “만약 고구려 유민과 궁고를 입는 먀오족의 관계를 부정할 증거가 발견된다면 언제든지 이 연구를 그만두자”는 비장한 각오까지 하게 된다. 학자의 아집으로 잘 못 된 역사를 기술할 수 없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다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초조감과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하다)

 

다행히 저자는 십 년 동안의 연구에서 축적한 증거들을 통해 고구려 유민이 먀오족의 뿌리라는 가설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다. 저자는 10년 동안 연구실에서 각종 사료를 조사해 답사 항목을 정한 다음 이를 확인하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저자는 십년의 연구과정을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행의 과정’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터전을 일구고 살아야하는 소수민족의 삶이 어떠한지는 겪어보지 않았기에 속속들이 그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만 할 따름이다. 1,000여년의 긴 시간의 흐름 속에 그들의 선조들은 다음 세대엔 내 자손들이 현재보다는 평안하고, 차별 없는 삶을 살게 되길 바라며 다른 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고구려 유민은 669년 후난성 일대로 강제이주 당했다. 다른 지역의 인구가 줄어든데 반해 고구려 유민이 강제이주 당한 후 후난성의 인구는 급속히 늘어났다. 당나라 시기에는 고려라는 지명도 등장하고 송나라 시기에는 고구려와 관련된 민족명도 등장한다. 송나라 때 갑자기 역사상에 등장한 먀오족의 전(前)역사는 모두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였다.”

 

“그렇다면 고구려 유민의 자칭은 가뤼인데 어떻게 해서 문헌에 먀오족이라 표기되고 광범위하게 불리게 되었을까? ‘먀오苗’라는 글자는 송대에는 백월민족이나 야오족과는 구분되는 가뤼라는 민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 이를 처음 먀오족이라 부른 사람은 주희(朱熹)이다. 주희가 후난성 일대인 담주에서 관리를 할 때 난을 자주 일으키는 민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이 민족이 어떤 민족인지 알지 못했다. 만약 후난 지역의 토착민이라면 주희도 이 민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희는 이 민족이 이전에 등장한 적이 없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삼묘와 같이 난을 자주 일으킨다는 점을 들어 그냥 ‘먀오’라 불렀다. 주희에 편견에 의한 오판으로 인해 이들은 점차 먀오족이라 불리게 되었고 가뤼는 자신들만이 아는 자칭으로 남게 되었다.”

 

신기한 바지, 쪼우를 실마리로 시작된 저자의 연구 여정을 통한 먀오족의 뿌리 찾기는 그들의 언어, 풍속, 신화, 축제, 결혼 및 장례문화, 모자, 주름치마 등 다른 의복과 장신구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현재 먀오족은 고구려 유민이 주간이 된 상태에서 주변의 여러 민족들과 결합, 형성된 것으로 이들을 순수한 고구려 유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이 주간이 되었기 때문에 먀오족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했고 고구려인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먀오족 사회에서는 고구려 풍속이 발견되고 조상이 북쪽에서 이주해온 역사를 잊지않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이 남방에 정착한 후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들은 이미 태생적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였다.”

 

디아스포라의 사전적 정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유대교의 관습과 규범을 따르며 살아가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일컫는 말이다. 또 ‘이산(離散)유대인’, ‘이산의 땅’ 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구려 유민 또한 ‘디아스포라’ 라고 할 수 있다.

 

 

 

 



s******5 2012.05.08.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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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고구려인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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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가장 강력한 나라이고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광활한 영토와 강력한 국력을 자랑을 하면서 중국과의 한판 승부를 벌였던 고구려가 패망을 하면서 당나라에 의하여서 이주가 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이야기 인데 저자가 중국에서 생활을 할때 몽족들과 관계가 있는 세미나에 참석을 하였다가 그들의 의복을 보고 고구려의 무덤에 남아있는 벽화에 등장을 하는 의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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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가장 강력한 나라이고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광활한 영토와 강력한 국력을 자랑을 하면서 중국과의 한판 승부를 벌였던 고구려가 패망을 하면서 당나라에 의하여서 이주가 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이야기 인데 저자가 중국에서 생활을 할때 몽족들과 관계가 있는 세미나에 참석을 하였다가 그들의 의복을 보고 고구려의 무덤에 남아있는 벽화에 등장을 하는 의복과 동질성을 느끼면서 몽족과 고구려 유민들의 상관관계에 대하여서 오랜 시간을 연구를 한 연구 성과를 책으로 담은것 같다.

몽족 일명 묘족은 홍콩영화 동방불패에 등장을 하고 있는데 산악지역에 살면서도 그들의 고유한 의복은 아주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이다.

묘족이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이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붙인 단어이고 그래서 서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몽족이라고 한다.

저자는 몽족의 고유 의상에서 고구려의 복식문화를 찾게되고 그 지역의 다른 소수민족들의 복식을 알아보면서 몽족의 독특한 의상이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는지를 연구를 하면서 그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였는데 주변의 다른 민족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을 하는데 비해서 현재의 몽족들의 역사는 초기의 모습들은 다른 역사를 가지고온 것으로 보이고 그들이 역사에 등장을 한 시기는 송나라 시기의 역사서에 처음으로 등장을 한다.

그렇다면 송나라 이전의 시기의 역사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가 되고 있는지를 연구를 하였는데 글자가 없는 민족적인 특성상 그들의 역사는 노래와 의복에 문양으로 전래가 되었고 그들이 전하는 의복의 문양에는 그들의 조상들이 원래는 다른곳에서 살았고 전쟁을 치루고 지금살고 있는곳으로 이전을 하였다는 뜻을 옷에 있는 문장이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몽족의 전통을 둘러보면 그곳에 살고있는 민족들과 확연하게 다른점들이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문화였고 그것을 대대로 계승을 하였다고 하는데 계승이 되고 있는 문화들이 예전의 고구려가 남긴 문화와 유사한 점들이 많기 때문에 당나라와의 전쟁으로 끌려간 유민들의 후예가 바로 현재의 몽족인것 같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오래전의 역사속에 사라진 우리의 원류인 고구려의 유민들의 현재의 위치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보이고 있는 책인데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가 워낙부족하고 연구가 안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진정으로 몽족이 예전의 고구려 유민들이 주류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민족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는데 어려움이 많을것 같다.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민족으로 알려지고 있는 몽족들이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계속 간직을 하고 살아갈수 있고 나중에라도 우리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연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지원을 하는 방법을 찾는것이 시급한 과제인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2.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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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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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이 지금의 먀오족이라는데 생소하다. 동방불패에 나오는 소수민족이 먀오족이란다. 영화 볼 때에는 먀오족 욕을 참 많이 했는데...중국인들은 고구려가 망한 후 유민 대다수가 내지로 끌려가서 한족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고구려인이 얼마인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300만 ~ 500만 아니었을까? 당나라가 20만쯤 강제 이주시켰으니 상층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발해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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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이 지금의 먀오족이라는데 생소하다. 동방불패에 나오는 소수민족이 먀오족이란다. 영화 볼 때에는 먀오족 욕을 참 많이 했는데...

중국인들은 고구려가 망한 후 유민 대다수가 내지로 끌려가서 한족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고구려인이 얼마인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300만 ~ 500만 아니었을까? 당나라가 20만쯤 강제 이주시켰으니 상층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발해로 계승되었다.


중국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은 과연 한화되었을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1950년대까지도 그들은 중국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워낙 반항적인 민족이라 통치가 불가능하여 중국 땅에 살지만 한인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과거 국가를 건설했던 경험에 대한 자부심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유 문화를 잊지않았다. 지금도 민족적 자부심이 매우 강인하게 유지되고 있다니 놀랍다. 먀오족은 당나라 때 등장하였는데 황하와 장강을 건너왔단다. 바지나 새 깃털, 절풍, 언어 상의 유사점, 형사취수, 집안에 시신을 묻는 풍습 등 18가지 사례를 들어 먀오족이 고구려 유민임을 입증하였다. 

거란족이 몽골에 의해 연이어 전쟁터에 끌려나가는 사이에 만주 땅에서 존재가 사라졌지만 소수민족으로 중국땅 어딘 가에 살아남았다고 하듯이 고구려 유민도 정체성을 유지한 채 먀오족으로 살아남았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소수민족을 연구하는 일은 고된 작업이다. 현지 방문이 쉽지않고, 연구문헌도 마땅치 않으며, 그나마도 상당히 왜곡되어 있기까지 하다. 소수민족이 한화되듯이 먀오족으로 편입된 한족도 있다. 또한 소수민족이 생존을 위해 선대의 역사를 고의적으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한족조차 버린 땅, 험하기로 소문난 산 넘고 물 건너 다녀온 저자의 끈기와 정성이 대단하다. 혼자 하는 연구 말고 다른 연구자도 참여하는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c*****8 2011.06.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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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의 고유성,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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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국제학술대회 참가차 갔던 곳에서 고구려의 바지인 궁고와 아주 비슷한 모습의 바지를 입고 있던 중국남방의 먀오족의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낀다.   분명 중국에서의 소수민족일진대 그들이 입고 있던 바지의 모양새는 벽화속에나 책에 기술이 되어온 고구려의 그것과 유사해도 너무 유사했기에 그들의 조상이 혹시 고구려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구를하게 됬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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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국제학술대회 참가차 갔던 곳에서 고구려의 바지인 궁고와 아주 비슷한 모습의 바지를 입고 있던 중국남방의 먀오족의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낀다.  

분명 중국에서의 소수민족일진대 그들이 입고 있던 바지의 모양새는 벽화속에나 책에 기술이 되어온 고구려의 그것과 유사해도 너무 유사했기에 그들의 조상이 혹시 고구려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연구를하게 됬다고 밝힌다.  

이들의 이름은 흔히 먀오라고 불린다. 그들중국인)  뜻대로라면 야만인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나타난 시기의 공식역사를 보면 동이족, 삼묘, 진한 이후 남만에 속했다가 송나라 이후에 먀오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은 다르다.  

중국내의 소수민족의 역사가 이처럼 자세하게 기록되어진 것도 없거니와 역사를 보건대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당시에 당나라에 많이 끌려갔고, 당시의 이동지역상 인구가 확연히 늘었단 사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미 정착한 세력들에 의해서 정착을 하지 못하자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오늘날에 이르렀단 사실을 밝힌다.  

먀오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동부 후난성에 거주하고 있는 동부 먀오족, 구이저우 지방의 중부 먀오족,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먀오족을 말하는 쓰촨남부, 구이저우 서부, 윈난, 국내외 까지 이르는 사람들을 이른다.  

우선 그들의 생활양식을 보자면 고구려 유민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만큼 그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됬는지의 구술로서 전해져 오는 얘기와 알의 신화, 치마 종류가 주름치마인점, 고구려의 축제인 10월에 열리는 동맹이란 것에서 유래된 듯 그들도 10월에 고사절이란 이름을 가진 축제를 하고 있단다.  

또한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혼인을 한 뒤 일정기간 동안 살다가 늦은 나이에 본가에 간다는 점, 집에 매장을 하는 습관, 머리에 깃털모양의 모자를 쓴다는 점, 쌀을 쌀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들의 고유모습을 지켜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이렇게 각지에 흩어져서 다른 민족과 동화되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고유성을 잊지 않았던 데는 비록 당시 중국에 건너왔을 시 언어가 존재했음에도 지금은 문자가 없이 그저 구술에 의존한 채로 조상들의 역사를 간지해 왔단 점에서  중국인들조차 그들의 말살정책을 펼쳤음에도 지독한 투쟁의 역사를 간직했던 결과라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흘러흘러 들어간 동남아에서 터전을 못잡고 전쟁에 휘말려 본의아니게 아시아를 벗어난 지역으로까지 삶의 터전을 마련한 먀오족의 뿌리찾기는 그래서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멀리서도 자신의 같은 뿌리인 배우자를 찾기위해서 중국에까지 오는 그들의 숨은 혈연의 뿌리는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란 말만 있는것이 아니란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게된 우리네 조상들의 역사는 그래서 더욱 역사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단 생각이 들게 한다.  

중국은 자신의 역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유민이 중국 문화에 복속이 되었기에 당연히 고구려가 다스렸던 지역조차도 자신들의 영토로 인정하게 하려는 동북공정의 계획을 늦추지 않고 있고 이에 반해 저자는 그런 그들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사실의 반대증거로 먀오족을 들 수 있다고 했다.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면 불같이 일어나서 너도나도 성토하는 분위기도 좋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역사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도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주해 와서 살고 있던 땅에서 조차 한족이 밀려와서 그네들이 차지하고 노예와 복속의 힘든 노동을 해가면서, 고립되다보니 본연의 한 공동체가 다른 무리의 소수민족과 섞여서 많은 모습을 잃었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그들 조상에 대한 것만은 잃지않고 살아가는 먀오족의 모습엔 고개를 숙이지않을 수가 없다.  

지금의 우리나라 위치를 보건대, 강대국에 둘러쌓이고 서로의 이익을 저울질 하는 정세속에서 우리가 그 가운데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역사란 이름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고구려유민의 후손인 먀오인들을 보면서 새삼 뿌리에 대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느껴보게 된 책이다.  

***** 우리은 왜 우리의 말을 해야 하는가? 

        우리은 왜 우리의  옷을 입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먀오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우리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려야 하는거?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민족이다.  

       우리는 폭력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노예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약한자를 탄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과 권력을 두고 다투지 않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든  

       얼마나 멀리가든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영원히 않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민족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먀오족이란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몽(먀오족) - 아몽 (먀오족) - 아몽 (먀오족)  

                                    - 먀오족이 부르는 노래_ 

 

*****  세계역사상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두 민족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먀오족이다.  - 오스트레일리아 인류 학자 게디스의 말 _

m*******n 2011.04.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