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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테(Karte)'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신분과 증세를 기록하는 진료 카드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이 소설은 현직 의사가 그리는 열악한 지역 의료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 이야기이다. 작년에 비슷한 이야기의 영화를 보았다. [우리 의사 선생님]인데 도쿄에서 발령 받아 온 인턴 의사 소마는 동네 사람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돌보는 이노와 함께 지내며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헌데 동네 의사 소마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 그에게는 의사면허가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서 ‘환자’를 치유하는 것은 의술만이 아니라 생각했다. .....75 “죽어가는 인간을 어떻게든 살리는 일 말이야. 그린 옆 벙커에서 직접 홀인원을 노릴 때보다 더 두근거리지. 제일 재미있을 때 아닌가?” ‘부적당함’과 ‘불경함’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어 섞인 무시무시한 웃음이다. 이 사람은 환자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것이다. 타고난 의사란 바로 이런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리라.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의사면허가 있다. 다만 입이 좀 험하고, 차림새가 허술하고, 말도 이상하게 하고, 뭔가 어려운 말만 써서 다른 사람들이 그가 무슨 마을 하는 지가 모를 때가 많다는 것.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풀베개』를 전문을 달달 외울 정도라는 것. 헌데 환자에 관해서만큼은 아주 진지하다는 것. 열악한 지역 의료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의 삶에도 불구하고 무겁거나 우울하기 보다는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개성들이 소소한 매력을 주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혼조 병원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룡 같은 거구에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외과 의사 지로도... 새침한 듯 차갑게 굴지만 언제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간호사 도자이도... 따뜻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미 죽음을 판정받은 사람들과 그래서 그들을 더욱 더 치료해야 하는 의사 구리하라. 다세대주택 ‘온타케소’에 살고 있는 희한하지만 가슴에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는 이웃들. 죽어가는 환자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눈물 나는 사연들...그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상처도 치유된다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니까. 이것이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라는 생각이다. 오후 햇살처럼 심각하지 않고 강렬한 눈부심이 있는 이야기였다. 금방 따뜻해지고...열기가 식기 전에 <신의 카르테 2>도 나온다고 한다. ....105 “그럴 거 없어. 피차일반이지.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 봐야.” “생각한들 치료법이 있어?” “치료받을 생각하는 게 아니야. 본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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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출신 의사 나쓰카와 소스케가 발표하여 2009년 제10회 소학관 소설상을 수상했다 해서 화제가 된 <신의 카르테>는 제목이 주는 무게와 “열악한 지역 의료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의료가 지향해야 할 길과 생명 윤리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 삶의 보편적인 가치들을 녹여내 감동적으로 전해준다.”는 출판사의 책소개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여러 면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소설입니다.
췌장암환자인 다가와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항암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가 아니라 평화롭게 임종에 이르게 하는 호스피스라고 봐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호흡저하라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충분한 량의 모르핀을 사용하지 못하고 환자가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죽음을 다소 일찍 맞더라도 충분한 양의 진통제를 투여해서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구성에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클라이막스라 할 상황이 없이 밋밋해서 마음을 흔드는 무엇을 느끼지 못한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차이와 이를 번역과정에서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점도 기여한 것 같습니다. <신의 카르테>라는 제목 자체도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카르테(Karte)'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신분과 증세를 기록하는 진료 카드를 뜻하는 독일어이다.”라고 주를 달았습니다만, 일본은 일찍 유럽 특히 독일의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일의학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광복이후 들어온 미국의학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바 있습니다. 일본식 의학교육을 받으신 의료계 선배님들은 카르테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시기도 했지만, 곧 챠트라는 단어로 바뀌었고, 의학용어 한글화가 추진되면서 진료기록부라는 단어가 더 친숙한 요즈음입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야간진료시간을 늘리는 의료기관도 있습니다만, 야간진료는 별도로 가산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감기와 같은 경증질환으로 야간에 병원을 찾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15쪽의 ‘레벨 다소 혼탁’이라는 표현은 환자의 의식수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응급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점적’이라는 표현은 링거와 같은 수액을 정맥으로 투여하는 경우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하는 상황이므로 수액주입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쉬울 것 같습니다.69쪽의 ERCP는 ‘내시경적 역생성 담췌관 조영술’이라 주를 달았습니다만, 최근 나온 의학용어집에서는 ‘내시경역행쓸개이자조영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02쪽의 CBC는 간단하게 혈액학적 검사 정도로 옮겨도 될 것 같습니다. 이치토는 혼조병원에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병원에서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기계적인 시스템의 대학병원보다는 인간냄새가 나는 혼조병원을 지키기로 하는데,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자신이 맡는 환자들에게 보다 나은 의술을 베풀 수 있도록 본인을 업그레이드해야할 의사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받아 마땅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이치토와 같이 온타케소에서 머물고 있던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다치바나 센스케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일 수도 있겠습니다. 즉, 병원을 주무대라고 하기기보다는 온타케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는 장면이 일본이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더 감동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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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닌 인간의 영역. 『신의 카르테1』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집에 환자가 있으면 반 의사가 된다고 했다. 전문의 자격증만 없을 뿐이지 사이비 의사 노릇을 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책의 앞부분에서 등장한 문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병명을 읊었더니 몇 줄 밑에 그 병명이 나왔다. "65세, 남성, 22시 갑자기 가슴 통증 발생……." (중략) "혈압 100대, 맥박 125, 산소포화도 89퍼센트, 레벨 다소 혼탁." "이상한데." 심근경색인가 싶다. (15페이지) 다른 부분을 잘 모르겠지만 '고령의 남자,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 산소포화도 89'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심근경색이라고 생각했다. 몇 가지 덧붙여 보자면 식은땀이나 호흡곤란도 심근경색 증상에 포함된다. 이때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은 증상이 따라오면 소화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진행된 심근경색의 합병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폐에 물이 차서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거다.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응급실 가야 한다. 롸잇 나우~!
병원 몇 번 들락거리면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인다. 외래, 응급실, 중환자실, 입원실까지 몇 군데를 경험하고 보니 하얀거탑의 진실 혹은 거짓을 조금은 알겠다. 알아도 뭐,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 별다른 방법은 없다. 그저 병원에서,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래서 소설이지만 구리하라 이치토 같은 의사를 만나고 싶어지곤 한다. 저자 자신이 의사이면서 이런 소설을 썼으니 조금 더 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하니 말이다.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지만 그 이상의 것을 환자는 기대하게 된다. 좀 더 친절하게 자세한 설명 해주기를, 별것 아니라고 하지만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사람의 불안을 잠재워주기를, 빨리 나아서 병원을 벗어나게 해주기를...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니 그런 의사 만나기를 기대하는 거다. 외래 예약은 환자 한 명당 3분 단위로 쪼개지고, 응급실은 전쟁터고, 중환자실은 심란하고, 입원실은 시장 속 같은 북적거림이 차지한다. 진료비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마주하는 관계이니 각자 역할만 충실하면 되겠지만, 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다. 주고받는 게 돈이 전부가 아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사람의 목숨을 놓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인간다움을 느끼고 싶은 거다. 의사의 손은 인간의 손이다. 그 손에 치료받고자 누워있는 환자도 인간이다. 인간다움도 함께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는 곳, 병원이다.
도시의 대학병원이 아닌 저변의 중소병원. 이치토는 그 병원에서 5년째 근무 중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괴짜 의사다. 부족한 환자 침상, 그보다 더 부족한 의료진, 시도때도없이 밀려드는 응급실의 환자들, 가벼운 증상부터 죽음의 문턱에 이른 환자까지 그가 대하는 병원의 실상은 무겁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매번 그게 옳은 결정인지 확신할 수도 없다. 그래도 병원에서 그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환자를 돌보고 동료와 함께하는 그 시간, 그 공간이 그에게는 행복이다. 자기 일을 분명하게 해내고 있으니 환자들에게 인기도 좋다. 그곳에서 그는 생명의 가치를 보고 느끼고 있기에, 그걸로 충분하다. 잠이 모자라 비몽사몽이어도, 시간이 맞지 않아 아내의 얼굴 볼 기회가 많지 않아도, 더 나은 의료기술을 위해 의국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그는, 그대로 좋으니까 말이다.
현직 의사가 썼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취재나 가상의 설정으로 만난 의학 소설도 현실감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사람이 쓴 병원 이야기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부터 사람의 손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죽음의 순간까지 다양했다. 그 자리에서 직접 뛰지 않는 한 온전하게 그 세계를 알 수 없다. 내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니 아무리 가까이에서 본다고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과 의사 이치토가 그걸 대신 보여준다. 병원에 있는 환자의 증상이나 태도로 병을 표현하고, 자신이 내린 처방으로 병을 낫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 과정이 간단해 보이기도 한다. 지시하고 따르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병원 안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가 사적으로 관계한 사람들의 이야기, 의사로서의 고뇌와 자신이 가진 생명 윤리에 대한 고민, 환자에 대한 애정을 따뜻하게 풀어낸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반짝이는 순간이 어느 때인지 그의 시선으로 보게 한다. 그것도 아주 유머러스하게. ^^
귀엽고 다양한 캐릭터가 함께해서 이 이야기가 더욱 무겁지 않게 읽힌다. 숙소 온타케소의 주민인 학사 씨와 남작님, 작은 체구로 사진을 찍는다며 험난한 산에 오르내리는 이치토의 아내 하루나는 그의 잠깐 휴식을 더 편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찍고 싶은 사진을 위해 오늘도 험준한 산을 오르내리는 그의 아내, 몇 년째 박사과정 중이라던 박식한 학사 씨, 언젠가 유명한 화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작님. 이들의 모습은 하찮고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우리가 삶을 계속 해야 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언젠가 그들이 바라는 일의 마침표를 찍는 날을 기대하듯이.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하루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치토의 병원생활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무심한 듯 신경 안 쓰는 듯 남의 일처럼 말하지만 실상 누구보다 병원과 그를 염려하는 늙은 여우 선생님과 왕너구리 선생님. 황당한 말로 텅 빈 머리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훌륭한 의사인 그의 동기이자 의국에서 파견 나온 외과의 지로. 쓴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것 같아도 환자의 마음 헤아리고 의사를 의사답게 만드는 간호사 도자이. 그리고 병원에 있는 많은 의사와 간호사, 환자. 그가 혼조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머무르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많은 병, 다양한 사연, 병원이라는 공간을 두고 함께 고민하고 호흡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이치토의 의사 가운은 더 하얗고 밝게 빛나고 있을 것만 같다.
이건 진심이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무엇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가. 이는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지상 최대의 난제이다. (61페이지)
‘카르테(Karte)’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신분과 증세를 기록하는 진료 카드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그럼 ‘신(神)의 카르테’는 무엇을 말하고자 이 책의 제목으로 삼았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내 생각에는, 의료행위가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일임을 말하고 싶었던 역설의 의미로 보인다. 신이 행하고자 하는 완벽함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 작용하는 의료행위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기계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차트를 닫음과 동시에 다음 환자를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맡은 환자의 안위를 생각하는 일이 끝난 게 아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고민한다. 자기 앞에 앉아있는 환자에 적용될 최상의 선택(처방)이 뭔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건 아즈미 씨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기계장치로 심장을 뛰게 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그 며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다 내린 그의 결정을 공감했다. 온갖 기계의 도움으로 하루 이틀 더 연명하는 삶이 꼭 옳은 결정은 아니라는 것. 가장 아즈미 씨답게 떠난 모습이 아름다워 그의 결정을 인정했다.
자약 선생님은 느닷없이 심장초음파검사기를 손에 쥐고 학사님의 심장을 투영했다. 모니터에 표시된 심장은 그야말로 힘차게 박동치고 있다. “심장은 이렇게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네. 하지만 심장 주인이 죽음을 원한다면 이 박동도 그저 혈액을 내보내는 기계운동에 불과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혼잣말처럼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네.” (154페이지)
오늘, 지금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치토가 들려주는, 생과 사가 공존하는 병원의 이야기는 삶에 힘을 보태게 한다. 외로움과 함께 병마와 싸우는 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다. 자신의 존재 가치, 숨 쉬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내일이 더 밝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감동과 위로는 기본이고, 이치토 같은 의사 만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는다. 병원은 안 가면 좋을 곳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이런 의사 만나 불안감을 잠재우고 진정성 있는 진료를 받고 싶은 거, 당연하지 않겠나. 언제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내가 존중받고 있는 환자임을 자각하게 해주는 의사, 만나고 싶게 하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으로 마법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 그 발밑 흙덩이 아래, 처음부터 묻혀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그것은 최첨단 의료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아즈미 씨 같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나아가 아내와 함께 이 발걸음을 계속하는 것이다. (25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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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제일 가기 싫은 곳 중 하나가 병원일게다. 병원을 떠올리면 두려움과 걱정이 먼저 떠오르기에..... 만성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시골마을 지방병원, 잠은 커녕 결혼기념일 축하메일 하나 보낼 여유없는 긴박한 응급실에서 연속 35시간째 묘한 뉘앙스의 언어반전이 톡톡 살아있는, 괴짜 의사선생 구리하라 이치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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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픽션이다. 한때나마 의사라는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기에 메디컬이 들어간 것이라면 무엇이든 관심과 흥미를 가졌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단지 이런 것들이 내 접은 꿈에 미련을 일으켜서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의 전형적인 주인공 스타일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소설 속 주인공 이치토. 병원 내에서는 괴짜라고 불리우지만 그는 자신이 왜 괴짜인지 모르는 내과의이다. 시골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대하느라 며칠 밤을 새는 건 부지기수에 만성 피로는 카페인으로 임시방편 몰아내지만 대신 위장은 쉴 틈 없이 혹사당하는 의사. 수련의의 젊음과 패기나 사랑이 지나쳐서 오글거리기까지 하는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와는 달리 무뚝뚝하고 평면적인데다 의사로서의 권력 남용 따위는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그도 환자의 죽음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미를 지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환자의 치유가 그저 몸의 치료가 아닌 따뜻한 정이 오가는 마음의 치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소설이었다. 의사로서 느끼는 사명감과 보람이 다른 직업에 비해서 몇 배나 더 가슴을 찌릿하게 울리는 것이 내게는 굉장한 매력이었다. 지금도 직접적이 아닌 간적적으로 그 휴머니즘을 느끼고 싶어서 메디컬 다큐를 비롯해서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는 물론, 주기적으로 만들어지는 한국의 메디컬 드라마도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 의학을 이용한 소재가 이렇듯 언제나 고갈되지 않고 나와 같은 열렬한 팬이 생긴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따스함 그리고 인간적인 의사로서의 모습이 꽤나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것들의 핵심 포인트는 '냉철함'과 '인간미'의 교차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진부함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어찌 해야 할까. 저자가 의사이기에 전문 의학 용어도 많이 나오고 그가 직접 겪은 여러 체험들이 증축되어서 더욱 묘사력이 리얼했다. 또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는 것 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고집한 소설의 결말에 또 한 번 미소가 지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흐뭇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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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지는 책한권을 만났다. 책 표지를 보고는 순정만화쯤으로 생각이 들어서 혹했고, 처음 몇장은 뭐 이리 유치한가하고는 실망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손에서 떨어져 나갈 줄 모르더니, 반나절 만에 다 읽혀져 버리고는 잔잔한 파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카르테.. 어감상으로는 왠지 모르지만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 때문인지 굉장한 비밀이 들어있는것 같았다. 막상 읽어 보니 별거아니다. 카르테(Karte)’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신분과 증세를 기록하는 진료 카드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 신슈에 있는 혼조병원에 5년째 근무 중인 내과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는 나쓰메 소세키에 심취하여 말투가 고풍스러운 엉뚱한 의사이다. 소세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풀베게>를 썼고, 이치토는 그 시를 끊임없이 되뇌인다. 삼일 동안 밤샘을 하면서도 자기 일은 확실하게 해내고, 환자에게도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아내와 개성 넘치고 열정적인 동료들이 있다. 확실히 개성들이 넘친다. 왕너구리 선생님, 늙은 여우 선생님, 완벽한 간호사 도자이, 산 도둑같은 지로선생까지. 그런 이치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가혹한 상황에서도 유머러스하고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치토가 부딪힌 현실에서 파생되는 문제의식은 간단치 않다. 이치토는 의사이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를 보며 고뇌하고 좌절하며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그에겐 의국으로에 이전 문제가 남아있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무엇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가. 이는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지상 최대의 난제이다 - p.61
혼조병원이 주 무대이긴 하지만, 혼조병원과 함께 이치토가 살고있는 온타케소 사람들의 이야기도 빼놓을수가 없다. 온타케소 사람들은 특별하다. 희망을 그리는 남작과, 5년째 대학원에 다니는 학사, 그리고 이치토와 그의 부인, 하루나. 함께 모일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적지만, 그들의 관계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온타케소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다. 마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방황한 끝에 발견한 가케코미데라(절이름)같은 모습이 남아있다. 하지만 가케코미데라와 크게 다른 점은, 찾아온 이들이 결코 세상을 비판하며 출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120
혼조병원과 온타케소를 통해서 이치로는 '좋은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 책으로 만난 이치로는 말이 필요없는 좋은의사다. 나보다 환자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의사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열악한 환경속에서 받을 수 있다. <신의 카르테>는 <가스미초 이야기>를 닮았다. 클라이맥스도 급한 심호흡도 필요하지 않지만, 내 맘을 두르린다. 一止(이치로)라는 의사가 옳곧은 의사 正이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이런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본도 우리네 처럼 이런 의사를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일본 '전국 서점인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중의 한권이라니 말이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와 사악한 천사 같은 간호사, 도자이가 그리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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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라시의 사쿠라이 쇼가 주인공인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역을 맡을거라고. 그것이 아니어도 표지가 예뻐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한편의 순정만화같은 표지. 사진기를 들고 있는 여자가 의사 가운을 읽고 차트가 아닌 책을 들고있는 남자. '신의 손'을 가진 의사는 없어도 이 병원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괴짜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는 사악한 천사 같은 간호사, 도깨비 같은 동료 의사, 수상한 상사와 함께 '365일 24시간 대응'을 모토로 내건 혼조병원에서 열악한 지방 의료의 현실과 부딪쳐 매이같이 밤샘하며 분투한다. 그러던 와중에 조건이 좋은 대학병원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담당 환자인 아즈미 씨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최근 할머니가 아프셔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엘 자주 간다. 그 전에는 우리 지방에 있는 의료원이었는데 정말 거기와 여기는 천지차이다. 무엇보다 건물이 그렇고, 병실이 그렇다. 똑같은 6인실인데도 대학병원은 깔끔하고, 위생적이다. 의료원이 위생적이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벌써 눈으로 보이는게 틀리니까 느낌까지도 그렇다. 물론 의료원말고도 큰 병원이 있긴 하지만 거기는 환자 한명에 대한 소문이 이상하게 난 뒤로 아무도 가지 않는 병원이 되었다. 밤에 지나가다보면 5층인가의 건물인데 불은 2층까지밖에 들어와 있지 않다. 그만큼 환자들이 없다는 얘기다. 그곳에 입원했던 친구는 간호사가 약을 제때 챙겨준다길래 믿고 줬더니 하루에 한번 먹어야 하는것을 하루에 세번이나 줘서 속을 다 버렸다고 했다. 해서 니네 책임이니 위약이라도 내놔라 그랬더니 돈을 내랬다고.. 친구가 정말 어이없어했던것이 기억난다. 이렇게 환자들도 몸소 느끼고 있는데 의사들은 어떠랴. 조금이라도 자기한테 나은곳으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까. 기왕이면 자기의 경력에 도움이 되고, 조금이라도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곳.
이치토가 근무하는 곳은 지방의 병원이다. 그것도 의사는 5명. 실제로 다섯이지만 수련의가 둘. 중간이 이치토고, 상사는 너구리와 여우로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이다. 무슨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게다가 대학병원에서 파견을 온 사람은 에전에 같은 학교에 있었던 친구로, 이치토에게 매번 대학병원으로 오라는 소릴한다. 이러니..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대학병원은 너무나 차갑다. 이치토씨의 환자의 아즈미씨는 담낭암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않았는데, 해줄것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하고싶은것을 하라고 했단다. 아즈미씨는 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바쁜건 안다. 일일이 환자들을 다독여주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위로의 말이라도.. 말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모든 의사가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아즈미씨를 보니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면에서 이 병원은 인간적이다. 의사도 인간이라 힘들면 짜증이 난다. 드래도 말한마디다. 하물며 어르신들은 이 한마디의 말로도 웃고 울 수 있다.
이야기가 재밌었다. 이치토는 정말 괴짜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못지않다. 그에게 괴짜라고 하지만 내 보기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도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같다. 사람들의 별명을 짓는 이치토만 봐도 그런데.. 하나같이 그 별명이 틀리지 않는다. 한편의 순정만화다. 단편집 정도라고 하면 맞겠다. 조금 더 이야기가 있었으면 싶지만 너무 길면 늘어질 것 같고, 이대로 끝내니 아쉽다. 이치토와 아내 하루의 이야기도 더 듣고싶고, 주변 환자들의 재밌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 하나에 멈추다를 써서 바르다라는 의미라니, 이 나이 먹도록 몰랐습니다.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가는 데만 급급해서 점점 소중한 것을 버리고 가는 법이지요. 진짜 바르다는 것은 맨 처음 장소에 있는지도 몰라요.
아즈미씨의 말이다. 온화한 성격의 아즈미씨는 모두에게 치유의 빛을 나눠주더니, 마지막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도 인자한 미소의 아즈미씨가 아직 남아있다.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병원. 365일 24시간 환자들로 북적이며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좋아하는 이치토가 있는 혼조병원의 이야기를 여러분도 한번 들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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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느낌이 나는, 그만큼 따뜻하고 감동이 소록소록 솟아나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의료 현실을 꼬집고 "의사"로서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충돌하며 고민하는 의료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아마도 작은 시골 마을 주민들이 의지하는 혼죠 병원의 구리하라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런,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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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을 즐기는 의사에게서는 병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보인다.의사의 권위를 한꺼풀 들춰내면 페르소나 뒤에 감춰진 따뜻한 인간성과 만날 때가 있다.의사는 진료만 하는게 아니다.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줘야 한다.책의 주인공 이치토는 열정과 섬세한 마음을 가진 의사다.의미있는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의사 이치토의 고뇌와 물음에 답이 있다. 책은 이치토가 의미있는 인생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꿈과 정체성의 방황을 겪고 있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책은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다.제10회 소학관 소설상을 수상했고,제7회 서점대상 2위를 차지했다.또한 2011년 8월 영화<신의 카르테> 일본 전국 개봉 예정이다.이 소설은 그 가치가 이미 검증된 작품이다.
사춘기 때 읽었던 오싱의 기억을 되새기며 일본 소설의 마력에 저절로 빨려들었다.얇은 분량에 비해 저자는 반전이라는 장치를 여러곳에 숨겨두었다.이치토와 아내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환자 아즈미와 회색 신사의 이야기.공동체 온타게소의 학사 이야기등 이치토의 생활속에 액자소설처럼 등장인물들에 대한 여러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응급외래 당직으로 결혼기념일 조차 챙길 여유가 없는 구리하라 이치토는 혼조병원에 근무한지 5년째인 내과의사다.그는 만성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시골 응급의사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혼조병원은 24시간 365일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의사와 수련의는 수면부족에 시달린다.카르테(Karte,진료카드)는 항상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그래서 혼조병원과 대학병원 간의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이치토는 소세키를 경애하는 괴짜다.또한 환자를 끌어당기는 일복 많은 의사다.그의 손님은 모두 육체의 병,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그는 많은 죽음을 목격하는 게 일상이다.
온타게소라는 공간은 이치토와 아내 하루나,남작,학사까지 조금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온타게소는 산악사진가인 가타시마 하루나(지금의 아내)와 3년전 처음 만난 곳이다.아내 하루나에게서는 순수미와 함께 의사와는 또 다른 직업 사진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혼조병원의 스나야마 지로에게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애를 만날 수 있고,왕너구리선생님은 이치토에게 멘토같은 존재다.
긴박한 응급실의 상황은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고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도시와 시골간 의료수준의 격차는 너무 크고 ,일반인들이 들여다보기 어려운 의료현실이 충격적이다.따뜻함과 아픔,갈등이 공존하는 가슴적시는 감동이 있다.진정한 인간애에 대한 이치토의 고민이 책장마다 묻어난다.삶과 죽음에 대한 무한한 성찰을 담고 있다.어두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소설은 무겁지만 않은 블랙유머가 살짝 곁들여진다.다양한 의학상식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얼마나 고독한지 아즈미를 통해서 보여준다.대조되는 학사의 자살시도는 심장은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어도 심장 주인이 죽음을 원한다면 어쩔수 없다는 왕너구리선생님의 말을 통해서 생명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아즈미의 마지막을 보내는 순간은 의사 이치토의 가장 큰 갈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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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일본 그룹 아라시의 사쿠라이 쇼가 영화화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왠지 너무 수수하고 약간은 바보같은 의사옷을 입은 사진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관심이 있는 상태에서 읽으니 책장이 슉슉 넘어갔다. 재미도 있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썰렁한 농담에 서늘했다가, 감동적이어서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참 좋은 소설이었다. 이런 멋진 주인공을 사쿠라이 쇼군이 제대로 연기해줘야할텐데,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옥좌에 앉아 있는 근엄한 왕이 ‘과인은-’하고 말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풀베개>를 애독한 나머지 그의 영향으로 익숙해져버린 말투라고 했다. 지역 거점 병원인 혼조 병원에서 일하는 이치토 선생은 그런 말투를 사용하여 환자나 간호사들로부터 좀 이상한 의사라는 평가를 받는 의사이다. 원래는 내과지만, 밤에는 응급의사로 변신하여 내과, 외과, 피부과... 가리지 않는 진료를 펼친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항상 피곤한 사람이다. 언제나 너무 ‘과’하게 일을 하는 상태인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불평하든 우리는 한 가지 확실한 걸 알고 있어. ” “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물론 우리도 포함해서 말이야.” (p120) “ 하나一에 멈추다止를 써서 바르다正라는 의미라니, 이 나이 먹도록 몰랐습니다.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가는 데만 급급해서 점점 소중한 것을 버리고 가는 법이지요. 진짜 바르다는 것은 맨 처음 장소에 있는지도 몰라요. ” (p210) 이야기는 ‘더 나은 의사’ 가 되려고 하는 이치토(一止)의 ‘성장기’ 같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환자를 진료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그것을 가만두지 않으려 하는데, 그들과 또는 세상과 부딪히며 ‘진짜 의사’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가 ‘진짜 의사’ 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환자들과 간호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었다. 어쩜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장난스럽게 썼는지. 이것도 작가의 방식이라면, 뭐라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감동이 끓어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이렇게 자신의 일에 열정과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싶었다. 다른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인간다운 정을 나누며 살아갈수만 있다면, 분명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