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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로부터 배제된 가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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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을 넘어서 이제는 역차별 이야기까지 들린다. 과거와의 직선적 비교는 금물이겠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과거 여성들에 비해 현격히 나아진 오늘날의 여성 지위를 들먹이며 더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 종용한다. 인간이 취하는 전술은 그때그때 다르다. 평소에는 수치를 곧잘 활용하던 사람들도 엄연히 통계화된 여성 임금 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슬프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평등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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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을 넘어서 이제는 역차별 이야기까지 들린다. 과거와의 직선적 비교는 금물이겠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과거 여성들에 비해 현격히 나아진 오늘날의 여성 지위를 들먹이며 더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 종용한다. 인간이 취하는 전술은 그때그때 다르다. 평소에는 수치를 곧잘 활용하던 사람들도 엄연히 통계화된 여성 임금 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슬프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평등했던 시절이 아직은 없어서 익숙하지 않은 탓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20년가량 전 생각을 했다. 때는 1998, 한참 예민하던 시절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가 직장을 관두셨다. 품은 큰 뜻이 있어서는 물론 아니었다. 뉴스에서 IMF에 대해 떠들어 댈 적만 해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내게 잘 와 닿지가 않았다. 자진해 관두지 아니하면 퇴직금이 없다 했다. 아직은 어렸던 나와 내 동생의 학비는 둘째치더라도 일단 가족에겐 생활비가 필요했다. 평생 누군가에게 고용된 생활만을 해온 분께서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양 장사를 시작하셨다. 수차례 업종이 바뀌었음에도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언제나 가게 주인은 아버지셨다. 어머니는 가게에서도 가사 노동을 담당하셨다. 빗자루질을 하고 걸레를 빨아 매대를 닦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집 밖으로 시선을 돌려도 이와 같은 일은 당연했다. 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에 힘을 실어드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내 전통적인 여성성 회복의 요구로 이어졌다. 여성들은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지 말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외벌이로는 지탱이 힘든 상황이었는지라 많은 여성이 장시간 저임금의 고약한 조건을 마다않고 일을 하는 게 현실이었고, 그나마 그 덕에 무너지지 않는 집들이 여럿 존재했음에도 그랬다.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미국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다들 익히 알겠지만 전 세계에 전운이 감돌았고,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피하지 못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인을 탓하겠지만, 그는 합법적으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미국도 자칫하면 유럽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뉴딜(New Deal). 복지국가가 종말을 마치하면서 이 정책은 국가의 방만한 경영을 대표하는 사례처럼 평가 받고 있다. 허나 국가가 나서서 노동 수요를 창출했기에 미국 경제는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뉴딜 정책을 통해 정부는 노동계급에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수를 단순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개인 아닌 가족 단위로 사고의 틀을 고정시켰고, 막 사회에서 날개를 펴기 시작한 여성의 존재는 가족 안에 위치할 것을 명했다. 가장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미국 정부는 제 역할을 다했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놀고 먹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들에겐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됐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해도해도 티 안 나는 가사노동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여성들에게 적합한 역할이었다. 결혼을 안 한 여성은 비난 받아 마땅했다. 그녀들은 한 가장의 일자리를 빼앗는 극악무도(!)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라도 결혼을 해야만 했다.

 

저자는 여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 왔음을 주목했다. 각종 시위에서 그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전면에 나서서 투쟁했고, 열악한 노동조건의 개선을 이끌어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들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격렬한 투쟁 끝에 열매가 주어졌을 때 그녀들은 어여 남성의 뒤로 빠져야만 했다. 가정에서 제 남편이 열매를 가져오길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그녀들에게 가장 부합하는 바였다.

 

몇 해 전부터인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살펴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혹은 본능에 입각해 하면 그만인 걸 굳이 돈으로 환산하는 저급한 시도를 하려는 저의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드물다. 외려 대다수가 아직은 이러한 시도를 우습게 여기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당연한 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가사노동은 고정불변의 상수가 결코 아니다.

 

나름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온 복지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됐다. 조금은 씁쓸했다. 결국 꼭 여성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지탱 가능한 게 국가인가 싶었다. ... 

q*****2 2018.04.07.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