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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건과 인물을 떠올리기 마련인 역사에 대하여 <문화 테스트로 보는 서양사>는 역사적인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그것들이 제시하는 본질적인 차원을 추론하거나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하여 저술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서양사에 대한 분야를 예술과 문화가 주는 즐거움을 통하여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저자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이 한 대학의 강의 노트로 활용이 된 것들이기에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역사 교과서에 익숙한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생각을 한층 더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라는 세 부분의 시기로 나누어 진행되는 서양사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은 그 관점이 예술과 문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역사가 다양한 분야로 구성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저자가 그 많은 분야 중에서 하필 예술과 문화를 이 책의 관점으로 선택하였는 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예술과 문화가 주는 즐거움으로 인하여 어렵지 않게 역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집필 이유를 떠올려본다면 예술과 문화가 당시의 상황에 대한 각종 의미와 상징을 함축하고 있기에 역사를 들여다보는 관점으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중세사의 대표적인 시기인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에 대한 서술만 보더라도 특정한 사건과 인물 보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플라톤의 <향연>과 같은 문학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문학 또는 예술에 대한 1차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내용이 의미하는 것을 유추함으로써 역사 의식과 역사성으로의 연결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칸트에 대한 이 책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기존의 역사서와 무엇이 다른 가를 보여준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이란, 이러한 실천이성의 명령에 따라 도덕법칙인 의무를 의욕하는 삶, 즉 의무와 선의지에 다른 삶을 말한다. 칸트는 이를 선의지가 의무를 낳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문제는 도덕이 반드시 행복에 이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즉, 덕이 있는 자가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p. 121 中에서 - 단순히 계몽철학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며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그러한 의견을 주장한 칸트에 대한 설명을 그의 저서와 주장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이 대목은 저자 스스로 독자에게 자신의 집필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략) 왜 도덕적이어야 할까? 여기서 루소의 <에밀>에 나오는 한 구절, 즉 신이 없다면 이윽고 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무도 무의미해진다는 말을 상기하게 된다. 인간의 의무, 즉 도덕이 무의미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덕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무 대가 없이 도덕을 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선하고 미래에 보상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 존재, 즉 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최고선의 실천가능성은 오로지 도덕적 세계 창시자를 전제할 수 밖에 없다고 천명한다. (중략) 칸트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계몽주의적 이신론의 철학적 정당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 121 中에서 - 칸트의 철학이 말하는 바를 위와 같이 유추하여 결론을 내는 이 과정이야말로 이 책이 읽는 이에게 어떤 점을 말하려고 하는 지에 대하여 명확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기존의 계몽 철학의 대표 철학가가 바로 칸트라는 단편적인 지식에서 벗어나서 그가 왜 계몽주의적 이신론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그러한 인식이 그의 철학으로 형성되는 과정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사에 대한 접근 과정과 동일한 것처럼 보여진다. 또한 나폴레옹에 대한 서술 역시 그러한 관점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에 대한 설명은 기존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이 기존의 책들과 다르지 않은 부분에 뒤이어 등장하는 헤겔의 시선은 그 차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나와 아우에르슈타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으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베를린에 입성한 나폴레옹을 바라본 헤겔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순간을 세계혼(Weltseele)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 대한 감탄을 넘어선 그 이면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한다. 헤겔에 따르면 이성이 자신의 본질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역사적 현실로 조직하기 시작한 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이고, 그런 프랑스 대혁명이 갖는 정신의 이념을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폴레옹은 당시 자유주의의 상징이자 영웅으로서 추앙되었던 것이다. - p. 143 中에서 - 나폴레옹과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인 의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헤겔의 감탄과 그의 관념을 통하여 그러한 의미에 다다를 수 있음을 언급하는 이 부분 역시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다. 결국 <문화 텍스트로 보는 서양사>는 역사에 대한 예술과 문화의 관점의 제시와 더불어 표면의 사건, 인물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의 역사 의식을 짚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 철학의 형성 과정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양사에 대한 역사서로의 접근도 가능하기에 역사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 보여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이 대학의 강의노트로 활용된 점을 감안한다면 학교가 아닌 일상에서 읽는 역사 교과서로 다가가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오타 정리 p. 129 : 루터파 조직을 만들어 1946년 죽을 때까지 - 1946 -> 1546(마르틴 루터의 사망 시기가 1546년임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년도 표시 오차로 보여짐) p. 178 : 군중에게 발포하여 수백만을 살상한 사건이다. - 수백만 -> 수백명(러시아의 피의 일요일에 해당하는 설명 내용으로서 정정 필요, p. 180에서 해당 내용에 대한 중복적인 설명에는 수백명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실제 역사적으로도 수백명이 맞는 표현으로 보여짐) p. 190 : 비밀협정에 의한 영토 회봉 - 회봉 -> 회복(문단 중간 부분, 단순 오타로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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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 관한 책이라면 가능한 많이 읽으려 하고 또 찾아서 읽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역사 혹은 조금 더 나아간다면 동양사에 국한된다. 서양사에 대한 것이라면
기껏해야 현대사 정도이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서양사는 어렵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교 다닐 때 가장 어려웠던 과목 중 하나가 세계사였다. 동서양을 연관지어 생각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암기위주로 공부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개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만 서양사를
전체적인 틀안에서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 또한 관심이 있는 부분은 다른 책들을 찾아보고 하여 세세하게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기본적인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허다하다. 간혹 서양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서양사에 대한 책을 읽으려 하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것은 낯선 것에 대한 거리감도 있지만 의례 서양사하면 철학적으로 연관되기에 그것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선입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문화 텍스트로 보는 서양사]는 서양의 역사, 즉
유럽의 역사에 대한 입문서이다. 저자가 ‘문화-예술로 본 서양사’라는 교양과목을 위해 쓴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의 역사를 고,중세사, 근세사, 현대사라는 연대기 분류에 따라 각기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에 문화예술이라는 즐거움을 주는 소재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헌데 문화예술 자체가 어려운 나로서는 무겁고 어려운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이 먼저 들었다.
먼저 저자는 고,중세사를 설명하면서 선사시대와 고대문명,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제국사와 중세사회로 나누어 살펴본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그리고 함무라비법전을 통하여 고대문명을 개괄한다. BC 3000년경 탄생한 고대 4대문명은 모두 동방에서 탄생했다. 그 중 서양문명의 원류가 되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즉 고대 바빌론 문명의 문화예술을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를 선사시대의 서양사에 초대한다. 고대 그리스는 기독교와 함께 서구문명의 한 축이다. 따라서 우리가 서구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문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그리스 문명에 대한 오해가 우리에게 서양사가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문명은 트로이문명, 크레타문명, 마케네문명으로 구성된 에게문명을 거쳐 상고 그리스, 고전 그리스로 이어진다. 저자는 그리스신화를 서사시로 노래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서 상고 그리스문명을, 그리고 플라톤 철학을 통해 고전 그리스의 문명을 살펴본다. 이후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타르타 사이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몰락하게 되면서 북방의 마케도니아 식민지가 된다. 서양 고대사에서는 알렉산더대왕의 죽음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시기까지를 고전 그리스와 구별하기 위하여 헬레니즘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시대 문화의 특징은 세계주의, 개인주의, 도피주의, 상대주의로 이를 반영하는 사상이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헬레니즘의 사상과 문명은 스토아철학을 통해서 서구의 문명에 뿌리깊은 영향을 주어 이후 면면히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성립된 로마제국은 서구문명의 고대와 중세를 이어주는 교량자 역할을 했다. 중세란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16세기까지의 시기를 말하는데 고대와 근대사이의 암흑기라는 의미라고 한다. 중세의
유럽문명은 그리스문화, 기독교문화, 게르만민족이라는 세요소가
통일되면서 성립되는데, 스콜라철학과 고딕양식을 통해서 나타났다. 철학적, 신학적 사변을 특징으로 하는 스콜라철학은 중세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중세사회를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고정화 시켰다고
한다.
서양의 근대는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저자는 서양의 근대사를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 시민혁명과 계몽주의, 종교개혁과 낭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성립으로 나누어 각기 그 시대의 특징들을 알아보고 있다. 근대는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변하여 인간속의 이성을 강조하였다. 이에따라 일어난 운동이 르네상스 운동이었다.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진,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인문주의 운동으로 휴머니즘의 부활을 의미했다고 한다. 음악과 미술에도 새로운 양식이 등장하였는데 이를 바로크예술이라 부른다. 과학혁명은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건이다. 과학혁명을 통해 형성된 합리주의와 이성에 대한 신뢰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확산되어 갔다고 한다. 계몽주의는 이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특징으로 하는 18세기 대중철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근대 유럽사회에서 가장 경이적인 변화는 산업혁명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근대 유럽문명은 근대경제를 가능케한 산업혁명과 근대정치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프랑스대혁명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은 봉건제에서 근대적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었다. 16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종교개혁은 17세기 중반 종교의 자유가 인정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유럽에서 과학혁명, 산업혁명, 시민혁명이 근대의 근대성을 결정짓는 시대적 사건인데 역사적으로
이들만큼 중요한 사건이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이후 18세기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낭만주의는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화운동이 되었으며 문학
뿐만이 아니라 회화와 음악에까지 확대 되었다.
유럽의 현대사는 제국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이후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등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식민지쟁탈전을 벌였고,
이러한 제국주의의 침탈은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발칸문제였다. 당시 발칸반도는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하는 러시아와 발칸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열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곳이었다. 독일은
경제적입장에서, 오스트리아는 영토의 입장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세력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제1차세계대전은 러시아혁명과 함께
20세기초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세계대전은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 속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탄생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파시즘과 나치즘이 몰락하면서 전쟁이 끝났지만,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전체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세계는 미소의 이념적 대결로 인한 냉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데탕트 즉, 소련과 미국사이의 화해
무드가 형성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은 1990년대 이후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종식되었다.
저자는 역사란 사건이나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드러내는 것으로, 따라서 역사에서는 의미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가 바로 역사성이고, 역사성을 인식하는 데서 역사의식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역사의식의 고취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식은 문화의식의 기초이고, 문화의식은 한 국가와 민족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역사 앞에 경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양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서양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굳이 서양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통 속에 면면히 흐르는 의식의 원천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서양사를 저자가 이끄는 대로 문화예술을 통해서 개략적으로 살펴보며 한발 더 이해의 폭을 넓힌 것 같다. 후에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래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진다면 보다 세세한 역사책을 읽어보고 싶다. 말 그대로 서양사에 대한 교양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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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깊이 있는 서양사 [문화 텍스트로 보는 서양사]
요즘 들어 한국영화에서 역사를 소재로 한 내용이 많이 언급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크고 있어 애니메이션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영화를 보여 주면 좋겠다 싶어 영화 순위를 죽 살펴보면 어김없이 역사 영화가 한 편씩 끼어 있다. 아마 [명량] 이후로 더욱 자주, 색다른 인물 평가를 덧입힌 영화나 역사적 사실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영화가 등장하는 듯 싶다. 사도, 덕혜옹주, 암살 이후 최근에는 미스 프레지던트, 박열 같은 영화들이 눈에 띈다. 학창 시절 배웠던 역사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게 요즘의 역사 영화를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되기도 하고 역사를 껍데기만 배워왔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도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때면, 좀 더 열린 의식으로 영화를 접할 수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꽤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그저 주연 배우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을 보며 저간의 진실을 조금씩 엿볼 뿐이고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를 기억에 남기는 것 뿐일 텐데도... 엄마라는 입장에 있기에 조잘조잘 떠들며 영화평을 이어나가다가도 불쑥 치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질문에 흠칫 놀라기 여러 차례. 글로만 배웠던 역사를 영화라는 살아 움직이는 매체로 접하고 나면 그 시절의 상황이 궁금해지고 이제까지 내려왔던 평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과장해 말하자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일지도 모를,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것 아닌가. 대학 때의 교양 강의 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 특히 근대사 부분에 있어서는 의식적으로 기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국역사 말고 서양사를 택해서 들었었다. 길고 지루한 수업 틈틈이 꾸벅꾸벅 졸다가도 귀에 들어온 내용이 있었으니 당시 개봉했던 영화, 리처드 기어 주연의 <써머스비> 에 관련한 것이었다. 남북전쟁에 나간 써머스비가 전쟁이 끝난 후 죽음이 공식화 되었으나 고향을 떠난 지 7년 만에 돌아왔다. 돌아온 써머스비는 새로운 인간으로 변한 써머스비였고 그 때문에 고향사람들을 위시한 그의 아내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탕자였던 과거와 너무 다른 써머스비. 그는 진짜 7년 전 마을을 떠난 그 써머스비인가? 지루했던 수업은 단번에 '미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서양사의 한가운데로 나를 이끌었고 그 한 편의 영화로 인해 기억할 만한 수업이 되었다.
[문화 텍스트로 보는 서양사]는 "문화-예술로 본 서양사"라는 교양과목을 위해 쓴 강의노트를 바탕으로 지은 책이다. 이 책을 접한 이들은 아마도, 길고도 지루했을 서양사의 바다를 건널 때, 노를 잡고 파도를 잘 헤쳐나갈 길잡이를 만난 기분이 들 것이다. 이 책은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는 강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흥미도, 집중도 배가될 것이다. 내가 그 시절, 영화 한 편의 이야기에 그토록 눈이 번쩍 뜨였듯이...
무엇보다도 역사를 안다는 것은 한반도의 역사적 정세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세계를 이해하는 길이요, 인간을 이해하는 길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그러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열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6
저자는 서양사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고중세사, 근대사, 현대사가 그것인데 각각의 연대기 분류를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살펴본다. 각각의 시대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서양사 관련 저술이나 사전을 참조하였고, 이를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해석할 때는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철학적 해석으로 나아가고자 했다고 한다. 풍부한 텍스트를 늘어놓아도 그것을 하나로 관통시킬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자료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커다란 흐름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들을 보며 서양사를 공부하는 것,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대문명에서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통한 선사시대에 대한 논의나 함무라비 법전을 통한 고대문명에 대한 논의, 고대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저술, 헬레니즘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로마제국에서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 중세에 대해서는 고딕교회, 스콜라철학, 십자군 원정을 다룬다.
근대사 편에서는 르네상스와 근대국가의 탄생,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시민혁명과 계몽주의, 낭만주의와 종교개혁,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다룬다. 르네상스에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과학혁명에서는 갈릴레이의 <피사의 탑>, 시민혁명에서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낭만주의에서는 노발리스의 시<밤의 찬가> 등을 다루는 식이다.
현대사 편에서도 제국주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공산화, 제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냉전과 탈냉전의 현대사회를 다루는데 이 때도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해 보여준다. 제국주의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에밀 졸라의 [나나], 러시아 공산화에서는 러시아 겨울궁전에서의 피의 일요일, 전체주의에서는 오웰의 [동물농장] 등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강의가 펼쳐지는 가운데, 역사를 왜 알아야 하나, 역사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한 번쯤 해 보았다면 그에 대한 답도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역사의식은 한 국가와 민족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세계에 대한 종합적 가치판단과 안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 힘입어 나 스스로도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찾고자 한다. '위안부'가 뭐예요? 저 할머니는 왜 '아이 캔 스피크'라고 하는 거죠?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당연히 뒤따르는 아이들의 질문들에 잠시 당황했던 마음을 추스리고 답을 찾으면서 '역사의식'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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