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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쉬운 언어로 삶을 감동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시란 쉬운 언어로 삶을 감동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내용보기
<사과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땅 속 깊은 데서실뿌리가 길어 올린 순수와잎잎이 받아들인 달과 해와 별빛이여기 고였으니사과나무 하나가 받쳐들고 서 있는이 사과 한 알이 우주가 아니겠는가나에게 묻는다사과 한 알 빚어본 적 있는가 누구에게 발가벗은 온 우주로 다가가본 적 있는가아침에 아이들에게 사과를 깎아 주면서 생각했다. 일일이 씻고 개별 비닐 포장을 해서 이렇게나 간편
"시란 쉬운 언어로 삶을 감동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내용보기

<사과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

땅 속 깊은 데서

실뿌리가 길어 올린 순수와


잎잎이 받아들인 

달과 해와 별빛이

여기 고였으니


사과나무 하나가 받쳐들고 서 있는

이 사과 한 알이 우주가 아니겠는가


나에게 묻는다

사과 한 알 빚어본 적 있는가 누구에게 

발가벗은 온 우주로 다가가본 적 있는가


아침에 아이들에게 사과를 깎아 주면서 생각했다. 일일이 씻고 개별 비닐 포장을 해서 이렇게나 간편하게 우리집까지 와 준 데까지 들었을 농부와 택배기사 아저씨와 사과를 씻었을 아주머니들을 떠올렸다. 사람만을 생각했다. 손톱보다 더 작은 씨앗으로부터 그들의 손에 툭 떨어진 그 사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 시를 통해 덧붙였다. 사과 한 알에는 달과 해와 별빛이 두루 고였으니 그렇게 붉을 만하다. 세상을 채우는 빛이 온통 고였으니 사과가 우주의 일부이며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이제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옮겨온다. 온 우주를 담아 맺힌 사과 한 알처럼 온 몸과 마음을 갖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본 적이 있느냐고. 이래서 농사가 힘들다.



<황금잉어빵을 굽는 풍경>


만삭의 젊은 잉부 곁에

하나는 앞에 다른 하나는 뒤에 서서,

뒤 아이는 앞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황금잉어를 기다리는 풍경이 한 폭 성화같다


비닐을 둘러친 포장 안에

물고기와 빵이 하나가 되었으니

오병과 이어가 따로 없다

빵을 굽는 그는 예수일까 새까만

빵틀에서 한 마리씩 황금빛 잉어를 꺼내 보이면


가끔씩 아이가 돌아보는 눈길이

뒤 아이와 만삭의 눈에 마주쳐

입가엔 벌써

황금 비늘 몇 개가 반짝이며 떨어지고

만삭의 배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국화풀빵 골목길을 지나 

붕어빵의 뒤안길을 지나

황금잉어 뛰노는 먼

먼 갈릴리 바닷가가 여기 있다


내일 저 잉부는 가난한

예수를 또 낳을 것이다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언어는 삶을 다시 감동으로 인식하게 한다. 흔히 지나치는 황금잉어빵에서 오병과 이어가 합쳐져 있음을 알아보는 시인의 눈에 새삼 감탄한다.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네 식구를 단번에 행복하게 만드는 데는 황금잉어빵 한 마리면 충분한 것이다. 붕어빵을 받아들기 전에 그 아이의 부푼 행복감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렇게 행복을 굽고 있는 주인 아저씨는 예수가 되고, 그 따뜻함은 어머니의 뱃속으로도 전해져 또다른 예수가 태어나게 할 것이다. 


<물음표(?)는 살아있다>


백로가 강여울에

그리움처럼 먼 데를 바라볼 때 슬픈 짐승의 모습이다가도 

가끔 물속을 들여다볼 때는

구부린 모가지가 물음표 같다

사색하고 있다고

제 모습을 물낯에 비춰보는 거라고 누군가

시적으로 말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자

물속의 제 먹이를 찾느라 목이 휜 것이다

왜 당신의 허리는 물음표를 닮았느냐고

굽은 허리로 힘겹게 육교를 오르는 할머니께 물어보라

그리움이라든가 사색

낭만 어쩌고 시가 어떻고 했다가는 

뺨 맞기 십상이다

먹이 앞에서는 사람도 백로도 일단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살아 있을 때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쭉 뻗으면 관 속에 누울 시간,

먹이를 더 찾을 필요도 없는 순간이다

사람과 백로가 닮은 점이 그것이다


신선한 발상의 힘은 이 시에서도 드러난다. 백로가 목을 물음표 모양으로 굽히고 물속에 고개를 박는 것은 사색 따위가 아니라 삶의 과정 그 자체이다. 물음표 모양 굽은 허리로 육교를 오르는 할머니도  그렇다. 먹는 일, 삶을 지속하는 일은 그래서 물음표로 등을 굽혀야하는 일. 그 물음표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먹는 일 앞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야 할 태도가 읽힌다. 등을 펴야 할 순간은 관 속에 누워야 할 시간인 것,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물음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급식지도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열심히 먹으라는 말로, 그것이 너희들의 생에 충실한 길이라고 좀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s*************k 2020.11.05.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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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누군가의 목숨에 빚지는 것
"삶이란, 누군가의 목숨에 빚지는 것" 내용보기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릭 있었다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누우 떼는 강을 다 건
"삶이란, 누군가의 목숨에 빚지는 것" 내용보기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릭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이 시 속에서 누우는 자연의 순환을 위해 또는 타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수도승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독립된 혼자로서 살아갈 수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거기에 기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망각하기에 이 세상이 무한한 것처럼 마음 대로 산다. 그래서 세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하면서 가장 처음에 실려 있는 이 시가 시집을 읽는 자세를 가다듬게 했다. 개인의 우울과 정서를 넘어 자연의 순환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읊조림을 코로나가 세계를 무너뜨리는 이 시점에 어떻게 대충 읽어넘길 수 있나. 누군가에게 빚진 목숨이여. 나는 그 빚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갚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화두를 준다.


<어느 대나무의 고백>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 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대나무의 빈 속은 공허함. 그리고 그 속을 메운 것은 실체가 없는 어둠과 회의. 사실은 참새 한 마리의 가벼움으로도 흔들리는 연약한 나이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나를 보고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나는 죽창도, 대피리도, 죽비도, 회초리라도 되고 싶다는 스스로의 꿈마저 그 공허 속에 묻어두고 살게 된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노오오력 하라고 등 떠밀지만 그럴듯한 성공 사례를 제시하지만 먼저 만나는 것은 최저시급, 학자금 대출, 전세난, 주택난, 실업, 또 실업이라는 세상의 흉흉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 시대의 청년들은 이 대나무에 손을 짚고 자기처럼 볼 것만 같다. 누구나 절개를 떠올리는 대나무를 의인화해 남들이 생각하는 바에 맞추어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재미있지만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인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측은하다.


<겨울 산행>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올라간 산정

눈보라만 떼로 몰려올 뿐

아무 것도 없어

더 믿을 게 없어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만이 눈부셨습니다

몇몇은 발이 부르트고

관절이 삐걱이고

추위에 귓불이 얼었을지라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더 잃을 것도 없어

비로소 서로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가슴과 가슴으로 길을 내어주던

눈보라 속에서

내 모든 그대가 이정표입니다

길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이 희망이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앞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형태를 달리해 반복적으로 창궐하는 바이러스 앞에 인류가 무너질지, 인간을 지구 생태계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간주해 절멸시키려는 인공지능이 나타날지 모른다.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이 눈부신 것은, 눈보라 외에 아무 것도 없는 능선을 그저 앞서 묵묵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 걸음은 뒷사람의 길잡이가 되고,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뒤 이어 오는 이의 이정표이자 나침반이 된다. 그 길은 눈으로 들어와 만난 적 없는 이들의 가슴을 같은 길로 잇는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눈보라 속에서도 결국 희망은 함께 가는 사람이다. 배제, 편견, 혐오를 내려놓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남는 길이다. 



s*************k 2020.10.30.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