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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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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로마서』의 시작을 “필자가 독자들에게”, 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말로 『로마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바르트의 『로마서』를 읽는 독자는 바르트의 서언과도 같은 시작을 중심으로 서평을 작성해 가려고 한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 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이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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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로마서의 시작을 필자가 독자들에게”, 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말로 로마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바르트의 로마서를 읽는 독자는 바르트의 서언과도 같은 시작을 중심으로 서평을 작성해 가려고 한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이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섬기는 신하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 위에 있으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그리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있다. 그는 사도의 소명을 자기 인생의 한 순간쯤으로 여길 수 없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계몽주의의 도전 아래 자유주의 신학으로 점철되어 가는 시점에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 성경이 우리(바르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면서 사과나무 아래에서 로마서를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쓰고 또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앉아서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쓰고 또 써 내려갔던 사과나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상징하는 사과(선악과), 트로이 전쟁의 불화의 원인을 상징하는 사과로, 백설 공주가 한 입 베어 먹었던 저주를 상징하는 사과로, 빌헬름 텔의 정의를 상징하는 사과로, 그리고 21세기 스티븐 잡스의 혁신을 상징하는 사과로, 특별한 의미를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줌과 같이 바르트의 사과나무 아래에서 시작된 로마서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대변되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놀이터에 폭탄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 바르트는 자신을 겸손하게 천재가 아니라고 일갈하고 있지만 로마서를 읽는 내내 천재다, 천재구나, 라는 말을 뇌까릴 수 밖에 없었다. 예와 아니오, 있음과 없음, 존재와 부재, 위와 아래, 긍정과 부정, 주체와 객체, 나타나심과 숨어계심, 등등의 변증법적 용어는 그야말로 독자를 때로는 혼란스럽게, 때로는 현란하게, 때로는 고민스럽게, 때로는 지치게, 때로는 오기가 생길 정도의 독법(讀法)을 요구하고 있다. 결코 만만한 읽기가 아니고, 쉽게 넘어가지 않는 로마서는 그러기에 다른 어떤 로마서, 에서 맛 볼 수 없었던 바르트 창작의 최고봉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로마서의 추천사 곳곳에 천재에 대한 헌사(獻詞)가 줄을 이었다. 신학적 사유를 이렇게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김기석), 신학적 인문학, 인문학적 신학의 관점으로 파헤쳐 보라(김도훈), 바르트가 수 많은 형용모순과 역설과 비유 어법을 통해 담아내려 했던 그 신비를......(김영봉), 바르트의 급진적 창조성과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김진혁), 명실 공히 현대 신학의 시조(始祖)(오성현), 100년 전에 바르트가 토한 격문은 지금 한국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유해무), 위대한 기독교 신앙의 정신이 드디어우리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이용주), 칼 바르트는......개신교 신학의 교부다(전철), 한 천재 바르트에 대한 말들의 성찬(盛饌)이다.

 

사명에 붙잡힌 심부름꾼이다 바르트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대변하는 계몽주의와 함께 슐라이어마허로 대변되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과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지성인들과 신학자 그리고 목회자들이 전쟁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젊은 바르트의 가슴은 뜨거운 사명에 붙잡히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치열한 암중모색(暗中摸索)으로 성경이 말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Deus dixit, 는 사실 앞에 로마서를 붙든 사명자이자 심부름꾼이 되었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왕을 섬기는 신하다.” 성경이 모든 선지자들로 대변되는 예언자들은 말씀에 붙잡힌 사람들이었고, 말씀의 종이라 여겼다. 나아가 그들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신하로서의 자기 역할, 왕의 말을 전하는 대사(大使)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그런 점에서 바르트 역시 종으로 그리고 신하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에게 맡겨진 사명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 위에 있으며,” 여기에 바울이라는 이름 대신 다시 바르트라는 이름을 대신해 보자, 그가 로마서 집필을 끝내고 일갈(一喝)했다는 나는 어둠에 잠긴 교회의 종각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계단을 타지 않고 겁도 없이 종에 매달린 줄을 잡아 당겼는데 그렇게 큰 종소리가 울릴 줄이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말처럼 바르트 역시 로마서가 놀라운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르트에게 맡겨진 로마서의 사명은 바르트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시 상황의 정황 속에 일하셨다는 것을 마땅히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바르트가 써 내려간 로마서 읽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는 이유는 낯섦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다. 책을 펴 들고 읽어 나가는 것이 마지막 책을 덮을 때까지 이해의 난이도나 독해(讀解)의 높이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낯섦 속에 있다. 그 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여타의 로마서, 에 대한 여러 주석이나 강해 그리고 설교문과 비교해 보았을 때 바르트의 로마서역시 주석이지만 주석이지 않고, 강해 같지만 강해가 아니고, 설교 같지만 설교이지 않은 그 낯섦이 로마서 전체에 묻어 나 있다.

 

그리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있다.” 그러기에 바르트는 자신이 써 내려간 로마서가 독자들에게 낯섦으로 다가 오듯이, 로마서를 써 내려간 바르트의 동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더욱 아찔함과 아득함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미 바르트의 로마서의 추천사와 감수자의 글과 옮긴이의 글 그리고 원서 편집자 서문을 통해 우리는 바르트의 로마서가 주는 아득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아득함이 조금이나마 풀어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그는 사도의 소명을 자기 인생의 한 순간쯤으로 여길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바르트는 로마서를 당대 자신의 소명으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순간에 지나지 않고, 찰나에 지나지 않음이 아니라 곳곳에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자리에서,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복(說伏)시키고 있다. 1000여 페이지가 넘는 글과 글의 다툼, 단어와 단어의 싸움, 문장과 문장의 몸부림은 그야 말로 언어의 향연(饗宴), 글의 성찬(盛饌)을 부족함이 없게 차려 놓고 있었다. 그러한 자기 소명은 나중에 그의 대작이며 유작이었던 교회교의학(대한기독교서회 )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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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4 2017.11.02. 신고 공감 2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