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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태초에 반쪽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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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각종 방송에서 ‘사상의 은사 리영희 교수 타계’ 관련 방송이 줄을 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접해보지 못한 나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정도의 호기심만 있었던 것 같다. 리영희 교수의 타계 후 신문이나 방송, 하다못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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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각종 방송에서 ‘사상의 은사 리영희 교수 타계’ 관련 방송이 줄을 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접해보지 못한 나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정도의 호기심만 있었던 것 같다.


리영희 교수의 타계 후 신문이나 방송, 하다못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대한 신문을 하나둘 찾아 읽으며 ‘사상의 은사’ ‘흔들리지 않는 지성’ ‘실천적 지식인’ 등 리영희 교수를 수식하는 각종 글을 접할 수 있었고, 분단의 국가, 어두운 시대에 그의 펜이 우리나라에 어떤 희망을 주었는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리영희의 『희망』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할 때 때마침 한길사에서 나온 신간이었다. 한길사는 리영희 교수 저작집, 『대화』 등을 출간한 출판사이기 때문에 선생 타계 후 나온 선생 관련 도서에 그를 이해할 만한 ‘리영희 글의 정수’가 담겨 있으리라는 믿음에 선뜻 책을 집어들게되었다.


신문으로 보았을 때 느낀 리영희 교수의는 ‘강직한 대나무 같은 지식인’ 이미지였다. 서슬 퍼런 독재체제에서도 자신의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기록 때문이었다. 9번의 연행, 5번의 기소, 3번의 징역, 2번의 해직 등 독재시대에 그가 당한 고초만 봐도 그의 강직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산문선은 그의 이미지가 리영희 교수의 한 측면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편자 임헌영이 이 책을 펴낸 이유에 관해 머리말에 자세히 전하고 있다. 리영희 선생과 『대화』도 함께 만들었다는 그는 선생의 무거운 모습(현실비판과 실천적인 역사인식의 지식인)이 아닌 그의 풍요로운 인문학적 소양과 인간중심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글을 엮어내려 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산문선에는 정세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과학적인 논문보다는 오히려 그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연동해낸 사상적인 바탕을 다룬 인문학적인 글들을 엄선했다. 민족분단의 비극, 통일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독재체제와 민주주의 투쟁 등등 사회과학적인 담론과 함께 주시해야 할 주제는 인간 존재론, 역사, 평화, 신앙, 자연, 예술 등 지역과 세대를 초월한 삶의 슬기를 다룬 글들일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1부에서는 독재 체제에서 힘겹게 저항하던 시절에 관한 글인 「D검사와 이 교수의 하루」, 「『우상과 이성』 일대기」, 「서대문형무소의 기억」 등이 나온다. 제목만 봐서는 얼핏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일 법하지만 내용은 쉽게 전개된다. 예를 들어 「D검사와 이 교수의 하루」는 자칫 이야기하기 꺼려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낯설게 하기’라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객관화시키고 있는데, 그 덕분에 자칫 감상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거리를 두고 읽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독자에게 읽히도록 한 그의 글솜씨는 지금으로부터 3, 40년 전에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2부에 속한 글들은 좀더 가볍고 짧은 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 과학 등 오늘날에도 이슈화되고 있는 쟁점들을 지식인의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조금은 고루한 내용도 가끔 눈에 띄지만(예를 들어 물을 아끼기 위해 소변을 두 번 본 후 변기 물을 내린다는 내용 등) 글의 대부분이 3, 40년 전에 씌어졌고, 리영희 교수의 나이가 나보다 4, 50살은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감했던 부분은 종교에 관한 그의 성찰이었다. 리영희 교수는 아직까지 종교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의 행적과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깊이 새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종교는 ‘예수․부처교’라고 하였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진짜 종교라는 그의 말은 가장 간단한 진리이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진리 중 하나인 것 같다.


3부의 글은 베트남전쟁, 핵무기 관련 글, 파시스트, 광주민주화운동 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쪽은 약간 딱딱한 글이 대부분이지만 한 번쯤 읽고 깊이 생각해 볼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서 일하던 시절, 억울하게 죽어가는 베트남 국민을 생각하면서 밤에 잠을 못 자고 뒤척이는 리영희 선생에게 아내는 “당신이 그런다고 베트남 국민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외쳤다고 한다. 언론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저버릴 수 없기에 그는 밤을 설쳤고, 또 진실을 알면서도 그 진실을 위해 맞서 싸울 힘이 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기에 밤을 설쳤다. 이런 글들에서 그의 바른 정신, 양심적 언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4부는 해방 후 친일파 숙청과 일본 관련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 우리가 ‘독도 문제’나 일본 교과서 문제를 이야기하며 일본을 규탄하는데, 이 글에서 리영희 교수는 좀 다른 시각을 보인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에 숨 쉬고 있고, 내일의 우리를 규정할 것이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일을 위해 과거를 물어야 한다. 다만 상대방에게만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더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나 문제를 정확하게, 그리고 거시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요체가 될 것이다.”라고 일본에게만 “니들이 잘못했다”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 성찰 뒤에 그들의 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이 들으면 대노할 테지만, 이 부분은 성숙한 시민사회를 원한다면 언젠가 한 번쯤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리영희 선생의 글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5부는 김구, 노신, 고은, 김산, 윤영자(리영희 아내) 등 리영희 선생이 존경했던 사람들에 관한 글을 모아놓은 것 같다. 많은 글들 중 노신에 관한 글과 아내에 관한 글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리영희 교수는 노신의 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노신의 책을 아무 쪽이나 뒤적이면서 글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그 영향을 알 만하다.


"가령 말이야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속에는 깊이 잠든 사람들이 많이 있어. 머지않아 질식하여 다 죽어버리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는 거니까 죽기 전의 슬픔은 느끼지 못하는 거야.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쳐서, 다소 의식이 뚜렷한 몇 사람을 깨웠다고 하면, 이 불행한 몇 사람에게 이왕 살려낸 가망 없는 임종의 괴로움을 주는 것인데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철의 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리영희 선생은 이런 노신의 글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켰다. 우상에 사로잡힌 시대의 민중을 위해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싸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신과 나」는 감동깊게 읽은 꼭지 중에 하나이다.


마지막 6부는 상고이유서이다. 이는 1977년 『우상과 이성』『8억인과의 대화』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리영희 교수가 대법원에 손수 작성하여 낸 것이라 한다. 아무런 참고 자료도 없이 철장 안에서 손수 쓴 선생의 글이다. 독재시대, 반공법이라는 법은 ‘우는 아이도 잠재우는’ 소문난 무서운 법이었다. 이 글은 용감하게도(?) “본인에게 적용된 반공법은 입법정신에 어긋난다”며 법의 부당성과 언론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장황하게 1~6부에 대한 설명과 나의 감상을 적어놓았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신이 직접 읽어보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특히 리영희 선생의 글은 더 그렇다. 종교, 우상, 관념 등 모두가 이해할 만한 단순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직접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s******a 2011.02.2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늘 존경하는 리영희 교수의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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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를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고자 한다.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저자의 글을 많이 읽었었다.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산문들을 임헌영이 편집한 책이다. 어렵지 않은 산문들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글들이 실려 있다.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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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를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고자 한다.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저자의 글을 많이 읽었었다.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산문들을 임헌영이 편집한 책이다. 어렵지 않은 산문들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글들이 실려 있다.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자유인’이란 무엇인가?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157-158쪽). 독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매우 눈에 띄는 글이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어야겠다.

 

소크라테스나 코페르니쿠스 또는 갈릴레오 등은 스스로 자유인이었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동시대의 동포들과 후세의 인류를 ‘자유인’으로 한 단계 높여준 ‘독서인’이었다. 독서는 진리요, 해방인 것이다(158쪽). 진정한 독서를 통하여 진리와 해방을 느꼈으면 한다.

 

나는 현세를 경시하는 종교 일반의 사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육체가 밟고 살아야 할 땅은 지옥이고, 하늘 어딘가에 천당이나 극락을 상정하는 것부터가 못마땅하다(204쪽). 이는 내가 좋아하는 니체의 생각과 일치한다. 왜 이 땅이 천국이 되게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천국을 상정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지식인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나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조건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수천 년간을 종교적 절대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살육과 파괴행위를 보면서 나는 가끔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들이 차라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는 ‘영혼’을 구한다면서도 영혼이 깃들어 있는 얼마나 많은 ‘육체’를 파괴해버렸는지(217쪽). 이 글을 읽다보면 러셀의 글이 떠오르게 만든다.

 

해방 이후 당시 세계의 50여 개국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다수가 과거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신생 독립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00여 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과거에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자를 자기 나라의 대통령으로 모신 나라는 베트남과 한국밖에 없었습니다(305쪽).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니 옳고 그름이 뒤바뀌어서 정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투쟁으로 독립한 나라는 해방이 되자마자 첫 사업으로 독립기념관을 짓습니다. 해방 40년이 지나서야……. 그리고 늦었다 하더라도 이왕 지을 바에야 그 절반은 민족반역의 관으로 할애하여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308-309쪽) 우리가 만든 해방이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이것도 일본 때문에 흥분해서 지은 것이니 우리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세울 날이 언제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뜻이 10분의 1만이라도 실현된 나라였다면 ‘독립기념관’ 건립이 40년이나 미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워서 해방과 독립을 얻은 민족은 해방 뒤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고속도로에 앞서 독립기념관 또는 혁명기념관을 세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지난 시대의 집권자들은 독립기념관을 세우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 민족의 성당에는 독립을 위해서 목숨 바친 위업이 모셔질 것이고, 친일파, 반민족 행위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515쪽).

 

핵무기 사용은 그것이 아무리 소규모라 하더라도 안팎 수백 킬로미터의 지역에 참화를 덮어씌우게 마련이다. 적어도 서독 지도자와 그 국민만큼의 ‘대민족주의’ 주체성이 우리 지도자들과 국민 일반에게 필요한 국면에 온 것 같다(495쪽). 이는 서독이 통일 전에 미국에게 동독을 핵공격 목표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한 것을 지적하면 하는 말이다. 유럽은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기 전에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효능적이고 적극적인 반공산주의 방법은, 민주주의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속에 심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공주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정적 개념이며, 민주주의만이 긍정적ㆍ적극적 개념입니다. 반공은 조건이고 민주주의는 목적이자 이상입니다(648쪽). 이 글은 1978년 11월 26일에 쓴 상고이유서의 일부이다. 하기야 이런 말이 당시 말기 증세를 보이던 정권에 무슨 설득력이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에도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나는 존경하는 저자로부터 늘 많은 것을 배운다. 비록 책을 통해서 배우고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자유인, 지식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늘 인생은 배우는 과정이니 그 배움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겠지만 열심히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다.

7*****0 2011.02.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 리영희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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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녹색평론> 발간사에서 김종철 선생은 리영희와 하워드 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 주어진 사회적 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보여주는 궤적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고.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뒤로 진보매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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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녹색평론> 발간사에서 김종철 선생은 리영희와 하워드 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 주어진 사회적 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보여주는 궤적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고.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뒤로 진보매체에 기사가 크게 실리고 이런저런 조명을 받았지만 그의 사상이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부터도 잘 모르니까. 하워드 진과 비견될 정도의 우리시대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그의 사상의 대강이라도 훑어두고 싶었다.

<대화>는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지만 어린 시절이나 군대에 있던 시절의 일화만 간간히 기억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선생의 사상보다 오히려 ‘한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크고 막힘없는 인격으로 형성되는 것일까’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반면 <희망>은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베트남전쟁, 종교, 교육, 일본의 교과서문제, 과거청산문제 등 특정 사안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다 읽으면 이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선생의 견해가 합해져 선생의 사상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상은 압도적일 만큼 엄청난 무엇은 아니다. 한 시절에는 사람을 끌려가게 했던 생각이 이제 상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보했다는 뜻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망각하기 쉬운 주제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끝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한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면 형무소라는 철로 된 방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관 속 같은 그 철방에 있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그런 관 속에 들어 있는 학생․노동자․지식인은 전국에 수백 명, 수천 명이었다.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났다. 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은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크기는 아니지만 숨을 쉬고, 빛을 보고, 주먹이 나갈 만한 크기는 되었다. 노신처럼 역사를 밀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한 ‘시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m******6 2011.0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