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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를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고자 한다.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저자의 글을 많이 읽었었다.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산문들을 임헌영이 편집한 책이다. 어렵지 않은 산문들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글들이 실려 있다.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자유인’이란 무엇인가?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157-158쪽). 독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매우 눈에 띄는 글이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어야겠다.
소크라테스나 코페르니쿠스 또는 갈릴레오 등은 스스로 자유인이었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동시대의 동포들과 후세의 인류를 ‘자유인’으로 한 단계 높여준 ‘독서인’이었다. 독서는 진리요, 해방인 것이다(158쪽). 진정한 독서를 통하여 진리와 해방을 느꼈으면 한다.
나는 현세를 경시하는 종교 일반의 사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육체가 밟고 살아야 할 땅은 지옥이고, 하늘 어딘가에 천당이나 극락을 상정하는 것부터가 못마땅하다(204쪽). 이는 내가 좋아하는 니체의 생각과 일치한다. 왜 이 땅이 천국이 되게 만들지 않고 다른 곳에 천국을 상정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지식인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나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조건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수천 년간을 종교적 절대자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살육과 파괴행위를 보면서 나는 가끔 종교가 없었다면 인간들이 차라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는 ‘영혼’을 구한다면서도 영혼이 깃들어 있는 얼마나 많은 ‘육체’를 파괴해버렸는지(217쪽). 이 글을 읽다보면 러셀의 글이 떠오르게 만든다.
해방 이후 당시 세계의 50여 개국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다수가 과거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던 신생 독립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00여 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과거에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자를 자기 나라의 대통령으로 모신 나라는 베트남과 한국밖에 없었습니다(305쪽).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니 옳고 그름이 뒤바뀌어서 정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투쟁으로 독립한 나라는 해방이 되자마자 첫 사업으로 독립기념관을 짓습니다. 해방 40년이 지나서야……. 그리고 늦었다 하더라도 이왕 지을 바에야 그 절반은 민족반역의 관으로 할애하여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308-309쪽) 우리가 만든 해방이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이것도 일본 때문에 흥분해서 지은 것이니 우리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세울 날이 언제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뜻이 10분의 1만이라도 실현된 나라였다면 ‘독립기념관’ 건립이 40년이나 미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싸워서 해방과 독립을 얻은 민족은 해방 뒤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고속도로에 앞서 독립기념관 또는 혁명기념관을 세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나라의 지난 시대의 집권자들은 독립기념관을 세우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 민족의 성당에는 독립을 위해서 목숨 바친 위업이 모셔질 것이고, 친일파, 반민족 행위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515쪽).
핵무기 사용은 그것이 아무리 소규모라 하더라도 안팎 수백 킬로미터의 지역에 참화를 덮어씌우게 마련이다. 적어도 서독 지도자와 그 국민만큼의 ‘대민족주의’ 주체성이 우리 지도자들과 국민 일반에게 필요한 국면에 온 것 같다(495쪽). 이는 서독이 통일 전에 미국에게 동독을 핵공격 목표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한 것을 지적하면 하는 말이다. 유럽은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기 전에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효능적이고 적극적인 반공산주의 방법은, 민주주의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속에 심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공주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정적 개념이며, 민주주의만이 긍정적ㆍ적극적 개념입니다. 반공은 조건이고 민주주의는 목적이자 이상입니다(648쪽). 이 글은 1978년 11월 26일에 쓴 상고이유서의 일부이다. 하기야 이런 말이 당시 말기 증세를 보이던 정권에 무슨 설득력이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에도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나는 존경하는 저자로부터 늘 많은 것을 배운다. 비록 책을 통해서 배우고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자유인, 지식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늘 인생은 배우는 과정이니 그 배움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겠지만 열심히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다듬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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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녹색평론> 발간사에서 김종철 선생은 리영희와 하워드 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 주어진 사회적 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보여주는 궤적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고. 아마 그 이유는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뒤로 진보매체에 기사가 크게 실리고 이런저런 조명을 받았지만 그의 사상이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부터도 잘 모르니까. 하워드 진과 비견될 정도의 우리시대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그의 사상의 대강이라도 훑어두고 싶었다. <대화>는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지만 어린 시절이나 군대에 있던 시절의 일화만 간간히 기억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선생의 사상보다 오히려 ‘한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크고 막힘없는 인격으로 형성되는 것일까’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반면 <희망>은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베트남전쟁, 종교, 교육, 일본의 교과서문제, 과거청산문제 등 특정 사안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다 읽으면 이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선생의 견해가 합해져 선생의 사상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상은 압도적일 만큼 엄청난 무엇은 아니다. 한 시절에는 사람을 끌려가게 했던 생각이 이제 상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보했다는 뜻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망각하기 쉬운 주제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끝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한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면 형무소라는 철로 된 방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관 속 같은 그 철방에 있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그런 관 속에 들어 있는 학생․노동자․지식인은 전국에 수백 명, 수천 명이었다.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났다. 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은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크기는 아니지만 숨을 쉬고, 빛을 보고, 주먹이 나갈 만한 크기는 되었다. 노신처럼 역사를 밀고 갈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한 ‘시대’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