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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녕하셨는감? 가을이 저만치 있는 줄 알았더니 벌써 콧끝에 와서 알레르기 기침을 하게 하는구려 잘 계셨소? 머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얼굴도 봐야 잔정도 드는게 인간사 일진데...하하하 귀뚜라미 소리도 없어진지 오래건만 그래도 유난히 들리던 그 옛적의 가을날을 생각하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인생의, 삶의 고즈녁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는데 존경하는 우리 김부장은 어떠신지? 고독한 시간에 혹은 한가한 밤 시간에 작업도 잘 않되고 글타고 앤도 없는데 그러함에도 내게 벗해 주는 한 잔의 커피 말이요.커피도 않한다면 말이 되지...하하하 우리들의 삶이란 언제나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쓰고 단맛이 어우러지는 동반자말이오. 녹차같이 그윽한 동반자도 있겠지만... 쓰기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달기만 하면 또 무슨 느낌이 있겠는가 또한 그윽하기만 하면 무슨 희열이 있겠소 귀뚜라미 울어대고 오동잎 떨어지는 이 가을 밤에 오동동 타령을 함 불러 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나 녹차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인생을 깨닫게 해준다고 하니 함 해보게...하하하 오늘은 마음속에 나무를 심어보는 植木想念을 해 보기로 한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 무명씨의 이 시조를 기억하는가. 오동나무에 내려앉은 그윽한 달빛 풍경이 눈에 밟히는 아름다운 시이다. 봉황이라는 꿈과, 조각달이라는 현실이 벽오동이란 매개물의 양 가지에 걸린 채 또렷한 대비효과를 자아내 실의(失意)의 허허(虛虛)함을 더욱 깊게 새기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괴로움이 어디 요새 뿐이랴? 어느 시대도 깊게 품은 자신의 이상(理想)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태의 얕음에 좌절하는 한숨이야 많았으리라. 벽오동(碧梧桐)이란 푸른 오동나무다. 다 크면 10미터는 족히 넘는 큰 나무이다. 나무 껍질이 푸르스름한데 이는 늙어도 그 색이 변치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벽오동이다. 잎은 넓고 잎자루는 길어 커다란 오동잎이 부드럽게 일렁이는 모양은 참으로 장관이다.
부음을 접한 가수 최헌이 80년대 어름에 불러 빅히트한 노래 <오동잎>은 사실 오동잎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그저 첫 구절에만 딱 한번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라고 나올 뿐, 나머지는 모두 귀뚜라미의 노래다. 말하자면 오동잎은 처음에 바람잡이로 나온 소품일 뿐인데, 제목을 오동잎이라고 떡하니 붙여 저 상서로운 오동나무를 민망하게 하였다. 봉황은 굉장한 새다. 닭의 머리와 뱀의 목,제비의 턱,거북의 등,물고기의 꼬리모양을 한 중국의 전설조(傳說鳥)다. 상상이 가는가? 상상이 안가면 화투짝 11월 오동을 펼쳐보라. 거기 닭머리를 한 어둠 속의 새 한 마리가 있을 것이다. 그게 봉황이다. 하하하 몸과 날개에는 다섯가지 빛이 찬란하고 울음을 울면 다섯가지 소리가 울려퍼진다고 한다. 수컷은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은 황(凰)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여자들이 잘나가는 요즘 세상에 띨~빵한 남자들이 <봉>인 것과는 다른 개념의 봉이다.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예천(醴泉)을 마신다. 예천은 중국의 전설적인 샘물인데 태평성대가 되면 단물이 솟는다는 샘이다. 봉황이라는 자체가 위대한 황제가 나타나는 때를 맞춰 <천연기념>으로 태어나는 새이니, 봉황과 예천은 바로 <좋은 세상>을 꿈꾸는 옛 사람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이었으리라. 봉황의 귀함은 그가 앉을 자리를 까다롭게 가리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 새는 여느 나무에는 눈을 주지 않으며 오로지 아까 말한, 잘생긴 오동나무에만 앉으신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