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남극장』을 읽고 - 소설가라기보다는 작가라 불리고 싶어 하는 김호경의 『삼남극장』(비단숲, 2017)이란 제목의 장편을 고등학교 동창회 밴드에 올라와 있는 어느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다. 학창시절의 추억도 있는 터라 작가와 책의 이름을 메모해두었다가 주문을 했다. 책은 곧 도착했고 진한 호기심과 추억을 바탕으로 읽어 내려갔다. 매우 정제된 필치를 보이지만, 할 말은 다하고 마는 작가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가정형편 때문에 서울대가 아닌 육사를 가기로 한 주인공 김현철이, 육사 필기시험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감독관이 시험지를 나누어 주기 전에 하는 “모두 눈을 감으세요.” 하는 말과 더불어 현철의 회상이 이어진다. 그는 고물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무능하며 때때로 폭력을 쓰기도 한다. 어머니는 항상 “남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말을 현철을 비롯한 자녀들에게 주입을 시킨다. 이 말에 현철은 동의하지 않고 늘 불만을 품는다. 필기를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그는 걸리지도 않은 폐병 의심으로 조작된 낙방을 하고 만다. 낙망하여 이리역에 도착했을 때, 덕호에미의 손에 끌려 철인동 사창가를 가보게 되고, 영숙을 만나게 된다(현철의 아내 연희의 언니일 수도 있다.). 이리역 폭발사고 현장에 그가 있었고, 그는 용케도 살아남는다. 작가는 폭발사고를 묘사하면서, 당시 삼남극장의 화춘화 리사이틀 전개 상황, 화약열차 책임자인 신언호(가명)가 철도 직원들의 뇌물요구에 대해 분노하는 것, 자신의 가난과 낙방에서 비롯된 좌절과 억울함, 창녀 영숙이 한을 토하는 것, 창녀촌을 도망 나오다 메다 꽂아버린 똘마니 창수의 추격, 이러한 모든 상황을 적절히 버무려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듯 그리고 있다. 서울대를 또 떨어진 현철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남을 위해 살아가는 신세’가 된다. 군대에서 만난 서울대생 선임 박혁진 대신 영창을 가고, 복학해서도 시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현장에 있다가 최루탄을 눈에 맞고, 자신도 모르게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탈바꿈된다(박혁진은 이후 검사가 되고 그는 정치적인 성공을 위해 변절한다.). 치료를 받던 중 이연희라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탈출해 그녀가 살던 강원도 태백 어느 공사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야간 경비도 맡는다. 현철이 철인동에서 만난 영숙과 너무도 닮은 연희는 현철을 탈출시켰다는 의심 속에 조사를 받으며, 결국 해고를 당하고 현철이 있는 태백으로 와서 현철을 돕는다. 똘마니 창수도 태백으로 흘러들어오고. 긴장이 더해진다. 결국 현철은 붙잡혀 옥살이를 하던 중,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며 다시 복학하고 졸업 후, 한 가구회사를 다닌다. 물론 연희가 그의 아내이다. IMF를 맞으며 정리해고를 할 때, 그는 촉망받는 인재였고 주변의 만류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그만둔다. 어김없이 그의 어머니가 주입시킨 대로 ‘남을 위해’ 그리한 것이다. 명예 퇴직한 그는 본사의 도움으로 가구 대리점을 개업한다. 때맞추어 벤처 열풍이 불어 창업 러시를 이루는데, 이 회사들에 가구를 납품하고 돈 대신 액면가 5천원의 주식으로 받는다. 이것도 역시 그의 뜻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을 위해 살아간다. 본사에 외상대금이 3억쯤 되었을 시점에, 본사로부터 독촉을 받게 되고, 그 대금을 갚기 위해 벤처 회사 한곳에 주식을 들고 찾아간다. 코스닥에 상장되었다고 팔지 말라는 직원의 말을 뒤로하고, 그는 모든 주식을 처분한다. 41억 7천만 원을 손에 쥐게 된다. 그 후 벤처열풍은 사라진다. 마치 그간 남을 위해 살아온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이 대목에선 신이나기까지 한다. 이후에 그는 승승장구한다. 그는 이리(익산)이 개발되면서 도심이 달라지니, 삼남극장이 낙후되어 페쇄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한다. 그 자리에 전 재산을 기부해 청소년과 여성들을 위한 센터를 건립해 기증한다. 아내와 이제는 익산역이 된 45년 전 그 현장을 아내와 둘러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그의 땀을 닦아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육사 시험을 보던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때 시험관의 음성을 듣는다. “모두 눈을 감으세요.” 이렇게 막을 내린다. ******* 간단하게 요약을 하다 보니 리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삼남극장』 만나면서 나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현철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그리고 선배와 동창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매우 박진감이 있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았다. 깔끔하다. 마치 시원한 동치미를 한 사발 들이킨 듯하다.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2017. 10. 18(수) -배달보이(최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