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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선택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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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죽음에 대해 떠올려보면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이 자라난다. 항상 곁을 지켜주시던 부모님과의 이별, 가족처럼 지내던 애완동물들의 죽음, 청춘을 함께 했던 친구와 또 다른 지인들과의 헤어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죽음의 이미지는 안타까운 눈물이다. 이별이 담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죽음이란 한 단어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겉으로 보이는 죽음의 또 다른 이미지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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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죽음에 대해 떠올려보면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이 자라난다. 항상 곁을 지켜주시던 부모님과의 이별, 가족처럼 지내던 애완동물들의 죽음, 청춘을 함께 했던 친구와 또 다른 지인들과의 헤어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죽음의 이미지는 안타까운 눈물이다. 이별이 담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죽음이란 한 단어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겉으로 보이는 죽음의 또 다른 이미지는 아이러니 하게도 삶이다. 누군가를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열혈 청년의 이야기도, 식물인간 상태의 한 남자가 자신의 장기로 여러 사람에게 새 생명을 전해주고 떠난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이라는 이름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엄마의 죽음이 어쩌면 내가 겪은 죽음의 시작이었다. 오랜 시간을 행복하게 함께 할 수 있을거란 믿음도 잠시, 엄마는 너무 쉽게 내 곁을 떠났다. 갑자기 쓰러지시고 열흘! 그렇게 끝이었다. 갑작스럽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때를 두고 하는 말일거라는 생각이 스친 그 시간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픈 슬픔이 이별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벌써 10여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잊혀지진 않았지만 죽을 만큼 아팠던 가슴의 상처는 어느덧 새살이 돋아나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지도 꽤 오래다. 하지만 그때 그 시간의 죽음이란 말은 영원한 이별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눈물이다.

 

 

'나는 죽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면 좋겠어'

 

'더'는 저기, 저편의 라는 뜻을 가진다. 책속에서는 '슬픔도 헤어짐도 잊힘도 없는 불멸 천국' 이란 의미를 고하지만... 1억원 고료의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욘더>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상의 미래세계,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또 다른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동극 성우였던 아내,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던 아내 '이후'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알코올 중독으로 치닫던 남자 '김홀'은 2년여의 시간후에 그 아픔을 딛고 자신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홀은 아내 이후에게 한통의 메일을 받게된다. '여보 나야 잘 지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닐까 사이버 경찰대에 신고하려던 홀은 문득 아내가 추억을 정리하고 있었단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바이앤바이 닷컴! 홀을 찾아온 한 여인은 아내가 이곳에 꼭 남기고 싶은 기억들을 남겨놓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내가 건네준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아바타를 만날 수 있다는 말도... 그렇게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 홀은 아내의 아바타를 만나게 되고, 또 그곳에서 만난 피치라는 소녀와 '피치의 방' 사람들을 알게 된다. 피치를 비롯해 이유 없이 이어지는 죽음들, 홀은 '욘더' 라는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 죽음이 갈라놓은 그들의 사랑,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놓을 만큼 소중한 사랑의 진실이 미래의 가상공간에서 색다르게 그려진다.

 

<욘더>는 204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래소설이다. 초반 이후의 죽음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이어진 미래사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작품 곳곳을 장식한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고통을 통제하는 '브로핀 페인 디스트갯션 프로그램', 사이버네틱 스페이스 같은 가상 공간, 잠시 들른 편의점의 문은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인공지능 아바타, 하이브리드 사이보그와 핸디라는 네트웍 수단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그리는 미래세계는 지금까지 국내 소설이 담아내던 단편적 미래의 모습을 뛰어넘는다. 눈에 잡히는 듯 어렵지않고 친숙한 이런 모습들이 이야기속에 독자들을 쉽게 동화시킨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해 명계로 들어가는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욘더'는 그리스로마 신화속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한 '이제 최후의 이별입니다. 안녕히~' 라는 말처럼 마무리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는 남자, 남자를 위해 영원한 소멸을 선택하는 여자. 이들의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는 미래라는 가상의 시공간속에서 더욱 선명한 빛을 내며 피어난다. 주인공과 다양한 등장인물, 미래 가상 공간속에서 우리는 현재와 다르지 않은, 변치 않는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

 

'행복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 엄마와 이별했던 그 시간, 그렇게 아프고 힘겹던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아마 나는 지금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잊혀짐! 망각이 현실의 행복을 만든다는 말이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질것이다. 함께라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별을, 아픔을 잊어야만 새로 나아갈 힘을, 삶의 이유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작가는 전하는 듯하다. 사랑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접근,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작가는 작품 깊숙히 녹여놓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미래의 시간과 공간속에, 더할 수 없이 따스한 사랑을 그려낸 작가의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욘더> 아쉬움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김장환 작가의 도전과 열정에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국내 소설이 담당? 해왔던 현실의 사랑, 가족, 역사소설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다양한 영역과 소재로 빚어낸 철학적 로맨스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순한 휴대폰, 태블릿 PC 하나가 세상을 바꾸듯, 예전의 과거나 현재처럼 미래는 좀처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역시 차가운 쇠와 금으로 영혼을 살 수 없음을 확실할 것같다. 그렇기에 우리가 걸어야 할 길에 내려놓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그들의 아바타를, 불멸의 천국 '욘더'를 꿈꾸어 보고 싶을 것도 같다.




e****e 2011.02.1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체를 상실한 현대 물질주의에 대한 탁월한 신화
"신체를 상실한 현대 물질주의에 대한 탁월한 신화" 내용보기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어느샌 가 우리인간들은 아주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는 느낌인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는 의식의 세계가 더 이상 무언가 전체적인 현재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과 명료성을 요구하면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모호하고 흐릿하며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실재의 세계는 무시하고
"신체를 상실한 현대 물질주의에 대한 탁월한 신화" 내용보기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어느샌 가 우리인간들은 아주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는 느낌인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는 의식의 세계가 더 이상 무언가 전체적인 현재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과 명료성을 요구하면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모호하고 흐릿하며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실재의 세계는 무시하고 배제하면서부터 고작 자기가 알고 있고 통제할 수 있는 한정된 지식의 단편들로 짜 맞추다보니 코끼리 코에 부엉이 눈을 하고 사자의 입을 한 얼굴과 같은 기이한 것을 창조라느니 상상력이라고 하면서,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을 마치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는 무지와 편협성, 편집증적 현상에 빠져있는 지금의 거침없는 세상의 모습 말이다.

 

과연 우리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의식이란 협소한 범주에서 이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정신과 마음이란 것이 내 몸을 떠나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나는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체험한다. 그 감각을 통해 다가오는 세상은 그리 선명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교감과 전체성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사람들, 세상을 주도하는 힘은 신체는 사물이라고, 정신의 세계와 분리하고, 그래서 부품으로 대체 가능한 조립기계정도로 치부하려한다. 자꾸만 우리 인간에게서 생명성을 박탈하려고 한다.

 

배아줄기세포를 통한 생명에 대한 교정적 간섭은 물론이거니와 실시간이라는 동시성을 구현하는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융합하는 모바일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과학기술 지상의 사유, 즉 합리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감성의 세계, 생명의 세계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인간 마음의 세계는 쓰레기처럼 처리되고 있다. 소설 속 ‘욘더(Yonder)’의 세계는 그래서 분명 우리 인간세상의 미래에 출현 가능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가 남긴 기억의 저장이 사후 사이버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기 위해 가상의 공간에서 실현되게 된다. 바이 앤 바이(by and by), 머지않은 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홀’의 아내‘이후’가 죽음의 고통을 회피하기위해 머리에 뒤집어쓰는 브로핀 헤드란 장치에서 나는 현실을 지우려는 오늘의 우리들 모습을 본다. 인간 정신의 승리, 자연의 섭리를 조작하고 통제하여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을. 이 장치는 기술의 거침없는 추진을 통해  ‘브레인 다운로드’라는 인간 의식의 이식이 가능한 꿈의 기술로 표현되고, 급기야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 Space) 상에 구현되는 천국,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만족이 구현되어 진정한 쾌락과 행복이 가능"하다는 불멸의 공간, 욘더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신체와 분리되어 작동하는 정신의 존재에 동의할 수 없는 나는 소설의 결말에서야 겨우 화해 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생적 부조리가 주는 고통이 이미 두려움인 것을 부인 할 수는 없지만, 과연 죽음이 없는 불멸, 영원성이란 것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이 삶의 행복을, 아니 나아가 인간의 존재자로서의 의미에 어떤 것일 수 있을까하는 데에 이르면 아마 그것은 곧 존재하지 않음의 다른 의미 이상이 아닐까. 불멸을 쫒는 인간 군상들, 그래서 영원한 삶이 보장되는 욘더의 세계로 향하기 위한 자살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다시금 개념화와 물질화, 기계화에 몰두하는 오늘의 세계, 그칠줄 모르는 탐욕의 현실세계와의 교차를 본다. 화자인 주인공 홀이 죽은 아내가 있는 불멸의 공간인 욘더로 향하기 위해 중개자를 찾아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타운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묘사에서 사물화의 극한을 치닫는 오늘의 정신세계를 거듭 확인케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신체의 기계화를 위해 소위 B.M.(Body Modification)이란 현상은 아마 현대인의 왜곡된 삶의 시선이 낳은 정신적 질환의 연장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신체통합 정체성 장애, 신체이형장애와 같은 질병으로서의 호칭은 기술지상의 오늘을 경계하는 장치로서 작가의 우려와 비판을 읽게 된다.  한편, 아내가 있는 세계로 가기위해서는 자살을 시도하고 자신과 아내의 의식이 이식된 욘더에서 두 사람은 조우한다. 사실 소설적 묘사임에도 사이버스페이스인 욘더의 생활 내용에서 내 사유가 끊임없이 거부하고 이탈하려고 했던 부분이 있는데,  “몸이 없었다.(....) 의지가 있었다.”하는 것인데, 몸의 부존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존재라는 데카르트적 이분법적 사고, 즉 기계화, 사물화, 합리주의라는 오늘의 타락한 사유의 끈질긴 무지에 대한 분노 때문이랄 수 있다.

 

더구나 “내 몸의 실체감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홀의 감각에 대한 동일성의 주장은 신체를 부인하는 앞 선 주장과 모순되고, “손톱으로 튀기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라든가, “재스민 향, 훌륭한 맛, 내 눈으로 확인”과 같은 신체의 감각에 대한 표현은 해체되고 파편화되어 신체를 잃어버린 소설 내내 비판되었던 물질화 기계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혼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자로서의 갈등도 잠깐 머물고 말게 하는 멋진 성찰의 구절이 등장하는데, 문득 홀이 욘더의 세계에서 어떤 것들이 없는 상태로서 “실존적인 우울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체로서의 마음에 대한 깨달음인데, 결국 자라지 않는 그네들의 아이로부터 진행되지만 정지한 시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지, 즉 불멸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라는 각성이다. 이에 더해 인간의 말이라는 불충분한 세상의 묘사에 불과한 기호, 바로 삶이 이 기호에 갇히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가 극히 왜곡되고 관념화되어 편협해져 있음을 총체적으로 해독해내고 있다.

 

오늘의 기술은 과학이라는 만능의 언어로 인간, 인간사회에 자신이 쏟아내는 것이 과연 어떤 결과와 여파를 가져올지에 대해 어떠한 검토도 예측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오직 효용과 편익, 편리와 복지와 같은 긍정적 전망만 쏟아 놓는다.  그것이 인류의 완전한 파괴로 이어질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 소설은 한번 적용되기 시작한 기술, 인간의 조작은 과거로 돌이킬 수가 없음을, 역행 불능의 현실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해져있는 현대의 인간, 인간사회에 넓고 깊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생명을 팽개친 정신세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신체를 멸실한 불멸의 삶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의 다른 이름임을 천명하면서...

리뷰 총점 종이책
굿바이, 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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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많이 남는 소설입니다. 시작이 좋고 아이디어가 좋고 분위기가 좋아 꽤 흡족하게 전반전을 치루었는데 하프타임을 넘어서부터 체력이 급강하 되더니 급기야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고 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이 작품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록해보겠습니다.         에스에프 소설이고요, 이 소설이 가지는 최대의 미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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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움이 많이 남는 소설입니다. 시작이 좋고 아이디어가 좋고 분위기가 좋아 꽤 흡족하게 전반전을 치루었는데 하프타임을 넘어서부터 체력이 급강하 되더니 급기야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고 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이 작품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록해보겠습니다.

 

      에스에프 소설이고요, 이 소설이 가지는 최대의 미덕은 세련됨입니다. 에스에프라고 하면 흔히 싸구려 스토리로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조악한 미래 기기만이 난무하는 삼류 소설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이 작품은 다행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필립 k 딕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이 점에 있어 에스에프 소설에 정통한 독자 분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건 당신이 에스에프를 몰라서 하는 소리야, 에스에프 장르에 고급 소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하고 말한다면 말입니다. 깨끗하게 인정하는 까닭은

      첫째, 제가 에스에프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부분이 바로 저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것이 다름 아닌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었고요.

      둘째, <유령 여단>과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 읽고 에스에프도 고급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넌 대체 무엇을 두고 고급 문학이라고 말하는 거냐,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각설하겠습니다. 길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반항적으로 물어와도 니 머릿속엔 뭔가 고급이 연상될텐데 그 고급이 내가 말하는 그 고급이 맞을 거다, 아마.

      어쨌거나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풍경은 조야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약간은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도 있으며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 드는 그런 미래였습니다. 잘 다듬어진 세련된 분위기였지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분위기였습니다. 작가가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가지는 두번째 미덕은 장비 설명의 최소화를 성공시켰다는 점입니다. 에스에프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 기기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없이 그 하나의 장면을 독자에게 연상시켜야 한다는 큰 벽에 있습니다.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데 있어 그 장면의 주를 이루는 미래적인 배경이라든가 기계적인 메카니즘이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라 그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바로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에스에프 소설의 특징은 모두, 장비나 배경 설명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지 않습니다. 그냥 묘사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묻어있고 그래도 충분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냅니다. 그 점에 있어, 이 작품도 어느 정도의 성취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게 사실 간단할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겁니다. 설명이 되지 않는 선에서, 짤막한 묘사로만 새로나온 광선총의 모양을 독자에게 연상시켜주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 작품을 망가뜨린 교집합이 성립됩니다. 장비 설명이 최소화되었음에도 영상미가 살아있는 반면, 작가가 구축하려고 하는 환경에 관한 배경 설명이 그야말로 설명으로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듯 소설에서 설명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바로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집중과 몰입을 단번에 앗아가 버리는 마귀 같은 놈이라구요, 설명이.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놈에 욘더라는 개념을 독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너무 많은 페이지를 투자했습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이야기는 거의 정체되어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분위기 하나로 먹어주어 별 넷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며 나쁘지 않다고 여기던 차에, 난데없이 결말을 내기 위해 갑자기 짐을 쌉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떤, 이야기의 파동이 있는 게 아니라 물결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난데없이 블랙홀이 열린 것처럼 아이가 안 자란다는 이상한 설정과 더불어 상황이 급전환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말에 이르는데요, 작품이 끝났음에도 완성되었는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미완성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이지요.

 

      에스에프임에도 사건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작품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유년기의 끝>처럼 다소간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작품이 구성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없어도 너무 없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욘더라는 개념에 묶여 계속 그 점에 대해서만 중언부언하게 된 것이지요.

      쉽게 말해 현재가 있고, 욘더라고 하는 가상 세계가 있고 두 세계가 갖는 의미와 차이를 독자에게 설명하다가 작품이 끝나버립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소소한 장치들은 소설의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개념과 개념 사이의 연결 고리로 필요한 에피소드 정도였기 때문에 이야기에 역동성이 전연 없습니다. 한마디로 발단이 10을 차지한다면 전개가 85를 차지하고 절정없이 바로 남은 5가 후다닥 결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뭔가 늘어놓다가 난데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느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가상 세계 욘더에서의 디테일이 좀 아쉬웠고 말이죠. 욘더를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설명해주다가 막이 내려버렸지요. 그런 면에 있어서 어떤 삶에 관한 고찰보다는 풍부한 장면 묘사로 꾸몄으면 어땠을 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너무 직구로, 가상 세계라는 얇은 막 하나만 씌운 채 거의 직구로 던졌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메시지는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지, 메시지를 위해 이야기가 존재하는 형태의 소설이 재미있기란 아무래도 좀 어렵습니다. 어쨌든 제 기준에서는 많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 솜씨였고요, 그마나 앞서 말씀드린 장점들이 워낙 비중이 높고 중요한 부분이라 평균 수준으로 높이를 맞추었습니다. 그러니 다음 작품에서도 이렇게 '썰'만 푸시고 이야기를 만들 줄 모르는 상태로 나오신다면 굿바이, 님하가 되는 것이고 뭔가 보강되어 나온다면 상당히 기대해볼만한 작가 님이시기는 합니다.



b******k 2011.03.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감미로운 허구의 유혹 속으로
"감미로운 허구의 유혹 속으로" 내용보기
놀랍다. 연휴의 끄트머리에 그저 잠들기 전에 몇 장 읽겠다고 펼쳐든 김장환 작가의 <굿바이, 욘더>는 이백 몇 장을 읽고서야 간신히 잠들 수가 있었다. 도대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 마력적인 흡입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기계문명이 확실하게 더 발전할 미래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어쩌면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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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연휴의 끄트머리에 그저 잠들기 전에 몇 장 읽겠다고 펼쳐든 김장환 작가의 <굿바이, 욘더>는 이백 몇 장을 읽고서야 간신히 잠들 수가 있었다. 도대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 마력적인 흡입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기계문명이 확실하게 더 발전할 미래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어쩌면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거의 확신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소설은 독특한 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결국 일찌감치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아내 차이후를 떠나보낸 전문 인터뷰어 김홀의 상념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대개의 사람처럼 김홀은 상실감에 근 2년간 폐인생활을 한다. 사이버네틱 스페이스가 발전해서 기계적 인터페이스로 소통하고,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가 넘실거리지만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이라는 원시시대 이래 인류에게 주어진 형벌은(아니 어쩌면 축복이던가) 오롯하게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김홀은 돈오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다. 반미래학을 주장하는 장진호 박사와 인터뷰하면서. 원시시대의 신화는 변이의 과정을 통해 미래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그만큼 불멸이라는 주제는 매혹적이니까 말이다. 그러다 죽은 아내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게 된다. 두 사건의 순서가 바뀌었나?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아니 어떻게 죽은 아내가 나한테 메일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기술이 놀랍게 발전된 사회의 스팸쯤으로 생각하려던 김홀은 아내가 죽기 전에 자신의 기억들을 메모리칩에 이식해서, 바이앤바이(by and by)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정도로는 아직 약하다고? 이제 겨우 시작이다 기대할지라.

 

상상을 초월하는 브레인 다운로드라는 신기술로 망자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 단순하게 기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육신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욘더”라는 세계가 탄생한다. 선사시대 이래 인간이 꿈꿔온 영생불멸이 상상을 무대로 한 유비쿼터스 시대에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자. 인간은 육신이라는 물적 토대 대신 불멸을 선택했는데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행복은 불안이라는 상대적 요소가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욘더에서 아내 이후와 존재를 몰랐던 자신의 아이 지효와 대면한 김홀은 감미로운 허구에 마냥 행복해한다. 하지만, 과연 행복할까? 사시사철 좋은 날씨에,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5분에서 10분 이상 기다리지 않고 끔찍한 교통 트래픽이 없는 그런 지상천국 같은 패러다이스가 왜 싫단 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김장환 작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희미한 실체를 슬쩍 드러내 보인다. 어디에서도, 심지어 천국에서도 만족할 수 없었노라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설정에 저 멀리 도피안의 세계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굿바이, 욘더>를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할까? SF 공상과학? 판타지? 아니면 치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스릴러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인간은 하이테크 시대를 살면서도 꾸준하게 로우테크 기술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나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빛을 담으려는 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한 휴대전화가 마냥 편리하기만 한 걸까? 아날로그 시대에도 휴대전화 없이도 잘만 만나고, 연애하고 소통하지 않았던가. 문명의 이기라는 편리함으로 감춰진 채, 유비쿼터스 공간에 점점 종속되어가는 현실은 굳이 외면하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에 씁쓸해졌다.

 

중반의 놀라운 동력에 비해 소설의 결말은 아쉬웠다. 그간의 내공을 미루어 보아 좀 더 화끈한 엔딩을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후속편을 예비한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까지 도달했다. 너무 영화를 자주 본 모양이다, 정신 차리자! 책의 끝자락에 생소한 여러 용어를 아주 친절하게 나열해 줬지만 정작 내가 궁금해하던 “유비쿼터스”는 빠져 있어서 실망했다. 무식한 독자는 천상 인터넷으로 유비쿼터스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했다.

 

불쑥 소설에 등장하는 욘더(yonder)는 천국(heaven)이 아니라 불안한 현대인의 정신적 피난처(haven)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번역을 해온 작가의 미래 디스토피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긴 SF 데뷔작은 세이렌의 유혹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h******1 2011.0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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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성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김장환 '굿바이 욘더 (good-bye yonder)'
"인간의 감성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김장환 '굿바이 욘더 (good-bye yonder)'" 내용보기
2010년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 굿바이, 욘더. 구효서, 김미현, 김성곤, 김탁환, 서영은, 정지아.. 이시대 최고의 작가와 평론가들이 선택한 새로운 감각!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다! 는 문구가 표지에 적혀있었지만 정작 눈에 띈건 표지의 그림이었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있는 한 여자의 모습. 헌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좀 다르
"인간의 감성은..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김장환 '굿바이 욘더 (good-bye yonder)'" 내용보기

 

2010년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 굿바이, 욘더. 구효서, 김미현, 김성곤, 김탁환, 서영은, 정지아.. 이시대 최고의 작가와 평론가들이 선택한 새로운 감각!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소설을 기다려왔다! 는 문구가 표지에 적혀있었지만 정작 눈에 띈건 표지의 그림이었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있는 한 여자의 모습. 헌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좀 다르다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사람이라기 보다는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엔피씨(Non-player character) 같은 모습.. 그리고 눈에 띈건 그 아랫부분이었다. 왼쪽의 표지와 비슷하긴 한데 그부분은 살짝 다르다. 내가 본 책은 제목 아래 하얀 선 아래가 호수인 듯 위의 그림이 비쳐 있었는데 옷 색이 달랐다. 위에는 분명 어두운 색인데 아래 비친 그녀의 옷은 하얀색이었다. 그게 왜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덕분에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지금 욘더로 간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가장 아름답게 이별하기 위해.. 라는 짤막한 문구와 함께 적혀있는 물음이 있었다. 행복과 불행, 기억과 망각, 영원과 죽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당연한 걸 뭘 물어--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 뭔가 끌렸다.

 

책의 뒷표지엔 '욘더'라는 단어의 정의가 적혀있었다. 욘더 Yonder adv. 저기, 저편의. n. 1 슬픔도 헤어짐도 잊힘도 없는 불멸 천국. 2 준비 없이 떠나 보낸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 3 영원히 함께할 수 있으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이별할 수도 있는 곳.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김장환의 장편소설 '굿바이, 욘더'는 미래라는 시공간에 신화적 플롯을 더한 하이브리드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의 서울, 유비쿼터스 월드에 사는 기자 '홀'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로부터 2년여 후, 아내의 이름을 단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한다. "여보, 나 여기 있어." 홀은 그녀가 생전에 자신의 기억을 모아 사이버 공간에 저장해두었음을 알게 되고, 마침내 아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 '욘더'로 들어가는데..

 

 

여보, 이후야! 응, 여보. 김홀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내가 거기 갈 거야. 어떻게 해서든. 당신에게 가서 내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해. 당신에게 가서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더 이상 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고, 영원히, 행복하게!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이후야 사랑해, 기다려!

 

 

이후의 아바타는 내 말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던 것을 결심하고 만 셈이었다. 내가 거기 간다. 결국 나도 그런 셈이군요. 내가 당신을 찾은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를 욘더로 보내달라고. 물론 잘 아시겠지만, 거기 가려면 일단 죽어야 하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책을 읽는 내내 푹 빠져서 읽었다는 사실을 적어둬야겠다. 미래라는 시공간에 신화적 플롯을 더한 하이브리드 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김장환의 '굿바이, 욘더'는 그렇게 생생했다. 30년 후의 서울. 이야기를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그리 멀지않은 시간의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풀어가면서 '미래'사회라는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 공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작품안의 시공간에 생생함을 부여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쌩뚱맞다는 생각으로 시작을 읽었지만 이야기의 시점과 장소는 영국의 미래학자 이언 피터슨이 한 인터뷰에서 예측한, 브레인 다운로드 기술이 선보일 시점에 맞추었다. 는 작가의 말에 담겨있는 문구를 읽을때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 기시감은 현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니까.

 

처음에 책 뒷표지에 적혀있는 '욘더(Yonder)'의 정의를 담아둔 건 혹시나 이 포스트를 읽어볼 누군가가 그것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작품 안에서 욘더는 저기, 저편의 라는 단어의 뜻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시공간으로 탄생해있었다.

뇌를 다운로드받아 사는 죽은 자들의 도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준비 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냈거나 아쉬움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모든 헤어진 사람들'의 천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주인공 '홀'에게 욘더는 아내와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더는 죽음도 슬픔도 없는 천국인 셈이다. 미래라는 또다른 현실,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가 한데 섞이고 인류와 기계가 어울려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유비쿼터스 월드에서 탄생한 천국.

 

 

하지만 '욘더'의 삶 역시 현실의 공간처럼 그늘은 존재한다. 아기는 더없이 귀엽지만 자라지 않는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북적이지만 죽음에 대한 기억만은 지워진 곳이다. 추억을 간직한 시간보다는 그저 그 순간의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삶이 삶답지 않은, 달콤한 악몽 같은 곳이다. 욘더의 발명은 인간 세상에도 일대 혼란을 야기한다. 영원한 삶과 영원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욘더를 택하면서 자살 소동이 빚어진다.

 

 

책의 뒷표지에는 심사평 전문이 담겨있다.

'만들어진 천국'의 허구성을 행복과 불행, 기억과 망각, 영원과 죽음에 대한 문명적 성찰을 통해 비판하는 수작이다. 뇌를 다운받아 사는 죽은 자들의 삶, 즉 포스트 데스post-death를 사는 포스트 휴먼post-human의 포스트 리얼리티post-reality를 문제 삼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에서 '죽음보다 더 못한 삶'으로 문명 비판의 패러다임이 옮겨졌음을 실감 나게 형상화했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의 기계적 상상력에는 습기와 온기가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심사평이나 작품 해설은 이 책의 독자인 누군가의 생각일 뿐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문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서 모든 독자들이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는 곳으로의 생각을 펼치기 위한 하나의 매개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도록 쓰여져 있었다. 어디에선지 모르지만 불멸을 갈망하는, 불멸을 그리는 특이한 요인이 우리 생명 체계안에 잠입했겠죠. 과감하게 가설을 세워보자면, 나는 그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온 것이라 하고 싶어요. 라는 문구는 친절하게도 작가가 주인공의 마음과 이야기 흐름을 독자에게 넌지시 전해주고 있는 단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환이란 사람의 작가로서의 첫발은 영원한 사랑을 위해 죽음의 터널을 지나고자 하는 한 남자를 통해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 따뜻한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미래라는 또 다른 현실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빠르게 하이테크 사회로의 걸음만을 내딛고 있는 지금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한다. 그리고 그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죽음의 터널을 지나는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행보를 통해 그 빠른 속도에 정신을 빼앗겨 쉼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죽음에 대한 인식마져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경고를 따뜻한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장소는 바로 '지금, 여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좋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담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종교는 사후의 구원을 약속하고 문명이나 기술은 문제의 해결이 다가올 앞날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장래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운다. 하지만 '욘더' 즉, 먼 미래에 가더라도 거기에는 또 다른 '욘더'가 있을지 모른다. 는 작가의 인터뷰가 마음에 와닿는다.

 

행복과 불행, 기억과 망각, 영원과 죽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라는 답이 뻔한 물음으로 나를 유혹했던 '굿바이, 욘더'. 인간의 미래는 기술의 확장이 아닌 감성의 회복에 있다는 진리, 불가능한 천국을 포기해야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심사평에 담겨있던 문구를 읽으며 포스트를 마친다.



l******i 2012.01.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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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무섭게 느껴질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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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더,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삶을 찾을 수만 있다면 두뇌만 보관하거나 시체를 냉동보관 등 다양한 방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한다. 죽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천국에서 온 편지를 기다리듯이 기다림과 홀로 남겨진 절망감 속에서 욘더란 어찌 보면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욕심이랄까  욘더, 한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그 기억이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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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더,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삶을 찾을 수만 있다면 두뇌만 보관하거나 시체를 냉동보관 등 다양한 방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한다.

죽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천국에서 온 편지를 기다리듯이 기다림과 홀로 남겨진 절망감 속에서 욘더란 어찌 보면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욕심이랄까 

욘더, 한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그 기억이 한 사람을 대신한 아바타와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또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으로 음모가 형성되는 줄거리, 어디선가 낯설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작가만의 특유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잔잔하게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죽음은 탄생의 신비함 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탄생은 축복이라고 부르면서 죽음은 비통함으로 치부한다. 물론, 죽음으로 남은 사람들의 그리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남녀가 만나 그들의 유전자와 같은 또 다른 나를 만들고 키우고 나를 남겨 놓고 떠나면 나 자신이 남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를 생각하기 보다는 죽음을 피해 가려는 행동은 어찌 보면 삶에 대한 욕심이 너무 강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본다.

종교의 시작은 지배와 권력의 종결자가 아닐까? 지배와 권력은 영원하지 않기에 영원한 존재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흐트러진 폭력을 하나로 묶어 두기 위한 인간의 수천 년간 터득한 지식의 산물일지 모른다. 마치 외계인을 만나면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 혹은 부처가 있느냐?]고 물어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 책의 결말은 프랑케슈타인의 결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죽은 자를 깨우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부작용이 있는 법 그것이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작가의 혼돈 속 SF가 아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에 잠시나마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봄 햇빛을 피부로 느끼며 휴식을 취하며 향기로운 커피 향이 없어지기 전에 모두 읽어버릴 수 있는 스마트한 SF 소설이다.

 

k*******0 2011.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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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지속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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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후의 세계는 사실 우리에게 있어 경험할 수 없는 불가능한 미지의 장소라는 점에서, 대개 종교적인 차원에서 천국이나 지옥 혹은 극락이니 저승이니 하는 그저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러한 세계가 어떤 형태의 세상일지 하는 궁금함과 지금의 현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삶의 무대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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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후의 세계는 사실 우리에게 있어 경험할 수 없는 불가능한 미지의 장소라는 점에서, 대개 종교적인 차원에서 천국이나 지옥 혹은 극락이니 저승이니 하는 그저 막연한 상상 속의 이야기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러한 세계가 어떤 형태의 세상일지 하는 궁금함과 지금의 현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삶의 무대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과학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가면서 우리가 이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생활의 편리함을 맛보고 있고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직까지 인간의 탄생과 죽음과 같은 자연의 섭리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온다. 하지만 향후 언젠가는 그러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과학적인 테두리 안에서 조금은 해결 가능한 시점이 분명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현재의 과학 속도로 보아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한 차원 높은 최첨단의 기술로 인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가상현실의 세계를 문학적인 상상력의 차원에서 독자들에게 큰 괴리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또한 우리가 흔히 느끼게 되는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애절하고도 순수한 시각에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신선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가 변하면서 요즈음 많은 독자들이 뉴웨이브의 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듯하다. 그동안 우리의 문학 작품이 어떤 일정한 틀에 묶여있었다고 보면 앞으로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창작성이 돋보이는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야 하지 않는가 싶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독자층들이 앞으로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소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30년 후, 그러니까 사이버의 스페이스가 점차 우리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우리의 전반적인 모든 것들이 그 안에 기계적인 것과 결합되어 갖추어져 있는 어느 미래의 가상 세계다.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가 암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그 인연의 끈이 허망하게 사라짐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이미 죽은 그녀의 아내로부터 의문의 메일을 한통 받게 된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맞게 된 그는 어떻게 하여 자신의 아내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다가, 아내가 죽기 전 자신을 위해 어느 추모 사이트를 통해 모종의 일을 암암리에 추진했었다는 기억을 되살려, 실체는 없지만 자신의 아내와 아바타를 통해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간접적인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만남이 현실과 너무 괴리되어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무시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것과는 다른 자신의 아내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얻기에 이른다. 그 내용에는 죽은 자의 기억을 모두 살려내어 그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삶의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 한다는 것인데, 즉 욘더라고 말해지는 그 곳에는 누구나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행복을 꿈꾸며 영원한 삶을 구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죽은 아내가 그곳에서 분명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현실에서의 삶을 버리고 자신의 아내를 찾아 새로운 모험에 나서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오늘의 현실과 가까운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세계를 교묘하게 연결시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편, 잔잔한 감동은 물론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과연 이러한 것들이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묵직한 철학적 물음까지를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행을 피하여 행복한 순간을 영원이 손에 쥐고 이를 지속 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이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추구하는 것 중 그 무엇보다 가장 원하고 소망하는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사는 동안에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불가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과학이 뒷받침되어 이러한 일이 미래의 어느 날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어떤 모습일 것이며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고 상상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독자들 스스로가 무한한 상상력을 마음껏 동원하여 함께 음미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며, 또한 사이언스 판타지를 그린 작품이 국내에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에 따라 그 내용면이나 창작성에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고 여겨져 앞으로도 이러한 가상현실의 이야기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자주 선보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p*******3 2011.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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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인간의 갈망을 넘어서 극복 영역이 되어버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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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던 그 순간이 머지 않은 미래에 온다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순간이 머지 않은 현실이 되었을 때의 그 순간, 우리가 도달하는 진정한 감정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후에 맞이할 미래는 또 어떠할 것인가. 굿바이, 욘더. 티끌 만한 확실성도 존재하지 않는 무수한 미래의 대답들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순간을 잡은 느낌이다. 그건 극히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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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던 그 순간이 머지 않은 미래에 온다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순간이 머지 않은 현실이 되었을 때의 그 순간, 우리가 도달하는 진정한 감정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후에 맞이할 미래는 또 어떠할 것인가. 굿바이, 욘더. 티끌 만한 확실성도 존재하지 않는 무수한 미래의 대답들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순간을 잡은 느낌이다. 그건 극히 적고 아득하다는 느낌보다도 그 한 올의 순간이 주는 선명함이 ‘편리함’에 지배당한 우리에게 얼마나 정신이 바짝 들 생()의 자극을 선사하는 지에 대한 놀라움, 바로 그 느낌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2040년대. 30년 후인 그 시기, 나는 예기치 않은 운명을 맞이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 2의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을 분명한 미래다. 제한적이었던 지능 기반 사회가 거의 완전히 이룩했을 즈음, 인간은 하이테크로 삶의 ‘편리함’을 넘어서서 인간이 손댈 수 없었던 생사의 영역에까지 뻗어갈 것은 시간문제다. 삶과 죽음도 어느 새 인간의 갈망을 넘어서 극복 영역이 되어버릴 미래가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김홀’과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한 아내 ‘이후’가 재회하는 불멸 천국 ‘욘더’로 그 속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로우테크와 하이테크의 경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혼란은 지금의 현실과도 고스란히 닮아있어, 이 한 권은 분명 ‘허구’이지만 전혀 과장되었다는 느낌 없이 아주 선명하고도 자세하게 세상과 인간, 그때도 여전히 풀지 못할 고민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인간의 욕망이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에 닿기 위해서는 또한 지극히 ‘인간만이 지닌 인간적인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신 번쩍 들도록 확인 사살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결핍된 인간으로 맞은 영원한 삶을 ‘행복’이라 지칭할 수 있을까?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김홀’과 ‘이후’의 마지막 대화들과 모습들, 그 선택을 떠올리고 또 떠올릴 뿐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숱한 연구들과 기술들이 향하고 바라는 결과가 가져다 줄 미래는 이보다 더한 혼란과 고민을 안겨줄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그 한 줄기의 번쩍이는 섬광, 나에게는 <굿바이, 욘더> 이 한 권이 그랬다.

k******3 2011.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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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Good-dye, Y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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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적든 많든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 대상은 엄마나 아빠가 될 수도 있고, 형제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수도 있고, 또는 이성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가 적든 많든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가족들도 친구도 멀쩡한데 고등학교 때 2년을 사귀었던 첫사랑을 헤어진 지 1년하고 반개월 후쯤 하늘나라로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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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적든 많든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 대상은 엄마나 아빠가 될 수도 있고, 형제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수도 있고, 또는 이성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가 적든 많든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일이 발생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가족들도 친구도 멀쩡한데 고등학교 때 2년을 사귀었던 첫사랑을 헤어진 지 1년하고 반개월 후쯤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18살때 한 연애가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조건에 조건을 더해 순수한 그때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귀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쨋든 나는 당장이 아니고, 올해도 아니고, 내년도 아니고, 5년 후도 아니고, 정말 늙어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도 우리는 다시 만날꺼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딱 그 느낌이였다. '우리 꼭 다시 한 번 사랑하자.' 그리고 사고가 났던 그 날에도 나는 첫사랑과 문자를 했었다. 덥다고 에어컨을 사달라며, 또는 학교 안가냐며,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같은 시덥지 않은 내용들. 그 때 첫사랑의 부존재는 나를 정말 별별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고나면 꿈일꺼야 라는 평범한 생각부터 어디선가 살고 있을꺼야,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 살아있다고 소리치진 않을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살릴까 같이 수도 없이 많은, 그것도 불가능한 생각들만을 잔뜩 했다.

이 책의 주인공 김홀은 아내 이후를 암으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2년 후, 기억을 통해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하여 욘더에서 아내를 만난다. 이렇게 굿바이 욘더는 나에게 잠시 희망을 주었다. 혹시 내가 꼬부랑 70~80대가 되어 저러한 유비쿼터스 세상이 와서 정말로 현실화 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난 꼭 첫사랑을 기억으로나마 존재하게 만들리라고! 이야기는 그렇게 남편 김홀과 욘더에 있는 아내 이후의 알콩 달콩한 로맨스로 이어질 줄로만 알았지만, 내용은 그리 간단하게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읽을때 즈음에는 죽음은 죽음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만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모른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나는 첫사랑을 만들어 낼지, 만들어 내지 않을지.

이 책을 읽고 나는 잠시간 잊고 살던 아픔과 대면하지만 그 아픔이 무뎌지는 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좋은 자세라는 것을 깨닫는다.

g******e 2011.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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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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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때로 무자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차별하죠." <P.155>   유비쿼터스 시대,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공간 '사이버네틱 스페이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 물리적인 세계로 흘러와 그 두 공간이 혼재하는 새로운 공간이 태어났다. 어디엘 가나 센서들과 렌즈들, 홀로그램과 각종 터미널, 인터페이스들이 존재하고 사람의 몸으로부터 거리의 블록,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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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때로 무자비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차별하죠." <P.155>

 

유비쿼터스 시대,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공간 '사이버네틱 스페이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 물리적인 세계로 흘러와 그 두 공간이 혼재하는 새로운 공간이 태어났다.

어디엘 가나 센서들과 렌즈들, 홀로그램과 각종 터미널, 인터페이스들이 존재하고 사람의 몸으로부터 거리의 블록, 가로등과 상가의 유리창까지 물리적인 세계와 네트워크를 소통해주는 장치들로 넘쳐나는 영화같은 현실.

이 곳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2년의 시간이 흘러 그녀의 부재에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술에서 깨어 불현듯 일을 다시 시작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된 그는 기획취재, 연재물, 인터뷰 기사등으로 이루어진 남성잡지 <Live in it!>의 인터뷰어로 일하게 되고, 첫번째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끝낸 그는 소위 사이버 구루라고 네트에서 가르침을 전파하는, 하층 네트워크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 '부흥사 K'의 인터뷰 하게 된다. 인터뷰를 베일에 싸인 그에 대해 알아볼 양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아내의 이름으로 보내진 메시지를 읽게 된다. "여보, 나야."

그제서야 불현듯 아내가 떠나기 며칠전 낯선 여자와 이야길 나눴던 걸 기억해낸다. 그녀의 손에 든 아내 '이후'의 메모리 팩. 바이앤바이닷컴에서 나왔다 말하는 그녀는 아내의 자료를 영구히 남을 기억으로 만들어 언제든지 아내와의 소중했던 시간을 회고할 수 있게 하겠다 말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왜 하필 이런 방식으로 연락을 취해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끌리듯 메일에 첨부된 접속 방법에 따라 복잡한 경로를 거쳐 그곳을 방문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아내의 아바타를 만나게 되는데 . . .

 

1억원 고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굿바이, 욘더>

(참고로 1회 수상작은 유광수의 진시황 프로젝트, 2회 수상작 없음, 3회 이선영의 천년의 침묵, 4회 수상작이 김장환의 굿바이, 욘더)

 

이 책에는 우리가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될만한 많은 일들이 현실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그런 삶. 우리의 미래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호기심이 일어 유심히 읽게 되더라.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테크놀로지의 사회가 신물이 나고 혐오스럽다말하며 네트워크의 혜택을 거부하고 예전에 생산된 제품과 문화를 선호하는 사람들 '로우테크 히피'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런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조금 더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바이앤바이'를 찾는다. 아내이자 친구이며 딸이기도 한 실감나는 아바타들. 프로그램일 뿐이다 생각하려하지만 쉽지 만은 않는 상황이 우습기도하지만 진짜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듯 싶어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애가 타더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기 힘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영화 '인셉션'과 비슷한 면이 많구나 싶은!!

이런저런 상황이나 설명들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그 안에 든 진짜 보물은 단 한가지, '사랑'이다. 그 한가지를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 모험가가 주인공 '김 홀'.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지만 그 곳에서 진짜 그녀가 원했던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이후는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기억의 감옥'속에 들어앉아있겠지. 나의 천국의 다른 사람에게도 천국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네 삶과 닮은 것 같아 참 씁쓸하구나.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이 만들어낸 걸작. 이 책을 읽기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없다. <상상력> 이거 하나면 된다는 !!!

 

"그래요. 그리고 솔직히 난 여길 천국이라 여기지도 않아요. 여기엔 그런 특별함이 없어요.

당신도 머지않아 여기가 그런 곳이라고 의식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아마 그래야만 여기가 당신에게도 천국이 될 테니까"

 

그녀가 묘한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문득 그 말이 옳다고 느꼈다. 천국이라면 모든 것이 진실로 평범해야 한다고.

진정한 안락함과 평안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가 특별하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것을 의미하니까. <p.254>

 

h****0 2011.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