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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들어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군주는 정조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한 역사서와 사극 속에서 정조가 개혁군주로 조명됐고, 보위에 오르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겨야 했던 세손시절과 재위시절에 겪어야 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 또한 대중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덕일 것이다. 또한 그의 사후에 다시 보수적으로 회귀한 조선 정국을 지켜보면서, 정조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 역시나 정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조에 대한 이런 통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책이 바로‘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다. 1797년 11월로 선비 강이천이 허랑한 소문으로 혹세무민한 죄로 유배를 가게 되고, 김건순도 이 사건에 연루됐지만 그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쟁쟁한 명문가의 일원이라는 점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강이천은 소북을 대표하는 집안의 자손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화가로도 유명한 표암 강세황이고 김건순은 조선 명문 중의 명문 안동김씨의 장손으로, 김상헌의 후손이었으니.. 정조는 노론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타협책으로 강이천 사건을 사기사건으로 축소시키고, 그를 유배 보내는 선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지만, 실상 강이천은 천주교 공동체를 이용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인물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에서 사회의 내부를 돌아보지 않고 훨씬 거시적인 안목으로 대처했다. 양반 가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불온한 사상을 지닌 인물이 나온 사실에 주목했고, 이 불온한 사상을 아예 싹에서부터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른바 문체반정. 패관, 소품을 금지하고, 문장과 글씨체까지 통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거에서 낙방시켰다. 소품과 패관을 좋아하면 성리학적 가치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패관의 가벼움과 소품의 주관성은 정해진 격식을 떠나 글쓴이의 눈으로 사물을 직접 바라보게 되고, 그에 따라 가치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정조와 강이천이 문화투쟁을 벌였다는 관점으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문화투쟁이란 문화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모든 투쟁, 특히 국가의 가치와 정체성의 규정을 둘러싼 다양한 싸움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개념을 의미한다. 이 문체반정은 일종의 세뇌작업이고, 사상검열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장치는 과거였다. 이 조치는 후 조선이 자주적인 개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요인이 될 정도로 큰 파급력을 보였다. 문화 투쟁의 결과 조선의 지배층에서는 이단을 꿈꾸는 인물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더 이상 조선 지배층이 스스로 내부의 개혁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사상이나 문명을 받아들일 의지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조선 지배층은 사회와 세계의 변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화, 경직화 됐다는 것이다. 성리학의 기준으로는 불량스럽고, 이단에 가까웠던 강이천의 상상력,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꿈은 그렇게 꺾였고,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불편한 신체 조건과 비교적 자유로웠던 가풍은 누구보다 시대에 대해 고뇌하는 인물로 성장하게 했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그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조선이 멸망한 이후 사회를 꿈꿨지만 강이천의 상상력은 상상으로만 끝이 났다. 정감록의 해상진인과 천주교를 연결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그는 실천가가 아니라, 공상가에 가까웠던 것이다. 정조의 국상이 끝나자마자 조정은 강이천 사건을 재조사하게 되고, 결국 그는 고문 끝에 죽었다. 김건순은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자의 길을 택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정조로 대변되는 체제 수호자와 강이천으로 대변되는 체제 전복을 꿈군 자의 시대 인식을 짚어가고 있다. 변화와 보수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조는 체제를 택했고, 불량선비 강이천은 변화를 상상하다 죽어갔다. 정조는 문체반정을 통해 아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마저 원천봉쇄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된 사회, 이단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사회, 그렇게 조선은 급속도로 주류 가치에 복종하고 불온함이 없는 경직된 사회로 굳어갔다. 그뒤 조선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변화의 물결에 좌초하고, 난파하게 된 것은 예견된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정조의 개혁군주 이미지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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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의 조건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제때' 도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놀랍도록 '제때' 귀환하는 묵은 책들에 대해서도 항상 눈 밝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건 좋은 독자의 자격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불과 몇 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안락사시킬 약물도 모자라 산채로 땅에 묻었다. 지하수에는 억울하게 죽은 짐승들의 피가 스며들고 있다.
외계인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한다는 얘기쯤은 이제 다들 덤덤할 지경이다. 곧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소문에도 다들 지쳤다. 대통령과 권력자들의 추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다들 이런 얘기마저 듣기 지겨워진 건 아닌가 싶다. 그 모든 '말'들이 시간을 두고 사유 되기 보다, 그저 소비되고만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문제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아니겠느냐고.
조선의 해안에는 UFO처럼 서양 배가 출몰하고 있었다. 오늘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의 글쓰기가 화제이듯 당시 지식층에선 '패관소품'이라는 새로운 문체가 유행했다. 또한 민간에선 각종 예언과 천주교가 인기였다. 이 또한 오늘날과 비교하면 각종 음모론의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좀 더 합리적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려는 인문학 열풍과 닮은꼴이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그때(1790년대)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강이천 사건은 '지금, 여기'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로선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내 세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강이천은 고작 33살에 죽었다. 그는 이를테면 오타쿠처럼 천주교와 "큰 배"와 "세계지도"와 "기하학"에 열광했던 발랄한 젊은이였다. 혁명적인 사상가라기엔 공상적이었고,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강이천이라는 사람의 미덕은 어찌 보면 소박하기 짝이 없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도고 고립된 약자를 향한 연민과 동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장애우였다. "육체적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했던 탓에 그의 상상력과 지적 감수성은 무제한으로 확장된 것 같다."(245p) 줄 쳐 읽고, 또 연거푸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는 구절이다.
"강이천을 문제적 인간으로 만든 것은 그의 상상력이지, 현실적 조직능력이나 구체적인 혁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었다."(242p)고 평가한다. 정조도 강이천과 김건순의 조직이라는 게 실상 별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가 견딜 수 없이 두려워한 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상상력'이었다. 상상력은 왕의 힘으로도 방역할 수 없는 전염병이었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머리와 마음은 기성의 문명을 갑갑해하기 시작하고 권력 앞에 놀랍도록 용기있게 '개기게' 된다.
아마 국왕 정조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강이천의 제어되지 않은 상상력이 현실과 단단히 결합될 경우 그것은 국가를 전복시키고 성리학 중심의 조선 문화를 여지없이 파괴시켜버릴 수 있다는 걱정, 왕은 바로 그런 염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246p)
68혁명 당시의 프랑스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구호를 떠올렸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Pouvoir a l’Imagination!" 그렇다. 2010년대의 출발점에서 나도 강이천처럼, 68혁명의 젊은이들처럼 외치고 싶다. 다시, 상상력에게 권력을!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의 태동을 꺾으려 했다. 명박이는 젊은이들을 취업 생각밖에 못 하는 좀비로 만들기 위해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붙였다. 정조도 유생을 상대로 치르는 승보시에서 문체 점검을 엄격하게 하고, 심지어 글씨체까지도 통제하는 강공을 펼쳤다. 쟈스민 혁명 당시 튀니지가 트위터와 소셜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했던 것처럼 그리고 명박이의 개들이 미네르바를 구속했던 것처럼 정조도 당시 유행하던 '소품'을 문제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흔히 정조를 조선의 개혁군주라 칭송하지만 그는 1984 이전의 빅브라더였다. 빅브라더 정조의 재발견도 이 책의 백미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 우리를 향한 뜨거운 응원의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강이천처럼 "문화투쟁"을 벌이고 있다. 블로그에 정권의 부당함을 비판할 때 우리는 강이천이다. 댓글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아고라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의 인문학 세미나들에서, 뜨겁고 아름다운 토론의 여기저기에서 우리들은 강이천이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바로 그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치는 책이다. 권력을 상대하는 네티즌들의 싸움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혹평한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짱돌 하나 날리지 않는 댓글질이나 포스팅질 쯤은 아무 소용없다고. 제발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짓 좀 하라고! 나는 그 말도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상상력의 보균자들이다.
결국 이기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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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리뷰를 몇 개 읽어봤다. 별로 하지않는 행동이었다. 내가 읽을 책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면 책읽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고 내가 판단하여 계속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이 책은 어쩌다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하고 내 생각하고는 다른 면이 많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경험도 참 드문데, 하여간 모처럼 아주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
| 흠 잡을 데가 없다. 표지도 고급하고, 본문 종이 질도 좋다. 주제 역시 참신하다. 다들 정조를 미화하는데 열을 올리지만 이 책은 일종의 균형잡기를 한다. 생각해 보라. 정조 때가 일반이 믿는 것처럼 그렇게 좋기만 했다면 19세기 조선의 난맥상은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이 책의 저자 백승종은 18세기에 우리 역사에 중요한 하나의 문화투쟁이 전개되었음을 파헤친다. 그리고, 그 투쟁의 결과는 보수파들의 승리! 보수파의 중심에 다름 아닌 정조가 있었다는 이야기! 놀랍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구성이다. 가설에서 시작해 의문의 제기, 피상적이고 거시적인 서술에서부터 점점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느낌... 피부 속까지 뚫고 들어가는 진득함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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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성격은 묘하다. 마치 소설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저자는 자신의 연구과정을 해설한다. 저자는 자신이 왜 강이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며, 강이천과 정조가 문화투쟁을 벌였다고 가설을 세우게 된 계기, 그 가설을 어떻게 검증해 나갔는가, 그리고 그 결과를 추리소설처럼, 스포츠 해설처럼 보여준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하다. 정조대 꽤 똑똑했던 하급관리 강이천은 정감록과 천주교에 빠졌으며 정조는 이를 조선왕조의 위기로 인식하고 문화투쟁으로 극복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투쟁이라는 개념하에 저자는 강이천의 이력을 조사해 그의 사상을 파악한다. 이 과정을 이렇게 해설 중계해준다.
저자가 강이천사건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바는 따로 있다. 정조에 대한 재평가다.
국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정조는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문체반정을 이용해 조선후기 사상을 통제했으며 이는 조선말기 개혁을 어렵게한 족쇄였다. 르네상스정조라는 평가는 이래 저래 모순된다. 정치와 경제가 좋은 시절일때 성리학은 의미가 있지만 중국 강남농법에 기댄 성리학은 위기에 약했다. 결국 이 성리학의 압박이 조선말기를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정조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정조의 정치는 올바른 것이었다. 반면에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를 정체시킨 왕이었다. 평가가 쉽지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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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남다른 지성을 소유한 인물들이라면 당연히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성 사회의 모순과 악덕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고 믿는 것이 우리 시대의 잘못된 상식이다. 역사상의 위인들은 언제나 시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이념과 제도를 제시했을 거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조처럼 개인적으로 특출한 능력을 가진 왕이라면 응당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 성향을 띠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가 이래서였을까? 나도 그랬다. 그리고 소설, 드라마, 역사학자들 모두가 정조를 진보적 인사로 보았다. 심지어 국정 교과서에도 이런 식의 해설을 곁들였다. 영.정조 때가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로 물적 문화적으로 풍부한 시대였다고 이 공은 영.정조가 지배권력층보다 백성을 우위에 둔 정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잘못된 상식이나 선입견을 타파하는 데엔 저항이 느껴진다. 늘 정조를 흠모해 왔던 터라 더하다. 아버지 죽음을 목격한 가엾은 아이, 늘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독서의 힘으로 내면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백성들 편에 선 지도자. 이게 내가 역사책을 읽으면서 사랑해 왔던 정조다. 이런 정조를 새로운 것에 대해 적대적인, 성리학과 고문을 추종하고 새로운 사조를 탄압한 왕으로 보는 것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다. 정조는 기존 지배세력이 바뀌는 걸 원하지 않았다. 위인은 진보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신국이 강이천을 우의정 이병모에게 고발한다. 강이천이 정감록을 앞세워 말세를 이야기하며 돈을 갈취하고 해도진인설을 퍼뜨린다는 것이다.사건을 살펴보니 노론 김상헌의 봉손자인 김건순이 포함된다. 정조는 이 사건을 말세론을 들먹여 돈을 갈취하는 단순 사기극으로 취급했다.노론 김상헌의 봉손자 김건순이 포함된데다 천주교까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사건은 그렇게 무마된 듯 보였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사건에서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기록이 사실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라는 걸. 역사가는 기록을 중시하면서도 기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수라는 사실을.
여기서 이 책은 시작된다. 강이천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 그가 화가 강세황의 손자라는 사실. 재기발랄했지만 애꾸인 강이천. 강이천과 정조의 관계를 통해 문체반정까지 다가간다. 소품류가 유행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소품이다. 고문을 연구하는게 아니라 개인의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는 짧은 문장이 유행하고 글씨체까지 가볍고 날렵해 졌다. 영특한 정조는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눈치챈다. 기존 지배질서에 대한 반격으로 판단한 거다. 국가고시인 과거제를 통해 문체와 문장에서 옛 것과 다른 것들은 무조건 떨어진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교육은 철저히 진행된다.
이 시기 젊은 유생들은 새로운 문물에 빠져 들었다. 실학이 유용하고 서양기술에 눈뜨기 시작했다. 철학도 서학이 들어왔다. 바로 천주교다. 그들은 종교가 아니라 학문으로 천주교를 대했을 것이다. 말세론과 지옥천당론은 정감록의 예언과 비슷했다. 성경은 일종의 예언서이기도 하지 않은가. 똑똑하고 젊은 인재들이 천주교에 급격히 빠져든 것이다.
역사가는 강이천 사건의 내용과 조사과정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인간이 계급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과 취미와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강이천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박지원, 정약용, 김홍도, 정조 등 우리가 위인이라 말하는 이들에 대해 적어도 내 생각은 그들이 진보적이었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박지원도 소품을 즐겨 썼으나 말년에 벼슬길에 오른 뒤론 급격히 지배질서에 순응하였으며, 정약용도 벼슬을 위해 천주교를 거침없이 버렸으며,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의 인물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인 것은 관급화가라는 걸 보여준다고 말한다. 정조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의 확실한 수호자였다. 귀기울일만한 의견이라는 생각이다.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겠구나 이런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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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문화투쟁의 시기였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살필 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을 골라 밑줄을 긋거나 오랫동안 눈길을 주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때론 아주 심각한 오류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 할 때 자신이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분명하게 나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무엇을 보고자 함인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사이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도가 높여지면서 자연스럽게 조선 왕들에 대한 평가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정조 왕에 대한 관심 정도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며 대표적으로 관심 받는 왕 중에 한명이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는데 한 몫 한 것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도 있겠지만 ‘조선 왕을 말하다’의 저자 이덕일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일은 기록문헌에 묻혀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대중들에게 주목받았다. 이덕일의 정조에 대한 평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조 왕의 죽음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혁군주’로 칭하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정조 왕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책을 만난다. 백승종의 저작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정조 왕과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기에 접근하는 시각이 다르지만 이덕일의 정조 왕에 대한 평가와는 분명한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렇듯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이 책은 저자 백승종이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두 인물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18세기 조선을 이끌었던 왕 ‘정조’와 그의 정치적 흐름에 반대한 인물로 옥사한 ‘강이천’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18세기 영정조의 조선시대 후기는 정치, 철학, 학문, 종교 등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새로운 사조와 조선 내부의 오래된 갈등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어나는 시기였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일환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예언서 ‘정감록’과 ‘천주교’의 급속도로 확산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18세기 조선 후기의 영, 정조 시대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인 문예부흥기 ‘르네상스’로 파악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하고 있다. 정조 왕이 진정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는가에 대해 말하며 어떤 학자보다 뛰어난 성리학적 가치관과 정치적 식견을 가진 군주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정조 왕의 정치적 방향은 성리학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그 기본 사회의 틀을 유지하는 방향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증거로 ‘문체반정’을 든다. 성리학적 기풍과 그에 호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켜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패관소품’을 척결하는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 기존 체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의 한 가운데 있었던 인물 중 ‘강이천’姜彛天(1768~1801)이라는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 강이천은 강세황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문학적 소질을 인정받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정조 왕과도 여러 차례 대면했던 기대가 촉망되는 선비였다. 이 강이천이 연루된 역모사건이 일어나 유배에 이어 결국 옥사하게 되었다. 이 강이천이 연루된 역모사건과 신유박해로 대표되는 천주교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진 정조 왕과 강이천을 비교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다. 저자는 정조 왕이 강이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문화투쟁’으로 규정지으며 분석한다. 기존체제를 유지 강화하려는 정조 왕 측과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강이천을 비롯한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문화투쟁’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강이천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주목받지 못한 강이천이라는 인물과 정조 왕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18세기 조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다. 바로 한 시대를 놓고 정조와 강이천이 시대를 다르게 인식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결과를 도출하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의문점과 관심사를 밝혀 가는데 각종 기록물에 대한 검토를 세심하게 하고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저자의 그런 관심이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오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을 보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지는 점에서 중심은 바로 그 ‘무엇’에 있다. 한 인물, 한 시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만난다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그것도 충분한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제기하는 이 새로운 시각은 역사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훌륭한 안내자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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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을 '문화투쟁'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조명한 책. '문화투쟁'이란 과연 무엇인가?
독일 역사에는 "문화투쟁Kulturkampf"이라는 말이 있다. 거칠게 말하면 "문화를 둘러싼 싸움"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교회의 영향으로부터 문화를 해방시키는 투쟁"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1871년부터 1880년까지 독일 프로이센의 철혈수상 비스카르크가 교황 비오 9세의 지배 아래 있던 독일의 가톨릭교회, 특히 그 대변자 격이던 가톨릭 정당 "중앙당Zentrumspartei"을 상대로 벌인 투쟁이었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가톨릭교회가 일부 지방에서 국가 대신 교육기관을 장악한 것에 반대하여 반反가톨릭 정책을 폈다. 가톨릭교회는 그에 맞서 격렬히 투쟁했고, 결과적으로 가톨릭 반대 법안은 대부분 폐기되었다. 하지만 문화투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일의 교육기관은 교회의 통제를 벗어나 국가에 종속되었다. 교회에 대한 국가의 승리였다. "문화투쟁"이라는 개념은 역사상 다른 사례에도 적용되었다. 현재는 더욱 확장되어 어떤 사회에서든 "문화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모든 투쟁, 특히 국가의 가치와 정체성의 규정을 둘러싼 다양한 싸움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개념이 되었다. 문화투쟁은 시공간을 초월해 사용될 수 있는 일반 개념인 것이다. 가령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1966년부터 1976까지 10년 동안 벌인 이른바 "문화대혁명"도 일종의 문화투쟁이었다. 당시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가치관의 실현을 목적으로 대중운동을 일으켜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숙청했다.
그렇다면 18세기 조선에 어떤 문화투쟁이 있었다는 말인가? 저자는 우리가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라고 칭송하는 정조가 그 문화투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물론 그 문화투쟁의 방향은 '문체반정'과 같은 것들이 말해주듯이, 결코 '진보적 개혁'이 아니었다.
정조가 문체의 자유까지 억누를 정도였다면, 그가 과연 "문예부흥"을 일으킬 수는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정조 대에 부흥된 문예가 과연 무엇인지 그 성격도 불분명하다.
정조는 글의 내용이나 형식 뿐만아니라 글씨체까지 트집을 잡아가며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려 했다. 이것을 두고 여전히 '문예부흥'이라 칭한다면, 국내 영화 제작 편수가 최고조에 달했던 전두환 정권 때도 문예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정조가 이렇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조선사회 전반에 감돌던 이상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이상기운을 대표하는 것으로 천주교와 '정감록'과 같은 종말론을 앞세운 예언설을 꼽고 있다. 그리고 그 불온한 상상력을 가진 보잘 것 없는 선비 강이천을 무대의 중심으로 불러낸다. 여기서 이 책의 탁월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렇다고 강이천을 '혁명가'로 목마를 태워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점이 역사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강이천을 혁명적 사상가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강이천은 다분히 공상적이었고,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강이천이 '육임'과 '둔갑'을 통해 시운을 점치려 했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강이천을 문제적 인간으로 만든 것은 그의 상상력이지, 현실적 조직능력이나 구체적인 혁명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부분이야말로 정조의 보수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며, 또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실질적' 위험이 아님에도, 어떤 보잘 것 없는 개인이 가진 망상조차 통제와 제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 물론 저자의 지적대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도 명민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진보적 개혁'이나 '문예부흥'과 같은 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조는 오히려 상고주의적 원칙의 길을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므로 그가 조선의 '왕다운 왕'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오늘의 관점을 투영한 '개혁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읽어나가면서 생기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기는 했다. 우선 강이천 사건에서 주요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주문모 신부가 왜 자수를 했을까 하는 것. 이 점은 저자도 과제로 남겨둔다고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둘째, 강이천이 그렇게 '샛길'로 빠지게 된 동기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그가 애꾸에 절름발이인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고, 소북이라는 상대적 소수파이기는 하지만,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는 또 다른 처지에 있는 자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허를 찌르는 점이 있으나, 여전히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근대교육의 수혜자이자 동시에 희생자이기도 한 나 같은 사람은 강이천이나 김건순과 같은 인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익숙하다. 예컨대 신라 때는 골품제의 폐해가 컸으니까, 그로부터 제일 피해를 많이 받은 6두품이 반신라적 경향을 띠게 되어, 결국 6두품이 고려 창업의 기수가 된다는 식의 해석에 젖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는 강이천 등의 역사적 선택은 그런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은 계급투쟁의 전사가 아니었다. 때로 인간은 계급이 아니라 개인적 성향과 취미와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내가 이 연구를 통해 이처럼 평범한 진리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또 '문화투쟁'이 주는 어감과는 달리 그 투쟁의 장에서 정조의 상대, 강이천이 너무나 약해보인다는 점이 약간 걸린다. 왕인 정조가 절대적 강자인 거야 당연하지만, 강이천의 투쟁'의지'를 문헌에서 읽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심문과정에서 보여준(실은 저자가 읽어낸) 강이천의 전략은 그만의 재량권을 보여주지만, 정조와 강이천(혹은 그가 영향을 받은 문화들)의 '투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탄압'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건 저자의 지적대로 강이천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잘한 부분으로는 '邪學'에 대한 해석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사학이 분명 천주교를 칭하는 것이 맞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이 그렇게 해석되어야할 이유에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지만,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보다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문학적 표현 방식이나 구어체의 활용 등이란 점에서 "역모사건"이 더 신선하다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나도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이 책의 구성은 내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학자들, 특히 역사학자들은 보통 '가설'을 세웠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든다. '감춘다'라는 말이 좀 심하다면,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라고 해야할까. 가설 같은 것 보다는 "사료를 읽다보니 이러이러한 흐름이 보이더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 어떤 학자가 일말의 가설 하나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겠는가? 가설이나 가정 없이 어떻게 역사가가 사료에 접근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과감하게 가설을 정하고 사료에 접근한다. 사료를 통해 가설을 정비하고 마지막으로 기존 연구를 체크한다.
개인적으로는 스즈키와 같이 꼼꼼하고 투명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독일의 역사학자들을 부러워할 때가 더욱 많다. 그들은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되 꼭 필요한 문제만 따진다. 그들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무엇이든 피하지 말고 날카롭게, 논리적으로 파고들라며 채찍질한다. 10년 넘게 나는 그런 독일식 연구 풍토에 젖어 살았다. 그것도 한창 젊었을 적에 그런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를 다루든지 미리 가설을 만들어 놓고 접근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문제를 다루더라도 나름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중략) 연구자는 어느 선에선가 읽기를 중단해야 한다. 그 결정은 타당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연구방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방식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기존 연구를 검토하여 연구사 정리를 다 해놓고, 사료를 본 후에,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을 하니까. 물론, 저자의 방식대로 모든 연구가 진행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나같은 풋내기가 시작할 수 없는 '내공'이 필요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저런 연구 스타일이 내게 던저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이 책이 더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그 부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연구노트를 바탕으로 역사가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독히도 꼼꼼하고 성실한 연구노트가 있기에 가능한 일. 이로 인해 독자는 저자와 함께 추리해나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저자가 그동안 시도해왔던 서술의 실험보다도 이 책의 구성이 더 실험적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말대로 변명은 필요 없다. 역시나 문제는 역사가가 어떠하냐는 것이다.
근대적 역사가들은 "자료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역사적 탐구를 포기할 때가 많다. 물론 자료는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자료의 부족함을 내세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역사가는 자료에 종속된 존재, 과거의 하수인이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역사 쓰기는 되도록 자료 타령을 적게 하는 것이다. 기록이 남아 있는지의 여부보다 역사가의 문제의식이 연구의 진행에 결정적이라는 입장을 나는 견지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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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많은 인물에 대해 듣고 배웠지만 강이천 이란 인물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전해 들었다. 과연 강이천 이란 인물이 개혁군주라 불리는 정조와 문화투쟁을 벌인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성리학 이란 학문에 실증을 느낀 선비가 타 지식에 목마른 나머지 천주교라는 종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공부를 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가 개혁군주였는지 아니면 보수군주였는지 정확하게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가름은 해 볼 수가 있다. 저자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기득권 세력인 명문가의 자제들이 왜 군주가 그토록 싫어하는 천주교에 몰입 하였을까? 내 추측에 의하면 그 들이 다른 세상을 만들거나 개혁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확실한 증거는 아니지만 두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다. 그 들이 천주교에 빠져든 것이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탐구 하고자 했음이 나의 첫 번째 가설이다. 여러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 천주교가 들어 오면서 서양문물들이 같이 들어 왔다.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서양 문물들이 지식에 목 말아 있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단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 욕구발전 5단계를 살펴보면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구성이 된다. 명문가의 자제들이기에 하위 4단계 욕구는 이미 충족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5단계 욕구인 자아실현에 목말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천주교라는 학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자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서 정조가 문체반정과 소품체 금지를 통하여 지식인들의 군기잡기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글과 글씨체에 관심을 가졌고 천주교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요즘 사회 지도층 인사 내지는 자제들이 마약이나 위험한 유희에도 빠지는 것이 언론에 보도 되듯이 어쩌면 그들도 그 당시의 문화의 한 트렌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그 는(강이천) 정감록을 들먹이며 김건순등을 포섭하려 하였을까? 아마도 자신의 지식이나 세를 타인에게 과세 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정통적인 선비 보다는 학문을 즐기고 타인과 지식을 나누는데 목적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진정한 지식인 이었다면 자신이 가지 학문으로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 했었어야 할 것이다. 그를 폄하하는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지식을 자랑 삼아 한 얘기가 돌고 돌아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통치자가 역적으로 판단해도 무방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를 살려 두었을리 만무하다. 모두에 언급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가 르네상스 군주였는가? 여러 문헌 자료들을 모아본 결과 그는 지독하리만큼 보수주의자였고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주의자에 가까웠다. 어쩌면 보수보다는 수구에 더 가까웠다. 조선 통치 이념인 성리학을 떠나서 생각해 본적도 없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왜 르네상스 군주라 하였을까? 아마도 소론, 노론, 남인, 북인 등의 당파의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의 화합과 당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견제의 목적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마도 틀림없는 사실을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정 저자의 주장처럼 강이천이 정조와 문화투쟁을 벌이는 했던 것인가? 내가 볼 땐 투쟁도 아니었고 역모도 아니었다. 단지 금지한 학문(천주교)를 공부하고 그 것을 과하게 상대방에게 자랑한 것이 화가 되었던 것뿐이다. 조선 말기에도 그랬지만 유신 때도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 났었다. 군사도 없었고 조직도 없었던 강이천이 역모를 꿰 했던 건 절대 아니고 자기가 알고 있는 정감록과 성경의 비슷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듯 말했던 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역모를 위해 조직된 조직이었다면 동지였던 김건순과 제자였던 김이백이 서로 잘못을 강이천에게 떠 넘겼을리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강이천이 김건순을 물고 넘어진 것은 안동김씨를 업고 있는 김건순의 배경이 면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조선후기 아웃사이더 선비의 사기사건으로 묻힐법한 얘기를 정조와 대립한 불량선비로 강이천을 올려놓은 저자의 노력이 가상하다.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사건을 재 해석 하느냐에 따라 투쟁가의 문화 투쟁으로 볼 수 도 있고 혹세무민의 사기꾼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조선후기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확인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목숨 앞에선 친구도, 제자도, 동지도, 사상도 무의미해지는 것을 보고 인간이란 존재는 한 없이 나약한 존재이며 이성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