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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은 것은 두번째다. 처음 읽은 것은 아마 1996년도 수상집 이었던 것 같다. 윤대녕 작가의 [천지간]이 대상수상작이었는데, 내가 당시 그 책을 어떻게 하여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단편소설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직도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이고 보면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해에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중 주목 받는 작품을 선정한다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새삼스레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아마 대상작 수상자인 공지영작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등단한 이후로, 그의 작품을 쭉 읽었던 나는 어느 순간 그녀가 사라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지났을까, 신간으로 나온 [도가니]를 읽으면서 그녀가 건재함을 느꼈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그녀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우연히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그녀의 글쓰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조정래선생의 [치열한 글감옥]이란 단어였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 이 책을 선뜻 선택했지 싶다.
책에는 대상수상작인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와 우수상 수상작 7편, 그리고 대상 수상작가의 자선대표작 [진지한 남자]등 총 9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나 자신이 최근의 국내작가들에 대하여 문외한이다 보니, 아는 사람은 공지영작가 한 사람뿐이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 글목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글이 모퉁이를 도는 길목이라고 표현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이쪽과 저쪽의 경계는 어떻게 될까?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겸 화자로 등장하여, 끝없는 상념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H가, 사실은 북한에 납치되어 24년간을 그곳에서 살다가 돌아온 일본인이란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겪었던 폭력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폭력과,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이 당한 폭력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려는 폭력에서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온 삶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고통을 견뎌야 했듯이, 글목 이쪽과 저쪽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통들을 드러냄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 같다. H를 인터뷰 하기 위해 일본에 가기 전날밤, 하룻밤에 일어나는 그녀의 상념에서 인간인 우리가 상처를 보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공지영 작가의 자선작 [진지한 남자]는 어떻게 보면, 오늘날 우리주위에서 벌어지는 뒷담화의 폐해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선택한 대표작이라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비록 화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문단에 대입해도,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사 모든 일에 대입해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의 선입감 때문일까? 작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카더라] 하는 한마디 말에 무너져 내릴수 밖에 없었음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그래서 화가는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모전이 열리는 사실을 우리는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
우수작 7편중 정지아의 [목욕 가는 날], 그리고 김경옥의 [빅 브라더]가 나에게도 상념을 안겨준다. [목욕 가는 날]에서는 언제나 마음뿐인 주인공이, 나를 보는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말하는 것이 사실은 반대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빅 브라더]에서는 비교되면서 성장하는 형제를 통하여, 비교를 당하는 입장에선 주인공이나, 비교대상이 되는 그의 형이나, 모두 아픈 성장기를 보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 아픔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함을 느낀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왔는지 이 또한 막막하게 한다. 상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공지영 작가를 핑계로 선택한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나의 호불호를 떠나, 나에게 준 상념을 떠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볼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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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 표지가 아닌데 거지 같은 네이버 책 서비스에 데이터가 안 떠서 그냥 아무 표지나 넣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표지는 29회지만 제가 지금 리뷰하려는 책은 35회 입니다. 말씀드렸듯이 2011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8편의 단편이 실렸고요, 대상 수상자인 공지영 선생의 작품이 하나 더 실려서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입니다. 이상 문학상은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은 아니고요, 기성 작가들이 각 출판사의 문학 계간지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선정해서 수상한다고 책 말미에 쓰여있더만요. 문학의 중심이 장편에서 중단편으로 이행하는 추세를 감안해서 중단편만 선정한다는, 뭔가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는 신묘한 시각을 지닌 분들이 운영위원회에 계신가 본데, 어쨌거나 뭐가 됐든 -우물안의 개구리든, 삿갓 쓰고 아직도 왕이 세종 대왕인줄 알고 사는 냥반들끼리 모여 뽑은 작품집이든 간에- 무려 35년간 유지되어왔다는 점에서만은 그 공이 인정되는 바입니다. 보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구린 느낌이긴 하지만 그건 관점의 차이일 뿐, 전통은 중요한 거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반드시 필요하다면, 언젠가 변화는 일어나게 되어있으니까요. 자, 이 작품집은 제가 이제껏 해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리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근간 단편집은 귀찮아서 각개 전투 안했는데, 이 책은 작가가 모두 다르므로 그렇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서는 수록 순으로 하겠습니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 공지영 ★★★★
이분 참 묘하십니다. 저는 공지영 선생의 장편을 겨우 두 편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뭔가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거나 그 두 편을 읽고 느낀 점은 굳이 더 읽을 유혹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뭐랄까, 특색있는 문장도 아니고 이야기를 감칠 맛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장점이, 적어도 제겐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냥 평범했달까? 봉순이 언니는 그 언니 이름 참 봉순이스럽다가 느낀 점의 다였고, 도가니는, 도가니는 작품보다는 주제에 좀 더 힘을 실어 평가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필력과는 크게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공지영 선생의 단편은 처음 읽는 것인데요, 어느 정도 저의 편견을 깨주시는데요? 문장이 좋았습니다. 아름답다거나 수려한 쪽으로가 아니라 감성적인 표현이 좋았습니다. 정말 돋보이는 멋진 표현의 문장도 요소요소에 있었고 말이죠. 그래서 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산만했고요, 제가 사소설적인 내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별 다섯을 줄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 님들은 이 작품을 대상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저도 크게 그럴 수준이 되지 않는 작품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원숙미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공지영 선생의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남자, 공지영 ★★★★
대상 수상자에 한해서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이라 생각하는 작품을 한 편 더 실어주나 봅니다. 그래서 실린 작품이고요, 이 작품을 읽으면 더 헷갈립니다. 이 작품은 말이죠, 공지영 선생의 작품 같지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본 두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을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른 문체입니다. 어느 쪽이냐면, 천명관의 <고래>, 혹은 성석제 선생의 타입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라도 읽어보신 분은 감이 잡히시겠지만 그래요, 무성 영화의 변사가 이야기하듯 미친듯이 이야기가 흘러가고 익살스러우며 풍자적입니다. 여류 작가의 느낌도 전혀 없고요. 마치 일필휘지의 달필가가 한 획에 써내려간 글처럼 매끄럽긴 한데요, 주야장천 기복없이 설명적인 이야기가 흘러가는 바람에 나중에는 좀 지치더군요. 단편임에도 그랬으니 너무 평평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공지영 선생이 이런 코메디를 쓰기도 하셨다니 참으로 신선하고 놀랍습디다. 본래 대단히 글재주가 있으신 분이셨군요. 어째 장편에서는 그런 재능이 빛을 발하시지 않으시더니 단편에서는 뭔가 확실히 다릅니다. 내용은 아마도 한국 문단을 풍자한 것 같아요. 비단 문단만을 두고 말하는 건 아니야, 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내용이기는 해도 제가 느끼기엔 문단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겨냥할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욕가는 날, 정지아 ★★★
저는 전연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의 가족 단편이었습니다. 사십대 아줌마가 언니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읽으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라도 사투리가 제대로던데 그게 그런 공감대에 득이될는지 실이 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10%도 겹치는 감정이 없어서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아줌마들의 세상을 난 모른다고. 여탕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지대합니다.
빅브라더, 김경욱 ★★★
특징없는 문장에 힘없는 이야기. 그러나 완전히 재미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딱, 애매한 정도의, 중간에 걸친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재능 없는 소년이 열심히는 그린, 그냥 무난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
국화를 안고, 전성태 ★★★
이 작품집에 실린 아홉편의 단편 중에 가장 문장이 수려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루한 이야기를 커버할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고요.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묘사라는 걸 하고 있는 소설을 읽는 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의 문장력이었으니요. 어쩌면 그런 문장임에도 너무나 지루했던 이야기가 더 큰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소설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더군요. 상당한 재능을 가진 소년이 대충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김숨 ★★★
문단은 좋아하고 대중은 싫어할, 딱 전형적인 타입의 한국 소설입니다. 몽고 반점의 한강 선생처럼 말이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빵들처럼 유사한 형태를 지닌 분들이시네요. 이분의 등단작을 아주 예전에 읽었었는데 내용은 생각이 안나고 참 지루한 글이라는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진 않네요. 그러나 뭔가 구성면에서나 분위기 면에서 문단 냥반들은 좋아할 법도 싶어요. 몇 년 지나면 이 냥반의 작품 중에 하나가 대상을 수상할 것 같습니다. 폼이 딱 그럴 폼이고마.
금고에 갇히다, 김언수 ★★★
단편 타입의 작가가 아니신 것 같은데 왜 단편을 쓰셨는지. 문학적인 묘사보다는 이야기 전개에 더 치중하는 타입인 작가시죠. 순문학보다는 장르 문학쪽에 더 가까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읽히고, 덮자 마자 내용을 다 까먹게 되는 류의 소설이었습니다.
뒤에, 김태용 ★
훗날 제2의 이상으로 평가받으시더라도, 미천한 제가 보기엔 그냥 뭥미. 실험은 혼자하시고 가격표 찍힌 책에서 이러시면 곤난합니다.
한문 제목, 황정은 ★★★★★
이 작품집에서 유일하게 별 다섯인 작품이로군요. 이분, 2008년 오늘의 작가상인가에서도 단편을 하나 읽었었는데요. 이분 묘한 개성이 있는 작가로군요. 자신만의 특색이 확실하다는 것과 작품 전반을 통제하는 분위기와 그녀만의 리드미컬한 문장이 아주 좋은, 그러니까 뭔가 이런 문장 나열을 두고 감각적이라고 하는 거겠지요, 싶은. 위에 분 같은 분 말구요. 76년 생이시니 올해로 36살임에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20대 초반의 신선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풋내기의 아마추어스러움은 쏙 빠진 스타일리쉬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색깔을 가졌되 안정적인 몇 안되는 작가라는 게 저의 생각인데요, 한국 문단에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빵같은 작품들로 도배하지 않으시려면 이런 작가를 좀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의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두고 늘 같은 평을 내리는 냥반님들도, 안 지치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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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번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걸작이다.
김윤식의 심사평은 거의 이상의 소설(?) 수준이여서 도대체 뭔소리를 하나 싶었고... 윤후명은 '새로운 시대의 나들목을 제시하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니 기가막힐 노릇이며, 권영민은 '한 작가의 내면 풍경을 서사화하는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특이한 진술방식은 이 작품이 겨냥하고있는 소설적 전략'이라고 했는데...--;;
이 세 분께서는...도대체, 작품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본인들 스스로 제대로 파악하고 계신지 의문이다.--;; ( 윤대녕과 김인숙의 살짝 살짝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한 심사평이 더 와 닿았다. )
1999년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이후 글을 쓸 수 없었다는 그녀. 하지만 '별들의 들판'이후의 그녀의 행보는 답답하다 못해. 안타까울 지경이다. 어쩌다가 '무소의 뿔'같던 그녀가 그 지경이 되었나.
대상 작품치고는...전반적으로 너무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차라리 자선대표작이 더 오밀 조밀 잘 쓰여졌다) 아무리 공지영이라지만, 이 작품이 과연 대상받을 수준인가 의심스럽고, 그러한 작품을 떡하니 뽑아놓고, 작품보다 더 재미난 심사평을 적어놓은 심사위원들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어쨌거나...나의 바람이 있다면, 공지영은 '우행시'나 '봉순이 언니' 로 기억되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 '무소의 뿔~' 로 기억되는 그 공지영으로...예전의 그 작가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별들의 들판'이후로 쓴 것 중에서...책같은게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일단, 올 해에는...심사평이 가장 재미있고, 그 다음엔..김경욱, 전성태, 김숨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덧붙임. 근 15년간...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보긴 처음인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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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당시 내 나이 두 배 이상 나이드신 분들이 그러셨다. 나이들면 소설과 영화가 재미없어진다고. 과연 그런 걸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 둔감해져서 그런 걸까? 아님 이 작품집에 선정한 이상문학상 측의 문제, 아님 현재 한국소설 전체의 문제일까? 왜 이리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거나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 것일까? 아, 참나,,,
1983년 서영은의 <먼 그대>이후 지금까지 연례 행사처럼 읽고 구입해온 작품집이다. 어느 시절까지는 그 해의 단편소설작황을 갈무리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고, 그 즈음 한국현대사회의 큰 사건과 변화를 반영한 작품들이 등장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아, 참나,,,
나만 그럴까? 근래 3년의 대상 수상 작가(공지영, 박민규, 김연수 작가)의 대상 수상작을 읽어보면 그리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보다, 이 작가들의 근래 장편 활동을 보아서 받을 시점이 되었기에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수상작의 수준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 참나,,,
물론, 그래도 나는 내년에도 이 작품집을 구입할 것이지만. 몰라, 졸지에, 서서히 애정이 식어가지만 의리로 참고 같이 살아주는 시큰둥한 늙은 마누라가 된 것 같은 이 느낌은 정말 몰라. 아, 참나,,,
작품집에서 전성태 작가의 <국화를 안고>가 그 중 기억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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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면 의당 구입해야 할 책 중에 하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실린 작품도 습관적으로 읽게 된다.
어느 해부턴가는 대상 수상 작품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 중 선정된 몇 편의 우수작 안에서 뽑은 대상 작품일 뿐, 굳이 우열을 가르지 않아도 좋았고 각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이 나름 유쾌했기 때문이다. 허나 올해는 좀 남달랐다. 내가 선호하는 공지영 작가가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1994년 ‘꿈’, 1998년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가 우수작에 선정된 적 있어 조만간 시대를 넘어선 작품으로 대상을 받지 않을까 애독자로서 내심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공지영 작가는 7여 년간 펜을 들지 못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암흑의 시간을 보내고 소설집 <별들의 들판>을 세상에 내놓을 무렵, 예스24에 올라왔던 공지영 씨의 인터뷰 동영상. 그리고 동영상을 보며 짓던 내 표정.
고통은 고통을 당해본 자들에게 묘한 공통분모를 주는지도 모른다. 그 크기나 강도는 다를지라도 절망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린 적 있다면, 그 안에서 과거의 나를 온전히 놓아버린 적 있다면 운명과도 같은 인연의 끈이 잡힐 수도.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그의 문학적 자서전 ‘나의 치유자, 나의 연인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함께 이해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는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은 화자의 개인적인 고통 - 폭력으로 인한 통증 - 이 H의 비극으로,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아우슈비츠의 비극으로 확대된다. 자선 대표작 ‘진지한 남자’에서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한 젊은 화가의 삶이 개개인의 욕심으로 제멋대로 재단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가의 진지함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감춰지지 않는, 이윽고는 매장에 이르게 하는 폭력의 속성을 풍자하고 있다.
낡아가는 육체에 고이 접힌 세월을 뒤늦게나마 딸과 공유하고서야 목욕 후의 개운함 같은 생의 개운한 느낌이 좋았던 정지아의 ‘목욕 가는 날’, 오리 뼈가 고아지다 못해 졸아드는 들통 속 같은 기다림을 생의 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겠구나 싶은 김숨의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밤’, 작아진 세상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 인상 깊은 김언수의 ‘금고에 갇히다’ 등의 단편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즐거움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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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운명이 덮칠 때 - <맨발로 글목을 돌다> 삶의 방향이 자신이 계획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삶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혹한 운명에 의하여 시련의 늪에 빠질 때가 있다. 그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그 늪을 빠져나오려고 애쓰지만, 점점 늪 속으로 깊숙히 빠져들어가고 그러는 와중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삶을 놓아버리고자 하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이 단편 소설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자전적인 형태로 저자가 운명에 의해 시궁창에 빠져버린 인생과,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술회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H를 만난다. H는 젊은 시절 납치되어 북한에 끌려가 살았던 인물. 삶의 무게가 주는 억압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던 저자는 납치로 인하여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H에 대하여 웬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H는 납치라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바뀐 자신의 삶을 ‘영원히 평범해질 수 없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규정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그를 보며 운명의 수용소가 갇혔던 재소자로서의 동지의식을 느끼는 것이었다. 저자는 H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었던 프리모 레비와,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꽃 같은 청춘시절을 박탈당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도입하면서 운명의 발톱이 평화로웠던 인생을 갈기갈기 찢었을 때의 슬픔과 무기력함을 이야기한다. 운명이 갑작스럽게 삶을 덮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풍랑을 만난 배가 물결을 헤치고 그저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듯이 온몸으로 물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행이라는 것도 삶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혹한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삶이 성장하여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문을 열기 위한 열쇠는 운명이 주는 고통이고, 그러한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은 운명에 맞서는 것이 아니고, 운명을 껴안아 보려는 노력이라고 소설 속에 등장한 기자의 입을 빌려 저자는 주장한다. ‘피할 수 없으면 고통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그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의 한가로운 말장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그 고통을 주는 현실 자체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 보는 존재”이지만, 현실에 괴롭다면 “자신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을 보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 가혹함 속에서 성장이라는 궤도를 타고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위 앞에 놓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나약함 - < 빅브라더 >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지배자를 ‘빅브라더’라고 칭한다. ‘빅브라더’는 모든 곳에 놓인 텔레스크린과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하여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 놓은 사람들은 ‘빅브라더’의 시선을 내면화 한다. ‘빅브라더’의 눈은 모든 곳에 있고, 심지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빅브라더'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주인공은 어릴적부터 세상에 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형을 동경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의 존재를 질투한다. 주인공의 형은 보헤미안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자주자주 하늘을 난다. 서커스 장의 인간 대포에서 발사되어 날고, 빨간보자기를 매달고 축대위에서 날고, 저자의 여자친구가 보는 앞에서 번지점프대에서 날고,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날아 아버지의 관을 껴안고, 마지막으로 사고로 죽어 재가 되어 난다. 공중 속에서의 “비상”은 인간의 꿈이었다. 그리고, 비상하는 형의 모습은 주인공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날 수 없는 주인공은 날 수 있는 형을 동경한다. “알고 있는 것”은 동경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알 수 없음”이 동경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알 수 없음”은 두려움이라는 속성도 가진다. 아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동경의 대상이었던 형의 시선과 미소는 주인공이 성년이 되어 목사가 된 이후에도 주인공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주인공은 형의 시선을 내면화 한다. 신도들에게 원죄의식을 역설하는 자신에게 지난달에 대한 불안과 후회와 두려움을 안겨주는 형은 주인공에게 진정한 ‘빅브라더’였던 것이다. ‘빅브라더’앞에 선 주인공은 ‘빅브라더’의 권위에 앞에 알몸으로 서서 부들부들 떠는 나약한, 참으로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진정한 교환가치를 갖는 화폐는? - <금고속에 갇히다> 화폐의 가장 큰 기능은 재화와 재화의 교환을 중개하는 기능이다. 재화와 재화를 바꿀 수 있는 공간이 전제되어야 우리가 쓰는 화폐는 그 기능을 할 수가 있다. 금고를 털던 주인공들이 욕망하던 돈으로 주인공들은 섹스를 사고, 차를 사고 여행을 살 수 있는 꿈을 꾼다. 돈이라는 화폐는 교환가능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능태이다. 모든 것이 교환이 가능한 넓은 공간에서 돈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금고속에 갇히고 넓은 세상과 격리된 순간부터 돈은 기능을 상실한다. 금고 속 세계에서는 바꿀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돈을 먹을 수도 없다. 그들이 욕망하던 돈은 그 세계 안에서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교환가치를 갖는 또 다른 형태의 화폐가 드러난다. 그것은 섹스다. 주인공들은 그들의 절도에 동참한 여자와 금고속에 갇힌다. 그녀는 그들에게 하나의 조건을 제시한다. 자신을 공범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켜준다는 조건으로 그녀는 주인공 둘 중 어느 한명에게 그녀의 성을 제공한다는 제안을 한다. 2명의 주인공은 그 화폐를 독점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그 경쟁은 주사위를 이용한 뱀놀이 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경쟁은 넓은 세상에서 돈을 두고 경쟁하는 우리의 경쟁과 투쟁을 닮았다. 이 소설 속에서 넓은 세상은 금고속의 좁은 세상으로, 그리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돈은 여자의 유죄를 무죄로 바꿀 수 있는 섹스라는 화폐로 치환되었다. 하지만, 욕망에 도달하기 위한 화폐를 위한 인간의 투쟁과 경쟁심은 좁은 세계에서도 넓은 세계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존재감을 재미있게 드러냈다는 점이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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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자마자 사읽었다. 급한 마음에.. 공지영의 소설에 많이 굶주려있었기에... 하지만 맨말로 글목을 돌다는 소설이라는 느낌보단 자신의 상처 치유를 위한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는 글의 형식이었다.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단편 하나를 더 옮겨놓은 진지한 남자가 훨씬 더 소설답고 재미있었다. 이젠 공지영 작가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서 순위가 많이 내려갔다. 이미 그녀는 너무 유명해졌고, 그 이름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위대한 글쟁이가 되어버려서. 소설가 공지영이라기보다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우리나라 대표문학상이라고 불리어지는 이상문학상도 이젠 좀 식상해져간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등 다 비슷비슷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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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로 발간되는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 재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여야 할 것이다. 한 해를 읽는 재미. 2011년이라면 2010년도를 읽는 재미, 좀 너그럽게 봐 준다면 2008년 즈음부터 2010년도를 읽는 재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책은? 재미없었다. 재미있다는 평보다 재미없다는 평이 더 많아 기대를 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서 안 사려고 잠시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못 읽어 낸 것을 나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한번 보기는 해야겠다, 그래서 본 건데.
내가 찾는 2010년은 작품들 속에 없었다. 두루뭉술하게 2000년대의 몇 장면들이 보인다고는 할 수 있겠다 싶기는 했다. 그러면서 내가 혹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치나 경제 감각이야 원래 없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감각마저 잃어버린 상태여서 이 책으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단편소설들에서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내게 그것은 참 큰 무게였는데(양귀자, 윤대녕, 이청준, 박상우, 구효서 등-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이어서 그랬을까?), 최근에 내 기억을 붙잡는 이름이 없다. 간간이 새로운 이름들을 애써 기억해 보려고 하기는 했으나 결국 놓쳐 버렸고, 이 책에서 혹시라도 한 분 그런 이름을 건질 수 있을까 찾아보려고 했지만.
블로그 이웃(껌정드레스님)의 말처럼, 수집 차원에서 2011년도 작품집을 빠뜨릴 수 없으니까 책꽂이에 줄지어 세워둔다는 의미 그 이상 없어서 좀 그렇다. 지금 실망한 것 잊어버리고,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계절이 바뀐 후에 다시 읽으면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까? 1980년대까지의 작품집들은 아직도 그 시대를 내게 생생하게 살려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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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하시옵니다!
너무하시 옵니다. 이상문학상을 그리 좋아 했거늘. 어린 시절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와 함께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아니었던가 말입니다. 해가 갈 수록 수상작들이 수상해지고 있고, 심사평은 더욱 수상하므로 이건 무슨 속에 감추어진 암호가 있나 생각에 생각을 또 해보지만 당췌 문학의 'ㅁ'도 모르는 미천한 소인이 읽은 올해의 수상집은 참으로 재.미.가.없.습.니.다. 너무나 재미가 없어 장장 일주일에 걸쳐 본 책을 힘들게 읽어 나간터라 이젠 우수작에 주인공이 만나러 가야지 했던 사람이 H란것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아! 하나 딱 재미 있었던 작품이 하나 있었네요. '캐비닛'의 작가 기언수의 베네수엘라이야기. 끝이 아쉽고 또 얼마나 아쉬웠는지. 김언수의 작품 외에는 당췌 내가 이거 문학 작품집을 읽고 있는 건지 누군가의 덜 다듬어진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건지 감이 안오더군요.
정말이지 재미가 없어서 솜털이 배배 꼬일 지경이었습니다. 문학의 힘은 이야기의 힘이 아니던가요? 저같은 미천한 일개 독자 주제에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함들이 있었던 걸까요? 아~ 참말로 진심으로 이번 작품집 재미가 없었더랬습니다. 해가 갈 수록 재미가 없어지는건지 점차로 심오해 져서 저 같은 일개 독자 따위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는 심오함을 더해가는 건지 참으로 아리송 하고 아리송 할 따름 이옵니다.
무식쟁이 독자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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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과, 공지영. 참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 문학상은 대개 '문단의 총애'를 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뤄왔을 뿐더러, 심사 대상역시 '중단편'으로 한정되어 있다. 작가 공지영은 꽤 많은 평론가들에게 지속적으로 난도질을 당해왔으며, 또한 그녀는 주로 장편을 많이 쓰는 작가였기에 '이상 문학상'과 그녀의 이름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아닐까 싶다.
트위터에서 그녀의 수상소식을 접하고 나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애지간하면 '이변'이 없는 문학상인데 공지영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터뜨렸기에 '공지영'이라는 이름의 핸디캡을 딛고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났다.때문에 작품집이 나오자 마자 바로 읽어보았다.
<글목을 돌다>는 한없이 '공지영 다운' 글이었다. 그녀가 지금 껏 많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해온 '상처'와 '운명'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숭고함'에 대해 그녀 특유의 통찰력을 통해 잠언적인 언어로 잘 짚어내고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단편 하나를 읽으며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으며, 감동했고, 또한 우려했다. 분명히 이 작품의 수상을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해댈 것이다, 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목을 돌다>라는 작품은 현대 한국 문단이 지향하고 있는 '올바른 소설'이라는 공식을 그다지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다. 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소위말하는 고급독자들역시 이러한 '소설의 공식'에 따르지 않는 소설에 반감을 가지기 마련이며, 더구나 그 소설이 '술술 잘 읽히기 까지'한다면 상업적이며, 중량감이 없다는 빌미를 가지고 '싸구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판별되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관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로 꼽고있는 '일관된 어조'와 유기적인 이야기 구조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얼핏 보면 이 작품은 몹시 산만하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그 부분, 좋은 소설의 공식을 그다지 성실히 이행하고자 하지 않고, 여기 저기 이음새가 툭툭 떨어져나간 크레바스 같은 부분에 이 작품의 매력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직설 화법을 통해 일반 독자들 모두가 손쉽게 주제의식, 그 핵심으로 가닿을 수 있게 유도한다. 또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폭력의 희생양'들을 다양한 육성을 통해 조명함으로써 이 작품은 주제를 단선적으로 다루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그 고통을 보여주는 데에도 상징이나 비유를 통해 애둘러 표현하는 것이 아닌, 정확히 그 피비릿내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독자들이 피부로 공감할 수 있게 장치되어있다. 그리고 그 폭력어린 날것의 장면들을 다시 주인공의 성찰과 잠언으로 주워삼키는 솜씨역시 아주 유려하다. 희망이 없다는 것을 통해서, 희망을 애둘러표현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기존의 '상받을만한' 단편소설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에 그쳤다면, 나는 이 작품이야말로 잘난 사람들이 쳐놓은 '예술'이라는 구획에서 탈피해 '인간의 삶'과 '인생'을 정확히 겨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설다운 것'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극히 '소설이 지향해야하는 가치'를 이뤄낸 놀라운 수작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는 (심사위원들역시 비판한) 사소설적인 특징도 나는 독자들이 더욱 생생히 '2011년 현재에 상존하는 폭력과 고통'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랬다. 아마도 공지영일 작중인물에게, 2011년을 살아가는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공감했으며, 그것이 빚어내는 감동역시 깊이가 달랐다.
작가 공지영은 소설가들을 위한 소설이나 평론가들을 위한 소설이 아닌, 한없이 '자기 자신'을 위한 소설을 쓰는 것을 통해 결국 소설 본연의 가치인 '공감'과 '감동' 모두를 대중에게 이끌어냈다. 그녀의 작품이 단순한 '통속'이 아닌 '보편적 진리'에 점점 가닿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녀의 작품이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글목을 돌다>는 그런 그녀의 작가적 가치와 장점이 가장 폭발적으로 응집된 근래에 보기드문 수작이다!
(유력한 수상후보인 김숨이나 전성태의 소설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황정은의 소설이 무척 좋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황정은은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함을 갖추었으며 또한 훌륭하기까지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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