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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다시는 볼 수없는 영원한 이별로 인한 두려움, 그 막막함때문은 아닐까...
하루에도 수차례 죽음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는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해 우리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무덤덤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간혹 직접적인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 더이상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되고 더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가슴이 먹먹해지는 현실이 된다.
나 역시도 맨처음 '죽음'앞에서 당혹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엄마의 죽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암이라는 병명과 함께 남은 시간이 6개월 정도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결과를 접하고도, 또 예고된(?) 6개월보다 좀더 긴 1년을 넘어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었다. 길을 걷다가도 불쑥 엄마를 만날 것같고 이 세상 어딘가에 변함없이 살아계실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의 슬픔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고 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가족 누군가에게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게조차 내색할 수 없는, 속으로만 곱씹어 대는 믿기지 않는 꿈같은 일이었다. 어쩌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제는 보고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날 수도 또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이 느껴지자 비로소 눈물이 시도때도 없이 흘렀다.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것, 엄마라고 불러볼 수조차 없다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돌아가실 무렵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딸아이도 낳고 또 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만, 문득문득 엄마가 그리워질 때가 점점더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 역시도 언젠가 엄마처럼 아버지처럼 딸아이를 가족을 남겨두고 영원한 이별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두고 나 혼자만 퇴장하듯 홀연히 사라져야 하는 그날이 생각만 해도 두렵기만 하다. 어느덧 죽음의 주체가 될 수도 있음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음이다. 그러고보면 정말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또 연장임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로든 마주하게 될 나의 죽음을 상상해 볼 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엄마를 잃은 딸아이이다. 사람은 여타의 동물(생물)들과 달리 죽을 때까지도 부모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일텐데 더이상 딸아이의 그늘이 되어줄 수도,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수도, 마음껏 투정부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줄 수도 없음에 절로 슬픔이 밀려온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해, 여러가지로 이야기하며 죽음을 이해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상황이 담긴 이 책이 위안처럼 느껴진다. 특히, 자연사뿐만 아니라 사고나 자살, 병으로 인한 죽음의 다양한 경우까지 헤아려봄으로써 죽음은 예고 없이도 불쑥 우리의 삶에 출현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 죽음의 주체(?)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노인들뿐만 아니라 부모나 형제자매, 친인척 혹은 선생님과 친구, 친구의 부모도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아이나 어른들 할 것 없이 제각각 그 슬픔의 정도와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며, 극복하는 시기도 저마다 다를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마냥 슬퍼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분노와 공격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음을.....또 엄청난 두려움으로 떨게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정신적인 충격이 될 수도 있는 죽음은 전문가의 상담이나 심리치료까지도 필요하다고 하니...여태껏 죽음에 대해 우리(어른들)와 별반 다를 것없이 혹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누군들 죽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특히나 사랑하는 가족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죽음을 당한 당사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러한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경우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죽음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인한 것도 아니고, 또 어느 누구의 노력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닌 온전한 자연의 순리이지 않을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결코 내게는 닥치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그러나 분명 우리 삶의 일부인 죽음. 현실감이 없을 때 한 번쯤 아이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에 좋을 책이다. 건강하더라도 만일의 경우를 위해 면역력이 생기도록 예방접종을 하듯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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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나 어른에게나 죽음이란 참 무거운 주제다. 몇년전에 젊은 형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 엄마에게 말씀을 드리면 너무 충격을 받으실거라면서 이야기하지 말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사실 알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연로하신 친정엄마가 충격을 받으면 어쩌냐고 하면서 말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알려야 한다, 언니는 안된다 하고 싸운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엄마가 충격으로 무슨일이 생기면 네가 책임질수 있느냐는 말을 해서 그냥 지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큰언니에게는 남편이 죽은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엄마만을 생각하는 작은언니가 야속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장례식후에도 한동안 엄마에게는 형부가 중국에 일때문에 가셨다고 말했었다. 그덕에 친정엄마 근처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혹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실수라도 이야기를 할까봐서이다. 아이들은 몇일은 우리가 집을 비우고 집에 와도 없자 놀라서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울면서 엄마랑 아빠랑 다 필요없다는둥 울면서 하소연을 한적이 있다. 자신들을 부모인 우리가 버린것이 아니가..라는 불안한 상상을 했던듯 하다. 후에 아이들에게 그리고 친정엄마에게 지난 사정을 알렸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힘겹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이책이 어른책이냐? 아이책이냐고 물었다. 나역시 이건 어른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죽음에 대해 아이들이 대하는 태도, 생각등에 대해서 많은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조부모가 돌아가셨을때,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때,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때등의 다양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얼마전 접했던 [내아들이 죽었습니다] 라는 책도 생각이 난다. 자신은 죽어서 부모가슴에 묻는다는말.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 [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의 저자역시 남동생이 죽으면서 가족이 겪었던 고통을 말한다. 죽음의 고통을 알기에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고통의 크기를 새삼 재확인하고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책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죽음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에 대해서 깨닫기도 하고 많은 부분들을 배울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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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작은 아이가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사는거야?’’죽으면 어떻게 되는거야?’’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 등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7살 아들의 질문을 듣게 된 할머니는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를 나무라셨다. 어린 아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할머니로서는 언짢게 느꼈졌는가보다. 하지만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질문은 계속되었다. 엄마인 나 역시 당혹스러웠지만, 아이의 질문에 최대한 답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반복된 며칠간의 질문 후에야 아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멈추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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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앓이 열풍을 일으키며 얼마전에 종영된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현빈이 여자친구 라임을 대신, 죽음을 향해 걸어갔던 장면이 있었다. 그 모습이 방송되었던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현빈의 열혈팬이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은 완전 대성통곡을 했었다. 슬퍼하면서 무서워하면서.... 그날밤 단순한 몰입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무섭게 치달아가는 감정을 보면서 난 어떻게 수습해야하는걸까 참 많이 긴장했었는데 다음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돌아서며 한 순간의 해프닝이 되어버려 참 많이 다행스러웠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보여준 첫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너무도 큰 두려움이었다. 그것이 실제 가족이라면 자신에게 일어난일이라면 어떠할까? 감당못할 큰 아픔으로 많이도 힘들겠구나 싶어졌다.
평소 우리는 죽음하면 진지한 마음을 여는경우가 참 드물다. 워낙이 무거운 주제이다보니 아이들과 논제를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물어올때 조차도 대충 얼버무리거나 아름답게 포장해버리곤한다. 게다가 살면서 한번도 접하지 못한,접하고싶지않은 죽음이다보니 내 일이 아니겠지라는 마음에, 사람이 죽을수도 있고 죽으면 영원히 못본다는것 사실을 망각한채 지금껏 살아온것이다.
그러했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보여준 첫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너무도 큰 두려움이었다. 그것이 실제 가족이라면 자신에게 일어난일이라면 어떠할까? 감당못할 큰 아픔으로 많이도 힘들겠구나 싶어지는게, 만에 하나 갑자기 덜커덕 실생활에서 죽음과 맞닥트린다면이란 설정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우리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책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다소 무겁게 펼쳐지는데 다양한 죽음들과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이 구체적인 사례와 대화로써 보여진다. 보통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것만 보여주고 싶어하고 슬픔은 감추고, 아픔은 못느꼈으면한다. 그러다보니 죽음이란 형태를 감추기 바빠 솔직해지지 못하는데 그것이 아이들에겐 더 큰 슬픔이 된단다.
말을 안했기에 모를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일뿐 어떤경로를 통해 듣게되든 분위기로 알게되든 결국은 맞닥트리게 되어있다는데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만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바라마봐야하고 혹시나 내탓이 아닐까라는 자격지심까지 더해진다면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너무도 커진단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다보니 우린 참 많은 죽음들에 노출되어있었다. 멀게만 생각했던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의 죽음 이외에도 꽃이 시드는것도 죽음이었고 키우던 애완동물의 죽음또한 있었다.
그러한 죽음들의 여러 형태속에서 아파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아프고 슬프다고 마냥 감출게 아니라 어른들이 어떤 모습으로 대처해야만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었다. 그중에서 또렷해지는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솔직하란다. 너무 미화하지도 말고 너무 두려워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것, 슬픔에 쌓여 떠난사람에 대한 예의로 언제까지 웅크릴수만은 없는법이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우린 이책에서 음지에서 묵묵히 슬퍼만 하던 죽음을 밖으러 드러내어 함께 감정을 나누면서 이겨내는것들을 볼수 있었다. 그것이 한없이 무겁게만 생각되었던 이 책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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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아이가 대뜸 하는 말이 헐~~
아이의 반응처럼 죽음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낸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불편하고 두렵다.
항상 가까이 있되 멀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은 죽음이라는 존재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뒷덜미를 잡아챌 것 같은
검은 빛깔의 커다란 손처럼 느껴진다.
태어나는 것이 기쁘다면 죽는 것도 기뻐야 하는 데 왜 그렇지 못할까!
이 책은 터부시 되는 죽음에 대해, 죽음 후에 남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고통과 상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잃었거나 조부모를 잃었을 때, 혹은 엄마와 아빠, 형제나 자매를 잃었을때
어떠한 심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른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알려준다.
죽음이란 인간을 속수무책으로 만든다. 인간은 죽음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렇기 떄문에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사람들은 모두 무기력감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 곧 자신의 행동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신뢰, 장래의 전망,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지속성과 연속성, 안정감, 자유 그리고 선택의 가능성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P53본문 발췌
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척들이 많이 와서 좋았지만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아침밥을 먹던 오전 9시에 부고를 받았고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종종 화가난다. 아무도 내 의견을 묻지 않았고 나는 살아가면서 종종 아버지에 관한 다양한 이미지를 만날때 마다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늘 나라에서 아빠는 행복할까! 나도 착하게 살아서 꼭 하늘 나라에서 아빠를 만나고 싶다는 기도를 늘상 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유년시절에 내가 만났던 죽음들을 떠올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는 내 모습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친구들이 아빠 얘기를 하면 숨기고 싶은 본능과 수치심, 부러움을 느꼈으며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때문에 잠을 설쳤던 것도 같다.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남겨진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
어른들조차 비틀거리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때로는 무력감이 극대화되어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다.
남겨진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며 스스로도 그러한 심리적 변화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뤄야 한다.
주위의 시선이 따뜻하다면 다행이지만 누군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을 경우 남은 가족들은 주위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슬퍼할 때 관심을 갖고 대해 주면 아이들의 내면에 정리 원칙이 생긴다. 정리 원칙이란 죽음의 영역과 삶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지어 주는 것을 말한다. P78 발췌
아이들은 간헐적으로 슬픔을 느낀다... 아이들은 상을 당한 슬픔을 아이들 나름의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극복해 나간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아이들은 슬퍼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현 듯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이다. 이러한 방어기제 덕분에 아이들은 슬픔을 가끔씩만 표현하게 되고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부터 해방될 수있다. P75 발췌
아이들이 대뜸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하면 어른들도 순간 당황하게 된다.
어른들은 되도록 아이들이 죽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고 그 속에 속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어설픈 대답은 오히려 아이들만의 특유한 상상력으로 인해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될 수도 있으니
간단명료하게 사실 그대로 얘기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할 때는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지 말고 귀기울여 듣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상을 당해 슬픔에 빠졌을때 창의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낄 때가 많은 데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장난감 놀이를 통해 나름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식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을 당한 친구나 가족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표현함으로써 애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 나눈다면 심리적인 회복 역시 빨라질 것이다.
조용한 애도와 평화로운 죽음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이상이기 때문에 상을 당해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그 슬픔의 공격적인 힘들과 대면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다. 한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분노를 참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P154 발췌
3년간의 시묘살이는 고사하고 3일만에 장례를 치르고 일상으로 복귀하다보면 슬픔과 분노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다가
어느 순간 어떻게 터져 나올 지 모른다.
적어도 한 삶이 죽음으로 그 영역을 달리한 순간! 그 죽음에 관해 애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장례 문화 역시 엄숙하고 조용한 것도 좋지만 축제의 분위기는 될 수 없을까!
마지막 가는 순간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가는 길이라면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존재는 아닐 것이리라....
카자흐스탄에서 온 10살난 아이가 자신의 장례식은 아주 멋지고 신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왜냐면 자신의 삶은 아주 멋지고 신날 것이기 때문에...
장례식 때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시끌벅적 신이 났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이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렸으면 좋겠다.
눈 감고 누운 고인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면서 가슴을 치는 것보다는 분명히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내 장례식 때는 꼭 그리 하라고 이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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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꿈에 어느 선배가 나타났다. 가끔 이야기 나누거나 어쩌다 술자리에서 만날 정도일 뿐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선배라 무척 의외였다. 왜 갑자기 그 선배가 꿈에 나타났을까.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 선배를 생각할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그 선배는 사고를 당해 저세상으로 갔지. 졸업 후에 일어난 일이라 나중에서야 그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도 내 뇌리엔 크게 자리를 잡았었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의 뒷부분을 읽다 알았다. 내가 왜 그 꿈을 꿨는지. 아마 죽음에 대한 책을 읽으며 무의식중에 그 선배가 생각난 듯하다. 그것도 책에서 꿈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는 이야기를 읽을 때 비로소 알았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게 죽음이다. 하물며 애지중지 키우던 식물이 죽어도 속상한데 함께 이야기 나누고 사랑하던 사람이 죽는다면?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아 회피하곤 한다. 강아지를 키운 지 5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처음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둘째가 걱정한 게 바로 그거였다. 나중에 이 강아지가 죽을 때 어떡하냐고. 나도 그 때가 걱정되긴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의 일이니 그때가서 걱정하자고 안심시켰다. 만약 강아지가 죽고 난 후 그와 비슷한 강아지를 다시 데려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게 꼭 잘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개의 아이들은 정들었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금방 다른 강아지에게 정을 줄 수가 없을 뿐더러 죄책감까지 가지기 때문이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애도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이들에게 가급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죽음. 그래서 우리도 장례식장에 갈 때 가급적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남편과 나만 갔다 왔다. 당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고모부와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기에 그나마 괜찮을 것이라는 위안을 할 뿐이다.
이 책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나온 책이라지만 어찌 보면 어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책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때로는 아이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어른을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살짝 헷갈리긴 했지만 이처럼 내 자신과도 마주하기 힘들었던 이야기, 그래서 회피하기만 했던 이야기를 읽고 약간의 용기를 가졌다. 물론 읽으면서 내게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에서는 '만약 내게'라는 가정을 자꾸 할까봐 건너뛰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죽음을 터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고 확신한다. 참, 아이가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물어볼 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필요가 없다는 글귀가 소중한 정보였다. 책에서 줄곧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하기에 그에 관한 것도 당연히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라고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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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언의 금기시되는 말이기도 하다. 태어나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 당연한 일이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외롭고, 춥고, 끝이라는 느낌 때문에 무척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피하곤 한다. 이런 까닭에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왠지 너무도 무거운 감정을 일부러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더 피하는 것 아닐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길은 아주 당연함이고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이왕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해 한 번쯤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물어온다면 어떤 답을 들려줄 것인가? 참 고민스럽다.
아이들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눈다면 독자는 과연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보물창고에서 펴낸 <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아이들이 보는 '죽음' 아이들이 이해하는 '죽음'에 대해 어른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독서시간을 갖게 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게어트루트 엔눌라트는 어릴 적 남동생의 죽음때문에 슬프지만 또 다른 슬픔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대를 이을 외아들이 죽고, 아버지는 딸들에게 소홀하고 만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내면의 상처를 기억하고 '죽음'을 경험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원제는 <아이들이 슬픔을 느끼는 방식>이다. 번역 후의 제목이 너무 무겁게 표현해서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 사회에서도 터부시 되었던(전 세계 모두 공통이겠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과감하게 다루는 또 다른 시도가 아닐지에 대한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아이들이 밝고, 순수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하게 되는 '죽음'에 대해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으리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죽음'을 겪은 어른들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척 많은 시간과 많은 눈물을 쏟아내야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처럼 슬픔에 대해 똑같은 감정과 느낌이 있다. 어른들보다 많은 표현을 못 할 뿐이다. 아이들의 주변에도 많은 '죽음'이 일어난다. 매일같이 보살펴주던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늘 내 편이 되어주었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사고나 병으로 엄마 아빠의 '죽음'을 경험할 때, 형제자매가 죽었을 때, 또는 주변인 누군가의 자살을 알게 되었을때...등등.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죽음'이란 사실을 앞에 두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하늘나라에 천사를 만나러 갔다는 말처럼 아름답게 꾸며서 말하는 방법도 있고, 주변인의 '죽음'으로 당장 슬프고, 가슴이 아픔을 사실 그대로 말하기도 한다. 또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편안하게 말하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와 상대와의 영영 볼 수 없는 이별을 말한다. 하지만, 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한자리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자체가 주는 슬픔과 절망감은 어른, 아이 모두에게 전해지는 무거움이다.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의식중에 '죽음'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죽음'의 모습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임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기억하게 된다. 두렵지만, 무섭지만, 삶이라는 순서에 꼭 들어 있는 '죽음'이라는 과제를 일상 속 대화로 풀면서 삶의 긍정적인 한 면을 차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으로 잠시 흐트러졌던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죽음'을 표현하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시작해서 꾸미지 말고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절망보다는 먼 훗날 내가 경험해야 하는 당연한 일임을 무의식중에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1218세대를 위한 시리즈의 하나이지만 조금은 무겁게 다루는 부분이 많아서 어른들이 함께 독서를 하길 권하고 싶다.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나 역시 자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서움' '두려움' '절망' '슬픔'으로 표현하던 '죽음''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긴다면, 그리고 말할 수 있다면, 주제나 전개상으로 좀 어렵고 지루하지만, 이 책을 아주 제대로 읽은 것 아닐까. 아이들에게 말해주기 전에 먼저 '죽음'에 대해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