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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멘토 붓다, 이중석, 불광출판사, 2011 내가 붓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때이다. 전공이 역사와 미술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역사, 미술에 대해 공부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였다. 2학년 때부터는 의무적으로 답사라는 것을 가야했다. 답사 장소는 주로 절이었는데, 대웅전 안의 위엄 있는 부처님은 볼 때마다 고개를 숙이게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도 너무 좋아하는 것이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 전공과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여행을 갔을 때 절이 있다면 빠지지 않고 들르고 있다. 붓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책이 나와서 좋다. 붓다가 실존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미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붓다의 위대함을 느꼈다. ‘모든 중생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길거나 억세거나 혹은 중간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혹은 크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행복하게 하라.’ 붓다의 말이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행복해지려고 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데, 그 가르침들을 마음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좋은 말씀들이지만, 아직은 그것을 실천하는 마음가짐은 가지지 못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으려 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하여 바른 사람이 되었을까. 지금 그 뜻을 기리고 배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공부했던 것들이 떠올라서 기쁘기도 하고, 좀 슬퍼지기도 했다. 그때 계속 공부를 했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충격적인 것은 자기 점검 리스트에서 합계가 20점을 받았다는 점이다. 설마 설마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참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당장 착하게 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조금씩 노력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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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떠나서 불교에 관련된 책을 내가 제대로 습득할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분명 어려운 글귀가 등장할거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멘토의 글귀에는 성경의 말씀과 닮은 구석이 많이 있었다. 신부님과 스님이 나란히 차한찬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로서 종교의 의미는 어느정도 한뿌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멘토 어쩌면 나에게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멘토란 지혜의 안정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 에서 나에게 큰 선물이 다가온 느낌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수많은 후회를 하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욕정, 방탕, 도박, 돈, 친구등 다양한 방식의 번뇌의 말씀을 전 해 주신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니 다시한번 새겨볼 문제다. 뉴스를 통해 전해듣 는 사건사고 소식속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이 그 무엇보다 무서운 존재로 다가오는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어렵게 다가온면이 있지만 붓다의 탄생부터 여러가지 비화를 통해서 독자들이 손쉽게 다가갈수 있 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멘통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쓴내용이지만 부처에 대한 탄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보다깊은 면을 볼수 있다.
하느님과 부처님의 존재를 신앙인이라면 안고 살고있다. 그존재를 신적인 부분보다 인간다운 면을 부각시켜서 좋았다. 또 멘토 붓다라는 제목에서 많이 어렵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성경속의 말씀과 비교도 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서로 비교하는게 사실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자로서 같은 말씀이라는 결론을 내렸기에 부담없이 받아들일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에 읽기보다는 읽고 싶을때 마음 이 편할때 읽다보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좋은 말씀에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다시한번 이책이 내손에 온것은 큰 의미의 선물로 생각하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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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멘토 붓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내 인생의 멘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표지에는 또 이렇게 적혀있다. '멘토 붓다를 닮아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누군가의 훌륭한 멘토가 되어 있을 것이다.' 책을 펼치기 전 붓다, 절, 스님 등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일종의 마음의 준비라고나 할까.. 붓다를 읽고 나니 붓다의 깨달음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며,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당시의 집착과 번뇌를 버리지 못해 항상 안절부절하곤 한다. 책을 읽으며 어느정도는 마음의 안정을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누군가의 훌륭한 멘토'가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인생 설계에 도움을 줄 수 이 책은 붓다의 말씀만 기재한 것이 아니라, 붓다의 탄생과 출가를 다룬 편도 있어 붓다를 더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느낀 바 중 또 한가지는 내용이 명심보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두 성인의 말씀인지라 명언만 수록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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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은 나 스스로를 진리를 자각하는 힘을 갖게 한다. 자비와 지혜를 바탕에 둔 그 가르침은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며,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불교'가 잘 전해지고 있고, 큰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신에게 의지하거나 불가사의한 힘에 의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써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의 현실을 잘 직시하여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스스로 모색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서 온다. (P. 6)
종교적인 책을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내가 이번엔 붓다의 생애가 궁금해서 들게 된 <내 인생의 멘토 붓다>이다. 사실 두가지의 종교를 믿어본 나는, 어느 종교든 그 속깊은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냥, 엄마가 절에 가서 연등행사에 참여하면 따라가고 법당에 들어가서 두리번 거리며 다른 사람들 삼배하는거 바라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서클'활동을 하게 되면서 불교에 대한 언저리를 알게 되었다. 상당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준은 언저리를 아는 정도였다. 그래도 부처가 살아있는 스승이라는 것에서 큰 호기심이 일었고, 부처의 머리에 있는 혹(?)과 손의 동작등등 왜 그러한 모습인지 궁금해서 스님에게 여쭈어 보게 되면서 상당히 즐겁게 서클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만나는 목적으로 놀기삼아 다녔던 절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급기야 어느 여름날엔 땅을 보며 걸으며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용썼던 기억도 난다. 친구와 내기를 했었는데...작은 생명의 존귀함을 크게 깨달았던 순간이였다. 자비로움과 지혜를 담고 있는 불법이 그저 지루하고 음정박자 없고 음의 높낮이 없는 염불이라는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스님과의 즐거운 시간들로 고등학교 서클 시간이 채워져갔다. 스님과 마주하고 연잎차를 마시는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도 가끔 뽕잎차와 연잎차를 마시는데, 스님과 마주하고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런 향도 나지 않던 그 방안에선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따스하고 편안한 향이 가득했는데,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멘토 붓다를 닮아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누군가의 훌륭한 멘토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붓다가 결혼을 했으며 고행의 순간을 그려놓은 그림속의 갈비가 앙상한 붓다는 실제 부유하게 살았음을 알았다. 붓다의 말씀은 정말이지 평범하고 특별할 것이 없는데, 사실 그런 말씀들이 실천하기 힘들고 가까이 하기 힘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내 인생을 한방에 뒤집을 말 한마디가 있다는 건 알고 있는터라, 붓다와 같은 뛰어난 멘토를 만나는 순간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혼자 살수 없다. 그래서 붓다는 좋은 벗을 만나라고 말씀하신다. 좋은 벗을 사귀대 악한 벗을 사기는 것 보단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한다. 나에게도 좋은 벗이 있나..... 고민을 잠시 했던 페이지였다. 행복의 조건들을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되었고, 읽고난 직후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써, 붓다는 어떻게 이런 진리를 깨달았을까.
사캬무니 붓다의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후에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 '붓다(Buddha)'로 일컬어졌으며, '사캬족의 성자'라는 의미에서 '사캬무니(Sakyamuni)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캬무니를 한자로 음사한 것이 석가모니이다. 사캬무니 붓다를 '석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캬 족의 성인으로서 세상에 으뜸가는 분이라는 뜻의 ' 석가모니 세존'을 줄인 말이다. (P.138)
해석된 불경을 읽어보면 " 세존이시여~"라고 시작되는 부분이 많다. 처음 불경에 대해 잘 모를 때 무턱대고 읽다보니 세존이라는 말이 무슨 왕을 칭하는 것 같았는데 뜻을 알고보면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왜 석가모니를 세존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보지도 못한채 넘겨버렸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뜻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붓다의 탄생일화도 사실 말이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붓다가 태어나서 외쳤다고 한다.
붓다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그의 계급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하층민은 발바닥에서 태어나고 최고의 브라만은 머리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붓다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그 유명한 탄생게 '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천상천하 유아독존만 흔히 알려져 있어 붓다에 대한 오해의 목소리도 잦았다고..... 그의 탄생일화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만큼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픈 일화가 아닐까 싶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의 뜻은 '천상 세계나 인간 세계를 통틀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 그리고 삼계가 다 고통 가운데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라는 뜻이다. 부처님 오신날 절에 가보면 아기 부처님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이 있는데(관불의식) 그 아기 부처님의 모습이 붓다가 태어난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붓다의 제자들 이야기와 붓다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이야기등 과정들을 한권으로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는데다, 좋은 불경을 곳곳에 싣고 그 뜻을 제대로 해석해 주어 한권으로 양득을 한 셈이다. 붓다의 생애에 대해 궁금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알지 못했었는데 읽고 보니 다시 불심이 생긴다. 어떤 종교든 그 속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큰 등불이 되어주리라. 상당히 소박한 종교란 생각을 했는데 큰 뜻을 품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다시한번 이 책의 정독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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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구름이 절간에 머물렀다. 양지와 음지가 갈라진 곳의 음영이 이토록 뚜렷한데 대지는 움직일 줄 모른다. 서서히 물러나는 구름을 지켜보면서 세상사 역시 우리들 마음에 달려있다는 조그만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오래갈리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린 더욱 자연을 가까이하고 깨달음을 얻는 자에게 소중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나에게 절은 그런 곳이다. 자연을 만날 수 있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이 있듯이 마음을 다잡는 그곳에 인생의 종착지를 정하고 싶다.
스님은 언제나 차를 내어주신다. 차는 스님과 내가 만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그와의 정담 속에서 자칫 오해 살만한 말보다는 삶의 긍정적인 말들이 오고간다. 배고프면 밥이 생기고, 가고 싶으면 가야할 이유가 생기고, 필요하면 채워진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세상이 저절로 흘러가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보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소중한 지혜를 선물 받는다. 그는 나에게 어떤 인연일까? 무릇 수많은 인연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인연은 흔치 않다. 아주 가끔씩 그리워하고 아주 가끔씩 만나지만 마음의 정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해탈’ 초월적인 세상에 대한 열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로부터 속세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린 것일까? 오랫동안 절에 다니며 보시를 한다고 해서 절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여야 하나 철학으로 배워야 하나 어떤 선택이든 불교가 지닌 의미는 깨달음이다. 불교엔 타 종교와 같은 유일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붓다는 먼저 깨달음은 얻은 위대한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와 같은 존재다. 그의 그릇이 하도커서 수많은 비구들과 재가자들에 의해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린 그들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원하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다. ‘내 인생의 멘토, 붓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붓다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삶의 진지한 고찰을 만나보자.
붓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인도의 작은 부락의 왕자로 태어났다. 규모는 작았을지 몰라도 인생을 소비하기엔 더할 나위없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브라만계급들과는 달리 자신의 삶에 전혀 만족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까지 있는 그가 구태여 출가를 선택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엔 신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득한 시기였다. 자연과 윤회사상이 세상을 지배했기에 뜻을 둔 사람들은 출가를 선택했다. 그 역시 누구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또한 인간이 고통 받는 원인을 알고자 했다. 붓다 역시 다른 비구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선정과 육신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해탈의 기쁨을 맛보시게 된다.
갈애(渴愛), 목이 말라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욕심내고 집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붓다의 중심사상인 사제와 팔정도의 원인이 되는 핵심적인 단어다. 갈애는 인간사를 지배하는 욕(欲)의 중심이다. 삶이란 괴로움이다. 고제로 시작되는 붓다의 설교는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제하는 멸제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지닌 욕망의 근원을 팔정도를 통해 수행해야함을 강조한다. 사성제는 불교의 근간이 되는 붓다의 깨달음으로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대한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불교는 공중부양이나 타락한 인생을 구제해주기 위한 종교는 아니다. 또한 신에게 죄를 사하고 용서를 비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 자신을 바로 보는 곳이다. 우린 스스로의 업보에 의해 자신의 생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재물이 가득한 자는 재물이 곧 세상의 중심이자 목적이 된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높은 권력이 세상의 중심이요 목적이 될 것이다. 우린 이와 같이 스스로가 선택한 목적에 의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살아간다. 문제는 ‘채움’에 있다. 아무리 많은 재물도 언젠간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고 아무리 높은 권력도 인정을 받아야만 다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갈애가 있다. 생존 본능을 제외한 갈애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고 고통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왜 출가를 해야만 해탈이 가능한지 세속적인 삶에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내 인생의 멘토 붓다’ 불교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책이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 우린 어느 순간에 멘토와 같은 삶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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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멘토 붓다』를 읽고 요즘 ‘멘토-멘티’란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멘토는 내 자신이 본 받아야 할 대상자이고, 멘티는 멘토로부터 많은 것을 전수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멘티에 속한다. 많은 것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특별히 더 보충해야할 것이 있다면 멘토를 정하고서 더욱 더 열심히 임해야 한다. 이때 멘토는 내 자신의 꿈과 목표에 맞는 성공한 인물이거나 역사적으로 훌륭한 업적의 인물로 정하여야 한다. 멘토로 정했으면 멘티의 모든 일상사의 시간들을 멘토에 맞추어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멘토는 예전 우리나라의 서당식의 훈장인 것이다. 일대 일의 면대면 스승과 제자로써 생활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멘토 역할을 해온 사람은 역시 삶 자체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그 교훈이 그대로 멘토 역할을 하는 성인(聖人)들이 있다. 이런 성인에는 역시 붓다와 예수, 무함마드, 공자 등이 속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 동안 우리나라 역사에 훌륭한 영향력을 끼쳤음은 물론이고 호국 불교로서 국가를 우선시하는 교리 등과 지금까지 약 70%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는 붓다(=고타마 싯타르타)야말로 진정한 멘토인 것이다. 내 자신도 불교 신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여러 지식들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정말 심오한 진리와 함께 우리 인류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빠짐이 없이 설파하고 있는 내용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 이런 훌륭한 멘토가 바로 주위에 있고, 좋은 책이 있는데 구태여 많은 유혹에 빠질 수 없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하면서 수시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해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너무 많다. 정말 이런 우유부단하거나 생활 자체가 힘들어서 어려워하는 사람이거나 높은 지위나 명예를 가졌거나 많은 재산을 갖춘 사람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빈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 금과옥조의 지침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붓다를 멘토를 삼아 생활해 나간다면 장담컨대 아무리 현대가 복잡하고 빠른 변화를 거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리라 확신을 해본다. 비록 내 곁에 붓다가 계시지 않더라도 붓다가 남긴 가르침을멘토로 삼아서 생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정말 가르침을 차분하게 읽어 나가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그렇게 옳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실제 실례를 들어가면서 나타내 주는 교훈적 내용들은 훨씬 이해도 빨라서 불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내 자신도 더욱 더 안정감 있게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얻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설 연휴 독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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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이후 마음이 혼란스러운 날이면 통도사를 갔다. 보통 편도 2시간 거리였다. 완행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서 양산 시내를 지나서 달리고 달려서 정류장에 도착한다. 걸어서 통도사 입구를 지나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그 시간만큼은 자연을 그대로 느꼈다. 코로는 맑은 공기를 느끼고 피부로는 신선한 바람을 눈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을 즐겼다. 법당에서 절을 하고 나와서 마시는 커피한잔은 지친 내 심신을 위로하는데 충분했다. 아마도 나는 비우러 절에 갔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생각한 것이 있다. 불교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불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때 삼천배를 하고 법명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불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있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주문 같은 단어들. 많이 있는 관련 책자들은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랐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알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이번기회에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책 한권으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원하던 내용이었다. 신격화 되지 않은 비교적 정확한 내용으로 만날 수 있었다. 믿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든지 잘 융화되는 불교의 성격으로 인해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많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깨달음이었는데 그 동안 항상 남 탓하고 상황 핑계를 대왔던 네가 부끄러워졌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로서 앞으로 남편(내가 아는 이는 남편은 남의 편이라 부르는 거 같아 내편이라고 부르라고 일렀다고 한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남편을 섬기는 다섯 가지 착한 것과 세 가지 나쁜 것은 명심 또 명심해야 되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책이었다. 하나 하나 읽어가다 보니 정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을 책 일 것이다. 내 인생의 멘토, 붓다. 만나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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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전체에서 붓다의 생애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그가 불교를 통해 얻은 여러 깨달음들을
내가 만나봤던 진지한 불자들은 기독교인들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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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음을 부끄러워 했던 적이 있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름 성경학교에 가는데 나는 가지 못했던 시절에 대다수가 속하는 곳에서 벗어난 비주류의 소외감을 느꼈기때문인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대학에 다니고 종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즈음에는 어느 종교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회의 기독교가 갖은 그 배타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독교를 꺼리게 되었다. 모든 기독교인을 나쁘다 하지 않지만 무한한 강요와 유일신을 표방하는 배타성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좀 더 시간이 흘러서 금세기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토인비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이나 공산주의의 몰락같은 것들을 생각했지만 뜻 밖에도 그는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 알려져 기독교를 대체해 버리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으면 불교에 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불교에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해도 쉽게 불교경전을 읽고 그 뜻을 받아 들이기란 쉬운일이 아닐것 같아서 불교 관련 서적을 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한때는 논어나 맹자에 관심이 많아서 논어를 산 적이 있었는데 논어라는 책이 이야기 책도 아니고 그저 한줄 한줄의 문장의 나열이어서 읽는데 한참 힘들었던 기억이 한 몫을 했다. 그러다가 '내 인생의 멘토 붓다'라는 제목이 마음을 확 사로 잡았다. 논어도 이야기 논어라는 것이 있듯이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한 눈에 경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붓다의 탄생에서 부터 불교의 발생 배경과 그리고 그 가르침에 대해서 되도록 쉽게 풀어서 설명해서 불교에관해서는 초심자인 내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불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종교에 관해서 무지한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때만 절에 가는 가짜 종교인였다. 1년에 몇 번정도 인근 절에 가면 절을 하고 오곤 했다. 우상 숭배니 어쩌니 해도 절을 하는 그 순간 다른 누군가를 위한 마음으로 머리를 바닥까지 조아릴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더 겸손하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가짜 종교인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불교는 오로지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 중심이 있는데 책에서 저자가 그렇게 말을 했듯이, 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복을 빌곤한다. 어찌 가짜 종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것은 불교가 토착 종교와 융합해서 나오는 현상이라서 그렇다는 작은 위로를 해본다. 불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면 불교는 불교가 태어나면서 부터도 보편타당한 진리추구였고, 그 형식마저도 진리에 비추어 변형될 수 음을 보여왔다. 규율의 변화도 그러하거니와 불교가 포교되면서 지역 문화와 융합되었던 모습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예를들어 불교를 포교하면서 브라만에게도 그들의 기도의식을 바꾸지 않고 의미를 더 부여해서 장려했다 던지, 자이나교의 교도 들에게도 보시를 허락하고 널리 포용했다 던지 하는 일들이 그러하다.
보편타당한 진리의 추구는 절대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그 형체를 버림으로써 더욱더 그 실체가 견고해진다.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르치면서 스스로를 의지하여 진리에 비추어 나가라는 가르침은 역시 멘토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부족함이 없다. 붓타의 멘토링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리는 쉬운 책에든 어려운 경전 속에든 동일하게 들어 있다고 믿기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