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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괴테와 슐라이어마허, 발터 벤야민 같은 고전적 번역론을 포함해 20세기 후반부터 주목 받는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하는 번역론 개설서다. 국내에도 알려진 번역자들과 더불어 자크 데리다,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 등의 탈식민주의 이론과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이 탐구하는 번역론을 다룬다.
번역론은 원문과 번역문이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번역을 통해 만나는 두 언어의 문화의 차이를 없애는 번역은 그 자체가 폭력적이고 억압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영어를 통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와 일본의 통치 아래서 일본어를 통해 근대성을 이식받아야 했던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 중심의 논리에 의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번역은 식민 지배자의 지식이 재생산되는 데 기여했다는 반성이 남는다.
번역은 단지 기점언어를 목표언어로 옮기는 언어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번역이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번역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번역에 관한 철학적 논의, 에세이와 비평을 포함해 박물관, 기념관 같은 건물과 미술 영역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인문학적 입장에서 번역의 가능성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뒷받침되는 이론은 탈유럽 중심주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타자성에 대한 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에 근거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인식한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홀로코스트 담론의 형성이다. 번역이론을 새로운 학제적 문화 비평으로 활성화시킨 에밀리 앱터의 말을 빌면, '번역은 세계와 역사에서 주체의 위치을 끊임없이 재배치하는 방법이며, 자신에게 이질적인 것을 의식하는 수단이자 기존의 일상에서 공통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인간의 의식을 외부로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번역의 개념은 (신의 말씀을 제외하고) 모든 상위의 언어가 다른 모든 언어의 번역이라는 사실을 통찰할 때 그 의미를 온전하게 획득할 수 있다.'고 한 벤야민의 번역론은 언어가 지닌 타자와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다. 잊혀지길 바랐던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현재라는 시공간에서 번역되어 근대적 이성이 저질렀던 잔혹성과 그로 인해 고통받은 타자들의 아픔에 마주하도록 한다. 에바 호프만은 홀로코스트론에서 '세속적 세계에서 사색이야말로 (주체로서의 인간의) 정신성의 완전한 형태'라고 하며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자서전이라는 서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때 번역이란 '자신의 과거를 갱신하고 새로운 주체를 이야기하는 방법론'이다. 번역이 단순히 말을 옮기는 기술적인 언어활동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서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양한 문헌 소개와 인용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이 책은 번역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개별 논자들의 주장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많은 인용으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고 다소 난해하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깊고 넓은 의미의 번역론을 중심으로 현대의 문화 비평과 문학과 사상의 흐름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권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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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하나의 번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을 번역에 적용시키려 드는 사람도 있겠으나, 냉정히 말하면 번역은 번역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번역에는 항상 번역 과정에서 완전히 포괄할 수 없는 의미의 가장자리(margin)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장자리가 여러 가지 종류의 번역들을 가능하게 하며, 그런 번역들의 정확성이나 허용 가능성의 여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런 가장자리를 가장 적게 허용하는 번역이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번역이란 직업에 십 수 년간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번역은 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이 없어지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번역 과정에서 깨달은 한 가지 진리는, 번역이란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성립시키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세계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와 대면하여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말하자면 언어적 변증법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번역자의 모든 배경(인종, 문화, 학문, 관습, 기호 등등)이 번역하는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원작과는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런 번역의 실재를 놓고 보면, 아쓰코의 『번역이란 무엇인가』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책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번역의 기술이나 비결을 들려주는 성격의 지침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품이다. 어쩌면 오히려 번역에 직업적 관심이나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조차도 이 책을 읽는 과정에 약간의 좌절감마저 경험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고 난해하며 이론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번역을 문화 이론과 학제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 등장하는 여러 이론들(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설명한다. 이런 편제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의 가장 뚜렷한 장점과 공헌은, 바로 번역자의 입장과 관점과 환경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번역자가 지닌 주체적 지위를 정당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번역자는 단순히 원 텍스트를 자신의 모국어나 여타의 목적 언어로 옮기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새로운 텍스트를 재창조하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번역자의 주체성을 회복시켜 새로운 주체로 부각시킨다. 그와 관련해서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취급되고 가장 크게 주목받는 것은 바로 탈식민주의 번역론이다. 아마도 그것은 식민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일련의 순서(식민화, 식민화의 여파와 폐해, 탈식민화)에서 번역(또는 더 광범한 의미에서의 언어 사용)이 지니는 독특한 역할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생존의 문제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식민지에서 피정복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정복민의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이 경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책의 저자가 번역이란 주제에 치중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한 언어의 문제가 수반되는 듯하다). 하지만 나의 시각에서 보면 이와 같이 번역자를 새로운 주체로 부각하는 이 책의 장점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여 치명적 문제점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주체로서의 번역자가 원 저자와 원 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수행해야 할 근본 역할에 대한 주의 환기도 아울러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일 번역자가 자신의 주관적 요소들을 무기로 원 저자와 원 저자가 원 텍스트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자의적으로 재단할 경우, 번역자가 번역 과정에서 탈식민주의 이론과 이론가들에 의해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원 텍스트에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그 폐해가 미화되거나 은폐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원 저자가 원 텍스트에서 전달하고자 의도한 의미는 사라지고 번역자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남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번역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해석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되고 해석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역학(translation studies)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해석학(hermeneutics)을 동반해야 하며 해석학에 의해 견제와 조정을 받아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번역은 검증 가능한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번역은 번역자의 관점이나 배경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로 좌우되는 주관적 창작물로 전락되거나 원 저자나 원 텍스트와는 전혀 무관한 언어적 프랑켄슈타인이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점들을 유의한다면, 『번역이란 무엇인가』는 번역을 새롭게 이해하는 시각과 지평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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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떤 변역이 좋은 변역인가에서부터 번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 정치적인 면까지... 물론 아주 심오하고 학문적인 이야긴 아니었다. 다만 어떤 책을 볼 때나 글을 읽을 때 번역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번역자의 의도대로 감정이 흘러간다는 것도 알았다. 번역이란 것이 순간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선 더욱더 번역에 대한 난감함을 알았다. '번역이란 무엇인가'란 단순한 듯한 질문을 제목으로 하는 아주 심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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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번역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하 듯 번역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먼저 알아봤다. 번역 :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아주 간단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난해하면서도 어렵다.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번역이란 것을 너무 어렵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할테다. 하지만 한언어로 표현된 것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 뜻을 통하게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순간 번역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 뒤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번역론이 어떤 이론들을 규합하여서 뭔가를 집대성 해야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것을 연구해야하나?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번역에 대한 연구에 힘쓰고 있는 걸까? 순간 내가 왜 이책을 받아서 읽었나 하는 조바심도 났다. 물론 번역이란 것도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좀 더 편안하게 번역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안되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난 후 작가님의 후기를 보았다. 그래 그분은 논문을 쓴거다... 본인도 인정한단다. 쉽지 않은 난해한 표현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나처럼 번역에 대한 것을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기엔 사실 꽤 어려운 책이다. 다만 번역이란 것을 실상활에서 자주 접하고 살아야하는 요즘같은 시대엔 한번쯤은 읽어봐야하지 않나란 생각은 또 들었다. 특히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을 볼 땐 번역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현저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기본적인 번역에 대한 이해는 필요한 듯 하다. 그래서 과거의 번역과 비교를 해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 모임에서도 외국 소설들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경우에 번역이 이상하여 전혀 쌩뚱맞은 상황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단 이야길 종종 한다. 그래서 한명의 번역가는 그 나라의 정서까지도 이해하고 문화적 표현까지도 섭렵해서 번역을 해줘야 한다고 이야길했었다. 그만큼 번역이란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번역이란 것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까지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더욱 주의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은 그것을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나라들이 제일 먼저 했던 작업과 연관지었다. 작가님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치가 자행했던 유대인들의 문화 파괴와 언어 말살을 예로 들었다. 특히 홀로코스트에 대한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글과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을 예로 들었다.
사실 이부분에선 작가님이 예를 다른 것도 추가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가님은 일본인이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 특히 우리나라에 자행했던 많은 일들 중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쓰게 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많은 사료들이 있었고 증언들이 있었다. 그것들 또한 좋은 예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언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아주 민감한 사안일테다. 그런 것을 예로드는 것은...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저 단순한 것을 생각하는 독자의 한사람으로 느낀 점이다. 이 책이 얼마나 학문적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떠오른 생각이니 그냥 한번쯤 그렇구나하고 이해해 주시길~
우린 원본과 번역본이 100%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읽어 내려갈 때 막힘없이 쭉 읽히면 좋은 번역이라 말한다. 매끄럽다 느껴지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다라 느낀다. 그래서 각각이 담고 있는 정서를 충분히 서로에게 녹아나게 했을 때가 진정한 번역이 아닌가 싶다. 그걸 가로막고 일방적으로 무언갈 주입시키려 한다면 그건 나쁜 번역이다. 왠지 번역이란 작업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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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의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번역'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넓게 '번역'의 범위를 확장시켜 조망한 번역 철학서쯤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책, <번역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번역이란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의 이론을 분석하는 등의 작업으로 확대된다. 생소하고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론들이 등장하여 번역을 여러 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몇 세기에 걸쳐 번역은 유럽에서 소비되기 위한 언어로의 일방통행 번역이었지 문화의 상호 교류는 아니었다. 유럽의 규범이 문학 창출을 지배하였고, 그 규범에 따라 수용가능하다고 판단된 텍스트만이 번역의 대상이 되었다. (......) 번역이란 종종 폭력적인 행태이기도 했다. 나아가 식민화 진행을 위해 번역이 한 일은 명백하다. 식민지의 은유로서 번역은 세계 지도 곳곳에서 (제국의 복제물로) 쓰이고 있다. 번역은 지배자가 피지배자 사이의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는 이론이 인상적이었다. 제국주의의 도구로, 지배자의 권력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례가 있는데 저자는 오히려 번역이 이런 것들을 타개하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는, 번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중심의 단일 역사를 다시 쓰기, 다시 읽기를 통해 해체시킨 후 현 시점에서 다시 쓰이고 읽히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를 통해, 번역의 또 다른 가능성을 들여다보자는 주장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저자가 번역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어떤 관점보다 홀로코스트론에 상당히 많은 분석을 투자한 듯싶다. (홀로코스트관련 도서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책에 소개된 작품중 하나인 <번역에서의 상실: 새로운 언어로 살아가는 삶>은 2세대 홀로코스트인 에바 호프만의 자서전인데, 번역과 홀로코스트의 접점에 대해서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호프만은 이 자서전을 통해 자기자신을 타자로 독해하는 '자기번역' 을 시도하는데, 이 번역에 홀로코스트 이후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부재와 상실을 담아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자기번역'의 치유를 통해, 자신이 중심인 동시에 주변부 존재라는 인식을 언어화했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현재에서 번역되어, 우리로 하여금 반성의 자세를 요구하게 만드는데, 이 또한 앞서 언급한 과거를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자는 번역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홀로코스트론을 심층깊게 분석한 이유는 아마 우리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의 새로운 번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 같다. 모든 것은 홀로코스트에 다다른다. 그로부터 60년, 그 충격이 깊이 각인된 우리에게 홀로코스트는 결코 끝나지 않는 현재이다. 시대 속에서 과거가 멀어지면 갈수록, 우리 의식에는 홀로코스트가 선명하게 자리잡는다. 역사의 이면을 파레쳐 홀로코스트가 어디서 시작하였으며 무엇을 가져왔는가.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그 부조리의 연결선을 거슬러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솟구친다.
저자의 말에서도 언급되지만, 이 책은 논문을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문장이 난해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나 역시도 난해한 부분에 자주 봉착했고 같은 문장을 여러번 읽어야 했던 적이 꽤 있었는데, 저자가 새로운 번역 이론을 소개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하는 욕심을 엿보았기에 인내를 가지고 정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번역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일면과 이론을 습득하고 이 시대를 진지하게 조망해 볼 좋은 기회였다. '번역'을 새롭게, 인문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상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경험을 해 보고 싶은 사람에겐 상당히 좋은 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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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도 이 책을 읽겠다고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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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세계 문학에 빠져 있을때는 도서관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가 쓴 책들을 빌려 방학 내내 읽었습니다. 사람 이름도 길고 본명 외에 다른 이름도 써서 처음 읽을때는 누가 누군인지 헷갈렸는데 두번째 보다보니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네요. 그 다음에는 일본 현대 문학 작품들을 읽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등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은 막힘없이 잘 읽히는데 어떤 책은 뭔가 어색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바꿔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쓴 원저자 뿐만 아니라 번역자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네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번역본으로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저자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역할도 매우 큰 것 같아요. '번역이란 무엇인가' 는 번역론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네덜란드와의 교역만 허락했는데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의 앞선 문명이 들어오면서 난학(蘭学)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번역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왠만한 책들은 모두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 책을 쓴 일본인 저자도 번역론을 전공하고, 실제로 일본어로 번역한 책도 있습니다. 번역은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번역에도 힘의 헤게모니가 들어갈 수 있네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열었고, 영국은 본격적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효율적인 통치와 의사소통의 문제에 직면했는데 지배 국가의 관점에서인지, 피지배 국가의 관점에서인지에 따라 확연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네요. 현대에 탈식민주의에 대한 논란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문학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특정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문학과는 달리 세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특정 언어를 공부해서 모두가 원어로 읽기는 불가능한 만큼 여기에서도 변역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각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의식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네요. 처음에 제목만 보고 번역이 무엇인지 쉽게 풀어쓴 책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번역론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쓰고 있어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 않았네요. 번역은 단순히 글자 대 글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문장이 가지는 의미를 살릴 수 있어야 하고 누가 어떤 관점으로 번역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번역론 연구자들의 이론들을 살펴보면서 설명하고 있어 외국어 학과 학생이나 통번역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읽어야 해서 좀 어려울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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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가 원작을 잘 옮긴 번역가의 덕분으로 해외에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길 바라는 마음에 비해, 제대로 된 번역가의 육성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해외문학들은 모두 번역서였지만, 번역가에 따라 내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작가의 오역으로 맥락이 끊어지기도 했죠. 작가가 표현하는 내용을 얼마나 잘 옮겨내는 가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 번역이겠지요. 글을 읽는 독자의 시각에 맞춘 잘된 번역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번역론적 해석이 궁금했습니다. "언어의 절반은 이미 타자의 것" 번역이 시작된 배경과 의미를 유럽 중심주의와 언어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학문과 문학적인 의미를 벗어나 역사적인 배경까지 고려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제국의 정복자들이 식민지에서 단순히 의사 전달만이 아닌, 복종케하고 협력적인 대상을 만들기위해 통역을 이용한 사실에서는, 일제 식민지의 교육방식이 떠올라 섬뜩해집니다.
번역을 사기그릇의 파편을 합치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이 맘에 들어요. 번역은 단순히 파편을 완성된 그릇으로 맞추기 위해 미세한 파편들이 서로 닮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원작과 번역의 관계를 보다 큰 언어의 파편으로 설정한 것이 재미있네요.
그리고 번역론에서 문학작품의 번역이 전개되는 세 단계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원전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원문을 대체할 수있는 번역의 가치를 형성하는 단계"가 가장 고수의 경지겠지요. 실제로 오번역을 가끔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번역가가 원문의 단어 의미를 혼동하여 완전히 어색한 내용이 된 것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낯선 것과 고유한 것, 알려진 것과 미지의 것이 상호 접근이 일어나는 완전한 사이클이 마지막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라는 괴테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결과적으로, [번역이란 무엇인가]는 기대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분석적이었습니다. 인용한 의견과 문장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깊이가 있고, 번역이 가진 의미와 배경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해준 내용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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