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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7. 수.
현재 나와있는 모악시인선의 시집은 모두 9권인데, 이 시집이 일곱 번째로 나온 하기정 시인의 시집이다. 먼저 구입을 했는데, 빠져있던 세 권의 시집을 아자아자님께 이벤트선물로 받았었기에 먼저 리뷰를 올렸고, 이제 남은 이 시집의 리뷰를 올리려고 한다. 그러면 모악시인선의 리뷰는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올리는 것이다. 다음 모악시인선은 언제 또 나오려나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하기정 시인은 처음 만나는 시인이다. 전북 임실 출신으로 1970년생이다. 2007년에 5.18문학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제 7회 작가의 눈 작품상도 수상한 시인이다. 이 시집이 첫 시집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모악시인선의 시집들 하고는 많이 다른 이미지와 표현방법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대학 때 배운 형식주의의 시초가 된 러시아의 빅트로 시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 란 기법이 떠올랐다. 일상적이고 익숙해서 너무도 낯익은 사물이나 생각들을 낯설게 만들어서 완전 새롭게 보이고 느끼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을 말한다. 시인들의 눈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깊이있게 주변을 들여다보기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느끼기도 해서 그것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깨달음도 주고 감동도 준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집을 읽을 때 언제나 낯익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시인만의 낯선 시선을 종종 느끼곤 한다. 그런데 하기정 시인은 다른 시인들의 시집들보다 조금 더 낯선 느낌이다. 상투적인 표현은 거의 없고, 생각의 전복을 통해서 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라는, 낯선데 더 낯선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애초에 유머나 웃음은 없고, 그저 언어와 언어의 부딪힘으로 새롭고 투명한 감각을 일깨우며,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도 말이 되는 느낌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한 번 읽을 때 뭐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 무릎을 치게 되기도 한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악시선집의 시집이다. 처음 만나는 하기정 시인의 시집 속으로 들어가보자.
접는
접으면 나는, 날아가는 비행기 접으면 너는, 너라는 배 -- 이 종이배를 밀고 바다로 나아가야 해 다리는 접으면 생기는 무릎 접으면서 주저앉는 의자 의지할 데라곤 여기밖에 없는데 -- 이 통증을 베고 누워야 해 재치기 한 번 했을 뿐인데 우산을 접으면 줄줄 새는 물 나에게 아름다운 상처를 준 고양이의 발톱을 그러니까 사랑하자 이 고요한 은신처 안에서 비밀의 상자를 접는 일 밖에는 빈 상자 안에 빈 상자를 채워 넣는 일 밖에는
두 점의 폐곡선이 만날 가능성보다 당신과 나란한 평행선이 만날 수 있기를 접는 --- 13p.
윗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쓰기를 접는 행위로 말하고 있다. "고요한 은신처 안에서 비밀의 상자를 / 접는 일 밖에는 빈 상자 안에 / 빈 상자를 채워 넣는 일"이야 말로 스스로를 고독 속에 가두면서 치열하게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함이 아닐까. 접고 접히는 고통 속에서 나오는 한 줄의 시, 그 접힌 종이에 적힌 고통의 시를 읽으며 독자는 시인의 비밀에 조금씩 가 닿는 것은 아닐까. 시인이 접을수록 독자의 생각은 새롭게 펼쳐지는 이 역설. 평행선은 만날 수 없지만, "당신과 나란한 평행선이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시인은 오늘도 접고 또 "접는"다.
미세먼지주의보
경보음을 내며 그는 비관론자처럼 온다 예외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디든 비집고 들어올 수 있으니까 제법 꽃가루처럼, 재치기를 하면서 관료주의 사회의 편리성을 예찬하면서 편승에 기대어 편대를 이루며
그게 그의 뛰어난 자산이니까 비관론자들이 기르는 낙타는 사막 한가운데서 우물을 판다 없다, 소용돌이처럼 정지선이 틈입과 잠입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보다 전면적으로 빗물과 눈덩이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총체적으로 오고 있는 것 낙관론자들이 기르는 낙타는 바닷물을 마신다
언제든 비대해질 기미를 숨기면서 온다, 수제비처럼 뚝뚝 끊으며 허파꽈리든 어디든 달라붙는 점성을 회복하면서 본질은 수박의 검은 줄무늬처럼 또렷하니까 머리카락 사이에도 숨을 수 있으니까 더 더 더 작은 먼지들의 방
빗방울이든 눈송이든 야합할 수 있으니까 꽃가루인 척 비명도 없이 횡사도 없이 급소를 노리면서 온다, 정치뉴스를 가려주는 암막커튼처럼 --- 26p. - 27p.
완전 기가막힌 반전의 시다. 제목이 <미세먼지주의보>라서 미세먼지와 환경에 대한 시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연에서 아, 하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 정치풍자 시다. 미세먼지가 "꽃가루처럼" , "빗방울"처럼, "눈송이"처럼 야합을 하고 우리들의 코와 목, "급소를 노리"는데, 그게 마치 "정치뉴스를 가려주는 / 암막커튼처럼" 오고 있다는 것. 요새 추위와 더불어서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가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칼칼한 목 때문에 고생들을 하는데, "재채기를 하면서" 혹은 "편승에 기대어 편대를 이루며", "빗물과 눈덩이로 체질을 바꿔가면서" 다양하게 변신을 하고 "야합"을 하는 정치권을 대놓고 나무라지는 않고, 마지막에서 슬쩍 한마디만 던져주는 이 센스. 시인만이 가능한 표현인 것 같다. 미세먼지와 "정치뉴스를 가려주는 / 암막커튼"의 묘한 닮음이 입맛을 씁쓸하고 텁텁하게 만든다. 언제쯤이나 정치뉴스가 맑고 깨끗한 공기처럼 우리를 상쾌하고 통쾌하게 해줄런지...
사이
한때 적이었던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좁은 골목길에서 어쩌다가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갈 때 구월에서 시월로 가는 모퉁이에서 오동잎의 서늘한 낙법을 들을 때
사슴의 뿔과 사슴벌레의 집게발가락 땅강아지의 앞발과 강아지의 꼬리와 개복숭아와 개살구 스탠드가 비추는 흰 손가락과 동그란 가로등 불빛에 동그랗게 떨어지는 눈의 흰 뼈 심장 위에 얹은 오른손과 보폭을 재는 왼발
시인의 말과 시민의 발 조지 오웰의 농장과 쌍방울 메리야스의 겨드랑이를 박고 있는 미싱의 공장과 그날 게르니카의 암말과 그날 노근리 암소의 창자빛 붉은 울음과 점등과 점멸과 소멸의 자화상을 그리는 그림자
차이를 말하려는데 자꾸만 사이가 가까워지는 당신과 나는 듬성듬성 간격이 먼 돌다리에 서서 망설이는 사이에 --- 52p. - 53p.
시의 제목은 <사이>이고, 시인은 "차이를 말하"고 싶은데 자꾸만 "사이가 가까워"진다고 한다. "스탠드가 비춰주는 흰 손가락과 / 동그란 가로등 불빛에 / 동그랗게 떨어지는 눈의 흰 뼈"의 사이에는 뭐가 있을까. "시인의 말과 시민의 발 / 조지오웰의 농장과 / 쌍방울 메리야스의 겨드랑이를 박고 있는 / 미싱의 공장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다를 바 없는 미싱공장의 세태를 풍자하고 싶었을까. 이 시에서는 각자 떨어져 있으면 아무 상관도 없는 단어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익숙한 듯 하지만 낯선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양민학살의 상징인 "게르니카"와 "노근리"를 대비시키며 그 "사이"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안어울릴 듯 어울리며 상관없을 듯 상관있는 단어와 상황 "사이"에서 시인은 개성 넘치는 상징과 모호한 표현으로 독자를 갸우뚱하게 한다. 애매한 시어들 "사이"에서 시인은 자꾸만 질문을 하는 듯하고, 시인이 벌여놓은 판에서 독자는 방황하면서 "망설이는 사이에" 어느새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하다.
밤의 귀 낮의 입술
우리는 전생이라는 말 대신 썩 괜찮은 이별이라고 불렀어야 했다
거기 모조리 두고 온 것들 온통 귀로 물든 밤을 낮의 입술이 다 지워서는 지샌 밤의 눈이 다 떠서는 감을 때까지
잘 자, 라는 말 대신 썩 괜찮은 악몽이라도 꾸었어야 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 엄두만 내다가 낮의 입술이 밤의 귀를 다 열어서는 읽을 때까지
우린 왜 자꾸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만 깊은 우물을 파는지
물속에 두고 온 것들이 가뭄에 모조리 뼈대를 드러낼 때까지 입술을 끔뻑끔뻑 달싹이는 붕어처럼 --- 95p.
이 시집의 표제작인 [밤의 귀 낮의 입술]이다.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는 무슨 뜻일까 했었는데, 아무래도 밤에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낮에는 입술을 열고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작은 소리도 다 들리는 밤, 그 밤은 귀를 열고 있다. 그리고 사람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낮의 입술이 밤의 귀를 다 열어서는 / 읽을 때까지" "악몽이라도꾸"고 싶은 시인이다. 얼마나 낮에 많은 말들의 홍수 속에서 살았기에 그걸 다 "지워"버리고 싶었을까. "우린 왜 자꾸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만 / 깊은 우물을 파는지" 의문을 갖는 시인이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도 우리는 집에 와서 돌이키며 그 의도를 추측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안좋은 쪽으로 생각이 기울면 "깊은 우물을 파"듯이 자꾸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잠을 설치게 된다. <밤의 귀 낮의 입술>은 우리들의 팔랑거리는 얇은 귀와 생각없이 쏟아내는 가벼운 입술의 또다른 해석으로 보인다. 결국은 귀도 입술도 다 말과 소리에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귀에 들려온 수많은 소리와 말들, 그리고 우리가 입으로 뱉어낸 수많은 소리와 말들, 그 소리와 말들은 결국 "전생"이 되고, "악몽"이 되고, "입술을 끔뻑끔뻑 달싹이는 붕어"가 된다. 소리와 말들은 결국 밤에게 귀를 만들어 주고 낮에게는 입술을 만들어주고, 시인에게는 시 한 편을 선물했다.
저녁의 이사
저녁에 이삿짐을 꾸리는 고단한 새의 발톱을 본 이 있다 달빛이 무거워 오동꽃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나무둥치 어디쯤 세간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내려오다 문득 멈출 때 바람이 새는 빈 방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듯 덜커덩거릴 때 비죽 튀어나온 숟가락의 어금니가 아려오는 곳 늦은 밤 빈 부리로 돌아오는 어미 새의 눈빛 같은 것 그때 둥지를 엮었던 마른 풀잎의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다 둥지는 바람 속에서 흙의 색을 닮았다
새들에게 마지막 보루란 멀리 날아야 하는 공기주머니를 어쩌면 밤마다 몰래 부풀려 왔다는 것
팽팽한 기낭을 어찌할 수 없어 오동나무에서 들메나무로 이사하는 동안 새들은 국경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사 온 저녁의 첫 밤을 짊어지며 서로의 허전한 내장을 부리로 쪼아대다가 좁은 어깨를 포개고 잠을 청한 날들 달빛을 비추면 동사무소 서랍엔 씨를 발라낸 마른 버찌들이 달드락거릴 때 깃털의 젖은 물기를 말리곤 했을 것이다 어떤 색깔의 공기를 만나도 부패할 일 없다는 듯이 그 아침 내내 간밤에 꾼 꿈을 점검하다 등본을 새긴 줄이 늘어갈수록 문서의 귀퉁이가 바람에 닳고 있다는 것을 안다
들메나무 묵은 가지에 꽃들이 여러 번 피어나듯 몇 번의 첫눈이 또 쌓인다 긴 노정을 위해 빛이 바랜 세간들을 단단히 묶어둔다 공기주머니가 팽팽하다
새들은 오늘밤 국경을 넘을 것이다 --- 110p. - 111p.
살짝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행 한 행이 너무 예쁜 시다. 시인은 왜 저녁에 이사를 할까 했는데, 이사를 하는 것은 시인이 아니라 새들이다. 국경을 넘어서 멀리 가는 새들이 이사하는 날에는 "달빛이 무거워 오동꽃이 쏟아지는 밤이"니 얼마나 밝다는 말일까. 무거울 정도로 쏟아지는 달빛 밝은 밤에 이사하는 새들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바람이 새는 빈 방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듯 덜커덩거"리기도 하고, "이사 온 저녁의 첫 밤을 짊어지며 서로의 허전한 내장을 / 부리로 쪼아대다가 좁은 어깨를 포개고 잠을 청한 날들"을 기억하며 회상에 젖기도 하고, "긴 노정을 위해 빛이 바랜 세간들을 단단히 묶어"두기도 하며, "멀리 날아야 하는 공기주머니를 / 어쩌면 밤마다 몰래 부풀려"오기도 했기에 "팽팽"한 공기주머니는 "마지막 보루"로써 든든하다. 세간살이 짊어지고 팽팽한 공기주머니로 "국경을 넘"어 이사를 가려는 새들의 모습에 왠지모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또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운명처럼 떠나야 하는 철새들은 "오늘밤 국경을 넘"기 위해 힘차게 날개를 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새들의 안전한 이사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 새로운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시를 읽을수록 감칠맛이 저절로 살아난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적절한 모호함이 시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미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라고 상찬했다. 문태준 시인은 “하기정 시인의 이 시집에는 신기하고 매력적인 질문들이 그득하다. 빤한 세계, 상투적인 세계를 뒤집어 ‘낯설고 위험한 세계’가 위로 솟아오르게 한다.”면서, “싱싱하고 신선하고 특별한 상상력”을 지닌 하기정의 시들은 “세세하고도 생소한 질문들을 통해 예외와 격외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한다.”고 평가했다. 시집의 해설을 쓴 조동범 시인은 하기정 시인의 시에 대해 “낯익은 듯 낯설고, 낯선 듯 낯익은 풍경을 제시하며 개성적인 시적 영토를 우리 앞에 선보인다.”고 하면서, “그의 시는 이런 양면적 풍경을 매개로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한다. 그 어떤 익숙함에 기댄 채 낯선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낯선 정황을 익숙함으로 위장하기도 하며 우리의 감각을 새로운 지점으로 견인한다.”고 정의했다.
이 시집은 한 번 읽었을 때는 솔직히 낯선 표현과 상황들의 시가 와닿질 않았고,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여러 번 읽으니 차츰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시도 몇 편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해는 안되는데 시가 너무 좋은 것도 있다. 시를 꼭 이해해야 할까. 시는 독자가 읽었을 때 이해를 떠나서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본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쓸 수도 있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싯구가 떠올라서 쓰기도 한다는 걸 생각하면, 독자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설령 시인의 의도와는 완전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일지라도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하기정 시인은 다양한 사물과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낯선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묘하게 시의 낯섦에 빠져들고,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생각하지 못한 색깔 혹은 방향으로의 특별한 상상력은 시인의 특권이기도 하다. 힘들게 자신을 "접"고 접으며 단련을 하고, "차이"보다는 "가까워지는" 사이가 되고싶어 하고, 저녁에 이사하는 새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은 어느새 우리 곁에 친밀한 친구같이 여겨진다. 밤의 귀도, 낮의 입술도 조금만 듣고 조금만 말하기를 바라면서 시인은 우리들의 불면까지 염려해주고, 저녁에 이사하는 새들을 보며 나름 응원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시인의 마음에 평행선 같은 독자가 있다면 그 마음도 잘 "접"어서 부디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인의 말을 끝으로 리뷰를 마친다.
시인의 말
아름답다고 착각한 이 모든 불온한 불순물을 당신이 가져가서 버려준다면 꽤 괜찮은 이별이겠다.
2017년 8월 하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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