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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변화한다.-『정치의 발견』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변화한다.-『정치의 발견』" 내용보기
「1973년 -. 뭔가가 달라질 줄 알았다.」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   진보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은 아마 『20세기 소년』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켄지와 같은 감정일 것이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로큰롤이라는 장르를 접한 후에 그 충격을 남에게 전달하고픈 감정 말이다.   「제4중학교에 처음으로 로큰롤이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달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변화한다.-『정치의 발견』" 내용보기

「1973년 -. 뭔가가 달라질 줄 알았다.」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

 

진보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은 아마 『20세기 소년』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켄지와 같은 감정일 것이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로큰롤이라는 장르를 접한 후에 그 충격을 남에게 전달하고픈 감정 말이다.

 

「제4중학교에 처음으로 로큰롤이 울려 퍼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4중학교의 누구도 T-REX의 ‘Twentieth Century Boys’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비단 로큰롤이나 정치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내가 예전에 친구네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그 집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할 일도 없고 하니 비디오나 빌려 보기로 했다. 내 친구를 위시한 그룹이 보려고 했던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굳이 그 영화를 비난하며 『유주얼 서스펙트』를 강권했다. 나는 이 영화가 절대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비디오를 시청하는 내내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기에 바빴고 그들은 전혀 재미있어 하지 않았다.

 

진보정치를 시작하는 동기가 정치적 다이내미즘이든 혁명운동의 전술의 일부이든 정치판에 뛰어든 진보정치가들의 가장 초보적인 실수는 『유주얼 서스펙트』를 강권하는 것이다. 분명히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력과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력이 어우러진 이 영화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 영화를 강권하는 순간 보통의 액션 스릴러물이 될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실패를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그와 똑같은 실패들을 하게 된다. 그런 실패를 겪은 후에 우리는 두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유주얼 서스펙트』는 불후의 명작이니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그 바보 같은 친구들이 그 명작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고 자위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내가 아는 지식을 나열하며 상대방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나는 고립되고 나의 친구들은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둘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왜 십분 발휘하지 못했을까 고민하고 보다 나은 접근 방식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며 내가 아는 지식이 세계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유주얼 서스펙트』가 명작에는 틀림없지만 명작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교조주의란 원래부터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논리체계의 완결성에 대한 맹신이 교조주의를 부르는 것이다.

 

이 책은 진보정치가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와 회의에 관해 명쾌하지도 않고 마음 불편하게 하는 해답 비슷한 것을 제시하는 책이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근본이 한 가지 이상향으로 이끄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책인 것이다. 진보정치가들의 대부분이 젊었을 때 혁명정신에 봉사하고 그것을 위해 밤낮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현장에서 실천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의 희생이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었고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면 젊음을 혁명운동에 몸 바친 사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할 것이다. 그러나 박상훈은 과감하게 그렇게 말한다. 그들의 아름답고 선명한 비타협적인 정신이 오히려 그들의 족쇄가 될 것이라고...

 

혁명운동의 전선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배웠다. 세상 모든 것은 계급 투쟁의 변형이라고... 그렇기에 적을 분명히 하고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의 개량화를 비판하며 파국의 그 순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정치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정치와 민주주의는 개량주의의 변형이며 결국 현실의 진보와 개량이 오히려 혁명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옳지 않았다. 정치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혁명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민중의 삶을 개선시키고 건전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계급투쟁으로 치환되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운동이 세상의 축소판은 아니었으며 현장운동가들의 순수함이나 비장함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운동의 한계와 틈을 발견하고서야 정치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진보세력에게 정치란 바로 그 곳에서 발견된다. 혁명운동에서 정치가 실종되었지만 진보정치가들은 정치를 다시 발견해서 바로 그 정치가 민중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무언으로 웅변해야 하는 것이다. 혁명운동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직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막스 베버의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베버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인간이란 동물이 근본주의에 쉽게 경도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의 선명성에 너무 쉽게 고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선명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진보정치가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들에게만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강퍅해진 운동가들의 마음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시대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욕망만 판치는 말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상 욕망이 판치지 않고 말세가 아닌 시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심지어 평화의 시대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살육과 부조리가 횡행하고 있었다. 계속 혁명의 언어와 아무도 듣지 않는 이상을 강권하기보다 현실 속에서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류층의 행복한 웃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정치인 것이다.

 

서울시 시의원인 여성 정치가 심재옥 씨의 말이다.

 

“정치를 만난 것은 인생의 행운이었어요. 노동운동을 했을 때는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많았어요. 길 가다 전경들을 보면 노동자들에게 폭력이나 일삼는 죽일 놈들이라 생각했죠. 공무원들을 보면 다 도둑놈들이니 모두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늘 불만에 가득 차있었고 변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괴로웠죠. 내가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 너무 끔찍해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그들에게서 배울 게 얼마나 많은지, 좋은 공무원들 덕분에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내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 것들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정치는 내 인생을 바꿔 놓았어요.”

 

켄지가 방송실을 장악하고 로큰롤을 틀었던 그 순간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단지 켄지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진보정치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보정치가들이 보다 부드러워지고 자그마한 차이를 더 크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을 것도 없다. 진보의 외연을 더 크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나와 다른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희정과 심상정, 이정희가 서로 다른 당이기 때문에 선명성을 부각하며 죽도록 싸울 필요가 없다. 그들 모두 훌륭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비전 또한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 어느 당에나 있는 교조주의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필연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는 크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에 흔들리는 순간이 바로 정치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지금 상황에서 진보정치가들과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 모두 정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엘리트주의의 산물이 아님을 인식하고 수시로 있는 선거가 국민들의 축제가 되고 자신들의 의사 표시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라도에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당선되지 않고 경상도에서 민주당이 정치판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지역민들의 문제가 없지 않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각 정치세력들이 국민들에게 의미 있는 대안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지난 대선에서 가장 큰 목소리는 이명박 지지도 아니었고 반 이명박도 아니었다. 바로 대안 없음이었다. 이 대안 없음에 절망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욕망의 목소리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것이다. 국민들은 선량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들이라고 해서 무슨 추악한 괴물도 아니고 날개달린 천사도 아니다. 결국 국민과 정치가가 서로 의사소통하고 서로의 요구를 확인하며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들을 기꺼이 투표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행위들이 흥미진진하게 이루어지는 순간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를 피웠던 위대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란 칼 포퍼가 말했던 것처럼 영웅이나 악당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안착시키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순간순간마다 노력해야 하며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부패와의 전쟁은 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부패는 수십, 수백 년간의 지난한 투쟁으로만 척결할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어느 한 순간 방심하면 순식간에 후퇴한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수십 년 후퇴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마음이 바로 민주주의의 후퇴 자체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좀 더 살만 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서로 부드러운 언어로 토론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유용함을 믿고 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때만이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세상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을 올바로 이끄는 힘이 바로 정치이다.



m*****a 2011.02.21. 신고 공감 17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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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파들아,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파들아,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보기
‘정치’라는 단어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막장, 밀실, 야합·협잡, 거짓말·막말, 폭력 난투극, 정치자금·비자금, 뇌물수수, 이권개입... 당장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셨다면 그다지 우호적이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인들과 술이라도 한 잔 걸치며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니 이번 설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
"“진보파들아,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보기

 

‘정치’라는 단어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막장, 밀실, 야합·협잡, 거짓말·막말, 폭력 난투극, 정치자금·비자금, 뇌물수수, 이권개입... 당장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셨다면 그다지 우호적이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인들과 술이라도 한 잔 걸치며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니 이번 설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뉴스를 보다가 ‘정치인’과 ‘정치’를 안줏거리를 삼으시지는 않았나요? 그러면서 “다 똑같은 도둑놈들!” “대체 해 준게 뭐야?” “선거 때만 굽신굽신 지랄들 하지~” “다음엔 절대 투표 안해!” 등등과 같은 이야기도 절대 빠지지 않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치는 우리들의 사회, 경제, 문화 등 일상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지요. 애써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와 ‘정치가’의 현실은 지극히 부정적인 영역이자 대상입니다.

 

‘무관심도 정치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현’이라거나 ‘정치에 연연하지 않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쿨(Cool)한 태도’가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거나 옹호받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한다”고 국민 의식을 문제 삼기도 합니다.

 

혹자는 “국민들이 이해와 요구,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으로 만들어 내야하는 정치 세력과 정당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정치 혐오증을 유발시켜 정치를 국민 대중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자신들만의 성체, 기득권을 보호·유지하려는 술책”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인간과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면서도 그 수단으로서 강제력이라는 ‘악마적 수단’을 회피할 수 없는 정치의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정치가란 정치의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으며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라고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을 빌어 설명하고 있답니다.

 

따라서 평균적인 인간적 한계인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의견 내지 이견을 존중하는 자세,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성을 갖게 해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면서요.

 

또한 갈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며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말을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고 동원하며 통합하는 현대 정치의 핵심기구가 바로 정당이며, 그런 정당을 통해 갈등의 수를 줄이되 갈등의 규모는 사회화해서, 가장 바람직한 공익이 뭔지를 정당들이 서로 달리 대표하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두 개 내지 세 개 정도의 대안이 선거에서 경합하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민주주의의 조건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정당이 반드시 민주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반드시 민주적이어야 하는 것은 정당 체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정치의 핵심은 개별 단위(unit)로서 하나의 정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들 즉 단위들 사이의 관계 양식을 말하는 정당들의 체계(system)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시민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에게 있는 것이며 지금껏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민주화 투쟁’이라도 벌여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는군요.

 

그러면서 정치에 반하는 혁명적 대기론, 정치적 소극성의 결과를 서구 진보 정당들의 정치적 경험을 사례로 들며 진보파를 질타하고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라는 대의 민주주의라고, 이를 잘하기 위해 좋은 정당을 발전시키고 적극적으로 정당 대안을 통해 투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것은 적극적 참여와 실천의 공간을 넓히는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가능주의(possibilism), 나날이 성장하는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점진주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진보 정치를 하거나 준비하는 이들에게 대규모 정치 공동체를 움직여야 하는 이상 체계와 조직이 필요하고, 그만큼 기능과 역할에 따른 위계 구조를 갖지 않을 수 없기에 국가와 정당, 당파성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권위, 권력, 국가, 정당, 당파성, 리더십의 좋은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있는 것이지 그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정치 자체를 없애 버리는 접근이 아니라며 통치자, 지도자의 중요성,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보 정치도 정치이니, 정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새롭게 변화시킬 것을 주문하고, 진보 정치가 진보적이되 좀 더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되 좀 더 인간적이기를 바라면서 진보파의 딜레마인 ‘도덕주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도덕성이 강조되는 정치도 없지만 한국 정치가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은, 한국의 정치가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성을 따지는 동안 실제 개선해야 할 정치의 현실을 놓쳐 버리고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정치 현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의 체계와 구조를 좋게 만드는 것만이 시민사회 내지 생활 세계의 도덕적 기반을 널리 확대할 수 있다며 진보파가 이런 관점을 갖지 않는 한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라고요.

 

 

하지만 전반적인 책의 내용과 의도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겠으나 모자란 제 생각에 못내 아쉬운 구석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서 기존의 정치 세력·정치가와는 차별화된,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강요받고 있는 진보파 딜레마의 책임을, 혁명론과 운동론이라는 대의와 이상, 도덕주의 활동을 중심에 놓고 정치의 중요성을 발견하지 못한 ‘反정치주의’에 있다라고 돌리는 것은 그들에게 조금은 억울(?)하고 섭섭(?)한 평가는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더구나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정당 체계와 구조, 정치가에게서 찾으며 좋은 정당·지지자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현재의 한계와 전제 조건을 나열하듯이 두루뭉술 넘어가면서 정작 진보파가 그런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정치 현실, 사회적 분위기는 외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말이지요.

 

또 민주주의를 위한 좋은 조건, 정당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과 문제점을 찾아 모아내고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 아젠다 셋팅(agenda setting)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보 운동의 존재와 역할, 의의意義를 왠지 축소하거나 저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구요.

 

왜냐하면 저자의 지적처럼 사회 갈등을 조직, 동원,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당이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비춰 볼 때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정당 및 정치 세력과 사회 운동 세력들 간의 정책 연대, 유기적 결합이지 않을까요?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말입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 돌이켜보건데, 진보 운동에도 싹수 있고 사람 냄새 나는, 인간미 넘치던 사람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이들이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그들은 정치를 하기에는 “정치적 이성”을 갖추지도 못했고 “내적으로 무력하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답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주위를 돌아보면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가 자신의 삶과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자각으로 냉소주의와 중립주의라는 자기합리화를 극복하고, 정치를 정당과 정치가의 영역에서 ‘인민 대중(민중, 시민)’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대한민국 ‘정치’와 ‘정치가’에게 환멸과 회의를 느끼고 외면하고 싶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보다 더 나은 삶의 영위에 대한 가능성을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면 말입니다.

m***5 2011.02.21. 신고 공감 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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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가 아니라 정치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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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책을 누군가와 같이 읽은 것도 아니요, 이념서나 철학서를 읽은 것도 아니다. 우연히 대학 4학년 때부터 어떤 주간지를 꾸준히 보기 시작했고 정치와 관련된 책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역사나 세계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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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책을 누군가와 같이 읽은 것도 아니요, 이념서나 철학서를 읽은 것도 아니다. 우연히 대학 4학년 때부터 어떤 주간지를 꾸준히 보기 시작했고 정치와 관련된 책을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역사나 세계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군). 그러나 관심은 많다. 내가 뭔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많은 것뿐이다.

 3년 전에는 매일 속으로 화를 내고 살았던 듯하다. 세상이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당시 상황을 성토하기 바빴다. 모든 것을 보수 탓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단지 화풀이 대상을 미리 정해놓았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실망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아예 포기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진보든 좌파든 지금처럼 하다가는 집권은 커녕 국민의 관심을 받는 것조차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그동안 진보측 사람들의 말이며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니 조금 감이 잡힌다. 그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운동권적 기질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일반 국민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들이 앞에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와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난 촛불집회를 보고 화들짝 놀랐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때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헌데도 여전히 그네들의 고정관념틀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일반 대중과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정치가는 권력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는, 아니 적어도 권력을 위해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나도 은연중에 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기에 '정치가라는 직업은 권력감을 제공한다.'라는 글귀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차피 권력을 잡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권력에 초월해야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생각 아닌가. 그렇다면 권력을 잘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그것과 거리를 두라는 얘기는 아니잖은가.

 '유머와 웃음이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는 말이 왜 그리 공감되던지. 지난 정권 때는 대통령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좌중이 웃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으나 현 정권에서는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진지하게 지시하고 설명하는 장면만 기억난다. 물론 진보도 마찬가지다. 원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만 성토하고 흥분을 잘한단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불평불만만 일삼는 사람처럼 보인단다. 그러면서 막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현재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리지는 못하더라도(대안이 없으므로) 적어도 지지하지는 않는 것일 게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5회로 진행된 강연을 묶은 책인데 꼭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있는 책이다. 정치의 속성부터(어쩌면 내가 가장 오해를 많이 한 게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문제점과 대안까지 골고루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상대편의 잘못을 부각시키며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반해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상대편이 잘못한다는 전제는 똑같지만 적어도 이쪽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의 잘못만 이야기하는 책은 읽는 도중에는 비록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읽고 나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음이 불편한데 비해 이 책은 읽으면서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정치' 이야기에는 으레 정치가가 주였는데 이 책은 정치가가 아니라 순수한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l*****8 2011.03.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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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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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감소 폭이 급해서 지금은 정치무관심을 넘어서서 정치혐오증까지 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치가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할진데 오히려 멀리 한다면 더욱 나빠지기 때문이다. 사람 있는 곳에 정치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정치는 우리 일상의 삶과 뗄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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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감소 폭이 급해서 지금은 정치무관심을 넘어서서 정치혐오증까지 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치가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할진데 오히려 멀리 한다면 더욱 나빠지기 때문이다. 사람 있는 곳에 정치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정치는 우리 일상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이에 무관심과 더 나아가 혐오증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정치 혐오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우리에게 돌아오는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정치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을 갖는다는것은 문제가 아닐 수 앖다. 

 

"정치의 방법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학의 기본 전제는, 정치란 개인의 차원 나아가 운동성 내지 도덕성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갖는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초심’, ‘도덕성’, ‘운동성’과 같은 도덕률이 진보의 영역에서 정치의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접근은 무엇보다도 정치를 현실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p.143)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심상정의 ‘정치 바로 아카데미에서 지난 해 12월에 했던 강의를 모은 것으로 저자는 정치를 부도덕과 타락의 세계로 묘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모두가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가치에 상응할 수 있는 진보정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장에서는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2장에선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3장과 4장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초기 단계에서 진보파들이 했던 정치적 경험을 소개한 뒤 5장에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문제 인식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필자는 절실하게 느꼈으며 이 책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좋은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정치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공부하는 차원에서 읽어보면 도움을 많이 받을것 같은 책이다.



k****0 2011.02.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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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하는 것은 ‘아이들은 왜 느리게 자랄까?’, ‘핀란드 교육혁명’, ‘아이들이 들려주는 행복심리학’ 같은 책을 읽는 것이다. 조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 진다. 나는 그들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될 고령화 시대의 갖가지 문제들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들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국 정치가 주가 되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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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하는 것은 ‘아이들은 왜 느리게 자랄까?’, ‘핀란드 교육혁명’, ‘아이들이 들려주는 행복심리학’ 같은 책을 읽는 것이다. 조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 진다. 나는 그들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될 고령화 시대의 갖가지 문제들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들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국 정치가 주가 되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발견’의 서문에는 나의 우려와 무관하지 않은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것은 왜 정치판처럼 더럽고 추잡한 곳에 뛰어들려고 하는가, 란 질문을 받은 오바마가 했다는 답이다. 오바마는 정책의 우선 순위를 약간만 조정해도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국가적으로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간 나는 정치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 아니 큰 희망을 갖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좋은 정치서를 기다려 왔는데 그것은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세상을 바라는 나 자신의 이론적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정치에 대한 작은 관심이 정치 발전과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아울러 그것이 미래 세대에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의 발견’을 만난 것은 다행스럽고 잘된 일이다.

 

‘정치의 발견’은 박상훈님이 진보파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몇 차례의 강의를 묶어낸 책이다. 잘 알려졌듯 정치의 필요성과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보 정치인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들을 지적한 저자가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인간은 천사가 아니기에 정치가 필요한 것이며 결국 어떤 경우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인간적 정치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정치가라 밝힌 부분이다.

 

정치가도 아니고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마음 깊이 새길 수 밖에 없었던 대목은 자칭 급진파 내지 좌파인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 같다는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성향을 보여왔다. 나는 정치는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격 차원의 문제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을 바르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모든 정치인들 특히 진보 정치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유연한 사고라고 읽었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99 페이지)은 저자의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머와 웃음이 있는 정치에 대한 주문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 정당 정치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임을 방증(傍證)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갈등의 사회화에 대한 주장, 진보 정치 세력의 좁은 입지를 깨어나지 못한 시민 탓이 아니라 그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 둔 점 등은 인상 깊었다.

 

하지만 현 정권 출범 1년을 맞아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상속, 증여세 폐지가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폐지를 찬성한 저소득층들의 뜻밖의 행태(이준구 교수 지음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100페이지)나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종부세 제도에 반대한 것(같은 책 138 페이지) 같은 사례들을 지적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논의의 초점이 진보 정치인들에 대해 맞추어진 책이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시민들이 보수 일색의 현실 정치 질서의 고착화에 일조하는 것은 마땅한 대안 부재로 인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지 내지 지적 불성실 탓에 엉뚱한 세력들에 표를 던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진보 세력은 변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과 정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진보의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161 페이지)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돈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강조한 부분, 진보 세력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온 정치 엘리트 있는 민주주의,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강조한 부분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현실적인 동시에 이성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진보 세력에게 자기의 언어를 가질 것을 주문한 부분은 인문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주문이다. 경직성과 교조적 태도를 비판한 저자의 책을 읽으며 줄곧 내 사유의 유연도를 돌아 보았다. 특히 ‘인간의 정치와 정치적 이성’ 부분을 읽으며 평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그래도 부지불식간에 ‘모른다’는 말을 하기를 꺼려 왔는지 돌아보았다. 과도한 시장 경쟁의 부정적 효과를 비판하는 데에서 나아가 경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한 데까지 나아간 것(173 페이지), 마르크스주의를 민주주의를 시장 경제의 발전에서 찾는 자유주의와 유사한 경제중심주의를 지향하는 체제로 본 것(138 페이지) 등은 정치는 물론 경제와 관련해서도 기억할 만한 대목이다.

 

모든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적 진화(evolution)의 도상에서 개인들은 충분히 무르익은 과일을 수확할 수 있을 때까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마르크스주의를 조롱한 조르주 소렐의 지적은 아프게 여겨진다. 소렐의 지적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한편 정치학을 다룬 책에서 현직 정치인에 대한 실명비판을 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정치 현실을 거론하지 않고 정치학만을 다루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촛불에 대해 밝힌 견해를 현장성의 결여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멀리 보느냐 가까이 보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얇은 책이기에 부담 없이 읽었고 다른 관련 서적들 예컨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절반의 인민주권‘ 같은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자 서평단에 뽑혀 역작을 무상으로 읽은 것에 감사드린다.

m******1 2012.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려있는 정치의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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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있는 정치의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라니 - 진보의 지평을 넓히는 일로서의 정치를 고민해야   후마니타스 박상훈 박사의 <정치의 발견>은 '기존의 정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열린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진보정치(또는 운동)가 대개 명분과 도의에 치우친 원론적 각성을 주장하는 데 머물러 왔다면 '정치의 발견'을 통하여 이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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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있는 정치의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라니

- 진보의 지평을 넓히는 일로서의 정치를 고민해야

 

후마니타스 박상훈 박사의 <정치의 발견>은 '기존의 정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넘어 열린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진보정치(또는 운동)가 대개 명분과 도의에 치우친 원론적 각성을 주장하는 데 머물러 왔다면 '정치의 발견'을 통하여 이를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측면에서의 기술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정해진 룰도, 판에 박은 메뉴얼도 없다는 현실정치에서 살아남는 일, 또는 시민대중에게 가닿는 일, 이는 당위적이거나 관념적인 접근이기보다 살아 숨쉬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의 이해에 바탕을 둔 정치적 접근, 그것이 진보정당, 또는 진보정치가 피해갈 수 없는 길임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정치란 무얼까. 글쓴이는 지금까지 진보진영(정당 및 운동조직을 포함한)의 현실을 적시하면서 '(현실)정치'에 대하여 일관되고 명쾌한 논리, 적확한 문헌과 사례를 인용하면서 일목요연한 그림을 제시한다. 그이는 정치를 둘러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말의 힘과 소통의 기술' '민주주의' '갈등과 당파성' '리더십과 지도자' 등의 주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과 이해를 통하여 좋은 정치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제시하면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격렬하기만 한 한국정치의 오랜 불모의 흥분상태'를 품격높게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말의 힘과 소통의 기술을 몸소 보여주는 즐거운 예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하나같이 '그래. 이게 내 생각이야'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이는 글쓴이의 말대로 우리 진보정치(운동)가 '저항의 정치학'에서 머문 채 '통치의 정치학'으로 나아가지 못한 반증이고 그러한 정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거나 출구를 찾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게 열려있는 정치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제공하는 엄청난 가능성을 현실의 것으로 '발견'하는 즐거움이라니.(생각해 보시라, 현실적인 '집권의 그림',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러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자면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러한 진보진영의 현실적 문제가 진보의 문제와 동일시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진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아닐까 하는 것으로 글쓴이의 말대로 마르크스 이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좌파적 이념이 그대로 진보로 이해되는 경향성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진보란 언제 어디서든 '시민대중의 이해에 기반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중 스스로 이에 반응할 수 있도록 조직, 선동하는 일이며, 대중 스스로 타방에 맞서는 것이며, 대중 스스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이며 끝내 대중이 주체로 서는 일'일 것이다. 이는 민주화가 필요할 때 시민대중보다 앞서 민주화의 요구를 내세우는 것이며, 제도적(절차적) 민주화의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정당정치의 가능성과 힘을 앞서 인식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일, 그것이 그때그때의 시기에 맞는 진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운동과 정치가 '정치에 대한 오해나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 나뉘는 듯한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한 구분이거나 단순화일 수 있겠지만) 글의 맥락에 대하여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흔히 말하듯 운동적 사고가 이념지향적이거나 투쟁일변도의 편협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지향적인 보다 성숙한 운동적 사고로 발전해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금 시기 수구정당이나 보수정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중의 각성이나 정치의식의 고양을 위해서 운동과 정치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결합되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의 지평은 그것이 운동이든 정치의 형태든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역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이를 정치적으로 구현해가는 행위를 지향하는 것이 될 것이다. 소싯적 읽고 배웠던 '휴머니즘의 정치적 실현', 더도 덜도 아닌 그 지점이 될 것이며 이는 인간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그리고 진보적인 것의 지평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더 그 내면과 외연을 심화하고 넓히는 일이 될 것이다.

더하여, 베버, 오바마, 알린스키, 샤츠슈나이더, 세리버먼 등의 읽을 거리 또한 즐거운 숙제가 되겠다.

 

 

9****4 2011.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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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속살을 보여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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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수선한 일본 대지진 상황에서 스리슬쩍 국회의원들이 가족수당과 자녀학비수당을 지급 받았다는 사실이 자그맣게 보도됐다. 매년 1억이 넘는 입법활동비를 받는 것에 모자라 작년 초 한 번 국회의원을 하면 평생 연금을 받는 헌정회육성법을 통과시켰던 바 있다. 무상급식을 추진할 예산이 없다며 몽니를 부리던 사람들과 ‘진보’를 자처하던 정당의 의원들도 합심해 신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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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수선한 일본 대지진 상황에서 스리슬쩍 국회의원들이 가족수당과 자녀학비수당을 지급 받았다는 사실이 자그맣게 보도됐다.
매년 1억이 넘는 입법활동비를 받는 것에 모자라 작년 초 한 번 국회의원을 하면 평생 연금을 받는 헌정회육성법을 통과시켰던 바 있다.


무상급식을 추진할 예산이 없다며 몽니를 부리던 사람들과 ‘진보’를 자처하던 정당의 의원들도 합심해 신속하게 통과시킨 법안들이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대신해서 뜻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로 인해 한국의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 무관심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누구나 정치인들을 싫어하고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희롱하는 것으로 그 분을 삭인다.

도대체 정치를 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왜 저따위야?? 라는 내 오래된 고민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이 책에 있었다.

 


“베버는 자신의 강연이 “틀림없이 여러분을 실망시킬 것” 정치란 다른 직업과는 달리 매우 특별한 윤리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국가라는 정치 조직체를 운영해야 하는 정치가는 그 수단으로 - 권력, 강제력, 합법적 폭력 등 뭐라 정의하든 - 인간의 ‘악마적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41)

 


그 이름도 유명한 막스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진작 그 책을 읽었더라면... 책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이렇게 명쾌하게 정치의 속살을 해석해내는 문장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인간의 악마적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요구가 더 해 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한 목적과 도덕적으로 의심될 만한 수단을 결합해야 하는 정치의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담대한 인물, 그러면서 목적과 수단의 불편한 조합을 통해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만이 윤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정치의 현실을 이끌 수 있다.” (p.35)

 


후마니타스의 대표이기도 한 저자 박상훈씨는 그에 더해

 


“결론적으로 소명 의식을 갖는 좋은 정치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 (p. 43)

 


소명을 가진 정치가가 많아지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베버의 지적처럼 윤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정치의 현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 또는 정치인!!

바꾸어 생각하면 그러한 정치가 또는 정치인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한국의 국민들과 유권자들을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 무관심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이유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투표행위를 하고 정치인을 만들어 내는 유권자들이 계속 지금과 같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혐오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정치>에 대한 조금의 발전과 진전은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진 촛불집회의 예를 들며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정치풍토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불행하게도 어느 정당도 촛불 집회 과정에서 정당으로서의 권위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과 같은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 진보 정당 없는 정당 체제, 노동 배제적 정당 체제를 지속하는 일이 될 것이다.” (p.119)

 


지금의 MB정권의 수많은 헛스윙이 민주당과 군소 진보 정당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진보 정당들도 제대로 된 강령 없이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그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로만 인식했던 탓이다. '서민 대중의 삶의 현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진보의 정치 방법(p.143)'일 텐데 어떠한 법안이나 규정이 입안되어 시행된 예는 전혀 없다.

 


'좀 잘 들 해보슈~!‘ 뽑았으면 뭔가 달라지고 실생활에 느껴지게 자극되는 다이내믹한 <정치>를 경험해야 하는데 한국의 유권자들이 불행한 것인지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는 베버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 도무지 제대로 된 <정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정치>를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정치>라는 것의 실체가 ‘이것에 불과하다’라고 얘기한다.

 


“정당은 반드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반드시 민주적이어야 하는 것은 정당 체제이지 정당이 아니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개별 단위(unit)로서 하나의 정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들 즉 당원들 사이의 관계 양식을 말하는 정당들의 체계(system)에 있기 때문이다.” (p.150)

 


솔직해서 좋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는 거다. 정치라는 게 원래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는 거다.

<정치>에 대해 불가능한 기대를 가지고 정당과 정치인을 바라본 지금까지의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개별 단위(unit)로 보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구누구 쓰레기’, ‘잡아 죽일 놈’하며 한 명씩 씹어대기도 입이 아프니 좀 크고 넓게 체계(system)를 보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들 공부 참 많이 하고 보는 눈 넓혀야겠다.


그런데 요즘 살기가 워낙 빠듯하고 팍팍해서 이런 제안들이 귓등에도 들리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다행인건 이 책이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엮은 것이라는 점이다.

모쪼록 ‘대신해서 뜻을 전달해 줄’ 사람들이 되도록 많이 읽고 깨우치는 바가 많아져서 제대로 된 <정치> 좀 해줬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정치의 발견 좀 해보게 말이다.



l****h 2011.03.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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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에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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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진보정당이 생긴 지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사회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과 덜 보수적인 대통령들을 거쳤고,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반면 진보정당의 분열과 보수정당으로의 정권교체 그리고 2008년 총선의 진보진영 참패를 함께 겪었다. 진보정당의 10년 역사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변화했을까? 진보파를 대상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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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진보정당이 생긴 지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사회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과 덜 보수적인 대통령들을 거쳤고,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반면 진보정당의 분열과 보수정당으로의 정권교체 그리고 2008년 총선의 진보진영 참패를 함께 겪었다. 진보정당의 10년 역사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변화했을까?

진보파를 대상으로 한 저자의 강의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정치에도 정해진 답은 없다. 또, 답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더 좋은 사회를 향한 바란다면 저자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자의 출발점은 현실이다. 저자는 그간 진보파들의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지향점을 말하고 있다. 진보파들의 이념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맑시즘이 그러한 것처럼 진보파 역시 너무 이상적이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혁명을 꿈꾸며 자기희생을 강조한다. 그 결과 우리사회는 진보정당에 대해 현실과 괴리되어 뜬구름 잡는 헛된 공약을 내거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끊임없이 현실이라는 출발점을 이야기 한다. 현대사회의 대의민주주의라는 ‘현실’을 받아드리고 혁명이나 운동이 아닌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차선도 아닌 차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가장 잘 작동한 정치체계이고 현대사회의 특성상 그것은 대의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고 현실 속에서 좋은 정치체계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체계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의 갈등을 집약해 낼 수 있는 좋은 정당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저자의 스승인 최장집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내용과 같다.) 저자는 좋은 정당이 사회의 갈등 구조를 녹여내고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지를 올바로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사회에 주목하는 정치적 무관심과 같은 시민사회의 문제는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대변할 좋은 정당 즉, 좋은 정치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에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평균적 시민을 기준에 놓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좋은 정당을 통해서 사회가 정치를 통해서 갈등 구조를 해결하고, 정치가 일반 시민들의 삶과 깊이 관계되는 정치 체계가 필요하고 할 수 있다.

좋은 정치체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좋은 정치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주로 진보진영의 정치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내용인데 따라서 저자는 그러한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가들이 될 것을 조언한다. 좋은 정치가는 권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용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갖춘 정치가이다. 이것 역시 정치라는 영역이 필연적으로 강제력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어떻게 올바로 이용하고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얇은 책에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용을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며 현실이라는 인식과 좋은 정당체제가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 내렸으면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좋은 정치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목표를 어떻게 도달할지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

물론 좋은 정치가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좋은 정치가가 좋은 정치체계를 만들어주기만 기다리는 것은 너무 요원해 보인다. 직접민주정치와 같이 시민사회에 지나친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지만, 좋은 정치가가 좋은 정치를 만들어 주기만 기대하는 것 역시도 이상적인 주장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듯이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고 정당이 중심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정당체계를 만들고 좋은 정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가의 일이다. 또한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시민사회의 역할보다 정치가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을 정치가의 역할로 치환하는 것 역시 현실이 아닐 듯하다.

시민사회가 과거와 같이 열정적인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가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면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서 정치가를 견제하고, 요구하며 좋은 정치체계를 향한 과정을 추동할 수는 있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의 시민사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민사회에게 정당에 가입하고 참여하며, 올바른 대표를 뽑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소액후원을 하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직접 의견을 표출하는 유권자 운동까지도 요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같이 원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구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일뿐 시민사회의 중요성은 줄어들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 삼자는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사회의 발전은 어느 한부분의 발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치체계의 발전을 통해서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부분이다.) 시민사회의 발전이 정치체계의 발전을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좋은 정치를 향한 길은 정치가와 일반 시민들의 노력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저자가 시민사회를 간과했다기 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정치가들의 역할이 더 크나고 판단한 것이고 정치가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였기 때문에 정치가들의 역할을 더욱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관계에 대해 조금더 언급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 너무 거시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정치는 무언가 특별하고 큰일이고, 보통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아도 되는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는 삶이고 민주주의는 그러나 삶의 양식으로서 보편적인 원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 정치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아직도 고리타분하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며, 결국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는 우리의 삶이다. 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경험한 정치체계 중 힘없는 다수가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그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올바로 대변해줄 정치가와 좋은 시민이 등장할 차례이다.

n********n 2011.0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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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치는 어렵고 두려운 영역이다
"아직도 정치는 어렵고 두려운 영역이다" 내용보기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고, TV상에 비춰진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불신의 벽을 높고, 튼튼하게 쌓아두고 있었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그들의 사진들로 지저분하게 붙여진 초등학교 담벼락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누가 되든 똑같을 텐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책 표지에 『정치의 발견』이라는 제목 밑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어서 읽어볼 가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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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고, TV상에 비춰진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불신의 벽을 높고, 튼튼하게 쌓아두고 있었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그들의 사진들로 지저분하게 붙여진 초등학교 담벼락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누가 되든 똑같을 텐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책 표지에 『정치의 발견』이라는 제목 밑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어서 읽어볼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정치에 대해서, 정치인에 대해서, 정당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불신의 벽만 쌓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 진보에 대한 의미도 모르지만 일단 저자의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 번 들어서 모르면 또 들춰보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강의를 다 읽어본 지금도 저자의 강의 내용을 100퍼센트 알아들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정치에 대해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 들었고, TV뉴스 나 신문지상에  나오는 정치 관련 소식들에 귀를 기울여 볼 생각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자의 강의를 통해서 이제부터라도 정치에 대한 가능성을 제대로! 찾아볼 생각이다.


은이 박상훈

그는 충남 청양 출생이며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지역 정당 체제의 합리적 기초에 관한 연구” 라는 논문으로 2000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지은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읽다가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정치가 우선한다 : (후마니타스)』라는 책에 대해 거론한 부분을 읽게 되었을 때에서야 다시 관심을 갖고 책 앞머리에 있는 저자에 대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현재 도서 출판 후마니타스의 대표로 있다고 한다. 지금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정치가 우선한다』도 읽고 있는 중이라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섯 개의 강의가 본문에 해당이 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내용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차근차근 읽는다면 정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조금 더 설명을 붙여보자면 본문만 다섯 강의로 되어 있고, 지은이의 후기 내용과 함께 “정치적 글은 어떻게 쓰는가” 라는 부록이 더 수록이 되어 있다.


일러두기를 보면

일러두기를 보면 본문에서 인용한 한국어 번역본과 원서에 서지 사항을 알 수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저자가 인용한 글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버락 오바마’에 대한 글이었다. 버락 오바마의 글 중에서 그의 연설문 부분을 읽으면서 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싶다면 ‘2강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편을 읽으면 된다.


서문을 읽으며

우선 서문에는 각 강의에 대한 짧은 소개가 담겨 있다. 어떤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진행할지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읽어두면 각각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


서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이 내용은 저자가 쓴 내용 그대로 인용해야 할 것 같다. “상식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은 ‘정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는 더러운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고, ‘믿을 수 없는 직업’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 글에서 밝혔듯이 -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 - 저자의 의견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의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이 강의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이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저자의 이야기 중에 “인간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치이지만, 그것이 매우 무서운 영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 p. 164 - 이 말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저 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영역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인간은 ‘호모 폴리티쿠스 [(라틴어)Homo politicus]’ 라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p********p 2011.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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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를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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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가능성이라. 어떠한 가능성을 의미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가능성’ 아니었을까. 하지만 2016년 이 땅의 민중은, 우리 시민은 철벽과 같았던 비정상의 문을 기어이 깨부수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가능성이란 존재를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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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가능성이라. 어떠한 가능성을 의미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가능성아니었을까. 하지만 2016년 이 땅의 민중은, 우리 시민은 철벽과 같았던 비정상의 문을 기어이 깨부수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가능성이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정치는 본래 깨끗함, 고결함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모든 이들이 갈망하지만, 결국 소수만이 움켜쥘 수 있는 그것을 놓고 다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으로 정치가 끝은 아니다.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어떠한 가치와 기준에 따라, 정의와 소신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분배하느냐가 정치의 결정적인 권한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에 신물을 느껴온 것은, 권력을 움켜쥐는 과정에만 관심을 먼저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제 대선이 그야말로 코앞이다. 박근혜라 쓰고, 적폐라 읽는 대상이 사라졌어도, 정작 사라진 것은 박근혜일 뿐, 적폐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명색이 대선후보라는 어떤 이는 또 다른 이름의 적폐가 되어 유령처럼 서성이다, 어느 사이 다시금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다. 이게 적폐가 아니면 무엇이 적폐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믿는 이유는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새삼스레 정치의 힘과 위험을 동시에 절감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근거나 희망을 좇아 선택했던 단 한 번이 얼마나 많은 후과를 낳는지 우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실재 우리의 삶 자체가 위협받았고, 불안과 공포에 눌려 살아왔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상 속에 우리는 하나 둘 자유를 빼앗겼고,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무모한 권력의 남용으로 강이 파헤쳐지고, 남북관계는 끝장이 나버렸다. 경제도 추락을 거듭했다. 우리는 후회밖에 남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이었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오랜 시간 거리에 나서야만 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고, 교훈을 얻었다.

 

우습지만, 그것 역시 민주주의였다. 갈등의 증폭과 끝내는 폭발. 갈등이 없다면,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인해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다. 갈등이 없는 곳은 전제주의 국가일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우리 스스로 이 땅은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곳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75,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정치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며, 어떤 소명을 가진 이들이 나서야 하는 것인가그리고 이 땅에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실력을 키워야 할까. 이들은 보수와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아니면 보수 자체를 지금껏 그래왔듯 일방적으로 무시하면 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의 의도이자 목적이다. “정치는 다 더러워” “그놈이 그놈” “더러운 쓰레기만 한가득 모인 여의도판이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더러운 곳에 뛰어들어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집단과의 경쟁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의 목표이자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 결국 직접 민주주의가 발현하게 된다. 지난 촛불이 그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광장의 순수한 열정만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실천할 순 없다. 저자는 이 땅의 진보 세력들이 좋은 정당이 되고, 집권하여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공감한다. “‘직접성의 가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발전시키면서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약진에서 알 수 있듯, 유권자들은,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대선 후보, 차마 이름을 거론하기조차 불쾌한 누구 역시 지지율이 상승 중이라고 하지만, 그건 조금 차원이 다른 문제 같고. 암튼 진보 세력 역시 정치 엘리트를 배출할 수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지자를 대규모로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민중이 바라는 꿈과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국민은 지지하고, 선택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권력의 정의로운 분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깨버리고 나와 바른정당을 만들었던 이들 중 10여 명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소신이나 가치관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그저 다만 살기 위함이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조롱했다. 그들이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그것이 치졸한 거짓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두 번 더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 어쩌면 대한민국 보수 자멸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정치가 더러운 것임을, 온갖 음모와 협잡의 소굴인 것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또한 뚜렷한 소명의식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치가 더럽다고 피한다면, 여전히 그곳은 더러운 채 머물 것이다. 끝까지 썩어버릴 것이다.

 

지난해와 최근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 내가 이렇게 편협한 놈이었나,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나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케 하는 이들이라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들을 부정하는 순간, 나 역시 전체주의에 매몰되는 것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셈이다. 때로는 극한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한다. 물론 국민들 역시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정치인들이 사안에 따라 위대한 시민을 칭송하는 일과 욕망에 빠진 시민을 탓하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비교적 쉽게 쓰인 책이지만, 세 번을 거듭 읽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스스로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편협함 속에 파묻혀 정치적 신념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악마화하지는 않았는지, 살기를 느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렵고도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에서의 타협이다.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타협은 협잡이나 부당한 거래와는 다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상을 버리는 것과도 다르다. 민주주의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타협임을 새삼 느낀다.

 

개정 3판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읽은 책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기존 진보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애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후보는커녕 국회의원 하나 없는 작은 정당의 당원으로서, 나 역시 진보 정치인들의 약진을 기원한다. 그리고 부디 국민이 국민답게 투표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봉사하는, 상식적인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바라본다.

 

일독을 권한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7.05.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