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에 봤던 노근리사건을 다룬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속의 상황은 참으로 참혹했다. 너무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벌어난 전쟁의 상흔. 이 책은 노근리 사건의 관계자들이 정부를 그리고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보상을 받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만화형식으로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그려내고 있다.
노근리사건은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미군에 의해 자행되었던 학살이다. 미군은 총 칼을 지니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이러한 학살은 노근리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벌어졌던 학살은 그저 전쟁에서 벌어진 일이려니 생각하고 그저 넘어갔지만 노근리 사건은 정은용씨에 의해 집요하게 손해배상이 청구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렇게 집요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이 과연 받아들여질까? 그렇게 하는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쟁은 다 그런것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학살속에 있던 사람이 나이거나 내 가족일경우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될까? 그런 일들이 그저 묻힌 다고 생각하니 꼭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다 지나간 일인데 구지 그걸 기억하고 사과를 받아야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그 시절에 내가 살아왔던 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을 볼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속 우리나라 현실은 곧 지금의 현실오 이어지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근리 사건도 그렇고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어제는 우리나라가 세월호 사건으로 큰 시름에 빠져있는 와중에 일본의 아베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기사로 보았다. 위안부 문제는 정확한 증거가 없기때문에 그 일에 대해 받아들일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실언을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 교과서건 일본 교과서건 진실을 외면한 이야기들을 볼수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사실에 대해 그들은 아니라고 교과서에 적고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불편한 진실을 더 이상 건드려선 안된다는 친일파들의 말도안되는 득세로 교과서가 거짓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세월호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거짓된 이야기들.
아이들을 물속에 수장한 부모들에게 커다란 대못을 박고 있는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쓸데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근리사건 역시 그런 시점에서 접근한다면 그들의 울분이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했는지를 알수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불쌍하게 세상을 떠나고 불구가 된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렇게 노근리 사건을 위해 애써온 그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
|
1부 끝 장면에서 정은용이 대동하고 노근리 쌍굴을 찾아간 사람은 아들이다. 노근리 학살에서 아들과 딸을 잃고 다시 낳은 아들. 정은용은 할아버지가 되고 아들은 장년이 되었다. 1부가 정은용의 시각에서 본 노근리 양민 학살의 실상이라면 2부는 아들의 시각으로 노근리 양민 학살 이후를 다루고 있다. 노근리 양민 학살 이후는 노근리를 개인의 기억과 자료에나 남기려는 세력과 진실을 역사로 복원하여 다시는 그런 학살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세력 간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2부의 마지막 장면은 정은용과 아들이 노근리 쌍굴을 보고 되돌아선 장면이니 나오니 1부와 2부가 대응한다. 정은용과 아들이 2부 마지막 장면에서 노근리 쌍굴을 뒤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진실을 밝혔다는 판단과 온몸을 거기에 투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의 작은 평화를 얻기까지는 무수한 어려움이 있었다. 노근리 양민 학살을 역사로 복원하여 실상을 밝히려는 노력은 정은용으로부터 비롯한다. 정은용은 주한 미군 소청사무소에 노근리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립도서관을 찾아 한국전쟁에 관한 사료를 복사하고, 신문 등에 조그맣게 실린 글이라도 밑줄을 그어가며 수집하고 정리한다.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한다. 이러한 노력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4년 4월 29일에 연합통신에서 정은용의 소설에 관한 평론 기사를 쓰면서부터다. 곧이어 ≪한겨레≫에서도 기사가 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 정구도가 진상을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아버지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근리피해자대책위를 꾸린다. 희생자, 생존피해자,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공식 출범한 뒤 미국 대통령 앞으로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기자들을 생존 피해자들과 연결하여 그들의 육성 증언이나 내외신에 보도되도록 집중하며,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이들은 실상을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서지만 일부에게만 알려질 뿐이다. 노근리가 폭 넓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CNN 방송을 통해서다. CNN 보도로 꽉 막힌 듯 보이던 대책위 활동은 힘을 얻게 된다. MBC를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에서 다루고 각지에서 격려 전화도 잇따른다. 드디어 노근리 사건은 1999년 AP에 의해 전 세계로 타전되고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신문과 CNN, ABC, NBC 등 유력 방송사가 앞 다투어 방송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모든 언론사가 대서특필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동안 한국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했다. 엄혹한 군사 정권 시절에는 진실을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미국 언론에서 대서특필되고서야 한국 언론도 보도를 하기 시작하고 정부 또한 여론에 밀려 진상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미군의 만행을 미국에서 먼저 보도하고 피해자 국가에서 뒤늦게 언론 보도를 한 것은 우리의 정부나 언론이 얼마나 미국 눈치를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 눈치를 보며 진실을 밝히는 데 미온적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학살을 저지른 미국과 실상을 알리는 미국의 모순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미군은 한국전쟁에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같은 학살을 숱하게 저질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종차별적 속어인 ‘gook'이란 단어가 있다. 미국 속어사전에는 이 말이 통상 갈색 인종이나 비기독교 동양인을 낮추어 부르는 비칭으로 풀이되어 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때 미국이 베트남인을 통칭해 많이 사용함으로써 널리 퍼진 말이지만, 그 어원은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이 ‘한국’의 ‘국’을 따와 한국인을 비하할 때 사용한 말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군이 노근리사건을 한국전쟁 초기에 수세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건이라고 단순하게 규정짓게 되면 사건의 진상을 축소,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미국 고위층부터 중대장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심리 저변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인종 편견에 대한 집단 무의식이 보다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249 - 250쪽) 인종 편견에 대한 집단 무의식이 한국전쟁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거니와 미국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실상을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 눈치를 보는 우리 정부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며 노근리 양민 학살을 역사 속에 복원한 정은용 정구도 부자의 감동이다. 이들의 노력은 노근리 특별법, 노근리평화연구소, 노근리유족회 등으로 뻗어나가 해마다 노근리평화상을 수여하고, 세계대학생 인권평화 캠프, 국제평화학술대회, 평화기원음악회, 인권사진전, 인권백일장대회 등 다양한 학술문화 행사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