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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그림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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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워 도무지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을 뒤적거렸다. 이상하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서너 권의 책을 겨우 몇 장씩 읽다가 덮어버렸다. 책장 앞을 서성거렸다. 소설 책에 집중하지 못할때는 여행서나 그림에 관한 책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걸 생각해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글에 대한 리뷰를 보자마자 읽고 싶어 구입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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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워 도무지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을 뒤적거렸다. 이상하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서너 권의 책을 겨우 몇 장씩 읽다가 덮어버렸다. 책장 앞을 서성거렸다. 소설 책에 집중하지 못할때는 여행서나 그림에 관한 책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걸 생각해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글에 대한 리뷰를 보자마자 읽고 싶어 구입했던 책. 그림과 문학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잖나. '문학 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란 소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마음이 풍랑이 이는 듯 춤을 추더니 어느 새 고요해진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옛그림과 시를 읽으며 어느새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림은 그런 존재인것 같다. 얼어붙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게 내겐 그림이다.

 

옛그림 속에 숨어든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이다.

옛그림에 담긴 문학작품을 설명하며 그 시대의 우리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문학작품(시)가 애호되던 그 시절의 상황과 중국의 작품을 좋아했던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과 문학을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도 엿볼수 있었다. 저자도 책머리에서 밝혔지만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인인 최치원이나 대문학자인 이율곡의 작품도 더러 있지만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의 명시들이 대부분이고 오랜 중국의 사상서나 역사서도 포함을 시켰다고 말했다. 중국의 훌륭한 작품들을 외우고, 그런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표현해 문학과 그림이 어우러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고 그림을 감상하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의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식. 조선의 문인들은 좋아했던 동파 선생의 모습과 그가 유배지의 뱃놀이를 읊은 '적벽부'와 안견이 그린 「적벽부도」를 감상했다. 여름 지나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소식이 흥을 내어 노래하기 시작하는데 배 안의 손님 한 명이 구슬픈 가락의 피리를 분다. 삶의 덧없음을 지적하고 죽은 영웅(조조)의 시를 읊는다. 소식과 손님은 삶은 한때 위대했던 영웅과 그의 참패 장면과 영웅의 죽음을 떠올리고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한다. 손님에게 술을 권하며 마음을 달래주는 소식의 초월적 철학과 우정을 볼수 있는 글이다.  조선 문인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소식은 정작 우리의 선조들을 변방의 오랑캐라 부르면서 고려에 책을 하사하거나 팔지 못하도록 진정을 고하고 우리 사신들이 강남으로 들어가는 것도 차단시켰다 한다. 중국의 귀한 책이 고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하니 이것 참 아이러니다. 소식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외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벼슬을 그만 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의 기쁨과 전원생활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설명한다. 유배의 명을 받고 전원으로 쫓겨 왔던 한 어의 요청을 받고 조선 후기의 중인화가인 전기가 그린 「귀거래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초라한 집이지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와 높은 기상의 소나무가 나룻배를 타고 도착하려는 도연명을 반기는 듯한 그림. 그림 속에서 우리는 전원 생활을 향한 기대감과 설렘을 볼 수 있는 듯하다. 우리 또한 힘겨운 생활을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꿈을 늘 꾸곤 한다. 우리의 마음과 닮았다. 

 

 전기, 「귀거래도」, 종이에 수묵담채

 

소나무 아래 소년 신선이 앉아 생황을 부는 장면인 김홍도의 많은 걸작들 중의 대표작인 「송하취생도」이다. 당나라 시인인 나업의 「제생」이란 글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제생」에서 나업은 생황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 주나라의 태자로 태어났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산수山水에만 뜻이 있었던 그는 나이 열다섯 살에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웠다. 그 다음 해 왕자진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는데 왕자진은 생황을 연주하며 눈같이 흰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김홍도가 「송하취생도」로 나타냈다. 힘찬 기백이 보이는 소나무의 그림과 금방이라도 생황을 불며 일어서 그림속에서 빠져 나올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 생동적이다. 생황가락의 신비로움과 맑음을 볼 수 있는 글과 그에 대한 그림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생황가락이 들려온다.   

 

 김홍도, 「송하취생도」, 종이에 수묵담채

 

우리나라의 옛그림은 문학적 흥취가 있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서양화도 물론 좋아하지만 은은함 속에 숨겨진 열정이 엿보이는 듯한 옛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오를때는 그 화를 누그러뜨려주기도 하고 슬플때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게 우리의 그림인 것 같다. 그림 속에서 문학 작품을 볼 수 있었고 문학 작품을 이해하며 옛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학에 취하고 그림에 흠뻑 빠질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4.14. 신고 공감 10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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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그림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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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화전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인들의 그림은 타인의 시들의 일부에서 전문, 혹은 약간 자신만의 해석이나 유희적인 의도에서 변형된 시들이 함께 그림을 이루기도 하고 한명의 문인이 시와 그림을 하나로 묶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선비나 화가들의 가치관과 당대의 세계관이 함께하는 책 속의 그림들 속에서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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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화전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인들의 그림은 타인의 시들의 일부에서 전문, 혹은 약간 자신만의 해석이나 유희적인 의도에서 변형된 시들이 함께 그림을 이루기도 하고 한명의 문인이 시와 그림을 하나로 묶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선비나 화가들의 가치관과 당대의 세계관이 함께하는 책 속의 그림들 속에서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관찰하거나, 이미지를 상상하여 구축해 가기도 한다. 저자의 시 원문 해석과 덧붙이는 설명 등 풍부한 사료와 함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혹은 인물 설명들 덕분인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옛 그림들이 더 빛나 보인다.
나는 고그림에 완전한 무지의 상태였고 그나마 기억 속에 있는 우리 옛 그림이란, 학창시절의 교과서에서 본 게 전부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색바랜 종이 위의 정적이고 평면적인 옛 그림이라면 저자의 이름과 그들이 자주 쓰던 소재, 혹은 시험에 나올 법한 서체의 종류와 대표 인물들이나 외고,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감상의 포인트 정도를 생각한다면 특히 오래전 그려진 수묵화에서는 내러티브가 가장 강조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해석할 때는 그렇지 않다. 그 비유적 표현에 감탄하고,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과 운율 등에도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시와 함께하는 그림에서 이 또한 읽지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밖에 있었던 시화의 그림과 시를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자료조사와 집필기간이 들었을 이 책을 만나면 또 한명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학자 한명을 발견하게 된 데 기쁨을 느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책을 보여주며 소개하고플 정도로 감탄하게 된 데는 그만큼 우리가 고문학과 우리의 옛 그림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반증하는 듯도 하다. 또 고시들을 읽으며 그림과 함께 배우는 듯한 기분은 그림을 참고로 하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고문학 입문서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어느 학문이건 입문자들을 위한 그림책들처럼 말이다. 고문학이 눈 앞에서 그림으로 펼쳐지며 한자로 씌여진 문자의 표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서구예술에서는 카툰이나 플럭서스의 일련의 작업, 그리고 지금 거의 모든 디자인 등이 문자와 함께 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옛 예술에 이렇게 문자와 함께 하는 독특하고 운치있는 예술장르가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글자와 의미의 배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러 미술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옛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과 서체, 화체가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평면예술은 말그대로 시적이면서도 지금 스토리텔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자연과 삶들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감동했던 책 안의 작품들은 강세황의 ‘괴석’, 이재관의 ‘오수도’ 등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옛 그림과 싯구들이었다. ‘괴석’의 경우에는 돌덩이 가에 숨겨진 여린 꽃의 선때문이었는지, 움직이지 않지만 왠지 힘이 들어간 바위의 형상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의 힘이 ‘변치 않는다’는 시 속의 내용과 함께 그대로 전달되어 위로가 되었고, ‘오수도’는 그림 당시의 선비들의 서재에 대한 로망처럼 책에 대한 애정이 들어있는 책배게와 ‘현실의 그림자’라는 창문과 책상과 선반 사이의 작은 틈으로 갈 수 있는 숙수념의 세계가 내게는 굉장한 매력이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보다는 숙수념의 세계로 가는 명상과 오수를 즐길 수 있는 당시의 선비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의 태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현재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상상력과 건강한 여유를 위해서도 귀기울일만한 그림 속 이야기가 아닐까.

무엇보다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에서 소리를 느끼려고 애써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조선시대의 옛 그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구양수의 ‘추성부’를 그린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그렇다. 구양수의 한자와 중국어 발음을 생각한 소리의 시적표현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다시금 영상으로 상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림 속 가을바람과 고즈넉한 낙엽 떨어지는 소리며 풀벌레 소리며 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소리가 약간은 차다싶은 가을공기와 함께 느껴진다. 시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림 또한 시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심상만이 아닌 부분까지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 옛 그림, 아니 모든 그림을 대할 때 후각적이고 청각적인 부분까지를 읽어내려고 감각을 더욱 열 수 있을 듯 하다. 새가 날면 퍼덕이는 날개짓 소리와 새의 울음소리가, 물 흐르는 풍경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식과 사람의 표정에서 후각과 미각을 예상하고 심플한 네러티브에서 그치지 않은 스토리텔링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도 그저 기록이 아닌 캐릭터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저자의 연구와 칸만화를 연상하게 하는 연속화면 식의 회화 표현들의 소개만으로도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다양한 고미술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조금은 따분한 박물관의 죽은 미술로 여겼던 우리 옛 미술을 시적 표현의 문자와 그림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예술장르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f*****5 2011.03.28.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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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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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다‘그림 읽어주는 책’들에 대한 관심들이 높다. 아마도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예술적 본능을 확인해 보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된 서적들을 보면 대부분 서양그림 일색이고 더욱 기독교나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대한 정서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아닐 수 없다. 그림들이 책속에만 머물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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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다
‘그림 읽어주는 책’들에 대한 관심들이 높다. 아마도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예술적 본능을 확인해 보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된 서적들을 보면 대부분 서양그림 일색이고 더욱 기독교나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대한 정서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아닐 수 없다. 그림들이 책속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도 클 것이다.

거기에 비해 동양의 그림들은 한 가지 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그림 속에 담긴 뜻을 오롯이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관문이란 것이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한자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깊은 내면을 알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이종수 님의 ‘이야기 그림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점에 공감을 얻을 경험이 있다. 이 책은 이야기 즉, 텍스트가 있고 그 텍스트를 이미지화 한 결과물이 이야기 그림이고 관심은 바로 그 이야기 그림에 대한 접근이라 해석된다. 

이 책 ‘그림, 문학에 취하다’ 역시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즉, 문학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옮겨 놓은 그림을 가지고 본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자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 및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디 읽힐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출발부터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에는 우리 선조들의 그림 스물여섯 점을 일곱 가지 분류로 엮어 놓고 있다. 저자가 분류한 구분에는 시, 문인, 꿈, 소리, 문인의 심회, 명산, 욕망과 인정 등이다. 자연과 사람, 그 공존에서 오는 마음의 소리를 시문으로 짓고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옮겨 놓은 그림들이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화가들로는 최북, 장득만, 강세황, 허필, 이인문, 안견, 전기, 정선, 이성길, 김이혁, 이방운, 이재관, 김홍도, 심사정, 박제가, 김정희, 윤제홍, 허련 등 조선시대 당시를 살며 화원으로 이름 높은 알 만한 사람들의 친숙한 그림들이 담겨있다.

한 점 한 점 저자의 해설을 따라 읽어가는 그림들 속에 담긴 속내가 심상치 않다. 우리내 선비들이 학문하는 방향으로 시서화(詩書畵)를 하나로 보았기에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이 그들에게는 학문의 길로 통했던 것이다. 이는 곧 선비의 학문하는 깊은 뜻을 시서화 속에 담았다는 이야기며 이를 읽어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선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얻어가는 길이라 생각된다는 점이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감회가 녹아 있는 그림들 속에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그림으로 ‘전기의 귀거래도’에 대한 해설이다. '귀거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귀거래’라고 외쳤던 사람들에 대한 구분을 통해 같은 귀거래지만 외치는 사람에 따라 담고 있는 의미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말했지. '천도天道(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찾한 사람의 편에 선다'고.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 같은 이들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어질고 고결한 덕행을 쌓기를 이같이 하였건만 그들은 굶어죽었지. ...나는 감히 이것을 의심하노라. 과연 '천도'라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또한, 김정희의 세한도에 대한 해설에서는 슬픔을 이야기 한다. 일반적으로 세한도는 김정희에 대한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을 칭송하는 것으로 읽히기 쉬운데 저자가 바라본 것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마음을 끌어들여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도를 논하는 사마천과 김정희의 마음이 서로 통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 폭 그림이 접하고 있는 시문, 그림과 시문의 관계는 여기서 탐정소설 속 미로와 같은 복잡한 행로를 엮어내고 있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그림 하나하나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감춰진 이야기 속에서 너무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발견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험도 분명 하게 된다. 또한 관가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밀접하게 관련되어 졌다는 점을 확인하지만 그것이 우리 문화의 폄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성숙한 성취를 이룬 그림들이 많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그림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읽어준다. 저자는 읽어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난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성찰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상 오류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116페이지 이성길의 ‘무이구곡도’의 긴 그림이 나뉘어 실렸는데 같은 장면이 중복되어 있다.



m*****8 2011.03.02.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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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림, 문학에 취하다-고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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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화폭 속 여유를 나눠보자.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저자 고연희씨는 조선시대의 문학과 사상과 연관한 회화 작품 감상을 깊이 있게 다룬 분입니다. 오늘날 표현하자면 고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책 속의 그림과 그림에 실려있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은 당시의 삶과 사상이 조화된 가운데 표현되어졌지만 오랜 시간을 흐른 가운데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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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화폭 속 여유를 나눠보자.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저자 고연희씨는 조선시대의 문학과 사상과 연관한 회화 작품 감상을 깊이 있게 다룬 분입니다. 오늘날 표현하자면 고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책 속의 그림과 그림에 실려있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은 당시의 삶과 사상이 조화된 가운데 표현되어졌지만 오랜 시간을 흐른 가운데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구절들이 많아 쉽사리 접근이 어렵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이해를 돕고자 그림 속 문학을 화폭 밖으로 끄집어 내어 이야기 하고 다시 당시를 회상하며 그림을 바라보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문사들의 정신적 자유함과 사상의 높고 푸른 기상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한국의 미를 재 발견하는 시간이 펼쳐져 있습니다.

취한다는 그 말

  책 속의 문학 작품들과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취(醉)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폭의 그림 위에 실린 짧은 시 한 수가 어찌 문학의 깊은 맛을 표현할 수 있느냐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시'는 언어의 함축적의미의 결정체가 모여져 이뤄진 최고의 결과물이며 그리고 '시'에 담겨진 깊은 문학작품성을 상징화시키고 이끌어내는 그림은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취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취의 한 예로 이인문의 '송하한담도'(소나무 아래 한가로운 담소)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떠오르는 시정편에 실린 '송하한담도'는 조선후기의 화가 이인문이 그리고 김흥도가 글을 적은 시원한 느낌과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소나무 한 그루가 동에서 서로 굽이쳐 가로지르고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북에서 서로 남으로 가로지르는 가운데 소나무와 물 가사이에 있는 장소에 자ㅣ리 잡은 두 벗의 한가로운 담소의 장면은 작품의 위에 수록되어 있는 '초서'의 필적가운데 실린 왕유의 '종남별업'과 함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자더 더합니다.
  시상에 드러나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면 그림에서 전해져오는 문학적 향취가 눈을 어지럽히고 머리를 흔들어 독자에게 취를 더하니 취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동양의 고전이 오늘의 말로 해석되어지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다양한 참고 문헌과 인용문과 추가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화폭 속 정취와 문학을 한데 조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의 미를 감상케 합니다. 고전이 가지고 있는 한계 가운데는 오늘과 거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깊은 골. 언어와 풍습, 문화와 사상의 장벽이 가로 막혀 있지만 저자의 도움으로 장벽의 가로막힘이 뚫려 있음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는 고전의 참다운 맛을 느끼며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한국의 전통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굳이 어떠한 것을 중심으로 펼쳐지냐고 묻는다면 조상들의 얼과 뜻이 담겨져 있는 문학작품성과 닿아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을 오늘의 말로 읽을 수 있도록 해석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해석에 따라 의미가 왜곡되거나 변질 될 수도 있으며 깊은 이해를 위한 사유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고연희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고전을 소개하며 해석되어지는 가운데 나타나는 문제점을 고려한 원문에 충실한 번안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인용한 참고문헌과 인용의 출처 그리고 원문의 충실한 수록이 방증합니다.
  문학이 그림으로 표현되고 그림이 다시 문학으로 탄생하는 현장을 바라보며 그림에 취하고 문학에 취하는 의미있는 경험이 이뤄지는 가운데 동양의 고전인 옛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s******a 2011.03.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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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내용보기
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옛 그림을 보면, 시문이 적혀 있다. 그림과 시가 조응하는 관계. 문학작품이 곧 그림으로 형상화되거나 시의 정취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또 다른 회화 작품으로 꼬리를 잇는다. 옛 그림들 속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문학적 의취(意趣)가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자가 있다. 옛 그림이
"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내용보기

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옛 그림을 보면, 시문이 적혀 있다. 그림과 시가 조응하는 관계. 문학작품이 곧 그림으로 형상화되거나 시의 정취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또 다른 회화 작품으로 꼬리를 잇는다. 옛 그림들 속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문학적 의취(意趣)가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자가 있다. 옛 그림이 문학에 취한 듯 보인다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고 말한다.
 



옛 그림과 문학의 관계를 다룬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고연희 저자다. 3월31일, 서울 신촌의 한 모임 공간에서 YES24의 예술특강 릴레이 두 번째 시간이 열렸다. 고연희 저자가 독자들과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눴다. 문학작품을 통해 옛 그림을 감상하고 시문을 풀이하면서 그림의 속내를 이해하는 시간. 독자들은 그림에 취하고 문학에 취하면서, 봄밤을 맞이했다. 


그림 속의 시문을 탐색하면서 시문의 탄생 배경과 인용구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흥미로운 시간.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림과 시문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당대의 역학관계를 보여줌으로써, 한 장의 그림이 품은 깊고 넓은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 세계에 살짝  발을 디디기에 앞서, 옛 그림에 시문이 담겼던 배경에 대한 고연희 저자의 설명.


“현대 그림에는 글을 안 쓴다. 옛날 그림에는 글씨가 많이 올라와 있다. 그림에 글씨를 써 놓은 것을 그림으로 볼 것이냐, 다른 장르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림에 글씨를 쓰는 건 원나라 이전엔 없었다. 원나라 시절에 문인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문화가 생겼다. 문인이라는 문화지배계층이 그림을 지배하면서 그림에 침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산수화 한 점에 담긴 이야기


조선 18세기 전반의 작품, 겸재 정선(鄭敾)의 <만폭동(萬瀑洞)>. 이 그림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당시 김창협, 김창흡 형제 주축의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금강산 유람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금강산 시(詩), 금강산 기(記), 금강산 그림(畵)이 쏟아졌다. 이 때, 만폭동은 중요한 유람코스 중의 하나였다.


“조선후기의 화가 정선은 만폭동을 유난히 잘 그렸다. 만폭동 그림에서 정선의 능란하고 힘찬 필력은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p.295)



여기서 시 한 수.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제는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

-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


“정철의 시와 정선의 그림이 연관성을 갖게 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당시, 시에선 이병연이 최고요, 그림에는 정선이 독보적이었다. 이병연도 만폭동을 읊었다.”


“정철의 금강산 가사는 매우 귀한 작품이었다. 또한 금강산 시를 지어 이름을 떨친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조선후기 김창흡과 이병연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선과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문인들이며, 이들의 시문은 다시금 정선의 그림과 짝지어져 감상자들의 흥겨움을 돋우어 주었다. 이병연의 시는 더욱 뛰어나 그의 스승 김창흡에게 높이 칭송을 들었다.”(p.295)


삐죽삐죽 기운 봉우리 빈 땅을 다투고

푸릇푸릇 빗긴 고개가 높은 가을에 닿네.

골짝 열려 골짝 속으로 드는 길 끝이 없고

못물 떨어져 못물 속으로 흐름에 쉼 없네

- 이병연 「만폭동」-


“반복적인 단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이 시는 만폭동의 흥겨움을 전달했다. 정선의 그림도 어떤 흥겨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정선은 리드미컬하게 그림을 그렸다. 문인들이 산에 간 이유는 수명 연장이 아니었다. 맑은 기운을 마시면서, 이 전의 성리학과 달리 감각을 통한 흥취의 가치를 인정했다.”


“시인 이병연과 화가 정선은 함께 금강산을 찾아갔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금강산에서 취한 그들의 흥겨운 정취를 시화로 제작하며 어울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병연이 시로 표현한 산수의 정취를 정선의 그림에서 비교하며 찾아볼 수 있다.”(pp.296~297)



한편으로 만폭동 바위에 글자를 쓴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 기록에는 바위에 먹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18세기 문인들 여행 기록에 의하면, 만폭동 벽하담 벽에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천암경수 만학쟁류(千嵓競秀 万壑爭流).


이 말은 중국의 고개지가 4세기에 지은 시에서 비롯됐다.


천 개의 바위가 솟아나길 겨루고

만 개의 골짝은 흐르기를 다투더라.

풀 나무 그 위로 올라 몽롱한 것이

구름 크게 일고 노을 가득 낀 양하더라.


“고개지가 산수여행을 갔다 왔는데,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답한 시다. 워낙 좋은 시라 좋은 산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 됐다. 그렇다면 만폭동 바위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를 써 놓은 사람은 누굴까? 김수증(1624~1701)이라고 문헌에 있는데, 김창협, 김창흡의 숙부다.”  


“만폭동을 둘러본 문사들은 만폭동 바위에 적힌 문자들 중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라는 여덟 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이 여덟 자를 누가 적었는지 동행한 스님에게 묻기도 하였다. 금강산 기행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여덟 자를 적은 사람은 종국에 김수증으로 인정되어간 사실을 볼 수 있다.”(p.299)


<만폭동>과 <혈망봉>에는 주자의 글이 적혀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산벼락에 글 쓰는 것을 멋으로 삼았다. 헌데, 이것이 문화적인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고연희의 주장이다. 당대의 정치권력이나 시스템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송시열이 쓴 책에 의하면, 정치권력과 결탁이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우리 문화재를 보고, 아름답다, 혹은 선조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정치권력이나 사회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면, 문화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반성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조선시대, 중국의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조선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고, 숭명배청(崇明拜淸)을 폈다. 그러면서 명나라 문명은 오랑캐가 삼켜서 중화는 사라졌으므로, 조선이 곧 중화인 조선중화사상이 발현한다.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학설인데, 18세기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렸을까. 18세기 글을 보니, 중화사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더라. 내 조사로는 관계가 없다. 학계의 업적을 깨트리면 생명부지 할 수 있겠느냐는 염려도 받았는데, (웃음) 학계에서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 중국의 산수유람 유행의 문화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문화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주성도 좋지만, 너무 몰두하면 열등의식이 표출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심사정 (1707~1769)의 작품, <사나운 배가 토끼를 잡네>(豪鷲搏兎). 화조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인정받았던 심사정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매가 토끼를 잡는 것이 주제다. 재밌는 것은, 옛 문헌을 보면 토끼를 교활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토끼가 매에게 당하는 것을 불쌍하기보단 잘 됐다고 여긴다. 이 시를 보자.


숲 속에 사는 교활한 토끼 깊은 굴만 믿더니,

가을 풀 무성해도 몸은 훨씬 뚱뚱해졌건만.

한가롭게 엎드려 머리통 깨질 방책을 생각 않더니.

피 쏟고 털 날리며 삽시간에 화를 당했네.

- 성현, 「하사받은 세화에 가을 매가 토끼 잡는 것이 그려져 있네」-


“15세기의 문인 성현이 「추응박토도(가을 매가 토끼 잡네)」를 세화로 받았다. ‘세화’란 새해 아침 임금이 선물로 내리는 그림이다.… 성현은 미인도를 세화로 받고 벗들의 놀림을 받은 일도 있는데, 이와 같이 토끼 살육 장면의 그림도 받게 된 것이다. 성현은 유학자답게 「미인도」는 미인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추응박토도」는 용맹스러워지라는 뜻으로 받들고 성은에 감사하며 늙도록 감상하겠다고 다짐하였다.”(p.240)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매 위에 두 마리의 새가 있다. 조선 전반기의 시를 보자.


가을토끼 풀숲에서 깡총 뛰니

배고픈 수리가 즉시 내리 덮쳤네.

피 아롱진 것은 보이지만

발톱이 눈알 뚫은 걸 누가 알리.

산새들 깜짝 놀라 날아올라,

찍찍 깍깍 공중에서 곡을 하네.

- 나식, 「두성공자의 매 그림에 부치다」-


“16세기 나식이 종실화가 두성령 이암의 그림에 부친 제화시이다. 토끼가 잡혀 죽는 장면 뿐 아니라 주변 새들의 행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읊고 있는 내용도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와 부합한다.”(p.242)


다시 그림을 보면, 바위 밑에 꿩이 있다. 꿩은 바위 속에 숨어 있는데, 이런 시를 보자.


바위 아래 꿩이란 놈, 사람들이 모두 웃네.

머리 쑤셔 넣고 나무 아래 숨었는데 제대로 숨지 못했다고.

-이기지, 「여기의 한 쌍의 매 그림」 중에서 -


“책에는 이걸 더 재밌게 표현하려고, 장기전의 이야길 집어넣었다. 양반의 모습을 풍자한 거지. 그렇다고 꿩이 항상 그렇게만 표현된 건 아니다. 꿩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더라. 어쨌든 이런 그림이 왜 그려졌을까,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은 매이다.”


“조선시대 문사들이 제화시를 남기며 가장 많이 감상한 새 그림이 매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사나운 매의 박력은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p.244)


천지 중에 기특한 재주 영웅의 기운을 품고,

구름 뚫고 번개 당겨 푸른 하늘 놀라게 하네.

결국 때를 만나 쓰이게 되리니

토끼 잡고 여우 잡아 그 공을 보여주리.

- 서거정, 「매그림」 중에서 -


“조서초기의 서거정은 매 그림의 뜻을 읊었다. 서거정이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예전에 매는 주로 사냥에 쓰였기에 그는 토끼와 여우를 놓치지 않고 잡아오는 수렵용 매의 능력을 들어 매의 공력으로 예시한 것이다.”(p.244)


심사정이 역시 매와 토끼를 그린 다른 작품, <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다>에는, 꿩이 없다. 매만 부각된다. 18세기, 강재향의 <매 기르는 사람의 이야기> 중에 매에 대한 묘사가 잘 나와 있다.


“매잡이 사냥은 고구려 벽화 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동양 뿐 아니라 중세에도 각광받는 귀족 레포츠 중의 하나였다. 명대의 박물학적인 서적인데, <삼재도회>라는 책에 해동청이 들어 있다.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서 온다고 해동청이라 부르고,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얀 매를 중국 황제들이 좋아했는데, 우리나라 전국에서 매를 잡아 올리면 중국 황제에게 갖다 바치는 풍습도 있었다더라.”



매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동물이었다. 조선 태종이 신하인 이천우에게 하사한, <푸른 매(蒼鷹)>과 <흰매(白鷹)>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매 그림이 신통력이 있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이규경은, “요즘 재앙을 물리치고자 으레 매를 그려 붙여 액막이를 한다”는 글을 적기도 했다.


신윤복 <미인>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현재 간송미술관에 있는 신윤복의 <미인>. 많은 사람들이 조선 미인의 전형처럼 얘기하고, 당시 여성상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삼강행실도를 다른 책을 보면, 남편을 물어간 호랑이를 때려잡은 열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열녀는 신체 건강하고 아름답다. <미인>의 여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미인>은 어떤 여성이기에?


“그림 속 여자는 아무 여성이 아니다. 기생이다. 예쁘기도 하지만, 첨단의 패션을 자랑한다. 여인의 저고리는 타이트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그림을 간송미술관에서 복제해서 파는데, 어느 아저씨가 ‘야, 이 여자 예쁘다, 딸 줘야겠다’고 사려고 했다. 기생을 그린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부인이 다른 그림 산다고 결국 안 샀다. 그림에서 옷고름이 풀어져 있다는 것은 정숙한 여인상은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선 미인도를 땅바닥에 깔고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더라. 미인도의 잘못 사용한 예라고 할까? (웃음) 해석이 제각각인 혜원의 이 시를 보자.” 


盤胸中 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가슴 속 만 가지 춘심을 펼쳐내노라.

붓 끝으로 대상의 정신까지 그려보았노라.
 



조선 17세기, 어몽룡의 <달과 문화>(월매)에 대한 이야기.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그림을 꼽으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꼽겠다. 구도가 특이하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그림은 없다. 붉은 가지가 중간에 곧게 올라 있는데, 중국인은 이런 식의 매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이런 이미지를 좋아했다더라. 가늘고 꼿꼿하게 서 있는 이미지를 애호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가장 사랑한 것이 매화였다. 중국과 아주 다르다. 꽃은 적게 그려져 있는데, 19세기 오면 꽃을 크게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화려한 매화가 유행했다.”


이 그림과 어울리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안민영의 ‘매화사’의 일부다. 매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아닐까.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아녔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터라.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j******2 2011.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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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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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도 그렇지만 동양화는 더욱 더 그림에 깃들여진 그 뜻을 모르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다.서양화와는 달리 동양화에는 그림과 더불어 한시가 쓰여져 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림만 보게 되는데 그 뜻을 모르니 눈뜬 장님 신세인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 친절하게도 한시를 정자로 옆에 따로 적어 놓기도 하지만 적어 놓아도 해석이 안되고 해석이 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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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도 그렇지만 동양화는 더욱 더 그림에 깃들여진 그 뜻을 모르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다.

서양화와는 달리 동양화에는 그림과 더불어 한시가 쓰여져 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림만 보게 되는데 그 뜻을 모르니 눈뜬 장님 신세인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 친절하게도 한시를 정자로 옆에 따로 적어 놓기도 하지만 적어 놓아도 해석이 안되고 해석이 되어도 언제 누가 쓴 시인지 모르니 그 배경을 몰라 답답했다.
 
이 책은 그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선비들의 그림 속에 나타난 패러디와 위트를 이해하고 재미있었겠지만 현재의 우리는 자세한 풀이가 있어야 그 그림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첫번째로 소개된 최북의 '공산무인도'는 예전에 어디선가 한 번 본 그림인데 이런 뜻인지 몰랐다. 그 때 헛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우도의 '반본환원'과 같은 뜻이란다.

편집도 팬시하다.



 
선불교의 심우도 중의 아홉번째 '반본환원'  :  근원으로 돌아가 대우주자연을 있는 그대로 다시보는 경지

e******s 2011.07.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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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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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그림 감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책들로 인해 잘 알지못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되곤 한다. 아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맘에 들면, 혹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오래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언니는 풀밭위의 점심 앞에서 움직일줄을 몰랐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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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그림 감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책들로 인해 잘 알지못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되곤 한다. 아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맘에 들면, 혹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오래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언니는 풀밭위의 점심 앞에서 움직일줄을 몰랐고, 나는 그동안 무수히 봐 왔던 모나리자가 상상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그림임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니 또 복사본과는 다른 느낌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진을 치고 있었다. 훗날 단체관광으로 따라갔을 땐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그 미소를 덮어버린 유리벽과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통만 쳐다보게 되어 처음 봤을때의 그 알수없는 설레임을 다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런 유명작품들은 굳이 설명이 없더라도 나만의 느낌으로 그림감상을 해보려고 하는데 간혹 잘 알지 못하는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볼때가 있다. 저 그림은 별론데 왜 그러나 두리번거리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둘이 그 넓은 루브르를 헤매고 있을 때 마침 마주친 한국인 관광객 단체가 들어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고 있어 설명이 아쉬운 우리도 잠시 따라다녔다. 책에서 얼핏 봤던 것 같은 그림 앞에 멈춰서서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마침 가이드는 파리에서 유학중인 미술학도라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이 아니지만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등등... 나는 그림이란 단지 그림일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림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림관련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관심은 서양미술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우리 미술로 옮겨오게 되었고 실제 작품을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옛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조금씩 인식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책에 실려있는 그림도판밖에 보지 못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은 그 도판을 보면서 이 그림이 뭐가 위대하다는거지? 라는 생각도 감히 하곤했다.
그런데 그림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설명이 더 많았던 책들과 달리 '문학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은 그림을 독해하는 기본 문법이었고, 문자 향유의 특권을 누렸던 문사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 장치이자 그림 이해의 핵심 코드였다"라며 문학적인 접근을 하며 그림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이 책은 문학적 감성과 미적 감각이 어우러진 우리 옛그림에 대한 사랑을 더 깊어지게 해 주었다. 

내가 글을 잘 읽는편이라고는 하지만 그 문학성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고 그저 가끔 문학안에 담겨있는 은유를 느끼며 감탄할 때가 있는데 그러한 것 또한 그림에서 볼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강세황의 지상편도에서 강세황과 유경종이 나눈 마음의 정원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정원의 상상으로 서로의 인격을 칭송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 그림의 내면을 멋지게 감추어준다. 글과 그림으로 즐기는 정원 속에서 물질적 욕망은 오히려 마음껏 펼쳐질 수 있었다"(194)라고 말하는데 그림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해보게 한다. 그것이 화가의 의도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의 그림 감상이 아예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게 해주기도 하고.
윤제홍의 한라산도 역시 "한라산의 실제 모습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화가가 그림으로 불러들인 것은 백록담에 담긴 옛 사람들의 숨소리"(311)임을 말하고 있어 그림으로 표현되는 문학을 조금 더 느껴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옛 사람들이 당연히 알던 것을 어렵게 이해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옛 그림의 매력으로 작용했던 것이 지금은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림의 바탕이 된 문학작품을 끄집어내어 해설하고 덧붙여 알아보는 이야기까지 해 주며 옛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림이 나타낸 주제에 따라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우리가 감상할 그림을 앞에 두고 잠시 자신의 느낌을 짚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저자의 꼼꼼한 해설이 뒤따라 옛 시문과 그 의미, 또 세부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한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렇게 옛 그림을 이해하게 되면 다시 저자는 자신의 마음으로 바라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해 준다.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참고문헌이나 인용출처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덧붙여 알아보기'는 새삼 저자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고 그림을 한번 더 바라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그림 중 하나는 이재관의 오수도午睡圖(낮잠)였다. 책을 쌓아 등을 기대고 또 쌓아 머리에 베고 또 잔뜩 쌓아 곁에 두고 책을 읽던 선비가 잠든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책이 귀한 그 시대의 꿈일뿐만 아니라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부러워하며 오수(낮잠)을 즐기는 이 선비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아니 보편적인 이야기로 눙칠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선비를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적인 책문화의 무게를 일단 배제하고, 꿈에 들어 원하는 세계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r***2 2011.05.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림, 문학에 취하다 - 우리 정서 느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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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7   햇살이 따뜻한 오전에 커피숍에 가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왠지 커피숍에서 책을 읽으면 낭만적일 것같다는 느낌에 책을 펼쳐들었는데 서양의 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동양의 그림 한 폭과 시 한 수를 읊어가는 내 모습이 아이러니 했다. 하지만 어느새 커피향이 전통차의 향으로 바뀐듯한 정겨운 느낌이 드는건 책에 더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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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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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뜻한 오전에 커피숍에 가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왠지 커피숍에서 책을 읽으면 낭만적일 것같다는 느낌에 책을 펼쳐들었는데 서양의 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동양의 그림 한 폭과 시 한 수를 읊어가는 내 모습이 아이러니 했다. 하지만 어느새 커피향이 전통차의 향으로 바뀐듯한 정겨운 느낌이 드는건 책에 더 심취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날의 커피와 책 한 권의 승부는 책이 이겼다고 봐야하겠다.

 

 

최근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잘 설명된 책들이 많았기에 나도 작년부터 읽어온 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참 감회가 다르다. 이전의 책들은 서양 미술 작품을 대부분 보았는데, 이번엔 완전히 동양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시와 그림을 함께 말이다. 우리나라 및 동양권의 그림을 감상하는 건 솔직히 낯설다. 그림 한 폭에 깃든 의미심장한 내용들 때문에 오히려 서양 작품들을 더 쉽게 접하고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화가들의 생애, 업적에 대해서는 거창하게 감상하면서 우리의 것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동양의 그림들은 어렵게 감상이 되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은 것 같다.

 

 

 

서양 작품과는 다르게 동양의 것은 여백을 중시하고 시나 글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다 보니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물론 서양의 작품도 그러한 것들이 있지만 동양은 주로 산수화를 통해서 인생을 논한다거나 자신의 사상을 의미심장하게 내포한 것들이 많다보니 미술 작품을 감상할때 세심히 보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 특히 실학자 박제가가 그린 어락도(물고기의 즐거움)은 단순한 물고기 그림이 아니라 사상과 정치적 배경, 세상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려준다. 실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림 감상법을 소개하였는데, 세상의 만물을 면밀히 살피고 인식하려고 하는 문명 발전론을 주장하는 그의 그림과는 다르게 그림 안에 적힌 글은 중국 장주의 장자 중의 한 문장이다. 장주의 글은 논리와 직관의 대비를 이루는 혜자와 장자의 대화글인데 장자론은 사실 예사롭지 않은 문명 거부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연못의 물고기이라 하지만 자연을 나타내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빗대어 표현한 것에는 공통된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상반적일 것 같은 그들이 그림에서는 한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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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림 한 편에 있는 짧은 글귀 또는 문장을 통해 이들이 적히게 된 배경과 전체적인 글을 설명함으로써 작품감상의 이해를 돕는다.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글들이 화제를 전환하고 있고 때로는 작품속에서 동파건을 쓴 동파선생(소식)을 찾거나 그림 속의 주인공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어렵기만 했던 정치적, 역사적 배경과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과 화가들을 만나보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한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지만 새롭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으로 산뜻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선조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덮으면서 나또한 아닌줄 알면서도 도원을 상상하고 기대해 본다. 스팩타클한 대 서사시 영화를 본 것 같은 웅장함이 든다. 겉표지를 벗겨내어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안견의 적벽부도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참으로 맘에 들어했구나 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YES마니아 : 로얄 t*******s 2011.04.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림, 문학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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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인의 집 벽에 낮게 붙여진 한시가 왠지 모르게 멋스럽게 느껴지면서, 그 의미가 궁금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한시가 주는 풍취가 차의 맛을 더욱 깊이 있게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뒤 영어만큼 어려운 한문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때의 추억 속 정취와 인연들이 <그림, 문학에 취하다>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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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인의 집 벽에 낮게 붙여진 한시가 왠지 모르게 멋스럽게 느껴지면서, 그 의미가 궁금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한시가 주는 풍취가 차의 맛을 더욱 깊이 있게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뒤 영어만큼 어려운 한문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때의 추억 속 정취와 인연들이 <그림, 문학에 취하다>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옛 그림의 정취 속 옛사람들과의 행복한 조우를 기대하며 시간 여행의 꿈으로 부풀었다.

 

나름의 그림을 보는 방법, 감상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보고 나름의 느낌을 제대로 갖고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저 ‘좋다’는 정도, 그런데 그 그림에 대한 일화나 작가에 대해 알게 되면 그림이 훨씬 친숙해지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더욱 오래 기억되면서 삶이 풍성해지는 것은 느낀다. 그래서 최근 미술관, 전시회를 찾는 기회도 갖고 나름 그림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옛 그림은 낯설다. 역사책에서 보았던 몇몇의 익숙한 그림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문외한에 가깝다. 그리고 제 아무리 ‘여백이 미’라며 칭송하지만 그 여백의 미를 심취할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 한 권이 책이 옛 그림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 속에 담긴 정신과 풍취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살가워지는 것 같았다.

‘문학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란 부제에 걸맞게 옛 그림을 보는 느낌이 문학작품과의 연결고리로 인해 훨씬 다채로워졌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아지면서 그림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옛그림 감상법을 순간순간에 몸으로 느끼면서 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내공이 너무도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제대로 음미할 시간적 여유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그저 급하게 먹기 바빴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음미할 시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삶의 깊이, 달관의 경지, 숭고함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가득하였다.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풍류가 넘치는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나들이한 기분이다. 생에 기운이 넘치는 이 봄에 조금은 호젓하고 느긋한 마음이 되어, 넉넉해지는 기분에 취하게 된 듯하다. 그림은 문학에 취했고 나는 그 그림 속에 흠뻑 취하는 시간이었다. 그 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을 만큼 긴 여운이 감돈다

 

d******3 201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