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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지러워 도무지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을 뒤적거렸다. 이상하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서너 권의 책을 겨우 몇 장씩 읽다가 덮어버렸다. 책장 앞을 서성거렸다. 소설 책에 집중하지 못할때는 여행서나 그림에 관한 책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걸 생각해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글에 대한 리뷰를 보자마자 읽고 싶어 구입했던 책. 그림과 문학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잖나. '문학 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란 소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마음이 풍랑이 이는 듯 춤을 추더니 어느 새 고요해진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옛그림과 시를 읽으며 어느새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림은 그런 존재인것 같다. 얼어붙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게 내겐 그림이다.
옛그림 속에 숨어든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글이다. 옛그림에 담긴 문학작품을 설명하며 그 시대의 우리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문학작품(시)가 애호되던 그 시절의 상황과 중국의 작품을 좋아했던 우리 선조들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림과 문학을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도 엿볼수 있었다. 저자도 책머리에서 밝혔지만 우리나라의 뛰어난 문인인 최치원이나 대문학자인 이율곡의 작품도 더러 있지만 중국 당나라나 송나라의 명시들이 대부분이고 오랜 중국의 사상서나 역사서도 포함을 시켰다고 말했다. 중국의 훌륭한 작품들을 외우고, 그런 문학작품을 그림으로 표현해 문학과 그림이 어우러져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고 그림을 감상하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의 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소식. 조선의 문인들은 좋아했던 동파 선생의 모습과 그가 유배지의 뱃놀이를 읊은 '적벽부'와 안견이 그린 「적벽부도」를 감상했다. 여름 지나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소식이 흥을 내어 노래하기 시작하는데 배 안의 손님 한 명이 구슬픈 가락의 피리를 분다. 삶의 덧없음을 지적하고 죽은 영웅(조조)의 시를 읊는다. 소식과 손님은 삶은 한때 위대했던 영웅과 그의 참패 장면과 영웅의 죽음을 떠올리고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한다. 손님에게 술을 권하며 마음을 달래주는 소식의 초월적 철학과 우정을 볼수 있는 글이다. 조선 문인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소식은 정작 우리의 선조들을 변방의 오랑캐라 부르면서 고려에 책을 하사하거나 팔지 못하도록 진정을 고하고 우리 사신들이 강남으로 들어가는 것도 차단시켰다 한다. 중국의 귀한 책이 고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하니 이것 참 아이러니다. 소식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외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벼슬을 그만 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의 기쁨과 전원생활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설명한다. 유배의 명을 받고 전원으로 쫓겨 왔던 한 어의 요청을 받고 조선 후기의 중인화가인 전기가 그린 「귀거래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초라한 집이지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와 높은 기상의 소나무가 나룻배를 타고 도착하려는 도연명을 반기는 듯한 그림. 그림 속에서 우리는 전원 생활을 향한 기대감과 설렘을 볼 수 있는 듯하다. 우리 또한 힘겨운 생활을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꿈을 늘 꾸곤 한다. 우리의 마음과 닮았다.
전기, 「귀거래도」, 종이에 수묵담채
소나무 아래 소년 신선이 앉아 생황을 부는 장면인 김홍도의 많은 걸작들 중의 대표작인 「송하취생도」이다. 당나라 시인인 나업의 「제생」이란 글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제생」에서 나업은 생황 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국 주나라의 태자로 태어났으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산수山水에만 뜻이 있었던 그는 나이 열다섯 살에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웠다. 그 다음 해 왕자진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는데 왕자진은 생황을 연주하며 눈같이 흰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김홍도가 「송하취생도」로 나타냈다. 힘찬 기백이 보이는 소나무의 그림과 금방이라도 생황을 불며 일어서 그림속에서 빠져 나올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 생동적이다. 생황가락의 신비로움과 맑음을 볼 수 있는 글과 그에 대한 그림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생황가락이 들려온다.
김홍도, 「송하취생도」, 종이에 수묵담채
우리나라의 옛그림은 문학적 흥취가 있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서양화도 물론 좋아하지만 은은함 속에 숨겨진 열정이 엿보이는 듯한 옛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 오를때는 그 화를 누그러뜨려주기도 하고 슬플때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게 우리의 그림인 것 같다. 그림 속에서 문학 작품을 볼 수 있었고 문학 작품을 이해하며 옛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학에 취하고 그림에 흠뻑 빠질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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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화전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인들의 그림은 타인의 시들의 일부에서 전문, 혹은 약간 자신만의 해석이나 유희적인 의도에서 변형된 시들이 함께 그림을 이루기도 하고 한명의 문인이 시와 그림을 하나로 묶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선비나 화가들의 가치관과 당대의 세계관이 함께하는 책 속의 그림들 속에서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관찰하거나, 이미지를 상상하여 구축해 가기도 한다. 저자의 시 원문 해석과 덧붙이는 설명 등 풍부한 사료와 함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혹은 인물 설명들 덕분인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옛 그림들이 더 빛나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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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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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화폭 속 여유를 나눠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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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의 모델은 어떤 여성일까? 『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희 옛 그림을 보면, 시문이 적혀 있다. 그림과 시가 조응하는 관계. 문학작품이 곧 그림으로 형상화되거나 시의 정취가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이는 또 다른 회화 작품으로 꼬리를 잇는다. 옛 그림들 속에 알게 모르게 다양한 문학적 의취(意趣)가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자가 있다. 옛 그림이 문학에 취한 듯 보인다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고 말한다. 옛 그림과 문학의 관계를 다룬 『그림, 문학에 취하다』의 고연희 저자다. 3월31일, 서울 신촌의 한 모임 공간에서 YES24의 예술특강 릴레이 두 번째 시간이 열렸다. 고연희 저자가 독자들과 책 속의 이야기를 나눴다. 문학작품을 통해 옛 그림을 감상하고 시문을 풀이하면서 그림의 속내를 이해하는 시간. 독자들은 그림에 취하고 문학에 취하면서, 봄밤을 맞이했다. 그림 속의 시문을 탐색하면서 시문의 탄생 배경과 인용구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흥미로운 시간.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림과 시문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당대의 역학관계를 보여줌으로써, 한 장의 그림이 품은 깊고 넓은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 세계에 살짝 발을 디디기에 앞서, 옛 그림에 시문이 담겼던 배경에 대한 고연희 저자의 설명. “현대 그림에는 글을 안 쓴다. 옛날 그림에는 글씨가 많이 올라와 있다. 그림에 글씨를 써 놓은 것을 그림으로 볼 것이냐, 다른 장르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림에 글씨를 쓰는 건 원나라 이전엔 없었다. 원나라 시절에 문인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문화가 생겼다. 문인이라는 문화지배계층이 그림을 지배하면서 그림에 침범했다고 볼 수 있다.” 산수화 한 점에 담긴 이야기 조선 18세기 전반의 작품, 겸재 정선(鄭敾)의 <만폭동(萬瀑洞)>. 이 그림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당시 김창협, 김창흡 형제 주축의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금강산 유람 열풍이 불었다. 그 덕에, 금강산 시(詩), 금강산 기(記), 금강산 그림(畵)이 쏟아졌다. 이 때, 만폭동은 중요한 유람코스 중의 하나였다. “조선후기의 화가 정선은 만폭동을 유난히 잘 그렸다. 만폭동 그림에서 정선의 능란하고 힘찬 필력은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p.295)
여기서 시 한 수.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꼬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제는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 -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 “정철의 시와 정선의 그림이 연관성을 갖게 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당시, 시에선 이병연이 최고요, 그림에는 정선이 독보적이었다. 이병연도 만폭동을 읊었다.” “정철의 금강산 가사는 매우 귀한 작품이었다. 또한 금강산 시를 지어 이름을 떨친 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조선후기 김창흡과 이병연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선과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문인들이며, 이들의 시문은 다시금 정선의 그림과 짝지어져 감상자들의 흥겨움을 돋우어 주었다. 이병연의 시는 더욱 뛰어나 그의 스승 김창흡에게 높이 칭송을 들었다.”(p.295) 삐죽삐죽 기운 봉우리 빈 땅을 다투고 푸릇푸릇 빗긴 고개가 높은 가을에 닿네. 골짝 열려 골짝 속으로 드는 길 끝이 없고 못물 떨어져 못물 속으로 흐름에 쉼 없네 - 이병연 「만폭동」- “반복적인 단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이 시는 만폭동의 흥겨움을 전달했다. 정선의 그림도 어떤 흥겨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정선은 리드미컬하게 그림을 그렸다. 문인들이 산에 간 이유는 수명 연장이 아니었다. 맑은 기운을 마시면서, 이 전의 성리학과 달리 감각을 통한 흥취의 가치를 인정했다.” “시인 이병연과 화가 정선은 함께 금강산을 찾아갔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금강산에서 취한 그들의 흥겨운 정취를 시화로 제작하며 어울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병연이 시로 표현한 산수의 정취를 정선의 그림에서 비교하며 찾아볼 수 있다.”(pp.296~297)
한편으로 만폭동 바위에 글자를 쓴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 기록에는 바위에 먹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18세기 문인들 여행 기록에 의하면, 만폭동 벽하담 벽에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천암경수 만학쟁류(千嵓競秀 万壑爭流). 이 말은 중국의 고개지가 4세기에 지은 시에서 비롯됐다. 천 개의 바위가 솟아나길 겨루고 만 개의 골짝은 흐르기를 다투더라. 풀 나무 그 위로 올라 몽롱한 것이 구름 크게 일고 노을 가득 낀 양하더라. “고개지가 산수여행을 갔다 왔는데,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답한 시다. 워낙 좋은 시라 좋은 산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 됐다. 그렇다면 만폭동 바위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를 써 놓은 사람은 누굴까? 김수증(1624~1701)이라고 문헌에 있는데, 김창협, 김창흡의 숙부다.” “만폭동을 둘러본 문사들은 만폭동 바위에 적힌 문자들 중에 ‘천암경수 만학쟁류’라는 여덟 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이 여덟 자를 누가 적었는지 동행한 스님에게 묻기도 하였다. 금강산 기행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여덟 자를 적은 사람은 종국에 김수증으로 인정되어간 사실을 볼 수 있다.”(p.299) <만폭동>과 <혈망봉>에는 주자의 글이 적혀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산벼락에 글 쓰는 것을 멋으로 삼았다. 헌데, 이것이 문화적인 행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고연희의 주장이다. 당대의 정치권력이나 시스템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송시열이 쓴 책에 의하면, 정치권력과 결탁이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우리 문화재를 보고, 아름답다, 혹은 선조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정치권력이나 사회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면, 문화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반성의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조선시대, 중국의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조선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고, 숭명배청(崇明拜淸)을 폈다. 그러면서 명나라 문명은 오랑캐가 삼켜서 중화는 사라졌으므로, 조선이 곧 중화인 조선중화사상이 발현한다. “조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학설인데, 18세기 우리나라의 산수를 그렸을까. 18세기 글을 보니, 중화사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더라. 내 조사로는 관계가 없다. 학계의 업적을 깨트리면 생명부지 할 수 있겠느냐는 염려도 받았는데, (웃음) 학계에서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 중국의 산수유람 유행의 문화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문화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주성도 좋지만, 너무 몰두하면 열등의식이 표출하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심사정 (1707~1769)의 작품, <사나운 배가 토끼를 잡네>(豪鷲搏兎). 화조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인정받았던 심사정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매가 토끼를 잡는 것이 주제다. 재밌는 것은, 옛 문헌을 보면 토끼를 교활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토끼가 매에게 당하는 것을 불쌍하기보단 잘 됐다고 여긴다. 이 시를 보자. 숲 속에 사는 교활한 토끼 깊은 굴만 믿더니, 가을 풀 무성해도 몸은 훨씬 뚱뚱해졌건만. 한가롭게 엎드려 머리통 깨질 방책을 생각 않더니. 피 쏟고 털 날리며 삽시간에 화를 당했네. - 성현, 「하사받은 세화에 가을 매가 토끼 잡는 것이 그려져 있네」- “15세기의 문인 성현이 「추응박토도(가을 매가 토끼 잡네)」를 세화로 받았다. ‘세화’란 새해 아침 임금이 선물로 내리는 그림이다.… 성현은 미인도를 세화로 받고 벗들의 놀림을 받은 일도 있는데, 이와 같이 토끼 살육 장면의 그림도 받게 된 것이다. 성현은 유학자답게 「미인도」는 미인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추응박토도」는 용맹스러워지라는 뜻으로 받들고 성은에 감사하며 늙도록 감상하겠다고 다짐하였다.”(p.240)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매 위에 두 마리의 새가 있다. 조선 전반기의 시를 보자. 가을토끼 풀숲에서 깡총 뛰니 배고픈 수리가 즉시 내리 덮쳤네. 피 아롱진 것은 보이지만 발톱이 눈알 뚫은 걸 누가 알리. 산새들 깜짝 놀라 날아올라, 찍찍 깍깍 공중에서 곡을 하네. - 나식, 「두성공자의 매 그림에 부치다」- “16세기 나식이 종실화가 두성령 이암의 그림에 부친 제화시이다. 토끼가 잡혀 죽는 장면 뿐 아니라 주변 새들의 행위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읊고 있는 내용도 심사정의 「호취박토도」와 부합한다.”(p.242) 다시 그림을 보면, 바위 밑에 꿩이 있다. 꿩은 바위 속에 숨어 있는데, 이런 시를 보자. 바위 아래 꿩이란 놈, 사람들이 모두 웃네. 머리 쑤셔 넣고 나무 아래 숨었는데 제대로 숨지 못했다고. -이기지, 「여기의 한 쌍의 매 그림」 중에서 - “책에는 이걸 더 재밌게 표현하려고, 장기전의 이야길 집어넣었다. 양반의 모습을 풍자한 거지. 그렇다고 꿩이 항상 그렇게만 표현된 건 아니다. 꿩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더라. 어쨌든 이런 그림이 왜 그려졌을까,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은 매이다.” “조선시대 문사들이 제화시를 남기며 가장 많이 감상한 새 그림이 매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사나운 매의 박력은 조선의 학자들에게 무척 매력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p.244) 천지 중에 기특한 재주 영웅의 기운을 품고, 구름 뚫고 번개 당겨 푸른 하늘 놀라게 하네. 결국 때를 만나 쓰이게 되리니 토끼 잡고 여우 잡아 그 공을 보여주리. - 서거정, 「매그림」 중에서 - “조서초기의 서거정은 매 그림의 뜻을 읊었다. 서거정이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예전에 매는 주로 사냥에 쓰였기에 그는 토끼와 여우를 놓치지 않고 잡아오는 수렵용 매의 능력을 들어 매의 공력으로 예시한 것이다.”(p.244) 심사정이 역시 매와 토끼를 그린 다른 작품, <사나운 매가 토끼를 잡다>에는, 꿩이 없다. 매만 부각된다. 18세기, 강재향의 <매 기르는 사람의 이야기> 중에 매에 대한 묘사가 잘 나와 있다. “매잡이 사냥은 고구려 벽화 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동양 뿐 아니라 중세에도 각광받는 귀족 레포츠 중의 하나였다. 명대의 박물학적인 서적인데, <삼재도회>라는 책에 해동청이 들어 있다.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서 온다고 해동청이라 부르고,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얀 매를 중국 황제들이 좋아했는데, 우리나라 전국에서 매를 잡아 올리면 중국 황제에게 갖다 바치는 풍습도 있었다더라.”
매는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동물이었다. 조선 태종이 신하인 이천우에게 하사한, <푸른 매(蒼鷹)>과 <흰매(白鷹)>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매 그림이 신통력이 있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이규경은, “요즘 재앙을 물리치고자 으레 매를 그려 붙여 액막이를 한다”는 글을 적기도 했다. 신윤복 <미인>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현재 간송미술관에 있는 신윤복의 <미인>. 많은 사람들이 조선 미인의 전형처럼 얘기하고, 당시 여성상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삼강행실도를 다른 책을 보면, 남편을 물어간 호랑이를 때려잡은 열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열녀는 신체 건강하고 아름답다. <미인>의 여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미인>은 어떤 여성이기에? “그림 속 여자는 아무 여성이 아니다. 기생이다. 예쁘기도 하지만, 첨단의 패션을 자랑한다. 여인의 저고리는 타이트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그림을 간송미술관에서 복제해서 파는데, 어느 아저씨가 ‘야, 이 여자 예쁘다, 딸 줘야겠다’고 사려고 했다. 기생을 그린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부인이 다른 그림 산다고 결국 안 샀다. 그림에서 옷고름이 풀어져 있다는 것은 정숙한 여인상은 아니라는 거다. 일본에선 미인도를 땅바닥에 깔고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더라. 미인도의 잘못 사용한 예라고 할까? (웃음) 해석이 제각각인 혜원의 이 시를 보자.” 盤胸中 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가슴 속 만 가지 춘심을 펼쳐내노라. 붓 끝으로 대상의 정신까지 그려보았노라.
조선 17세기, 어몽룡의 <달과 문화>(월매)에 대한 이야기.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그림을 꼽으라면 나는 이 그림을 꼽겠다. 구도가 특이하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그림은 없다. 붉은 가지가 중간에 곧게 올라 있는데, 중국인은 이런 식의 매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는 이런 이미지를 좋아했다더라. 가늘고 꼿꼿하게 서 있는 이미지를 애호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가장 사랑한 것이 매화였다. 중국과 아주 다르다. 꽃은 적게 그려져 있는데, 19세기 오면 꽃을 크게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화려한 매화가 유행했다.” 이 그림과 어울리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안민영의 ‘매화사’의 일부다. 매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아닐까.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아녔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浮動)터라.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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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도 그렇지만 동양화는 더욱 더 그림에 깃들여진 그 뜻을 모르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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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그림 감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책들로 인해 잘 알지못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되곤 한다. 아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맘에 들면, 혹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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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7
최근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잘 설명된 책들이 많았기에 나도 작년부터 읽어온 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참 감회가 다르다. 이전의 책들은 서양 미술 작품을 대부분 보았는데, 이번엔 완전히 동양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시와 그림을 함께 말이다. 우리나라 및 동양권의 그림을 감상하는 건 솔직히 낯설다. 그림 한 폭에 깃든 의미심장한 내용들 때문에 오히려 서양 작품들을 더 쉽게 접하고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화가들의 생애, 업적에 대해서는 거창하게 감상하면서 우리의 것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동양의 그림들은 어렵게 감상이 되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은 것 같다.
서양 작품과는 다르게 동양의 것은 여백을 중시하고 시나 글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다 보니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물론 서양의 작품도 그러한 것들이 있지만 동양은 주로 산수화를 통해서 인생을 논한다거나 자신의 사상을 의미심장하게 내포한 것들이 많다보니 미술 작품을 감상할때 세심히 보아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 특히 실학자 박제가가 그린 어락도(물고기의 즐거움)은 단순한 물고기 그림이 아니라 사상과 정치적 배경, 세상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려준다. 실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림 감상법을 소개하였는데, 세상의 만물을 면밀히 살피고 인식하려고 하는 문명 발전론을 주장하는 그의 그림과는 다르게 그림 안에 적힌 글은 중국 장주의 장자 중의 한 문장이다. 장주의 글은 논리와 직관의 대비를 이루는 혜자와 장자의 대화글인데 장자론은 사실 예사롭지 않은 문명 거부론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연못의 물고기이라 하지만 자연을 나타내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빗대어 표현한 것에는 공통된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상반적일 것 같은 그들이 그림에서는 한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 한 편에 있는 짧은 글귀 또는 문장을 통해 이들이 적히게 된 배경과 전체적인 글을 설명함으로써 작품감상의 이해를 돕는다.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글들이 화제를 전환하고 있고 때로는 작품속에서 동파건을 쓴 동파선생(소식)을 찾거나 그림 속의 주인공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어렵기만 했던 정치적, 역사적 배경과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과 화가들을 만나보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한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지만 새롭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으로 산뜻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선조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덮으면서 나또한 아닌줄 알면서도 도원을 상상하고 기대해 본다. 스팩타클한 대 서사시 영화를 본 것 같은 웅장함이 든다. 겉표지를 벗겨내어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안견의 적벽부도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참으로 맘에 들어했구나 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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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인의 집 벽에 낮게 붙여진 한시가 왠지 모르게 멋스럽게 느껴지면서, 그 의미가 궁금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한시가 주는 풍취가 차의 맛을 더욱 깊이 있게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뒤 영어만큼 어려운 한문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시’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때의 추억 속 정취와 인연들이 <그림, 문학에 취하다>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옛 그림의 정취 속 옛사람들과의 행복한 조우를 기대하며 시간 여행의 꿈으로 부풀었다. 나름의 그림을 보는 방법, 감상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보고 나름의 느낌을 제대로 갖고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저 ‘좋다’는 정도, 그런데 그 그림에 대한 일화나 작가에 대해 알게 되면 그림이 훨씬 친숙해지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더욱 오래 기억되면서 삶이 풍성해지는 것은 느낀다. 그래서 최근 미술관, 전시회를 찾는 기회도 갖고 나름 그림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옛 그림은 낯설다. 역사책에서 보았던 몇몇의 익숙한 그림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문외한에 가깝다. 그리고 제 아무리 ‘여백이 미’라며 칭송하지만 그 여백의 미를 심취할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 한 권이 책이 옛 그림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 속에 담긴 정신과 풍취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살가워지는 것 같았다. ‘문학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란 부제에 걸맞게 옛 그림을 보는 느낌이 문학작품과의 연결고리로 인해 훨씬 다채로워졌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아지면서 그림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옛그림 감상법을 순간순간에 몸으로 느끼면서 더욱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내공이 너무도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제대로 음미할 시간적 여유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그저 급하게 먹기 바빴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음미할 시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삶의 깊이, 달관의 경지, 숭고함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가득하였다.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풍류가 넘치는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나들이한 기분이다. 생에 기운이 넘치는 이 봄에 조금은 호젓하고 느긋한 마음이 되어, 넉넉해지는 기분에 취하게 된 듯하다. 그림은 문학에 취했고 나는 그 그림 속에 흠뻑 취하는 시간이었다. 그 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을 만큼 긴 여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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