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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dvd로 나와 있을 줄은 몰랐다. 한 달 전에 혹시나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 봤는데, '어부의 신발'이라는 타이틀로 출시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때는 몰랐는데 현재는 이곳에서도 판매 중이다. 지금 예스 상품소개란에는 쓸만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한지라, 넋두리처럼 영화 줄거리를 리뷰에 비실비실 늘어놓는 모자란 짓을 잘 하지 않는 내가, 특별히 작품의 아웃라인을 좀 간단히 적어 두려 한다. 구매하시려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우선 이 영화는 안소니 퀸의 얼굴을 봐도 알겠지만(이 말은 좀 어폐가 있다, 왜나면 그는 거의 언제나 특유의 고정된 늙은 페이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때의 퀸이라면 '25시' 같은 작품에 나올 무렵이며, 전성기가 서서히 마무리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단히 주의해야 할 것은, 1960년대 말에 제작된 영화로서, 그 배경은 1980년대를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내가 지금 오타를 낸 것 아니니 오해 없길). 즉, 이 영화는 지금으로서야 과거 시점이지만, 제작 당시로서는 벌어지지 않은 가상의 미래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게 대단히 특이하다. 벌어지지 않은 가상의 미래가 무엇인가. 다시 환기하지만 영화의 실제 제작 시기가 1960년대라는 점을 상기하라. 이때면 미국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자리에 있을 때고, 소련은 흐루시초프가 막 물러난 후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간판 아래 보수 강경 드라이브가 한창 벌어질 때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광풍 아래 유소기, 등소평, 팽덕회 등의 인사가 실각하거나 유배, 아니면 고문 끝에 반병신이 되거나 싸늘한 주검으로 화할 무렵이다. 베트남에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미군측이건 베트콩측이건) 혼전의 양상이었고, 세상은 일촉즉발의 냉전 체제 하에 인류 절멸의 위기를 머리에 지고 살 무렵이다. 영화가 이 시점에서 내다 본 1980년대는, 중국과 소련이 하나의 이념으로 뭉쳐 미국에 대항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런 레드 리그에 맞서 마침 대기근이 몰아닥친 중국에 식량 금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시대를 좀 고찰해 보기로 하자. 중국은 1950년대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래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1960년대라고 예외가 아니며, 배경은 따라서 그다지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은 아닌 셈이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보건대 큰 웃음을 피할 수 없는 사실은 뭐냐면.... 이 영화가 1980년대의 사실이랍시고 예측한 바, 세상에 무슨 중-소 동맹처럼 가능성이 낮은 것도 없다는 거다. 정보 미비로 당시 미국과 서유럽 진영에서야 꿈에도 모른 사실이, 미-소가 아니라 오히려 중-소야말로 ㉠국경 분쟁 ㉡이념 분쟁 ㉢주도권 분쟁 이라는 3대 국면에서 사사건건 대립, at the drop of a hat('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라는 뜻의 영어 숙어다) 바로 전쟁으로 돌입할 분위기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후발자의 유리한 시선에서 이 모든 역사를 알고 영화를 보면, 아무리 점잖은 입장에서라도 쓴웃음이 참아질 수가 없다. 그럼 이 영화는 어설픈 전망을 제시한 촌극에 불과한가, 천만에! 본론은 지금부터다. 시대 배경을 그리 잡았다는 거고, 영화의 줄거리는 아직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들어 보기 바람. 흐루시초프가 실각한 이래 우크라이나는 그 중추적인 전략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언제나 찬밥 신세였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반은 서방, 반은 동방을 향해 어정쩡한 위상인 이 땅에는 로마 가톨릭 신자의 비중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총인구 대비로 따지면 러시아의 열 배 가량임). 종교 자체가 부정당하는 전체주의 유물론 체제 하에서, 하물며 로마 가톨릭이라면 당국의 집중적인 박해 대상일 수밖에 없다. 키릴 신부(안소니 퀸 분)는 무려 20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을 마치고 귀환, 공산당 간부(무려 로렌스 올리비에가 이 역을 맡았다)로부터 호된 훈시를 받고 감시에 처해진다. 이때, 교황청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고 키릴(키릴은 러시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첫번째 사제다. 현재 슬라브 문화권에서 쓰고 있는 문자를 키릴 문자라고 하는 건 그의 이름에서 비롯했다)에게 접근한 젊은 신부가 있었으니, 텔레멘도('먼곳으로 보내진'이라는 뜻이니 의미심장하다)라는 이였다(아카데미 남우상도 수상한 바 있는 오스카 워너 분)는 키릴을 도와 먼 곳 이탈리아까지 몸을 옮기게 한다. 로마에 온 키릴은 교황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일약 추기경의 직위에 오르며, 교황의 갑작스러운 승하를 맞아 드디어 동구권 출신 최초로 교황직에까지 선출된다! 이 점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실제로 1970년대 후반에는 폴란드 출신의 중견 성직자 카를 보이티야가 콘클라베에서 교황(요한 바오로 2세)으로 뽑혀, 이후 세계사의 전개에서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10여 년 후, 아무도 예상 못한 슬라브 출신 교황(비록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는 아니었지만)이 탄생한 건 다시 생각해 봐도 뭔가 오싹해질 만큼 적중한 예언이다. ㅎㅎ 이 영화가 맞힌 건 그것뿐이 아니다(영화는 사실 원작 소설을 갖고 있고, 기본적인 줄거리는 소설에서 그대로 따온 거지만 일단 넘어가자). 얼마 전 새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된 프란시스코 교황은, 청빈과 실천을 몹시도 강조하는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로, 그간 금기시되어 온 예수회 출신이라는 특이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재보(라고만 하지만 그에는 아마 비자금도 상당 부분 포함?)을 처분하여 가난한 이를 돕겠다는 충격적인 결단을 교황 키릴1)이 내리는 걸로 되어 있는데, 이 역시 당시만 해도 상상 못할 비주류, 비이탈리아계 교황, 청빈을 강조하는 이단아의 출현을 예측한 셈쳐도 되지 않겠나! 여러 모로 흥미로운 구석을 보이는 영화고, 앞서 말한 배우들 외에도 비토리오 데 시카가 추기경 역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 준다. 이런 작품이 dvd 포맷으로 한국 시장에 선을 뵐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안목 있는 수입사의 결단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개인적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이 리뷰를 적는 바임. 1) 조금 문제가 있는 설정이다. 교황으로 선출된 자는 즉위와 동시에 새 이름(칭호)을 스스로 선택하는데, 무엇을 고를지는 재량에 맡겨져 있으나 보통은 생래의 크리스천 네임을 그대로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다. '키릴'은 정교회의 성인일 뿐, 로마 카톨릭의 성인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성 키릴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직접 제정한 바도 있어 더욱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