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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의 설교는 언제나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줍니다. 강렬한 어투와 거침없는 선포에서 가슴이 시원해지다가도, 그 말씀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한동안 토저의 설교에 빠져 지내다가 꽤 오랜 공백기를 거쳐 다시 토저의 설교로 돌아온 이유는 여러 설교자들의 설교집을 섭렵해 보았어도 토저의 설교만큼 가슴에 와 닿는 설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채워 주는 설교는 많았지만 가슴을 치게 하는 설교는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씨름해 오던 저에게 이 책의 제목은 특별한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저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아니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토저의 음성을 통해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영문판 편집자인 제임스 스나이더의 서론에서부터 이 책은 제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 전체에 걸쳐서 토저는 자신의 독자가 진정으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전제하에서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회심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볼 때 회심은 끝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와 행함으로 충만한 삶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회심의 확신'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어온 바 있었기에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만약 '회심의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도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회심'이라는 그 놀라운 체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놀라운 회심 이야기'라던가, '아이들의 회심 이야기'와 같은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 자신의 회심을 확신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회심을 신앙의 시작점으로 본다면, 그 시작점조차 거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이 가당키는 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임스 스나이더는 토저가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기보다는 '행함 장'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는데, 책 소개에 인용된 그 내용을 보면서 저는 이 책이 히브리서 11장에 관한 설교집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기록된 설교 중 단 한 편의 설교 중에서 잠시 다루고 있는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이 책을 읽어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오히려 베드로전서와 유다서를 설교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자는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서신에서 수신자들을 향해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베드로 사도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또한 예수님의 형제 유다가 수신자들을 향해 어떻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분명하게 그려 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마음이 그 진리에 설득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저자의 설교는 그 점에 있어서 상당히 탁월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저자 특유의 방식은 뭔가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아무런 깊이도 없는 내용을 포장만 잘해서 내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설교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점에서 그의 탁월함을 발견합니다.
저자가 구약 시대 선지자들과 함께 일하셨던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그 점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성령님과 관련된 구절들에 있어서 전치사의 의미를 중요하게 다루는 해석'에 관해 언급하면서,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선지자들의 '위'에만 계셨다는 잘못된 해석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1절('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에 나오는 '속에'라는 전치사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없었다. 성령은 오직 그들 '위에' 계셨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황당한 신학을 무너뜨린다.. 나는 성령께서 구약의 선지자들 위에, 또 그들 안에 계셨다고 믿는다. 나는 성령께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 위에 임하셨고, 또 그들 안으로 들어오셨다고 믿는다. 나는 성령께서 구약의 선지자들 안에 계셨다고 믿는데 그것은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난무하는 이유에 대해, 지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혀 실천을 망각하거나 무리한 성경해석에 집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가장 쉽고 평범한 해석이 옳은 해석이며, 하나님의 본 뜻과 아무 상관없는 기상천외한 의미를 성경 구절에서 끄집어내기 위한 현학적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이미 깨달은 성경 구절을 실천하는데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스나이더가 언급한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내용 역시 저자의 탁월함을 드러내 주고 있는 본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자는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사람들이 왜 믿음의 사람으로 불리웠는가에 대해 상기시켜 주면서 그들의 행위, 곧 그들의 순종이 그들의 믿음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믿음에 따른 행동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들을 순종으로 행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성경의 진리가 모든 이들에게 자동적으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을 만족시킨 이들에게만 진리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베드로전서 2:3절의 말씀(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문장 앞에 붙어 있는 만일(if)라는 단어의 의미는 '너희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면, 너희는 처음으로 돌아가 먼저 그분이 인자하시다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전진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수준에 따라 먼저 해야 할 일과 다음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인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또한 '신앙을 전할 때에는 신앙에 따르는 고난도 함께 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절반의 기독교만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오늘날 '절반의 복음'만을 전하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고난을 당할 때에 상대와 다투지 말고 도리어 침묵하라'는 저자의 권면에서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기 때문에,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에게 증오의 마음을 품지 말고, 악의를 키우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을 지키기만 하면 세상에 그 무엇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설명에 커다란 도전을 받았습니다.
또 저자가 자신이 '보편구원론을 믿지 않는 이유'를 성경 말씀을 근거로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설'에 대한 저자의 설명 역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뭐라고 말할 만한 수준이 못 되지만, 저자의 설명은 충분히 논리적이고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 저래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로 풍성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토저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로 지내면서 다른 누군가의 설교를 듣거나 읽으면서 은혜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와 같이 귀한 설교자의 설교를 왜 한동안 잊고 지냈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감동과 도전을 주는 설교집을 읽은 기쁨이 큽니다.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인상깊은 구절"초대교회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이름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또 그 이름에는 한 순간에 폭발할 수도 있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께 거역하든지 태도를 표명해야 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라고 믿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을 경배했다. 왜냐하면 치유와 위로와 평안과 새 삶이 그리스도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pp.254-255.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는 규장출판사의 A. W. 토저 '마이티 시리즈'의 16번째 책이다. 이 책은 총 17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 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자,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는 자, 죄인의 삶의 방식에서 해방된 자,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소망을 품는 자,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 모든 악한 것을 버리는 자, 성경이 진리를 자신에게 비추는 자, 하나님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 땅에 살지만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 하나님나라의 법을 따르는 자, 어떤 해도 당하지 않는 존재,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자, 세상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즐거워하는 자, 모든 두려움을 주께 맡기는 자, 진리를위해 싸우는 존재로 그리스도인을 말하고 있다. 이 17가지의 챕터 중 마지막 1개를 제외하곤 베드로 전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 1개는 유다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다. 사실 우리 인류의 오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아이덴티티. 즉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질문인 것이다. 왜 이 땅에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들이 이 질문이 계속해서 했을까? 이 질문이 어떤 유익을 끼쳤을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자신을 찾는 것이었고, 자신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늠해주는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를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 몇가지만 말해보고 싶다. 첫째는 "믿음과 행함의 균형이 있어야 된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히브리서 11장을 말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 하는데 또한 '행함 장'으로 불려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믿음과 행함 즉 순종은 갈매기의 두 날개와 같다.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없다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면서 날아오르지 못한다. 행함이 있는데 믿음이 없다면 그 행함은 죽은 것이다. 믿음과 행함의 두 날개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날아오른다"(p.89) 최근 한국교회에서 부산의 모교회의 프로그램을 많이 수용하여 훈련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두 날개'이다. 믿음과 행함을 말하는 두 날개는 아닐지라도 날아오르는 것은 분명코 두 날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두번째는 "순전한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으로 베드로 전서 2:2절의 말씀이다. 현대시대에 불순물이 섞인 말씀을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단들 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가운데도 너무나 많은 듯하다. 한국교회에 들리는 참담한 소식중 하나는 무슨 무슨 이단이 성도들을 빼간다더라, 이번에 모 교회가 어떤 단체 때문에 넘어갔다더라 하는 말이다. 토저는 그러한 상황에 단호히 외친다 "순수한 말씀만 먹어라"(pp.114-115) 말씀을 가르치는 나 자신이 온전히 순전한 말씀만을 주었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게 하였다.
세번째는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이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신 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사실 성경 전반을 통해서 느끼는 진리인데, 설교를 듣거나 설교자료들을 보다보면 '선물'에 집중 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인물 설교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성도들이 바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목회자들의 잘못이다. 성도들은 목회자들이 주는 꼴을 통해 자라나기 때문이다. 물론 양들도 스스로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있도록, 좋은 꼴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하지만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목자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네번째는 영적거류민을 다루는 9챕터를 통해서는 우리의 본향에 대한 소망을 확고히 가질 수 있었다. p.228의 여호와 중인에 대해 '러셀주의자들'이라 부르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앞으로 이렇게 말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바로 뒤의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부분의 설명은 난해하여 그동안 이 부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p.239의 토머스 아 켐피스의 말 "당신은 죽을 때 어떤 존재이기를 원하는가 바로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삶 속에서 애쓰고 힘쓰는 사람은 정말로 지혜롭고 복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 속에는 "앞으로 남은 때에는 지난 때에 살았던 것처럼 살지 말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명선언문 혹은 주님 앞에 이를 때에 나의 묘비명에 어떤 글을 남길 것인가? 에 대한 물음도 가져본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불리우던 사람,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결혼을 했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예수님을 좇았던.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이적과 기적을 체험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사람. 베드로. 신약성경 베드로서를 수십차례나 읽으면서도 부분 부분 설교를 하고 말씀을 인용했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그리스도이다'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신, 그래서 가짜가 아닌 진짜 그리스도인, 반쪽자리가 아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랬던 토저목사님의 말씀연구와 깊은 이해 그리고 통찰은 가히 놀라웠다. 이렇게 말씀을 바라보고 통찰하고 연구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것이 토저목사님을 통해 들려주는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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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에 흔들림이 감지된 현시대에 다시금 이것이 그리스도인다는 토저의 저술을 보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쟁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명쾌하게 답해 준 이 책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이끌어주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야망과 목적을 이루고자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주님의 제자임을 알지 못하고 결국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들에게 진정한 믿음과 그에 따른 삶을 이 책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돕고 있다. 아! 그리스도인! 이라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있는 현재 우리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며 그에 따른 삶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베드로전서의 말씀과 유다서를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임재속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자이다. 자신의 모든 야망을 주와 함께 죽고 새로운 생명을 통해 자신을 드러냄이 아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신 삶의 자리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우리들의 존재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의 삶을 가르치며 인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상과 함께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헛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자신의 감정과 마음으로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범죄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온전함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함께 살며 진리를 이루며 사는 이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체성을 통해 아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는 탄성들이 나와야 한다. 아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 바로 이 사람이다 할 수 있도록 이 책은 자세히 그리스도인이 대한 모든 것을 17가지 주제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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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생각해보게 만들어준다. 영어로 표현하면 Living as a Christian 이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크리스천이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자신은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단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정의내리는지 목차만 보아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목차를 좀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음미하면서 살펴보았다. 17개의 정의가 내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는 자,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소망을 품는자,, 이런 식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정의를 내리기 시작하면 17개가 아니라 170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는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17개를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볼 수는 있는 책이다.
일단 특징은 성경을 가지고 그 특징을 풀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한 문장 한 문장을 따로 떼내서 읽으면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 느낌이 많았다. 그런데 쭉 연결해서 그 의미를 읽으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미를 뽑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한 문장으로 배우기보다 전체적인 의미에서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이것이 토저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런 것 때문에 처음 읽을 때 좀 잘 안 읽히는, 속도감이 안나는, 좀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는 느낌이 있다. 그래도 계속 읽어나가면 전체 의미가 잡히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좀 천천히 읽되 잘 와닿지 않거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냥 넘어가면서 계속 읽으면 분명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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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란 어떤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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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의 책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설레이고 기대를 하게 된다.이번 역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내지 못함을 적나라하게 토저는 말하고 있다. 왜 이토록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벗어나서 살게 되는지 토저는 지적해주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규범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첫 장 부터 마지막장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갈수 있도록 잘 제시 해주고 있다. 선데이 크리스챤이 아닌 정말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다. 대부분 말씀이 베드로전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 목사님께서 풀어주시는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이렇게 귀한 말씀이 담겨 있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쳤었다니. 정말 우리가 세상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적나라 하게 말씀해 주셔서 참 좋았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영적인 존재들이다.우리는 세상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된다.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세상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나 자신부터도 부끄러울때가 많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땅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라고 말씀하시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땅에서의 삶이 다 인양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가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길외에는 그 어떠한 대안이 없다 .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모든 것을 버리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베드전서의 2:1.2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악독.기만 외식.불의 .시기.질투 등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면 안된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그러나 우리 믿음 자녀들은 그런 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세상에서 조롱 당하게 하고 있다.이번 토저의 책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규범들을 제시 하고 있다 .한 단원 한 단원 한 단원 마다 정말 피 같은 말씀들이다.15장에 말씀은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겨야 될 말씀이다 "고난을 즐겨워 하라"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함께 가야 할 십자가이다.십자가를 짊이 없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피하지 못할 바에는 즐겨라'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거 같다.맞는말이라고 생각한다.고난뒤에는 분명히 영광이 있다.우리 그리도인 모두가 고난뒤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고난을 견디었으면 좋겠다.또한 우리는 진리앞에서 정직하게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여서 토저는 말 하고 있다.이 책은 우리가 그리시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책이다.많은 그리스도인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좋은 책을 만나서 읽는 내내 행복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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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17가지로 정리하고 있는 토저 목사님의 책이다. 늘 나의 영이 잠자고 있는 것 같을 때 토저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 둔해진 내 마음에 회개의 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느끼곤 했는데 이 책도 나의 모습을 참 많이 돌아보게 해준다. 토저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내 모습에 비춰볼 때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그리스도인의 삶을 정의함에 있어 어떤 타협이나 어중간한 결론이 아닌 분명한 기준을 말씀하시며 마치 세상의 많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 내가 가진 소망의 목록을 생각해 보았는데 절반 이상은 세상의 소망이 더 많았다. 그리고 때론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고 있는 내 자신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 즉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은 결코 없어지거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분이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고백하며 우리에게 그 소망을 주시기 위해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마음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비록 지금은 땅에서 살고 있지만 내가 돌아갈 본향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임을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고 살고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살기 위해 사랑하고 묵상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무감으로 보는 내 삶의 모습,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지만 삶의 문제들이 닥칠 때 두려워하며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믿음 없는 모습들이 나에겐 너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덮으며 너무나 감사한 것은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깨닫지 못하는 마음, 강팍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하시니 감사하다. 나를 비롯한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결단하고 순종한다면 세상에 더 강한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부끄럽지 않게 말하기 위해 늘 내 자신을 점검하고 나의 모습이 새로워지길 성령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 마지막 때에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되는 일이 없어야 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신 것처럼 나도 주님 앞에 온전한 삶을 드릴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