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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정서는 아이러니다. 서론의 『세관』 부분은 마치 하나의 개별적인 단편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흥미롭다. 기계적이고 무감한 환경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이 점차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동시에 내면에서는 집필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기록 더미 속에서 발견한 양피지 한 장이 거대한 서사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상상력을 죽이는 장소에서 오히려 상상력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이 도입부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모순적인 정서를 예고한다. 이후 펼쳐지는 청교도 사회는 더욱 노골적인 모순 위에 서 있다. 교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려 하지만, 그 억압은 오히려 더 깊고 왜곡된 욕망을 내부에 축적시킨다. 겉으로는 도덕과 신앙을 내세우지만, 그 내부는 불안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 헤스터 프린은 이러한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그녀의 어두운 옷 위에 붉게 새겨진 ‘A’는 색의 대비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표식은 죄의 낙인이자 그녀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그녀를 고립시키는 동시에 누구보다 뚜렷한 존재로 만든다. 그녀는 사회의 비난을 온전히 감내하며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쉽게 꺼지지 않는 열정과 독립적인 사유가 흐른다. 이 주홍글자는 고통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힘이자 방패로 작용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낙인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죄의 상징이지만, 외부에서 온 이들에게는 오히려 고귀한 신분의 장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추문과 함께 강하게 각인되었던 주홍글자 역시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가 보여주는 일관된 선의와 삶의 태도 속에서 점차 의미가 희석되고 변형되어 간다. 더 이상 그것은 단순한 죄의 표식으로만 읽히지 않고,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의미는 사회가 부여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전복되고 재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딤스데일 목사는 또 다른 형태의 아이러니를 체현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 죄를 공개하지 못한다. 죄를 고백하는 그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더 큰 신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고통은 점점 육체적 증상으로 드러나지만, 사회는 그것을 신의 시험으로 해석한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철저히 사회적 믿음에 의해 왜곡된다. 칠링워스 역시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과학적 탐구와 이성의 영역에 속해 있는 듯 보이지만, 점차 타인의 내면을 해부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힌다. 청교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은 악의 형태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도덕과 악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펄은 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규범과 질서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며, 아름다움과 환상의 감각을 지닌 아이. 그러나 그녀 역시 주홍글자에 깊이 집착하며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어머니의 주홍글자를 질책하면서도 숭배하는, 순수와 집착이 한데 얽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때로는 가장 자비롭게, 때로는 가장 악의적으로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이 소설이 말하는 모순적인 인간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호손의 강력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동시에 17세기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질서와 19세기 미국의 사유가 절묘하게 녹아들며, 하나의 서사 안에서 긴장감 있게 공존한다. 각 인물들은 독특한 개성을 지니며, 내면의 모순과 흔들림은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아이러니와 모순은 갈등과 사랑의 서사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결국 인간과 사회를 동시에 겨누는 하나의 구조로 완성된다. 이 작품은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가장 정교한 형태로 엮어낸 탁월한 고전이다. #주홍글자 #너새니얼호손 #고전문학 #영미소설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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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청교도사회에서 불륜을 저지른 여성에게 A라는 치욕적인 표식 즉, A의 주홍글자를 새겨 그녀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불륜이라는 것이 한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인공 헤스터가 불륜의 대상과 남편을 밝히지 않았고 그래서 모든 비난은 헤스터 혼자 감당하였다. 죄의 결과인 펄은 헤스터와 간음대상 사이에서 탄생한 딸로 헤스터의 죄를 늘 상기시키지만 또 헤스터를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헤스터는 펄과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던 헤스터는 특출난 바느질 솜씨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생계를 유지해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헤스터는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간음의 대상이었던 딤스데일은 자신의 죄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사였지만 자신의 죄를 숨기며 살아간다. 그래도 그의 가슴에도 A가 새겨져있고 그는 늘 죄책감에 의해 힘들어하고 건강까지 나빠졌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은 죄인이라고 은연 중에 밝혀도 사람들은 그를 더 존경하기에 바빴다. 칠링워스는 사실 헤스터의 남편이었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는데 주치의의 자격으로 딤스데일의 곁에 있으며 증오심으로 인해 딤스데일을 괴롭힌다. 이것이 그의 복수였다. 이 관계에서 헤스터는 자신의 죄를 밝히고 비난을 받지만 경건하고 절제하며 살면서 사람들에게서 점점 인식이 변하고 간통의 표시였던 A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딤스데일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죄를 밝힐 수 있었을 뿐, 그 전까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죽어갔다. 과연 속죄란 무엇일까. 숨긴다고 숨겨질 것이며 죄를 밝힌다고 하여 영원히 불행한 것일까? 이 내용을 보면 오히려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속죄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칠링워스는 어떻게 보면 피해자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해자로 볼 수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부인이 간음을 저질렀지만 그에 대한 증오심으로 딤스데일을 괴롭히니 말이다.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그것을 멈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딤스데일이 본인의 죄를 밝히며 생을 마감한 후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펄에게 양도하기도 한다. 모순적인 인물, 입체적인 인물. 죄를 짓고 있지만 나중에 깨닫고 속죄하는 인물. 그래서인지 칠링워스는 현대인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속죄란 무엇일까, 우리는 참된 속죄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
| 인문고전으로 한번은 꼭 읽어보는 주홍글자...저때는 주홍글씨로 알고 있엇는데 큰 아이 중학교 논술 전문학원에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해서 주문했고, 감성제로 아이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듯 했으니...고딩때 한번 더 도전 해볼까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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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도교들의 이야기. 불륜을 저질러 그 벌로 간음을 나타내는 A라는 알파벳을 가슴에 달고 생활하는 여성. 이 여성은 자신의 딸과 함께 바느질 등을 통해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죄를 마주하면서, 결국 고난을 헤쳐나간다. 이 여성과 불륜을 저지른 목사. 이 목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 등 때문에 자신의 죄를 숨기고 산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숨기고 살기때문에 점점 피폐해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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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책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 '주홍 글자'는 당시 책의 배경 지식과 저자에 대해 미리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다. 또한 외국도서 특히 이런 고전 소설들은 번역도 상당히 아니 아주 중요한데, 다른 출판사 번역본과 비교해 보진 못했지만, 잘 되어 있는것 같다.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지만, 죄에 대한 태도? 받아들인 방식들을 풀어나가는 과정들과 묘사들이 주는 풍성함과 묵짐함이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겼다. '세관' 부분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 빠져 있는 번역본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을유문화사 책은 순서도 제일 앞쪽에 잘 자리잡아 이야기 흐름이 더 자연스러웠고 양장본에 갈색 표지로 고전 느낌 물씬 나는 책 디자인도 책 내용과 잘 어우러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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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저는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해서 선택했어요. 어릴 때 아이 아빠의 정체보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자주 나오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끝까지 현실 도피하고 헤스터 혼자만 죄를 짊어지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것이 헤스터의 사랑 방식이라도 말이죠. 그가 죄책감으로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가지만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다시 읽고 제가 뭘 더 느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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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음사건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죄와 죄책감, 용서, 사랑과 회개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각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보여주고있다. 각 등장인물에 대입하여 생각했을때 누구하나 이해되지 않는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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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주홍글씨'가 떠올랐는데, 이 표현이 바로 이 책에서 나온 거였다고 한다. 책이 좀 어렵긴 했지만, 고비만 넘기면 잘 읽힌다. '주홍글자'는 너새니얼 호손이 쓴 소설로,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도덕 기준과 그로 인해 개인이 겪는 고통을 다룬다. 이 소설에서 죄를 저지른 사람은 주홍색 글씨로 죄명을 가슴에 새기게 하고, 이는 평생 동안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간음죄를 저지른 사람은 주홍색 'A' 글자를 달게 된다. 청교도 사회는 엄격한 도덕과 법을 강요하지만, 진정한 도덕적인 삶은 법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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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간통하여 아이를 낳은 죄로 평생 가슴 한쪽에 주홍글자 "A"를 수놓아 살아야 하는 처벌을 받는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인 광장의 처형대에 서서 차가운 시선을 감내하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답고 당차게 표현되었다. 헤스터 프린이 달고 살던 주홍글자는 죄에 대한 표식으로서 그녀가 그 표식을 보며 속죄하는 삶을 살도록 그 죄를 상기시켰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녀가 죄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낙인”이 과연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범죄자들의 외적 모습에 주홍글자와 같은 낙인이 찍혀 있다면 과연 사회는 안정화되고 범죄율이 줄어들까? 확실히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현대에도 주홍글자는 존재한다. 특히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같은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실수(삼지어 범죄가 아닌 것조차) 하나에도 주홍글자가 새겨진다. 어쩌면 소설처럼 실제로 주홍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것보다 더 치욕적일지도 모른다. 현대판 주홍글자는 시공간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런 주홍글자가 죄인에게는 속죄를, 타인에게는 교훈을 주는 것에 멈추면 좋겠지만, 가끔은 도를 지나쳐 마녀사냥이 되곤 한다. 사람들이 주홍글자를 직접 만들지 않도록 사법적 처벌이 합당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기사화나 뉴스거리로 만들어 쉽게 치부해버리는 언론도 자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