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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실’에서 성깔 다른 나무를 ‘적재적소’에 옮겨 놓으려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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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실’에서 성깔 다른 나무를 ‘적재적소’에 옮겨 놓으려 하는 사람 -최은숙 산문집 성깔있는 나무들』을 읽고     1. ‘그래도 교사는 교사다’   최은숙 선생님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나에게도 ‘옛집을 향하여’ 가는 길이었다. 찾아가는 여정 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뜨겁고 설레고 조마조마하고 또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그러나 책을 덮었을 땐, 위로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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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실’에서 성깔 다른 나무를 ‘적재적소’에 옮겨 놓으려 하는 사람

-최은숙 산문집 성깔있는 나무들』을 읽고

 

 

1. ‘그래도 교사는 교사다’

 

최은숙 선생님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나에게도 ‘옛집을 향하여’ 가는 길이었다. 찾아가는 여정 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뜨겁고 설레고 조마조마하고 또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그러나 책을 덮었을 땐, 위로 받고 돌아올 거란 예감에 답해주는 선물과 위로와 격려 한보따리로 나에게 왔다. 고맙다.

이 책을 읽으며 장정일의 『공부』에서 보았던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은숙 선생님은 그동안 청양과 공주를 오가며 동료들과 배우고(책모임),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바쁜 와중에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는지, ( 오죽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하루쯤은 쉬’(p27)시라고 어린 제자가 당부할까?) 가정방문(p19 p73) 을 다니고, 스승과 친구들을 만나고(p197), 그 스승이 공부에 보태라고 소개해준 후배를 만나고(p),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시고 해수탕에 가고(p155), 절로 교회로 다니며 단식을 하고(p223) …… 길 위에서 공부를 하는 거다. 스승을 만나는 일을 벌이고 다니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최 선생님에게는 스승이고 공부라서. 그 공부가 다하는 지점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이르려는 길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최 선생님이 하임 G. 기너트 의『교실과 학생 사이』에서 인용한 구절은 그이의 공부 가운데 하나이고 많은 스승 중 하나이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교사로서 나를 좀 더 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명제이다. 꾸짖을 때도, 교사의 분노를 표현할 때도, 칭찬할 때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는 가르침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P131)…… 그러고 보면 교사란 얼마나 세심하게 순간순간을 깨어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P133)

이처럼 깨어 있는 가운데 순간순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공부와 일상과 스승의 힘을 통하여 늘 깨달으며 살고 있는 ‘아픔을 아는’ 교사 최은숙 선생님을 만나며 ‘그래도 교사는 교사’라는 위안을 곳곳에서 찾는다.

 

 

 

2. ‘아는 아픔’ 에 이르는 길과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것

 

최은숙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3월은 ‘우리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시는 달’ 이었으면 좋겠”(p73)다고 한다. 왜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가야 하는가?

누군가와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의 속내는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고 말한다. 최 선생님 글 속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진서는 깊은 밤에 선생에게 아프다, 아프다 하고 그런 진서에게 최 선생님은 “아빠도 힘들어서 그래. 얼렁 자.”(p74) 라는 답문을 보낸다. 이미 가정 방문을 해 본 선생님은 진서의 가정 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기에 그런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부의 관료들에게 건의한다. 3월에는 오전 수업만 하게하고, 오후 시간에는 교사가 가가호호 방문하여 그 아이를 좀 더 잘 알게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을 세워 보시라,는.

최 선생님의 교실에는 말썽부리는 아이가 없나? 글을 읽는 동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무섭게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선생에게 폭언하고, 폭행하고, 그런 ‘개념 없는’ 행동을 버젓이 담아 인터넷에 올리고, 학부모가 교실에 쫓아오고, 하는 광기의 학교에 최 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지도하기에 애들과 선생님이 교실 바닥과 껌처럼 그리도 착 달라붙어 있을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수없이 해가며 책을 읽었다.

“중학생 영광이가 어느 날 제가 아이들을 낳으면 선생님이 좀 돌 봐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저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제 아이들도 듣고 컸으면 좋겠어요.“(P79)

 

이런 훌륭한 관계 속에서 “이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니"(P79). 혼자 감동했을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 가득 무언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영광이와의 관계처럼 하루하루 교사의 삶이 감동의 나날들일 수는 없을까?

 

“추석연휴 마지막 날, 무지막지한 욕설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존나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쓰지. 병신 같은 ×.쌍×.…… 두 번째 메시지를 받고 나서 그것이 나에게 온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았다. 또 이딴 숙제 내봐라 죽여 버릴 거야. 쌍× 밤길 조심해라. 칼 박힐라.”(P134)

 

(애들이 착하기만 하면 교사 노릇하기 참~~쉽지요. 교육 쉽지요. 문제없지요.) 그런데 학교라는 곳은 매 순간 문제투성이의 공간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교육이 교육상의 수많은 문제는 외면하고, 제대로 교육해내지 않으면서, 날마다 ‘문제풀이’로 치달아 좋은 대학가자는 데 올인 하는 꼬락서니다 보니 어느 교실에서도 ‘추석 연휴’와 같은 사건은 시시때때로 발생하고, 어느 교실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개념 없는’ 애들이 어떤 문제를 언제 터트릴지 알 수 없다.

최은숙 선생님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고 어떤 내적 성장을 이뤄내려 하는 것일까? 그 답은 그의 공부론에 있는 듯하다.

 

“공부라는 것은 자기의 삶 앞에 정면으로 설 때 시작된다. 곳곳에서 벽을 만나는 이유가 뭔지배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때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존재로서 내 삶에 진실하고 싶을 때 공부에 방향이 생긴다. 그리고 거기에 스승이 있다. 내가 걸어갈 중심을 보여주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의 길을 갈팡질팡하며 앞서 걸어간 사람이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여행을 하다가, 혹은 어떤 만남 속에서 내 열망에 시선을 맞추다 다가오는 스승을 향해 언제나 나의 모든 감각이 열려 있기를.”(P146~14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싶을 때가 바로 공부를 해야 하는 때이고, 혼자 가기 어려운 길은 함께 가고, 가면서 흔들거리는 게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고 그의 산문집 곳곳에서는 말한다. 혼자 나 잘났다고 하지 않으니 가슴이 더 아프고, 그 아픔으로 위로를 받는다. 바로 내 이야기인 것처럼. 나도 이이처럼 풀어 봐야지, 하는 계획이 생기기도 하면서.

“지금 네가 흔들리는 것은 누군가의 중심이 되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스승들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배운 대로 전해주어야겠지요. 방황해보지 않고서야 있어야 할 자리를 어떻게 찾겠느냐고, 앓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몸살을 어찌 읽겠느냐고, 너의 약함은 너와 너의 벗들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다.”(p189)하니, 아픈 사람만이 아픈 이를 온전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니,

 

“아이들 곁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깨닫게 된 것 한 가지는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는 그야말로 ‘문제’라는 것이다. 죄가 아니라 풀어내도록 도와주어야 할 문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아이들의 영혼이 묻는 것이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원인을 선생인 내게서 찾아야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놈의 자식들이 어째서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는 막막하기만 하고, 정 떨어지고, 선생노릇 그만하고 싶고, 학교라는 곳에 희망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이 아무 의미 없는 일 같다.”(P112)……학생들이 보이는 문제는 선생이 선생답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디딤돌이라는 걸 깨닫는다."(p113)

그이는 이렇게 성장한다. 흔들리면서 어여쁘게 피어나는 수국을 닮은 맑은 영혼. 그이의 스펙트럼은 차고 넘친다. 왜냐하면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공부하고, 생겨난 문제는 어떻게든 최씨 고집으로 꼭 풀고야 만다.

최은숙 선생님이 다다른 깨달음 중 소중한 두 가지를 담아본다. 하나는 아이들과 한바탕 소란스럽지만 진지하게 또 평화롭게 문제를 풀고 난 연후에 생각하는 “내가 일하는 조그만 학교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 내가 영원한 학생이란 것을 이해한다.”(p139) 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마음으로 그이의 어디쯤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신념과도 같은 말 “산마루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자란 나무는 단단하고 성질이 강하고 수분과 영양이 충분한 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는 약하고 부드럽습니다. 그 성깔대로 적소適所 에 써줄 때 한 그루의 나무가 천 년 고찰을 버티어주는 적재適材 가 되는 것이랍니다. 아이들도 나도 역시 성깔이 있는 나무입니다. 어떤 사람이, 혹은 어떤 장소가 나에 대한 이해 없이 제 뜻대로 이렇게 저렇게 잘라 정해진 틀에 끼워 넣으려고 할 때 내 속의 생명력이 말없이 그 잣대와 틀을 비켜서는 걸 느낍니다. 아이들도 내 사고와 방식 앞에서 그렇겠지요. 우리는 목재소에서 성깔을 제거해버린 합판이 아니어서 싱싱하게 부딪힙니다. 좋아하면서도 상처받고 이끌리면서도 밀어내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고 부대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각기 만만치 않은 녀석들의 성깔이 제대로 깊어지도록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아주고 싶습니다.” 이다.

만만하지 않은 교사의 길이다. 그러나 앞에 뒤에 스승이 있고, 공부할 학생이 많아서 더 없이 괜찮다.

 

 

 

4. ‘나의 교실’ 을 갖는 다는 것

 

대한민국의 학교는 일제 고사로 아이들을 줄 세우게 하고, 점심 한 끼 밖에 먹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자고 하는 외침을 외면하고, 봄이면 아이들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골골까지 가정 방문을 가고 싶어 하는 교사를 이런저런 잡일에 붙잡아 둔다. 누가 문제를 더 많이 맞추느냐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교육의 모든 것처럼 받아들이고 부추기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열 사람이 한 걸음씩 가’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열 걸음씩 가야’ 할 때인지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앞서서 자신의 길을 간다. 이 때문에 ‘나의 교실’은 아름답고, 숲 속에서『성깔 있는 나무들』은 마음껏 우루르우루르 자기의 소리를 낸다. 아이들은 안도현 시인의 ‘애기똥풀’의 의미를 알아가고, ‘허수아비’의 마음을 감정이입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우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최은숙 선생님은 ‘묻고問, 배우고學, 실천하는 (이현우,『책을 읽을 자유』,p61) 치열한 삶 속에서 ‘나의 교실’ 한 칸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신념을 조용히 안고 가는 사람이다.

 

i******y 2011.01.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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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제부터 나의 선생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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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학교 생활, 귀가 후 생활, 돌아보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힘들어 헉헉대는 제자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우리 모두 힘들게 지나 왔구..다른 친구들도 아마 너처럼 힘들게 견디고 있을 거야. 다만 얼만큼 밖으로 티를 내는지 안 내는지의 차이야. 힘들어도 우리 같이 버텨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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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 학교 생활, 귀가 후 생활, 돌아보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힘들어 헉헉대는 제자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우리 모두 힘들게 지나 왔구..다른 친구들도 아마 너처럼 힘들게 견디고 있을 거야. 다만 얼만큼 밖으로 티를 내는지 안 내는지의 차이야. 힘들어도 우리 같이 버텨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교사가 아니 선생님은 저래야 하는구나! 교사도 저렇게 할 수 있는거구나!

저렇게 하면 선생님도 아이도 행복한거구나!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주시는 선생님의 참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수필집. 나도 어린 시절 이런 예쁜 선생님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난 꿈을 쫓아 지금쯤 그 꿈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린시절엔 허락되지 않았던 이런 예쁜 선생님은

유년기를 훌쩍 지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학창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따스한 온기로 채워준다. 타인의 삶을 통해 타인의 유년기를 통해 내가 이렇게 치유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며 읽었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행복을 그리며 힘차게 달려야 하는 아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좌절을 보듬고, 삶에 매몰된 그 아이의 부모님의 손을 맞잡고 엷은 미소를 보이며

오랫동안 쌓였을 그들의 아픔을 살며시 녹이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내가 경험하듯 그려진다....

 

어린시절 갖고 싶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 그런 분을 기억하기 싶으신 분, 학창 시절의 아픔을 걷어내고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쯤 아니 두고두고 읽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c*********1 2013.11.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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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섬기는 데 아낌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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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담임선생님이 한 번도 집에 찾아온 적이 없다. 우리 부부도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거의 찾아가지 않았으니 딸아이를 학교에 맡겨두고 신경을 쓰지 않은 셈이다. 학교와 관계를 맺은 것은 딸아이가 대안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그 관계는 학교와 담임선생님은 물론 다른 교직원들과 학부모까지 이어졌다. 딸아이가 학교다운 학교를 다닌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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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담임선생님이 한 번도 집에 찾아온 적이 없다. 우리 부부도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거의 찾아가지 않았으니 딸아이를 학교에 맡겨두고 신경을 쓰지 않은 셈이다. 학교와 관계를 맺은 것은 딸아이가 대안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그 관계는 학교와 담임선생님은 물론 다른 교직원들과 학부모까지 이어졌다. 딸아이가 학교다운 학교를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일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학생 집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초등학생 3학년인 아들 녀석을 봐도 그렇다. 내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담임선생님이 학기 초만 되면 학생들 집을 찾아다녔는데 말이다.


최은숙 선생님 산문집을 읽으면서 가정방문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서 무척 반가웠다. 저자는 3월을, 아메리카 원주민 방식으로 표현하여, “우리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시는 달”로 정하자고까지 한다. “학교의 3월은 숨이 가쁘다. 각종 부서를 조직하고, 계획서를 쓰고, 환경정리를 하고,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모든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가정방문을 한다는 것은 보통 열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를 파악하는 데 가정방문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지, 누구와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아침에 몇 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지, 그러기 위해선 아침밥을 몇 시에 먹어야 하는지, 아이들이 집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급식 지원이 필요한지, 숙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인지”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정방문의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학생들 가정방문을 나선다. 사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학생이랑 사는 할아버지가 딸 삼자는 말에 아버지라고 부르기(「우리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시는 달」)도 하고, 할머니에게 딸 같은 역할을 하기(「지금, 여기 있는 내 친구들」)도 한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는 아픔”을 비켜 가지 않는 것이다.


철이 어머니는 웃으면서 울었다. 철이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몇 마디만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스란히 그 아픔을 같이 느끼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내가 아이들보다 부유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보다 화려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거짓 없이 함께 아플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웃으면서 헤어졌다. 별로 위로도 못 해드렸는데 철이 어머니가 같은 식당에서 일하시는 우리 반 학생 어머니에게 나를 인계하면서 말했다.

“언니, 우리 선생님 정말 좋아.”(25쪽)


저자가 이렇게 가정방문을 하는 것은 학생을 단순히 가르치는 제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온전히 한 명 한 명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마음은 곁에 있는 좋은 선배 교사들과 동료, 그리고 단비교회 목사 부부 같은 이들이 끊임없이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서른 살 언저리 나의 나이테가 되어준 이들은 그 시골 교회의 목사님 부부였습니다. 걸음을 나란히 해준 친구이면서 스승이었습니다.”(「지금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라고 쓰고 있으니 단비교회 목사 부부와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 짐작할 만하다.


저자 경험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대학 때부터 비롯한 관계가 있다. 스승의 부름을 받은 선배는 저자와 벗들을 일주일마다 찾아와 시와 소설을 뜯어봐주고 술과 밥을 사주었다. 시간이 흘러 선배는 어느덧 벗이 되었다. 스승을 매개로 한 선배가 어느덧 벗이 되고, 이제는 저자가 후배를 챙기는 나이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제자 또한 친구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온전히 아끼고 온전히 아낌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한다. 중학생 제자에게 겨울바다를 선물한 이야기는 그것을 삶에서 실천한 사례다.


요한이가 노래를 아주 잘한다는 걸 그때만 해도 몰랐다. 축제 때 무대 위에서 최신 발라드를 열창하는 녀석을 보면서, 음치 중의 음치인 담임을 위한 선곡을 하고, 맞춰 불러주느라 애를 썼구나 생각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부르면서 손잡고 바닷가도 걷고,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오락실에 갔다가 아빠한테 걸려 엄청 맞은 이야기도 실감나게 듣고, 매운탕도 먹고, 천상병 시인 생가에도 들르면서 멋지게 보내고 돌아왔다. 제자들 주에서 시 쓰는 농부가 나왔으면 하는 게 나의 즐거운 상상이다.

“제가 시 쓰는 농부가 될까요?”

하교 요한이가 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요한이가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31 - 32쪽)

YES마니아 : 골드 g*******g 2011.06.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