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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그 사람 참 개념없다.“ 혹은 ”XX학의 개념정리“와 같은 표현 등으로 개념이란 단어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daum)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개념(槪念)이란 “어떤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회과학분야에서는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철학에서는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으로 언어로 표현되며, 일반적으로 판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나 판단을 성립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자가 책의 모두에서 “개념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정리한 바에 의하면 개념사에서 보는 개념은 “이념(관념)이라기보다는 각 시대의 구체적인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수행되는 언어 행위의 한 구성요소”로 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로 표시된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그 의미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서구중심의 역사나 문명의 해석을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격려하고자 합니다만, 행간에 스쳐지나가는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민중중심의 시각에 지나치게 몰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하여 진보와 보수학자들 간에 있는 시각차이는 토론을 통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근대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최근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서 잘 드러나듯이,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는 ‘탈근대주의’적 시각은 결국 ‘탈근대주의적 근대화론’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 기괴한 근대화론적 시각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지금까지 알려진 한 가장 적합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찬양, 남북 분단을 ‘문명’과 ‘야만’의 대립 구도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인식에서 절정에 달한다.(170쪽)”라는 주장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라는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자체가 논점이라고 본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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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념사의 정의, 연구 방법과 함께 어떤 연구자들이 있었으며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 상세히 알려주는 개념사 지침서다. 나름대로 역사 마니아라고 생각했지만 '개념사'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 읽을 땐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중반 넘어가서는 개념사 연구가 구체적인 역사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이해가 갔다. 독일의 보수주의 작가 윙어가 묘사하는 미래국가는 '남성동맹의 원리, 즉 우정, 국가, 병사, 군영, 금욕과 전투, 정신, 에로스, 영웅적 권력에의 의지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반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는 여성에 의한 지배, 도시, 시민/민간인, 살롱, 탐닉과 평화, 물질주의, 성생활, 도시적, 행복주의적인 원리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한다. '역사-근대적 역사 개념의 새로움'에선 '역사' 개념의 역사를 다루고 '역사'란 실제로 무엇이었으며 현재는 무엇인지 알려준다. 전통 역사 개념과 비교했을 때 근대 역사 개념은 아주 새로웠다고 한다. 조금 까다롭고 어려운 내용이라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개념사란 분야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되어 흐뭇했다. 조금 아쉬운 점은 2부에서 개념들 각각의 역사를 독일을 중심으로 보기에 우리나라와 관련지어선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개념이 우리나라 사회와 연관지어 연구하면 상당히 논쟁거리가 많고 흥미로울 것들이라서 더 아쉬웠다. 언젠가 저자가 우리 사회와 관련해 개념사를 연구한 책을 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니 이미 냈을지도 모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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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구들끼리 만나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약간 말발이 서고 난체하는 부류가 있는데 얘기의 중심 내용이나 의미의 본질에서 벗어났다 하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기는 커녕 "넌,어째 개념도 없이 사니? 아니면 "개념이나 알고 말하는 거니?"라고 핀잔을 주곤 한다.일상 생활 가운데 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여 상대방이 제대로 간파하여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며 상대방의 말 또한 의중을 통찰력과 지혜,관성으로 간파하는 능력을 길러야 이러한 말을 듣지도 않을뿐더러 티미팅의 좌중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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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 개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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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는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혹 특정 단어를 알지 못해 사전을 뒤적일 경우, 우리가 사전으로부터 발견하게 되는 바가 바로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념은 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의하게 된 것일까?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특정 단어가 사용된 순간을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누가 그렇게 정의했다’라는 내용을 명확히 알기란 쉽지가 않다. 어쩌면 명백한 시점 따위는 애당초 존재치 않는지도 모른다. 개념이 한 사회에서 통용되기 위해서는 사람들간의 합의가 따라야 한다. 나 홀로 A라는 단어를 B로 이해하겠다 선언하여도 나의 뜻에 동조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내 주장은 A라는 단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정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다 하여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시대가 변화하여 사람들간의 합의에 변화가 따른다면 개념은 변형된다. 그렇기에 개념은 역사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개념사는 언어와 정치.사회적 실재, 혹은 언어와 역사의 상호 영향을 전제한 채 이 둘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탐구하는 역사의미론(historical semantics)의 한 분야이다. 역사의미론이 지향하는 바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처한 삶의 현실을 인식하고 해석하며 표현했는가, 또한 이 주관적 인식과 내면적 경험의 세계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p13 따라서 이와 같은 개념사에 대한 정의는 유효하다. 다소 고정적인 형태를 띠는 언어로 개념은 표기된다. 하지만 변화하는 개념의 속성상 언어라는 표피 역시 시간, 역사와의 소통을 통해 변화하게 된다. 조금은 순화(?)된 단어인 ‘소통’은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 다툼과도 같다. 하나의 개념은 또 다른 개념을 낳기에, 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념이 정의되도록 하고자 사람들은 다툰다. 많은 개념들은 숱한 투쟁의 결과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근대, 문명과 문화, 자본주의 등의 개념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근대 개념은 단순히 서양인들의 위와 같은 새로운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의식을 이데올로기화하고 그들의 행위를 정치화시키면서 근대 서양의 역동적 변화를 추동했다. –p179 ‘미국’은 한편으로 ‘독일’과 반대되는 부정적 이미지로 정형화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독일인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투영된 긍정적 이미지로 정형화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적 모호함과 더불어, 여타의 비대칭적 반대개념들과 달리 ‘미국’은, 독일에서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면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고 또 이를 심화시키는 전형적인 기본 개념이었다. 그 가운데 미국은 ‘낯선 땅’이라는 공간 개념에서 ‘근대성의 상징’, 따라서 독일의 미래를 선취하는 탈영토화된 시간 개념으로 바뀌었다. –p227 탄생의 과정에서부터 역동적이었던 개개의 개념들은 탄생 이후에도 각 집단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변형을 경험했다. 그와 같은 변형은 전자처럼 서양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능동적인 형태일 때도 있었고, 후자처럼 변화된 사회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형태일 때도 있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객관적이라며 믿어온 개념들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이 선다. 역사가 오로지 승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념 역시 누군가의 강력한 입김(!)에 의해 수시로 뒤바뀌는 게 아닐까 라는… 동시에 코젤렉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카를 슈미트의 ‘정치적 인간학’이라는 개념이 보여주듯, 개념 역시 특정 시대나 사회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사회에 변형을 가하며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언어 역시 보이지 않는 힘 간의 치열한 다툼 속에서 새로이 탄생하고 또 소멸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난해한 독서였다. 언어학과 사회학, 역사학까지 폭넓게 걸쳐 있는 듯한 개념사였기에 더욱 그랬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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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개념사와 용어사를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개념사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들은 이 책의 개념사와 같은 의미가 아닌 용어사에 가까운 듯 하다. 특히, 뒤늦게 우리나라에서 개념사라는 말이 최근에 회자되는 만큼 이제는 개념사와 용어사를 구분짓는 제목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될 듯하다. 언어 자체를 연구하느냐 언어를 결정짓는 실재를 살피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보니 언어를 통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학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역사 속에는 정치적 상황과 사회의 다양한 대립, 인물 등이 존재하고 언어는 공간과 시간을 달리 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결정적 요인들이 되는 역사를 살피면서 개념사연구는 진행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역사 또한 언어로 씌여졌기 때문에 역사를 고증하는 것 또한 당시의 역사적 실재를 파악하는 데 개념사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저자는 개념사 연구를 체계화시키는 데 있어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라인하르트 코젤렉을 중심으로 여러 개념사 연구가들을 언급하고 있다. 오랜 시공간을 거치면서 여러 정치, 사회적 의도와 배경들로 인해 각각의 시공간에서 개념이 사회적 의미로 사용된다. 그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른 지역, 세대 등에 의해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념을 연구하는 것이란 어느 한 개념의 중층결정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개념의 운동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여기에서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의 한 연구가 떠올랐다. ‘브로크백마운틴과 사우스파크 사이-동성애 혐오와 동성애 용어의 변천사’라는 챕터였는데 개념사책을 읽으며 생각하니 그의 연구가 ‘용어’관련이라며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분명 동성애 용어에 대한 짧은 개념사 연구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좀 더 많은 부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개념으로의 정착, 그 부정성의 지속성에 대해 언급했더라면 보다 개념사 연구에 가까웠을 테지만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개념사 연구라는 분야를 처음 접한 듯 하지만 타이틀만 없었을 뿐 사실 다양한 분야에서 개념사 연구는 실행되어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가 지칭하는 언어에 대한 고찰없이 사용해온 언어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는 기분마저 든다. 개중에는 너무도 자의적이고 분절적이어서 그저 고유지칭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는 언어로 재현된 사물에 대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념사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일지 더 흥미로워진다.
개념사 연구란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듯 그 정석을 들이댈 순 없지만 아마도 저자가 책의 하반부에 여섯 개의 개념으로 근대를 읽은 것처럼 개념의 배경과 이데올로기를 파악함으로써 언어인 개념발생의 전후역사와 삶의 모습을 되짚어가는 연구과정의 모습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각 시공간에 따라 근대의 개념이 다르듯, 개념을 각 언어로 결정짓는 것일 뿐, 모든 언어가 그렇듯 각각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자의성은 각각 중층결정적이라 할 수 있으며 언어로 표현된 실재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은 역사연구와 흡사한 면이 있다. 이렇다 보니 저자가 근대와 모던의 공통분모와 차이를 말하는 것처럼 번역된 언어의 내용적 차이의 그 배경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때로는 그 지시대상(사물이건 뉘앙스이건)의 차이까지 극대화된 간격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인류 이동의 역사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저자의 언급 중 특히 본인 외의 모든 타자를 지칭하는 언어와 그것의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크 슈미트의 연구 중 동성애 용어인 ‘게이’가 단지 정상적 가족관계의 강조가 필요했던 정치적 목적 끝에 다분히 추상적인 부정적인 뉘앙스 자체만을 남기고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이야기처럼 유럽역사가 결정한 동양과 오리엔탈 등의 언어는 역사 속의 원시주의와 야만주의 등의 사조의 언어와 개념을 이끌었다는 결론에 쉽게 이른다. 특히 저자가 언급하는 (우리가 대칭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비대칭적) 반대개념의 남과 여와 같은 타자지칭을 언급하는 데 있어서는 이러한 여러 언어에 대한 생각이 몰려왔다. 유럽에 비대칭적인 동양, 남자에 비대칭적인 반대개념으로서의 여자처럼 나 이외의 모든 것을 타자화 시키는 언어의 배경에는 헤게모니의 중심을 읽을 수 있는 코드가 담겨있다. 이렇게 보니 권력과 이데올로기, 숨겨진 호명 등을 밝히는 데 개념사 연구는 매우 유효해보인다. 단지 지칭하는 언어일 뿐 인 듯 하지만 여자라는 언어에 담긴 전통적인 여성상의 호명과 강요,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의도적(혹은 무의식적 자기방어)인 역사가 또 다른 언어로 설명될 수 있으며 여기에 더해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타자, 여자는 주체, 남성의 정치적인 의미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입지와 개념(이미지)는 변화한다.
저자는 키워드를 통한 개념사 연구에서 다양한 근대의 이미지를 읽고 있는데 재현된 예술작품 속의 대상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서 우리는 창작의 또 하나의 힌트를 개념사 연구에 기댈 수도 있을 듯 하다. 개념의 반영으로서의 예술 재현의 방법을 생각했을 때 하나의 언어와 다양한 배경, 그 개념을 결정짓고 변화시킨 역사에서 우리는 하나를 재현하는 수많은 뉘앙스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감성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영감이 되고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개념사 연구는 적어도 자족적이고 어느 한 방향의 사료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닌 점이 오히려 가장 신뢰를 주는 연구로 느껴지게 한다.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이 글 속의 역사란 어느 시점의 역사라는 개념을 가진 언어인지... 모든 언어와 그를 둘러싼 역사와 재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모든 걸 의심스럽게 본다기보다는 모든 것이 흥미로워진다는 긍정적인 언어로 해석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말 같지만 저자의 차분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한 문장, 한 문장이 굉장히 부럽다. 전체 구성또한 그렇지만 공들여 쓴, 그리고 한국어로 씌여진 책으로 개념사를 접하게 된 것이 행운만 같다. 일개 독자이지만 저자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번역본으로 개념사를 처음 접했더라면 이렇게 차근차근 이해할 기회가 없었을 것만 같다. 앞으로 글을 쓰거나 개념사로 파악하고픈 모든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참고하게 될 만한 책이다. 특히, 개념사적 글쓰기의 예시이기도 한 책의 후반부는 논문 등의 글쓰기에도 큰 도움이 되고 영감을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연체 문장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없다. 차근차근 짚어 읽어 내려가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말 그대로) 만들어낸 글들이다. 어떠한 텍스트를 분석하더라도 참고할 수 있는 글쓰기이며 내용적 측면에서도, 개념사란 저자의 말대로 폭이 굉장히 넓고 그 한계가 무한하므로 세상을 보는 눈을 단련시키는 데 좋은 책이다. 비록 세상의 모든 개념을 골똘히 고민하게 하는 책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든 추천하고픈 책이다. 더불어 국내에 작년에 출간되었지만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시리즈가 무척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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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없는 시간이 있을까. 개념을 갖지 않은 언어가 있을까. 시간과 언어는 공통적으로 개념을 공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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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어렵다. 근데 요즘 나오는 번역서들의 배배 꼬인 요상한 문장에 질색하는 나로서는 일단 제대로 된 문장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게 아주 맘에 들었다. 적어도 저자는 자기가 쓰는 글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책이 솔직히 요즘엔 드문 것이다. 2부에서 글 몇 개를 먼저 읽고, 이론적인 얘기도 읽어볼만 하겠다 싶어서 1부의 글을 읽었는데, 잔뜩 쫄았던 것에 비하면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코젤렉의 일생은 거의 소설 같이 극적이어서, 책 전체에서 제일 감동적으로(?) 읽었다. 개념사를 다룬 책들이 요즘 꽤 많이 나와 있는데, 그 책들도 하나씩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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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는 개념사가 발전했다.
이념이나 개념은 역사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혹은 경제적 요소와 마찬가지로 역사 세계를 구성하면서 이것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코젤렉(1923-2006)의 강조점이었다.
코젤렉의 개념사는 서구와 미국을 모델로 '좋은 근대'와 '발전'을 강조하는 근대화론을 비판하고, 개념 연구를 통해 근대성의 숨겨진 이면을 역사적으로 성찰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비서구 세계의 근대화에는 예외 없이 서구어의 번역과 번역을 통한 무수한 신조어의 출현이라는 개념의 혁명, 그리고 그에 따른 지적 아노미 현상이 수반되었다.
개념사는 개념을 인간의 경험 세계, 즉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초월해 불변하는 단단한 실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르 내뿜고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언어적 구성물로 본다.
개념사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진 개념 사용의 역사를 탐구한다.
근대 세계가 어떻게 언어적으로 파악되었는가, 즉 개념들을 통해 근대 세게가 어떻게 의식되었고, 또한 개념들은 어떻게 근대 세계에 대한 의식을 만들어냈는가 하는 것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이처럼 코젤렉의 개념사는 근대의 시원 및 근대성의 탐구라는 분명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코젤렉은 개념의 역사를 개별 언어 행위(사건), 중기 지속, 그리고 장기 지속이라는 시간적 구조 속에서 파악한다.
'경험 공간과 기대 지평의 균열'
이른바 '~주의'로 표현되는 근대적 개념들이 무수히 출현했다. 이 개념들은 경험과 기대 간의 점점 증대되는 긴장에 의해 특징지어진 운동개념들이다. 이를테면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개념들은 종래 신분 사회의 질서가 서서히 붕괴됨녀서 생겨난, 장래에 이룩되어야 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이 개념들은 그와 상응하는 실상이 존재하기 이전에 발명된 개념들이다.
1990년대 이후 개념에 쌓인 의미론적 중층구조를 독해하려는 코젤렉의 관심은 전사자 숭배 및 전쟁 기념비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었다. 그는 이런 역사 도상해석학 연구를 통해 전쟁과 죽음의 경험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집단적 기억으로 제도화되며,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받는가를 장기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이처럼 단어에 초점으 맞추던 그의 구조사적 개념사는 비언어적 상징과 아이콘에 대한 연구까지 포괄하는 역사기호학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